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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시대교체’와 군사주의의 덫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주요 저서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공저) 이 있음. gaemy@pspd.org

 

 

1. 안보논리에 포획된 ‘시대교체’

 

지난 2012년에 치러진 대선을 되돌아보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고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아직 그 진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국정원 및 여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까지 고려하면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리를 감수하고 지난 대선의 의미 혹은 주된 의제에 대해 요약하면,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위한 대안, 그리고 한층 불안정해진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정치세력 간의 비전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가 보수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군부독재 시절 형성된 특권적 재벌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결합하여 초래한 극단적인 사회양극화를 더이상 방치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인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는 이명박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부터 꾸준히 심화되어온 것이다. 한편, 한반도 상황 역시 길게는 정전 이후 60여년간, 짧게 보더라도 탈냉전 이후 20여년간 해결되지 않았으며 최근 수년간 급격히 악화되어 남북 간의 국지적 무장갈등까지 불러온 해묵은 숙제다.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민주정부가 표방했던 포용정책도, 보수정부가 내세웠던 봉쇄정책도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당시 주어진 이같은 큰 숙제에 대해 백낙청(白樂晴)은, 여야 혹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87년체제가 교착상태 내지 말기적 혼란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청산”할 “새로운 체제”1)를 기대하는 시대의 갈증에 답하는 것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선거운동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정권교체 수준을 넘는 정치교체와 시대교체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주장한 것도 기실 대선에 주어진 시대의 화두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라고 해석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보수혁신을 시도했던 이상돈(李相敦)은 박근혜 대통령이 “(35퍼센트의) 기존 보수는 가져가고 거기다가 15퍼센트를 얹기 위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제언하면서, 그럴 경우 “박근혜판 제3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피력하기도 했다.2)

사실 우리가 ‘87년체제’라 부르는 시기도 야권의 집권으로 열린 것이 아니라 군부출신인 노태우(盧泰愚)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되었으므로,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이 부족하나마 새로운 시대교체의 출발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그 시작부터 자신이 교체하겠다고 공언한 낡은 정치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보수정권의 재창출을 위한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이 드러난 이후 박근혜정부는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다시 낡은 안보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선‘공작’에도 사용했던 남북정상회담 비밀회의록을 무단으로 공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정원을 동원해 공안사건을 기획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종북몰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이같은 임기응변책은 진보개혁적 목소리를 안보 프레임에 가두고 수구적인 ‘집토끼’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데는 제법 쓸모있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민주복지평화를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동원된 군사주의와 안보담론은 사회 전체를 소모적 이념대결과 적개심, 탐욕과 폭력으로 몰아감으로써 보수의 쇄신을 통한 시대교체라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점점 소멸시키고 있다.3)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화의 정상화’에서 법과 원칙이란 국정원과 군의 헌정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정치적 반대파와 서민의 눈과 입을 막는 데만 편파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박근혜정부가 내세웠던 ‘신뢰’의 이미지는 물론 공권력의 공정성과 공공성에 대한 신뢰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와 민생복지는 어느새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 같은 익숙한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른바 ‘87년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교착되어왔는지, 그리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우리 안의 수구적 안보 프레임과 군사주의에 어떻게 가로막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떻게 시대역행의 장애물을 뚫고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길 대담한 민주복지평화의 실천을 위해 몇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2. 87년체제의 교착과 행동하는 우익의 등장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부족하나마, 이념적으로 편향된 특권적 분단체제 내에서 제약되어왔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를 향한 요구가 분출하고 일부 제도화되는 결실을 얻었다. 또한 해묵은 남북 간 대결구도 및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을 얼마간 구체화할 기회,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왜곡됐던 역사인식과 묻혀 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시도할 기회도 확보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의 민주개혁이 시민의 입장에서 만족스러웠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시기는 부분적인 복지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특권적 재벌경제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경제의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극적으로 심화된 때였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금융시장의 개방화 및 외국과의 FTA 체결이 글로벌 스탠드라는 이름으로 위로부터 강요되고, 서민에게는 실업과 비정규직 증가, 치솟는 교육비와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와 파산의 위협이 일상화된 것이다. 한편, 김대중정부 이래 시도된 대북포용정책의 성과로 615남북공동선언(2000)을 거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가동되고 북미관계 개선 논의도 시작되었지만, 미국의 부시(G. Bush) 행정부 등장과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 속에서 제동이 걸린데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 카드를 이용한 벼랑끝 외교로 맞서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 문제는 이후 오랜 남남(南南)갈등의 소재가 되어왔는데, 615선언으로 형성된 남북협력구조가 북한의 변화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측과 더 강한 압박만이 북한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측 간의 논쟁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정부의 내정과 대외관계는 80년대 이래 한세대를 풍미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지구적 차원에서 군사주의를 강화한 미국과의 동맹관계, 그리고 분단체제의 상대편인 북한체제의 구조적 문제 등에 의해 제약된 면이 적지 않았다.4)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비판하면서 이명박정부가 집권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강국) 공약, 재개발 뉴타운 공약, 4대강 공약 같은 경기부양과 개발의 약속이 쏟아져나왔다. 이들 정책공약은 날이 갈수록 양극화로 내몰리는 경제환경 속에서 부추겨진 물질적 욕망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었다. 녹색경제로 포장되기는 했지만 개발시대에 익숙하게 듣던 용어들이 다시 등장했고 ‘빅파이(big pie)론’ 혹은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심리가 정치적인 보수화와 함께 다수여론이 되었다. 더불어 보수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남북 간 합의를 무시하고 유사시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을 모색하는 등 힘의 논리에 호소하는 일방주의적 정책을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했다. 이명박정부의 이같은 정책기조는 2000년 등장한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을 연상시킬 만한 것이었다.5)

