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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013년에 무엇을 해야 하나

 

박근혜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하려면

 

 

박창기 朴昌起

(주)에카스 대표, (주)팍스넷(증권정보 인터넷기업) 창업자. 전 희망제작소 이사. 저서로 『혁신하라 한국경제』가 있음. ckfrpark@gmail.com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내부 문제의 핵심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잘못된 구조이고, 외부의 핵심 문제 중의 하나는 주요 국가들의 고령화에 따른 수요 감소현상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박근혜정부가 성공하여 국민 대다수에게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조언하려 한다.

 

 

1. 좋은 일자리의 부족과 ‘신자유주의 폐해론’

 

우리 경제위기의 태반은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겼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실업자가 줄고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며 가계부채는 축소되고 양극화도 완화된다.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소기업의 일자리, 자영업의 일자리, 비정규직 일자리의 비중을 줄이고, 큰 기업과 강한 중소기업의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경제위기 해결의 열쇠다.

2010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 종사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는 약 240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6%이며, 취업자 2400만명의 10% 수준이다. 30대 재벌의 직원과 공무원의 수는 각각 약 100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4% 정도씩이다. 한편 미국의 경우 500인 이상 대기업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50%를 고용한다. 영국과 독일은 250명 이상의 대기업이 임금근로자의 45%와 40%를 고용한다. 일본은 22%, 대만은 21%가 대기업에서 일한다.1) 우리는 큰 기업과 강한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다.

한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신자유주의 폐해론’이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극복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많은 지식인들이 주장한다. 그런데 필자는 ‘신자유주의가 원인’이라는 분석은 틀린 것이며,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차대전 이후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는 복지를 늘리고 세율을 높이며 공공부문을 강화하는 수정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정책이 1970년대에 들어서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였던 영국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한 복지,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 공공경제의 지나친 확대와 그에 따른 높은 세금 등의 병폐로 경제가 파탄상태가 되었고 급기야 1976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복지를 줄여 세금을 낮추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제압하고, 공공경제 부문을 줄이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했던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다. 이러한 정책으로 1979년에 집권한 영국의 마거릿 새처(Margaret Thatcher) 수상은 고질적이던 ‘영국병’을 극복했고, 1981년에 집권한 레이건(R. Reagan) 대통령은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미국자본의 이익에 종사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부자 감세로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졌으며, 금융자본의 사기에 가까운 탐욕 추구를 방치하여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유발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꾸준히 복지를 늘려나갔고, 따라서 세금도 늘어났으며, 노동조합의 위력은 강화되었고, 정부가 주도한 토건과 산업정책은 계속되는 한편, 관료의 권능도 지속되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대세는 유지되었다. 이처럼 과거 20년간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 그런데도 한국경제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어려워졌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상품시장과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노동유연화를 요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MF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집행되지는 않았다. 자유무역협정과 그에 따른 무역자유화는 우리의 수출 확대와 국내 독과점산업의 개혁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기업에서는 유연화가 별로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비정규직과 하청의 증가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노동유연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압력뿐 아니라 분업의 세계화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주요 은행의 경영권을 미국의 투기성 금융자본인 골드만 싹스, 뉴 브릿지, 론 스타 등에 넘겨주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IMF의 압력을 동원하여 단기적 시세차익이 확실해 보이는 은행을 투기적인 목적으로 인수했다가 대규모 차익을 얻고 철수했을 뿐이다. 이는 한국의 관료와 정치권이 은행업종의 속성과 투기자본의 야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다. 가령 중국은 부동산과 은행 같은 이권경제에는 외국인 투자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진보개혁진영의 많은 학자와 정치인은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원인이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 유령을 잡으려고 노력하다보니, 현실 문제의 분석에 실패하고 대안 제시도 못했던 것이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지고 허망한 논쟁을 하던 중 민심은 떠나버렸으며 그 결과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이 패배한 것 아닐까. 필자는 신자유주의 폐해론을 대체할 정치경제의 구조를 분석하는 틀로 ‘이권집단들의 최소승리연합’ 이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2. 이권집단의 최소승리연합과 빈부격차의 확대

 

