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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조명 | 황석영 장편 『여울물 소리』
사랑과 혁명,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황석영의 장편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 2012)는 19세기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이야기꾼 이신의 생애를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여성 화자인 연옥이 이신의 삶을 추적하고 상상하는 방식을 통해 문학과 역사가 얽히는 한 시대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장터에서 소설을 읽어주면서 신통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신은 전기수(傳奇叟)에서 출발하여 이야기꾼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천지도(天地道, 동학)에 관여하고 이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신통의 이야기는 그를 포함한 당대의 몰락한 지식인 및 민초의 삶과 연결되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의 좌절, 그러고도 계속되는 삶의 흐름을 유장하게 펼쳐보인다.
전통 구전문학의 양식에서 고안된 ‘이야기체 서사’는 빠른 장면전환과 압축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독특한 현재성을 전달한다. 이처럼 시공간의 연대기를 아우르는 서술방식이나 전통 구전서사에 대한 탐색은 황석영 소설에서 꾸준히 시도되어온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등단 50년을 맞은 황석영의 소설세계는 한동안의 공백을 뛰어넘어 후일담과 분단문제, 성장소설과 여성 수난사, 도시개발사, 쓰레기의 문명사적 탐구까지 실로 방대한 소재와 다양한 서사기법을 탐색해왔다. 『여울물 소리』는 이처럼 다양한 서사적 모색을 시도해온 근래 황석영 소설의 한 매듭을 이루는 중요한 성취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담긴 사랑과 혁명이라는 주제는 지금 시점에서 절실한 문학적 메타포로 다가온다. 현실의 정치상황과 연관돼서 그런 것일까. 어느 시대건 고달프게 살 수밖에 없었던 민초의 삶, 혁명의 실패가 남긴 좌절과 고통,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상념이 겹치면서 작품을 읽는 내내 상당한 감정의 고양을 겪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 살아가는 개인들의 운명을 굽어보는 소설의 담담하고도 깊은 시선이 위로가 되고 어느 대목에서는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먼 과거 이야기꾼의 삶이 이토록 생생하고 현재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고 난 후 작가와 나누고 싶은 감흥도 커지고 여러 질문들이 꿈틀거리며 솟아나기 시작했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연초의 어느날, 파주에서 만난 작가는 어떤 질문과 감상이라도 너끈히 감당할 듯이 강건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19세기라는 시공간과 이야기꾼을 주목하게 된 계기를 묻는 것으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2013.1.15 창비사옥)
소설의 배경인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할 만큼 조선사회의 모순이 절정에 이른, 숨가쁜 시대였어요. 역사학자들은 그때를 ‘반동의 시대’라고도 하죠. 근대화를 이룰 자생적 역량은 자랐는데, 그게 내부의 봉건 기득권세력과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 등에 의해 여러차례 좌절을 겪었고, 또 그러면서도 진전돼왔어요. 동학혁명만 보더라도 시대상황에 따라 좌절하지만 말살되는 게 아니라 의병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다음 시대로 연결되었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근대’가 지금까지 길게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외형적으로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우리는 아직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죠. 우경화하는 천황의 일본이나 첨단 자본주의의 겉모습에 사회주의 개발독재를 실험 중인 중국을 포함해서 동북아 전체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근대의 잔재 속에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번 대선을 보니 그런 점을 더욱 실감하게 되더군요. 일본 군복을 입은 청년 박정희(朴正熙)와 의문사한 장준하(張俊河)의 두개골 사진이 나란히 나왔잖아요. 그런 걸 봐서는 19세기 이래 우리가 겪은 근대의 트라우마가 지금도 내면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지요.
시대가 품은 역동성이 이렇다 보니 이야기꾼의 삶 자체가 역사와 얽혀들 수밖에 없지요. 처음엔 이 소설에서 역사 사실이나 현실을 빼버리고, 한 이야기꾼의 일생을 민담이나 설화 형식으로 허황하게 써보려고 했죠. 그런데 전기수나 강담사(講談師)에 관한 자료를 뒤지다 보니 19세기 당대의 현실이 너무 막중한 거예요. 도저히 그 현실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단 말예요. 이를테면 황아무개가 그냥 놀다 지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웃음) 처음 기획대로 옛날이야기 쪽으로 갔으면 구성, 인물, 서술 자체까지 메타포라든가 아이러니로 치장을 멋들어지게 할 수 있었겠죠.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놔버리지는 못하고 현실을 끌어안고 여전히 끙끙대며 쓸 수밖에 없었네요.
