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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휴가

 

 

그거 참 이상한 질문이구나. 액자를 떼어내며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넘어지지 않게 의자를 붙잡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얼굴에 닿아 재채기가 나려 했다. 내가 무엇을 물어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만은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평소에도 다정하게 말하던 분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가웠다. 겨울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마루에는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겨울이면 입김이 보일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난로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연탄값이 아깝다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아니면 때지 않았다. 아홉살 때였을 것이다. 어쩌면 열살이거나 열한살이었을 수도. 아니면 내가 가짜로 만들어낸 장면이거나. 동네에 수프 전문점이 생긴 이후로 나는 일요일이면 슬리퍼를 신고 이곳에 와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따뜻한 수프가 식도를 넘어갈 때면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그거 참 이상한 질문이구나. 아홉살짜리가 한 이상한 질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비스예요.” 날이 더워지니 장사가 안된다며 가게 주인이 수프 한그릇을 더 가져다주었다. “안 팔리는 거 주는 거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음식은 전부 안 팔려요.” 주인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따라 웃지 않았다. 정말로 장사가 안되었으니까. 주인은 이주 동안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과 동남아로 휴가를 떠난다고. 장사가 안되는 가게의 주인치고는 좀 느긋한 편이었다. “나도 내일부터 휴가예요. 밥하기 싫어 자주 오려 했는데 안되겠네.” “저기 찻길 건너 죽집 생겼어요. 거기 맛있어요. 우리 옆집 돈까스도 맛있고요. 음, 콩국수 맛있는 집도 있는데 가게 이름이 생각 안 나네. 동사무소 옆에 있는데.” 나는 주인에게 휴가 내내 혼자 밥해 먹는 일도 고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며칠 만에 회사 급식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수프 두그릇을 먹으려니 배가 불러왔다. 그래도 바게뜨를 추가로 주문해서 수프에 적셔 먹었다. 그때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에 수프가 묻었다. 나는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곳에 오는 이유가 어쩌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부러 손가락에 음식을 묻히기에는 수프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그사이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두시가 지나 있었다. 자는 동안 땀을 흘려 온몸이 끈끈했다. 다시 샤워를 했다. 이러다간 휴가 내내 샤워만 하는 거 아닌지.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회사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박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왜?” 메시지를 보냈다. 박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밥 먹으러 와. 장모님이 토종닭 보냈어.” 나는 작년 여름에도 박의 장모님이 보낸 토종닭을 얻어먹었다. 삼계탕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다지 맛있게 먹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재작년 여름에도 얻어먹었다. “싫어. 나 휴가야. 일주일 동안 집에 콕 박혀 잠만 잘 거야.” 그러자 박이 삼계탕에 낙지를 넣어주겠다며 나를 꼬였다. 나는 낙지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뭐든지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걸 먹기 위해 집 밖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 지나 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휴가 기념!” 아이스커피 모바일 상품권이었다. 역시 올해의 영업왕을 삼년 연속 탈 만한 녀석이었다.

