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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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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鄭梨賢

1972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등이 있음. deepoem@hanmail.net

 

 

 

장편연재 4(마지막 회)

내 모든 것

 

 

어디로 가야 하지.

눈물을 닦고 나서 맨 처음 든 생각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하다. 두렵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른 저녁이었다. 무채색 외투를 입은 행인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갔다. 건조하고 바람이 찼다. 우리는 함께 그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뺨이 시렸지만 나는 가방 안에 넣어둔 목도리의 존재를 잊었다. 폭이 좁은 횡단보도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란히 섰다. 그녀는 검은색 모직코트 차림이었다. 길지 않은 파마머리를 하나로 낮게 묶고 얼굴에 한 듯 만 듯 옅은 화장을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쉬 짐작할 수 없는 외양이었다. 직업이 무언지, 사는 형편이 어떤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랐다.

세미가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그녀에 대한 내 느낌과 같았다.

—밥 먹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묵묵히 걸었다. 늘 나보다 조금 더 작은 줄만 알았었는데 그녀의 눈높이는 나와 거의 비슷했다. 스무살이 지나고도 키가 자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고등학교 1학년 신체검사에서 그녀의 키는 156.5cm, 내 키는 160.2cm였다. 우리는 서로의 스무살 이후를 알지 못한다. 모퉁이를 돌자 낯익은 분식 체인점이 보였다. 학원 근처라 몇번 들렀던 곳이다. 무표정한 주인 여자가 유리창가 형광등 불빛 아래 앉아 종일 김밥을 말았다. 아이들이 학원에 오다 말고 급한 허기를 때울 시간이었다. 근방에 갈 만한 다른 식당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냥 지나쳤다. 아는 사람의 눈에 뜨일까봐서가 아니었다. 둘만 있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더디게 큰길로 접어드는 동안 우리가 밟아온 보도블록 위에 차츰 밤안개가 내렸다. 어느덧 지하철역 앞에 다다랐다. 썬글라스를 쓰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저기 어때?

걷는 동안 뭘 먹어야 할지만 고민한 사람처럼 그녀가 손가락으로 간판 하나를 가리켰다. 호프집이었다.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오래도록 술집 같은 곳에 갈 일 없이 살아왔다. 우리가 함께 술을 파는 곳에 들어간 건 딱 한번뿐이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중학교 연합고사가 끝난 겨울이었고, 종일 스산한 비가 내리던 날이었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모했다. 입구에서부터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던 종업원이 우리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가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아 됐어요. 우리가 이렇게 보여도 나이 많거든요.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자! 쫓겨나서야, 우리는 찍소리 못하고 나오다니 억울해 죽겠다, 한바탕 퍼부어줄걸 그랬어,라고 소심하게 킥킥 속삭거렸다.

가둬뒀던 기억들이 수문 열리듯 쏟아져내린다.

—아니. 별론가.

그녀가 자신 없이 말했다. 공중에 흰 입김이 동그랗게 피어올랐다.

—저런 데는 밥이 없겠다. 그치?

너무도 익숙한 말투였다. 그녀는 예전과 달라진 데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저기는 어때? 아니면 저기 갈까?

그녀의 시선은 화로구이 삼겹살집과 베트남국숫집과 일본식 주점을 번갈아 오갔다. 얕으나마 칸막이가 있고 조도가 낮은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우리는 일식주점으로 갔다.

—생각했어. 자주.

팔팔 끓는 전골냄비를 탁자 가운데 놓고서 그녀가 고백했다. 자주,라는 부사에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술병을 들어 그녀의 잔과 내 잔을 차례로 채웠다. 찬술을 입술 끝에 가져다댔다.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다보니 이런 우연이 다 있구나 싶더라. 친구 집에서, 우연히, 광고지에 있는 네 얼굴 봤을 때.

그녀는 우연이라는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목소리도, 억양도, 그대로였다. 그녀에게 서로의 집을 방문하곤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어쨌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행이다. 반사적으로 허공에 제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깡그리 지울 수 있는 기억이란 어디에도 없다. 냄비의 국물이 천천히 졸아드는 동안 그녀도 나도 먼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지혜야.

그녀가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밖에 붙잡을 게 없어서 나는 사기 재질로 된 술잔을 두 손으로 꽉 감싸쥐었다.

—우리, 이제.

세미가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거기, 한번 가보자.

—………

—혼자 가보려고도 했어. 그런데 찾을 자신이 없더라. 전부 다 아스라하기만 해.

내 대답이 두려워서일까, 그녀는 쉬지 않고 말했다.

—솔직히 난 가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때가 있어. 너는 나하고 다르잖아. 너는 뭐든지 다 기억하니까. 하나도 남김없이. 그렇지?

활시위가 또다시 내 앞에 놓였다.

 

*

 

세미가 울고 있다니.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세미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그동안 세미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딱 한번 보았을 뿐이다. 재작년 점심시간에 지혜가 가져온 귤 조각을 입에 넣다가 무심코 혀를 깨물었을 때였다. 세미의 뺨에 비현실적으로 둥그런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그녀는 혓바닥을 쑥 빼물어 나와 지혜에게 상처를 보여주었다. 새빨간 핏방울이 선연했다. 눈물을 닦으라는 뜻으로 지혜가 건네준 손수건을 세미는 혀 위로 가지고 갔다. 손수건으로 혓바닥을 꾹꾹 누르면서 계속 뭐라 웅얼거렸다. 발음이 다 뭉개져서 귀를 곤두세워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씨 쪽팔리게 왜 자꾸 눈물이 나고 난리야. 나 원래 절대 안 우는데. 아이 씨 쪽팔려.

—아 저 싸이코.

지혜가 깔깔 웃었다. 나는 터무니없이 부끄러워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중이었다. 내 혀가 아닌 남의 혀를 그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본 경험은 그뒤로도 없었다. 세미의 혀는 길고 도톰했다. 연분홍색과 살색을 섞어놓은 살덩이에 희뿌연 구름 같은 백태가 뭉게뭉게 끼어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인류의 몸에 당연히 붙어 있는 하나의 기관일 뿐이라고 되뇔수록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혈을 끝내고 나서도 세미는 못내 분하다는 듯 훌쩍였다.

—아 씨 그만 울어야지. 쪽팔려서. 히히.

세미가 절대로 울지 않는 여자아이라서가 아니라, 울다 말고 쪽팔린다고 히히거리는 아이라서 나는 성우형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거였다. 세미가 지금 정말로 엉엉 운다고? 세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하나의 물음표에만 골몰했다. 그렇게 나를 속였다. 학교도 가지 않을 만큼 급한 상황에서 왜, 나 아닌 성우형한테 연락했는지 진지하게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것도 단정하기에 일렀다. 경우의 수는 수백개에 달했다. 가슴 한구석에서 일렁거리는 불길한 기미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

초인종이 울리자 나도 모르게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문 앞에 선 세미를 보는 순간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어쩌면 나는 꽤 자주 틀렸다. 그애는 얼마나 울었던지 눈두덩을 포함한 얼굴 전체가 퉁퉁 부어 있었다. 성우형이 세미의 어깨를 감싸안고서 소파에 데려다 앉히는 모습을 나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얼떨떨하게 지켜보았다. 어디서 났는지 형이 손수건 한장을 세미에게 건넸다. 세미가 머뭇머뭇 그것을 받아들었다. 설명할 길 없는 낯선 감정이 치받혀올랐다. 나는 쓸모없는 붙박이 가구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미의 흰자위가 아기 토끼처럼 빨갰다.

—미안해. 미안해요.

그녀가 형과 나에게 번갈아 사과했다. 사과의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아주 잘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 그따위 인사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실온에 방치해둔 아이스크림처럼 가슴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준모야.

형이 나를 불렀다.

—세미 따뜻한 물 한잔 갖다줘라.

나는 허청허청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컵에 따르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30, 29, 28, 27, 26, 25…… 시간이 초 단위로 정밀하게 줄어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5, 4, 3, 2, 1, 그리고 0.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의미였다.

—고마워, 준모야.

그녀가 말했다. 나는 거실 창에 커튼을 쳤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막고 싶었다. 커튼 밑에서 세미가 물 한모금을 조심스레 들이켰다. 상체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티셔츠 가슴팍에 그려진 미키마우스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얘 좀 봐라? 아예 교복도 안 입었네.

세미는 대꾸 없이 물잔만 만지작거렸다.

—왜, 할아버지 더 나빠지신 거야?

성우형의 목소리는 적당히 조심스러웠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재차 묻자 그제야 세미는 오늘이 고비라고는 하는데,라고 웅얼거렸다. 형이 정색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얼른 병원 가봐야지.

