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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
한국언론, 몰락인가 갱생인가
정연우 鄭然雨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언론학.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한국언론정보학회장 역임. 『방송통신 융합과 지역방송』(공저), 『디지털 시대와 미디어 공공성』(공역) 등이 있음. 58cyw@hanmail.net
1. 침몰하는 주류언론과 JTBC의 약진
한국의 공론장 구조가 출렁인다. 의제와 여론의 방향을 정하는 정보 생산과 유통의 경로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여론형성을 이끌던 매체의 쇠락이 눈에 띈다.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공영방송의 몰락과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영향력 퇴조이다.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에서 언론도 함께 침몰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언론은 국민의 분노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KBS와 MBC, SBS 등 지상파에 대한 신뢰 추락이 여론형성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제가 되었다.
참사 보도를 보며 시민들은 언론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였다. 특히 방송보도가 비난의 중심 표적이었다. 방송사들은 참사 직후 특보체제로 전환하면서 양적으로는 엄청난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기존 뉴스의 반복 재탕에 그치며 알맹이가 빠진 보도만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사상 최대의 구조활동’ 등 사실과 다른 정보가 확인도 없이 기사화됐다. 치열하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정부 등의 발표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국민은 정부가 사실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뭔가 감추고 있다고 믿는데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기에 바쁜 모습으로 비쳤다. 실종자 가족이나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 등을 보도하면서 ‘감정팔이’ 하는 선정적 상업주의도 불신을 부추겼다. 비판과 검증 없는 정부발표 받아쓰기, 현장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보도는 ‘언론재난’이라고 비난받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토록 깊었던 적은 없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에도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았지만 이번처럼 언론 전체가 비난받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KBS의 탐사보도, MBC <PD수첩> 등으로 방송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문보다 오히려 방송에 대한 불만이 더욱 높은 양상이다. 사람들은 언론취재를 거부하고 기자들을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조롱했다.
세월호참사 관련 왜곡·편파보도에 이어 KBS 보도국장이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는 막말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유가족들이 KBS에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뒤이어 정권에 불리하지 않도록 사장이 계속 보도를 통제했다는 그의 폭로로 KBS가 공영방송이 아니라 ‘청와대 방송’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민의 편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KBS가 편파·왜곡보도로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MBC도 참사와 관련해 고귀한 생명의 구조보다는 보험금이나 계산하는 보도, 갖가지 오보에다가 간부들의 비상식적 막말로 더욱 신뢰를 잃었다.
연합뉴스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공영방송에 대한 분노가 워낙 깊어서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언론에 대한 신뢰의 둑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구멍이었다. 팽목항에서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뉴스는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보도로 현실을 왜곡했고 다른 기자로부터 ‘그게 기사냐’라며 욕설을 듣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국민은 정부와 주류언론이 진실을 은폐·조작하고 있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실제로 정부의 발표나 해명과는 다른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주류언론에 대한 불신의 반사효과는 JTBC와,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의 몫이었다. KBS가 조사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참사 후 한달 동안 SNS 민심은 지상파 3사 등 기존 미디어보다 JTBC와 대안 미디어로 쏠렸다. 특히 JTBC뉴스의 약진은 언론지형 변화의 진앙지가 되었다.