하지만 보수정부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의 신자유주의 퇴조와 이어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투기적 경기부양정책에 대한 지지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집회, 4대강사업 등 대형토목공사를 둘러싼 논란,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요구, 용산참사나 쌍용차 무더기 해고에 대한 저항, 한미FTA 비준 논란 같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북한봉쇄에 치중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과거 정권들이 추구해온 적극적인 조정역할에는 관심도 능력도 보이지 못했다. 그 결과 이명박정부 집권기간에 북한은 두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비현실적인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에 편중된 대외관계에 대해 안보무능, 위기관리 부재 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터져나왔다.

위기에 직면한 보수정부는 ‘핵을 개발한 북한’과 남한 내의 ‘종북세력’을 새로운 적으로 삼아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국가권력과 사회적 권력을 총동원하여 온오프라인에서 ‘행동하는 우익’을 조직하는 데 더욱 집착했다. 특히 천안함사건(2010.3)과 연평도사건(2010.11), 그리고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2011)은 ‘대한민국 부정세력’과 ‘종북세력’에 맞서 국가가 지원하는 극우안보 캠페인이 적극 펼쳐지는 계기가 되었다.

보수우익의 세력화는 2000년대 초반에 분출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일련의 사회적 연대행동에 대한 반동의 성격을 지니고 노무현정부 출범 전후부터 본격화했다. 특히 새로운 시민주체의 운동이 기존 매체가 아닌 인터넷 등 쌍방향 미디어를 활용한 자발적 대중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된 보수엘리트들은 보수시민단체에 대한 투자, 인터넷 보수언론 육성, 방송매체 장악 등에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2003년, ‘반핵반김국민운동본부’ 등 우익운동 연대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연이어 열렸고, 한나라당의 ‘싸이버 전사 1천명 양성론’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우익운동 조직화도 구체화되었다. 심지어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국가기관이 시민을 공격하거나 극우적 운동을 진두지휘하는 데 직접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6)

특히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촛불의 ‘배후’를 밝히고자 하는 정권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강화되었다. 이른바 촛불단체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지원사업 배제, 공권력의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과 정권에 비판적인 네티즌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을 부른 편파적인 정치자금 수사 등 공권력 남용이 이어졌다.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도 더욱 심해졌다. 노무현정권 당시 폐지되었던 국정원의 대통령 정례 정보보고 부활, ‘한반도대운하사업 반대 교수모임’에 대한 불법사찰, 대통령이 연루된 부패혐의(‘BBK 사건’) 관련 민사소송 개입, 국정원 고위인사의 언론계 및 종교계 대책회의 참여, 시민사회단체를 후원한 기업에 대한 후원내역자료 요구 등 법이 정한 직무범위에서 명백히 일탈한 정치적 개입사례가 빈번해졌다. 국무총리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이 집중된 시기도 바로 이때다. 6)