—있을 데가 없어요.

—으휴.

형이 주먹 쥔 손으로 세미의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어떤 주저도 없었다. 스스럼없고 거리낌 없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제껏 내 꿈에 세미가 몇번이나 나왔을까. 꿈속에서도 꿈 밖에서도 이런 장면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세미는 모두 병원에 가고 빈집에 혼자 있다보니 동이 텄고 불현듯 혼자 있는 게 무서워졌다고, 잠들지 못하는 밤의 잠꼬대처럼 더듬더듬 말했다.

—안되겠다. 일단 잠깐 눈이라도 붙여봐.

세미는 형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형이 내 침대 위에서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열한시를 가리켰다. 학교에서는 3교시가 한창일 터였다. 이상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세미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면보호기 속에서 형형색색의 그래픽 물고기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쉿, 잠든 것 같다.

형이었다.

—어쩌다 보니 너한테 아직 얘기 못했구나. 며칠 전에 세미가 밥 사달라면서 삐삐를 쳤더라고.

뭐랄까 그는 내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우동 한그릇 사주고 들여보냈지. 그런데 그날 밤 같이 사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더라.

며칠 전이라면 언제일까. 나는 엉뚱한 단서에 집착하는 무능한 형사처럼 달력 위의 숫자들을 노려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다는 것만 알 뿐 그들이 몇살인지 어떤 병이 있는지 그 무시무시한 담벼락 너머 큰 집에는 또 누가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집안이 꽤 복잡한 것 같더라. 부모님 이혼하면서 오갈 데 없어진 경우들 요새 많으니까.

귀를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더 잘해줘라. 불쌍하잖아.

형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내게 조금만 더 결단력이 있었다면 그 웃고 있는 실눈을 향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타인의 입을 통해 그녀가 모욕당하는 일이 또 있다면 상대가 누구더라도 다시는 참지 않겠노라고 나는 결심했다. 한 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세미가 부스스 일어났다. 잠깐 자고 일어난 뒤 세미는 아까하고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 되게 쪽팔리네.

씨익 웃진 않았지만 이미 말짱한 표정을 덮어쓰고 있었다.

—괜히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내 주변에 삐삐 있는 사람이라곤 오빠밖에 없어서요.

닫힌 커튼 사이로 아무래도 감출 수 없는 지글지글한 봄볕이 새어들어왔다. 세미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병원으로 가. 꼭.

성우형이 다그치듯 충고했다. 세미가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나중에 후회할 게 분명한 일은 말이야, 살면서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아.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진지해서 멋지고 나이 많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알량한 꼰대처럼 느껴졌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까지 세미를 데려다주라면서 형이 내 등을 떠밀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세미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현관 앞에서 쉽사리 신발을 신지 않고 머뭇거리는 세미를 보며 나는 조용히 깨달았다. 그녀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성우형이었다.

—가자.

뜻밖에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바깥 공기는 안에서 짐작했던 것만큼 훈훈하지 않았다.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우리 집에서부터 병원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분과 날씨에 따라 지하보도로 걷거나 지상으로 걸었다. 우리는 주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가로질렀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꽃 상가를 지나면, 인테리어 상가가 나오고, 거기를 지나면 옷 상가가 나왔다. 주말이어서인지 사람이 많았다. 상점마다 가게 앞에 가판대를 설치해놓아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더 비좁았다. 키가 큰 내가 먼저 인파를 헤쳐 틈을 만들면 세미가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했다.

마주 오는 사람, 뒤에 오는 사람, 앞에 가는 사람끼리 몸과 몸을 부딪치는 정도는 이곳에서 예삿일이었다. 보폭이 점점 빨라졌다. 등에 후텁지근한 땀이 번졌다. 오직 안전하게 길을 만드는 일에만 맹렬히 몰두하다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얼핏 뒤를 돌아보니 그녀도 정신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뺨이 붉게 상기되고 입에서 후후 입김 같은 것도 나왔다.

—야 다리 길다고 자랑하냐.

투덜거리지만 싫지 않은 얼굴이다.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오지탐험대원들끼리의 동지애와 비슷한 것일까.

—저기 다 왔네. 강 남 성 모 병 원.

세미가 길 건너 병원 건물 외벽에 붙은 글자들을 또박또박 읽었다.

—맞지? 준모 축하해. 임무 완수했네. 이제 가.

—안에 들어가는 거 봐야지.

나는 그 멋없는흰색 타일 건물을 쳐다보며 궁색하게 꿍얼댔다.

—나 안 들어갈 거야. 알지?

—그래도.

—준모야. 내가 언젠가 다 말해주겠다고 했었잖아. 못 지켜서 미안해. 부끄러워서 그랬어. 내가 잘 생각해봤거든. 근데 사람이 죽어간다는 건 좀 특별하지 않을까. 마지막인데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하고만 같이 있고 싶을 거 같아. 내가 나타나면, 내 얼굴 보면, 할아버지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실 거야.

입안에 시큼한 침이 고였다.

—평소에 잘한 것도 없는데 마지막에 그 정도는 해드리고 싶어.

—세미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면 언제고 나는 부풀어오를 공간이 남아 있는 노란 풍선처럼 두근거렸다.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응?

나는 가까스로 털어놓았다.

—다음에 너 아주 급할 때, 아무도 없으면 나 한번 불러라.

—핏. 넌 삐삐가 없잖아.

—살 거야.

그녀가 히히 웃었다.

—너 멀리 가버린다며.

—안 갈 거야.

그녀가 이번엔 히히히 웃었다.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바보야. 얼른 가. 잘 가.

—넌?

—좀 이따. 로비에 좀 앉아 있다가 갈게.

세미를 거기 두고, 나는 온 길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을 멍하니 보냈다. 그녀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깊은 밤, 가만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어머니는 또 하느님의 성전에 갔고 술 취한 아버지는 옆방에서 떠나갈 듯 코를 골고 있었다. 아버지는 1993년식 소나타2의 열쇠를 늘 신발장 위 타탄 바구니에 던져두곤 했다. 운동화에 발을 꿰면서 나는 자동차 열쇠를 집어들었다. 차는 쓰레기장 옆쪽에 일자로 주차되어 있었다. 엄마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장소였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옅은 쓰레기 냄새가 났다.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맨살에 닿는 금속의 감촉이 선뜩했다.

열쇠는 열쇠구멍에 딱 맞았다. 가끔 몹시도 당연한 일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구멍에 꽂힌 열쇠를 조심스레 돌려보았다. 부릉, 스타트 모터 소리가 나고 천천히 시동이 걸렸다. 오토기어를 드라이브 모드에 놓고서 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가속페달을 슬쩍 밟았다. 엉덩이가 공중으로 떠오른다고 느끼는 찰나, 바퀴가 앞으로 움직였다. 차는 계속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좀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눌렀다. 열려 있는 방향을 향하여 핸들을 돌렸다. 핸들을 돌리는 방향으로 차가 나아갔다. 내가 나아갔다.

속도계의 바늘이 올라갈수록 정신이 명료해졌다. 경부고속도로 반포인터체인지로 차를 몰아갔다. 별 하나 없는 밤이었다. 팽팽한 밤하늘이 쩡하고 갈라졌다. 나는 그 틈새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씨발 좆같아 다 죽여버려 개 같은 새끼들 니 에미 똥구멍이나 빨아라! 터져나오는 대로 마음껏, 나는 나를 놓아두었다.

돌아와서야 내가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앞차들의 백미러 속에서 나는 휙휙 지나치는 어둠 한뭉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1995년 그 봄은 지독하게 더뎠다. 대구에서는 지하철 공사장에 매립되어 있던 가스관이 폭발했고, 중국 산시성에서는 장평대전에서 매몰되었던 기원전 260년의 백골 유해들이 대량 발견되었다. 한동안 잠잠해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것이 민망해질 만큼 ‘악마’의 공격은 거셌다. 더러운 욕설로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았다. 입술을 공업용 테이프와 마스크로 감추기엔 날씨가 너무 따듯했다.

어쩔 수 없이 햇볕이 강한 곳에 가면 체한 것처럼 명치가 뻐근해지곤 했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살아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어디로 도망친대도 악마는 지구 끝까지 나를 쫓아올 것이다. 삶이 끝이 없는 싸움임을 이제 받아들여야 했다. 아버지의 자동차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밤에만 가끔 탔다. 간혹 엄마의 가게에서 쓰는 미니승합차 다마스를 운전하기도 했다. 먹음직한 연분홍색 아이스크림 그림으로 옆구리가 뒤덮인 귀여운 차였다.