한국사회가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근대’의 문제를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고민은 이야기꾼의 삶을 조선 사회의 신분적 동요와 연결시킨 데서 잘 드러난다. 신통이 소설 읽기에 빠져든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서얼 출신이라 과거는 볼 수 있지만 본격적인 관직생활은 할 수 없었던 신분의 제약은 그로 하여금 먼 길을 떠나게 했다. 그는 언패(諺稗) 독자에서 전기수로, 강담사와 재담꾼, 연희대본가와 혁명가의 행로를 거쳐 떠돌아다닌다. 신분의 제약을 지닌 신통의 삶은 당대 몰락 지식인들의 삶과 얽힌다. 작가는 이야기꾼과 연관된 다양한 직업들이 지배계층과 하층민을 두루 오가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대동야승(大東野乘)』 등 여러 야담 자료에 전기수나 강담사 이야기가 나와요. 여기서 자주 마주치는 실존 인물인 정수동(鄭壽銅)과 김삿갓의 일생을 보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정수동은 서얼이라 과거에 급제하질 못하고, 실력은 있으니 남들 시회(詩會)에 가서 양반들 골탕이나 먹이고 술 얻어먹고 그럽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정수동의 재간을 아끼고는 식객으로 데리고 있기도 했어요. 마누라가 해산을 하게 되자 미역인지 불수산 약인지 사러 나갔다가 마침 금강산 구경가는 동무를 따라갔다가 일년 만에 돌아왔더니 애가 커서 기어다니고 있었다더라는 일화도 유명하죠. 정수동은 결국 술로 떠돌다 객사하지요. 이야기꾼의 발생을 찾다보니까 그들 신분의 수상한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해요. 양반은 풍자하고 아래 계층에는 따뜻한 동질감을 느낀 사람들인데, 한편 자기들끼리 뜯어먹기도 해요. 이런 신분이 아전(衙前)이 되면 민중에게 제일의 적이 됩니다. 그런데 동학혁명 때는 거의 다 민초 쪽으로 붙어요. 집강소(執綱所) 자치를 전담해서 끌고 나간 이들이 전부 아전 계층이에요. 중간계층의 이중성이 보이는 거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위에서는 세도정치하고 저희들끼리 관직 나누고 사고팔고 하니 몰락 지식인이 점점 많아졌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임형택(林熒澤) 교수에 의하면, 중인의 정체를 몰락 지식인이 아니라 천민의 신분 상승지향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밑에서 올라오거나 위에서 탈락한 바로 그 지점이겠지요. 전기수, 강담사가 다 이런 독서인 찌끄러기입니다.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꾼에 얽힌 일화를 쭉 보면, 동학 지도부와 다 겹친다는 사실입니다. 전봉준(全琫準) 손화중(孫華仲) 김덕명(金德明), 이런 사람들이 여러가지 잡직을 하고 살았거든요. 전봉준은 애들 몇 가르치는 훈장을 호구지책 삼았죠. 의생(醫生), 풍수(風水)도 있었고요. 홍경래(洪景來)의 난의 지도부에도 풍수라든가 역술가나 잡직 사람들이 많지요. 동학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면 회상, 민담, 설화가 지방마다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최제우(崔濟愚) 최시형(崔時亨)이 남긴 『동경대전(東經大全)』 『용담유사(龍潭遺詞)』 같은 경전부터 강증산(姜甑山, 강일순)의 『증산도경(甑山道經)』까지, 모두 그 사람들이 직접 쓴 게 아니라 그들이 말로 했던 구전을 받아쓰거나 정리한 거예요.
동학사상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죠.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가지 변혁사상, 조선후기 승병 조직의 원형이었던 당취(黨聚)라든가, 특히 미륵신앙, 주역(周易)의 개벽사상, 『정감록(鄭鑑錄)』 같은 민중사상이 집대성돼서 동학, 증산으로 표현된 거예요.