여론조사에서도 JTBC가 가장 신뢰받는 방송사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5월 22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따르면 응답자 중 27.9%가 JTBC를 가장 신뢰하는 방송으로 꼽았다. ‘수신료의 가치를 감동으로 전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KBS는 20.6%, SBS는 11.0%, 또 하나의 공영방송 MBC는 겨우 10.5%에 그쳤다. 또한 응답자의 66.8%는 KBS와 MBC가 세월호 관련 보도를 공정하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 JTBC 뉴스9>은 손석희(孫石熙) 앵커의 냉정하고 깊이있는 보도와 진행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스 진행도 사건사고의 단순나열에서 벗어나 사회적·정치적 현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취재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세월호참사 보도에서 보도자료 받아쓰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고 각종 의문점을 짚었다. 선장의 부실 대응에 초점을 맞춘 지상파 방송과는 달리 정부의 부실 대응을 부각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배려하고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진행을 통해 진정성있는 뉴스보도라는 평가까지 얻게 되었다. 신뢰가 높아지자 각종 동영상 제보 등도 JTBC로 몰렸다. 진보적인 시청자,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시청자가 이 매체를 선호하는 흐름이 눈에 띄는데, 특히 한국갤럽의 조사결과를 보면 다른 세대에 비해 이삼십대가 JTBC를 훨씬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포털 싸이트 등을 통해 유입되는 시청자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JTBC는 다음 등의 포털을 비롯하여 온라인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앞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바일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시청자군이 날로 늘고 있고 특히 이러한 환경에 친숙한 젊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상파 방송 뉴스 선호도의 하락세는 뚜렷하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KBS는 지난해 37%에서 올해 28%로, MBC는 17%에서 12%로, SBS는 12%에서 7%로 낮아졌다. JTBC가 주요 사안에 집중해 심층보도를 하는 데 비해 지상파는 1~2분짜리 짧은 뉴스 중심으로 진행을 한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단편적 단발성 뉴스는 이제 방송의 몫이 되기 어렵다. 이런 유형의 뉴스 아이템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다. 인터넷이 뉴스 유통의 중심 매체로 부각되기 이전만 해도 방송은 신문 등 인쇄매체에 비해 속보성이 매우 뛰어난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단편적 사실 중심의 뉴스를 신문보다 빠르게 전달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문은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매체로, 방송은 속보 매체로 분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방송의 그러한 기능은 인터넷으로 넘어갔다. 시청자는 방송을 통해서도 사건의 원인과 배경, 의미와 대안 등에 대해 알고자 한다. 지상파가 이러한 시청자의 요구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방송이 SNS와 속보경쟁을 하려 했던 것도 오보를 양산하는 요인이 되었다.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정보보다 먼저 보도하려는 의욕 때문에 사실의 확인이나 검증 없이 서두르다가 오보를 하게 된 것이다.
2. 대안언론의 부상과 뉴스 유통환경 변화
많은 대안언론이 온라인 생중계와 유튜브 채널을 통한 접근으로 주목을 받았다. KBS 조사에 따르면 MBC 해직기자 출신인 ‘고발뉴스’의 이상호(李相湖) 기자 등이 세월호 보도의 대안 언론인으로 부각됐고 트위터 이슈 분석에서도 ‘고발뉴스’(42%), ‘미디어몽구’(23%) 등 대안언론과 1인 미디어 등의 보도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본의 논리에 벗어나서 언론 본연의 탐사·비판·감시 기능, 성역 없는 아이템 선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 중 몇몇 매체는 지속 가능성을 어느정도 확보하고 물적 토대를 구축했다. 대안언론은 광고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후원이나 협동조합이라는 수익모델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본이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물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후원자나 조합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곧바로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치열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안언론에서도 분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뉴스타파’는 전통적 방송 포맷으로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 ‘김어준의 KFC’는 연성화된 오락적 요소, 사실과 해석, 적절한 풍자와 과장 등을 버무려서 재미를 더해주면서 현실인식을 만들어가는 포맷이다. 몰입도와 전달력 그리고 열광적 지지자의 결집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 해직된 방송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뉴스타파는 비영리법인 탐사저널리즘센터로 기반을 구축하며 탐사보도 전문매체로 진화했다. ‘돈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명한 세계적인 미국의 비영리 탐사전문 언론 프로퍼블리카(ProPublica)에 비견될 정도로 단기간에 대중성을 확보해나간 것이다. 지난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비자금을 빼돌린 사실을 방송했고 각 언론사들은 이 보도를 인용 보도했다. 