삐삐 번호는 세미와 지혜에게만 알려주었다. 지혜는 2,3일에 한번씩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뭐 하니? 학교 가는 길에 생각나서. 아 오늘 체육인데 하기 싫다. 넌 좋겠다. 계속 자도 되잖아’ 지혜는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세미에게 온 것은 지금까지 딱 하나뿐이었다.

—야, 나야. 히히. 급할 때 삐삐 치라며? 히히. 근데 요샌 별로 급한 일은 없고 참 재미없네. 이것저것. 보고 싶네. 친구. 한번 놀러갈게. 히히.

그녀의 문장들을 곧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할 수 있게 됐다. 한번 놀러온다던 세미는 봄이 다 가도록 놀러오지 않았다. 거실 베란다 앞을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직도 만 열일곱이었다.

 

*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길었다. 무더운 초여름 오후, 학교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거리의 백화점이 무너졌다. 그 소식이 학교에 전해졌을 때는 정규수업이 끝나고 저녁 자율학습이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교정에 두개뿐인 공중전화 부스에 줄이 수십미터 늘어섰고 자율학습은 취소되었다. 5층 교실 창문에 매달려 바라보니 정말로 멀리서 거대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엄마가 자주 가는 곳이라며 지혜는 안절부절못했다. 지난 618일에는 지하 빵집에서 식빵과 곰보빵, 마들렌을 사왔고, 67일에는 사촌조카 돌날 선물할 아기 원피스를 사왔다고 했다.

—날짜를 봐. 11일마다 한번씩 갔으니까 확률상 오늘이야.

집에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었다.

—세미 넌 전화 안해?

내가 대답했다.

—할 데가 없어.

맨 처음 떠오른 단어는 오빠였다. 성우오빠.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 단어는 고모였다. 아영 고모는 주로 압구정동에 있는 백화점들을 이용하긴 했으나 이따금 그 백화점에도 들렀다. 하지만 오늘은 아닐 거였다. 막 임신 7개월에 접어든 그녀는 현재 외출할 만한 형편이 못되었는데, 왼쪽 턱에 보랏빛으로 선명한 멍 자국 탓이었다. 아무리 대범하고 엉뚱한 구석을 가진 고모라 해도 그 얼굴로 대명천지의 백화점을 활보하진 못할 터였다. 임산부와 멍이라니.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조합은 사실이었다.

이틀 전 그 집에 갔을 때 신혼집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가재도구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흐느끼는 고모를 진정시키고, 뱃속 아기의 태동을 확인하고, 바닥의 물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냉장고를 뒤져 생고기를 꺼냈다. 안심으로 추정되는 핏빛 고깃점을 얇게 펴 비닐 랩으로 감싼 뒤 시푸르뎅뎅한 상처 부위에 살며시 붙였다. 어디 가서 할 만한 자랑은 아니지만 그 짓도 몇번 해봤다고 이젠 제법 손에 익었다. 고모부의 손찌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신혼여행 직후에 한번, 임신을 확인한 뒤로만 세번째였다.

—지가 더 많이 맞았어.

고모는 매번 쌍방과실이라 주장했다.

—둘 다 다혈질이라 그래. 스치기만 했는데도 바로 이러네. 내가 원래 멍이 잘 드는 피부잖니.

차마 들어줄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한사코 할머니 모르게 처리하려 드는 것도 그랬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김형식을 탐탁지 않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존심 때문이라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고모는 멍과 부기가 빨리 빠지는 약이나 항생제 연고 같은 것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뱃속 아기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때리는 아빠와 맞는 엄마를 가진 것만큼 치명적인 일이 또 있겠느냐고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웬만하면 나는 고모 앞에서 되도록 입을 닫았다. 뜨거운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순간에도 주먹을 불끈 쥐고 억지로 참았다. 나까지 고모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 기력조차 없이 의기소침해진 고모가 나에게도 SOS를 치지 않게 될까봐 겁이 났다.

안 그러려고 해도 예전 일이 자꾸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새벽에 귀가하는 고모의 안면부를 강타해 난리가 났던 게 불과 일년 전이었다. 까마득했다. 일년은 아주 긴 시간이라 하기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러나 늘 아름답고 당당하고 푼수 같던 한 젊은 여자가 시들어 죽기 직전의 식물로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불행은 원래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막 이상한 낌새를 채고 어, 어, 하는 순간에 사정없이 휘몰아쳐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움푹 꺼진 구덩이와 그 주변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일상의 잔해뿐인 것이다. 잔뜩 물때가 끼어 있는 불투명 욕실 슬리퍼 한쪽. 그것만이 우리가 간신히 목격할 수 있는 불행의 속성이었다. 끊임없이 사건사고를 일으키던 부모 덕분에 나는 일찍이 그것을 배웠다.

만 열일곱인 나도 짐작하는 것을 한남동 식구들은 몰랐다. 특히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무지는 무시에서 비롯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 정도였다. 지난 몇달 사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잘 흘러가던 할아버지의 심장혈관 하나가 갑자기 콱 막혀버린 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사고뭉치 큰아들(우리 아빠)이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려 들었으나 다른 주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분쟁이 일어난 일, 까고 보니 그 회사의 재무구조가 엉망진창인 일, 할머니와 아빠가 나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민사소송에 휘말린 일 등등—에 대한 할머니의 태도는 놀라운 데가 있었다. 시치미 떼기로 일관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불운 앞에서 겸손해지기는커녕 무시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행운의 빛이 아닌 컴컴한 그림자가 드리우려 한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할머니의 삶은 겉보기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밖에 나갈 때는 여전히 기사가 운전하는 쎄단의 뒷자리에 앉았고 가정부의 손으로 지어진 밥을 먹었다. 특이점이라면 새로운 운전기사는 대개 두어주, 새로운 가정부는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싼다는 점이었다. 역시 고용인들이 가장 눈치가 빨랐고, 집에 있는 가정부보다 외부와 접촉하는 기사가 정보 습득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새로운 인력을 속성으로 구해다 빈자리를 채웠다.

—어디 진득한 사람 없나?

이즈음 할머니 방에서 새나오는 통화 소리를 엿들어보면, 마치 가까운 장래에 직업소개소를 차릴 작정으로 시장조사 중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엉덩이 무겁고 입 무겁고 깔끔한 사람. 그래, 그래. 아무튼 요즘은 하나같이 배들이 불러서는.

어제는, 지난주에 새로 온 아주머니가 그만두었다. 취직부터 퇴직까지의 기간이 이례적으로 짧았다.

—집이 너무 크죠?

그래도 그사이 내겐 정이 들었다며 작별인사를 하는 아주머니한테 슬쩍 물어봤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주머니가 말끝을 얼버무렸다.

—이상하게 여기저기가 자꾸 아프네. 불면증이라곤 몰랐는데 여기 와서부턴 잠도 잘 안 오고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제깟 것, 관두라지. 그게 할머니의 반응이었다.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다.

무슨 일이 새로 터질 때마다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었다. 오늘 아침, 남색 잠바를 맞춰 입은 사내들 몇이 몰려와 집 앞에 자리를 까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렇게 말했다.

—신경쓰지 마라. 동네 개들 짖는 소리에 일일이 놀랄 필요 없어.

우리 아빠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쪽에서 보낸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기가 제일 만만하니까 이리떼처럼 몰려온 거야. 회장님 살아 계실 때 입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들. 짐승보다 못한 것들.

할머니는 진심으로 개탄했다.

—흥. 우리 집안에 검찰이 몇인데.

아무튼 이랬다저랬다 하는 할머니의 현실감각이란 종잡을 수 없었다. 몇이긴. 달랑 그 잘난 말단검사 김형식 하나뿐이었다. 고모부가 이 패밀리 비즈니스에 얼마나 개입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일단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 터였다. 고모는 언젠가부터 매번 혼자 왔다. 고모부는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그 직후엔 그나마 코빼기라도 보이더니 그뒤론 아니었다. 아빠가 슬그머니 장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집안일에 앞장을 서기 시작한 시점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어른들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였다.