민주당 최재천(崔在天) 의원실이 2013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안보의식 고취, 종북좌파 척결’ 등을 내건 보수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이 매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안전행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보수단체 중 상당수가 사업실행계획서에 버젓이 ‘종북좌파 척결’ 등을 주요한 사업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7)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싸잡아 ‘종북세력’ ‘좌익세력’ 혹은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규정하여 비()국민 취급하는 것은 아무리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극우주의 혹은 군국주의적 경향이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익운동에서는 다른 나라 우익운동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국가정체성을 강조하고 배타적인 근본주의를 취하면서도 한미동맹을 신성시하거나 일본 식민지 시대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 보수권력 앞에서 대단히 순응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 등이다. 이런 특성은 분단 이후 남한사회 내에서 극우세력이 형성되어온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될 터인데, 이는 분단전쟁냉전이라는 집단적 경험에 기초한 우익적 인식공동체의 특징과 친미보수권력의 유지를 위해 관리부양되어온 관변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3. 천안함사건 이후의 안보교육과 군사주의

 

2010년 천안함사건과 이어 벌어진 연평도사건은 국가 주도의 군사주의적 안보 캠페인이 본격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3월말 천안함이 침몰한 직후 사고원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던 이명박정부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사건의 원인이 북한의 폭침에 있다는 조사결과와 함께 포괄적인 대북제재조치인 524조치까지 서둘러 발표했는데, 도리어 졸속발표에 대한 국민의 의문이 잇따랐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천안함사건이 여당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고, 무상급식과 4대강 공사 등의 현안도 부각되면서 여당은 선거에 대패하고 말았다. 정부는 한편, UN(국제연합) 안보리에 대북제재를 요청8)했지만 그 역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안보리 의장이 남한의 주장과 더불어 북한의 반론을 병기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2010년 하반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는 국민의 32.5%만이 천안함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천안함사건 직후 정부는 천안함의 희생장병을 전사자로 규정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고 대대적인 추모기념사업에 착수했다. 공무원, 교사, 학생을 동원한 천안함 견학이 줄을 잇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20101123일의 연평도사건은 천안함사건에 대응해 한미 당국이 NLL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한 이후 발생한 것으로, 국내에서 안보 캠페인이 한층 호소력을 가질 만한 환경을 제공했다.9)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천안함 침몰의 진상규명을 둘러싼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정부는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 모두 북한의 도발사태로 비난하면서 이를 북한의 ‘비대칭적 위협’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력한 억지력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동시에 “최상의 안보는 단합된 국민의 힘”이라고 강조했고 그후 천안함 폭침설에 의심을 품는 이들은 급기야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되어 공격받게 되었다.

201012월과 20114월, 두차례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은 ‘학교 안보교육 강화’ 및 ‘군의 학교 안보교육 참여’를 지시했다. 이대통령은 “가장 확실하게 젊은이들에게 국가관을 확립해주는 곳이 군대”라면서 “육공군을 막론하고 반복적인 교육으로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2011년 들어 국방홍보원은 군복무 중이던 배우 이준기씨를 출연시켜 ‘청소년용 정부표준 안보영상물’을 제작해 전국의 유치원과 초고등학교에 배포했다. 이 교재는 인기 연예인의 입을 빌어 ‘천안함사건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북측의 연평도 도발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천안함을 둘러싼 국가관 시비는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마저도 일종의 신앙검증의 장으로 만들었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신뢰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라고 밝힌 민주통합당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국가관이 분명한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여당에 의해 낙마한 것이다.10)