필자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구조를 약 0.1%의 이권장악집단(G1), 0.9%의 이권비호집단(G2), 9%의 이권추종집단(G3) 그리고 90%의 침묵대중집단(G4)으로 구분하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2) 여기서는 G1, G2, G3의 기득권집단과 나머지 90%의 피착취집단으로 나뉘어 고착되는 현상을 ‘최소승리연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득권을 확보한 세력들이 G4를 통제하고 세금 등 이득을 취하려면 전투에서 ‘승리’할 만큼 충분한 수의 우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군 집단이 너무 커지면 각자에게 돌아갈 전리품이 줄어들므로 최소의 수로 연합체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중세시대 봉건군주에게는 유럽의 기사와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적정한 규모의 군사력을 가진 지배집단이 필요했다. 군사력이 너무 작으면 주민을 통제하기 어렵고 다른 봉건집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러나 군사력을 너무 키우면 세금을 그만큼 많이 걷어야 하기 때문에 유지하기 어렵다. 일본의 토꾸까와(德川)막부 시대에 G2, G3에 해당하는 사무라이 계급의 비중은 에도 지역 5%, 큐우슈우 지역 10%였다(1721년 인구조사). 조선시대 초기에 양반은 약 5%였으나 점차 증가했다. 북한의 노동당원의 수가 인구의 약 10%라고 한다. 이권집단이 너무 커지면 그들이 나누어가질 것이 적어지므로 수를 제한하려 노력한다. 부모 중 한쪽이라도 양반이 아니면 자식이 양반이 될 수 없도록 한 이유도 이것이다. 북한에서도 부모 중 한쪽이라도 출신성분이 나쁘면 노동당원이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사회도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정권 획득을 이권으로 생각한 듯 5천개 내외의 중요한 직위를 자기 측근에게 나누어주고 재벌 건설업계를 위해 4대강사업에 22조원 이상의 돈을 쏟아부었고, 수많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전리품을 챙겼다. 그래서 형인 이상득(李相得), 멘토라는 최시중(崔時仲), 최측근인 천신일(千信一), 박영준(朴永俊)과 정두언(鄭斗彦) 등이 감옥에 들어갔다. 이들 역시 자기끼리만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권집단은 누적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경제는 후퇴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 봉건제나 군주제는 이권집단의 누적에 따른 억압과 차별과 착취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파멸해왔다. 중국의 역사에는 300년을 넘긴 왕조가 없다. 조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우리 민족은 일본의 노예로 전락했다. 소수의 이권집단들이 연합하여 다수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구조를 완화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민주정치제는 이권집단을 폭력 없이 교체하기 때문에 인류의 번영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기형적인 간접민주제는 소수의 이권집단들이 연합하여 G4를 착취하는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심각한 병폐를 키워가고 있다. 자살률이 세계 최악수준을 크게 넘어서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한국이 얼마나 살기 어려워졌는지를 웅변한다. 이를 통계자료를 통해서 살펴보자.

 

다음의 표는 김낙년(金洛年) 동국대 교수가 20125월 발표한 「한국의 소득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라는 논문의 통계를 분석하여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이를 보면 1995년에서 2010년 사이 20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최상위 1%가 가져가는 소득은 7%에서 12%로 증가했다. 그 다음 9%의 소득은 22%에서 32%로 증가했다. 그 결과 하위 90%의 소득배분은 71%에서 56%로 감소했다. 87년체제에서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확대되면서 하위 90%의 성인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12% 감소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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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빈부격차의 확대 역시 이권집단들이 최소승리연합을 유지·강화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G1인 재벌 지배주주는 G2인 임원과 간부의 임금과 혜택을 늘려서 충성을 유도하고, G3인 정규직 조직노동자에게는 상당한 임금과 복지를 보장하되 그 수를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자가 아닌 10% 정도의 조직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줄기차게 증가시켜 고소득을 쟁취해냈다. 현대차의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은 1억원에 육박하며,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정규직 노동자도 5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 공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도 이에 못지 않은 높은 연봉과 복지혜택을 얻으면서 ‘신의 직장’이라는 별칭까지 붙게 되었다. 교사와 공무원 역시 높은 연봉과 종신연금 같은 복지혜택으로 평균 근로자 임금을 크게 웃도는 소득을 향유하게 되었다. 2010OECD 통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15년 경력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연간 급여가 46338달러로, 미국(45226달러), 일본(44788달러), 영국(44145달러), 프랑스(32733달러)보다 높고, OECD 평균(37603달러)23%나 상회한다.3) 각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물가수준을 고려할 때 한국의 교사들은 과도하게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년퇴임하는 교사는 평생 매월 30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일시불로 계산하면 8억원에 상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로 인한 막대한 교원연금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우고 있다. 현재 공교육 부실이라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이들이 국민의 세금에서 이처럼 과도한 혜택을 가져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의 표에서 보듯이 차상위 9%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29%, 영국이 27%, 프랑스가 25%인데 한국은 32%이다. 한국의 차상위 9%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분배받고 있다.4) 따라서 1% 대 99%의 대결만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고소득자의 가족을 포함하면 약 20%의 상류층과 나머지 80%의 서민층 사이의 양극화도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인 것이다.

