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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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소풍

 

 

공원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서 세호네 가족은 다시 진입로로 빠져나왔다. 그때는 세호 처 지현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흥얼거리느라 차 안은 라디오를 켜놓은 것 같았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줍은 얼굴의 미소, 운운하는 소절이 역시 어렵고 입에 붙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 오빠가 제법 선생 노릇을 하며 반복해 잡아주고 있었다. 팔순 장모는 뒷좌석 아이들 틈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멀미기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 재롱으로 생긴 엷은 미소가 입가에 묻어났다. 가슴에는 딸아이가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세호는 간신히 실려가는 기분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숙취와 피로로 만사가 귀찮았다. 다만 아내한테 오늘만은 가시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당신은 맨날 그러더라고 아내 지현이 쑤셔서 그들은 신혼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싸워왔다. 그는 억울했다. 매일 피곤했고, 처갓집 오는 날이 대부분 체력이 방전되는 주말이었을 뿐이지 결코 처갓집 가기 싫어 꿍한 적은 없었다.

“오빠, 네잎 클로버 본 적 있어?”

딸아이가 문득 노래를 멈추더니 제 오빠에게 물었다.

“응. 저번에 도장에서 캠프 가서 게임 하면서.”

“오빠도 찾았어?”

“쿠키런 왕딱지 뽑기보다 어려워. 민지가 찾은 걸 봤어.”

“되게 어렵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가?”

“민지언니 말이야. 행운이 찾아왔어?”

“소원을 빌고 기다리고 있대.”

“무슨 소원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소원을 말하면 안된다는데.”

“아빠, 정말이야?”

“응? 오빠 말이 맞아. 소원을 비밀로 해야 행운이 와.”

세호는 주차할 데가 없나 살피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딸아이가 생각에 빠지며 차 안이 조용해졌다.

주차요금 정산소를 앞두고 지현이 주차권을 찾았다. 네비게이터 박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주차권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대시보드와 바닥까지 훑어보고 나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게 왜 내게 있겠어, 하는 눈빛으로 세호는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했다. 처가에서 나올 때 들른 김밥체인점 영수증이 바지주머니에서 나왔다. 세호는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다.

“맨날 그래. 잘 찾아봐.”

지현은 세호에게 맡겨둔 숄더백을 낚았다.

그러는 사이 그들 차례가 되었다.

약이 바짝 오른 지현은 주차요금 징수원에게 항의했다.

“주차장이 꽉 찼으면 통제든 안내든 제대로 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징수원 여자는 어버이날 기념축제 탓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부스에서는 무전기 소리가 자글거렸고, 여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세호는 아내보다도 그 여자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현이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차장만 돌다가 나왔다고요, 두바퀴나.”

“한바퀴야, 엄마.”

뒤에서 딸아이가 재빨리 제 엄마 말을 받았다.

“두바퀴야!”

아내는 소리쳤다. 주차요금 징수원 여자가 부스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주차권을 주시면 처리해드릴게요.”

“방금 왔다니까요. 지금 제 말을 못 믿는 거예요?”

“아니에요. 취소처리 하는 데 필요하거든요.”

여자가 밀려드는 차량들을 보며 재촉하듯 말했다.

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숄더백을 뒤집어서 치마에다가 소지품을 쏟아놓았다. 화장품, 지갑, 휴대폰, 물티슈와 함께 카드전표와 영수증이 한무더기 쏟아졌다. 지현은 영수증을 한장씩 들춰보았다. 누가 봐도 시위하는 몸짓이었으므로 세호는 머리를 내둘렀다. 징수원 여자는 입매가 샐쭉해졌다.

이윽고 주차차단기가 올라갔다.

일 킬로미터 남짓한 진입로 역시 바깥 차선에다가 차들을 세우느라 차량 흐름이 막히고는 했다.

“이제 우리 소풍은 끝난 거야?”

딸아이가 풀죽어 말했다. 아이들은 공원 광장에서 대여하는 사륜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된 걸 아쉬워했다. 세호는 무거운 몸을 돌려 아이들을 달랬다.

“진입로 쪽 숲으로 가보자.”

세호는 아내의 안색을 살폈다. 지현은 막힌 길을 묵묵히 바라보며 별말이 없었다.

“아빠, 오디 따먹던 그 숲 말예요?”

잠자코 앉았던 아들 녀석이 아는 체를 했다.