사상 혹은 혁명운동으로 동학을 그린 역사소설은 있지만, 동학에서 문학적 상징과 작가의 발생을 짚어낸 작품은 많지 않다. 『여울물 소리』는 동학을 이루는 전통서사의 양식을 주목하면서 그것이 현실 속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되는가를 주시한다. 저잣거리에 흘러다니는 무수한 민담과 설화 등 구전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이 스며들어 있다. 동학의 경전은 그러한 서사들을 축적하고 변화시켜온 것이다. 소설 속의 신통이나 서일수 역시 처음부터 천지도에 입도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배계층의 부패를 조롱하는 시정잡배로 살다가 천지도의 도경을 옮겨쓰고 전달하면서 변혁의 사상에 동참하게 된다. 소설에서 동학의 상징은 신통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서일수라는 인물에게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서일수도 신통처럼 신분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세태에 대하여 비분강개하거나 정면으로 맞서려 하지 않고 시정 왈짜와 다름없이 아랫것들과 한통속이 되어 풍도 치고 능청스럽게 덜미도 잡으면서 휘돌아”(200면)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천지도에 입도한다. 이신통마저 압도하는 활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이 매력적인 인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신통과 서일수를 한 인물로 할까 하다가 둘로 나눈 거예요. 서일수를 참고한 원형이 있습니다. 동학에 관한 자료를 보면 서장옥(徐長玉, 서인주)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서장옥은 승려 출신으로 알려져 있어요. 집안이 박살났거나 해서 절간으로 피해야 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동학은 제도를 볼 때는 최제우서부터 성리학 또는 유학의 뿌리가 있는 한편, 수도하는 과정을 보면 불교적인 색채도 많습니다. 여기에는 아마 민속신앙적 측면도 있겠지만 서장옥의 영향이나 흔적도 있을 거라고 봐요. 서아무개는 아전이었던 손천민(孫天民)처럼 유학도 알았을 뿐 아니라 동학의 하부 접(接) 조직운동에 영향력이 컸죠. 평생을 도망다니며 교단을 이끌던 ‘최 보따리’ 최시형의 뛰어난 실천력이 있었겠지만 그는 그야말로 제지공(製紙工)으로서 일자무식이었어요. 남접(南接, 동학 교단조직의 하나로, 전라도를 근거로 형성됨)을 자처하는 무리가 생기기 전에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한 사람이 서장옥이에요. 전봉준도 서장옥의 영향을 받아서 입도했다고 돼 있어요. 유학자인 황매천(黃梅泉, 황현)이 동학을 남접이라 하지 않고 서장옥이 만들었다며 ‘서접’이라고 할 정도였지요. 남접과 북접(충청도를 근거지로 한 조직)이 연결되지 않을 때 최시형을 설득해 이들을 받아들이게 한 게 서장옥입니다.
서장옥은 동학 지도부보다도 더 큰 변혁의 의지를 심중에 가지고 있던 인물이에요. 한양에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원군 집에도 드나들었다고 해요. 일설에는 그때 전봉준이 1,2년 동안 대원군 집에 식객으로 있다가 만났다거나, 서장옥이 관에 잡혔다가 850냥을 써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는 기록도 있어요. 남접이 토벌된 다음에도 살아남아서 조직을 살리기 위해 돌아다닌 흔적이 있습니다. 서장옥은 청주 음씨의 두 딸 중에 첫째와 성혼했고 최시형의 장남이 그 둘째딸과 혼인했으니 이세 교주의 최측근이었던 셈이죠. 그러다 최시형이 잡혀서 죽은 다음에 손천민과 한두달 차이로 잡혀서 처형되지요.
저는 이 인물을 매우 흥미롭게 봤어요. 변혁을 위해서 남접을 조직하고 그것을 북접과 연결시키는 과정이 자못 용의주도하거든요. 직업 봉기꾼이라고 하는 이필제(李弼濟)가 문경새재에서 난을 일으킬 때도 서의 흔적이 어른거립니다. 그가 충북 진천의 절에 있었는데 그때 접촉을 했다는 전설 같은 짤막한 일화가 있어요. 누가 ‘서장옥전’을 따로 쓰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야말로 소설적인 인물이지요. 어쨌든 이야기꾼 이신통과 혁명가 서장옥을 한 인물로 만들려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커지기도 하고, 또 이야기꾼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자신을 보더라도 이야기꾼이 혁명가는 아니죠. 혁명에 휩쓸리긴 해도 혁명가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서일수는 이신통의 멘토 역할로 정해진 겁니다.
