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대산_시_김응규_fmt

김응규 金應奎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3학년. 1992년생.

sao3107@naver.com

 

 

 

동물적인 죽음

Melting pot

 

 

물고기의 수명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를 빼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가미를 따라 턱 둘레에 칼집을 내주면 호흡 중에 자연스레 피가 빠집니다

큰 생선의 경우 꼬리에도 칼집을 내주는데 칼날이 척추에 절반 정도 들어가게 합니다

 

아가미가 중요합니다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피를 빼는 이유는 아가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내장을 제거할 때도 역시 아가미가 중요합니다

피가 다 빠져나왔다 싶으면 물고기의 항문에 칼날을 넣고 아가미가 있는 곳까지 배를 갈라줍니다

 

그러면 산소가 모자란 것을 알고 찰거머리처럼 아가미에 매달린 내장들이 보일 것입니다

아가미는 척추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척추와 아가미의 연결부위를 칼로 끊어줍니다

척추와 아가미는 아주 많은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칼로 끊어주어야 합니다

 

아가미뭉치를

잡아당겨줍니다

 

내장이 한꺼번에 딸려 나옵니다

창자는 질기므로 힘으로 뽑아내려 하지 말고 경건한 마음으로 잘라냅니다

물고기는 이제 냄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끝냈습니다

 

냄비 안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숨 쉬지 않아서 잘 섞입니다

 

 

 

가로등 밑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가 자랐다

날벌레들이 전등에 몸을 박고는 계속 쌓였다

그 아래에는 무단으로 투기된 쓰레기들

바나나껍질이 아스팔트 위에 검게 물러 있었다

비둘기 한마리가 차에 치였는데

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웠다

고양이 두마리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비닐봉지만 찢어놓고 사라졌다

그 옆으로 창문을 내놓고 있는

반지하방에 사는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와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밤이었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성이

애완견을 찾는 전단지를 붙였다

비틀거리며 길을 지나가던 남자가 토를 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새벽 쓰레기차가 왔는데

종량제 봉투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갔다

등교하던 고등학생은 가로등에 붙어 있는

양심을 비추는 거울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가버렸다

떠돌이 개 한마리가

비둘기를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물고는 사라졌다

다른 비둘기가 날아와 바닥만 콕콕 쪼더니

들어오는 차에 놀라서 달아났다

주차공간을 찾던 운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담배꽁초를 던지고 갔다

거기에 개미 몇마리가 타죽었다

반지하방의 남자가 옆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위로 긴 시간 동안 가로등은 묵념했고

어두워지자 힘겹게 빛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가 자꾸만 자랐다

 

 

 

다음날로 가는 새벽

 

 

모기향 위에 개미 한마리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잠을 이루지 못했고

천천히 타들어오는 불에

개미는 이따금 놀라했다

펜 끝으로 먹이를 나르는 새벽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활자들을 배열하는 일을 했다

혼자 불이 켜진 방에는

시간이 혼자서 앞서갔다

나는 가느다란 선을 따라서

개미굴을 구석구석 비집었고

혼자서 알을 낳고 있는 여왕에게

고통의 내용을 읊어주었다

깊고도 짧은 시간을 지나서

나는 먹이를 구하러 가는

일개미를 따라 굴 밖으로 나왔다

빛이 엷게 들어왔다

하얀 접시 위에는 모기향이

재가 되어 가지런히 가라앉아 있었고

개미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이대로 괜찮겠냐는

몽롱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종이에 적었다

 

 

 

시 | 심사평

 

심사진은 투고된 700여명의 작품을 나누어 각 3편씩을 뽑아 모두 9편을 가지고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투고자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이름과 주소, 학교명을 가린 채 진행한 이 첫번째 작업에서 우리는 우연히도 3편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줄 알았는데, 논의를 해갈수록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2명이 공동으로 뽑은 1편을 한분이 추천하여 모두 4편을 가지고 최종 심의를 하였다.

「우선 앵무새 혀 사용법」 외 4편을 응모한 분의 표제시는 앵무새의 혀를 펜으로 전환하는 비유적 기법이 매혹적이었다.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시의 기본기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다른 시 「말」에서도 “혀끝에 속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이라는 느닷없는, 그러면서도 상상이 가능한 낯선 진술이 마음에 들었다. 긴 호흡을 통한 긴장의 유지와 균일한 작품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인력」 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시는 행간이 좋았다. 짧은 호흡의 시지만 언어가 행간을 신선하게 뛰어다닌다. 수준 높은 인식이 존재한다. “한 바퀴를 다 회전하는 손잡이는 없다 딱 반 바퀴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되돌아 문이 열리면”이라는 식의 진술이 그렇다. 다른 시 「트랙」은 시간에 의해서 구축되는 인간의 운명을 비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던진 것과 놓친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간혹 건너뛴 행간을 되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로 가는 새벽」 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요리의 상상력으로 죽음을 응시한 「동물적인 죽음—Melting pot」과 「가로등 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우선 이분의 시는 잘 읽혔다. 시행을 따라가면서 심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깊었다. 특히 주목했던 시는 「가로등 밑」이다. 정황묘사가 세밀하고 트릭과 능청, 기대 배반의 말부림이 좋았다. 한마디로 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비둘기 한마리가 차에 치였는데/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웠다” 같은 표현들이 그랬다. 공부를 쉬지 않으면 대성할 분이다.

공광규 이수명 이정록

 

 

 

시 | 당선소감

 

한창 시험과 리포트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전화로 통보받았다. 그때 차마 기뻐할 여유가 없어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정식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스스로 글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정도 있었지만 또한 미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등단에 대한 꿈은 꾸고 있었지만 그 꿈은 먼 훗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한바탕 지르고 나온 후에야 무언가가 끝났고, 무언가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한 해가 끝나가는 때, 나의 토대를 천천히 살펴보아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나의 시작(詩作) 경력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다. 중학생 때부터 취미로 조금씩 쓰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에 한국어문학과 시 창작학회 ‘청하(淸荷)’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이미 쓰인 시를 통해 화자의 심정과 심상을 해부하고 그것을 다시 재구성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로부터 2년 남짓한 학회 활동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기에, 이른 나이의 갑작스런 등단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번 수상을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매진해야겠다.

오늘날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신 분들이 계시다. 먼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재미있고 참신한 이야기들로 내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주었던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온 나의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내가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맑은 인연淸荷으로 함께해주었던 청하 식구들. 청하가 없었다면 일찍이 나는 글 쓰는 것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청하가 있었기에 즐겁게 글을 쓸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이미 시인으로 등단하신 이병국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바쁘실 텐데도 매번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따끔한 일침을 가해주셨기에 시를 쓰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또 그것을 어떤 사람들이 읽게 될지 기대된다. 나의 미래는 어떤 형태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내겐 글을 길게 쓰는 재주가 없기에 이쯤에서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마무리로는 청하 작품집에 실은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인용한다.

 

의문이 시작된 날로부터 나는

그것들이 배열된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간들이 인형같이

뽑기 기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