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김수복 金秀福

1953년 경남 함양 출생. 1975년『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지리산타령』『새를 기다리며』『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른다』『사라진 폭포』『달을 따라 걷다』등이 있음. soobok3771@hanmail.net

 

 

 

저녁의 散策

 

 

도미니꼬 까페 도미니꼬 사원이 바라보이는

왼쪽 의자에 앉아 있다

밤 너머 밤의 시인 안또니오 꼴리나스가

시를 이야기했다던 그 깊은 시간의 의자에 앉아 있다

사원은 점점 붉게 물들어서

충만한 공중정원이 될 것이다

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집을 짓고

더러는 집시들이 들어와 노래를 부를 것이다

밤고양이들이 배고픈 사람이 되어

잠을 청할 것이다

자게 놔두어라, 사원은

이렇게 말하며 곤궁한 몸 위에

하늘의 이불을 덮어주리라

용서를 구하러 사람들은 나귀가 되어

기도를 청하리라

종이 여기 있나이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칠 것이다

도미니꼬 수도원

시간의 정원은 서서히 불을 밝히고

모든 저녁과

일용할 양식과

나귀가 된 집시와

종이 된 고양이와

늙어가는 나무들로

충만한 몸속 깊은 하늘에서

새벽종을 울리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도미니꼬 까페에 앉아

사람이 된 사원을 바라본다

몸속에서 종을 울리는 사람을 보고 앉아 있다

 

 

 

暴風의 언덕

쌀라망까에서

 

하늘에도 낮은 폭풍의 언덕이 있다

눈물이 날 때면 달려와 앉아 있는 곳,

여명이 돋는 남쪽을 끝없이 바라보는 곳,

사람들 몸속 숨겨왔던 일몰의

바람부는 언덕이 있다

 

다시, 도시의 끝에서 해는 떨어져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를 바람이라 부르는

집시들의 언덕에 서서

저문 도시의 낡은 풍경들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남쪽에서 보낸 일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집시들과 이웃이 되어

하늘이 내려다보는 마음속 폭풍의 언덕,

 

도시의 불빛은

동굴 속에 갇혀 있는 마녀가 되어

다시 저 골목을 빠져 나오리라

끝없는 하늘의 길을

그 숲속을 걸어나오는 나무들을 기다리며

바람이 몰아쳐 창을 뒤흔드는

절벽의 기억들을,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의 계곡,

노을에 비껴서 있는 골목들을,

가슴에 떠오르는 낮은 별들의 눈빛들을 기억하며

저물어가는 하늘에 앉아 있는

폭풍의 언덕,

그 눈빛이 흔들린다

하늘의 눈빛이 자꾸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