이야기꾼은 낭만적인 혁명가의 이상을 꿈꿀 수 있으되 혁명가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시끌벅적한 장터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풀며 흥에 취하여 먼 곳을 응시하는 고적한 이야기꾼은, 뜨겁고 비루한 삶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그곳으로부터 떨어져 또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혁명에 휩쓸리긴 해도 혁명가 자신은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주목할 점은 혁명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서일수 역시 영웅적인 인물과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서일수는 이신통이나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변화에 휩쓸리는 연약한 개인이다. 그는 중심부에서 극적 사건을 주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인물도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개인이다. 이야기꾼이든 혁명가든 이 소설에서는 영웅이 되지 않는다. 이들의 담담하고도 평범한 일면은 세상을 뒤흔드는 변혁이 흔히 생각하듯 극적인 사건이나 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늘 잠복해 있고 삶 속에서 만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신통과 서일수가 이야기꾼과 혁명가의 특성을 나누어 가진 이들이라면, 이야기 바깥에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중요한 인물은 여성 이야기꾼 연옥이다. 연옥은 지아비를 좇는 지고지순한 전통적 여성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삶을 의지적으로 일구는 강인한 면모를 지녔다. 호락호락하지 않으면서도 담대하고 맑은 품성을 지닌 이 의연한 여성에게서는 『장길산』(초판 1976)의 묘옥이나 「삼포 가는 길」(1973)의 백화의 모습도 비친다.
어떤 이는 연옥을 심청과 비교하기도 하던데 그와는 좀 다르죠. 심청은 동아시아가 제국주의적 시장에 의해 전락하는 과정 속에서 팔려다니며 여성의 정체성과 몸의 변화를 드러내는 인물을 그렸던 거고요. 저는 연옥이를 통해서는 ‘집과 아이들과 살림을 지키는’, 드디어는 숱한 후손들의 할머니가 될 여성을 그리고 싶었지요. 그런 게 우리네 여성의 항산항심(恒産恒心)이겠지요. 지난 10여년간 제가 쓴 소설의 절반 이상이나 여성 화자(話者)가 등장했는데, 지난 세기까지 남성이 지어놓은 질서나 문명 등을 ‘역할 바꾸기’를 통하여 그 반대쪽에서 들여다보려는 의도였죠. 이 소설에서 이신통은 살림하고 기다리는 가족 입장에서 보면 아주 나쁜 남자예요. 이신통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사명감에 불타서 돌아다니는 식으로 그리지 않고, 그걸 기다리고 찾으러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죠.
그를 기다리며 식구들과 오순도순 사는 살림의 장으로 그를 데려오려는 입장에서 봐야,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보는 이런 떠돌이, 정의랍시고 사소한 일상을 버리고 가버린 남자에 대한 다른 시선이 나오리라고 생각했지요. 이건 처음부터 계산했던 바예요. 그를 잡으러 다니는 여성을 통해 그 사람과 19세기의 변화하는 세상을 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여성 이야기는 내 자신을 투사한 면도 있습니다. 내가 인생의 여러 우여곡절을 통해서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족의 가치 같은 것을 잃어버린 데 대한 회한도 있었겠지요. 연옥이라는 인물에는 제 어머니가 많이 투영된 것 같기도 해요. 사춘기 때 자주 가출해서 도망다니면 어머니가 잡으러 오셨거든요. 동래 범어사까지 와서 잡아가기도 하고, 베트남 파병 직전에는 면회도 안되는 ‘특수전 훈련장’까지 따라와 수십리 행군 길을 아낙네 혼자 따라다녔으니까.(웃음)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연옥은 당대의 가부장적 구조 속에 뿌리박힌 여성들의 삶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신통을 ‘잡으러 다니는’ 그녀의 행동은 독립적인 구석이 있다. 신통이 사람들을 스쳐가는 고독한 모험가라면, 연옥은 그가 지나친 사람들을 관계지향적으로 보듬는 호기심 많은 이야기꾼이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내면에서는 신통을 찾는 명분보다는 신통의 행적에 얽힌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커져간다. 소리꾼 백화로부터 신통이 지닌 책을 건네받은 연옥은 그것을 읽으며 ‘사람이 하늘이다’가 품은 의미를 스스로 깨우친다. 연옥을 포함하여 겹겹으로 설정된 이야기꾼들을 통해 구전서사의 활력을 한껏 드러낸 이 소설에는 해체적으로 읽을 만한 대목들도 적지 않다. 연옥이 신통을 추적할수록 그의 생애는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힘써 모아도 빈 구멍을 남길 수밖에 없는 신통의 삶, 그것은 상상을 매개로 해야만 추적할 수 있는 문학의 긴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대하장편 『장길산』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 바 있지만 『여울물 소리』는 세세한 대화를 생략하고 인물의 일대기를 과감하게 뒤섞고 가로지르는 방식을 택한다. 가령 연옥과 신통이 만나 인연을 맺은 후 신통이 떠나는 장면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역사적 사료며 연대기 역시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압축되어 전달된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리얼리즘 서사의 쇄신 요구랄까 장편소설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갈망은 황석영에게 늘 존재했던 듯하다.