20113월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방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안보교육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양해각서는 학생들이 군부대를 방문하게 하여 안보교육을 시키고, 군인을 교내강사로 참여시키며 교사를 군부대체험에 참여케 한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각종 병영체험 안보교육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시기다. 육군에 따르면 2011년 한해에만 모두 74만명의 청소년이 이러한 안보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국방부는 20117월, 16세 이상 시민이 돈을 내고 실탄사격체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해 논란을 빚었다. 16~17세는 국제인권법인 ‘아동권리협약’에서 정의하는 아동에 해당한다.11)

이와 함께 군대 내의 사상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군은 ‘장병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책’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불온서적 목록을 작성하여 병영 내에서 이들 책의 독서를 금하였다. 이 현대판 금서목록에는 김진숙(金鎮淑)의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 장하준(張夏準)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 한홍구(韓洪九)의 『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 2003), 권정생(權正生)의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 개정증보판 2008) 등 널리 애독되는 양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천안함연평도사건 전후의 군사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군사-무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는 큰 인기를 누렸다. 이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방법을 포함하는 ‘강력한 억지력 형성’ 방안을 두고 청소년이 다수 포함된 군사 마니아들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대개의 군사 마니아 커뮤니티는 2000년대 초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자주국방네트워크’,12) ‘유용원의 군사세계’ 같은 곳은 천안함사건 당시에는 이미 군사 분야의 권위있는 싱크탱크로까지 대접받고 있었다. 이들 단체는 ‘안보네티즌’ 혹은 ‘국방네티즌’을 육성함으로써 국방정책이나 국방예산에 대해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군과 방위산업체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종합편성채널과 뉴미디어 등으로 확대된 보수언론 공간에서 한반도 및 주변 갈등에 대한 군사적 해법 위주의 자극적인 평론활동을 통해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4. 국가기관의 대국민 심리전

 

대선 전후 드러난 국정원 심리전단과 군 싸이버사령부가 ‘심리전’이라는 명목으로 수행한 대선개입공작은 국가가 주도한 안보 캠페인의 본질적 성격을 확연히 드러낸다. 국정원이 싸이버 심리전 활동을 적극 가동한 2011년말은 공교롭게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과거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朴元淳) 시장이 당선되고, 이명박정부의 체계적인 방송장악 시도에 따라 이미 친정부적 보도성향이 분명해진 MBC, KBS에서 노동조합이 방송 공정성 수호를 내걸고 장기파업에 돌입했으며, 보수언론사와 재벌이 지분을 가진 종편채널이 개국하여 극우적 종북몰이의 첨병으로 나서기 시작한 매우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남재준(南在俊)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댓글공작이 정상적인 대북심리전이자 국정원의 기본임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원세훈(元世勳) 전 국정원장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종명(李鍾明) 전 국정원 3차장은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은 오염을 막기 위한 예방활동”이고 “전쟁 전 민간인을 사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더라도, 실전에서 적군이 민간인을 방패 삼아 대항하다보면 민간인 피해도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국정원 댓글활동의 정치개입 시비가 대북군사작전 중에 발생하는 부수적인 피해인 것처럼 설명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관진(金寬鎭) 국방부 장관 역시 군 싸이버사령부의 활동에 “오염방지를 위한 대내 심리전도 포함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비판세력 일반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종북세력으로 묘사하는 ‘호국보훈교육’이라는 DVD 세트를 2012년초 전국 학교와 예비군부대 등에 배포한 박승춘(朴勝椿) 보훈처장은 스스로 “국방부는 군사대결 업무를 하고 국가보훈처는 이념대결 업무를 한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이념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제 보훈업무를 추진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본디 군사용어인 ‘심리전’의 사전적 의미는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인 자극과 압력을 주어 자기 나라의 정치외교군사 면에 유리하도록 이끄는 전쟁”이다. 결국 국정원과 군이 자기 나라 국민을 ‘전쟁 상대국 국민’으로 설정하고 군사작전을 수행한 셈이다.

정부여당과 국정원은 분단된 한반도의 가장 민감한 갈등사안인 NLL13) 문제마저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대선 전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鄭文憲) 의원이 ‘NLL 포기’설을 촉발하자,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는 “제가 서해 공동어로 문제에 대해 ‘북방한계선을 지킨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하니까 북한에서 ‘정상회담의 경위와 내용도 모른다’고 비판했는데 도대체 2007년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다는 건가”라며 NLL 논란에 뛰어들었고14) 이후 대선기간 내내 NLL 포기 논란을 이어가며 야당후보를 공격했다. 박근혜 후보 자신이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의 자의적 해석 한마디에 NLL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접고, 이전 정부를 NLL을 포기한 정부로 묘사하는 캠페인에 합류한 것이다.

