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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멜빌이 알고 있었고 지금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제국의 두 얼굴

 

 

그렉 그랜딘 Greg Grandin

미국의 역사가로서 뉴욕대학 사학과 교수. 미국의 외교정책, 라틴아메리카, 대량학살, 인권, 노예제 등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왔으며 국제적 진보매체에서 주목할 만한 평문을 다수 발표했다. 저서로 The Empire of Necessity: Slavery, Freedom, and Deception in the New World, 퓰리처상 최종심에 오른 Fordlandia: The Rise and Fall of Henry Ford’s Forgotten Jungle City, Empire’s Workshop: Latin America, the United States, and the Rise of the New Imperialism 등이 있음.

 

*이 글은 미국 온라인저널 탐디스패치(www.tomdispatch.com)에 게재(2014.1.26)된 것으로, 원제는 “The Two Faces of Empire: Melville Knew Them, We Still Live With Them”이다. Ⓒ Greg Grandin / 한국어판 Ⓒ 창비 2014

 

 

옮긴이 해제

그랜딘의 이 글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Dick)과 그의 또 ‘다른’ 걸작인 『베니토 써리노』(Benito Cereno)에 각각 등장하는 에이헙(Ahab) 선장과 아마싸 델라노(Amasa Delano) 선장을 비교하면서 미 제국의 두 얼굴을 논한다. 에이헙은 미국의 호전적이고 편집광적인 패권주의의 상징으로서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져왔지만, 사실은 그와 대조적으로 정신이 멀쩡하며 점잖고 도덕적인 델라노 같은 유형이 지구의 생태와 문명에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그랜딘이 제국의 특징적인 산업으로 주목하는 것은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채취산업이다. 흥미로운 것은 산업화 초기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전지구적으로 심대한 폐해를 끼쳐온 채취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고래잡이와 물개잡이 특성의 차이를 통해 규명하는 동시에 이를 각각 에이헙과 델라노의 인물형과 연관짓는 대목이다.

멜빌은 델라노 선장의 회고록, 특히 선상 노예반란 사건이 기술된 18장에 근거하여 『베니토 써리노』를 집필했고 185510월에서 12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퍼트넘즈 먼슬리 매거진』(Putnams Monthly Magazine)에 연재했다. 멜빌은 델라노가 기록한 경험적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하되 크고 작은 변형을 가하여 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중의적인 뉘앙스가 짙게 밴 정교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델라노 회고록과 멜빌 소설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소설에서 델라노의 이중성이 대폭 강화되고 베니토 선장의 성격이 다르게 설정된 점, 그리고 전자에서는 이름만 거론되는 노예들의 지도자 바보(Babo)의 존재감이 실감나게 제시된다는 점이다.

『베니토 써리노』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세 인물 가운데 그랜딘이 주목한 것은 소설의 화자인 델라노다. 델라노는 스스로를 노예제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로 여기지만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는 소설의 서사는 그의 의식이 흑인에 대한 온갖 인종주의적 상투형에 침윤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델라노의 이런 허위의식은 흑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둔감성과 “자기 주변의 사회적 세계에 대한 완전한 망각”과 맞물려 있으며, 그렇기에 그는 반란을 이끄는 바보의 계략을 간파하지 못한다. 이처럼 타자성에 둔감한 델라노가 나중에 써리노 선장에게 경위를 듣고 나서야 흑인들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무런 자기성찰이나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징하고 제압할 뿐이다.

소설에 물개잡이꾼으로서의 델라노의 면모를 언급하는 대목이 거의 없음에도 그랜딘은 회고록과 소설, 양자를 면밀히 검토한 후 델라노와 물개잡이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사실 이 발상은 멜빌 문학의 연구와 비평에서도 참신한 시도이다. 델라노가 에이헙과 더불어 미국적 인물의 한 전형이라는 주장은 이미 제기되었지만 그를 에이헙과 같은 위상에서 다루면서 에이헙이 아니라 그를 지구의 어두운 생태적문명적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로 포착한 것이 남다르다. 고래잡이와 물개잡이, 에이헙과 델라노의 비교 논의를 통해 미 제국의 특징적인 양면을 예리하게 짚은 이 글은 역사와 문학의 통합적 사유가 돋보이는 사회비평이자 문학비평이라 할 만하다.

