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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현미 安賢美
1972년 강원도 태백 출생. 2001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이 있음. aphrodite69@hanmail.net
사랑
연암은 열하를 일러 ‘사나이가 울 만한 곳’이라 했다는데
당신은 바다를 일러 ‘사랑이 울 만한 곳’이라 한다
지금은 세계가 확장되는 시간
난 한번도 세계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건 늘 당신으로부터 사랑이 왔기 때문
그밖의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사랑이 확장되는 시간
물고기가 키스하는
이 명랑, 이 발랄!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시간을 활용할지 아는 연인처럼
혹은 맨처음 바다로 나아간 최초의 사람처럼
우리는 진짜 인생을 원해
저 바람 좀 봐 애인을 도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저 파랑, 저 망망!
그리고 공연히 무작정의 눈물이 왔다
어떤 삶의 가능성
스물두살 때 나는 머리를 깎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나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운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들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