NLL 대화록 문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6월에 다시 불거졌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호도하기 위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NLL과 관련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이 시도는 논란 초기에는 야당을 혼란15)에 빠뜨림으로써 효과를 거두는 듯 보였지만, 결국 대선개입 진상규명 요구를 덮지 못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의 내용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서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노무현정권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꼴이 되었다.

반면, 박근혜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비밀회의록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개함으로써 남북 간 신뢰관계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혔고, 자신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도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윤여준(尹汝雋) 전 환경부장관은 “나라의 위신에도 굉장히 큰 상처가 났고, 앞으로 남북관계나 기타 외교관계에서도 상당히 큰 부담이 올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가뜩이나 통합이 필요한 시점에 결과적으로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놨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이 책임져야 한다”16)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국정조사가 여당의 조직적인 비협조로 성과 없이 마무리된 20138월말, 이른바 ‘이석기(李石基) 내란음모사건’을 터뜨려 다시 한번 물타기를 시도한다. 이 사건은 일시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추문을 종북담론으로 회피하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8월말에서 9월초에 지지율이 60~67%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하지만 회피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9월 중순 추석을 계기로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이 추이가 계속되어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12월 셋째주에는 집권 이래 최초로 50% 이하(48%)로 떨어졌다.

 

 

5. 안보담론이 국내정치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17)

비록 등락은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연중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50% 이상의 높은 지지를 얻었는데, 한국갤럽을 비롯한 다수의 여론조사가 내치(內治)보다는 주로 외교나 대북관계가 지지율을 지탱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18) 집권초 인사난항으로 51%에서 42% 수준으로 곤두박질한 박근혜정부의 지지율은 20134월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이유로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고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하자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5월과 6월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잇따라 성사시키면서 50%선을 회복하고,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및 재가동이 이루어진 8월에서 9월초 사이에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정점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지지율이 최고를 기록한 것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개성공단 정상화 때문인지는 알기 힘들다. 다만 이석기사건 이전에도 지지율은 오르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921일에 예정되어 있던 이산가족 상봉이 돌연 연기되고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된 시기와 지지율 추락시점이 일치한 점으로 봐서 당시 지지율 오름세의 핵심요인 역시 남북관계였다고 추론해봄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통일의식조사’의 결과는 매우 시사적이다. 통일에 기여할 정책수단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응답자의 70.8%가 정기적 남북회담을, 61.8%가 경제협력을, 58.7%가 사회문화교류를, 46.3%가 인도적 지원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재개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재개 반대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한편, 2014년 신년특집으로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통일을 위해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1%가 “북한정권을 자극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들 여론조사는 횡행하는 종북몰이나 군사주의적 안보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과반이 북한과의 협력을 지지하고 있고, 3분의 2 이상은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이명박정부가 성사시키지 못한 정상회담 등 남북 당국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9)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지탱해온 이른바 ‘원칙적인 대북관계’에 대한 지지의 실제 내용이 군사적인 대북 강경책 혹은 봉쇄정책에 대한 찬성이 아니라, 대북관계 개선을 실질화할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에 대한 바람에 기반한 것임을 알려준다.