“오디?”

세호는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그 숲으로 소풍 갔잖아요. 아빠랑 캐치볼도 했는데.”

“아, 공 주우러 갔다가 오디를 발견했지?”

“우리 또 가요, 네?”

아들 녀석이 좌석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졸랐고, 덩달아 딸아이도 끼어들었다.

“난 네잎 클로버 찾을래.”

“……오디가 지금 철인가?”

세호는 작년 나들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등 뒤에서 장모가 잠긴 목청을 틔우는 소리가 났다.

“원, 벌써 그게 익었을라. 보리 익을 때나 돼야지.”

장인 기일 때였던 모양이다. 세호는 손을 뻗어 딸아이 볼을 쓰다듬어주며 아쉽게 말했다.

“한달은 더 기다려야겠는걸.”

진입로를 한참 빠져나오자 도로 정체가 차츰 풀렸다. 이제 돗자리 펼 데를 살피느라 아이들까지 입을 다물고 온 가족이 오른편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호는 작년에 그들 가족이 한나절을 보냈던 소나무 숲이 그냥 멀어져가는 걸 보았다.

“세워봐, 엄마. 저기야!”

아들 녀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녀석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그러니까 제 엄마와 아빠에게 참견할 만한 위치에다가 열한살의 몸을 밀어넣었다.

“차 세울 데가 없잖아.”

지현이 퉁명스레 말했다. 아들은 잠시 수꿀해졌다. 그러나 아이는 이내 특유의 활력을 찾아 다시 주절거렸다.

“근데 아까부터 무슨 냄새 나지 않아? 밥솥에서 나는 냄새 같은 거.”

녀석이 제 아빠 쪽으로 코를 내밀고 큼큼거리자 세호는 팔을 뻗어 밀어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지?”

왠지 세호는 아들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냄새 난다고 짐짓 힐난하는 듯싶었다. 그는 아내에게 볶일 때처럼 짜증이 치밀었다. 목구멍에서 들큼한 트림이 올라왔다.

그는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쐬었다. 차는 철쭉이나 조팝나무 같은 키 작은 관목으로 꾸민 정원을 지나갔다. 정자가 있는 널찍한 잔디밭에는 행락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늘막이나 인디언텐트를 친 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스버너를 켜고 고기 굽는 행락객도 보였다.

백여 미터나 더 진입로로 나와서 지현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조금 전 그들이 타고 온 도시외곽도로가 코앞에 보였다. 인도 너머로 버팀목을 댄 어린 느티나무 조림지가 있고, 그 뒤로 메타세쿼이아 숲이 울울했다.

“자, 내리자.”

지현이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며 말했다.

“그늘져서 춥지 않을까?”

세호는 무슨 방풍림처럼 솟은 메타세쿼이아 숲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뒷좌석에서 장모가 내리고, 아들과 딸이 차례로 내렸다. 아이들은 곧장 숲으로 내달렸다. 지현이 소리쳤다.

“뛰면 안돼! 동생 데려가야지!”

어른들은 제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세호는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마셨다. 사는 게 별것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렇게 드라마 한 장면 같은 풍경이면 족했다. 저것 한컷 건지려고 새벽부터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다섯시간 분량의 구질구질한 필름을 버리고 손을 터는 사람처럼 마음이 산뜻해졌다.

“장모님, 날씨 참 좋네요.”

지현은 트렁크에서 간식거리가 담긴 쇼핑백을 꺼내고 세호에게 자동차열쇠를 건넸다.

“돗자리 챙기면서 무릎담요도 있나 찾아봐.”

“먼저 가서 애들 좀 챙겨.”

세호가 말했다. 아이들은 이미 숲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장모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 세호는 트렁크로 허리를 접었다. 호텔 미니바에 납품하는 술 상자에서 그는 쌤플형 위스키 한병을 꺼냈다. 트렁크에 머리를 그대로 박고 그는 드링크제 비우듯 한모금에 위스키를 넘겼다. 그는 범퍼에 한발을 올리고 섰다. 숨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손가락마디까지 번져오는 술기운을 느끼며 그는 조금 더 서 있었다.