한기욱 | 인제대 영문과 교수

 

*

 

흰 고래 사냥으로 자신과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가려한 선장. 이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오랜 세월 동안 허먼 멜빌의 가장 유명한 소설 『모비 딕』의 미친 에이헙은 고삐 풀린 미국 패권—가장 최근의 예는 조지 W. 부시의 재앙적인 이라크 침공—의 본보기로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것은 우리의 에이헙들, 즉 베트남이건 아프가니스탄이건 주기적으로 어떤 가난한 나라를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만큼 폭격하기를 원하는 매파들이 아니다. 점잖은 유형들이야말로 촘스키(N. Chomsky)가 거의 50년 전에 그들을 싸잡아 부른 것처럼 진짜 “우리 시대의 무서운 존재”(terror of our age)이다.1) 정말로 무서운 인물들은 멀쩡하기 짝이 없는 정치가, 학자, 언론인, 교수, 관리자, 즉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진지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전쟁을 가능하게 하며 지구를 황폐화하고 잔학행위를 합리화하는 남녀들이다(대개 남자이지만). 그들은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존재해온 유형이다. 150년도 더 전에, 제국의 다양한 면면마다 거기 들어맞는 선장을 알고 있었던 멜빌은 그의 당대와 우리 시대에 걸맞게 그들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지난 6년간 나는 미국의 물개사냥꾼인 아마싸 델라노라는 선장의 생애를 조사해왔다. 그는 1790년대에 남태평양까지 항해한 초창기 뉴잉글랜드인 중 하나였다. 돈은 넘쳐났고 물개는 많았으며 델라노와 그의 동료 선장들은 칠레 근해의 섬들에 최초의 비공식적인 미국 식민지를 수립했다. 그들은 비공식적인 선장협의회 산하에서 활동하면서 영토를 분할하고 채무계약을 강요했으며 미국독립일을 기념하고 특별재판소를 설치했다. 성경을 구할 수 없을 때는 대다수 선박 도서실에 구비된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이 선서용으로 사용되었다.

첫번째 원정에서 델라노는 수십만마리의 물개 가죽을 중국에 가져가 향신료, 도자기, 차 등으로 교환하여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실패한 두번째 항해 동안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로 말미암아 아마싸는 적어도 허먼 멜빌 소설의 독자들에게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8052월의 어느날 남태평양에서 아마싸 델라노는 파손된 한 스페인 노예선에 승선하여 그 배의 선장과 대화하고 수선을 거들며 목마르고 허기진 항해자들에게 음식과 물을 나눠주면서 거의 하루 종일을 보냈다. 그들은 소수의 스페인 사람들과 델라노가 노예라고 생각한 약 70명의 서아프리카 남녀였다. 실제 그들은 노예가 아니었다.

그 서아프리카인들은 몇주 전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들을 팔려고 뻬루로 데려가는 노예상인과 함께 스페인 승무원 대다수를 죽이고 쎄네갈로 되돌아가기를 요구했다. 델라노의 배를 발견하자 그들은 하나의 계획을 짜냈다. 델라노를 태우되 마치 그들이 노예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 물개사냥꾼의 배와 물자를 장악할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9시간 동안이나, 노련한 뱃사람이자 프랭클린 델라노 로즈벨트 대통령의 먼 친척인 델라노는 자기가 옮겨 탄 배가 조난을 당했지만 다른 점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노예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조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델라노는 자신의 회고록2)에서 그 경험에 대해 썼는데, 멜빌은 그것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비 딕』 외의옮긴이 ‘다른’ 걸작이라고 여기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남북전쟁 직전인 1855년에 출간된 『베니토 써리노』는 미국문학의 가장 어두운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인종적 편견의 그림자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아마싸 델라노의 관점에서 이야기된다.

