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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하승수·서형원 『행복하려면 녹색』, 이매진 2014

행복을 선택하는 용기

 

 

금민 琴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 minima2003@daum.net

 

 

164-촌평-금민_fmt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河昇秀)와 과천시의원 서형원(徐炯源)이 함께 쓴 『행복하려면 녹색』의 화두는 행복이다. 책은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가장 불행하다는 조사결과(한국방정환재단)와 노인 자살률도 가장 높다는 통계(한국보건사회연구원)로부터 시작한다. 굳이 통계자료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왜 불행한가? 물론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부탄처럼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와 내면적 행복의 불일치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서문에서 강조하듯이, 녹색에 그렇게 “경건한 이미지”를 덧씌워서는 안된다. 녹색은 “서로 어울리는 삶,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 “소박하고 유쾌한 삶”, 한마디로 “좋은 삶”을 지향한다(15면).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왜 행복하지 못하며 ‘좋은 삶’은 앞으로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하승수는 불행의 현실적 구조를 파헤친다. “우리 사회의 물질적인 평균수준은” “이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만큼은 충족됐다.”(23면) 한국은 소득이 적어서 불행한 나라가 아니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불행한 나라다. 그는 바로 그 불평등의 원인이 지금까지의 성장주의에 있다고 본다. 경제성장은 임금격차, 빈부격차, 도농격차를 키웠고 온갖 토목사업의 명분이 됐다.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여 에너지 소비가 큰 산업들을 키워온 명분도 경제성장이다. 이같은 진단에는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위기와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지금까지의 성장방식을 폐기하고 다른 방식의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보다 더 나아간다. “‘생태적 성장’이니 하는 말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이제는 경제성장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라는 얘기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36면) 성장주의의 폐기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생태적 성장’이나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로 우회한다면 결국 “환경도 복지도 뒤로 밀”릴 것(31면)이라며 저자는 2012년 문재인(文在寅) 후보의 대선정책을 비판한다. “우리에게 정말 경제성장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야말로 “행복을 둘러싼 핵심 쟁점”(24면)이다. 경제성장은 사회적 위기와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고, 성장주의의 폐기는 위기를 해소하는 출발점이다. 물론 이 책이 주장하는 “탈성장”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것은 “성장 중독증에서 벗어나자는” 얘기이며 “이제는 경제성장 말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자는 것이다.”(35면) 바로 그 ‘다른 가치’란 모두의 행복이고,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저자는 녹색 전환이라 부른다.

녹색 전환은 “생태적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모두 극복해나가자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도 구하고, 세상이 좀더 정의로워지고, 우리가 좀더 행복해지는 길”(97~98면)이다. 녹색 전환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성장주의를 벗어나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하나로 만난다. 첫 부분인 생태적 전환의 프로그램은 2030년 탈핵, 2050년 탈화석연료를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전환을 비롯해 분산형 사회의 형성, 쓰레기 문제, 농업 대안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대해, 책은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는 눈감은 “타이타닉 현실주의”(55면)라고 꼬집는다. 생태 한계에 도달한 지구 전체는 타이타닉호이며 우리는 그 승객인지 모른다. 게다가 최근 세월호 참사가 난 상태에서도 고리 원자력발전소는 운영을 재개했다. 후꾸시마 발전소도 그랬듯이 가동 연수를 연장하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이제야말로 생태적 안전을 돌볼 절박한 시점이 되었다. 이 책은 사실 해묵은 주제이지만 제대로 토론되지 않았던 탈핵에 대해 통계와 사실에 근거하여 차분한 설명을 제공한다.

녹색 전환은 에너지나 환경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전환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개략적이지만 책은 기본소득, 생활임금, 노동시간 단축을 연동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과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불평등을 낳고 행복을 파괴한다.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체제가 해소될 때에만 행복의 가능 조건도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의 특징적인 입장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어떤 일자리인지가 중요하다”(119면)라는 관점에서 드러난다. 이는 저임금 일자리의 확산이 실업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자리 문제의 생태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핵발전의 확대로 생기는 일자리나 나쁜 먹을거리를 제공하여 환자 수를 늘리는 일자리 등은 GDP 성장에는 기여했는지 모르지만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심각한 불평등과 생태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120면)한데, 두 저자에게 그것은 기본소득이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생태적이다. “사회 전체적인 기본소득이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하다면 농민부터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제안”(124면)도 식량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생태적 관점이라고 읽힌다.

이 책은 “경제가 성장하면 행복해진다는 미신”(24면)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한다. “이제는 행복을 선택하는 용기를 갖자. 행복하려면, 녹색이다.”(15면) 행복해지려면, 사회적 차원과 생태적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녹색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치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만 보아도, 저자가 강조하듯이, 그것은 “환경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다.”(64면) 녹색 전환은 풀뿌리운동만으로 감당할 수 없으며 녹색정치가 필요하다. 녹색정치가 뿌리내리는 데 이 책의 기여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메시지의 공명효과에 거는 기대 못지않게 내용 자체로도 이 책은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간략한 통계와 수치를 보여주는 서술방식은 커다란 장점이다. 또한 하승수는 시민운동가와 로스쿨 교수를 거쳐 녹색당 운동에 뛰어든 자신의 삶의 궤적을, 서형원은 풀뿌리운동에서 출발하여 지역정치 활동을 거쳐 녹색당에 이르는 경험을 보편적 문제 지평 위에 놓고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서형원이 쓴 브라이턴 앤드 호브(Brighton and Hove)와 프라이부르크(Freiburg) 탐방기는 좀더 앞서간 사회의 현황을 실감있게 안내하는 참고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