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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있음. welcomesnow@hanmail.net

 

 

 

장편연1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네

 

 

진의 이야기

 

오전 일곱시의 옥상.

진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휑뎅그렁한 시멘트 바닥이다. 하다못해 허공에 그 흔한 빨랫줄 하나 걸려 있지 않고 구석에 조그만 화단 비슷한 것도 없다. 진은 이곳에 올 때마다 어쩐지 정장 차림의 신사처럼 겉으로는 말쑥해 보이는 이 건물의 볼썽사납게 벗겨진 정수리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도 그녀는 이 공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이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 건물의 옥상은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지 언제 어느 시간대에 와도 늘 혼자 있을 수 있지만 그녀는 특히 이른 아침에 방문하기를 좋아한다. 난간 밖 저 까마득한 발밑의 세상에서, 자신의 발에 한번 깔리면 금방 짜부라질 벌레처럼 조그만 인간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하며 저도 열심히 살겠노라는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저 옥상이라는 공간이 그 특성상 낮에 올라가면 햇볕이 너무 뜨거워 견디기가 어렵고, 밤에 올라가면 희한하게도 왕년에 끊은 담배를 도로 피우고 싶어져서 그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 이곳 옥상에 올라온다. 주로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 잠들기 전에 살짝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진의 집에서는 그녀가 이따금 옥상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늘 그랬듯이 대로변 쪽으로 나 있는 난간을 향해 걸었다. 걷다가 주춤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분명히 없었는데 옥상의 북쪽 귀퉁이에 멀쩡해 보이는 사무용 의자가 방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이곳을 찾는 이가 없는 게 아니라 있긴 있되 나와 다른 시간대에 왔다 간 거였구나 하고 진은 뒤늦게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의자 등받이 부분의 커버가 찢어져서 그 틈으로 스펀지가 삐져나와 있었다. 괜히 자신의 등허리 어딘가가 시큰거리는 것 같아서 그녀는 얼른 눈을 돌렸다.

난간 앞에 섰다. 원통형의 쇠 난간에 빗물이 수차 떨어졌다 마른 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뜨뜻미지근한 도심의 아침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상체를 밖으로 내밀어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건물 위치가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서 인도는 사람들로 차도는 차량들로 벌써부터 붐비고 있었다. 진은 오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며 보았던 동네 편의점과 주유소와 식당과 까페와 병원과 약국과 슈퍼마켓과 휴대폰 대리점과 빵집 등을 늘 그랬듯이 처음 보는 양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대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멀리 주택가 이곳저곳에서 붉은 십자가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그녀는 늘 그랬듯이 거기서 셈을 멈추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아아, 이 동네에는 교회가 참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그녀는 어느새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죽겠지. 10층 건물 꼭대기니까. 보도블록에 머리부터 부딪히면 즉사하겠지. 아니, 혹시 저 가로수 우듬지에 몸이 걸리면 죽지는 않고 크게 부상만 입으려나.

그녀는 어느새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곳에서 자살을 하려 한다면 뛰어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일까. 기도하는 것일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 만물, 그러니까 저 교회 십자가들과 대로변의 상점과 지하철역 주변의 인파와 저 가로수와 이 황량한 옥상 풍경을 눈 속에 담아두는 것일까.

자살자의 심정을 상상해보았다. 어느 것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기야 투신자살하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한들 유쾌할 수 있겠느냐마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는 게 나을 것이다. 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옥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의 그 등받이 커버 찢어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

대학 동기인 은호가 옆에 있었다면 안 들린다고 더 크게 하라고 부추겼을 게 뻔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렇다. 진은 오래전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개새끼? 쌍놈? 씹할 놈?”

당시 은호는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그게 니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이야?”

그러고는 진이 그것보다 더 심한 욕에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불쑥 덧붙였다.

“이제 보니 너는 남자를 증오하는구나?”

“뭐? 내가 왜?”

“개년, 쌍년, 씹할 년,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으니까.”

진은 여전히 웃고 있는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싸늘하고 뾰족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맨 등을 훑어내리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깨달았다. 세상에 가장 심한 욕이라는 것은 따로 있지 않음을, 욕이 심하고 안 심하고의 기준은 어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뱉는 이의 표정이나 어조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기왕 욕을 하려면 저렇게 해야지, 하고 진은 생각했다. 그러나 은호에게 ‘너 욕 정말 잘하는구나’ 하고 칭찬해주려다가 문득 그것이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려서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정말이야. 건강에도 좋다니까.”

은호는 진지했다. 제 별명인 만물박사답게 이어서 말하기를, 예전에 영국의 어느 심리학 박사가 욕설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 두 팀을 각각 얼음덩어리 위에 맨발로 올라서게 한 후 한 팀은 마음대로 욕을 하도록 했고 다른 한 팀은 욕 대신 점잖은 말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욕을 한 팀이 욕을 하지 못한 팀보다 얼음 위에서 약 두배나 더 오래 버텼다, 결국 욕을 하는 것이 신체의 통증을 줄여주거나 스트레스를 더 잘 참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너도 한번 해봐. 그럼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그때까지 그녀는 욕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라도 꼭 해봐.”

“씹할.”

“응? 뭐라고?”

“씹할……이라고.”

“잘 안 들려.”

“에이 씹할.”

“더 크게.”