이는 뉴스타파의 존재를 대중에게 확고하게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발뉴스’ ‘팩트TV’ ‘국민TV’ ‘미디어몽구’ 등도 이번 보도에서 큰 호응을 받은 대안언론이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각종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대안언론의 콘텐츠와 보도는 피해자 가족을 비롯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대안언론이 콘텐츠를 내보내는 플랫폼은 SNS를 비롯한 인터넷, 유튜브, 팟캐스트와 RTV(시민방송) 등이다. 아직은 소비계층이 제한적이어서 주류매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상파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비해 파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뉴스타파 등은 RTV 채널을 통해 재방송되지만 시청자 수는 많지 않다. 이는 특별한 관심이나 쟁점이 있어서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찾을 때만 큰 사회적 반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약은 반대로 대통령선거나 세월호참사 같은 전국민적 관심사, 국민적 의혹 등이 등장할 때에는 대안언론이 국민의 관심과 궁금증을 자양분으로 여론지형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뉴스 소비통로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옮겨가는 추세는 대안언론에 새로운 기회의 땅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높일 전망이다. 구글이 개발한 ‘크롬캐스트’는 스마트폰이나 PC의 영상을 TV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 미디어 지형의 재편을 예고하는 기술 진화다. 유튜브에 실린 동영상, 팟캐스트 등을 TV 수상기로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아직은 보급 초기이고 설치하는 데도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어서 확산에 어느정도 시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안언론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넘어서, 소파에 편히 드러누워서 대형 화면으로 대안언론의 영상을 시청할 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의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2013년 뉴스 공급방식을 바꾸었다. 주요 뉴스를 선별하여 보여주는 ‘뉴스 캐스트’에서 각 신문 뉴스를 같은 비중으로 나열하는 ‘뉴스 스탠드’로 바꾼 것이다. 이제 이용자가 포털에서 관심있는 신문의 뉴스를 직접 선택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각 언론사는 네이버를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에 뉴스의 유통을 넘기고 생산만 담당하는 조직이 되었다. 신문과 뉴스의 선택권은 이제 이용자에게로 넘어갔다. 마트에서 경쟁하는 다양한 상품을 직접 고르듯 뉴스 소비자가 포털에서 신문을 고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뉴스 유통경로의 변화는 전통적인 주류매체의 여론 지배력 쇠락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의 신문시장은 가정배달 중심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발행부수가 적은 매체는 여론형성을 이끌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좋은 아이템과 시각 그리고 내용의 완성도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음을 뜻한다. 콘텐츠 생산능력으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몸집만 내세우는 거대 신문은 현재 앙상한 껍데기만 남은 채로 점점 설자리가 좁아드는 추세다. 신문시장만 놓고 보면 존 밀턴( John Milton)이 말한 ‘사상의 공개시장’이 작동될 기반이 무르익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포털이 새로운 기회의 마당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출입처에서 받아쓰기 하는 것만으로도 유통망 덕분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던 시대가 저물어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월에 발표한 ‘2013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신문의 가구 정기구독률은 지난 2006년 40.0%에서 2013년 20.4%로 7년 만에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사실상 10가구 중 2곳만 구독료를 내고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다. 뉴스 소비의 경로가 신문·방송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가정 정기구독 중심의 유통체계는 뉴스의 품질이나 선호도로 경쟁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인터넷 공간은 가판시장보다 더 직접적으로 기사 간 경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매순간 선택의 경쟁을 견뎌야 하기에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편집으로 눈길을 끈다. 그러다보니 ‘제목 장사’가 판을 치기도 한다. 이른바 온갖 ‘어뷰징(abusing)’2)이 이루어지는 살벌한 생존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유통망 우위만으로 여론과 의제를 지배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물론 기존의 취재편집 및 시장경쟁 방식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내부적인 관행과 문화로 굳어 있고 이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쉽게 자기혁신에 나서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룡처럼 몸집이 불어나 있고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기 하는 데 길들여진 기존 주류매체가 쇠락하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들의 여론과 의제 주도력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모바일에서도 실시간 대화 프로그램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가 뉴스 제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뉴스를 늘어놓은 포털 사이트와 달리 이용자가 미리 설정해놓은 주제와 선호하는 언론사의 뉴스를 정해진 시간에 직접 전달해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이용자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볼 필요도 없이 뉴스를 배달받을 수 있게 된다.