쿠폰을 보니 갑자기 아이스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커피도 배달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짜장면 한그릇도 배달되는데. 커피는 그보다 원가가 더 싸니 괜찮은 장사일 텐데. 냉동실을 뒤져봤지만 얼음은 없었다. 얼음통에 물을 채워 넣고, 인터넷으로 얼음을 얼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검색해보았다. 세시간에서 네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있었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하나씩 위로 올렸다. 152번이 끝이었다. 다시 채널을 아래로 내리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었다.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영상이 방송되고 있었다. 수십건의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둔 최종민 대리가 생각났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만났다. 오줌을 누고 있을 때 옆에 와서 구십도로 인사를 하는 후배였다. 그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번은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 술을 같이한 적이 있다. 장차장님, 하고 누군가 불러 뒤를 돌아보니 최대리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구십도로 인사를 하더니.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테이블에는 맥주 한캔이 놓여 있었다. 최대리가 내게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 말하더니 편의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 맥주 한캔과 안주를 사가지고 나왔다. “이게 편의점에서 제일 맛있는 안주예요.” 최대리가 말했다. 세알씩 진공포장된 메추리알조림이었는데, 사실 나도 좋아하는 안주였다. “이거 세알과 맥주 한캔이면 딱이지. 내 친구 중에는 이거 세알로 맥주 세캔을 먹는 놈도 있어.” 내가 말했다. 최대리가 자기 친구 중에도 그런 녀석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날 나는 최대리의 취미를 알게 되었다. 최대리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다. 보이는 모든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제를 정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의 수만 세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찾기로 결정한 날은 그런 사람만 세는 식으로. 그는 지갑만한 크기의 수첩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 매일의 기록을 적었다. 최대리가 내게 수첩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여자를 여덟명 보았어요. 그제는 생수병을 손에 든 사람, 다섯명이네요. 날은 더운데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이상하게 보이죠?” 나는 최대리의 수첩을 만져보았다. 그러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참 쓸모없는 취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맞아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그러면서 최대리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이면 신문을 뒤져 전날 몇명이 죽었는지를 세었다고.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다고. 젊은 시절에 죽을 고비를 세번이나 넘겼다는 최대리의 아버지는 신문 부고란을 읽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야 그날 하루가 안심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세요. 어머니는 해마다 약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 아버지는 그 반대예요. 어떨 때는 그게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최대리가 말했다. 최대리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한 직원에게 그럴 것 같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날 우리는 한사람당 다섯캔의 맥주를 마셨다. 물론 메추리알도 열다섯알씩 먹었다. 언젠가 나도 뉴스에서 전하는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될까? 저 사고현장에 내가 없어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을까? 더 나이가 들면? 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저어보았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얼음은 아직 얼지 않았다. 지난여름 백만 관객이 들었다는 영화를 뒤늦게 보았다. 뻔한 내용인데도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참치 통조림을 프라이팬에 붓고 김치를 가위로 잘게 썰어 넣었다. 김치가 볶아지는 동안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볶은 김치와 고추장을 한숟가락 얹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약간. 밥을 비벼 그릇을 들고 선 채로 먹었다. 창밖으로 고등학교 건물의 뒤편이 보였다. 전망은 근사하지 않지만 그래도 앞집 담벼락을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고 부동산 중개인은 말했다. 그 말에 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개인의 말은 맞았다. 저 고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있다. 언젠가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 중인 야구부를 본 적이 있다. 등번호 89번. 이름 이대호. 키가 작고 마른 선수였다.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선수가 유명한 4번 타자라면 기분이 어떨까? 89번은 누구보다 슬라이딩을 잘했다. 베이스를 향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짧은 감탄이 나왔다. 슬라이딩을 하는 동안은 몸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 뛰는 사람처럼. 땅에 엉덩이가 하나도 닿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선수를 본 뒤로 나는 창 너머 고등학교를 볼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되었다. 오년 후 도루왕이 되어라.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아이스커피를 타서 한잔 마셨다. 해가 졌다. 몇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밤이 되었다. 일요일이 지나갔다.