멜빌이 역사상의 실재인물 아마싸한테 끌린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스스로를 노예제에 반대하는 근대인으로, 자유주의자로 여기는 아마싸의 쾌활한 자존감과 자기 주변의 사회적 세계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 병치된다는 점이다. 실제의 아마싸는 호의적이며 신중하고 차분하며 겸손한 인물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에이헙이 아니었다. 에이헙이 복수심에 불타 형이상학적 고래를 추격한 것은 베트남과 이라크에서부터 2010년 멕시코만 BP사의 석유 시추시설 폭발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모든 과잉, 모든 파멸적인 전쟁, 모든 재앙적인 환경정책의 알레고리로 사용되어왔다.

고래뼈 의족을 한 채 저 운명적인 배의 뒷갑판을 서성대는 소리가 그 아래서 잠자는 선원들의 꿈에서 “상어의 으드득거리는 이빨”처럼 느껴지게 하는 에이헙. 그의 편집증은 미국의 팽창에서 태동한 개인주의의 연장이고 그의 분노는 자연이라는 경계로도 제한되길 거부하는 자아의 분노이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영화 「플래툰」(Platoon)의 한 병사가 무고한 베트남 사람을 무의미하게 살해하는 무정한 하사관을 부르듯이 ‘우리의 에이헙’인 것이다.

에이헙은 분명 미국 패권의 한 얼굴이다. 그러나 『베니토 써리노』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역사에 대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그것이 미국의 얼굴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거나 심지어 가장 파괴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싸를 생각해보라.

 

 

물개 죽이기

 

냉전의 종언 이래 채취적 자본주의(extractive capitalism)가 맑스(K. Marx)에게도 충격을 줄 만큼 약탈적인 힘으로 후기산업화 세계에 널리 퍼졌다. 광물이 풍부한 콩고에서부터 과떼말라의 노천 금광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최근까지만 해도 원시적인 파타고니아로부터 펜실베이니아의 수압균열식3) 유전과 녹아내리는 북극에 이르기까지 약간이라도 쓸모있는 바위, 액체, 기체가 숨어 있을 틈새가 없으며, 유정 굴착장치와 코끼리 사냥꾼이 못 들어가게끔 금지된 정글도, 성채와 같은 빙하도, 깨뜨려 열지 못할 만큼 딱딱하게 구워진 혈암도, 독성물질로 오염되지 않은 해양도 없다.

그 첫밗에 아마싸가 거기 있었다. 물개 가죽이 세계 최초의 값나가는 자연자원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물개잡이는 청년기의 미국이 국경 너머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경기변동이 급격한 자원 채취산업 중의 하나였다.

뉴헤이븐, 노르위치, 스토닝턴, 뉴런던, 보스턴(뉴잉글랜드의 항구도시들옮긴이)에서 배들이 출항하여 대서양의 아르헨띠나에서 태평양의 칠레에 이르는 거대한 반달형의 외딴 열도를 향하는 일이 1790년대 초반부터 점점 빈번해지더니 1798년에는 광적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배들은 물개 사냥에 나섰는데, 물개는 뻣뻣한 진회색 털로 된 외피 바로 아래에 속옷처럼 촉감이 부드러운 털가죽을 갖고 있다.

『모비 딕』에서 멜빌은 고래잡이를 미국적 산업의 전형으로 그려냈다. 사납고 피비린내 나지만 교화적이기도 한 포경선에서의 노동은 강도 높은 협력과 동지애를 요구했다. 고래 사냥의 섬뜩함, 고래 가죽을 사체로부터 벗겨내는 일, 그리고 지옥 같은 고래 비계 끓이기에서 뭔가 숭고한 것, 즉 노동자들 사이의 인간적인 연대가 생겨났다. 그리고 세상의 등불을 밝힌 고래 기름처럼 신성(神性) 자체가 노동에서 은은히 타올랐다. “그대는 곡괭이를 휘두르거나 못을 박는 팔에서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으로부터 사방으로 끝없이 빛을 발하는 저 민주주의라는 신성을 말이다.”