아침부터 몰려온 사내들은 집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학교에 가려면 그 길을 지날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선 적이 난감했다. 그렇다고 결석할 수는 없었다. 철문을 열자 담벼락 앞에 일렬로 앉아 있던 아저씨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그냥 지나가기도 애매해서 나는 슬며시 목례를 했다. 나와 얼핏 눈이 마주친 남자 두엇이 놀라며 같이 눈인사를 했다. 그들이 들고 온 피켓에는 ‘명분 없는 경영승계 절대 반대!!’ ‘회장 일가 부당이득 환수하라!!’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느낌표가 기본 두개씩이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뺨이 홧홧해졌다. 나는 묵묵히 그들 곁을 지나쳐 학교로 갔다.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로부터 쏟아져나온 분진가루가 하늘을 뒤덮였다. 가만 있어도 코가 맵고 재채기가 났다. 추가 붕괴 사고의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니 전교생은 서둘러 집으로 귀가하라는 교감의 특별방송이 교정에 메아리쳤다. 인근 도로가 전부 아수라장이었다. 경광등을 켠 구급차들이 줄지어 달려갔다. 간신히 한강을 건너 한남동에 도착했다. 온통 북새통인 강남과 달리, 유엔 빌리지 안은 괴이쩍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집 앞에 아침녘의 아저씨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거실은 어둑했다. 할머니 혼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묵음의 화면 안에서 무너진 분홍색 건물 더미를 처음 보았다. 구역질이 치받혀올라왔다. 나는 화장실로 가 변기 뚜껑을 열었다. 웩웩 구토를 했다. 소리만 요란했지 흰 침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는 어디를, 휴대폰도 없이 다니니.

할머니가 성마르게 언성을 높였다.

—어딜 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저는 학교에 있었는데요.

—쯔. 카드 줄 테니 내일 당장 하나 사.

—어차피 학교에는 못 가지고 다녀요.

—아니 왜?

—압수해요. 선생님들이.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지들이 사준 것도 아니면서.

할머니는 입으로는 계속 꿍얼꿍얼 화를 내면서 눈을 다시 티브이에 고정시켰다. 어느새 음성 볼륨도 키웠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참혹한 인재입니다. 인재.

앵커가 전율했다. 할머니는 굉장히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단시간에 받은 쇼크의 밀도로 따지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결코 덜하지 않아 보였다.

—세상이 정말 망하려나보다. 신호야. 신호.

어머니를 걱정하던 지혜가 마음에 걸려 몇번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통화 중이었다. 몇차례 시도 만에 겨우 통화가 되었다.

—말도 마. 미치겠어. 목욕탕에서 때 미느라고 연락 안된 거래. 반포싸우나 있잖아. 밖에 뭔 일 있었는지도 아예 까맣게 모르고.

지혜의 목소리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다행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커다란 얼음을 삼킨 듯 목구멍이 아팠다. 거실로 나오니 할머니도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괜찮지, 그럼. 내가 요즘 대낮에 쇼핑하러 돌아다닐 정신이 어디 있냐. 그래. 그래. 세미도 멀쩡하다. 그럼 애가 그 시간에 학교에 있지. 백화점에 왜 가 있겠노.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다 말고 할머니가 한마디 덧붙였다.

—느이 댁도 괜찮지?

아빠와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 후에 같이 사는 아빠의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겠다. 퉁퉁하고 패션 감각은 없지만 살결이 뽀얗고 머릿결이 좋다는 장점을 가진 여자였다(나는 생각보다 객관적인 인간이었다). 거의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서 그분의 성격까지는 잘 모르겠다. 뭐 말 몇마디 섞는다고 그쪽에서 내게 호락호락 성격을 드러낼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내가 특별히 새엄마를 증오하는 전처소생 의붓딸 코스프레를 하려는 의도를 품은 건 아니다. 그저 내 방식의 기본적 예의를 차리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내게 무관심한 것, 내가 그녀에게 무관심한 것, 모두 다 야구장에서 포수들이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마스크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미국 어디선가 뉴스를 보았을 것이다……

저녁이 깊어도 할머니는 티브이 앞에서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여덟시 반이 되자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김치통과 계란 몇알이 굴러다니는 게 전부였다. 선반 어딘가에서 아주머니들이 먹으려고 놔둔 라면을 본 기억이 났다. 삼양라면 한 봉지가 남아 있었다. 냄비에 뜨거운 물을 올려 라면 사리와 계란을 삶고, 냉장고 바닥에서 시들어가는 양파와 당근 반개를 꺼내 채 썰었다. 친구들과 종종 해 먹던 음식이었다. 완성된 라볶이를 접시 두개에 나눠 담았다. 할머니가 미간을 오므렸다.

—이게 뭐냐.

—드시라고요.

—애들이나 먹는 거지. 어떻게 내가 이런 걸.

할머니가 젓가락으로 고추장과 라면 스프에 버무린 라면국수 가닥을 집어올렸다.

—에휴, 달다.

할머니와 나는 숨 가쁘게 이어지는 뉴스 속보를 보면서 각자의 접시를 천천히 비웠다. 조용한 저녁식사였다.

—발견 안되는 게 낫지.

피해자들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는 기자의 멘트를 듣다 말고 할머니가 돌연 몸서리쳤다.

—끔찍하지 않니. 죽은 것만도 억울한데 저렇게 남들 앞에 죄다 까발려지다니.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머리칼에 헤어 롤을 말고 눈썹을 그리는 할머니, 집에서도 잇세이 미야께 주름스커트와 캐시미어 니트를 입는 할머니, 아르마니 돋보기를 콧등에 걸치고 깡마른 등을 꼿꼿하게 세운 채 조간신문을 정독하는 할머니. 그녀라면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정말 싫다.

그녀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다음날 학교는 사정없이 어수선했다. 붕괴 현장을 다녀온 아이들의 무용담과, 사실 그 땅이 예전부터 공동묘지 터였다는 식의 괴담이 이어졌다. 결석자가 많았다. 가족 중에 사망자나 실종자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내 옆자리인 25등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애의 친언니가 엊저녁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을 27등으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렇다. 나는 이 반에서 ‘26등의 책상’이라고 불리는 곳에 앉는 26등이었다.

담임은 삼십대 중반의 과학선생이었는데 학기 초부터 확고한 원칙을 고수했다. 무조건 지난 시험의 반 석차에 따라 자리를 배정하겠다는 원칙이었다. 첫 시험에서는 22등의 책상에 앉았었으나 지난 중간고사에서의 부진에 의거, 몇계단 아래로 강등되었다.

—반 평균 깎아먹는 것들은 교실 안에서 숨도 쉬지 마.

눈을 부릅뜨고 하는 담임의 꾸중을 들을 땐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나마 반 평균보다 높은 내 점수를 떠올리며 자위했다. 붕괴 현장에서 날아드는 분진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창틀에 깨알 같은 검정 먼지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마른걸레로 박박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교감은 절대로 교실 창문을 열지 말라는 방송을 했다. 운동장에 나가지 말라고도 했고,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에 동요하지 말고 우리는 학생의 본분에 맞게 학업에 전념하면 된다고도 했다.

단축수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교실을 휩쓸다가 4교시 이후에 사라졌다.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다들 붕괴사고 이야기만 했다. 대화의 내용은 고만고만한 데서 쳇바퀴 돌았다. 나나 내 가족이 거기 있었을 때 사고가 났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것, 그 폐허에서 명품 핸드백이나 값비싼 옷만 골라 훔쳐가는 도둑들도 출몰하더라는 것, 그 왁자한 말들과 말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점심시간 후인 5교시, 문학선생이 들어왔다. 몸에 붙는 검정 원피스 차림이었다. 얼굴은 별로지만 쪽 뻗은 종아리 하나는 봐줄 만하다는 걸 자기도 잘 알아서 늘 무릎 위 길이의 치마를 고수했다. 여자 반에서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롭지만 남자 반에만 들어가면 상냥하고 여성스럽게 대변신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녀를 두고서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별별 루머가 다 돈다고 했다. 적어도 작년까진 그랬다. 준모가 학교를 그만둔 뒤로는 도무지 이런 소식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준모에게서는 요즘 통 연락이 없었다.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일이라 이젠 요새 또 그 ‘악마’가 기승을 부리나보다, 아무 데도 나타나기 싫은가보다 하고 짐작하게 됐다. 지혜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비밀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준모한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성우오빠의 소식 한 자락이라도 엿듣게 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내가 부끄러워서였다.

—휴. 얘들아. 제발 환기 좀 시켜라, 좀!

여선생이 코를 감싸쥐는 시늉을 했다. 점심시간 뒤 수업에 들어오는 교사들은 으레 냄새를 지적하곤 했다. 교실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도시락 반찬통에 담겨 있던 김치볶음 조각이 교실 바닥에 떨어진 채 방치된 냄새, 생리대에 묻은 선혈이 실온에서 썩어가는 냄새, 제대로 빨지 않고 사물함 속에 처박힌 체육복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냄새, 그 모든 냄새들이 무차별적으로 뒤섞인 냄새가 교실 안을 둥둥 떠다니는 건 사실이었다. 냄새의 단계를 나타내는 지수가 있다면 아침 등교시간에는 1단계로 시작해 점심시간이 끝난 이 무렵에 최고 단계까지 치솟았다가 하교 즈음엔 3단계쯤으로 가라앉는다고 할 수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절대 열지 말랬어요.

