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생태 담론과 사회변혁
기후변화와 녹색정치
하승수 河昇秀
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저서로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한국 직접・참여민주주의의 현재』 등이 있음. haha9601@naver.com
1. 글을 시작하며
2009년 11월 영국의 유명한 기후변화 연구자인 필 존스(Phil Jones) 교수의 이메일과 컴퓨터 서버에 있던 문서들이 해킹 당했다. 해킹 당한 이메일과 문서파일은 1천건이 넘었다. 이것은 이른바 ‘기후게이트’(Climategate)라고 이름 붙여진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 해킹사건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코펜하겐 총회)를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좀더 실효있는 대책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권위있는 연구자의 이메일이 해킹된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역시나 해킹된 이메일의 내용은 곧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폭로의 핵심은 존스 교수의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조작되었다는 데 있었다. 존스 교수는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대학의 기후연구소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의 대표 연구성과로는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지구의 평균온도가 0.166도 상승함을 밝혀낸 연구를 들 수 있다. 존스 교수의 연구결과 조작의혹이 제기되자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후변화에 관한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신뢰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코펜하겐 총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존스 교수는 기후연구소장직을 사임했고, 영국 의회와 대학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사건의 조사를 위해 구성된 독립적 조사기구의 책임자인 뮤어 러쓸(Muir Russel) 박사는 ‘필 존스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열정적이고 정직한 과학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국 의회도 그가 복직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존스 교수는 2010년 7월에 복직했다. 그러나 누가 그의 이메일을 해킹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메일 해킹을 통해 유출된 자료가 이 같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정도로 기후변화는 민감한 문제다. 동시에 정치적 이슈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최소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지연시킴으로써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게이트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2. 차원이 다른 환경문제, 기후변화
그동안 여러 환경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기존의 환경문제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기후변화는 그 영향 범위가 전지구적이다. 그리고 단기간의 노력으로 해결을 모색할 수 없는 문제다. 한 국가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여러 국가들이 꾸준히 체계적으로 협업하지 않는다면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생존의 문제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이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무관심하다. 언론은 2100년이 되면 지구의 온도가 몇도쯤 오르고 2050년이 되면 해수면이 얼마쯤 상승한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빠듯한 사람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말도 너무 온건하다. 단어만 보면, ‘날씨가 변화하는 것이겠지’라는 정도의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실 ‘기후위기’(climate crisis) 또는 ‘기후재난’(climate catastrophe)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기후변화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원인은 온실가스다.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를 비롯해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등이 있다. 이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보면, 400ppm을 넘어섰다. 중요한 사실은 지구 역사상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300ppm을 넘어선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다. 수십만년 동안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300ppm을 넘어선 적이 없었는데, 산업혁명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서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임계점’에 해당하는 450ppm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늘어나는 온실가스는 지구를 뜨겁게 하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최대 6.4도의 온도상승이 예상된다. 물론 지구의 역사에서 기온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빙하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구의 기온이 지금처럼 급속한 변화를 보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자연적인 변화가 아니라 온실가스로 인한 변화다. 그리고 그 결과 도래할 파국이 어떤 것인지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잦은 홍수와 가뭄, 해수면 상승, 사막화 등을 가져온다. 이는 물부족, 식량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지표와 해수의 온도가 올라가면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종 중에 상당수는 멸종을 피할 수 없다. 지구의 온도가 3.5~4.5도가 오르면 생물종의 40~70%가 멸종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는 농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잦은 홍수와 가뭄, 사막화로 인해 식량생산이 타격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그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후게이트 같은 시도도 실패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IPCC보고서 등 각종 자료들은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배출의 상관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제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하기보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중요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2년에도 약 2.6% 늘어났다. 1990년 배출량에 비하면 50%나 증가한 상태다. 이것을 어떻게 잡느냐에 많은 것이 달렸다.
프랑스 녹색당 소속으로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인 이브 꼬셰(Yves Cochet)는 『불온한 생태학』(사계절 2012)에서 2022년이 되면 “온실가스의 대기 중 축적은 태풍, 홍수, 가뭄 등 엄청난 위험을 수반한 기후변화를 야기하여 그에 따른 비용이 연간 1조 유로 이상”이 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너무 우울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는 지금처럼 우리가 손 놓고 있을 경우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3. 기후변화와 ‘무능한 정치’
기후변화의 속도를 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분명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로는 기후변화 같은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는 기존의 정치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임기가 4년, 5년으로 정해진 국회의원, 대통령이 기후변화처럼 중・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문제에 매달릴 유인이 약하다. 정치인 개인에게도 기후변화는 수십년간의 노력이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으니 매력적인 이슈가 아니다. 또한 유권자는 대개 경제, 복지, 교육처럼 당장 자신에게 피부로 와닿는 이익을 줄 수 있는 이슈에 관심이 많다. 기후변화 같은 환경문제는 인기 없는 이슈로 취급된다. 물론 기후변화가 줄 영향에 대해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예를 들어,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한 원인이 되는 석탄화력발전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유권자에게 인기가 있을까?