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해 전달해주는 이러한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는 포털에 비해서도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가입자가 3700만명이나 되는 카카오톡은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다. 뉴스 유통의 거대 공룡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지않아 뉴스 생산업체인 언론사들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거대 뉴스 유통업자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단순 협력업체 수준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3. 종편과 SNS, 공론장을 둘러싼 격돌
2011년 12월 개국 이후 종편(종합편성채널)은 편파·왜곡 방송으로 비판받으면서도 나름 꾸준히 시청률을 높이면서 고정 시청자를 다수 확보해가고 있다. 종편 시사물에 중독될 정도의 시청자군도 형성되었다. 특히 주 시청자인 60대 이상 노인층의 ‘종편 사랑’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대 이상의 25.8%가 방송 뉴스를 주로 종편을 통해 본다고 응답했다. 지상파와 달리 종편은 낮시간이나 심야시간에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편성한다. 생업에 매이지 않아 여유시간이 많은 이들이 밤낮 없는 종편의 주요 시청자군이다. 종편의 방송 내용은 이들의 각종 모임에서 주요 화젯거리가 된다. 종편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감을 느낄 정도가 되니 관심은 더욱 높아간다. 대화를 주도하여 존재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빠져들게 된다. 초기에 비해 시청자층이 50대와 40대까지 확장되면서 시청률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뉴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다. 이는 유사 보도채널로 변신한 종편의 전반적인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시사프로그램의 예능화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이른바 시사평론가라는 출연자를 내세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방송의 품격이나 공정성 등은 아예 처음부터 내팽개쳐진다. 이들 종편은 2012년 대통령선거, 국정원 선거개입, 노무현정부의 NLL 포기 논란, 종북몰이 등 주요한 현안 이슈의 고비마다 편향적 독설로 융단폭격을 해대며 보수층을 결집시킨다. 이번 세월호참사 보도에서도 JTBC를 제외한 종편들은 보수진영에 유리한 여론지형을 만드는 데 맹활약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특히 ‘유병언 몰이’에 가장 앞장섰다. 정규 뉴스와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전 세모그룹 회장 고(故) 유병언이 빠지는 날이 없었다. 세월호참사의 모든 책임의 정점에 그를 올려놓았다.
종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 뉴스는 지상파와 보도전문 채널이 안정적으로 시청률을 나누었다. 그러나 종편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상파와 달리 종편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보도 또는 유사 보도 프로그램으로 방송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채우면서 이를 주력상품으로 삼았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제작비용이 덜 들고 쉽게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영적 고려 때문이다. 종편의 막말과 흥미 위주의 유사 보도 프로그램이 뉴스 전반에 대한 수준과 기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렸다. 시청률을 높이려다보니 방송 뉴스가 더욱 오락상품화하게 된 것이다. 욕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보듯 시청자들은 종편의 편향성을 비판하면서도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중독되어간다. 처음엔 1%에도 못 미쳐서 ‘좀비 방송’이라고 비웃음을 사던 종편의 시청률은 어느새 각 채널을 합치면 지상파 한곳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식당이나 버스 터미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TV조선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채널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사람들의 속물적 관심을 자극하면서 보수층은 물론 일반인의 화젯거리를 만들어냈다. 공론은 사라지고 교묘하게 의도된 질 낮은 잡담거리만 풍성하게 된 것이다. 여론을 황폐하게 만드는 종편은 민주주의의 숲에 뿌려지는 고엽제와 다름없다.
한편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SNS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SNS는 아무래도 전문적인 취재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이 일반 언론에 비해 뒤쳐진다. 정보의 완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가 양산되고 그런 무책임한 내용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허위사실이라도 금방 확산되기 때문에 여론왜곡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괴담’이라 깎아내리며 건강한 여론마당이 휘둘린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특히 그동안 여론을 선도해왔다고 자처하는 언론일수록 이러한 현상에 반감이 깊다. 조선일보는 올해 6월 ‘SNS가 만드는 위험사회’라는 특집을 며칠에 걸쳐 실으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의제설정과 여론 주도력 상실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 보인다.
