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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나리오
한지수 韓智秀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1988년생.
feelinghjs@naver.com
해도 될까요
씨놉시스
제법 준수한 얼굴의 열여섯살 소년 영하. 특별히 큰 사고를 친 적은 아직 없지만 자잘한 사건사고에는 종종 포함되곤 하는 그는, ‘노는 애’라고 하기에는 과장이고 평범한 아이라기에는 부족한, 애매한 위치에 있는 소년이다. 그 또래의 아이가 그렇듯 요즘 영하의 주된 관심은 단연 성(性)이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걸작 야동을 감상하기도 하고, 혼자 공상에 빠져 하루에도 몇번씩 수음을 하는 나날이다.
영하네 가족 구성은 단출하다. 엄마 미영과 영하, 이렇게 모자(母子)가 전부다. 미영은 처녀 시절 연예계에서 활동했으나, 사별한 전 남편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서 은퇴한 후 현재는 평범한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지내고 있다. 이제 곧 마흔 줄에 들어서는 미영이지만 여전히 얼마큼의 젊음을 움켜쥐고 있는 매력적인 모습이다. 성격 또한 활달하고 개방적이어서, 영하는 그런 미영과 마치 남매처럼 혹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낸다. 미영은 지인의 소개로 만난 잘나가는 사업가인 문구와의 인연을 잘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영하는 왠지 문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부에 특별한 흥미가 없는 영하는 6개월 전부터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며 기타를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손가락만 아플 뿐 제대로 노래 한곡 연주하지 못하던 영하였지만, 이제 몇곡쯤은 제법 치는 실력이다. 그러던 어느날 음악학원에 영하보다 한살 많은 희영이 등록한다. 또래와 달리 성숙해 보이는 희영에게 한눈에 반한 영하는 바로 작업에 착수, 희영과 사귀는 데 성공한다. 그와 동시에 용암처럼 세차게 분출하는 영하의 성욕. 희영은 그런 영하를 능숙하게 컨트롤한다.
한편, 한국 고전 걸작 에로비디오를 구했다는 말에 친구네 집에 모인 영하와 친구들. ‘새끼, 야동은 일본이야’ 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보기 시작한다. 스토리와 영상이 B급이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고 여배우의 얼굴과 몸매도 예쁘다. ……그런데 어쩐지 배우의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자세히 보니 미영의 젊었을 적 모습이 아닌가. 크게 당황한 영하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미영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는다.
그 일 이후로 영하는 미영과 마주할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자신도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 문구와 재혼할 것을 영하에게 알리는 미영. 어떤 분노감과 질투심이 솟는 영하지만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그렇게 미영과 문구가 결혼한 후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영하는 희영을 초대하고 마침내 첫 경험에 성공한다. 행복에 겨워하는 영하. 그 행복감에는 떨떠름한 무엇이 함께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얼마 뒤 미영과 문구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이제부터는 한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다정한 부부생활을 이어가는 미영과 문구. 영하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며 다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조금씩 괴로워하고, 동시에 희영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1. 친구 집, 오후
검은 화면 위로 점차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한 여자의 신음소리다. 신음소리 사이사이에 얇고 높은, 다소 꾸며진 목소리로 몇마디 내뱉는 여자.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여자의 말…… 일본어다. 화면 밝아지면, 중학생 내지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학생 4명(모두 16세)이 한데 모여 모니터 화면의 영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영상에선 일본 성인영화 여배우가 남성 위에 올라타 앞뒤로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동시에, 애절하게 꾸민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그 여배우의 시선에 응답이라도 하듯,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들. 입을 헤 벌린 채 침묵하며 보고 있는 그들 위로 남녀의 신음만이 방을 가득 채우고…… 천천히 입을 떼는 한 친구.
친구1 ……씨바. 야동은 역시 일본이야.
친구1의 말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순서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무리.
친구2 (바지춤을 고쳐 잡으며) 확실히 더 꼴리네. 같이 보니까.
친구1 여자 몸매가 죽이지 않아? 가슴 봐봐. (손을 모니터에 갖다 댄다)
영하 근데 우리 교생 약간 닮지 않았냐?
광희 닮은 건가?
친구2 (손 치우며) 에이, 전혀. 아, 저 남자새끼 좆나 부럽다.
영하 닮았는데……
친구2 몸매 끝장나네, 진짜.