더 민감한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에 최소한 18% 이상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장식 축산업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어떨까? 이런 주장은 수많은 축산농민과 고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이런 의문은 그나마 기후변화에 관심있는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망설이게 한다. 진보적 정치인이라고 해서 이런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재의 경제, 산업,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는 유럽을 제외하고는 주요 정치이슈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나중에 기후변화의 피해를 심각하게 받을 수 있는 어린이, 청소년이나 미래세대라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그러니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는 막혀 있는 셈이다.
국가를 넘어 지구정치의 차원에서는 어떨까? 기후변화는 지구정치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떠올랐지만, 현재 시스템에서는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유엔 기후변화협약(FCCC,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 있지만,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체결돼 1994년부터 발효된 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라 1년에 한번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라는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 3차 당사국 총회가 열린 일본 쿄오또(京都)에서 쿄오또의정서가 채택됐다. 쿄오또의정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1차 공약기간)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줄이도록 돼 있었다. 한국은 당시에 감축의무가 있는 국가 명단에서 빠졌다. 그러나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2009년 기준 24%), 인도(2009년 기준 5%) 같은 신흥국가는 의무감축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2009년 기준 18%)은 쿄오또의정서 비준을 거부해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국가간의 이해관계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열린 당사국 총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졌지만, 2012년 12월에 끝난 카타르 도하에서의 총회 결과는 초라했다. 쿄오또의정서를 2020년까지 연장한다는 것에만 합의가 되었다. 결국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이 극심하게 대립해 제대로 된 대책을 도출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연장된 쿄오또의정서에는 일본・러시아・캐나다・뉴질랜드조차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기후변화협약은 유럽연합(EU)과 오스트레일리아・스위스・우끄라이나 정도가 감축 의무를 지는 협약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을 합쳐봐야 전세계 배출량의 15%에 불과하다. 쿄오또의정서는 유명무실해졌다.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을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핵심 임무라고 말한다. 현재까지 논의된 일정은 2015년까지 협상해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후변화협약을 타결하고, 2020년부터 협약을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정은 ‘모든 일을 2020년 이후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상호 협력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이 불성실하게 협상에 임한다면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이 언제쯤 타결될지도 불투명하다. 결국 기후변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의 국가정치와 지구정치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가능성은 녹색정치에 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자신의 핵심과제로 삼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장기간에 걸쳐서 이 문제를 정치이슈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유권자와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기후변화가 국가정치의 핵심 이슈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90개국에 존재하는 녹색당 내지 녹색정치조직은 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유럽에서 녹색당이 등장한 시기는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이다. 그래서 유럽 녹색당은 반핵, 평화, 인권, 여성 등 다양한 풀뿌리운동에 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제 기후변화는 반핵과 함께 녹색정치세력의 핵심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도 기후변화를 중요한 정치의제로 만드는 녹색정치세력이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80년 반핵을 기치로 창당한 스웨덴 녹색당의 최근 핵심이슈는 기후변화다. 4~5%의 지지율에 머무르던 스웨덴 녹색당은 200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11.02%를 득표했고, 2010년 국회의원선거에서는 7.3%를 득표함으로써 지지율 3위의 정당이 되었다. 이런 달라진 위상에는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녹색당의 핵심 지지층이 학생과 청년층인 것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스웨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다른 국가의 녹색당에서도 기후변화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캐나다 녹색당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30% 감축하는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2040년까지는 85% 감축할 것을 주장한다. 이처럼 과감한 감축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수준으로 다시 낮출 수 있고, 그래야 지구의 기온상승을 1.5도 수준에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구적 차원의 녹색정치 세력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단지 한 국가 내에서의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간에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하고, 책임회피와 책임전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동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온 이른바 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 간의 갈등을 풀려면, 정의와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방향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제기구의 신설도 필요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세계무역기구(WTO)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계환경기구(WEO, World Environment Organization)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것을 지구정치 차원에서 풀어갈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현재 각국 녹색당들 간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글로벌 그린즈(Global Greens)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맹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정당정치가 국가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면, 기후변화 문제는 국가의 틀을 넘어선 녹색정치세력을 요구한다.