물개잡이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그것이 떠올리는 것은 산업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립과 정복의 폭력, 정착형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4) 그리고 전쟁이었다. 고래잡이는 모두에게 개방된 바다라는 공유지에서 일어났다. 물개잡이는 땅에서 일어났다. 물개잡이꾼들은 영토를 장악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서로 싸웠으며 그 땅의 부를 최대한 빨리 뽑아낸 다음 껍질밖에 남지 않은 황폐화된 섬에 대한 권리를 버렸다. 지극히 승자독식적인 이 노동관계 체계 속에서 이 과정은 필사적인 선원들(sailors)을 그들 못지않게 필사적인 항해사들(officers)과 대결하게 만들었다.

달리 말하면, 초기산업주의의 프로메테우스적인 힘을 그것이 수반하는 그 모든 좋은 측면(연대, 상호연결, 민주주의)과 나쁜 측면(인간과 자연의 착취)을 아울러 상징한 것은 고래잡이였을 테지만 오늘날의 후기산업주의적 채취, 사냥, 굴착, 수압균열, 고온, 노천광산의 세계를 더 잘 예언한 것은 물개잡이였다.

물개들은 수백만마리씩 무더기로, 그리고 충격적일 만큼 아무렇지 않게 죽임을 당했다. 한무리의 물개잡이꾼이 바닷물과 물개 번식지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서 그냥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개 한마리는 소나 개 한마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지만,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수만마리의 물개들이 함께 내는 소리는 마치 태평양의 사이클론처럼 들렸다고 한다. 어떤 물개잡이꾼이 회고하기를, 일단 우리가 “죽음의 작업을 시작하면 그 전투는 내게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라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해변들은 단떼(A. Dante)의 『지옥』(Inferno)을 방불하게 되었다. 몽둥이 때리기가 진행됨에 따라 가죽이 벗겨지고 피를 내뿜는 사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모래사장은 쏟아져 나오는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 죽이기는 쉼 없이 이어졌고 물개와 펭귄의 사체로 밝힌 모닥불에 의지해 한밤중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다 이 대대적인 죽임이 모두에게 빛과 불로 사용되는 고래기름 같은 것을 얻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물개 가죽이 채취된 까닭은 부유층을 따뜻하게 해주고,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5)라는 새로운 국면의 자본주의에 의해 창출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물개의 생가죽은 숙녀의 망토, 코트, 머프, 장갑, 그리고 신사의 조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새끼 물개의 가죽은 그다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해변은 수천마리의 갓 태어난 새끼들이 방치되어 굶어 죽어가는, 그야말로 물개들의 고아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궁할 때는 새끼의 부드러운 모피도—가령 지갑을 만드는 데—사용될 수 있었다.5)

가끔씩 기름을 얻으려고 코끼리바다표범도 잡곤 했는데, 그때는 더욱 끔찍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코끼리바다표범들이 입을 벌려 울부짖을 때 사냥꾼들은 입안에 돌을 던져 넣고는 긴 창으로 찔러대곤 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처럼 여러곳이 관통되면서 혈압이 높아진 동물의 순환기관은 “상당한 거리까지 분출하는, 피의 분수”를 세차게 뿜어냈다.

처음에는 광적인 속도로 죽여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물개가 많았다. 아마싸 델라노의 추정으로는 뉴잉글랜드 사람들이 “물개 죽이기 사업”을 하려고 처음 당도했을 때 한 섬에만 “2, 3백만마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 관찰자는 “하룻밤에 많은 물개들이 죽는다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없어진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썼다. 마치 어느날 눈에 보이는 물개를 모조리 다 죽이고도 그 다음날 다시 새로 죽이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몇년 만에 아마싸와 그의 동료 물개잡이꾼들은 너무나 많은 물개 가죽을 중국에 가져간 바람에 광둥(廣東)의 창고에 다 수용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물개 가죽은 선착장에 쌓인 채로 빗속에 썩어가기 시작했고 시장가격은 폭락했다.