“에이 씹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그의 말마따나 욕설의 효능이었는지 혹은 웃음의 효능이었는지 몰라도 어쨌거나 그때 진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얼음덩어리 위에 맨발로 서 있다고 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은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진이 그의 메일을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벌써 여섯달 전의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은호는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읽지도 않는 메일을 연거푸 네댓통쯤 보내다가 그녀도 보내기를 그만두었다. 자신이 이제껏 안하면 안되는 숙제를 해치우듯 의무감으로 그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은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별안간 지상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올라왔다. 소리는 사그라질 듯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접촉사고라도 났나. 아니면 누군가의 차가 도로 한가운데에 멈춰서기라도 한 것일까. 문득 배가 고팠다. 진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데 저만치 집 앞에 누군가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현관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아 네월아 여유작작한 태도로 보나 두 손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나 택배기사는 아닐 테고, 그럼 이 아침에 누구일까. 진은 본능적으로 복도 천장에 부착된 방범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시절이 하 수상한데 집 앞에 서 있는 낯선 남자한테 다가가려니 께름칙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현관문을 열 수도 없었다.

“누구세요?”

진이 등 뒤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남자는 놀라서 펄쩍 뛰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깊숙이 눌러쓴 야구모자의 챙이 광대뼈에까지 그늘을 드리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진을 쳐다보고 현관문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집을 잘못 찾았나봐요.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우물쭈물하다가 돌아서는 그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우편물 한통이 꽂혀 있는 것을 진은 놓치지 않았다. 수신인란에 인쇄된 주소의 끝부분 숫자가 505였다. 505호. 그것은 그녀의 집 호수가 아니던가.

“뒤에 그거 이 집 우편물 아니에요?”

내놓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순순히 주머니에서 우편물을 꺼냈다. 이소윤 앞. 휴대폰 사용요금 청구서 같아 보였다.

“혹시 여기가 이소윤씨 집 아닌가 해서……”

진은 기다 아니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가 소윤의 스토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갑자기 모든 정황이 이해되었다. 소윤에게 남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아까 곧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소윤과 똑같이 생긴 청년이 제 앞에 서 있었으니까.

“소윤이 동생 맞지요?”

“네, 맞아요.”

“어휴, 진작 말씀을 하시지. 소윤이 지금 집에 있어요.”

진은 그에게 자신이 소윤의 동거인임을 밝히고 집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청년은 무슨 영문인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제 누나에게 자신이 찾아왔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진은 그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현관문 번호키 뚜껑을 여는데 어쩐 일인지 문틈으로 고소한 커피 냄새가 새어나왔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여덟시였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 여덟시. 대부분의 직장인이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평일 이 시각에 진이 살고 있는 이 집에는 평소대로라면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어딜 갔다 와?”

명주가 거실 소파 앞에 앉아서 커피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있었다. 이 시간에 밖에서 들어오는 진을 보고 놀라서 눈은 크게 떴으나 잠에서 깬 지 얼마 안된 티는 감출 수 없어서 머리가 부스스했다.

“그건 또 뭐고?”

진이 명주의 눈길을 따라가니 제 오른손에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린 것이 보였다. 진은 대답 대신 그것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이게 뭔지 한번 맞혀보실래요?”

“응, 알 거 같아. 참 오랜만에 보는 거네.”

명주는 봉지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반가운 내색을 했다. 하긴 그 안에 은박 쿠킹포일에 싸인 김밥 석줄이 들어 있으리라는 건 이 집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짐작 가능했다.

그것은 진이 조금 전 옥상에서 내려와서는 일부러 건물 앞 지하철역에 들러 사온 김밥이었다. 그 왜 있잖은가. 바빠서 아침밥을 거른 직장인을 겨냥한,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역 입구 한켠을 차지하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온 김밥을 파는 노점상들 말이다. 이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 입구에도 매일 이른 아침부터 서너명의 여자들이 각기 좌판을 벌여놓고 김밥이며 떡이며 샌드위치 따위를 팔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은 그중 한 여자에게서 종종 김밥을 사오곤 했다. 값싸고 맛있어서,라고 누가 묻지도 않은 이유를 댔지만 편의점 김밥과 견주어보면 가격에서나 맛에서나 사실 그놈이 그놈이었다. 그녀가 처음 그 김밥을 샀던 것은 일종의 충동구매였다. 새벽반 수영강습에 다녀오다가 우연히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김밥을 사 들고 잰걸음으로 역사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피곤하고 시간에 쫓기지만 그래도 매일 어딘가에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이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으로서 바삐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에 저 자신을 투영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은 이미 좌판에서 김밥 한줄을 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첫 구매를 한 이후에도 진은 엉겁결에 김밥을 계속 샀다. 이 집의 동거인들이 다들 맛있다며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일주일에 두번씩 수영강습을 받고 올 때마다 김밥 파는 여자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알은체를 하는 통에 안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달 만에 수영장 다니는 것을 그만둔 뒤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날 일이 없으니 김밥을 사는 일도 없었다. 오늘 김밥은 실로 오랜만에 사온 것이었다.

“너도 참, 이거 사러 일부러 나갔다 온 거야?”

명주는 핀잔을 주는 척하면서도 부지런히 드리퍼로 진의 몫까지 커피 두잔을 내렸다.

“김밥 지금 먹을 거지?”

그리고 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수저통에서 젓가락 두벌을 꺼내 식탁에 놓았다.

“근데 언니는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나 있지, 조금 전에……”

명주는 한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 원고 넘겼어.”

진은 하마터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와아, 하는 감탄사가 저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장장 일년 동안의 장편소설 연재가 드디어 끝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연재원고 마감이 있는 월말이었다. 그녀가 평소에 워낙 자신의 작업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는 성격이라 진도 그만 때가 때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명주는 마감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원고를 한번 더 검토해본 후 출판사에 보내기 위해서라나. 그녀는 원고 마감 날짜를 어겨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소윤의 말을 빌리면 ‘살 뺀 년’보다도 ‘담배 끊은 놈’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얘기다. 하기야 명주는 뺄 살도 없거니와 끊을 담배 따위는 처음부터 피우지도 않았다. 그쯤 되면 대적할 자가 없는 것이다.