돗자리는 종이박스에 눌린 채 트렁크 깊숙이 묻혀 있었다. 박스를 보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양원에서 받아온 아버지의 유품을 두달째 싣고 다니는 중이었다. 사십구재도 다 치르고 난 시점에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아버지가 정신을 놓은 채 요양원 침상에 누워 지냈으므로 개인소장품 같은 게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입원하면서 입고 간 육년 묵은 누추한 옷가지와 구두를 그는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화장터로 가져가서 소각하라는 조언도 있었고, 시절이 바뀌었으니 아파트 재활용함에 넣어도 된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는 어느 쪽으로도 실행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잃고 나서 생각보다 고통과 슬픔이 크지 않는 데 일종의 자기혐오 같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물론 자기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애도의 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한다는 암시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무덤덤한 자신이 때로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늦은 밤 택시에 몸을 부리고 귀가하는 취중이면 그 마음이 일어났다. 그건 어젯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택시에서 내려 제 집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한테 새끼들이 있어서 그래. 아비를 잃은 아비들은 다 그래.”

그는 돗자리를 꺼낸 자리에 다시 박스를 밀어넣었다. 트렁크 한귀에서 야구글러브가 눈에 띄었으나 귀찮은 생각에 손을 거두었다. 그는 가죽가방에서 위스키 쌤플을 한병 더 챙겨서 점퍼 주머니에 넣고 트렁크를 닫았다.

썬글라스를 꺼내 쓰고 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 그는 천천히 가족이 사라진 길로 들어섰다.

볕에 나앉기에는 따갑고, 그늘로 들자니 아까운 날씨였다. 그제는 비가 내렸고 어제는 흐렸다. 행락객들도 봄볕을 좇아 나왔겠지만 죄다 나무에 홀린 것처럼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들어가 있었다.

숲 입구에서 그는 푯말로 만든 안내문을 만나 발걸음을 세웠다. 이 도시에 소재한 농업고등학교에서 연구조림지로 조성한 낙우송(落羽松) 숲이라는 안내문이었다. 그는 낙우송이 메타세쿼이아의 별칭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안내문에는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낙우송과의 대표 수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다음 구절은 낙우송이 별개의 수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중국이 원산지인 메타세쿼이아와는 달리 낙우송은 미국이 원산지였다. 수피에 이끼가 오르고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은 늠름한 나무를 세호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썰미로는 메타세쿼이아와 딱히 구별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잎사귀 빛깔이 메타세쿼이아보다 더 옅고 부드러우며 갈색 수피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느낌에 불과했다. 그는 안내문을 설치한 연도를 보고는 낙우송 수령이 사십년이 넘었다는 걸 계산해냈다. 저 거목들이 고작 제 나이쯤 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왠지 위축감이 들었다.

아내한테서 숲 속 까페 쪽으로 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세호는 숲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네줄로 기둥처럼 선 나무들은 그 인위적인 간격과 대열만으로도 볼거리였다. 오른편으로도 왼편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풀이나 관목 없이 낙엽만 두껍게 쌓인 숲길은 폭신폭신했으며 공기는 축축하고 서늘했다. 그 원시림 같은 그늘에 서서 그는 옷을 여미고 가족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는 불현듯 아이들이 그리웠고,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이내 그는 오솔길에서 화살표가 그려진 흰 안내판을 발견했다. 까페 사이프러스 40m.

그는 왼편으로 몸을 돌렸다. 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예의 그 ‘네잎 클로버’라는 동요를 부르는 목소리가 틀림없이 들려왔다. 그는 돗자리와 담요를 겨드랑이에 꼭 끼고 걸음을 재게 놀렸다.

“아빠!”

딸아이가 소리쳤다. 두 아이는 해먹에 올라 누워 있었다. 연둣빛 해먹은 낙우송 두그루 사이에서 제법 운치있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솔길이 휘어지는 곳, 숲에 면하여 ‘Café Cyprès’라는 상호를 내건 작은 통나무집이 있었다. 마당으로 난 발코니에 육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곳은 그늘 한점 없이 볕이 발랐다.

까페 출입문으로 지현과 장모가 걸어 나왔다. 노인은 작년에 가벼운 뇌경색을 앓은 후 걸음걸이가 다소 부자연스러워졌다. 노인은 딸의 소매라도 잡으려는 몸짓으로 오른손을 멈칫거리며 따르고 있었는데 아내는 부주의하게도 성큼성큼 발코니로 걸어왔다. 테이블에 짐을 부려놓으며 지현이 세호에게 말했다.

“따로 자리잡지 않고 여기서 쉬려고.”