객관성이니 인물의 전형이니 하는, 그동안의 관습적 서사나 원칙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을 변화 확장하고 싶었지요. 그 방법으로 생각한 게 우리 전통소설의 기본 서사와 양식을 과감하게 들여와서 거기에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싣자는 거였어요. 『오래된 정원』(2000)에서도 과거의 인칭 개념에서 벗어나 내면의 독백체가 되고, 일기가 되었다가, 1인칭이 됐다가, 3인칭에서는 작가가 개입해서 당대의 현실이나 지나간 일들, 기사 편년체(編年體)를 쓰기도 하고, 이렇게 들락날락하면서 과거의 리얼리즘 서술방식을 해체하는 식으로 그렸죠. 그다음에 『손님』(2001)을 비롯하여 『심청, 연꽃의 길』(2003) 『바리데기』(2007)에서는 우리 전통의 형식과 서사를 가지고 거기에 당대의 세계가 겪고 있는 현실을 얹는 식이었지요.
십여년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보니 우리식 서사에 대한 물꼬가 틔었다고나 할까요. 『여울물 소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야기성이죠. 서사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신통의 행동을 작가가 직접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가 지나간 다음에 연옥이 간발의 차로, 그 자리에 가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려서 전해주는 거죠.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거죠. 가령 우금치 전투를 서술해놓으면 역사적 사실 때문에 굉장히 빡빡했을 텐데, 그걸 여기서는 안서방이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으로 들려줘요. 이렇게 이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이야기화되어 전해지고, 자연히 역사적 사실은 저 멀리의 천둥소리처럼 스치는 배경이 되고 작품 전면은 인물이 느끼는 사소한 감정이나 일상이 차지합니다. 어떤 현실도 아주 비극적이거나 아주 리얼하지 않고, 이야기의 설화적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읽는 사람에게 이야기로 스며들죠. 독자 중에 누가 표현하기로는,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깃털이 내려올 때처럼 바람을 타며 서서히 가라앉듯이 감정이 이입된다, 그래서 가령 이신통의 죽음에 이르러서도 극적인 감정이 아니라 적막하게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더군요. 우리가 할머니나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실감이 사실적 실감이 아니라 꿈에서 겪은 일처럼 추체험되는 것과도 같죠. 제 의도도 그랬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을 약간 흐리게 해서 그림 같은 효과를 내듯이, 사실을 설화로 바꿔서 아련하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문장의 맛이나 분위기 면에서는 고저장단이 있게, 그래서 누가 소리내어 읽으면 일정한 가락이나 장단, 말의 맛이 느껴지도록 쓰려고 노력했어요.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성’은 구전 서사양식에서 뻗어나온 자유로운 이야기(storytelling)와 개별 이야기들이 연계되어 이루는 서사성(narrativity)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듯하다. 압축된 이야기는 세세한 대화나 장면 묘사를 대신하여 다방면의 시공간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지니는 동시에 현실과 상상적인 거리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역사적 연대기를 압축하는 이러한 이야기체 서사는 소설의 후반부로 향하면서 천지도와 관련된 숱한 인물이 등장하며 ‘기록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신통과 연옥의 사랑 이야기와 신통이 장터의 이야기꾼으로 성장해가는 대목에서는 압축된 이야기가 적절한 곳에서 풀어지면서 흥겨운 가락을 탄다. 그러나 천지도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기록으로 빨려들어간다. 박도희(朴道熙) 형제와 최제우의 이야기, 그리고 임오군란을 비롯한 역사적 사료를 다루는 부분에서 이러한 건조한 기록의 교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역사적 사건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점에서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가공되는 허구의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와 인물의 관계가 충분히 허구화되기 위해서는 더 넓은 서사의 장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작가는 동학과 관련된 기록의 가공이 쉽지 않았던 점을 설명한다.