이런 분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핵심 메시지로 들고 나온 이유를 이해할 단초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정권보위를 위해 이명박정부 때부터 동원되어온 국가안보 담론과 종북척결 캠페인에 계속 의존할 경우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박근혜정부의 딜레마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분단체제라는 램프로부터 일단 불러낸 안보종북 담론이라는 이 괴물은 보수정권으로서도 쉽게 통제하기 힘든 속성을 지닌다. 이 괴물은 정권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외치면서도 정략적 목적에 따라 과거 정부의 남북정상회의록을 무단으로 공개하고 사실과 다른 주석을 달아 종북행위의 증거로 조작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괴물은 한편에서는 북한 및 종북세력의 정치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을 곧 붕괴할 한수 아래의 불량국가쯤으로 간주하고 유사시 북을 접수하여 대한민국식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는 위험천만하고도 비현실적인 흡수통일 구상을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수년간 악화되어온 남북관계와 핵 갈등을 해소할 현실적이고 유연한 방안이 제시될 수 있을지, 미중 갈등이 본격화할 새로운 동아시아시대에 지혜롭게 대처해 평화적인 분단극복과 번영의 길을 열어갈 창조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령 집권세력 일부에서 그러한 유연성과 창조성을 발휘하고자 하더라도 보수세력 내부에 만연한,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는 식의 주술에 갇히거나, 스스로 쳐놓은 ‘반미종북 척결’의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처한 난점이기도 하다.

다시 연초 조선일보의 여론조사로 되돌아가면, 미러 등 주변 4개국 중 통일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는 미국(29.4%)이 꼽혔고 이어 중국(7.6%), 러시아(5.3%), 일본(2.0%) 순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50.9%)은 ‘어느 나라도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해 1118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3년 통일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일을 가장 방해할 나라가 중국 45.2%(201267.6%), 일본 28.6%(201211.6%), 미국 19.2%(201216.4%) 순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주의깊게 보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2012년과 비교하여 급속히 줄어든 반면, 일본과 미국에 대한 경계심은 급속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2013년에 일본과 미국을 선택한 경우를 합하면 같은 해 중국을 선택한 비율보다 높다. 미일동맹에 편승하여 중국과 대치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대목이다.

올해 들어 일부 보수언론조차 한국외교가 중일 갈등 혹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간혹 싣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핵잠수함 혹은 일본 자위대의 이지스함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것을 우려하는 이들을 ‘비국민’ 혹은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미국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낡은 외교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지혜를 찾을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6. 안보에서 평화로

 

이래저래 박근혜 대통령식 정치교체시대교체 공언은 허구가 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특히 보수정권이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여 펼치는 안보담론과 종북몰이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 문제를 해결할 비전이라기보다는 결국 수구집단이 과거와 마찬가지의 특권적 기득권을 계속 원한다는 대서민 선전포고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민주개혁진영은 이에 대해 과연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민주정부 시절의 신자유주의 정책 탓에 아직까지 민생복지에 도움을 줄 신실한 세력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나 안보 프레임에 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민주개혁진영이 우리 사회에서 질식당하는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진전시킬 것으로 확신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민주개혁진영이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주체로 인정받으려면 이 두 분야의 정책 개발과 사회적 연대에 더욱 지속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박근혜정부식 시대교체가 퇴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전상태를 빌미로 공포와 위협을 과장하고 부추겨 특권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를 재생산하는, ‘적대하면서 상호의존하는’ 분단체제하의 안보 프레임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남한 내 민주주의나 복지의 성장도,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렵다는 것 역시 확인되는 바다.

이 점에서 민주당이나 안철수신당을 비롯한 야권이 자신의 이미지가 ‘안보무능’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안보 프레임과 군사주의 공세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평화와 협력을 국가전략으로 더욱 분명히 제시하고 이것이 비현실적인 군사주의에 대비되는 현실적인 미래지향임을 알려나갈 담대함이 아쉽다.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정부, 그리고 그후의 야당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개혁진영이 스스로 ‘포괄안보론’ ‘협력적 자주국방론’을 안보의 비전으로 내세우면서 안보 프레임과 군사주의 강화에 기여한 면도 없지 않다. 해외파병을 본격화하고 테러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기능과 권한을 확대한 일, 자주국방을 내세워 국방예산을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과 함께 북한에 대한 절대억지를 추구하는 압도적 군사력을 형성한 일, 자주국방 노선과는 어울리지 않게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한미동맹 전환 논의를 통해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 외에 지역적지구적 역할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일, 그리고 주변국, 특히 중국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미국의 제해권(制海權)에 편승하려는 해군전략을 ‘대양해군론’으로 포장하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착수한 일 등이 그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에 의해 FTA, 해군기지 문제 등이 ‘말 바꾸기’로 공격받은 것은 민주개혁진영도 과거에는 다분히 근시안적으로 힘의 논리와 동맹의 논리, 군사적 억제 우선의 논리에 의존했음을 아프게 확인시켜준다.