세호가 해먹을 힘껏 흔들어주자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킬킬 웃으며 발코니로 올라섰다. 그는 장모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 맞은편 자리에 조금은 서먹하게 앉았다.

“김서방은 웬 땀을 그렇게 흘려?”

“제가요?”

세호는 이마를 훔쳐냈다.

“날이 좀 덥네요.”

“요새도 바쁜가?”

“부서를 옮겨서 덜합니다.”

세호는 썬글라스를 고쳐 썼다.

“몸이 저번보다 더 축났어.”

지현이 낯을 만지는 세호에게 눈을 흘겼다.

“해외출장이 잦아져서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졌어. 홍콩에서 어제 돌아왔는걸. 술을 팔러 다니는 건지 마시러 다니는 건지.”

“바쁘면 좋은 거지.”

노인이 딸에게 타박조로 말해놓고 사위를 건너다보았다.

“사돈어른은 웬만하지?”

세호는 당황한 얼굴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평소 장모가 뭉치고 돌려서 내놓는 말투에 갈피를 못 잡기는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두고 안부를 묻는 건지 위로를 하는 건지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익숙한 딸이라고 지현이 장모의 말을 심상하게 받았다. 그녀는 쇼핑백에 싸온 멜론을 깎고 있었다.

“아버님이 오랫동안 고생 많으셨는데 이제 편히 쉬시겠지. 살아 계실 때 내가 저이한테도 한 얘기지만, 치매 그거, 지켜보는 사람이 괴롭지 정작 본인은 죽음도 모르고 두고 가는 회한도 없고, 꼭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아.”

노인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조금은 어두운 기색으로 노인은 묵상하듯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세호는 노인이 무릎 짚은 손을 꼭 쥐었다가 푸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래서 어디에다가 모셨니?”

“어머, 내가 엄마한테 말 안했나, 용인 납골당에 모셨다고? 좋더라. 가깝고, 깨끗하고. 시어머니도 그쪽으로 모셔오려고 해.”

까페에서 여주인이 팥빙수와 커피를 테이블로 내왔다. 지현이 과도로 멜론에서 씨앗을 긁어내며 주인에게 말했다.

“과일을 가져왔는데 좀 먹어도 되겠지요?”

“그러세요” 하고 주인이 대답했다.

“여기 참 좋네요.”

지현이 해먹에 오른 아이들 쪽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과장된 목소리로,“너희 신발은 벗고 올라가야지” 하고 소리치고는 주인여자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우리 아들이 태국 갔다가 사온 거예요. 지난달에 입대를 했는데 손님들이 좋아해서 그냥 뒀어요.”

“얘들아, 팥빙수 먹자.”

지현이 손을 까불렀지만 아이들은 기척이 없었다. 저희끼리 무슨 비밀이라도 나누는지 아이들은 해먹에 누워 소곤거리고 있었다. 세호는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가 말해.”

아빠가 나타나자 딸아이가 말했다.

“네가 말해.”

“무슨 일인데?”

세호가 웃으며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있잖아.”

딸아이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할머니가 이상해. 아까 나한테 ‘지현아’ 하고 엄마 이름을 불렀어.”

“그것 가지고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그러는 거야? 아빠도 가끔 너희 이름 잘못 부를 때가 있잖아.”

“그것뿐이 아니에요.”

아들 녀석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아들은 비밀처럼 속삭였다.

“옷에다가 쉬하신 것 같아요.”

“언제?”

세호는 아들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아까요. 차에서 냄새 날 때요.”

세호는 성끗 웃었다.

“아니야, 인마.”

그래놓고 세호는 아들 코에다가 입바람을 후, 하고 불어주었다. 아들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틀었다.

“아빠 술냄새였네.”

“자, 테이블로 가자.”

두 아이는 세호의 어깨에 매달렸다. 세호는 두 아이를 어깨에다가 하나씩 매고 발코니로 옮겼다. 장모가 아이들에게 멜론 접시를 밀어주었으나 아이들은 팥빙수를 당겼다. 장모는 멜론을 다시 세호 앞으로 밀어주었다.

“아빠, 네잎 클로버 찾을래.”

딸아이가 아들보다 먼저 스푼을 놓았다. 세호는 커피잔을 든 채 말했다.

“그럴까? 근데 요새 배운 그 노래를 먼저 듣고 가면 안될까?”