“탈고 기념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녜요?”

“해야지. 말 나온 김에 오늘 당장 할까?”

“우리 셋이서요?”

“왜? 여자끼리는 시시해?”

“설마요. 언니는 무슨 그런 말씀을.”

“솔직히 시시하지 뭐. 그럼 우리 남자들 물 좋은 데로 가자.”

그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진은 안다. 명주는 남자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소설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장차 소설과 결혼할 것이다.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했다. 인기 많은 남자가수가 ‘전 음악과 결혼할 겁니다’ 하면 팬 관리지만 명주가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립서비스도 아니고 은유도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소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진은 예전부터 그녀의 그런 점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강명주. 올해 나이 서른일곱. 그녀는 잘나가는 소설가다. 잘나가지는 않지만 진도 어엿한 소설가다. 등단연도로 따지면 진이 오히려 명주보다 빠르다. 진은 등단한 지 올해 십년째고 명주는 오년째니까 진이 오년이나 선배인 것이다. 그러나 명주의 나이가 다섯살이나 더 많아서 진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른다. 원래는 문단에서 서로 이름과 얼굴, 책 제목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나 작년에 진의 책과 명주의 책이 같은 출판사 같은 편집자의 손에서 만들어진 일을 계기로 인연이 깊어져서 결국 이렇듯 한집에서 함께 살기에 이르렀다. 그 편집자가 바로 소윤이다.

이들 셋이 한집에 살기로 결의했던 날, 소윤이 근무하는 출판사의 사장은 세 사람을 시내에서 비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고깃집에 데려갔다. 소윤이 부지런히 구운 한우 꽃등심을 다시 부지런히 진과 명주 앞에 놓아주면서, 그는 재주는 곰이 부리게 해놓고 돈은 제가 챙기는 왕서방처럼 으스댔다.

“이제 강명주 작가님과 안진 작가님 두분은 우리 전속작가가 된 거지요?”

솔직히 말해 진은 인기작가 강명주 옆구리에 접착용 테이프로 붙여진 1+1 상품이 된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뭐, 괜찮았다. 꽃등심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으니까. 왕서방이 이번에는 소윤을 향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앞으로는 소윤씨가 책임지고 이 두 작가님 잘 모셔. 밤이나 낮이나.”

“어머, 사장님, 그럼 저 야근수당도 주시는 건가요?”

어이쿠, 곰인 줄 알았더니 여우였군, 하고 진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뭐 상관없었다. 소주가 정말 달았으니까.

과연 사장의 기대는 얼마 못 가 깔끔하게 박살났다. 처음에는 진과 명주가 갑이요, 소윤이 을이었을지 몰라도 셋이 함께 살게 된 후로는 관계가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의 소유주가 소윤인데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았겠는가.

방 세개, 욕실 한개, 그리고 거실과 주방으로 이루어진 이 주거 겸용 오피스텔은 애초에 소윤의 부모가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딸에게 사준 것이었다. 그러나 소윤은 세입자와 이런저런 마찰이 잦다는 사실에 지치기도 했고 부모 집에서 독립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차라 일년 만에 세입자를 내보냈다. 그녀가 혼자 살려고 했던 이 집에 진과 명주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집의 구조는 이렇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왼쪽에 문간방이 있고, 정면으로 보이는 욕실의 오른쪽 옆에 가장 넓은 방인 안방이 있고, 거실로 들어서면 왼쪽에 ㄴ자형 주방이 보이는데 그 옆으로 다용도실과 이어진 작은방이 있다. 집주인인 소윤이 스스로 원해서 작은방을 쓰고 짐이 압도적으로 많은 명주가 안방을, 마지막으로 입주한 진이 문간방을 쓴다. 소윤과 명주는 각자 방에 싱글 사이즈 침대가 있다. 진에게도 원래는 접이식 소파 겸 침대가 있었는데 그것을 문간방에 들여놓으니 책장 들여놓을 자리가 나지 않아서 거실에 내놓았다. 바로 그 살구색 천소파가 그날 이후 이들 세 사람이 늘 회동하는 자리가 되었다.

며칠만 더 있으면 세 사람이 한집에서 동거한 지 석달이 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서로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첫달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밤마다 거실 소파에 모여 앉아 닭다리를 뜯고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떠느라 개인시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소윤이 아직 출판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였는데, 진과 명주는 종일 각자의 방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다가 저녁에 소윤이 퇴근하면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거실로 나와서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곤 했다. 다행히 둘째달부터 그런 일이 점차 줄었다. 소윤이 출판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편집자를 선언하면서 세 여자가 하루종일 한집에 있게 되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소윤이는 자요?”

“응, 자야지 그럼. 지금이 몇신데.”

진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제가 방금 들어오는 길에……”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소윤의 동생이 자신의 방문을 비밀로 해달라 부탁했던 것이 뒤늦게 떠올라서였다.

“들어오는 길에 뭐?”

명주가 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경고문이 붙어 있던데요?”

“무슨 경고문?”

커피 중독인 명주는 세잔째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까페라떼를 만들어보려는 참인지 찬장에서 거품기도 꺼냈다.

“유리창 깨지 말라고요.”