그런 SNS가 점차 뉴스 소비의 새로운 안내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용자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자신이 읽은 정보나 내용을 연결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사회관계망을 통해 또다른 확산자 구실을 한다.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개인들이 구전을 통해 확산시키던 기존의 방식 대신에 이제는 SNS가 중심 매개체로 떠오른 것이다. 입소문에 의존할 때에는 보도내용을 수용자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거나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이지만 SNS를 통해서는 원문 또는 프로그램 내용을 그대로 연결시켜주므로 더욱 생생하고 가공 없이 퍼져나간다. 이는 뉴스 소비에서 수용자의 주도권이 더욱 강화됨을 의미한다. 이제는 뉴스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의제를 만들고 자신의 관점과 입맛에 맞는 아이템, 가치와 배경, 의미, 해석과 대안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점점 저물어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나 자본의 통제가 없는 SNS 정보를 더 믿게 된다. 특히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해질수록 온갖 음모론이 활개를 치게 된다. 우리 여론지형에서 SNS의 영향력 증대는 단순히 기술적 진화와 매체이용 패턴의 변화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 기득권을 옹호하느라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언론에 대한 외면이 빚어낸 결과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 사람들이 진실을 갈구하게 되고 그 틈새에 대안언론과 SNS가 비집고 들어간 모양새다. 물론 대체로 SNS는 비슷한 현실인식, 어떤 사안에 대한 유사한 해석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논점,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어가는 데는 여전히 한계를 보인다. 온전한 의미의 소통이라기보다는 기존 관점을 강화하고 정당화·합리화하는 기능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진영 간의 합리적 소통을 가로막고 이념, 지역,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면서 사회통합을 해친다는 이러한 지적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기존 언론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논조와 의제설정의 차이를 드러내고 같은 성향의 수용자를 결집해 특정한 프레임을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SNS는 그 편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또 차분하고 논리적인 정보보다는 관심을 끌 수 있는 폭로성 정보가 더 주목을 받는다. SNS에서 유통되고 관심을 끄는 정보는 기득권의 행태에 대한 폭로, 조롱 등이다. 기득권, 특히 정치, 경제, 언론 등 보수의 강고한 연맹으로 굳어진 세력에 대한 비판적 성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SNS가 여론형성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정보는 홍수처럼 널려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걸러주고 확인해주며 관점을 만들어주는 매개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매체가 등장했다. 미국에서 2005년 운영을 시작한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의 한국판인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다. 새로 뉴스를 찾아내기 위한 취재는 하지 않고 기존 뉴스를 모으고 고른 뒤, 재편집하고 의미를 해석해낸다. 엉터리 오보나 자극적인 선정 보도가 넘쳐나는 가운데 이들을 골라주고 재해석하거나 종합하여 현실인식을 안내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칼럼니스트와 블로거가 넘치는 정보를 선별해주고 현실을 보는 창을 마련해준다. SNS의 현장성과 속보성에 전문성을 접목한 셈이다. 온갖 정보가 넘치고 진실과 거짓이 잘 구별되지 않으며 기존 언론이 신뢰를 잃어갈 때일수록 이러한 매체는 더욱 주목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4. 보수언론의 여전한 주도력: 유병언 몰이와 경제 의제
불신이 높고 영향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주류언론은 아직까지 의제와 담론을 지배하고 여론 흐름을 주도한다. 속죄양을 만들어 정부 책임론을 무력화하려는 프레임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선사(船社)와 선주(船主)의 책임으로 몰아감으로써 정부 책임에 대한 관점은 희석되었다. 처음에는 선장의 무책임과 파렴치로 몰아가다가 다시 사실상의 선주로 알려진 유병언씨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TV조선을 비롯한 종편들은 연일 유병언씨의 사생활을 비롯해 자극적 내용으로 관심을 끌어갔다. 그를 잡기 위한 추격전을 거의 생중계하는 수준이었다. 온갖 ‘소설’과 상상력으로 풍문을 만들고 부풀렸다. 어느덧 세월호참사의 정부 책임은 묻히거나 잊히고 유씨만 악마로 남았다. 정부의 무능과 사건의 본질은 뒷전이고 오로지 유병언 몰이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검찰과 정부도 함께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유병언만 잡으면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풀리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유씨의 은신처는 물론이고 측근, 행적, 여성편력, 식성, 스타일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들추어졌다. 유씨의 아들인 유대균씨와 함께 검거된 박수경씨도 상업주의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미모, 유씨와의 관계, 결혼과 이혼, 호위무사라는 명명 등으로 속물적 관심을 증폭시켰다. 진보적 언론들도 이에 편승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병언과 세모그룹, 구원파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정부 책임은 어느덧 희미해졌다. 정부와 주류언론은 이로써 여론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물론 구원파, 세모, 유병언씨의 온갖 의혹과 알려지지 않았던 종교적 신비 등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극적 요소를 담고 있다. 