4. 문제의 결정판,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지금의 정치시스템이 가진 여러 문제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 7위 국가다. 경제규모에 비해 배출량이 많다. 199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빨리 증가한 국가에 속한다. 다음의 그림에서 보듯이, 경제위기가 닥친 1998년을 제외하고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해왔다. 특히 2010년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 6880만톤으로 2009년 6억 900만톤보다 9.8%나 늘어난 기록적인 수치를 보였다. 201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의 2억 9613만톤에 비해 129%나 폭증한 수치이기도 하다. 2010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원인을 살펴보면, 냉난방을 위한 전기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화력발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이 증가한 탓이 크다. 이 부분이 전체 증가량에 42% 이상 기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2013년 2월에 발표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를 12기 추가 건설하려 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추가 건설은 온실가스 배출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 뻔하다. 이에 환경부가 반발하나,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계획을 밀어붙일 태세이다.
발전소 건설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매년 5조원 이상의 국가예산을 도로를 닦는 데 사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도로건설 예산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이렇게 막대한 공공재원을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에 쏟아부으니 자동차 생산과 교통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참석해서 대한민국이 쿄오또의정서상 의무감축국가가 아니지만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예상치(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0%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정책방향은 정반대로 흘러왔다. 전력, 산업, 교통은 모두 온실가스 증가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그렇다고 야당이 이에 제동을 걸거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한국의 유력 정당과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아왔다. 한국의 정치에서 기후변화는 정치쟁점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복지 같은 이슈는 그나마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기후변화는 아예 관심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는 0.7도 오른 데 비해 한반도는 1.5도 상승했다. 한반도는 지구 평균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기온 상승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의 30년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2도 상승했다. 10년에 0.41도씩 상승한 셈이다. 해수면 상승속도도 빠르다. 전세계 해수면 상승률은 연평균 1.8밀리미터라고 하는데, 한반도의 남해는 매년 3.4밀리미터가 상승하고 있다. 제주도의 해수면 상승은 해마다 5.1밀리미터에 달한다. 바닷물의 온도도 빨리 오르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동해의 수온상승은 세계 평균 수온상승의 1.5배였다. 그 결과 동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 등 바다 생태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나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업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들쭉날쭉하는 기후 때문에 이미 피해가 크지만 앞으로 기온이 더 상승하고 가뭄과 홍수가 잦아지면 22.6%에 불과한 곡물자급률을 보이는 대한민국의 농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은커녕 오히려 기후변화를 원전 확대 정책을 펴는 빌미로 이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원전 찬성론자들은 흔히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원전을 추가 건설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원전과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뿌리가 같은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을 급속히 늘린 탓에 기후변화가 온 것처럼, 인류가 원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막대한 인공방사능 물질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체르노빌, 후꾸시마와 같은 대재앙을 낳았다. 원전은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원전 자체가 너무 위험한 시설이고, 최소 2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을 양산한다. 또한 원전이 온실가스 배출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원전을 가동하려면 핵연료가 필요한데, 그것을 만들기 위해 우라늄을 채굴하고, 연료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원전이 사용하는 막대한 양의 냉각수는 뜨거워진 상태로 바다로 배출되는데, 이로 인해 데워진 바다는 온실가스 배출증가에 기여한다. 지구상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데, 바닷물이 데워지면 이산화탄소가 대기중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주장은 허위다.