딸아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 노래는 재롱잔치 때 불러야 한단 말이야. 선생님이 그때까지 엄마아빠한테 비밀로 해야 한댔어.”

“다 아는데 무슨 비밀이야.”

아들 녀석이 이죽거렸다.

“그래? 근데 외할머니는 재롱잔치 때 못 오시잖니. 그러니 우리는 귀 막고 있을 테니까 할머니한테만 불러드려.”

세호는 두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딸을 바라보았다. 노인도 벙글거리며 거들었다.

“하이고, 아까 보니 우리 강아지가 또박또박 잘하더라. 어디 할미가 먼저 들어볼까?”

아이는 고민하는 눈빛으로 어른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귀 막아…… 오빠는?”

아들 녀석은 듣는 척도 않고 비죽거렸다. 세호는 겁박을 해서 아들이 스푼을 내려놓게 했다. 드디어 딸아이가 의자 위로 오르더니 혀짤배기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율동을 곁들여가며 부르는 게 제법 귀염성 있는데 제 엄마의 입술 놀림을 따라 어려운 대목도 잘 넘겼다.

 

깊고 작은 산골짜기 사이로

맑은 물 흐르는 작은 샘터에

예쁜 꽃들 사이에 살짝 숨겨진

이슬 먹고 피어난 네잎 클로버

 

랄랄라 한잎

랄랄라 두잎

랄랄라 세잎

랄랄라 네잎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줍은 얼굴의 미소

한줄기의 따스한 햇살 받으며

희망으로 가득한 나의 친구야

빛처럼 밝은 마음으로 너를 닮고 싶어

아이는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바닥으로 뛰어내려 제 아빠 등 뒤로 숨었다. 어른들이 박수를 쳤다.

“그런 조막만 한 입으로 그걸 다 어찌 외누? 할미는 한줄도 못 따라 부르겠구나.”

노인이 스웨터 주머니를 뒤적거려 만원 한장을 아이에게 안겼다. 용돈을 제 크로스백에 챙겨넣은 아이가 세호의 손을 흔들었다.

“네잎 클로버 찾으러 가, 아빠!”

“커피 좀더 마시고.”

세호는 커피를 한모금 넘기고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외할머니 뵈러 왔으면서 너희끼리 놀면 어떡해? 네잎 클로버는 집 곁에 가서도 찾을 수 있잖아.”

그래도 딸아이는 몸을 꼬았다. 지현이 혀를 찼다.

“쟤는 뭐에 꽂히면 사족을 못 써요.”

“소원이 있단 말이야.”

아이가 새침하게 말했다.

“뭔데?”

“말하면 행운이 사라지잖아.”

어른들이 웃었다. 세호가 물었다.

“그러니까 비밀이구나?”

아이는 입술을 사리물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호는 몸을 기울여 아이에게 귀를 바짝 댔다.

“아빠한테만 말해봐.”

아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강아지가 찾겠다는 게 뭐냐?”

노인이 지현에게 물었다.

“토끼풀. 이파리 네개 달린 거 찾겠다고 쟤가 저러우.”

아아,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이 할미랑 가서 찾아볼까?”

노인이 담요를 벗어놓고 일어섰다.

“아니에요, 장모님. 제가 갈게요.”

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만류했다.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우리 강아지들하고 놀고 싶어서 그래.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을라.”

노인은 아이들을 내몰듯 손짓을 해서 앞세웠다.

“토끼풀은 그늘에서는 안 나니라. 풀밭으로 가야지. 어서 가자.”

아이들은 양쪽에서 노인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지현이 아이들에게 일렀다.

“할머니 힘드시니까 너무 오래 있지 마. 하나씩만 찾고 와.”

부부만 남은 테이블에 적막이 흘렀다.

“가보지 않아도 될까?”

세호는 아내에게 말했다.

“엄마가 함께 가셨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괜찮겠지?”

지현이 실없다는 듯 남편을 건너다보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애들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는 작심한 듯 당겨 앉았다.

“장모님이 조금 이상하시지 않아?”

“뭐가 이상해?”

“애들 말로는 옷에 실수를 하신 것 같다던데.”

아내는 실소를 터뜨렸다.

“아는 척하지 마. 노인네들은 종종 그래. 애들이 참 요망하네.”

“꼭 그것만이 아니야.”

그는 대답거리를 생각했고 아내는 기다렸다.