여론 호도용 본질 흐리기에 동원하기에 맞춤한 요소가 내재되어 있고 정권과 보수세력 그리고 언론이 이를 위기탈출의 구명줄로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SNS에서도 이러한 악마화 전략이 적절히 작동했다. 세월호참사의 책임과 본질을 호도하여 기형적이고 저급한 담론이 한국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개조’를 의제로 설정하려던 정권과 보수언론의 시도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국가개조론은 정권 차원의 책임을 벗어나 민심을 수습하고 내각을 재정비해 국정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책략이었다. 관료의 무능과 관련 업체와의 유착 등을 부각하며 이러한 ‘적폐’를 몰아내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거대한 담론이었다.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고 총리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하면서 새로운 진용을 짜고 국정원 대선개입, 경제민주화 후퇴 등 그동안 정권에 부담이 되었던 모든 의제를 쓸어버릴 수 있는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 보수언론도 이에 호응해 ‘관피아’ ‘적폐’ 등의 용어를 연일 쏟아내며 잘못된 관행을 털어내고 국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여론흐름을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총리 지명자가 인사청문회에도 가보지 못하고 잇달아 낙마하면서 이러한 시도는 허탕을 쳤다. 더구나 사표를 냈던 정홍원(鄭烘原) 총리가 다시 돌아오면서 국가개조 의제는 동력을 잃었다.
여론지형에서 정부와 보수진영의 국가개조 담론을 무력화시킨 것은 SNS와 대안매체이다. 보수언론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문창극(文昌克) 총리 지명자의 친일발언 논란을 촉발시킨 교회 동영상을 보도한 KBS가 발언의 앞뒤 맥락을 자르고 편집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KBS가 악의적으로 문창극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인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국민적 분노에 불이 붙으면 여론의 방향타를 돌리기는 어렵다. 그 여론재판은 SNS가 맡았다. 문창극의 칼럼, 발언, 대학강연 등에서 그의 식민사관, 친미적 의식, 극우편향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다양한 근거가 숱하게 쏟아졌다. 밀려오는 거대한 여론 쓰나미를 권·언 보수동맹체도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여론싸움의 전황은 보수 기득권세력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기울었고 마침내 이들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국가개조 담론은 관피아 등 몇가지 유행어만 남기고 앙상하게 퇴조했다. 정부가 7월 들어 ‘국가혁신’으로 명칭을 바꾸고 ‘국가혁신범국민위원회’의 청사진을 내놓으며 재차 시동을 걸기 시작했지만 국민여론은 뜨악하다.
그러자 집권당과 보수언론은 경제 살리기라는 새로운 의제를 들고 나왔다. 특히 ‘가계소득 증대’ 프레임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많은 국민을 솔깃하게 했다. 7월 최경환(崔炅煥) 경제부총리는 기업의 배당, 임금 분배 등을 높이고 가계소득을 증가시켜 경기침체를 극복하겠다고 천명했다.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고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여 경기를 부양한다는 정책이 의제로 부각되었다. 한국경제를 살릴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새 담론은 성공적이었다. 정부는 민생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데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한겨레신문도 내수 회복과 가계소득 증대에 큰 기대를 보이면서 경기부양 의제로 여론이 더욱 몰려갔다. 세월호참사는 오히려 소비 위축과 내수 부진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치부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를 살리려고 정책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책임있는 정치세력, 야당은 오로지 정치투쟁에 빠져 민생은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정권심판론이나 세월호 진상규명은 낡은 정치구호처럼 되어버렸고 그렇게 7·30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의 참패를 불러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선거패배로 인해 새롭게 구성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의 박영선(朴映宣) 위원장은 ‘투쟁야당의 이미지를 벗어나겠다’며 ‘생활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세월호특별법 제정 협상과정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기하고 알맹이 없는 형식적 특별법에 합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여당에 투항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5. 기울어진 공론장, 왜곡된 민주주의
우리 사회는 이제 다시 민주주의의 질, 숙의(熟議)민주주의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를 다시 튼튼하게 바로 세울 것인가, 아니면 퇴행의 길로 가도록 방치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놓인 것이다. 언론환경이 건강하게 자리잡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갖추어질 리 없다. 국민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마당에 담론과 여론이 올바로 만들어지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바람직한 언론환경을 형성하는 첫 단추는 다름 아닌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기득권의 대변자이자 광고를 매개로 대자본과 강고한 유착을 이루고 있는 보수신문의 위력은 점차 쇠잔해간다. 그동안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문배달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뉴스가 전달되면서 모든 언론이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다. SNS는 여론형성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기존 언론의 여론 주도력을 빼앗아올 만큼 성장했지만 한계가 있다. 