5. 녹색정치가 절실한 대한민국
이런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쪽은 누구이고 피해를 보는 쪽은 누구일까?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전기생산시스템, 그리고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로 이익을 얻는 것은 재벌 대기업이다. 우선 대형발전소 건설공사는 대형건설사가 수주한다. 최근에는 발전소 운영에도 대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 비싼 값으로 팔고, 그것을 ‘전력산업 경쟁구조 도입’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가 보장해주고 있다.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는 다시 대기업에 원가 이하로 공급된다. 지구상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데, 바닷물이 데워지면 이산화탄소가 대기중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 전기 소비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가 이런 식으로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분별한 전기소비 증가로 이어져 더 많은 원전, 더 많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게 한다.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는 자동차생산-도로건설-유류판매 사업 관련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준다. 이들 대기업이 대한민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이들은 언론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관료집단도 대기업과 각종 이권으로 유착되어 있다. 이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전문가도 없다. 현재로서는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반면 현재의 시스템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피해를 보는 쪽이 훨씬 다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역간, 세대간의 차이는 있다. 지역으로 보면, 농어촌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기후변화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면 농민이 피해를 본다. 그 외에도 현재의 전력시스템은 바닷가나 시골마을 주민에게 여러 피해를 입히고 있다.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는 곳은 주로 바닷가다. 발전소 부근의 바닷가는 이들 발전소의 건설과정에서, 그리고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바닷가의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시골마을을 지나가는 초고압송전선을 세우고 있다. 8년 동안 76만 5천볼트 초고압송전선을 반대해온 경남 밀양의 사례가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이것은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 거미줄처럼 건설된 고압송전선로 탓에 그동안 수많은 시골주민이 피해를 봐왔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송전선의 노선을 정해 통보했고, 주민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고압송전선이 지나가면 전자파와 소음 등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 송전선 인근 토지의 지가하락으로 인한 재산적 피해를 보게 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실태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정당한 보상도 없었다. 대공장과 대도시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해왔다.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하지 않고, 재생가능 에너지나 가스발전 같은 지역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하면 지역주민의 희생이 줄어들 수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세대간의 문제도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현세대도 받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세대가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지금 갓 태어난 아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태어날 후손이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2년 12월에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근거할 때라도 2100년에 기온이 3도 상승하고,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른다면 2100년까지 6도 가까이 상승할 것이다. 해수면 상승도 엄청나다.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보더라도 한반도 주변 해수면 상승은 2100년에 남해안과 서해안이 65센티미터 상승, 동해안이 90센티미터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남해안과 서해안은 85센티미터 상승, 동해안은 130센티미터 상승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기상청보다 더 암울한 전망치들을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들은 기온 상승폭이나 해수면 상승폭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전망한다.
2100년은 너무 머니, 2040년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의하더라도 2011년부터 2040년 사이에 1.4도가 더 오를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아마도 2040년에 생존해 있을 세대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격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후변화는 세대간의 정의 문제를 가져온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은 과거 세대나 현세대에 있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미래로 갈수록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대도시를 위해 왜 시골사람들이 희생당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는 쉽사리 묵살된다. 인구가 많아서 표도 많은 대도시가 정치의 주된 고려대상이다. 세대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이나 미래세대가 받을 피해가 크더라도, 그것은 현실정치에서 큰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표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한 희망은 기후변화를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들일 녹색정치세력의 탄생이다. 2012년 3월 창당했다가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등록취소가 되었고 10월에 재창당한 녹색당은 기후변화 문제를 핵심의제로 삼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6. 녹색정치의 전망
기존의 정치로는 기후변화 문제를 풀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다른 민주주의,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다른 민주주의는 청소년이나 미래 세대처럼 기존의 정치에서 소외된 주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이 아닌 생명체들도 경시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또한 정치인, 관료,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도 에너지 등의 정책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것은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기존의 정당체제로 담아낼 수 없는 ‘상상력의 확장’을 필요로 한다.
선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권자가 기후변화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선거를 통해 어느정도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투표일 뿐이다. 선거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생산은 어떻게 하고, 교통은 어떻게 하고, 산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유권자에게 묻지는 못한다.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같은 시도가 대의정치와 결합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 확대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역분산형 전원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 스스로 토론하는 시민회의(citizens’ assembly)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 이런 형태로 시민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관료-정치인-대기업-언론-전문가가 형성한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녹색정치세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리고 녹색정치의 실천은 지구-국가-지역의 3차원에서 각각 이루어지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정도에서 원내 정치세력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는 녹색정치가 더욱 확산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미국, 일본, 대한민국처럼 성장주의와 물질주의, 경쟁만능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녹색정치세력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인도 같은 신흥국가도 녹색정치의 불모지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변해야 기후변화 같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녹색정치세력의 성장은 매우 절실하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녹색정치가 자리 잡는다면 아시아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는 글로벌 그린즈(Global Greens)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5년 내지 7년마다 개최되는 글로벌 그린즈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해 국경을 넘어선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개최된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결의문에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추세로 전환시키기 위해 석탄 생산 및 소비 감축,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 산림보호 등을 위해 전세계 녹색당들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구와 국가 차원의 정치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대안이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지역은 녹색의 대안을 실험하고 현실로 만드는 공간이다. 영국 녹색당은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의 선거제도 때문에 고전을 거듭하다가 2010년에 1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브라이턴 앤드 호브(Brighton & Hove) 같은 도시에서는 녹색당이 시의회에서 제1당의 지위를 점하면서 지역정책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브라이턴 앤드 호브시는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전략’(Sustainable Community Strategy)을 수립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42% 감소시킨다는 담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2050년까지는 80%를 감축한다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브라이턴 앤드 호브시는 먹거리, 교통, 에너지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을 펴고 있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그리고 정치는 참여하지 않고서는 바뀌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을 청소년,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진 양심적인 시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