여선생을 놀리듯이 아이들은 큭큭 웃었다. 웃음소리가 꼭 닫힌 유리창문 너머, 멀리까지 새어나갔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웃다 말고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몇시간 뒤 지역사회가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없이 정규수업만을 한다는 학교 방침이 전해졌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고작 세시였다. 지혜가 여느 때처럼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어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불안에 떨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영화 보러 가자.

그녀는 극장별 현재 상영작을 읊기 시작했다.

—씨네하우스 1관 당신이 잠든 사이에, 2관 뮤리엘의 웨딩, 3관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고모한테 좀 가보려고.

—또?

—응. 좀 아픈가봐.

—너희 고모 너무 자주 아프신 거 아니야? 지난 화요일에도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고모한테 갔잖아. 이번 달 들어서 내가 아는 것만 네번째야.

나는 지혜를 무척 좋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우리 둘 사이에 쌓여온 따뜻한 시간들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도 이럴 때만큼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준모가 자퇴한 이후 지혜는 내게 더 집착했다. 속내를 다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 반 애들 몇몇과는 도시락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 만한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다. 나와 달리 지혜는 변변한 새 친구 하나 사귀지 않았다. 2학년 1학기가 거의 다 저물어가도록 말이다.

—아무도 새로 가까이 사귀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그래서 그녀는 자주 외로웠다. 요즘엔 고독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럴수록 나에게 더 많이 의존했다.

—나도 따라갈까?

지혜가 넌지시 제안했다. 지혜가 하도 따라붙어 전에 두어번 고모 집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근무하는 고모부 때문에 고모는 우리 학교에서도 멀지 않은 아파트단지에 살았다. 한남동 집이라면 데려가기 부담스러워도 오십평짜리 고모네 집은 큰 부담 없이 친구와 같이 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 자란 우리에게 아파트는 좀 넓어도 그러려니 하고 마는 주거공간일 뿐이었다. 내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으리으리한 공간 앞에서는 일단 주눅이 들었지만, 깜냥으로 대충 몇평인지 견적이 나오는 아파트에서는 그게 좀 덜했다. 지혜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모의 턱은 지금쯤 어떤 현란한 빛깔로 변해 있을까?

—음, 굉장히 많이 아픈가봐.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어.

지혜가 금방 샐쭉해졌다.

—아 됐어.

—미안.

—아무튼 잘났어.

지혜가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지혜는 집안에서만 키우는 새끼고양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낯선 상대를 향해서는 뾰족한 발톱을 세우지만 알고 보면 몰캉몰캉하고 감정도 변화무쌍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눈만 끔벅거렸다. 지혜가 양미간을 확 찌푸렸다.

—나 먼저 간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혜의 뒤를 따라 교실 문을 나섰다. 침묵은 깨지기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기가 더 어려운 법이었다. 먼저 등을 보인 쪽은 지혜였다.

—안녕.

—그래. 안녕.

교문 앞에서 우리는 하나 마나 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향을 향해 갈라졌다. 날이 흐렸다. 습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감색 교복의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펄럭이며 지혜는 느릿느릿 멀어져갔다. 지금이라도 크게 이름을 부르면 그애가 못 이기는 척 뒤돌아설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 나는 친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못된 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더 머뭇대지 않고 나는 고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모의 턱에는 대형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고모는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임신 전에 입던 옷에 비해 한 사이즈 큰 셔츠였는데, 봉긋한 배 부분은 잘 맞았지만 등판 쪽은 낙낙했다. 치마 밑으로 드러난 종아리가 잘못 쪼개진 중국산 나무젓가락처럼 앙상했다. 임신하고 나서 그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어디 가려고?

—응. 같이 가. 아니다. 넌 미성년잔데 같이 가도 되나?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우리 고모다웠다.

—어디 가는데?

—뭐 좀 알아보러.

그러고 보니 고모의 낯빛은 전에 없이 짙고 딱딱했다. 왜일까, 더럭 겁이 났다.

—뭘 알아보는데?

고모가 손바닥으로 제 배를 톡 쳤다. 순간 얼음보다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그 아이를 낳을 거냐고 고모한테 대놓고 물은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임신을 알려온 바로 그 시점부터, 고모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은밀하게 바라왔다.

—그냥 알아보는 거야. 일단.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고모는 앞만 바라보며 운전했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침묵이 점점 버거워졌다. 병원은 영등포역 부근에 있다고 했다. 서울의 서북쪽으로 와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자라왔지만 내가 아는 서울이라곤 고작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언저리의 몇몇 동네뿐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나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1위가 뭐였게?

—너 지금도 어리면서, 뭘.

—아니. 더 어릴 때. 아기였을 때,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생일 때. 그때 말이야.

아기였던 나, 유치원생이던 나, 초등학생이던 나. 나도 모르게 코끝이 맹맹해졌다.

—‘금방 올게.’ 2위는 ‘지금은 안돼.’

고모가 내 말을 따라 했다.

—금방 올게, 아니 지금은 안돼. 이거로군.

—응. ‘금방’이 언젠가 오긴 온다는 뜻이라는 건 알았는데, ‘지금은 안돼’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더라고. 지금이 아닌 때가 언제인지, 항상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고모가 내 말을 이해했을까.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고모가 그려온 종이약도를 내려다봤다. 몇개의 선과 몇개의 점으로 삐뚤삐뚤 그려진 그림은 실제 길과는 많이 달랐다. 국민은행 담벼락을 끼고 우회전한 뒤 독일제과와 해운대 암소갈빗집을 지나면 나오는 빨간 벽돌 건물 3층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달리다보니 국민은행이 왼쪽에 나왔다가 오른쪽에 나왔다가 다시 왼쪽에 나타났다. 우리는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

—몇살이에요?

잔머리 한올 없이 뒤로 꽉 조여 묶은 여자가 상담실장이었다. 별로 눈치가 빠르거나 유능한 편은 못되었다. 그녀가 주목한 건 고모가 아니라 교복을 입은 나였으므로.

—전데요. 스물여덟살이에요.

고모가 담담히 상황을 수습했다.

—아, 미안해요. 23주가 넘었으면 늦어도 많이 늦었다. 그죠?

—네.

—본인도 알죠?

—네.

—이런 케이스는 위험해서 아무 데서나 안해줘요. 알죠? 불법인 거.

—네.

—그러니 여기까지 오셨을 테고. 영양제 주사까지 큰 거 한장입니다.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에어컨의 온도가 너무 낮았다. 나는 팔뚝에 돋아난 자디잔 소름을 다른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고모의 팔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모는 여자를 따라 의사가 있다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 혼자 그 작은 방에 남겨졌다. 벽에 액자를 걸 못 하나 붙어 있지 않고, 병원 특유의 알코올이 휘발되는 냄새도 나지 않는 방이었다. 처음 온 곳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와본 적이 있다면 엄마 뱃속에 담겨서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고작 두어살 위였다. 무엇이 어린 부모로 하여금 뱃속의 아이를 지키게 했을까. 희망, 사랑 같은 단어들이었을까. 아니면 불법, 죄악 같은 단어들이었을까. 순전히, 순진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단 하나는 안다. 그들은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였겠다. 나는 그들이 당시 내렸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내 운명에 내가 개입할 수 있었다면, 나는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을 것이다. 낳아주어서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잠시 후 고모가 돌아왔다. 상담실장이 물었다.

—하시겠어요?

—아, 저, 그게, 제가 운전을 하고 와서……

—어차피 오늘은 못해요. 전신마취해야 하니 수술 전날 밤 금식하고 오세요. 다음주 중에는 해야 해요. 안 그러면 더 복잡해져요.

고모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영원히 어물댈 것이다. 밖에는 엄청난 기세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비를 쫄딱 맞으며 주차장까지 뛰어갔다.

—원래 한번 알아보기만 하려던 거야.

차에 타자마자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고모가 말했다.

—그래. 알아.

나는 푹 젖은 교복치마 뒷자락을 손으로 움켜잡고 꾹 짰다.

—아까 의사가 ‘다행히 태아가 비교적 작다’고 하더라. 웃기지? 은근히 빈정 상했어.

고모를 속상하게 한 건 ‘다행히’였을까, ‘작다’였을까. 노란 우비를 입은 아이들이 텀벙텀벙 빗속을 걸어갔다.

—후회해. 세미야. 나 정말 후회해.