화제를 돌리느라 꺼낸 이야기지만 이야기하다보니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경고문에 육하원칙이 생략되어 있어 대체 이 건물 어느 유리창이 언제 어떻게 깨졌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처음 발생한 일은 아닌 듯 경고 말투가 꽤 강경했던 것이다. 명주는 별 관심이 없는지 진에게 턱짓으로 커피 한잔 더 하겠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인제 자야지요.”

진은 마지막 남은 김밥 한조각을 입에 털어넣었다. 위장에 먹을 것이 들어가니 이제는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자면 밤에 또 못 잘 것이 뻔하니까 아예 밤까지 자리에 눕지 말고 버텨야 하는데 지금 그녀의 체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새 작업은 잘돼가?”

잠이 확 깼다. 명주는 진 역시 최근 들어 장편소설 집필에 착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답을 독촉하는 것도 아닌데 진은 씹고 있던 김밥을 꿀꺽 삼켰다.

“막 시작을 하긴 했는데, 그게 아직……”

“에이, 걱정 마. 시작했으면 됐지.”

“……”

“원래 시작 부분이 제일 어려운 법이잖아.”

진은 김밥을 싸고 있던 은박 포일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한숨 소리가 포일 구겨지는 소리에 묻혔다.

 

진은 커피잔을 씻어 식기건조대에 엎어놓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여태 개지 않은 이불이 그대로 펼쳐져 있는 방바닥보다 책상 위가 더 어지러웠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령대별 사망원인 도표, 청소년 자살률에 대한 통계청 보고서,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수기, 자살방지 센터의 상담일지, 사형집행관의 고백록,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한 국내외 토론자료, 스위스 조력자살 기관의 회원 증가추세 및 동향에 대한 기사, 그리고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비롯한 유럽 고성들의 내부 설계도, 세계 각국의 신화 및 민담에 등장하는 사후세계의 상상도를 모아놓은 화첩……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들은 진이 삼년 전부터 구상해왔고 두어달 전부터 쓰기 시작한 첫 장편소설에 관한 자료였다. 아흔아홉번쯤 줄거리가 바뀐 그것의 백번째 버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미지의 왕국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 베일에 싸여 있는 거대한 성이 존재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 성에 푸른 입술을 가진 사신(死神)이 살고 있는데 그를 만나는 이는 누구나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환각으로나마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 하여 왕국의 시민들은 모두 그 죽음의 성으로 가고 싶어한다. 누구든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 성에 대해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정확히 어느 골짜기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성을 향해 사람들은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진이 쓰고자 한 것은 그 기이한 성 안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제의들, 그곳에서 죽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 그 인간군상 틈에서 빚어지는 천태만상에 대한 소설이었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에 대한 온갖 자료를 수집했다. 판타지 장르에 도전해보기는 처음이라 준비에 더더욱 공을 들여야 했다. 책을 읽었고 동영상을 보았고 신문기사를 스크랩했다. 날마다 진혼곡을 듣고 장송곡을 들었다. 진의 책상 앞 벽에는 죽음에 관한 단상을 적은 메모지들이 빼곡하게 나붙었다. 그러니 푸른 입술인지 푸른 잇몸인지 하는 사신이 왔다가 제 집으로 착각하고 눌러앉는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지난 몇달 동안 그녀는 죽음에 둘러싸여 살아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진은 소설을 쓰려면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100쯤 알아야 50 정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반면에 명주는 50으로도 능히 100을 쓸 수 있는 것이 작가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심지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 아니냐고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료조사라든가 인터뷰 등 진이 생각하는 소설 집필의 예열과정으로서의 취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진은 간신히 변명이나 했을 뿐 반박은 하지 못했다. 실제로 명주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100을 뚝딱 써내곤 했기 때문이다.

진이 보기에 강명주는 이미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두어달에 한번 꼴로 재쇄를 찍어 ‘인세 입금 완료’ 문자메시지를 받는 작가가 어디 흔하겠는가. 등단한 후 오년 사이에 무려 세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그녀는 창작욕구가 왕성하고 그만큼 작업태도도 열정적이었다. 명주와 대화를 길게 하다보면 시작이 무엇이든 간에 끝은 매번 소설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언제나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흐른다고 했다.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려놓으면 문장이 술술 흘러나온다고도 했다. 집필속도가 구상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던가.

자, 그렇다면 진은 어떠한가. 등단한 후 십년 동안 단편집 두권을 출간한 것이 전부다. 두권 모두 아직까지 초판도 다 안 팔린 상태다. 첫 책은 일찌감치 절판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래도 진은 십년 동안 저 나름대로 성실했고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슬럼프일 것이다. 아니, 이게 슬럼프가 맞나.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어제도 그녀는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진은 두어 문장을 쓰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 두어 문장을 지우고 스도꾸(數獨) 퍼즐을 풀고, 지웠던 두어 문장 가운데 한 문장을 되살린 후 손톱을 깎고, 되살린 문장의 표현을 일부 수정하고 나서 인터넷 기사 사회면의 강력범죄 사건들을 훑어보며 타인을 위한 애도와 분노로 몸을 떨다가, 종내는 수정한 문장마저 삭제한 후 다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두어 문장 쓰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방바닥을 쓸고 닦은 다음, 인터넷 쇼핑몰의 일일 초특가 할인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삭제했다를 반복하고는, 배가 고파서 계란이라도 삶아 먹을까 했지만,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다가 불현듯 그럴듯한 문장이 떠오르는 바람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느라 계란 삶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진의 지난밤 사이 행적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늘 새벽 컴퓨터의 전원을 끌 때 그녀의 원고에는 고작 다섯 문장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마저도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삭제될 확률이 높은 하루살이 문장들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진은 베개를 끌어안고 드러누웠다. 이불이 들춰졌다 가라앉으면서 먼지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평소에 안 써본 장르를 쓰겠다고 덤빈 게 문제일까.

