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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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黃炳承

1970년 서울 출생. 2003년『파라21』로 등단. 시집『여장남자 시코쿠』『트랙과 들판의 별』이 있음. voodoosoup@naver.com

 

 

 

육체쇼와 전집

 

 

옆집 베란다에 폭탄이 있습니다

저게 터지면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망상입니다 의사는 규칙적인 식사와 산보가 좋다고 합니다만

자 저는 누워 있습니다 보란 듯이

저기 발가락이 보이는군요

말없는 저들은 누구의 아이들입니까

저는 방금 꿈에서 깨어났고 당신은 아름다울 정도로 착해 보인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제 손을 잡아주던 늙은 여자의 다정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당신은 아름다울 정도로 착해 보인다……

왜요 저는 꿈속에서 착한 녀석이었습니다

없는 아내와 아이들을 걱정하고

아침 식탁의 즐거운 소동과 휴일과 가족여행을 떠올리는

저는 누구입니까 이 육체와 전집은 누구의 것입니까

저는 근육이 없습니다 톱니가 없어요

잠잘 때 코에서 죽은 사슴냄새가 나는 여자의 아들입니다

뭐가, 뭐가 싫은 것일까요 중얼거리다,라는 말에 문제가 있습니까

곪다, 되씹다는 어떻습니까 고향에 가면 지금도 옛날 껌을 팔지요

어린 시절의 향과 단물이 그리워지는 시간

자 저는 조금 더 누워 있도록 하겠습니다

안내자가 올 때까지…… 안내자는 누구입니까

당신에게도 안내자가 있습니까 안내자에게

안내를 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친절하고 적절한 것입니까

저는 지금 숨을 헐떡이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멸치처럼 마르고 황달 걸린 노인네의 모습으로

친구였던 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더러워진 옷이 더러워질 옷과 옷장 속에서 썩어가던 시절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속여야 했을까요

언젠가 굴다리 밑에서 보았던 올 고트라는 영화가 떠오르는군요

아름다운 말들이 닥치는 대로 죽어가는 영화

음…… 마지막 경주를 마치고 뜨거운 침을 흘리던 말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악착같이 꿈꾸면서 악착같이 전진하면 악착같은 현실이 기다리겠지요

눈물을 질질 흘려야 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했다고 말하고

살아 있으면서 지난 새벽에 죽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개새끼들

욕조의 자라들처럼 계속해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거죠

햇빛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그리스 해변에서 빛나고 있는데……

고독은 무엇입니까

고독 속에서 당신도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고독 속에서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깊은 시간이

바지를 적시는 흙탕물처럼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고 있습니까

불현듯 백년 전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잊었던 백년 전의 목소리가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저는 구두가 없어요 구두가 있다면 내 두 발을 끊어가도 좋아 농담입니다

저는 생각이 없어요 전집이 없습니다 누구의 자식인지 모를 골방의 아이들은

뒤죽박죽인 채 서로를 배신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어두워진 창가를 서성이는 검은 육체의 그림자와

누구의 부모인지 모를 백년 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뭐가, 뭐가 들이닥친 것일까요 마주치다,라는 말에 문제가 있습니까

주저앉다, 곪아 터지다는 어떻습니까 고향에 가면 지금도

밤 늦도록 아이들이 나무칼을 들고 전쟁을 하지요

저는 이렇게 칠일 낮밤을 누워 있습니다 죽은 듯이

자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육체의 쇼는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의 숲과 야만이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대가리와 팜femme 파탄破綻

 

 

대가리를 사랑했어요 대가리밖에 없는 남자

대가리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남자

대가리 속엔 뭐가 들었을까 도무지 대가리 속이 궁금해서

잠시도 대가리를 떠나지 못한 채 대가리 곁에서 밤잠을 설쳤죠

대가리뿐인 남자 대가리만으로는 한발짝도 다가올 수 없는 남자

대가리에 달린 귀를 후벼주고 눈곱을 떼주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었지만

예쁘게 웃지는 못했어요 대가리뿐이어서 하루종일 대가리 속에서 놀다가

후줄근한 얼굴로 그저 물고 빨기를 좋아했어요

열 손가락이 전부인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뭐겠어요

열 손가락이 물러 터지도록 물고 빨고 물고 빨아라

가진 거라고는 대가리와 열 손가락이 전부인 우리들

사는 게 시시하고 빤하고 단순할 거 같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밀고 당겼어요

대가리뿐이어서 굴릴 거라고는 대가리밖에 없어서

물고 빠는 일이 지겨워질 때마다 거짓말을 했어요 따귀가 맞고 싶은지

혓바닥을 싹싹 소금물로 헹궈주고 싶었지만

대가리로만 노는 남자 대가리뿐이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남자 열 손가락이 전부인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뭐겠어요 대가리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주고

가려우면 긁어주고 대가리가 침울해할 때마다 삼삼칠 박수나 쳐줄 뿐…… 이 나라에선 아무도 몰라요

가진 거라고는 대가리와 열 손가락뿐인 우리들, 딴 나라의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