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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홍성태 『김진균 평전』, 진인진 2014
인식론적 단절의 가르침과 실천
최갑수 崔甲壽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kchoi7@snu.ac.kr
청정 김진균(菁丁 金晋均, 1937~2004) 선생이 타계한 지도 어언 십년이 지났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참으로 그가 마석 모란공원 민주화묘역에 묻힌 이후 우리 사회는 변해도 너무 엄청나게 변해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다. 그가 이승을 떠날 때만 해도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밀어닥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런대로 살아 있었다. 그는 노무현정권에 대해 별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을 보듬을 만한 온기를 품은 듯 보였다. 사실이지 이른바 ‘IMF경제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빈소에서 누군가가 그의 때이른 타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그래도 선생은 좋은 때 가셨어!’라고 되뇌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후 나는 우리 사회에 격변이 벌어질 때마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하고 자문하곤 했다. 1980년대 중반에 그를 만난 이후 언제부터인가 그가 내 삶의 준거의 일부를 이루었기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그리고 지금 또 묻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그리고 실천할까?
바로 이 일을, 그러니까 김진균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작업을 홍성태(洪性泰) 교수가 훌륭하게 해냈다. 우선 그는 이 일의 적격자다. 그는 김진균의 제자일 뿐 아니라 학문적 동반자요 교수운동의 후배였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언제나 근거리에서 선생과 함께했던 몇 안되는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선생을 잘 이해하고 또 설명할 수 있는 드문 위상을 지닌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할 수 있다. 평전이란 한 개인의 일생에 대한 ‘비판적 전기’인데, 그러기에는 그가 평전의 대상과 너무 가까워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런 지적에 대해 저자는 답한다. “김진균 선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실천가나 운동가의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선생의 정체성은 바로 학자입니다.”(머리말) 그러니까 저자는 김진균의 실천을 무엇보다도 학문적 실천으로 보며, 그의 삶을 ‘앎’과 ‘함’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저자는 김진균이 1962년부터 2003년까지 41년에 걸쳐 남긴 온갖 종류의 글을 모두 모아 소화하고는 이를 두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하나는 그것을 그의 실천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징표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진균의 글은 한편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드러내는 분석 대상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는 해석의 단서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김진균 평전』(이하 『평전』)의 특장(特長)이다. 저자는 김진균의 학문과 실천을 ‘사회변화의 맥락’에서 조명함으로써 ‘비판적 거리’ 유지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한 개인을 통해 사회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도달한다. 참으로 그는 김진균을 우리 현대사에 다가가는 접근로의 하나로 부각시킨다.
김진균의 삶의 궤적에는 “일제, 해방, 분단, 전쟁, 이승만 독재, 4·19혁명, 5·16 군사반란, 박정희 독재, 유신 쿠데타, 12·12 군사반란, 5·17 군사반란, 전두환 독재, 6월항쟁, 민주화, 사회주의의 몰락, 자본주의의 확대, 신자유주의의 강화 등”(323면)의 심급을 달리하는 역사적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 가운데 그의 일생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된 시기는, 하나는 1960년 4월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유신독재 말기부터 전두환 독재에 이르는 1970년대말에서 80년대초이다. 전자는 그가 인식의 독자적인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마무리지으며, 후자는 그가 ‘인식론적 단절’을 통하여 ‘실천적 지식인’으로 우뚝 서는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근의 학원사태에 관한 성명」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을 발표하고 합동수사본부의 연행과 구금, 교수 해직으로 이어지는 고초를 겪었다.
『평전』은 바로 이러한 김진균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격변을 증언한다. 책 속에서 1980년 이후의 현대사는 그의 실천적 학문의 성과 가운데서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모습을 드러내는 한편, 그 이전은 성년기의 회고와 성찰을 통해 재구성된다. 예컨대 6·25전쟁과 4·19혁명은 그를 통해 마치 편린처럼 현실의 작은 일부를 언뜻 내비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흥미롭다. 한 ‘진주 사내’가 꼼꼼하고 풍부한 글쓰기, 사진, 기타 자료작성을 통하여 자신의 일대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지식인 연구의 좋은 사례가 될 만하다. 하지만 『평전』의 호소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김진균의 논저들을 뒤져 현대사의 사건이 그의 현실인식에 미친 영향과, 그의 학문과 사상이 우리의 사회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작용한 계기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김진균을 통해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해직교수협의회 활동, 상도연구실과 산업사회연구회 설립, 민교협·전교조·전노협의 창립 등의 사건이 ‘민족과 민중의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으며, 민중사회학과 진보학문의 전망이 열렸다. 또한 김진균은 말년에 ‘상자이생(相資以生, 서로 도우며 살아감)’의 기반 위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원통(圓通)적 인식에 도달했는데 그를 통해 다산(茶山)과 연암(燕巖)이 한국현대사와 만나고, 국민·민족·계급·여성·어린이·기타 소수자들이 뒤틀림 없이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여전히 김진균을 불러내야 하는가? 이 참혹한 침몰의 시점에서 왜 우리는 김진균을 관통해야 하는가?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참으로 뼈아프게 요청하는 ‘인식론적 단절’을 그가 몸소 실천했으며, 이를 통해 인식과 실천의 통일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성은 그 자체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급에 ‘위로부터의 혁명’을 강제하며, 이를 이루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통한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요청한다. 직접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지식인의 소임은 징후적 독해, 비판 그리고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식론적 단절은 기존 모순의 중첩적 구조에 대하여 해방적 길을 모색하는 이론적 실천이다.”(281면) “단지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이 세상의 구성을 새롭게 보고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과 그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식론적 단절’이, 기존의 모든 것을 (…) 인식론적으로 단절해버리는 아픔의 과정이 필요하다.”(213~14면)
대학이 기업이 되고 국가조차 공공성을 외면하는 이 유체이탈의 자본주의 시대에 김진균은 진정으로 새로운 출발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온몸으로 전한다. 참으로 선생은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이룩해낸 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