잠이 오지 않았다. 창으로 들어온 빛을 가리려 베개로 얼굴을 덮었다.

아니면 등단 십년 됐다고 그새 초심을 잃었나.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진은 소설 이외의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하는 강의부터가 그랬다. 별다른 목적 없이 취득해둔 국문학 석사학위 덕분에, 그리고 우후죽순 생겨난 문예창작과의 과잉공급 덕분에 몇해 전부터 계속 강의를 해왔다. 지금도 대학교 세곳에서 각각 일주일에 하루씩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 가운데 사흘을 이른바 ‘앵벌이’에 쓰는 셈이었다.

소윤은 언젠가 진과 명주 앞에서 우스갯소리라며 물었다.

“작가들의 쓰리앵이 뭔지 알아요?”

“쓰리앵? 그게 무슨 말이야?”

소윤 왈, 문구류의 세계에 쓰리엠이 있다면 작가들의 세계에는 쓰리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름하여 세가지 앵벌이, 그러니까 강의와 심사와 잡문이 바로 쓰리앵이라는 것이다. 진과 명주는 동의한다는 뜻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진에게는 자조의 웃음이기도 했다. 명주는 강의라든가 심사라든가 잡문 집필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걸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그러나 소윤에게 그렇게 대꾸한 것은 진이 아니라 명주였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은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앵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앵벌이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뭔가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 외모지상주의자를 나무라는 장면을 보고 있는 못생긴 여자의 마음이 이럴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오직 소설만 써서 그 인세로 월세 내고 각종 공과금 내고 생활비까지 충당하고 살 수 있다면 진도 소설 이외 다른 일에 한눈을 팔 리가 없었다. 생계 고민 없이 마음 놓고 소설을 쓰기 위해 강의를 하지만, 강의를 하느라 결국 소설에 집중을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아니다. 이것도 다 핑계다. 자고로 솜씨 좋은 선비는 지필묵을 탓하지 않는 법.

진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방금 양치질을 했는데도 어쩐지 목구멍 안쪽 깊숙한 곳에서 김밥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명주의 이야기

 

명주는 출판사 회의실에서 편집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너무 일찍 출발한 까닭에 출판사에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니, 출타했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출판사로 돌아오는 중이던 편집장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온전히 명주의 탓인데도 편집자들은 그녀에게 커피를 내려준다 방금 구운 머핀을 사다준다 최근에 출간된 서적들을 챙겨준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작가님 열혈팬이라는 둥 이번에 연재하는 장편소설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둥 편집자들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회의실을 빠져나간 후에야 명주는 커피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았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고 머핀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쇼핑몰에서 온 광고 메일들 사이에 독자에게 온 이메일이 한통 끼어 있었다. 작가님의 소설 내용이 정말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깜짝 놀랐다고, 어쩌면 그렇게 인간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느냐고, 작가님을 존경한다고 독자는 썼다.

명주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출간된 책 세권 중에서 한권은 태평양 심해에 사는 불사 요괴들의 이야기고 또 한권은 무간지옥에서 탈출한 원혼들의 이야기니, 인간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은 마지막 남은 한권밖에 없다.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폐허가 된 마을에서 겨우 살아남은 두 남매가 근친상간을 하며 살다가 정체 모를 괴물들의 습격을 받고 그것들과 싸우면서 자신들도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는 이야기. 대체 그 소설의 어느 대목이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명주는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독자의 메일은 항상 왔고 내용은 항상 비슷했다. 그런데도 명주는 매번 신기해했다. 익명의 독자들이 팬레터를 왕왕 보낼 정도로 자신의 소설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고, 자신이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니, 작가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장차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글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책을 읽어본 일조차 없었으니까. 스무살에 지방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홀로 상경하여 곧바로 취직을 했고 다달이 월급을 받아 저축을 하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부양하기도 바빴으니 말이다. 명주에게 여가활동이란 극장에서 친구들과 영화를 보거나 자취방에서 홀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이 다였다.

그녀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십대 중반에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렇다. 독자들은 모르지만, 작가들도 모르고 편집자들도 모르고 진과 소윤도 모르지만, 명주는 십여년 전에 결혼을 한번 했다.

결혼하기 전에 명주는 남편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해한다기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매사에 진지하고 검소하며 감정표현에 신중한 사람이었다. 물론 매사에 고지식하고 인색하며 감정표현에 서툰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그와 세번째로 데이트하던 날 이런 남자와 한다면 결혼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의 근거 중 하나는 남자가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만났던 날 남자는 명주를 서점에 데려갔다. 그녀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날 그가 고른 책은 ‘체 게바라’라는 외국 남자의 평전이었다. 다 읽고 나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거라고 남자는 말했다. 그러고는 지갑을 열어 서점에서 발행한 쿠폰을 꺼내 계산원에게 내밀었다.

명주는 그날 집에 가자마자 그 책을 읽었다. 신선한 충격이라면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받았다, 책이 아니라 남자에게서. 이전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모텔로만 데려가려 했다. 서점에 가자고 한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향수나 귀걸이나 스카프가 아니라 책을 선물해준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남자는 데이트할 때마다 책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책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으며 세상에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큼 재미있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솔직히 명주는 남자가 추천해준 책이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책을 많이 읽은 남자도 전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저 남자가 그런 식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백일도 안되었을 때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 백일도 안되어 명주는 예전에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남편이 단지 책을 좋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그는 육류섭취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을 읽으면 곧바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목돈 마련의 중요성에 대한 책을 읽으면 잽싸게 은행으로 달려가서 재테크 상담을 했다. 영웅담을 읽고 나면 그 즉시 존경하는 인물이 바뀌었고, 비운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면 그 슬픔으로 며칠 동안 말수가 줄었다. 지금 당장 여행가방을 꾸려야 한다고 독자를 부추기는 여행서적을 읽고 나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기세였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에 대한 책을 연달아 읽은 탓에 그 파급력이 더 컸다.