친구1 (광희에게) 어때, 괜찮지?
광희 (인정해준다는 듯) 뭐, 봐줄 만하네.
갑자기 광희의 사타구니를 움켜쥐는 친구2. 광희, 깜짝 놀란다.
친구1 (웃으면서) 새끼, 좆나 딱딱하구만. 척은.
광희 놀리면서 낄낄거리는 나머지들……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그때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고, 기겁하는 무리. 보면 문 쪽에 앉아 있던 영하가 장난친 것이다. 친구들의 욕설에 아랑곳 않고, 배를 잡고 낄낄거리는 영하.
영하 야, 다른 거 더 없냐? 더 틀어봐.
친구1 기다려봐.
친구1이 숨겨진 폴더 하나를 찾아 열면 상당한 수의 야동들이 포진해 있다. 감탄하는 나머지. 그중 ‘베스트’ 폴더에 들어가 몇개의 동영상 중 하나를 켠다. 동영상 재생되면 언제 시끌벅적했냐는 듯이 다시 침묵하며 몰입하는 무리.
2. 거리
단체 감상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는 영하와 광희.
광희 확실히 일본은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아는 거 같아.
영하 뭐가.
광희 여자가 할 때 꼭 카메라를 쳐다보잖아. 같이 하는 남자 안 보고. 나 그거 처음엔 왜 그러나 했는데, 이제 알겠어. 여자가 말하는 거지. 응? 난 이 오타쿠가 아니라 너랑 하는 거다. (신음소리 흉내 내며) 아 좋아, 좋아. 너도 좋지? 하아, 하아…… 그니까 감정이입 팍팍 되는 거지.
영하 (웃으며) 미친놈.
광희 야, 너 AV 배우들이 은퇴하는 가장 많은 이유가 뭔지 알아?
영하 ……뭔데?
광희 가족한테 들켜서래.
영하 가족?
광희 응. 그니까 몰래 하다가 부모나 오빠한테 딱 걸려서 그만두는 거지. 좀 웃기지 않아?
영하 뭐가.
광희 생각해봐. 자위 한판 하려고 동영상을 틀었는데 거기에 자기 가족이 툭 하고 튀어나오는 거야. 어떻겠냐?
영하 ……몰라. 그림도 안 그려진다.
둘,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 기다린다. 곧 신호 바뀌고 영하, 건너려 하면
광희 야. 근데……
영하 응?
광희 그중에 그거 보면서 자위한 새끼도 있지 않을까? 일본에는 이상한 새끼들 많잖아……
영하 미친, 아직도 그 생각 중이냐? 몰라, 임마. (뛰어서 건너며) 나 먼저 간다. 낼 봐.
3. 영하의 방
팬티만 입고 침대에 벌렁 누워 있는 영하. 다소 멍한 표정이다. 교복과 가방이 방 여기저기에 팽개쳐져 있고 구석에는 기타도 보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사위(四圍)…… 영하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4. 거리, 저녁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는 영하.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5. 레스토랑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영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영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한 여인. 엄마 미영(39세)이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미영은 외모도 몸매도 아직 충분히 매력적인 모습이다. 미영 옆에는 문구(44세)도 같이 앉아 있다. 미영 앞자리에 앉는 영하.
미영 왜 늦었어? 뭐 먹을래?
영하 잠깐 잠들었어. (문구에게 살짝 고개 숙이며) 안녕하세요.
문구 어, 그래. 뭐 먹을래?
영하 음…… 그냥 스테이크요.
문구 여기요. (종업원 오면) 비프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영하 보며) 미디엄?
영하 (고개 끄덕인다)
문구 예, 미디엄으로. 콜라도 하나 주시고. ……참, 얼마 전에 생일이었지? (뭔가 꺼내더니) 자, 선물.
보면, 크리넥스 휴지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영하.
문구 (장난스럽게) 한창 필요하지? 휴지는 좋은 걸 써야 돼.
미영 (옆에서 웃으며) 하여튼.
영하 어……
문구 (웃음) 별로 맘에 안 드니?
영하 아뇨, 뭐……
<cut to>
식사하는 세명.
문구 그럴 땐 원래 비서를 공략해야 하거든. 큰 거도 필요 없어. 그냥 적당한 거 하나 골라서 꽂아주면……
미영, 문구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영하는 별 관심 없이 묵묵히 스테이크만 먹는다.