1995년 가을 어느날, 신사동의 대형 산부인과 분만대기실에 누워 고모가 울부짖었다. 뒤늦어도 너무 늦은 후회였다. 나는 고모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땀으로 축축했다. 약 삼초가량 고심하다가 나는 이렇게 위로하고 말았다.

—잘될 거야, 고모. 힘내.

나라는 아이의 상투성이 속상했다. 고모는 분만실 안으로 사라졌다. 열두시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2.6킬로그램의 비교적 작은 남자아이였다. 팔과 다리가 모두 제자리에 얌전히 붙어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을 때 가만히, 다행히,라고 중얼거려보았다. 강보에 싸인 아기는 유리인형처럼 조그마했다. 세게 끌어안으면 똑 소리를 내며 부러질 것 같았다. 고모와 아기는 한남동으로 퇴원했다.

아빠는 제 누이가 친정에서 산후조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세미 공부해야지. 금방 고3인데.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이유였다. 할머니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오든지.

그게 끝이었다. 고모 결혼시킬 적만 해도 세상의 모든 혼수를 죄다 바리바리 사들이던 할머니가 아닌가. 그때의 할머니와 지금의 할머니가 같은 사람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야, 이거 결국 오지 말라는 뜻 아니냐?

고모는 내게 못내 서운하다는 뜻을 전했다. 나는 아닐 거라고 극구 부인했다. 나는 과장법을 사용하여 내가 그들 모자와 함께하는 삶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렸다. 내 목표는 오직 한가지였다. 고모와 아기를 고모부와 한집에 둘 수는 없다는 것. 임산부의 턱에 멍자국을 남기는 인간이라면 앞으로 더한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고모는 결국 처녀 적 쓰던 제 방에 짐을 풀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그 무렵부터 조금씩 변했다. 우선 급격하게 말수가 줄었다. 신중한 성품으로 변모한다기보다는 성격이 둔탁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팔다리의 움직임도 미묘하게 느려졌고 밤에 잠도 잘 못 이루는 것 같았다. 아기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밤, 책상에 엎드려 설핏 졸다가 아기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고모가 달래는 소리가 나고 울음은 곧 잦아들었다. 목이 말랐다. 나는 물을 찾아 계단을 내려왔다. 깜깜한 1층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마터면 꺅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할머니가 거기 암흑 속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주로 앉곤 하던 일인용 안락의자에 그녀는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 주무세요?

—잠이 안 오는구나.

할머니는 낮고 딱딱하게 읊조렸다.

고모의 아기에게는 곧 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완은 고집이 세고 입이 짧았다.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양학자들의 연구로 만들었다는 미제 분유를 좀체 목구멍으로 넘기려 들지 않았다.

—모성애는 타고나는 게 아닌가봐.

고모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눈두덩이 거뭇거뭇하고 피부에 윤기라곤 없었다. 완은 안 그래도 자주 바뀌는 도우미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로지 제 엄마만 찾았다.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제 엄마의 젖꼭지만 한사코 파고들었다. 고모는 나날이 수척해져갔다. 곯아갔다고 표현해도 되었다. 그래도 완이의 등장과 함께 집안에 감도는 묘한 활기와 느른한 평화가 나는 싫지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생에게 그런 숙제를 내주는 학교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만약 가족사진이라는 걸 가져오라는 미션을 받는다면 나는 별 저항감 없이 고모와 완을 향해 셔터를 누를 것이다. 한옆에 할머니가 찍혀도 그러려니 했겠다.

 

예순다섯번째 생일을 맞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할머니의 생일날, 고모는 나에게 케이크를 사오라고 시켰다. 제과점 점원이 초가 몇개 필요하냐고 묻기에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큰 초 여섯개, 작은 초 다섯개.

—좀 많죠.

내 딴엔 왠지 민망해서 한 말이었다. 점원이 웃었다.

—뭘요. 열한살이랑 똑같은데요.

열한살 아이와 예순다섯살 노파의 공통점은 생일 초 개수만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생일을 축하한다는(혹은 그렇게 간주된다는) 점일 것이다.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면 또 누구와 어디서 보낼지 애매한 나이이기도 했다.

1995년 늦가을 할머니의 생일, 할머니와 법적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로 얽힌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적극적으로 생일 행사를 주관한 것은 의외로 고모였다. 고모는 출장요리사를 알아보고 메뉴를 짜느라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이래 고모가 할머니의 생일에 이렇게 관심을 쏟는 모습은 처음 봤다.

—완이 아빠가 그러라고 했어. 애까지 덜컥 달고 와서 민폐잖아.

고모는 느닷없이 완이 아빠 타령을 했다. 두달여의 별거 아닌 별거 생활 만에 언제 부부관계가 저렇게 극적으로 좋아진 거지?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생일날 저녁, 모처럼 고모부도 일찍 나타났다. 자기 자식을 맡겨놓고도 이제껏 두어번밖에 들르지 않았던 남자였다. 그가 완이를 엉거주춤 품에 안았다. 불편했는지 완이가 왕 울음을 터뜨렸다. 그칠 만하다가도 제 아빠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자지러질 듯 울어젖혔다. 나는 은근히 고소했다.

고모가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요리사는 중국음식 전문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살샥스핀 스프를 막 한입 떠먹었을 때, 부드럽고 뜨거운 액체가 막 입안을 휘감았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빠와 그의 아내였다. 아빠 손에 이미 밥상 한가운데 펼쳐놓은 것과 똑같은 모양의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어색한 인사 끝에 그들이 엉거주춤 밥상 한쪽에 끼어 앉았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고모가 주문한 음식은 딱 사인분뿐이었다. 고모와 고모부에게 이들은 고약한 불청객이었다.

그뒤 상황은 일반적인 예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흘러갔다. 고모부는 아빠와, 나는 아빠의 아내와, 일인분을 나눠먹어야 했다. 찐 새우를 찹쌀가루에 묻혀 튀긴 요리를 먹다 말고 아빠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젓가락을 놨다. 혼자 먹기에도 감질나는 양을 남자 어른 둘이서 나눠먹고 있으니 신경질이 날 만도 했다.

—엄마.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빠가 할머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할머니이며,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명분이 그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할머니는 대답 없이 음식만 우물우물 씹었다.

—엄마!

그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귀 안 먹었다.

할머니가 느릿느릿 대꾸했다.

—그 땅이요. 용인. 작자 나섰다니까요.

—네, 어머님. 부동산에서도 그러잖아요. 덩치가 있어서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마침 이렇게 딱 맞춘 듯 임자가 나타났다고요. 하늘이 도왔다고요. 망설이다 놓치면 다신 이런 기회 없을 거래요.

아빠의 아내는 전직 보험설계사 출신인지 보통 말재주를 지닌 게 아니었다. 둥글둥글하고 순한 인상이 착시효과를 주었을 뿐 집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까부터 밥은 안 먹고 돌아가는 판세를 면밀히 주시하던 고모부가 고모의 옆구리를 쿡 쳤다. 반사적으로 고모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얼른 내 몫의 새우를 입에 넣었다.

—오빠가 지금, 엄마한테 그런 말 할 상황은 아니잖아? 뻔뻔하게.

고모는 종종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마지막 말은 덧붙이지 않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나을 뻔했다. 별로 다혈질이랄 수도 없는 아빠를 그 말이 한껏 자극시켰다. 찔려서일 것이다.

—갑자기 네가 왜 끼어드는데?

—우리 엄마 일이니까 그렇지. 엄마 불쌍하지도 않아? 죄송하지도 않아? 오빠가 그동안 우리 집에 한 일을 생각해봐!

—우리 집? 어따 대고 우리 집이야? 야이 씨. 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뭘?

—애 하나 앞세워 밀고 들어오더니 어디서이래라 저래라 훈수야? 어디다 숟가락 놓으려고 꼼수를 부려?

—저, 애를 앞세운 건 누가 먼전데 그러십니까?

고모부의 저음이었다.

—뭐?

아연실색한 건 우리 아빠만은 아니었다. 나. 그에 의해 불시에 지목당한 ‘애’는 다름아닌 나였다.

—뭐? 넌 또 뭐냐?

—그렇지 않습니까. 해미를 계속 이 집에 두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프락치도 아니고.

나는 두가지 점에서 놀랐다. 먼저, 내 이름조차 잘 모르는 주제에 나를 걸고 넘어졌다는 점, 그리고 그가 아빠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 아빠가 나를 이 집에 밀어넣고 지금껏 찾아가지 않은 게 그렇게 정밀한 계산속일 리 없었다. 원래 제 안의 두려움이 상대를 커 보이게 하는 법이다. 김형식이 아빠를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야! 네가 뭔데 아무렇게나 떠들어? 쟤, 불쌍하고 미안한 내 딸……

아빠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선가 할아버지의 위스키 한병을 꺼내왔다. 유리컵에 철철 넘치게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언제나 돈 아니면, 술이 문제였다. 김형식은 차분했다. 금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할머니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어머님. 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땝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1995년 현재 경기도 용인 근처 임야의 평당 거래가는……

—야!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네가 뭘 알아봐?