 

*

 

늦잠을 자려고 마음먹었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휴가 첫날인데 출근하는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다니.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해마다 여름이면 꿈에 나타나 늘 똑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물 조심해라. 마치 내가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을 타고 난 사람처럼. 내가 열네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몇년 동안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곤 했는데, 보이지 않는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밥도 먹지 않았다. 귀신이 내게 옮겨올 것만 같아서. 그런 할머니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누나뿐이었다. 심지어 누나는 할머니의 말을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누나 말에 의하면 그걸 두세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슬퍼진다고 했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미친년이란 욕을 자주 들었다. 할머니 꿈을 꾸고 나니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더 자려고 눈을 감아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더웠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더워지다니. 오후에는 얼마나 찌려고. 샤워를 하고, 냉장고를 뒤져 유통기한이 아직 지나지 않은 우유를 마셨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침부터 날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휴가철 빈집털이범일지도 몰랐다. 빈집인 걸 확인한 후 현관 어딘가에 동그라미나 세모 같은 표시를 남겨둘 것이다. 그리고 내일 다시 오겠지. 나는 아무도 없는 척했다.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휴대폰도 울렸다. 박이었다. “나야. 문 열어.” 문을 열어보니 박과 그의 첫째 아들이 서 있었다. “서형아, 웬일이야?” 첫째가 폴짝 뛰어 내게 안겼다. 무거워서 몸이 휘청거렸다. “삼촌 놀러 가자.” 첫째가 말했다. 박은 자기도 이번주가 휴가라고 했다. “집사람한테 너도 휴가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같이 가자네. 고속도로 진입 전에 차 돌려 온 거야.” 나는 아무리 외로워도 가족여행에 따라가 눈칫밥을 얻어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첫째가 이마의 혹을 보여주었다. “만져봐, 삼촌. 튀어나왔지?” 이마에 손을 대니 혹이 만져졌다. “아파?” 첫째는 아프지만 참을 만하다고 했다. “근데 이 혹에서 용기가 나오는 것 같아.” 첫째는 혹이 난 후에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고백까지 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이 혹이 영원히 안 없어졌으면 좋겠어.” 나는 혹을 살짝 눌러보았다. 그사이 방으로 들어간 박이 내 가방을 메고 나왔다. “세면도구 챙겼어. 가자.” 박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첫째가 내 엉덩이를 밀었다. “할머니가 물 조심하랬어. 바닷가 가면 난 죽을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박의 아내가 나를 보자마자 검지를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막내 민지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 둘째 형민이도 자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잘 있었어요?” 박의 아내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꼽사리 끼어 미안해요.” 나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말 다 한다는 듯 박의 아내가 내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결혼 초기에 박은 아내와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 친구야? 가정이야? 선택해. 박의 아내는 늘 같은 이유로 화가 났다. 박은 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박과 대수는 열다섯살에 만나 이십여년을 뭉쳐 다녔다. 반 아이들은 우리 셋을 박장대소라고 불렀다. 우리 셋의 별명을 말해주면 사람들은 꼭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게들 웃겨요?” 우리는 유머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 셋이 뭉쳐 있으면 웃긴 일이 생겼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처음에 그 별명은 대수 혼자만의 것이었다. 체육대회 날 대수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넘어지는 바람에 박장대소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그 별명은 자연스럽게 우리 셋을 가리키게 되었다. 대수 말고 나머지 우리 둘이 박씨와 장씨였기 때문이었다. 박의 아내는 우리를 지긋지긋한 박장대소라고 부르곤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맛있는 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밥 먹으러 오라고 먼저 전화까지 한다. 왜 변했을까? 대수가 죽어서일까? 내가 파혼을 해서일까? 아니면, 세 아이의 엄마가 되니 마음이 너그러워진 걸까? 박이 담배 한대를 피우고는 차에 올라탔다. “출발합니다.” 박이 몸을 반쯤 뒤로 틀어 뒷좌석에 앉은 아들과 아내에게 말했다. 박은 예전부터 결혼을 하면 무조건 아이 셋을 낳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꼭 이남일녀로. 