6. 차-아파트 내부
아파트에 도착하는 문구의 차. 고급스러운 외제차다. 차에서 내리는 미영과 영하.
문구 잘 들어가고. 도착하면 연락할게. (영하에게) 또 보자.
미영 어, 조심히 가.
영하 (고개 꾸벅)
떠나는 차. 아파트로 향하는 미영과 영하.
미영 어때, 괜찮지? 유머감각도 있고, 편하고.
영하 글쎄…… 난 좀 그런데…… 약간 느끼한 거 같기도 하고.
미영 그래?
영하 응. 뭐 그래도 미영씨가 좋으면 됐지.
미영 피이…… 그래도 문구씨 앞에서는 엄마라 그러더라?
영하 나도 생각이 있거든요.
미영 ……크리넥스 잘 쓰고.
영하 아 쫌!
미영, 웃으면서 영하의 어깨를 다정히 끌어안는다. 영하 또한 미영의 허리를 자연스레 감싸안는다. 마치 친한 친구, 혹은 연인처럼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자.
7. 영하 집, 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영하.
<cut to>
영하, 냉장고로 가서 주스를 따라 마신다. 미영이 샤워 중인 화장실에서는 쏴 하는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영하, 소파 쪽으로 되돌아오다가 선반 위에 놓인 액자들을 본다. 예전의 미영과 영하의 사진들이 껴 있다. 미영의 전 남편, 즉 영하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도 보이고…… 영하, 사진들을 한번 훑어본 후 화장실 앞으로 간다. 여전히 쏴 하고 들리는 물줄기 소리. 화장실 불을 툭 끄는 영하.
미영 (깜짝 놀라) 뭐야! (상황 파악 하고) ……야, 박영하! 빨리 불 켜!
미영의 반응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불을 켜는 영하.
8. 교실, 오전
한창 수업 중인 교실. 수학 시간인 듯, 다소 지루하게 생긴 교사가 칠판에 여러 공식들을 쓰며 열정적으로 설명 중이다. 광희, 수업 열심히 들으며 필기하고 있고, 옆에 앉은 영하는 수업엔 전혀 관심 없이 교과서에 유치한 낙서나 그리고 있다. 다 그린 후 광희에게 보여주는 영하. 수학 선생이 희화화돼서 그려져 있다. 피식 웃는 광희.
9. 식당 앞, 점심
점심시간. 떠들썩한 식당 풍경. 영하와 광희, 배식 받기 위해 줄 쪽으로 가고 있다. 영하가 주변을 둘러보면, 저 앞에 친구1과 친구2가 서있다. 주변 눈치를 보더니 쓱 자연스레 그 앞으로 들어가는 둘.
친구1 왜 이렇게 늦어?
영하 수학이 늦게 끝내줘서. 꼭 지루한 선생이 수업은 길게 한다니까. 근데 오늘 반찬은 뭐냐?
친구1 명태 순살 조림이랑 시금치, 콩나물국.
광희 아씨, 또 명태야? 메뉴가 그거밖에 없나, 씨.
친구2 난 명태 괜찮던데. 양념이 맛있잖아.
영하 ……특이한 새끼.
10. 식당.
밥 먹고 있는 무리.
영하 (명태 한입 집어먹더니) 아, 진짜 이건 아닌 거 같다. (친구2에게 반찬 넘기면서) 이거 니 다 먹어라.
친구2 아 싫어. 너 먹던 거잖아.
영하 이 새끼 또 깔끔 떠네. 뭐 어때, 남자끼리.
친구2 (반찬 다시 갖다 놓으며) 싫어, 그래도. 찝찝해.
친구1 미친. 너 그래서 여자랑은 자겠냐? 다 빨아야 하는데? (영하와 광희에게) 맞다. 니네 그거 알아? 얘 자위 어떻게 시작했는지.
친구2 (찌릿 째려본다)
친구1 뭐 어때. 우리끼리.
광희 뭔데. 말해봐.
친구1 얘 자지가 좀 까맣잖아.
영하 근데?
친구1 이게 또 한 깔끔하니까, 걱정이 되는 거야. 아씨, 내 건 왜 이렇게 까맣지? 나중에 여자가 더럽다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영하 큭큭, 미친.
친구2 싫어할 수도 있잖아! 우리도 여자가 까마면 욕하잖아.