아빠는 들고 있던 유리컵을 허공에 던지고, 김형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분명 그 둘은 간발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 별개의 행동이었다. 고모부 눈가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둘 중 어떤 공격에 의한 것인지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쉽게 판별할 수 없었다. 고모부가 과장된 손짓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 폭력을 사용하셨습니까?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폭력 운운하는 거지? 고모 쪽을 바라봤다. 고모는 놀랍게도, 안고 있던 애도 팽개치고 남편의 상처 부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물었습니다. 지금 폭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인정하십니까?

—그렇다. 왜?

—알겠습니다. 완이 엄마.

고모부가 짐짓 부드럽고 작위적으로 고모를 불렀다.

—일단 가자.

고모가 머뭇대자 음성 데시벨을 조금 낮췄다.

—가자. 당신.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고모가 완이를 주섬주섬 품에 안고 일어섰다. 고모부가 어디서 났는지 비닐봉지를 꺼내들고서 깨진 유리컵을 주워담았다. 이 모든 소동의 가운데에서 할머니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제법 멀리까지 흩어진 유리 파편을 주우면서야 기억해냈다.

고모부는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피 몇방울 난 걸 가지고 두달 동안 뭘 어떻게 치료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기 혐의에 대한 집행유예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빠는 법정구속될 위기에 놓였다.

—어머님. 이게 말이 되나요? 도구를 사용해서 죄질이 나쁘다는데 그깟 컵이 무슨 무기가 되나요? 일부러 준비한 것도 아닌데. 어머님.

아빠의 아내가 할머니를 찾아와 하소연했다. 중간에서 어떻게 좀 해달라는 의미일 터였다. 그 여자는 어쨌든 확실한 아빠 편이었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있다는 것 말이다.

—감옥이야 보내겠나.

할머니가 남의 말 하듯 해서 여자는 애가 타나보았다. 오죽하면 멀뚱히 선 날더러, 고모한테 좀 찾아가보라는 부탁까지 하고 떠났다. 사실 그 정도로 구속이라면, 임산부를 그렇게 여러차례 두들겨팬 놈은 무기징역감이었다. 내가 심청이 같은 효녀였다면 아빠를 구하기 위해 물귀신 작전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검사의 실명을 세상천지에 밝혀버리는 거다. 어디다 밝혀야 되는지는 물론 모른다. 고모는 친정에 연락을 끊었다. 고모와 완이 머물던 방에서 공갈젖꼭지를 발견했다. 서두르다 놓고 간 소소한 짐이 그밖에도 꽤 되었다.

—갖다주지 않아도 돼. 버리든지.

수화기 너머에서 고모가 말했다.

—세미야, 있잖아. 네가 여기 오는 걸 완이 아빠가 불편해해…… 이해하지? 내 마음 알지? 미안해.

고모는 정말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미국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태 전의 것이었다. 누구라도 받아줬으면 했는데, 잘못 걸었다고 영어로 욕이라도 퍼부어줬으면 했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문 밖으로 나가 머나먼 언덕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다. 대문의 빗장이 잠겨 있지 않았고, 할머니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 하고 부르려다 멈칫했다. 저물녘이었다. 꼬리가 긴 붉은 바람이 흔들리듯 불어와 할머니의 그림자를 흐릿하게 지웠다. 그 이후부터 할머니의 영혼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1995년 겨울, 전직 대통령 두명이 차례대로 구속되었다.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은성하고 당당한 말년을 보내리라 차마 믿는 사람도 드물었던 것처럼. 아직도 이 세계는 내게 의문투성이였다. 나에게 그 계절은 ‘허를 찌르다’는 말뜻을 찾아보았던 계절로 기억되었다. 국어사전에는 ‘허를 찌르다: 약하거나 허술한 곳을 치다’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왼쪽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심장이 여기쯤일까. 오른쪽이었는지도 몰랐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엇비슷한 속도의 박동이 느껴졌다. 왜 내 심장이 어서 딱딱하게 굳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어린 코끼리 엉덩이에 말라붙은 덜 무른 똥처럼 말이다. 할아버지는 요구르트 빨대보다 가느다란 심장 혈관에 피가 통하지 않아 죽었지만, 나의 허()는 나라는 존재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모부와 아빠 사이에 무슨 종류의 협상이 오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할머니 명의의 땅과 한남동 집이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숨통이 트였고, 할머니와 나는 이 집을 곧 떠나야 했다.

—어떻게 할래?

아빠가 물었다.

—뭘?

나는 진짜 몰라서 되물었다.

—너만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학교 다녀도 되고.

—할머니는 어쩌고?

—그러게.

—그냥 있을게. 일년 남았는데.

—그럴래?

아빠가 반색을 했다.

—그럼 일단 학교 가까운 데다 넉넉한 평수로 아파트 하나 얻을게. 아줌마 하나 두고 셋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빠. 할머니가 좀 이상해. 수면제 아니면 잠도 통 못 주무시고 자주 말없이 멍하니 계셔. 행동 하나하나 굼뜨고 무기력해.

—충격을 받아서 그렇겠지. 좀 많은 일이 있었냐.

—그래도 병원이라도 한번.

—응. 날 풀리면 모시고 갈게. 혹시 치매가 오려고 그러나. 미안하다. 본의 아니게 너한테 짐 지우는 게 되어서.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걱정 마. 대학만 가면 너 혼자 살게 해줄게. 가구 다 있는 멋진 오피스텔 얻어줄게. 티뷰론도 한대 쫙 뽑아주고. 빨간색으로. 오케이?

허풍은 나이가 들어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빠. 그거 다 할머니 돈이야. 잊지 마. 일은 제발 좀 생각해서 벌여. 감당할 만큼만.

—우리 딸 다 컸네.

아빠가 허허 웃었다. 출장 정원사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정원은 나날이 황량해졌다.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 채 떨어지지 않은 홍시 한개가 매달려 위태로이 흔들렸다. 봄이 오면 여기를 떠나 또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뿌리라는 게 내게 있기나 하던가. 반포 주공아파트를 떠나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여기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세미가 차를 가지고 왔다. 국산 중형차였다.

—영원히 운전 못할 줄 알았는데, 하게 되더라. 필요하니까.

조수석에 앉자 세미가 스스럼없이 500밀리리터 플라스틱 생수병을 건넸다. 딱 적당할 만큼의 온기였다. 얼핏 뒤를 보니 조수석 바로 뒷자리에 카시트가 장착되어 있었다. 아이가 있었구나. 충분히 그럴 만한 나이가 지났음에도 나는 먹먹한 기분이 되었다.

—여섯살이야. 이제 주니어용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내가 게을러서.

—성별은?

—여자애야.

더는 묻지 않았다. 도로 양쪽으로 지나치는 산등성이마다 희끗희끗한 눈의 흔적이 그대로였다. 올겨울은 눈이 잦고 유난히 추웠다. 어쩌면 매해 겨울을 지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같다. 평일 오후 도시 외곽도로를 타고 교외로 나가는 삼십대의 두 여자. 남들 눈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나들이쯤으로 보일 것이다. Y시는 남한강 유역을 따라 널따랗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키 낮은 상가들이 늘어선 작은 시내를 통과했다. 그 밤에도 여기를 지났다. 스쳐가며 내 눈에 각인된 간판들이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형사로 가야 해. 수, 형, 사.

나는 그날 이후 한번도 입 밖에 내보지 않은 그 이름을 말했다.

—그래? 나는 수경사로 기억하고 있어. 수, 경, 사.

세미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름을 댔다.

—수형사야.

—음,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걸. Y시에 분명히 수경사가 있어. 다시 찾아봐.

세미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수경사. 신라 신덕왕 때 봉원대사가 설립한 고찰. 시청에서 좌측으로 20.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수경사라는 이름의 절이 존재했다. 수경사의 존재가 수형사의 존재 없음에 대한 증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이 말랐다. 세미가 건네준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 중얼거렸다.

—기차 건널목을 지났었어. 그다음 두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이야.

—그랬나? 나는 기억이 안 나.

구불구불 이어진 일차선 도로를 아무리 달려도 건널목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세미가 길 한쪽에 차를 세웠다. 이상하게 비어 있는 한낮이었다. 지나가는 이는 거의 없었다. 멀리서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다가왔다. 운동모자를 쓴 늙수그레한 사내였다. 세미가 차창을 내리고 그에게 말을 붙였다.