 

 

3. 재벌봉건구조의 적대적 공생관계

 

오늘날 한국사회는 30여개의 큰 기업집단인 재벌들이 봉토를 건설하고 성을 쌓아 분할통치하는 봉건체제에 비유할 수 있다. 성 안의 궁전에는 총수 일가와 측근인 G1이 살고, 성 안의 상류층 지역에는 궁전을 드나들며 일하는 G2인 임원과 간부와 전문가가 살고, 성 안의 일반지역에는 G3인 정규직 노동자와 공무원이 산다. 성 밖에는 장시간 노동을 하며 집세와 빚에 휘둘리고 결혼도 어려울뿐더러 자녀 교육비와 노후 걱정에 시달리며 자살로 내몰리는 서민이 산다. 이들이 침묵대중집단 G4다.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정치적 힘을 얻은 대기업노조, 금융노조, 공기업노조, 공무원노조 등 G3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성벽을 첨차 높여가자 성 밖의 서민 G4는 점점 더 못살게 되었다. 이들 고임금 노동자의 다수는 성 밖에 사는 비참한 백성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도록 하는 데 애쓴다고 보기 어렵다.

공지영(孔枝泳)의 르뽀 『의자놀이』(휴머니스트 2012)에서 보듯이 쌍용차 노동자 복직투쟁은 성 안에 살던 사람들이 성 밖으로 밀려나자 성 안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다투면서 조직노동자의 이권을 강화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한진중공업 복직투쟁도 마찬가지다. 5천~7천만원의 연봉을 받던 사람들이 2천~3천만원대의 소득이 예상되는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으로 생활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평생을 2천~3천만원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성 밖의 80% 서민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주장은 과잉 대변되고 있다.

태반이 자영업자이고 비정규직인 50~60대 중에는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이권집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권을 차고 앉아 고임금을 누리면서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는 정규직 노조에 반감을 가진 20~30대도 많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文在寅) 후보의 러닝메이트격인 서울시 교육감후보로 전교조 위원장 출신을 내세운 것과 민주노총 출신을 경상남도 도지사 후보로 내세운 것도 야권의 어이없는 패배의 원인 중 하나였다. 현대차 노조는 야근을 줄이고 더 많이 채용하자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 밖의 사람들에게 긴요한 실업급여를 확대하는 정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실업급여보다 몇배의 소득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은 자신의 임금을 양보하여 시간강사의 비참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한다. 어차피 임금배분의 문제는 부가가치라는 파이를 나누어 갖는 제로썸(zero sum)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조직노동자와 교사·교수도 우군 집단의 규모를 ‘최소’로 유지하되 투쟁에서 ‘승리’할 만큼의 수는 지키려는 이권집단의 ‘연합’인 것이다.

40~50대의 다수는 진보개혁세력이 외치는 ‘정리해고 없는 나라’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잘 안다. 경기가 후퇴하여 매출이 줄어드는 때 정리해고를 하지 못하면 기업은 망하게 된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차가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매출액이 줄었는데 만약 정리해고를 하지 못했다면 파산해서 모든 직원을 해고해야 했을 것이고 공장시설은 고철이 되고 축적된 기술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더 많은 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도 적절한 실업급여를 받으며 취업을 준비하다가 좋은 직장을 찾을 기회가 많은 나라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늘어난다.