영하 그건 다르지. 암튼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야, 너가 직접 말해봐.
친구2 (살짝 망설이다) ……좀 걱정되더라고, 싫어할까봐.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미리 미리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광희 어떻게?
친구2 뭐 있냐? 매일매일 씻는 거지, 비누로…… 어쨌든 그래서 그날 당장 화장실에 가서 비누칠한 다음에 닦기 시작했는데…… 이게 느낌이 좆나 좋은 거야.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도 너무 좋더라고.
광희 쿡쿡, 대충 알 것 같다.
친구2 그래서 계속 그렇게 문지르는데, 갑자기 어떤 느낌이 한번에 팍, 오더니 힘이 스르르 풀리더라? 그때는 비누에 뒤섞여서 뭐가 나왔는지도 몰랐지만. 뭐, 하튼 그렇게 알게 됐다. (씩 웃으며 자랑스레) 어쨌든, 뭐 이런 게 자기주도 학습 아니겠냐.
친구1 하여튼 웃긴 새끼라니까.
광희 너답다.
친구2 유니크하지 않아? 나같이 시작한 애가 얼마나 되겠어.
영하 ……근데 비누로 하면 느낌 좋아?
광희 안해봤어?
영하 그러니까 물어보지.
광희 좋다기보다…… 확실히 다르지 느낌이. 뭐라고 해야 하지? ……하여튼 달라. 한번 해봐.
(후략)
*지면사정으로 작품의 일부만 싣습니다. 씨나리오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씨나리오 | 심사평
단편영화를 여러편 만든 감독도 첫 장편영화 씨나리오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런데 전공자도 아닌 대학생들이 이 정도 완성도의 장편 씨나리오를 써낸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일반 씨나리오를 심사할 때와 별반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 영화산업이 전문화가 덜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젊은 대학생들의 고유한 성향이 반영된 씨나리오를 발견하기 어려웠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해도 될까요?」는 초중반의 느슨한 드라마 전개와 단조로운 서사, 개성이 흐릿한 캐릭터들이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모티브를 끝까지 힘있게 밀고 나가, 씨나리오를 다 읽고 나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세 소년의 성에 대한 관심과 혼란과 이해를 선정적으로 치우침 없이 심도있게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결말에서 소년이 눈물을 보일 때, 왜 사람은 몰랐던 인생의 비밀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환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소년의 눈물은 미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대상작 말고도 주목을 끌었던 작품에는 「덧니」 「춘앵전」 「내 여행자의 이름」 등이 있습니다. 「덧니」는 우선 안정된 문장력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소 낭만적으로 포장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춘앵전」은 성실한 자료조사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말 부분이 작위적으로 느껴졌고, 소재의 특별함에 의존하여 모티브가 애매해진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여행자의 이름」은 독특한 소재와 분위기가 흥미로우나 기성 특정 영화의 영향 아래 있는 것 아닌가 염려도 되었습니다. 다소 드라마가 산만하고 밋밋하며 모티브가 관념적으로 흘러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는 기성의 문화예술 장르에 비해 고답적인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동시대적인 소통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원천을 찾아 해맵니다. 이에 씨나리오를 창작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경향들은 영화 발전에 큰 동력이 됩니다. 대산대학문학상이 발굴한 신인작가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박찬옥
씨나리오 | 당선소감
졸업을 앞둔 요즘, 다음과 같은 내용의 꿈을 꾸곤 합니다. 저는 수험생으로 되돌아가 대학수능시험을 치르는 중입니다. 열심히 풀어보려 하지만, 정답을 아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저는 점점 초조해집니다. 아무리 머리를 감싸고 고민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심한 어지럼증을 느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시험은 끝이 나고 감독관은 차례로 답안지를 걷어갑니다. 차마 답안지를 내지 못하고 버티던 저는, 급기야 답안지를 들고 교실 밖으로 도망갑니다.
꿈에서 깨면, 지나치게 솔직하고 적나라한 내용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겉으로는 호기를 부리며 영화의 길을 선택한 걸 자랑스러워 하지만, 부족한 재능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감출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당선 통보를 받은 후에도 불안함과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같은 꿈을 계속 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자신 있게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과분한 선물을 주신 대산문화재단과, 부족함이 많은 씨나리오임에도 용기 내어 뽑아주신 박찬옥 감독님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쓰겠습니다.
한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