박이 왜 이남일녀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지는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술 한잔을 사주며 니들의 아버지가 왜 이남일녀를 꿈꾸게 되었는지 말해주는 장면을 나는 종종 상상하곤 했다. 첫째는 박을 닮았으니 아마 술을 꽤 마실 것이다. 식탐이 있는 둘째는 안줏발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지난달에 돌잔치를 한 막내는 커서 나와 술을 마셔줄지 모르겠다. 어떤 여대생이 늙은 남자와 술을 마셔주겠는가. 나는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박의 아내와 아이들을 보았다. 박의 아내가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첫째는 배트맨 모양의 선글라스를 끼고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차가 막혔다.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가고 있었다. 박이 잠에서 깬 나를 보더니 말했다. “점심 먹고 가자. 이쪽에 맛있는 막국수집 있거든.” 소문난 가게답게 주차장이 차로 가득했다. 대기표를 받고 이십분을 기다렸다. 박은 물막국수를 먹는다고 했다. 그러자 두 아이들 모두 나도,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가 비빔막국수를 먹는다고 하자 둘째가 또 나도, 하고 대답했다. 첫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째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 나는 둘째에게 비빔막국수를 선택하라고 충고해주었다. “비빔막국수를 반 정도 먹어. 그리고 육수를 부으면 바로 물막국수가 되거든. 그럼 한번에 두가지를 먹는 거지.” 내 말을 들은 둘째가 그럼 비빔,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나도 둘째처럼 비빔을 시켜 반쯤 먹은 다음 육수를 부었다. 맛있었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오전보다 차가 더 막혔다. 박이 끝말잇기를 하자고 해서 다섯명이 게임을 했다. 박은 끝말잇기를 좋아했다. 오죽하면 세 아이의 이름도 이렇게 지었을까. 서형, 형민, 민지. 첫째가 다섯번을 이기고, 박의 아내가 세번을 이기고, 박이 한번을 이겼다. 나도 세번 이겼다. 박은 운전에 집중해야 해서 한번밖에 이기지 못한 거라고 말했다. 한번도 이기지 못한 둘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울었다. 둘째가 우는 바람에 막내가 따라 울었다. 둘째는 사내자식이 그까짓 것 가지고 운다고 아빠한테 혼나고, 동생을 울렸다고 엄마한테 혼났다. 그러자 둘째가 울며 내 어깨를 흔들었다. 마치 자기편을 들어달라는 듯이.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펜션은 근사했다. 첫째와 둘째는 다락방을 보고는 서로 그곳에서 자겠다고 싸웠다. 작지만 아담한 수영장도 딸려 있었다. “지금부터 두 남자가 아이들 봐요. 난 이제 휴가예요.” 박의 아내가 말했다. “썬베드에 누워 책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게 소원이란다.” 박이 나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이박삼일 여행인데 책을 다섯권이나 가져왔어.” 아이들이 수영복을 달라며 소리쳤다. 박이 아이들에게 수영복을 입히는 동안 나는 튜브에 바람을 채웠다. 튜브 세개와 공 하나를 불고 나니 어지러웠다. 이러려고 나 데려온 거지, 하고 내가 투덜댔다. 박이 챙겨준 배낭을 열어보니 속옷 두벌과 칫솔 한개가 들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박의 반바지를 빌려 입었다. 나한테 좀 컸지만 고무줄 반바지라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영장에 발을 담그는 거라며 박은 민지를 튜브에 앉히고 사진부터 찍었다. 물에 들어간 막내가 기분이 좋은지 발길질을 했다. 박은 물장구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며 수영선수를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썬베드에 누워 있던 박의 아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호들갑 떨지 마, 하고 소리쳤다. 첫째와 둘째는 수영장을 한달 정도 다니다 피부병에 걸려 그만둔 적이 있다. 그래서 손을 잡아주면 둘 다 조금씩 앞으로는 갔다. 나는 손을 잡고 있다 중간에 슬쩍 놓았다. 그러면 둘 다 몇초도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때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저기부터 여기까지 혼자 왔어. 삼촌이 손도 안 잡았는데.” 첫째와 둘째가 한팀이 되어 나와 수구 게임을 하기도 했다. 둘째가 어찌나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지 반바지의 고무줄이 끊어졌다. 박이 웃으면서 자기 반바지에 달린 끈을 풀어 주었다.

사소한 사고가 있기도 했다. 하나는 게임을 하다 내 안경이 수영장에 빠진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곰돌이 모양의 젤리를 먹다가 첫째의 이가 빠진 것이었다. 안경을 찾기 위해 나는 할 수 없이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놀렸다. “누구나 세상에서 어려운 게 있어. 삼촌은 그게 수영이야.” 내가 말했다. 박이 잠수를 해서 내 안경을 찾아주었다. 첫째는 빠진 이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이미 몇번이나 유치가 빠지는 걸 보았으니까. 나는 빠진 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첫번째 이는 축구장에 묻었어.” 첫째가 말했다. “축구장? 새들이 물어간 게 아니고?” 옆에 있던 박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터키인가 어느 나라인가, 암튼 그 나라에서는 유치가 빠지면 그걸 장래희망을 이룰 곳에 파묻는다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으면 축구장에, 교사가 되고 싶으면 학교에. 설명을 하다 말고 박이 부인이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애 엄마가 나보고 대학병원에 묻으라고 했는데 알았다고 하고는 축구장으로 갔지. 서형이 엄마는 아직도 이가 대학병원 화단에 묻혀 있는 줄 알아.” 첫째가 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삼촌, 엄마한테 비밀인 거 알지?”