독자들이 역사적 사건으로서 동학 이야기는 많이 들었겠지만 실제 그 사상의 내용을 접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후반부 동학 자료들을 버겁게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도경(道經)의 흐름을 보면 그 자체가 서술이 아닌 이야기예요. 최제우의 이야기는 마치 「요한복음」 같은 회상자료고요. 최시형에 대해선 손천민이 최후까지 옆에 남아서 기록했다고 하지요. 소설에서 그 부분을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로 풀어서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컸지요. 어느 평론가는 『동경대전』이나 『용담유사』를 근대문학사에 넣어야 한다고도 주장했지요. 조선 후기에 거듭되었던 민란의 배경에 어른거리던 민중사상이 집대성된 게 동학이었으니까요. 글쎄, 좀더 길게 썼으면 동학과 얽힌 이야기를 그 현장에 직접 가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로 생생하게 그려냈을 텐데, 그건 처음부터 제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니까. 후반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세세한 묘사를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도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거 모두 기억하려 애쓸 필요 없어요. 여기서는 그 인물들 개별의 삶을 드러내기보다는 이신통을 매개로 해서 천지도의 수상한 소문들을 들려주는 역할로 설정한 것에 가까워요.
의도적으로 개별성을 지운 듯한 집합적 인물들의 설정은 이 소설에서 ‘이야기성’이 강화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소설에서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은 이 집합적 인물들이 이야기틀의 안팎을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곁가지 일화에서 발견된다. 신통이 읽어주는 임경업전(林慶業傳)의 내용에 푹 빠진 사람들이 흥분하여 빗자루며 생선 등속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신통의 이마에 멍이 드는 장면은 짧게 스쳐가지만 인상적이다. 신통이 책전과 서화전, 방각소(坊刻所), 약방을 오가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일상 묘사도 흥겹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공간으로서 객주와 거리라 할 것이다. 이곳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가 솟아오르며 삶의 변화가 도모되는 열린 공간이다. 연옥과 신통의 운명적 만남 역시 주막에서 시작되며, 신통과 일수도 객주의 봉놋방에서 만나 서로의 마음을 읽는 동반자가 된다. 이러한 공간의 역동적인 힘은 신통과 일수가 과장(科場)에 나가 거벽(巨擘, 글을 대신 지어주는 사람)과 서수(書手, 글씨를 업으로 쓰는 사람) 노릇을 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과거가 시행될 때는 “큰돈을 만져볼 대목 중의 대목”(189면)이기 때문에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양의 과장 근처로 몰려든다. 객주와 장터, 그리고 과장이 연결되어 “솥단지의 끓는 물처럼 출렁대”(192면)는 떠들썩한 장면을 보면, 당대의 타락한 지배계층과 몰락한 지식인, 재담꾼과 상인, 하천(下賤)이 뒤섞여 한바탕 ‘난리굿’을 하는 듯 숨가쁘고 생생하다. 소설이 저잣거리의 산물임을 이보다 시원스럽게 보여주는 대목이 있을까.