명주는 어처구니가 없다가,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슬퍼졌다. 책과 달리 자신은 그에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이, 남편에게 자신은 만원짜리 책 한권의 값어치도 안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니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산 책을 수동적으로 따라서 읽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읽을 책을 골랐다. 명주는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남편과 말하고 싶어했다. 남편도 그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자신이 책을 직접 읽는 것보다 명주에게 책 이야기 듣는 것을 더 좋아할 정도가 되었다. 그것이 기뻐서 명주는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내용의 일부를 과장하거나 생략하거나 이야기 곳곳에 강약을 주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결말 뒷부분을 상상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 모로 누워서 명주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물었다.

“지금 그 책 제목이 뭐야?”

그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얘기해준 책들 중 최곤데?”

명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주저하다가 곧이곧대로 털어놓았으나 남편은 코로 웃었다. 그럴 만도 했다. 평소 책 한권 읽지 않고 살던 그녀를 책의 세계로 인도한 당사자가 그런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명주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남편과 헤어진 후부터였다.

지금도 명주의 가족이나 고향 친구들은 명주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그것도 꽤 유명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처음 명주가 장편 신인공모 당선소식을 듣고 시골집에 전화를 했을 때 아버지는 대뜸 물었다.

“뭐? 어디에 당첨이 됐다고?”

“당첨이 아니라 당선이라니까요, 소설 당선!”

“그래? 야아, 그거 참말로 축하한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글쎄, 야가 소설 당첨이 됐다네.”

“그래요? 그럼 그게 몇등인 거래요?”

“이 사람이, 지금 등수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근데 그거 상품은 뭐냐?”

상품이 아니라 상금이 얼마인지 그 액수를 듣고서야 당신 딸이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지 실감하던 촌뜨기 노인들이 명주의 부모인 것이다. 고향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명주가 어쩌다 시골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앞다퉈 묻곤 했다.

“니, 내 얘기는 왜 안 써주나?”

“우리 애 글짓기 숙제 좀 봐줄 수 있나?”

“책에 사인 좀 해줘. 나중에 너 노벨상 받으면 경매에 넘기게.”

“아 참, 니는 드라마는 안 쓰나?”

그들은 개천에서 난 용 대하듯 명주를 경외감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을까. 대학도 안 나오고, 정식으로 문학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도스또옙스끼가 누군지 헤밍웨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온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명주는 신통하기만 했다.

“작가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편집장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주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정적이 흘렀을 시간인데 거실이 대낮부터 화기애애하다. 귀에 익은 여자들의 떠들썩한 목소리 사이로 선이 굵은 남자 목소리가 간간이 끼어든다. 소윤의 남동생, 소준의 목소리다.

그는 이틀 전에 이 집에 합류했다. 명주와 진과 소윤 중 누구도 이 집이 금남의 집이라고 못 박은 적은 없지만 처음 셋이 함께 살기로 했을 때 정한 규칙 중 하나가 집에 다른 사람을 들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안한 이는 소윤이었다. 그리고 이틀 전 일로 그것을 가장 먼저 어긴 이도 소윤이었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을, 반나절도 아니고 최소 일주일 이상 머물게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명주는 소윤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니까. 제 누나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었으리라는 걸 아니까. 제대하고 나서 여행 가이드를 한다, 까페를 차린다, 수입자동차 딜러를 한다 어쩐다 하며 집에서 조달한 돈을 다 말아먹고 종적을 감추었다가 삼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찾아왔으니까. 게다가 사정이 딱한 친구인데 며칠만이라도 신세를 지게 해달라며 열아홉살짜리 몽골인 여자까지 데려왔으니 누나 입장에서 곤혹스럽기는 해도 당장은 그 두 사람을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며칠 전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길에 마침 현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소준을 발견하고 그의 정체를 알아낸 후 그를 구슬러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은 명주였다. 오히려 소윤은 제 동생을 보고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잠잘 데가 없다는 거예요.”

“일단 거실에서 자라고 하지 뭐.”

그렇게 아쉬운 대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명주였다.

“그러게. 거실 소파 원래 침대로 쓰던 거잖아.”

옆에서 그렇게 거들어준 것은 진이었고. 그러니 결국 일찌감치 소준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소윤이 아니라 명주와 진이었던 셈이다.

지금 거실에서는 진과 소윤과 소준과 몽골인 여자가 수다를 떨고 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명주의 방에서는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으나 소윤이 자주 소준을 구박하고 진이 자주 웃는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네명 사이에 걸림 없이 대화가 가능한 까닭은 몽골 여자가 한국말에 상당히 능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 이틀 동안 낯선 환경에서도 싹싹하게 굴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잘한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내 순식간에 이 집 식구들의 환심을 샀다.

“새는 작은 놈이 지저귀고 사람은 어린것이 움직이는 법이잖아요.”

요렇게 야무진 대사를 던져서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쟈르갈.

“쟈르갈은 몽골어로 행복이라는 뜻이래요.”