저녁은 당연히 바비큐 파티였다.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첫째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박이 투덜댔다. 첫째가 상추쌈을 싸서 고기를 굽고 있는 아빠의 입에 넣어주었다. “돈 들어 미안, 아빠.” 둘째는 소시지를 젓가락에 끼워 왼손에 들었다. 소고기 한점. 소시지 한점. 번갈아가며 먹었다. 그러다 이유식을 먹는 동생을 보고는 불쌍하다고 중얼거렸다. “안됐다. 이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박이 호박과 양파와 토마토를 구워 아내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막내가 손을 뻗어 음식을 만지려 했다. 못 만지게 접시를 밀어놓자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박의 아내가 재빨리 열쇠고리를 손에 쥐여주었다. “저 열쇠고리만 주면 눈물을 뚝 그쳐. 정말 웃기지?” 박이 말했다. 박의 말처럼 정말 웃겼다. 열쇠고리가 변기 모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막내는 변기 모형을 빨면서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내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막내가 변기를 빨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이거 간직했다가 민지 시집갈 때 팔아야지.” 고기를 배 터지게 먹은 두 녀석은 텔레비전을 한시간 정도 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박의 아내도 맥주 한잔을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우는 건 내가 할 테니 둘이 한잔 더 해요.” 우리 둘이 동시에 고맙습니다, 하고 구십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내가 숙소로 들어가자 박이 트렁크에서 양주 한병을 꺼내왔다. 그러고는 고기를 겉만 살짝 익혀 내 접시에 올려주었다. “술안주는 이래야지. 아깐 애들 때문에 너무 바싹 구웠어.” 우리는 건배를 했다. 박이 고추와 마늘을 된장찌개 뚝배기에 넣었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고기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물을 더 부은 다음 불판에 올려놓았다. 나는 파김치를 젓가락에 감아 숯불에 살짝 익혀보았다. 의외로 맛있었다. 모기가 종아리를 물었다. 그때마다 손바닥으로 종아리를 때렸다. 고기가 떨어지자 우리는 된장찌개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비싼 양주인데 안주가 된장찌개라니, 하고 박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된장찌개 안주를 나보다 더 맛나게 먹었다. 박은 취하면 취할수록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십대엔 안 그랬는데 삼십대를 넘기면서 생긴 술버릇이었다. 영업하는 데 지장은 없는지 물었더니 술에 취해 실언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대답했다. “말실수해서 무너지는 인간 여럿 봤거든.” 나는 달이 무지하게 크네, 모기가 무지하게 많아, 파김치가 무지하게 맛있어,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지하게 더운 밤이고.”

 

아침부터 짙은 구름이 보이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안개비였다. 박이 썰매장에 가자고 했다. “눈도 안 오는데 무슨 썰매?” 내가 되묻자 첫째와 둘째가 그것도 모르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여름엔 물로 가. 눈썰매보다 물썰매가 더 재미있어.” 박이 말했다. “비 오니 더 재미있겠다.” 박의 아내가 두 아이를 보며 박수를 쳤다. 비를 맞으며 썰매를 탄다니. 어떤 기분일지. 나도 얼른 가서 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박의 아내가 막내와 숙소에 남아 있을 테니 실컷 놀다 오라고 했다. 어제 물놀이를 해서 그런지 막내에게 감기 기운이 보인다고 했다. 박이 막내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나도 만져보았다. 미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우리 걱정 말고 이 말썽꾸러기들이랑 얼른 나가주세요. 그게 날 돕는 거예요.” 박이 막내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아가씨, 아빠랑 오빠들은 놀고 올게요.”