장터야말로 소설이 발생하고 소비되는 근원지예요. 최초의 한글소설본이라고 하는 『홍길동전』 『춘향전』이 안성본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안성은 지금의 가락동 농수산시장 같은 삼남의 물산 집산지로, 삼도가 접경하는 곳이죠. 허생이 장사를 시작한 곳도 안성이고요. 이야기꾼의 직업적 형태인 전기수나 강담사가 그 무렵 크게 번성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세기 숙종 말에 지방의 물물교환이 성행해서 화폐가 생기고 영・정조 때에 이르면 관에서 파악한 것만 해도 전국에 133개의 장시(場市)가 생겨납니다. 서구에서도 가내수공업이 공장제 수공업으로 전이되는 시점에 음유시인, 이야기꾼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소설의 발생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과거 대리시험 보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당시 과거제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 많습니다. 조선 후기에 관직을 얼마나 팔아먹었는지 어느 관리가 부임을 하면 그 이튿날 딴 놈이 또 부임해요. 과장 이야기는 『한양가』에도 있고, 『백범일지』에도 소년 김창수(金昌洙, 김구)가 아버지 대신 시험보는 일화가 나오지요. 해주에서 보는 지방 향시가 그 정도인데 서울은 더했죠. 박문수(朴文秀) 일화를 보면 대리시험도 있고 컨닝도 나와요. 실제 발각된 사건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성균관에서 과장 쪽에 미리 하수관처럼 대나무를 묻어두고 줄을 연결해두지요. 과장 쪽에서 시험문제를 받으면 그걸 줄에 매어 대나무 하수관을 통해 성균관 안쪽으로 보내 여럿이서 답안을 쓰게 하고, 그걸 다시 과장 쪽에서 잡아당겨 베끼는 거죠. 그런 장치까지 썼다는 겁니다.(웃음) 과장에 장사꾼도 드나들고 안에서 술도 팔고, 곁꾼을 사는 얘기며 글 잘 쓰고 학식 있는 놈을 고용해서 옆에 데려다놓고 대리시험을 치고 하는 게 공공연했어요.
소설에 그려진 과장 장면은 몰락한 지식인이 지배계층의 타락에 엉켜들었다 떨어져 나올 때, 그 고독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신통은 과거제도를 조롱하며 돈을 벌었지만, 결코 그 타락한 제도의 성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의 삶을 공허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포한과 원망의 뿌리”에 내심 사로잡혀 있던 그는 “무엇인가 마음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일시에 빠져나간 것”(196면) 같은 허무와 직면한다. 신통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여기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이야기를 통해서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운명을 깨달은 신통은 평생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여기서 떠돌이 이야기꾼과 토박이 이야기꾼의 운명을 비교하는 작가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이야기꾼에는 토박이 이야기꾼과 떠돌이 이야기꾼이 있어요. 토박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령 이 대추나무가 몇년에 벼락을 맞아 한쪽이 불에 타서 가지가 부러졌다, 삼돌이는 옛날 김과부가 소금장수와 눈이 맞아서 난 애다, 하는 식으로 동네에 내려오는 비밀이나 후대에 전해줄 공동체의 이야기를 전하는 쪽이고, 떠돌이는 벗어났든 쫓겨났든 고향을 떠나 외지에 가서 제 고향의 이야기를 부풀려서 떠드는 부류예요. 내 고향에는 사과하고 밤하고 대추가 한꺼번에 열리는 나무가 있다, 나가 보니 남대문이 어찌나 높은지 처마에 구름이 걸려 있더라, 피맛골은 길이가 수십리에 사람이 수만명이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하는 거죠.
나는 결국 떠돌이 이야기꾼이고, 떠돌이 이야기꾼이 굉장히 유리한 세상에 태어난 셈이지요. 누군가 농담으로 내게 문학적인 라이벌이 누구냐고 물으면 젊었을 땐 없다고 했는데 나이 들어 보니까 있어요. 아깝게 작고한 이문구(李文求)가 알고 보니 내 라이벌이더라고. 이문구를 참 좋아하고 그와의 추억이 많습니다. 그 사람 고향이 관촌인데 관촌 옆에 흐르는 개울이 명천(鳴川)이에요. 우리말로는 우름내죠. 이문구가 자기 호를 고향에 있는 개천 이름으로 해서 명천이라고 했어요. 그게 바로 여울물 소리죠. 그러고 보니 이 소설 제목이 바로 그를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네요. 이문구는 나 같은 작품을 못 쓰고 나는 그 같은 작품을 못 써요. 떠돌이 이야기꾼의 내면에는 토박이 이야기꾼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있죠. 아무튼 그리로 돌아가야 하니까. 떠돌이 이야기꾼으로서 황석영의 평생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겁니다. 망명지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우리의 서사양식으로 돌아가서 세계의 보편적 현실을 담겠다고 생각한 것도 모국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었죠. 우리 근현대 문학은 언패 전통과 단절된 문학인 셈인데 이 단절을 넘어 어떻게 하면 토박이 이야기꾼과 현재의 소설가인 나를 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토박이 이야기꾼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떠돌이 이야기꾼의 열망은 『여울물 소리』를 이루는 중요한 자원이다. 소설에서 이신통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가 만들어내고 전한 이야기들은 계속 살아남아 자신의 운명을 이어간다. 이야기의 운명은 작가가 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라고 설명한 ‘여향(餘響)’과도 연결된다. 여향은 판소리 스승 손동리가 신통에게 가르쳐준 판소리 미학의 최고 경지다. “새벽의 먼 산사에서 마지막 타종 소리가 끊길 때와 같”은 정적이자 “들보 위의 티끌이 떨리고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멈추게 하는 가락”(357면)이기도 하다. 정적 속에서 성찰되는 판소리 광대의 인생을 상징하는 ‘여향’은 소설 제목인 ‘여울물 소리’의 의미와 이어진다.