—저 기차 건널목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사내가 모자챙에 손을 얹곤 눈을 끔뻑거렸다.

—여기 그런 게 있던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세미는 입술을 반듯하게 다물었다. 사내가 낡은 자전거에 올라타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가 길을 따라 천천히 멀어지는 풍경을 나는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어쩌자고 우리는 여기 당도했는가. 짓궂은 신이 불가사의한 미소를 띠고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 전날 밤, 우리는 같이 있었다. 당분간 마지막이 되리라고 모두가 예상한 밤이었다.

—나 가게 됐어.

준모가 내 호출기에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가게 된 곳이 어딘지는 말하지 않았다. 내 입을 통해 세미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나는 준모가 세미에게 가진 마음을 오래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질투 비슷한 감정을 품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준모에게도, 세미에게도,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우리 셋이었다. 우리 셋으로부터 자꾸만 멀리 달아나게 하는 친구들의 욕망을 나는 아프게 질투했다.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남을까봐서 겁이 났다.

—송별식 해야지!

세미가 명랑하게 외쳤다. 송별식이라는 말이 고색창연해서 좋았다. 왠지 우리가 아주 오래 깊은 우정을 나눈 옛사람들인 양 느껴져서. 준모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간다는 주말로 날짜를 잡았다. 전에 없이 두근두근했다. 엄마한테는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고 온다고 둘러댔다. 토요일이어도 학원 수업이 끝나는 저녁 여덟시에나 만날 수 있었다. 학원에서 나오다가 일층 꽃집에서 장미꽃 두송이를 샀다. 각각 한송이씩 포장해달라고 했다.

세미는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잔뜩 사왔다. 준모는 밀러맥주 여러 병을 식탁에 꺼내놓았다. 좀 아까 편의점에서 사온 것이라고 했다.

—내가 킁킁 시팔 좆같은 새끼들 꼽냐 그러면서 계산대에 가면 아무리 간 큰 알바라도 민증 보여달라는 소리는 못하지. 에이 시팔 킁킁. 미안해.

욕을 한 뒤에 미안하다고 꼭 사과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그가 가는 나라는 덴마크라고 했다.

—덴마크우유 할 때 그 덴마크야? 왜?

—공주 때문에. 킁킁킁.

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덴마크는 입헌군주국인데 공주가 무척 예쁘다고 했다.

—덴마크. 수도는 코펜하겐. 노르웨이, 스웨덴과 더불어 스칸디나비아 삼국 중 하나지. 안데르센의 고향.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또 시작이냐는 표정으로 친구들이 흘겨보는 시늉을 했다. 준모가 음악을 크게 틀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폰의 작은 구멍이 아니라 밖으로 쿵쿵 울려퍼지는 음악이 진짜 음악이었다. 내 모든 걸 당신께 말해주고 싶어 작은 마음 드리리라 나는 항상 그대의 마음 곁에 있어 소중한 건 너이기에 난 YO! 언제나 너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그대 눈빛이 마주칠 땐 고개 돌리며 다른 얘길 하네 내 YO! 우리는 발가락을 까딱이며 박자를 맞췄다. 나를 돌아봐 그대 나를! 너의 맘속엔 내가 없지만 나를 돌아봐 나는 지금! 널 그리며 서 있어.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불렀다. 밤이 새도록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 항의가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의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 정오쯤 헤어졌다. 준모가 라면을 끓였고 우리는 덜지도 않고 큰 냄비째 그것을 나눠먹었다. 헤어지면서, 덴마크 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보자는 인사를 했다. 그렇게 빨리 다시 볼 일이 생길 줄 모르고 나눈 말들이었다. 헤어진 뒤에야 가방 안에 넣어둔 장미꽃 두송이에 생각이 미쳤다. 곧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독서실로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오후 네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 호출기 진동이 울렸다. 세미의 집 전화번호였다. 뒤에 8282가 붙어 있었다. 집도 먼데 벌써 갔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실 휴게실에 설치된 공중전화로 세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걸었다. 신호가 갔다.

—……여, 보세요.

세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야. 왜?

—지혜야. 있잖아.

세미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억양이 달랐다. 좀 전까지만 해도,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재잘대던 그녀가 아니었다.

—있잖아. 지혜야.

그녀는 미의 높이로만 반복해 말하고 있었다. 암기한 내용을 읽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다.

—세미야. 너 왜 그래? 천천히 말해봐.

—지혜야. 나 집이거든. 근데 우리 할머니가.

—응?

—움직이지를 않아.

—뭐?

나는 수화기를 귀에 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인데,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확실해? 정말?

—응.

119 불렀어?

—아니. 이미 몸이 딱딱해서. 준모가 일단 기다려보래.

—준모?

—응. 지금 너랑 준모한테 삐삐 쳤는데, 준모가 전화 와서, 기다리라고. 여기 온다고. 지금.

세미가 두서없이 더듬거렸다. 준모와 내가 달려갔을 때 세미는 현관 앞에 쪼그려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운 채 거기다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턱이 와들와들 떨렸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그 말만을 반복했다. 준모가 제 점퍼를 벗어 세미 등에 덮어씌웠다.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그애의 몸 전체를 부둥켜안았다. 준모가 욕실에 들어가 세미 할머니를 보고 나왔다.

—세미야. 씨팔. 할머니 많이 힘드셨겠다. 머릴 부닥치고 쓰러졌는데 다리뼈도 부러져서 못 움직인 것 같아. 아아 씨팔 좆같다. 근데 네가 처음 봤을 때부터 저랬어?

준모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희끄무레한 불안이 묻어났다.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봐. 킁킁 씨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세미는 계속 울기만 했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문제였다고 했다. 낮에 돌아왔더니 아무 인기척도 없어서 할머니가 어디 외출한 줄 알았고, 혼자 2층 방에 올라갔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다고 했다. 집에 들어온 지 여러시간 만에야 문 닫힌 1층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고 했다.

—이 큰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가정부 아줌마는 월요일 아침에 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준모와 나의 눈빛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내가 하는 생각을, 준모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 같은 애들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우리 세미를 우리가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결코 잊을 수 없을 줄 알았다. 낱낱의 기억들이 뇌 속에 콜타르처럼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아니, 다른 걸 다 잊어도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묻자.

그것은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세미와 준모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친구들의 눈빛에 일렁이는 구름을 나는 보았다.

—요즘 정신이 편찮으셨다면서. 죽음보다는 실종이 낫잖아.

그날 이후 우리 셋은 완벽한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완벽히 밀폐된 비밀. 어쩌면 나는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것을,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십오년 동안 비밀은 완벽하게 지켜졌고,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우리는 비로소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나만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웠는데, 세미도 준모도 각각 다 혼자였다.

—잡지에서 그린란드에 사는 남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세미가 말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북쪽 끝의 빙하지대에서 혼자 산대. 전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 마을에서.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동양인이라고만 나와 있었어. 사진은 없고.

맞다.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굉장히 행복하다고 했어.

—그래. 그렇겠다.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

 

할머니를 휠체어에 싣고 정원을 가로지른다. 한때 아름다웠을 정원이다. 아이스크림 그림이 붙은 분홍빛 다마스를 보고도 아이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환한 데서 보면 되게 귀여운데. 아마 그럴 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세미가 다시 훌쩍인다. 우리 할머니를 짐칸에 태울 수 없고 꼭 의자에 제대로 앉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미 말이 맞다. 할머니는 어른이니까. 나는 할머니를 두번째 줄에 앉힌다. 운전석 옆 조수석에는 지혜가 앉고 할머니 옆에는 세미가 앉는다.

—준모야. 너 전에 운전해본 적은 있니?

지혜가 걱정스레 물어온다.

—응! 킁킁 씨팔 다 죽여버려.

나는 자신 있게 가속페달을 밟는다. 승차감이 좋지 않은 차다. 다마스는 길바닥의 감촉에 정직하게 반응하며 덜컹덜컹 앞으로 나아간다.

—아, 맞다. 이거.

지혜가 무릎에 놓아둔 가방 속에서 장미 두송이를 꺼낸다.

—우리 어디로 가?

세미가 묻는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할머니의 손을 꼭 쥐고 있다고 나는 믿기로 한다. 머릿속에서 어릴 적 가보았던 S시의 산들을 떠올린다.

Y시.

나는 다른 도시의 이름을 댄다.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어디로든 갈 것이다. 구덩이를 파고 할머니를 구덩이에 묻고 구덩이에 장미를 던져넣고 흙으로 덮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