첫째와 둘째는 우비를 입었다. 공룡 모양의 우비였는데 엉덩이 부분에 꼬리도 달려 있었다. 똑같은 우비를 입은 두 아들을 세워놓고 박이 사진 한장을 찍었다. 우리는 튜브처럼 생긴 썰매를 들고 언덕을 올라갔다. 비가 오는데도 놀러 온 사람들이 꽤 있어서 우리 차례가 되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다. 출발선에 서자 둘째가 무섭다고 울먹였다. “막상 타면 안 무서워.” 첫째가 동생에게 말했다. 안전요원이 둘째의 튜브를 붙잡아주면서 안심시켜주었다. “너보다 더 어린 애들도 잘 탄단다.” 인공잔디 위로 물이 분수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저 사이를 통과하는 거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첫째가 출발과 동시에 몸을 뒤로 젖혔다. 나를 앞질렀다. 나는 결승선에 도착하자마자 첫째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째가 일등한 게 아무래도 이마에 난 혹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곧이어 박과 둘째가 도착했다. 나는 둘째와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하나도 안 무섭네.” 둘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몇년 전부터 겨울이면 그렇게 눈썰매가 타고 싶었다. 텔레비전에서 눈썰매를 타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저길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마흔이 다 되어 눈썰매가 타고 싶다니. 십대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몇번 썰매를 타고 난 뒤 우리는 내기를 했다. 일등 한 사람을 나머지 세 사람이 안마해주기. 첫번째는 박이 이겼다. 두번째는 첫째가, 세번째는 다시 박이 이겼다. 나는 일부러 손끝에 힘을 주고 박의 어깨를 주물렀다. 박이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좀 져. 형민이 저러다 또 일등 못하면 운다.” 네번째 경기는 내가 이겼다. 원래는 형민이를 이기게 하려고 박과 첫째의 진로를 방해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먼저 들어왔다. 다섯번째는 첫째. 여섯번째는 박. 둘째가 거의 이길 뻔했는데 마지막에 와서 썰매가 뒤집혔다. 화가 난 둘째는 박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형민아, 안마 똑바로 해야지.” 박이 말하자마자, 둘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게임에서 진 것 가지고 운다고 박이 둘째를 혼냈다. “꼭 아빠랑 형을 이겨야겠어?” 둘째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지고 싶지 않은 거라고.” 둘째의 코에서 콧물이 나왔다. 박이 자신의 옷으로 콧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인마, 그게 같은 말이지.” 동생이 우는 걸 지켜보던 첫째가 동생의 편을 들었다. “아빠, 그건 다른 말이에요.” 첫째의 말에 둘째가 갑자기 눈물을 그쳤다. “맞아, 형.”

우리는 매점으로 가서 사발면을 사 먹었다. 첫째는 육개장 사발면을 골랐다. 첫째는 사발면 중에서는 오직 육개장 사발면만 먹었다. 박의 말에 의하면 그건 장인어른의 장례식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그때 장례식장 육개장이 유난히 매웠다. 그건 나도 기억이 난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매워서 눈물이 나네, 하고 누군가 말하기도 했다. 육개장이 매워 박은 할 수 없이 첫째에게 사발면을 끓여주었는데, 그날 먹은 사발면이 육개장 사발면이었다. 그다음부터 첫째는 오직 그것만 먹었다. 다른 라면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둘째는 진라면과 짜파게티 사이에서 또 갈팡질팡했다. “삼촌, 내가 퀴즈 하나 낼게요. 형민이랑 절대 가면 안되는 곳은 어디게요?” 첫째가 내게 물었다. “음, 마트? 아님, 편의점?” “땡. 베스킨라빈스.” 나는 둘째에게 진라면과 짜파게티를 둘 다 먹으라고 말해주었다. “반반씩 먹어. 남은 건 삼촌이 먹어줄게.” 박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박이 내게 예전에 대수랑 눈썰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제? 난 모르는 일인데.” “너 군대 갔을 때.” 둘은 썰매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일을 했다. 대수는 그곳에서 눈 둔덕에 처박힐 뻔한 여자를 구했다.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대수가 여자에게 발뒤꿈치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눈썰매를 탄 여자는 이번에도 대수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대수가 브레이크, 하고 소리쳤다. 여자가 뒤꿈치에 힘을 주었고, 눈보라가 주변으로 날렸다. 여자는 안전하게 착지를 했지만 하이힐의 굽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양쪽 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 “그 굽은 어디 간 거야?” 그다음 이야기는 이랬다. 대수가 눈 속을 뒤져 굽을 찾아왔다고. 그걸 인연으로 사귀게 되었다고. “얼마 못 사귀었어. 한 여섯달 정도. 진짜 이상한 여자였어. 내가 본 것만 해도 세번인가 네번인데 웃기게도 그때마다 굽이 부러졌어. 술집 계단에서 굴러 부러진 적도 있었고, 보도블록 틈에 끼어 부러진 적도 있었어.” 나는 데이트를 할 때마다 굽이 부러졌던 대수의 애인을 상상해보았다. 그럼 집에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쩔뚝이며? 대수라면 가방에 못과 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고쳐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뒷좌석을 보니 두 녀석이 서로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갔다가 범퍼카를 스무번도 넘게 탄 적이 있었다. 줄서기 싫어 사람이 별로 없는 놀이기구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한번 타고 나니 자꾸 타고 싶어졌다. 