“모르겠어. 암튼 느낌이 좀 그랬어. 설마 그렇지 않겠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요실금이야,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잠시 두 사람은 말이 끊겼다.

“당신, 아버님 보내고 힘들어?”

지현이 조금 나긋해진 얼굴로 말했다.

“고모가 그러더라, 생전에 데면데면했어도 당신 맘이 천천히 오래갈 거라고.”

그런 소리를 세호는 장례를 치르며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그는 아내에게 가만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런 거 없어. 그렇지만 당신이 치매가 무슨 복인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 얘기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보!”

지현이 발끈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이없어서 금방 울 듯이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닌 것 알잖아. 어떻게 그렇게 말해?”

“나도 알아. 날 위로하느라 하는 소리란 걸. 그래도 당신한테서 그런 말 듣는 건 싫어.”

“봐, 당신은 솔직히 충격이 큰 거야. 예민해졌고 부쩍 술도 늘고. 이참에 회사 옮기면 안돼?”

“난데없이 무슨 회사 이야기야?”

세호는 피식 웃었다.

“예민하게 굴었으면 미안해. 부서 옮기고 경기도 안 좋고 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곧 괜찮아질 거야.”

지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시선을 돌리고 앉은 그녀는 거짓말처럼 눈물이 글썽했다.

“우리도 이런 까페 하나 차려볼까?”

아내가 중얼거렸다. 햇볕이 그들의 등으로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해먹과 노란 햇살과 연둣빛 낙우송 그늘과 그리고 온전히 그들에게 편입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세호는 졸음에 겨운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한 십년 뒤에.”

그리고 그는 커피잔을 들고 일어났다.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커피 좀더 마실래?”

“줘. 내가 갖다줄게.”

지현이 손을 내밀었다.

“아니야. 화장실에도 다녀오려고.”

그는 머그잔을 들고 까페로 들어갔다. 그는 주인여자에게 리필을 부탁했다.

“반만 주세요.”

머잖아 커피가 나왔다. 커피는 잔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커피를 반 남짓 붓고 주머니에서 위스키를 꺼내 잔에 부었다. 위스키 향이 진했다. 커피는 마시기 적당하게 식었다. 그는 세면대 앞에서 연거푸 두모금을 마셨다.

그는 주인여자에게 팥빙수와 커피 값을 계산했다. 창밖으로 보니 아내는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 있었다.

그는 발코니로 돌아와 아내를 바라보며 남은 술을 천천히 마셨다. 해먹이 가만히 멈추고, 아내는 가슴에 두 팔을 올리고 반듯이 누워 있었다. 잠든 모양이었다. 그는 담요를 가져다가 아내를 덮어주었다.

그는 테이블로 돌아와 장의자에 드러누웠다. 팔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오후 세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는 딸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장모와 아이들이 돌아와 있었다. 손목에 꽃시계를 묶은 딸아이가 훌쩍이고 있었고, 장모는 난처한 얼굴로 딸아이를 달랬다. 얼굴이 발갛게 익은 아들아이도 골이 난 아이처럼 입이 튀어나와 있었다. 지현이 화들짝 놀라서 해먹에서 내려서며 물었다.

“너희 둘이 또 싸웠어?”

아들 녀석이 펄쩍 뛰었다.

“안 싸웠어.”

“어디 다쳤어?”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찾아도 이파리 넉장 달린 게 없어야. 나라도 찾았으면 좀 좋으련만 원, 눈이 까물까물해서 뭐가 보여야지. 이 조막만 한 손으로 그것 찾겠다고 볕에 쪼그려 앉아설랑…… 어휴, 딱해 혼났다.”

노인은 손녀의 낯을 썩썩 훔쳐주며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만 울어. 할미가 이제 알았으니까 많이 찾아놨다가 담에 내려올 때 줄게. 아가 그만 울어라. 하이고, 참.”

세호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당겼다.

“에이, 창피하게 그거 못 찾았다고 울어?”

아이가 잦아든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꼭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세호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빠한테 말해봐. 아빠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면 들어줄게.”

아이는 도리질을 했다.

“그건 아빠가 들어줄 수 없는 일이야. 하느님밖에 못해.”

뭔지는 몰랐지만 더 묻는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세호는 아이를 안아서 해먹에 앉혔다. 그래놓고 돌아섰더니 노인이 눈물이 글썽해서 서 있었다.