배제와 억제의 논리는 군비경쟁을 촉발해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주민의 안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민주적 수준에서 남북 간에 갈수록 확대되는 격차는 그 자체로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가중시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격차가 북한 통치자들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남한과 주변국의 정책입안자들이 북한에 대해 더 고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는 환경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우월감은 한반도 갈등이 모두 북한이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 양 원인을 전가하는 일방주의와 이중적 기준을 정당화하게 만든다.20)

최근 수년간 분단 한반도는 안보를 이유로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체제와, 한국판 네오콘으로 부를 만한 편향적이고 냉전적이며 군사적 우월주의에 경도된 권력이 지배해왔다. 힘의 우위를 앞세운 남한의 대북 압박봉쇄정책과 무력시위는 도리어 북한의 핵개발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변명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한반도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정전 61주년을 맞는 2014년, 분단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군사적 긴장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또한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더불어 한일 지역군사동맹을 가시화하는 구실로 작용함으로써 동아시아 전체의 군사화를 촉발하고 있다.

대결적 태도와 우월감을 가지고 북을 봉쇄압박해서 지난 6년간 이룬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군사주의는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어왔지만 문제해결에 실패했다. 이미 실패한 방식을 반복하기보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평화 만들기에 나설 때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군사적으로 우위에 선 남한이 먼저 한층 유연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때 포용은 과거처럼 경제적인 것부터 추구하고 군사적인 것은 나중에 검토하는 기능주의적인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선제적 신뢰구축조치, 선제적 군축조치 등 정치군사적인 포용을 먼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군사긴장의 원인이 되는 불안정한 휴전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취약한 북한으로 하여금 남과 북이 경계선과 체제의 고유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통합되어가리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만 앞세우거나 제도적 차원에서 국가연합 등을 논한다고 해서 북한이 갖는, 남한에 흡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될 것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군사적인 면에 있어서 압도적인 첨단무기로 상대를 자극하는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유사시 선제타격하는 공격적 군사계획을 방어적인 수준으로 수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북핵문제 또한 평화체제 문제와 더불어 논의해야 한다. 북한의 핵 억지력 추구는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동일한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한일의 핵우산에 대해서는 ‘자위수단’으로 간주하는 이중기준 역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각 나라의 방위에서 핵 억지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나아가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주변국과도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한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중국과 갈등관계로 나아가는 것은 동북아 군비경쟁에 휘말리는 일이다. 호혜적인 동아시아 공동안보협력체계를 추구하면서 군사동맹을 단계적으로 해소해가는 방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동북아의 협력을 촉진하는 평화국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민주화도 중요한 과제다. 추상적인 국가안보나 국가이익을 내세우기에 앞서 시민의 평화적 생존권 또는 평화권을 우선시하는 관행과 제도를 정착시켜야 하며, 각종 동맹이나 조약, 통상협정 체결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민주적으로 통제 가능하게 해야 한다. 상업적 혹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파병을 원천적으로 금지함은 물론 불가피한 유엔국제평화유지를 위한 파병의 경우에도 그 과정과 효과가 투명하고 책임있게 평가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살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되는 무기산업과 군사기술의 윤리적 타당성에 대한 민주적 검증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한국판 군산복합체의 출현을 경계하고 경제적으로도 군수산업의 비중을 축소해가야 한다. 국정원이나 군이 안보교육이나 심리전을 빙자해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제도와 관행을 철저히 개선하고, 군이나 안보기구 내에서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보장수단을 강화하며, 불가피한 비밀을 최소화하는 등 문민통제와 시민의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일도 긴요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 과연 외부로부터의 위협인지 아니면 사회적 정의의 실종과 각종 사회적 폭력의 구조인지, 그리고 만약 외부의 위협이 존재한다면 군비증강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아니면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단순히 평화를 기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평화와 정의를 만들어나가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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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용구백낙청이상돈이일영 대화 「2012년과 2013년」,『창작과비평』 2013년 봄호 44면.