나는 한 사람만 선택해서 그 차만 집중 공격했다. 내 차와 상대방의 차가 박치기를 하는 순간, 온몸이 출렁거리던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치 산 정상이라도 정복한 것처럼 자신감이 솟구쳤다. 여학생에게 인기가 없는 여드름쟁이 남학생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날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다 양쪽 어깨에 피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어디서 멍이 들었지. 곰곰 생각해보니 범퍼카 안전띠에 눌린 자국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펼쳤는데 글자가 여러겹으로 보였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날 이후, 나는 멀미가 생겼다. 한창 심할 때는 택시를 타고 십분 거리도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걸어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첫째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범퍼카를 타다 멀미가 생겼다니. 그런 거짓말은 초등학생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 멀미를 하는 것은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식당 가는 길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백반을 먹을 수 있어.” 박이 내비게이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의 아내가 내게 글로브박스에서 껌을 찾아달라고 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몇년 전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가죽장갑이 들어 있었다. “이거 여기 있었네.” 나는 장갑을 꺼내보았다. 껌을 씹어도 계속 속이 울렁거린다고 첫째가 말했다. “그런데 삼촌, 왜 지금은 멀미를 안해요?” “글쎄, 그냥 없어졌어.” 멀미가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났지만 언제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거 참 이상한 일이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둘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박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백반집에 도착해보니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박의 아내가 근처 아무 집이나 가서 먹자고 말했지만 박은 고집을 피웠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세상에서 다섯번째로 맛있다는 돼지불고기 백반집으로 출발했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열한시도 안되었는데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불백 오인분이요.” 박이 우리 의견은 묻지도 않고 주문했다. 고기는 맛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반찬으로 나온 달걀 프라이 다섯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박은 달걀 프라이를 주지 않는 백반집은 엉터리라고 했다. 박이 생각하는 백반의 기준은 이랬다. 달걀 프라이를 일인당 하나씩 줄 것. 밥은 꼭 흰쌀밥이어야 할 것. 세 종류 이상의 나물이 나올 것. 박의 아내가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달걀 프라이를 세개만 더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소주도 한병 주문했다. “반주 하고 싶죠? 운전도 안하는데 한잔해요.” 박의 아내가 내게 술 한잔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아침부터 혼자 마시면 청승맞아 보여요. 한잔만 같이 해요.” 나도 박의 아내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었다. 종업원이 달걀 프라이 세개를 가져다주며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하고 생색을 냈다. 박의 아내가 뒤돌아선 종업원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둘째가 달걀 프라이를 먹으려고 하자 박의 아내가 그만, 하고 말했다. “어른들도 하나씩 먹자.” 박의 아내는 자신의 밥그릇과 박의 밥그릇 위에 달걀 프라이 하나씩 올려놓았다. 나도 달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렸다. 노른자가 터지면서 밥알이 노랗게 물들었다. 박의 아내가 술 한잔을 마시고는 숟가락으로 노른자만 동그랗게 파서 먹었다. 나는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같이 여행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도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가서 범퍼카를 탄 적이 있었어요.” 박의 아내가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했다. 십대 시절 박의 아내는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어서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들과 범퍼카를 탔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가 탄 차를 쫓아와서는 뒤를 박았다. 도망을 가면 쫓아오고 도망을 가면 쫓아왔다. 그 순간 박의 아내가 한 생각은 이랬다. 자신의 얼굴이 흉측해서 저 사람이 놀리는 거라고. 그날 이후 박의 아내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병을 앓았다. 성형수술을 해서 흉터를 없앤 후에야 두근거림은 사라졌다. “대수씨 장례식을 치를 때였어요. 이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운다 해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어요. 