소준의 설명에 이어 그녀는 자신의 이름 쟈르갈을 쟈르달과 헷갈리지 말라며 후자 쟈르달은 몽골어로 ‘돈’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쟈르갈과 쟈르달. 행복과 돈. 그렇게나 의미가 이질적인 두 단어가 발음상으로는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으냐고 그녀는 물었다. 실로 총명하고도 맹랑한 아가씨였다. 명주는 그녀가 어떤 인연으로 소준을 만났고 어떤 사연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명주는 책상 앞에 앉은 채 발을 계속 까딱거렸다. 고민이 있을 때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엊그제 그녀는 편집장에게 이번 주말까지 답신을 주겠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출판사가 제정하여 일년에 한차례 응모된 장편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시상하는 전통이 유구한 문학상이 있는데, 드물게 기성작가도 응모해서 뽑히는 경우가 있지만 주로 신인작가의 등용문으로 각광받는 그 상을 명주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장편소설을 써서 그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해달라 청하는 것이 편집장이 명주를 만나자고 한 목적이었다. 일종의 담합이요, 주최측의 농간이었지만 둘 다 그런 표현은 입에 담지 않았다. 편집장은 그저 최근 몇년간 그 상에 응모되었던 장편소설들의 수준이 영 떨어져서 할 수 없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만 했다. 덧붙여 명주의 작품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네 문학상의 수상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상금 삼천만원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현재 명주로서는 그 돈이 없다고 크게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문학상을 받고 싶었다. 출신지역이나 나이, 학력, 출간한 책 제목 같은 것들 말고 작가 이력에 그럴듯한 한줄을 보태고 싶었다. 거실에서 다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지 난데없이 ‘안돼, 안돼’ 하는 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주는 진이 만약 자신과 같은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보나마나 ‘안돼, 안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책은 잘 안 팔리지만 문학에 대한 태도가 정직하고 진지하고 순수한 작가였다. 예전부터 명주는 진의 그러한 점이 대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명주는 진의 등단작을 기억한다. 제목 ‘백수 인생’. 그것은 명주가 처음 읽은 진의 소설이었다.

어느 집 골방에 세들어 사는 백수 청년이 있다. 그는 허구한 날 컴퓨터 게임을 하며 날밤을 샌다. 동틀 무렵 주인집 마당에 조간신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후 늦게 일어나서 또 빈둥거리고 저녁에 친구와 술약속이 있으면 나가고 그것도 없으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 식이다. 그러나 먹고 자고 게임만 하며 소일하는 이 청년에게도 꿈이 있으니 그것은 소설가다. 그는 친구를 만나면 늘 최근 구상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은 맡아놓았다는 듯 허풍을 떤다. 심지어 소설을 완성하지도 못한 주제에 당선소감부터 쓰는 객기를 부린다. 청년이 쓰고자 하는 소설은 매일 새벽 그의 주인집에 신문을 배달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새벽에 하루를 마감하는 그는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녀와 대문을 사이에 두고 몇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웃음기 전혀 없는 소녀의 표정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신춘문예 마감일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날, 그는 일필휘지로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고 나서 친구를 만나 미리 당선을 자축하는 술을 마신다. 자, 그리고 바야흐로 대망의 새해 첫날이 밝았다. 동틀 무렵 어김없이 주인집에 조간신문이 배달된다. 청년은 신문을 펼쳐들고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는다. 제목 ‘백수 인생’. 그것은 어느 집 골방에 세들어 사는 백수 청년의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허구한 날 컴퓨터 게임을 하며 날밤을 새고, 동틀 무렵 주인집 마당에 조간신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청년은 당선자 인터뷰란으로 시선을 옮긴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몇번 마주친 적 있는 어느 백수 청년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신문을 쥔 청년의 손이 떨린다. 새벽에 대문을 사이에 두고 몇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 있는 그 소녀가 당선자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청년은 웃지 못한다. 오, 가련한 백수 인생이여.

그 얼마나 재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던가. 거기서 비롯된 진에 대한 첫인상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물론 그 소설을 쓰기 전에 일부러 신문배달을 직접 해보았다는 진의 말을 듣고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명주는 진이 부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직하게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문학상 문제는 어떻게 한다?

명주가 다시 발을 까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방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쟈르갈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우리 같이 책산 가요.”

“책산?”

그녀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아닌지 검사라도 받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보아 소윤이나 소준이 명주에게 가서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네, 지금 같이 책산 가요.”

“책산이 아니라 산책이라고, 산책!”

소준이 쟈르갈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아 맞다, 책산이 아니라 산책, 산책!”

쟈르갈이 허둥대는 것을 보며 진과 소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명주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못마땅하다기보다 뭔가 어리둥절하다고 할까. 엊그제 새로 들어와서 며칠만 머물다 떠날 객에게 일부러 냉랭하게 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틀 만에 다들 너무 급격히 친해진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아니지, 그래도 냉랭한 쪽보다는 지나치게 친한 쪽이 낫지, 하고 그녀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향긋한 풀 냄새 꽃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찔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자동차로 겨우 오분 거리에 시민공원이 있었다는 것을 명주는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세 여자가 한집에서 살기 시작한 후로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한 적은 많았어도 함께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들 새벽 늦게 자고 한낮에 느지막이 일어나 우물쭈물하다보면 금세 해가 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주차장에 소윤의 차를 세워놓고 다섯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원을 향해 걸었다. 소윤과 쟈르갈과 진이 앞장을 서고 명주와 소준이 뒤에 섰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꽃향기가 짙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 눈 닿는 곳마다 아까시나무요, 때가 5월이라 온통 하얀색 아까시꽃 천지였다. 명주는 잠시 그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야가 닫히고 후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아까시나무로 뒤덮여 있던 고향집 뒷산이 떠올랐다. 바람이 불면 하얀 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리고 그 꽃눈을 맞으며 ‘나는 앞으로 자라서 무엇이 될까’ 상상하곤 했다. 오랜만에 그때 그 꽃향기를 맡고 있으려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자라서 무엇이 될까. 나는 앞으로 자라서……

눈을 떴다. 소준이 앞서 간 사람들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명주를 따라 꽃향기를 즐기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먼 산을 보고 있었다.