강성노조와의 타협이 필요한 재벌과 공기업의 수뇌부는 조직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을 제공하되, 그 수를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고 해고도 어려운 정규직 수를 제한하기 위해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사외하청과 사내하청을 늘렸다. 그러면서 하청업체의 납품가격을 압박하므로 하청업체 종사자의 임금은 형편없이 낮아졌다. 재벌과 대기업 노조는 상호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혜택받는 사람들의 수를 최소화하는 데 협조하며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이권집단의 최소승리연합’인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봉건영지들 사이의 장벽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그리고 국경과 궁전의 성벽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즉 진보란 장벽을 줄이고 성벽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라고 자처하는 인사들 중 상당수가 무조건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며 국경의 벽을 높이려 했고, 정규직 노동자 및 공공부문과 서민층 사이의 성벽을 점점 높여갔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이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일종의 수구집단인 셈이다. 국가 간에 벽이 낮아 물자가 흘러야 이권집단이 위축되고 경제가 번영한다. 국경에 상인이 왕래하지 않으면 군대가 넘어오게 된다. 귀족이 사는 영지의 성벽이 높아지고 서민의 신분상승 기회가 박탈되면 성 밖에는 체념과 나태가 쌓여 경제가 쇠퇴하며 결국 증오로 인해 파국적인 혁명의 기운이 자란다.

한국의 이권집단은 시장경제를 싫어한다. 즉 신자유주의는 딴 나라 이야기다. 재벌을 비롯한 한국의 G1, G2는 겉으로는 규제 철폐와 시장경제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경쟁이 많은 ‘레드오션’을 기피한다. 담합이나 인·허가 혹은 부동산을 이용한 이권산업, 즉 ‘블랙오션’을 좋아한다.5) 재벌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여 각종 규제를 만들고 진입성벽을 세운다. 법조인과 의사 그리고 대학교수도 공인받은 자격증을 이용한 진입성벽을 구축하고 이권집단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이권을 챙겨왔다. 진보좌파진영도 시장경제를 싫어한다. 그들의 관념 속에는 ‘자본주의는 악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이 현실의 경제운용에서는 도리어 ‘악’을 키울 수 있다. 그들은 ‘자유시장경제’라고 하면 곧장 ‘문제의 근원인 신자유주의’를 연상한다. 그러면서 재벌과의 적대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하여 조직노동자의 이권을 키워나갔다.

이런 틈을 타서 공기업과 공무원 교사도 시장의 경쟁을 기피하며 이권을 추구한다. 그러자 이권확보 경쟁에 끼지 못한 대다수 하층 서민의 삶은 점점 더 비참해져간다. 이권이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법학과 의학 지망생은 넘쳐나지만 이공계는 기피한다. 공무원과 공기업 입사경쟁은 치열하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업가정신은 약해진다.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은 이미 끝났건만, 성 밖 개천변의 서민들은 자식에게만은 이권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쓰다 보니 노후대비를 못하게 되었다.

 

 

4. 이권집단의 최소승리연합을 해소하려면

 

재벌과 대기업 노조로 대표되는 이권집단들이 협소한 이권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는 입장에서, 박근혜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국민행복시대’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방책을 제시하겠다. 핵심은 경제의 재벌 집중도를 줄이고(줄), 재벌들의 담합을 통한 이권 추구를 억제하기 위해 규제를 풀고(푸), 재벌이 범법행위를 하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구조를 혁파하여 국법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다(세).

첫째, 재벌이 이권경제는 포기하고 혁신경제는 더 잘하도록 개혁하자.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30대 재벌 규모의 큰 민간기업이 하나도 탄생하지 않았다. 사업의 기회만 생기면 재벌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 산업이 커지자 삼성카드와 현대카드가 그룹의 영향력을 이용해 성장했다. 물류산업의 기회가 커지자 현대의 정몽구(鄭夢九)·정의선(鄭義宣) 부자가 글로비스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이권을 챙겼다. 재벌들이 전산개발회사를 하나씩 만들어서 시장에 뛰어들자 한국의 소프트웨어와 정보통신 산업은 후퇴했다. 심지어 급식업마저 그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국제적 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기업가정신은 말살되어갔다. 이제는 재벌이 금융업을 비롯한 내수 위주의 이권산업은 포기하고 그 대신 수출 위주의 혁신산업에 열중하도록 정부가 도와주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재벌봉건의 성벽을 낮추고 큰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코 크고 강한 기업이 생겨날 수 없고 따라서 좋은 일자리도 증가할 수 없다.

