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김종대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메디치미디어 2013

합리성의 합은 비합리성이다

 

 

구갑우 具甲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kwkoo@kyungnam.ac.kr

 

 

162-촌평-구갑우_fmt‘시크릿 파일’과 ‘장성 35명의 증언으로 재구성하다’라는 선정적인 문구가 제목 앞뒤로 붙어 있지만,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이하 『서해전쟁』)은 두가지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사회과학적 산문이다. 하나는 한반도 서해의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이 국경인가라는 국제정치적 물음이다. 다른 하나는, 심지어 한국전쟁 기간에도 안전했던 서해5도 해역이 왜 1990년대 후반에 들어 전장(戰場)이 되었는가라는 사회과학적으로 의미있는 역사특수적 질문이다. 이 물음과 답은, 196210월 꾸바 핵미사일위기 당시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분석한 『결정의 엣센스』(Graham Allison, Essence of Decision, 한국어판 모음북스 2005)에서 제시된 세가지 ‘개념의 안경들’이 매개하고 있다. 『서해전쟁』은 서해에서 다섯번의 전투가 벌어진 과정을 재구성하면서, 첫째로 국가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행위자’로 행동한다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둘째로 ‘조직행태적 관점’을 통해 “마치 자율신경처럼 자체적으로 움직이려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이 작동”함으로써 “자기파괴적인 양상”, 즉 전쟁이 출현함을 본다. 셋째는 “여론에 편승하여 정부 내에서 명성과 권력이라는 이익을 추구하는 관료집단이 정치적 목적으로 서해 문제를 접근하는” 과정을 살피는 ‘정부정치적 관점’이다(12면). 이러한 세가지 측면은 요컨대 개인적, 조직적 수준의 합리성의 합()이 국가적 수준에서는 비합리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 충돌은 비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만날 때 발생한다.

이 책은 NLL 논란의 역사적 기원을 찾는다. 냉전의 비대칭적 종언은 역설적으로 전선(戰線)으로서 역사적 운동을 정지한 NLL의 재발화(再發火)를 야기한 국제적 요인이 되었다. 1991년 남북한은 유엔 동시가입으로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통해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 기본합의서에서 남북한은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하고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책의 지적처럼, 냉전시대 박정희정부는 “서북 해역의 경계선 문제는 ‘헌법 3조에 준하여 처리하기로 했다’”(37면)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피와 죽음으로써 지킨다고 생각하지 않고 방치했던 그 무관심이 바로 서해에서 장기간 평화가 유지되어온 비결이”(45면)라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비대칭적 종언으로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이 붕괴되었고, NLL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NLL이 ‘임계량’(critical mass)을 넘어 분쟁선이 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이 책의 백미다. 역사적 조건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행위자와 제도 어느 한편으로 환원할 수 없는 우연의 복합적 접합으로 분쟁의 ‘떠오름’(emergence)이 발생한다. 김영삼정부하에서 실시된 1996411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냉전 해체 이후 최초의 대선이었던 199212월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위협, 즉 ‘북풍(北風)’이 변수로 기능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을 요구했던 북한은 19964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를 통해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의 관리업무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하고 무장군인을 판문점지역에 투입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김영삼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위협을 활용하여 총선에서 대승할 수 있었다.

19967월 국회에서는 야당이 총선패배라는 국내정치 상황의 돌파를 위한 매개로 NLL을 의제화한다. 야당이 북한선박의 NLL 월선에 대한 대책을 묻고, 정부가 이것이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답변하는, 오늘날과는 전도된 형국이었다. 결국 청와대와 국방부가 NLL 고수라는 새로운 안보개념을 발명하고, 이어서 합동참모본부가 전선을 지킨다는 지상군식 사고로 이를 군사작전화한다. 그리고 서해상 NLL에서의 충돌에 대비한 표준행동절차가 만들어지면서 결국 서해는 전쟁의 길로 가게 된다. 각각의 조직은 나름의 합리성에 따라 움직였지만, 이 합리성들의 합은 다섯번의 전쟁1연평해전(19996월), 제2연평해전(20026월), 대청해전(200911월), 천안함사건(20103월), 연평도 포격사건(201011월)으로 나타났다. 앞의 두 전투는 김대중정부에서, 뒤의 세 전투는 이명박정부에서 발생했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이 전투들은 남북한의 장군멍군식 응징과 보복이었다.

『서해전쟁』은 이 전쟁을 관통하는 변수들을 찾아낸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위기관리능력 부재, 합동참모본부의 합동성 결여, 군의 조직행태가 결합하여 전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해전쟁이라는 악순환의 시작인 제1연평해전에서, 합참이 “육군 일색으로 편성돼 있어 바다 전투를 모”르기 때문에(85면), “북한 함정과 거리를 두려는 현장 지휘관의 결정을 상급 부대가 방해한 것이” “가장 잘못된 명령”(102면)이었으며, 북한의 보복이었던 제2연평해전은 “월드컵 기간 중에 남측이 과감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걸 계산하고 한 도발이었다”(135면)고 본다. 반면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복수의 정서가 조직의 문화가 된 해군”(161면)을 청와대가 통제해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고 자평한다. 저자는 또한 막아왔던 군의 보복의지가 실현된 사건이 대청해전인바, 강압적 대북정책을 펼친 이명박정부하에서 남북군사협력이 사라지고 국방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느슨해지면서 나타난 사건으로 해석한다. 대청해전은 앞서의 두 해전과 달리 “사전 징후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남북한 군대 간에 누가 더 빠르게 대응하느냐”(171면)가 해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사태가 전개되면서 발생한 전투로, 서해에서 “남북한의 고강도 군비경쟁이 개막”(173면)되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그다음이 천안함사건이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이번엔 북한이 보복할 차례였다. 『서해전쟁』은 이 사건의 근원으로, 북한의 잠수정에 의한 공격이 예상되었지만 합동작전본부가 아니라 “제2의 육군본부”(199면)를 만들어버림으로써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이명박정부의 인사정책을 지적한다. 천안함사건 이후 이명박정부는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부르고자 했다. 이 ‘국내정치적 선택’으로 동북아 국제정치가 요동을 치면서, 서해는 남북한이 조연이고 미국과 중국이 주연인 강대국정치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이어 201011G20회의 유치라는 국내정치적 사안이 종료되자 남한은 해상사격훈련을 재개했고 이에 대한 북한의 ‘준비된’ 대응이 연평도 포격이었다. 이 책은 사건 당시 한국이 자위권을 행사하지 못한 이유로, 전투기에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합참의 문제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자위권 행사 가능여부를 물어야 했던 한국 정부와 군의 한계를 지적한다.

“남과 북이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 때문에 서해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국가주의적 관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가 있었다”(9면)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서해전쟁의 한 원인으로 한국의 국내 정치지형과 정부 및 군의 조직행태를 제시한다. 안보를 강조하는 정치권력일수록 안보를 훼손한다는 역설은, ‘정치적 중력’을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는 안보의 국내정치화라는 현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서해전쟁』을 읽고 나서의 발견이다. 안보와 같은 국가이익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를 통해 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도 이 책의 성과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은 ‘장성의 증언’에 의존하는 ‘기억의 정치’를 교차점검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고, 그 기억이 편재적으로 인용되는 한계를 지닌다. 전쟁의 상대방인 북한의 정책결정과정 블랙박스가 상대적으로 봉인된 상태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어느 한편이 겁쟁이가 되어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반복되는 서해를 보며, 냉전시대의 안정을 그리워하기보다 한반도 평화의 국내적 토대를 탐색하고자 한다면 사회과학적 산문의 한 갈래를 개척한 이 책을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