“아까시꽃 냄새 좋지요?”

“네? 저 꽃 이름이 아까시꽃이에요?”

“아니, 그건 라일락이고.”

“아.”

“이게 아까시꽃.”

소준은 라일락꽃과 아까시꽃을 번갈아 보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작가 선생님이라 역시 다르시네요.”

“다르다니 뭐가요?”

“꽃 이름도 엄청 많이 아시고.”

두 사람은 동시에 픽 웃었다. 명주는 그의 말이 기가 차서 웃었고 소준은 제가 한 말이 제가 듣기에도 어색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그의 웃는 얼굴에 순간 소윤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누나가 작가 선생님과 사는 줄은 몰랐는데,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폐라니요. 집주인이 누나인데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두 사람은 다시금 마주 보고 웃었다.

소준은 올해 스물여덟살이었다. 명주보다 아홉살이 어린데 실제로는 나이 차이가 그보다 훨씬 더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집이 부유한 덕에 큰 고생 안하고 자라서 얼굴이 저렇게 말갛구나 하고 명주는 생각했다. 소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또래들처럼 대학 졸업 후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용돈 걱정을 해본 적도 물론 없었다. 사업을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무일푼으로 친구들 집을 전전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자 누나를 수소문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 찾아왔을 때 현관문 앞에서 진과 마주쳤고 두번째 찾아왔을 때는 명주와 마주쳤다. 첫 방문 때는 차마 누나를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아 도망쳤지만 두번째 방문에서는 명주에게 설득당했다. 실은 누나 집에 갈 때마다 번번이 누나가 아니라 엉뚱한 사람과 맞닥뜨려서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고 소준은 말했다.

“그런데 두분 다 제가 상상했던 작가 이미지랑은 전혀 딴판이세요.”

“그래요? 어떤 모습을 상상했는데요?”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작가님.”

명주는 누가 들을까봐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먼저 그 작가님 소리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겠네.”

“그럼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그래도 되죠, 누나?”

그러고 나서 소준은 말끝마다 누나, 누나 하며 말을 이었다. 그가 이제껏 상상해온 작가의 이미지는 삐쩍 마른 몸, 도수 높은 안경, 극도로 냉소적이고 예민해 보이는 표정, 컴퓨터 앞에 인상을 쓰고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며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 말술을 마셔대며 청산유수 화려한 입담을 뽐내는 모습, 격식을 차리지 않은 헐렁한 옷차림, 이런 것들의 조합이었다고 했다.

명주가 듣자 하니 모든 작가가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타당한 묘사였다. 다만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직업병을 하나 이상씩 달고 산다는 것. 만성 위염이나 허리 디스크나 목 디스크, 편두통, 마우스 증후군, 오십견, 안구건조증 등등. 그래서 만나면 서로 인상을 쓰고 앓는 시늉을 하며 어디가 아프네 어디가 말썽이네 어느 병원이 잘하고 어떤 약이 잘 듣네 하고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분수대까지 걸어갔다. 진과 쟈르갈과 소윤이 이미 분수대 앞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윤은 공원 이곳저곳의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바빠 보였다. 쟈르갈은 뭔가 쉬지 않고 조잘거렸고 진은 그것을 수첩에 부지런히 받아적었다.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소설가로서의 취재 본능이 발동한 것 같다고 명주는 생각했다. 다섯 사람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았다. 탁자 위에는 누가 언제 매점에 다녀왔는지 캔커피 다섯개와 쿠키 한통이 올려져 있었다.

“공원에 처음 와봐요!”

쟈르갈은 열아홉 소녀답게 잔뜩 들떠 있었다.

“한국 공원에 처음 와봐요!”

그러더니 다음 순간 아차, 하며 말실수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뗐다.

“몽골에는 공원이 한개도 없어요.”

그러고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연방 웃었다.

명주는 쟈르갈의 눈으로 공원을 둘러보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벤치에 한 사내가 똑바로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면서 그 틈으로 비치는 오후 햇볕이 사내의 얼굴에 매번 다른 무늬를 만들었다. 분수대 주변에서는 비둘기들이 구구 구구 울며 누군가 뿌려놓은 모이를 먹느라 분주했다. 분수대 뒤편으로 나 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누군가 놓친 것인지 다홍색 헬륨 풍선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던 꼬마가 손가락으로 그 풍선을 가리키며 웃었다. 매점 앞에서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 셋이 나란히 앉아 과자 봉지를 뜯고 있었다.

“책산 나오니까 좋지?”

소준이 쟈르갈의 어깨를 톡 쳤다.

“너 그러지 마라. 나중에 진짜로 헷갈리면 어쩌려고.”

소윤이 그를 나무랐다. 진은 여전히 뭔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괜찮아요. 산책, 나 알아요.”

쟈르갈은 마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명주도 덩달아 마음이 느슨해졌던 것일까. 다음 순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쟈르갈에게 물었다.

“이 집을 나간 다음에는 어디로 가요?”

“복수하러 가요.”

분수대 주변에 모여 있던 비둘기 한떼가 갑자기 푸드득 요란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윤과 소준과 진과 명주는 쟈르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복수하러 간다고요?”

“네, 복수하러 가요.”

웃음기는 사라지고 없었으나 열아홉살 소녀의 표정은 무구하기만 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