둘째, 담합을 통한 소비자 착취 근절을 위해 수입규제를 철폐하자. 휘발유, LPG, 가전제품, 철강, 설탕, 밀가루, 비료, 맥주, 통신, 보험, 은행 등 독과점 사업체들의 고질적인 범죄행위를 통한 소비자 착취가 심각하다. 201212월 한양대 법학연구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한 「소비자피해 구제를 위한 민사적 구제수단 확충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9년부터 3년간 적발된 담합 등 125건의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된 매출은 168조원이고 부당이득은 25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런 범법행위에 대해 부과된 과징금은 불과 24300억원이었다. 일반적으로 담합행위의 15% 정도만 적발된다고 본다면 3년간 벌어진 범죄행위로 국민이 입은 피해는 200조원 정도라고 추정된다. 이는 GDP5%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이것이 누적되어 양극화가 심해지고 가계부채의 핵심 원인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무원과 결탁하여 만든 각종 규제를 줄이고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가 부정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셋째, 재벌의 불법행위를 억제하고 법대로 처벌하자. 재벌들이 담합하고 이권을 얻기 위해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법질서가 문란해졌다. 엘리트 범죄가 심각하고 수많은 인재가 마피아의 조직원처럼 재벌의 범죄에 동원되어 살아간다. 불법적인 뇌물과 향응 같은 지하경제의 대부분은 재벌과 공무원이 개입된 이권경제가 그 뿌리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부당이익의 3배를 배상하게 하고 실효성이 없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 재벌이 법을 유린하는 일을 막지 못하면 법질서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넷째,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강화하자. 노동 관련법을 바꾸어 신규 고용부터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못박아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 해고된 사람들도 안심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게 충분한 실업급여를 마련해야 한다. 2년간 평균임금의 70~80%를 받으며 교육훈련도 이수해 새 직장을 찾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래야 성 안 노동귀족과 성 밖 서민의 격차가 줄어든다. 기업은 전투적인 노동조합을 피해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을 줄이고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것이다. 노동자는 해고되더라도 쉽게 다른 직장에 들어가 기술을 전파하고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야 혁신경제가 발전한다. 지금은 한 직장에서 나오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아까운 경험과 능력이 사장되고 있다. 이들 다수가 자영업에 나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업 실패율이 높아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된다.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에 따라 임금격차가 큰 것은 불공정할 뿐 아니라 반인륜적이기에 시급하고 단호하게 시정되어야 한다.

다섯째, 중소기업 정책을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전환하자. 우리나라에는 지나치게 많은 중소기업지원제도가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규모가 비대한 나머지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연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오히려 건전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발전을 막는 탓에 창업투자회사는 어려움에 빠져 있다. 경쟁력 없는 이권집단이면서도 과보호를 받는 중소기업이 퇴출되어야 실력과 생산성이 향상된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 보호지원 제도는 줄여야 한다. 그 대신 근로자의 교육훈련, 중소기업을 위한 연구개발투자, 산학협력과 클러스터 활성화, 창업 지원, 고용과 법률서비스 등의 지원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국제적 강소기업’(hidden champion)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적인 지원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여섯째, 이권집단을 억제하는 직접민주제를 강화하자. 직접민주제는 이권집단을 억제하는 좋은 수단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러(G. Stigler)가 입증했듯이 이권집단들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여 법을 만들어서 부당이득을 취한다. 스위스의 경우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도 국민 5만명 이상이 서명을 하면 찬반 여부를 국민투표에 회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정치인과 관료가 특정집단의 이권을 위한 법을 만들기 어렵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집행할 때도 일정 금액 이상의 사업은 주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스위스의 조세부담률이 23%로 한국과 비슷한데도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이유는 국민이 직접투표를 통해서 공무원과 정치인의 예산 낭비를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접민주제 덕분에 스위스는 갈등이 적고 이권집단과 조직적 범죄행위가 거의 없어 행복도가 매우 높으며 일인당 소득은 8만달러에 달하는 삶의 질이 세계 최고인 나라로 발전했다.