“하이고, 참! 할미가 온 밭을 토끼풀 밭으로 만들어서라도 우리 강아지 소원을 들어줄란다.”

그는 장모의 손을 이끌어서 발코니에 앉혔다. 그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궁리를 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애들아, 우리 보물찾기 할래?”

아이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는 지갑에서 만원권 지폐를 꺼냈다.

“자, 이걸 아빠가 숨길 테니 찾는 사람이 갖는 거야. 어때?”

“좋아요.”

아들이 손을 들어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딸아이도 울음기가 싹 가셔 있었다. 세호는 해먹에서 딸아이를 안아 내렸다. 그는 아이들을 낙우송 뒤에 세웠다.

“숨바꼭질 해봤지? 규칙은 똑같아. 너희들은 술래처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열번 헤아려. 그동안 아빠가 보물을 숨겨놓고 올게.”

그는 돌아서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심판이야. 눈 뜨고 훔쳐보는 애 있으면 아웃시켜.”

세호는 아이들을 등지고 낙우송 숲으로 들어갔다. 그는 열걸음쯤 걸어서 낙우송 뒤로 몸을 숨겼다. 지폐를 돌돌 말아 나무줄기 옹이진 데에다가 끼웠다. 그는 물러나서 보물 숨긴 데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지폐를 조금 더 빼놓았다. 아이들이 찾기에 어렵지도 쉽지도 않을 만큼 숨겨진 것 같았다.

그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자, 출발!”

두 아이가 뛰어갔다. 그는 아이들을 따라가서 낙우송 둥치들을 일일이 손으로 짚으며 놀이터의 경계를 알려주었다.

“이 안에 있어.”

아이들이 주로 땅바닥을 보고 다니길래 그는 소리쳤다.

“힌트! 땅바닥에는 없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이 나무를 옮겨 다니며 살펴보았다.

세호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발코니로 돌아왔다. 모녀가 무슨 얘기 끝에 웃고 있었다. 장모가 사위 들으라고 말했다.

“어멈이 어렸을 때 얘기네. 얘가 소풍날만 되면 울고 돌아왔어.”

“엄마는, 내가 언제 그랬다고 자꾸 그래?”

“아니야. 자네도 알다시피 욕심이 좀 많은 아이 아닌가. 그런 애가 다른 애들 다 찾는 보물을 한번도 못 찾으니까 아주 분해서 노상 울고 오는 거야.”

노인이 오늘 본 표정 중에 가장 밝게 웃으며 딸과 사위를 바라보았다.

“어이구, 참. 나는 기억도 없는데 자꾸 우기실까. 한번이나 울었는지는 몰라. 그리고 왜 한번도 보물을 못 찾아? 사학년 땐가 상품으로 공책도 받아왔구만.”

“그랬지. 애가 하도 울고 다녀서 한번은 왜 그 우리 뒷집 양가네 아들 있잖니, 그 콧구멍이 번한 둘째아들 말이다. 코에 비 들겠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던 애.”

“아, 양코?”

“걔가 보물찾기 선수 아니었냐. 표를 몇장씩 찾아서 동무들한테 장사도 하던 애였지. 그 집 여편네한테 들어보니까 그게 다 비결이 있더구나. 소풍 가면 선생님들만 쳐다보고 있다가 보물 숨기러 갈 때 뒤를 밟아서 훔쳐본 모양이더라. 한번은 내가 걔한테 천원이나 쥐어주고 부탁을 했지 않겠냐. 네가 가는 길에다가 살짝 한장만 흘려놓으라고 말이야.”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어?”

지현은 기가 막혀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노인은 어떤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 양가네 둘째아들을 좋아한다. 입이 아주 무거운 애니까.”

“걔는 잊었겠지. 암튼 엄마는 기억력도 좋소, 그런 걸 다 기억하게.”

“비밀이었으니까.”

“참 대단한 비밀도 간직하고 사셨소.”

핀잔을 주는 딸을 노인은 어린애 보듯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뛰어왔다. 아들 녀석이 지폐를 손에 치켜들고 찾았다고 소리쳤다. 딸아이가 뒤따라와 상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해.”

이번에는 아이들 엄마가 나섰다. 세호는 지갑에서 지폐 하나를 꺼냈다.

“한장 더 내놔. 지금껏 당신은 엄마한테 뭘 들었어? 당신 딸이 울고 오는 꼴을 또 봐야겠어?”