특히 현안이나 특정인에 대한 비판과 낙인찍기에서는 폭발적 위력을 발휘하지만 조금 ‘밋밋한’ 의제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대안언론 역시 주목을 받았으나 대중성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좋은 아이템과 관점이 있어도 텔레비전이 방송유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모바일이나 팟캐스트, 유튜브의 비중은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송 저널리즘 구조이다. 지상파는 공정한 보도기능을 상실하고 정부 편파방송으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종편, 특히 TV조선과 채널A는 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보수 노인층 여론을 결집시키는 무서운 괴물로 자리잡았다. 왜곡된 논리, 사실과 다른 정보, 천박한 막말로 여론마당을 분탕질하는 수준이다. 한편 < JTBC 뉴스9>이 지상파를 제치고 젊은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공정한 저널리즘 매체로서 지속적으로 위상을 높여갈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정부나 기관 등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에 훨씬 수월하고, 체계적인 취재능력과 많은 취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제도적인 기반을 갖춘 지상파 방송은 뉴스 생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전문조직이다. 가령 KBS는 엄청난 예산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인력만 약 5천여명에 이르는 방대한 조직이다. 기껏 몇명, 많아야 몇십명 수준인 대안언론은 애초에 비교가 안된다. 여전히 살아 있는 영향력을 이용해 정보에 접근하고 수집하며 취재를 위한 다양한 편의와 지원을 받기도 한다.
매체의 기능이 분화되고 여론형성 공간도 지속적으로 진화해나가지만 공론의 중심 마당으로서 지상파의 역할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종편을 앞세운 보수세력의 선동적 여론몰이로 민주적 공론장이 망가진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방송이 공정한 정체성을 찾아가지 않은 한 우리의 여론마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고 공정한 민주주의는 취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사회의 민주주의는 앙상하고 초라한 껍질만 남아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이나 진배없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대안언론이 공영방송보다 더 신뢰받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병든 사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안언론은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고 특화된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여론 형성의 중심 매개체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제도적으로 정치권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장을 뽑는 KBS의 이사는 11명 중 7명,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는 9명 중 6명을 정부·여당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임된 사장이 인사 및 경영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고 권력에 편향적인 방송을 하기 쉬운 구조다. 이제 정치권력이 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정치적 독립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다수제’3)는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어느정도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 사장으로 선임되려면 야당 추천 이사의 동의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편향적인 인사가 사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치권력이 경영진을 통해 방송의 내용에 개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편성위원회’는 방송제작 현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노사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는 보도, 토론, 시사 등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경영진에 의한 편향적 방송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특별다수제와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는 국회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졌고 학계에서도 폭넓게 지지를 받았으나 여당의 반대와 야당의 무기력으로 법제화되지 못했다. 시민사회도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법제화 투쟁에 집중하지 못함으로써 이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끌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물론 제도만으로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영국의 BBC는 그러한 제도 없이도 공정성 논란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한층 진전시킬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제도 마련에 시민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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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갤럽이 5월 19일~22일 전국 성인 1204명에게 ‘요즘 어느 방송사의 뉴스를 즐겨보는가’를 물은 결과 KBS 28%, JTBC 14%, YTN 14%, MBC 12%, SBS 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0대에서는 JTBC가 25%로 1위를 차지했고, 20대도 KBS 21%에 근접한 19%가 JTBC를 선호했다.
2)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 노출을 확대하기 위해 언론사가 동일한 제목의 기사를 지속적으로 전송하거나 클릭수를 조작하는 것.
3) 사장 선임시 현행 이사진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또는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