 

 

5. 세계경제 위기를 극복할 정책들

 

21세기 들어서 나타난 세계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과 연계한 금융자본의 사기에 가까운 탐욕 추구와 전세계적인 수요 부족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수요가 줄어들었고, 한국도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동산 등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한자녀 갖기 운동’에 매진해온 중국도 10년 후부터 급속하게 고령화될 것이다. 전세계적인 수요부족 문제를 극복하는 국가가 앞으로 국제경제를 이끌어가리라 예상된다. 그럼 우리 경제의 수요를 늘릴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50%에 달하는 저소득 서민층의 소득을 늘려서 소비를 진작하는 것이다. 둘째는 전세계 70억명 인구 중 절반에 달하는 빈곤층의 소득 증가를 활용하여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400만 북한주민의 일인당 연간소득이 1천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를 1만달러 이상으로 올려서 대규모의 수요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가지 정책을 제안하겠다.

첫째, 북한에 대담한 제안을 하라는 것이다. 가령 속초에서 북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블라지보스또끄까지 가스관과 철도를 동시에 놓는다면 우리는 저렴한 사할린산 가스를 확보할 수 있고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류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중국의 동북 3(吉林··黑龍江省)과의 교역도 크게 늘릴 수 있다. 미국에서 저렴한 셰일가스(shale gas)가 상업화되어 우리의 에너지와 화학 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마당에 러시아 가스의 확보는 전략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극심한 빈곤문제를 해결하여 정권을 안정시켜야 하고, 중국도 북한의 안정과 동북 3성의 경제발전이 절실하다. 개성공단의 규모를 10배 이상으로 늘리고 북한 당국의 간섭을 줄이는 방안까지 포함한 제안을 해볼 만하다. 그 대가로 연간 1조원 정도를 지급하되 핵무기를 포기하고 남·북·미 3자 불가침협정을 체결하는 협상 패키지를 제안한다면 북한은 기꺼이 응할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적극적인 에너지정책의 구사를 제안한다. 이명박정부의 정책은 전기부족을 불러와 블랙아웃(blackout, 대정전)을 걱정하게 만들었고, 원자력발전소 안전을 소홀히 하여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산업용 전기를 같은 열량의 휘발유 대비 60~70%에 불과한 가격으로 공급한 탓에 전기가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다. 전기사용량 상위 6개 업체인 현대제철, 포스코,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SK에너지가 2011년 사용한 전기는 37TWh(테라와트시, 1TWh=1Wh)5천만 국민이 가정용으로 사용한 전기의 61%에 달했다. 이들에게 시장가격(SMP, 계통한계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기만 해도 전기부족 문제는 일거에 해결된다. 전기에 탄소세를 부과하면 수십조원의 세금을 걷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며 에너지 과소비에 따른 외화낭비도 줄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바란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전기절약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는 길이기도 하다.

셋째, 국민연금을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2013년 보유잔고 400조원을 돌파하고 박근혜정부 임기 중에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은 지나치게 많은 국내주식과 국채 보유로 금융경제 운용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국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줄이고 외국의 기술기업과 자원보유 기업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장기적인 산업발전에 기여하게 해야 한다. 또한 유망한 개발도상국에 투자하여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요긴하다. 적극적인 대외투자는 원화 환율이 지나치게 고평가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치인과 관료는 스스로 이권집단인 동시에 소수의 이권집단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공평한 기회를 주면 스스로 노력하여 경이로운 정치적・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역량이 있다는 믿음을 갖기 바란다.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국가 전체의 장래를 위한 정치를 구현하면 경제는 자연스럽게 융성해진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과 건강한 질서를 만들어낸 역사에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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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외 중소기업 통계자료』, 중소기업중앙회 2010.

2) 졸저 『혁신하라 한국경제』(창비 2012) 111면의 설명 참조.

3) http://www.oecd.org/edu/eag2012.htm, 구매력지수(PPP) 달러 기준, 2010년 환율 달러당 906.46원.

4) 주요 국가의 데이터 출처는 http://www.parisschoolofeconomics.eu/en/news/the-top-incomes-database-new-website/ 참조.

5) 앞의 졸저 35면과 131면에서 ‘이권경제=블랙오션’ ‘요소경제=레드오션’ ‘혁신경제=블루오션’ ‘공공경제=그레이오션’으로 구분하고 설명한 대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