“엄마, 내 얘기해?”

딸아이가 제 이야기인 줄 알고 물었다.

“아냐. 너도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봐.”

지현은 지폐 두장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세호는 아이들을 끌어다가 제 무릎에다가 얼굴을 묻게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세었다.

머잖아 아내가 돌아왔다. 아들 녀석이 뛰어가다 말고 돌아서서 제 엄마에게 물었다.

“힌트는요?”

아내가 소리쳤다.

“낙엽이 참 폭신폭신하더라.”

아이들이 다시 뛰어갔다.

이번에는 어른들이 애들 보물 찾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했다. 거의 동시에 아이들이 발밑에서 돈을 주워들었다. 딸아이가 제 오빠보다 날래게 뛰어왔다. 눈이 동그래져서 지폐를 흔들었다. 아들 녀석은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시시하다고 말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네.”

세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번만 더 하고 가. 보물찾기 재미있단 말이야.”

딸아이가 발을 구르며 떼를 썼다. 아내가 세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이번에는 할머니한테 숨기라고 할까?”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

두 아이가 노인의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노인이 스웨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손을 내저었다. 세호는 얼른 지갑을 꺼냈다. 지폐는 그게 전부였던 모양이었다. 지갑에서는 연금복권 다섯장과 몇장의 명함과 그리고 출장길에 남긴 백 달러짜리 지폐가 한장 나왔다. 그는 점퍼 주머니를 뒤졌다. 무슨 빳빳한 영수증이 나왔는데 공원 마크가 찍힌 주차권이었다. 그는 왜 이게 여기 있담, 하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지현이 흘겨보았다.

그는 얼른 백 달러 지폐를 뽑아서 장모에게 건넸다.

“할 수 없이 이걸로 해야겠어요.”

노인은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그녀는 발코니를 내려가서 숲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세호는 딸을, 지현은 아들을 가슴에 품어 눈을 가렸다. 이번에는 두 부부가 큰소리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셌다. 아들 녀석이 머리를 꿈지럭거려서 지현은 아이 등을 후려쳤다.

“반칙할 거야?”

한참 만에 노인이 돌아왔다.

“내가 참 별짓을 다 한다.”

부부는 아이들을 풀어주었다.

아이들이 보물을 찾는 동안 어른들은 짐을 정리했다. 해가 기울어서 발코니는 그늘이 되었다. 지현은 담요를 노인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아들 녀석이 돌아왔다.

“못 찾겠어요. 힌트를 주세요, 할머니.”

딸아이는 아직 숲에 남아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보물을 찾고 있었다.

“나무를 봐. 아주 꼭꼭 숨겨놨단다. 지현이한테도 알려줘.”

“엄마, 뭘 나한테 알려줘?”

“아이쿠, 내 정신머리 좀 보게.”

그러면서 노인은 손녀딸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듯 인상을 썼다.

아들이 숲으로 달려갔다.

부부는 노인을 부축해 마당으로 내려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숲에서 아이들이 소리쳤다.

“못 찾겠어요!”

세 사람은 숲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지쳐서 서 있었다. 지현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럼 이번 판은 포기한 거다.”

“싫어요. 힌트를 더 주세요.”

아이들은 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이미 노인은 나무 한그루 앞에 허리를 접고 서 있었다. 부부와 아이들이 다가갔다. 네 사람은 빙 둘러서서 나무에게 말을 걸듯이 들여다보았다.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 옆 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가족들은 노인을 따라갔다.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숲을 둘러보았다.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가족들은 각자 흩어져서 아무 말도 없이 숲을 더듬었다.

“엄마, 나무에 숨긴 거 확실해?”

“할머니, 여기까지 오시진 않았죠?”

노인은 모르겠다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노인 곁으로 모였다.

세호가 말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이제 가요.”

그리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서울까지 돌아가려면 늦겠다.”

그러자 지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디를 가? 꼭 찾고 가. 엄마, 꼭 찾아. 잘 기억해봐.”

세호는 아내에게 눈을 부릅떴다. 그는 눈짓으로 노인을 가리켰고, 노인은 아무도 없는 숲에 버려진 사람처럼 혼이 빠져 있었다. 지현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엄마, 정말 왜 이래?”

세호는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아이들을 몰면서 장모의 소매를 끌면서 말했다.

“자, 이제 가자.”

노인이 울상이 되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장모님. 아무 문제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