2) 같은 글 34면.

3) 수구냉전적인 관성이 지닌 신속한 복원력이야말로 “분단체제의 자기재생산능력”(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21면)이 아닐 수 없다.

4) 졸고 「시민운동의 위기와 새로운 혁신의 과제」, 『시민과세계』 2008년 상반기호.

5) 김종대 「네오콘식 군사주의, 국방개혁 307계획에 부활」, 『광장』 2011년 봄호.

6) 「일본 재특회와 한국 일베, 그 같고도 다름에 대하여」, 오마이뉴스 2013.6.30.

7) 「정부, 보수단체 ‘대선 댓글 활동’에 돈 대줬다」, 한겨레 2013.11.7.

8) 당시 UN 안보리에 천안함사건에 관한 정부의 조사결과에 의문을 표시하는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에 대해 보수단체들은 항의시위와 위협을, 정부와 여당은 ‘비국민’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지만 오히려 참여연대 회원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9) 북한이 남한의 사격훈련에 대해 사전에 경고 전통문을 보냈다고는 하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그로 인한 군과 민간인 피해는 ‘비례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명백히 공격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행위가 상식과 논리에 비추어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관여했을 개연성을 높여주는 사건인지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백낙청 「2010년의 시련을 딛고 상식과 교양의 회복을」(창비주간논평 2010.12.30; 백낙청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 제6장) 참조.

10)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도 법정에서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청문회 당시 여당 의원들은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법률가에게 금기시되는 예단을 헌법재판관 후보자에게 강요한 셈이다.

11) 「아동군사훈련 실태 공개하고 살상무기 동원하는 아동교육 금지해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논평 2013.5.3.

12) 자주국방네트워크는 ‘주변국에 비해 열악한 국방력 강화’를 목표로 활동하며, ‘단독국방이 아니라 연합방위를 포함한 활용 가능한 수단과 방법에 있어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는 국방’으로서의 자주국방을 추구한다고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자주국방네트워크의 회원수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이 단체가 운영하는 웹싸이트의 하루 접속자는 5만~10만명에 이른다.

13) 1991년 체결되고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10조에서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즉 NLL은 정전협정이나 기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확정된 해상경계선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참여연대 대선정책 이슈리포트 「NLL(북방한계선) 쟁점과 대안」(수정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2012.10.17 참조.

14) 「‘꼿꼿장수’ 김장수, 왜 정문헌 주장에 동조했나」 오마이뉴스 2013.6.26.

15)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외에 원문이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따라 여야합의로 대화록과 관련한 자료제출요구서가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공방은 원문의 유무나 노무현정부의 자의적 폐기여부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로 옮아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위법적인 공개행위는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16) 윤여준박인규이철희 대화 「“NLL에서 터닝해 국정원 정치개입 집중할 때”」 프레시안 2013.7.8.

17) 이 장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필자의 글을 수정재구성한 것이다. 졸고 「종북몰이 속에 갈 길 잃은 한국외교」, 프레시안 2014.1.7 참조.

18) “외교(66%)와 대북정책(54%)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잘했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공직자 인사에 대해서는 55%가 잘못했다고 답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각각 36%로 평가가 엇갈렸으며, 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36%)보다 부정(45%)이 좀더 높았다.” 「데일리 오피니언 제96호(2013년 12월 2주): 대통령 당선 1년 분야별 평가」, 한국갤럽 2013.12.12.

19)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13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은 조사 대상의 52.3%로,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조사의 34.3%보다 눈에 띄게 높아졌다.

20) “북측 당국의 적대적호전적 발언과 때때로 이루어지는 도발적 행위는 남쪽 사회에서 증오심의 위세를 끊임없이 북돋는다. 심지어 이른바 도발행위의 증거가 박약한 경우에도 ‘북의 체제는 나쁘다, 따라서 모든 나쁜 행동은 북의 소행이다’라는 논리 아닌 논리의 도움으로 쉽게 넘어간다. 이것이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의 친미사대주의자들은 나쁘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불행은 그들 탓이다’라는 북녘 특유의 치심과 상보관계에 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