제가 젊었을 때 돌아다니면서 두메의 토방이나 헛간에서 자곤 했어요. 강물보다는 작고 개천보다는 큰, 섬진강에도 많은 그런 물굽이 부근에서 자는데, 바로 옆을 지날 때는 거의 안 들리던 물 흐르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동네 외곽 같은 데 누워 있으면 굉장히 가깝게 들려와요. 돌이나 바위에 부딪히고 돌면서 물소리가 변하고 휘감기는 소리를 밤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들었던 기억이 많아요. ‘여울물 소리’에는 우리 삶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흐르는 물처럼 계속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그게 이야기의 본질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이 좌절된 혁명을 다루고 있지만 변혁이 하루아침에 무슨 불이 나듯 확 번지는 게 아니지요. 그런 일상이 쌓이고 작은 물꼬가 돼서 흐르다가 강으로 만나기도 하고 바다에 이를 날을 기약도 해보면서 지금까지 진전되어온 게 아닌가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신통의 유골을 수습한 연옥이 방에 누워 듣는 것은 한 뗏사공이 쉰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 한자락이다. 여울물 소리와 겹쳐드는 그 고적한 노랫가락은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88면)는 연옥의 깊은 탄식과 짝을 이룬다. 사랑도 하고 혁명도 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지만 물살을 가르는 사공의 노랫소리는 계속된다. 어느덧 대화는 마무리에 접어들었고 앞으로의 집필 일정들이 궁금해졌다. “돌아보니 그동안 장편소설 쓰느라고 중단편을 쓰지 못했어요. 20대 때 쓰고는 안 쓴 거지요. 중단편을 쓴다는 것은 동시대 현실의 물결 속에 낚싯대를 던지는 거거든요. 현실을 날렵하게 포착하는 좋은 중단편을 쓰고 싶습니다. 젊을 때처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여전히 소설적 고민과 물음을 멈추지 않는 대가의 의욕적인 대답이었다.
작품만큼이나 풍성하고 다채로운 그와의 대화를 상기해보니, 소설에서 신통이 마음속에 품고 찾아다녔던 여향의 경지는 ‘오늘’의 삶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히지 않는 연옥의 말도 이와 관련된다. 노성산에 머물고 있는 신통을 찾아온 연옥은 함께 있던 서일수도 만나게 된다. 서일수는 연옥의 고생을 위로하며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지금 고생을 옛말하듯 하면서 오순도순 사십시오”(444면)라고 말해준다. 과연 언제 좋은 날이 올 것인가라는 물음을 애써 누르며 연옥이 던진 한 마디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전언으로 남는다. “저에게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같은 곳)
‘오늘도 좋은 날’이라는 연옥의 대답은 황석영 소설이 간절하게 환기하는 삶의 진실이다. “아주 끝나버린 것은 아니외다. 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가뭄이 지나면 어느새 골짜기와 바위틈에 숨었던 작은 물길들이 모여들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고, 강물은 다시 흐르겠지요. 백성들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찌 죽은 이들의 노고가 잊히겠습니까?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467면)라는 믿음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데서 가능하다.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계에 시달리고, 운명적 사랑에 뛰어들었다가, 흥겹게 놀기도 하고, 그 가운데서 벼락같은 진실을 목도하고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세상을 바꿀 거대한 꿈에 도취했다가 절망과 실패에 휩쓸려 들어가기도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이야기 역시 계속된다. 가파른 현실 속에서 ‘오늘’을 잊지 않는 이 담담한 응시야말로 황석영 소설이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가장 큰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