판매수익을 벌충하기 위해서 물개잡이꾼들은 죽이는 속도를 더욱 가속화했고 급기야는 죽일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과잉공급과 멸종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물개잡이꾼들 사이의 협조는 사라지고 점점 줄어드는 번식지를 놓고 피 튀기는 싸움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배 한척의 창고를 가죽으로 가득 채우려면 소수의 사람들이 몇주만 작업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번식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필요한 수의 물개를 찾아서 죽이는 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으며 그들은 종종 황량한 섬에 장장 2~3년의 기간 동안 남겨진 채 배가 다시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며 우중충한 날씨에 비참한 헛간에서 홀로 살곤 했다.

한 역사가는 이렇게 썼다. “모든 섬과 해변에서 물개란 물개는 새끼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몰살되었는데, 만약 어느 물개잡이꾼이 눈에 보이는 물개를 모조리 죽이지 않고 살려주더라도 그렇게 비위가 약하지 않을 다른 물개잡이꾼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작동한 것이다.” 1804년에 이르면, 아마싸가 수백만마리의 물개가 있었다고 추정한 바로 그 섬에는 물개보다 선원이 더 많았다. 2년 후에는 물개가 한마리도 없었다.

 

 

문명의 기제

 

실제의 아마싸와 소설의 에이헙은 미 제국의 두 얼굴을 나타내는바, 그 사이에는 거의 완벽한 역대칭성이 존재한다. 아마싸는 덕성스러운데 에이헙은 원한에 사무쳐 있다. 아마싸는 세계에 대한 얄팍한 지각에 갇혀 있는 듯한데, 에이헙은 심오해서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아마싸는 악(특히 자신의 악)을 보지 못하는데 에이헙은 오로지 자연의 “형언할 수 없는 악의”만을 보는 것이다.

양자가 모두 그 당시의 가장 약탈적인 산업을 대표하는바, 그들의 배는 델라노가 한때 “문명의 기제”라고 부른 것을 태평양에 싣고 가서 강철과 철, 불을 사용하여 동물들을 죽이고 그 사체를 현장에서 가치로 변환한다.

그러나 에이헙은 예외로서, 모든 합리적인 경제적 논리에 반하여 흰 고래를 사냥하는 반란자이다. 그는 자신의 배가 표상하는 ‘기제’를 탈취해서 ‘문명’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용주들과 맺은 계약을 위반하면서 돈끼호떼식의 추적을 밀고 나간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그의 망상이 선주(船主)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하자 에이헙은 그런 걱정을 이렇게 일축한다. “선주들이 낸터킷 해변에 서서 태풍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쳐보라고 그래. 에이헙이 무슨 상관을 하겠어? 소유주, 소유주라고? 스타벅, 자넨 그들이 마치 내 양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그 구두쇠 같은 소유주를 노상 들먹거려.”

에이헙과 같은 반란자들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파괴의 주된 동인은 아니다. 그들은 동물을 거의 멸종시킬 정도로 사냥할—혹은 오늘날 세계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가는—사람들은 아니다. 결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채취의 최전선이나 회사의 밀실에서 지구의 파괴를 날이면 날마다 가차없이, 아무 경고도 없이 이목을 끌지 않고 집행하는 이들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인데, 그들의 행위는 뉴욕, 런던, 상하이의 주식거래소에서 갈수록 큰 규모로 이뤄지는 일련의 금융적 추상행위와 계산에 의해 통제된다.

에이헙이 여전히 이 세계의 예외라면 델라노는 여전히 규칙이다. 그의 긴 회고록 곳곳에서 델라노는 자신이 투자자와 보증인의 이익을 해치는 어떤 행동도 꺼리며 해양법의 관습과 제도에 항상 충실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는 재산권 수호의 중요성을 서술하면서 “모든 나쁜 결과들이란 자기 의무를 인식하고 있고 그 의무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면 피할 수도 있다”라고 썼다.

물개잡이꾼을 고래잡이꾼과 분리하는 차이가 분명해지는 것은 마침내 자신이 정교하게 연출된 사기극의 표적이었음을 일단 깨닫자 델라노가 서아프리카 반란자들에게 보인 반응에서다. 넋을 빼놓는 에이헙—“벼락에 갈라진 오래된 참나무”6)—은 정서적인 자력(磁力)을 사용하여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따라 운명적인 모비 딕 사냥에 동참하게 만든 20세기 전체주의자의 원형으로, 외다리 히틀러 혹은 스딸린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델라노는 선동가가 아니다. 그의 권위는 훨씬 흔한 권력 형식, 즉 노동의 통제 그리고 줄어드는 자연자원의 시장성있는 품목으로의 전환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물개들이 사라짐에 따라 그의 권위 역시 사라졌다. 그의 선원들은 처음에는 불평을 하다가 나중에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델라노는 델라노대로 배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체벌에, 아무리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채찍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가 스페인 노예선을 만난 것이다. 델라노는 개인적으로는 노예제도에 반대했을 수 있지만 일단 자신이 바보로 놀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자 자기 선원들을 조직해서 노예선을 탈환하고 반란자들을 폭력적으로 평정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델라노가 “극도로 날카롭고 신사의 칼만큼이나 빛나는”이라고 묘사한 물개잡이 창을 이용하여 반란자 몇몇의 창자를 끄집어냈고 그들은 자신의 내장에 덮인 채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수요와 공급의 철칙에 옥죄이고 생태적 고갈의 소용돌이에 갇힌 채, 죽일 물개도 남아 있지 않고 벌 돈도 없으며 승무원들은 반란 직전인 상태에서 델라노는 선원들을 동원해 흰 고래가 아니라 흑인 반란자들의 추격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너덜거리는 권위를 다시 확립했다. 살아남은 반란자들의 경우 델라노는 그들을 다시 노예로 만들었다. 물론 관례에 따라 반란자들과 그 배를 소유주들에게 돌려보냈다는 뜻이다.

 

 

우리의 아마싸들, 우리 자신들

 

멜빌은 에이헙을 통해 과거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강박적인 에이헙 선장을 천상에 반역하다가 추락한 천사 루시퍼에 근거를 두고, 그를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7) 그리고 쉼 없이 국경 너머로 나아가려는 미국의 충동과 연관시켰다. 멜빌은 아마싸를 통해 미래를 언뜻 보았다. 실제 선장의 회고록을 이용하여 그는 하나의 새로운 문학적 원형을 창조했다. 자신의 올바름을 확신하는 도덕적 인간이지만 원인과 결과를 연결지을 줄 모르고, 파국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자기 행위의 결과는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 말이다.

우리의 아마싸들, 그들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다. 그들은 자기 의무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의무의 명령에 충실히, 지구가 끝날 때까지 따르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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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욕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 1967년 12월 7일자에 게재된 촘스키의 글(“On Resistance”) 참조—옮긴이. 본문의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것이다.

2) Amasa Delano, A Narrative of Voyages and Travels in the Northern and Southern Hemispheres (Boston: E. G. House 1817).

3) 수압을 이용하여 지하 혈암(shale) 층에 균열을 일으켜 그 속의 천연가스를 채취하는 방식.

4) 제국의 통제하에 이방인이 특정 지역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원주민을 착취하고 몰아내는 형태의 식민주의.

5) 베블런(T. Veblen)이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도입한 개념으로서, 부를 과시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행하는 소비.

6) 이마에서 목까지 하얀 막대 모양의 흉터가 있는 에이헙을 지칭하는 표현. 『모비 딕』 28장 참조.

7) 미국은 신으로부터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지배할 운명을 부여받았다는 이데올로기로서, 19세기 중후반 미국 팽창기에 널리 유행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