그런데 친정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서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했어요. 성형수술을 한 뒤 옛날의 사진을 모조리 태웠는데, 어찌해서 한장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박의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냥 그런 이야기예요. 내가 미안하다는.” 나는 박의 아내가 술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다시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흉터가 있었어도 예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박이 농담을 했다. “그때 이 사람 범퍼카 박은 사람이 너 아냐?” “그래, 나다. 어쩔래.”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국도를 지나가다 폐교를 활용해 만든 미술관을 보았다. 박이 잠깐만 들러보자고 했다. 박의 아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대답했다. “미술관이라면 커피도 팔겠지.” 박이 말했다. 나는 무조건 오케이, 하고 대답했다. 입장료는 이천원씩이었다. 아이들은 무료라고 했다. 커피 팔아요? 하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자판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웬만한 커피가게보다 더 근사한 정원에서 마실 수 있어요.” 직원이 조각공원으로 꾸며놓은 학교 운동장 끝을 가리켰다. 가보니 등나무 아래 벤치가 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스커피가 나오는 자판기가 있었다. 박의 아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을 테니 천천히 미술관 구경을 하고 오라고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복도 바닥에 수백개의 실내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신었던 실내화 모양도 있었다. 나는 그 위에 발을 대보았다. 작았다. 아이들이 첫번째 교실로 들어가더니 이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박이 재빨리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나도 그림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게 뭐야, 하고 생각했다. 두번째 교실에 전시된 그림들은 제목이 모두 똑같았다. 기억.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왜 기억이라고 제목을 붙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세번째 교실에서 휠체어를 탄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휠체어 손잡이에는 빨간색 하이힐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나는 그림을 보는 척하며 남자의 두 다리를 힐끔 보았다. 하이힐을 휠체어에 달고 다니는 남자라니. 남자는 천천히 그림을 보았다.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밀었다가 하면서. 그녀는 좋아,라는 말을 자주 썼다. 내가 내일 영화볼래? 하고 말하면 좋아, 좋아, 좋아, 하고 세번 반복해서 말했다. 처음은 큰 소리로. 그다음 두번은 점점 작게. 마치 메아리처럼. 그러면 그 말은 내 귀 안으로 들어와 끊임없이 울렸다. 어떤 날은 귓속에서 종일 ‘좋아’라는 말이 메아리치기도 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나를 속일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짓말이라는 놈이 스스로 제 몸의 부피를 늘려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한 게 하나 있긴 하다. 도대체 그녀가 늘 말하던 조카들은 누구였을까? 그녀가 그렇게 자랑하던 언니들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과학자가 되어 지구온난화를 막겠다는 조카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충치 치료를 하러 치과에 갔다가 무서워 기절을 한 조카는 또 누구인가? 생일날 문방구에서 꽃반지를 사주었다는 조카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눈매가 정말 닮았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내가 바보 같기 때문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언젠가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다. 길을 가다 다리를 절룩이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목발을 짚고 있는 사람을 한쪽 구석에 그려넣곤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막연한 공포를 오랫동안 안고 살다보니 실연의 상처 정도는 원래 내 것인 양 익숙해졌다. 다섯번째 교실로 가니 박과 아이들이 있었다. 누워보세요,라고 바닥에 써 있었다. 나는 누워보았다. 첫째와 둘째도 누웠다. 박은 눕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보여?” 나는 어떤 사람의 눈, 코, 입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박이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찍었다. 마지막 교실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출구 앞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앉아 있는 것만 보아도 키가 아주 큰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맨발이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이군요, 하고 말할 뻔했다. 하이힐의 주인이 당신이군요. 반가워요. 우리 악수할까요. 한번 말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셨다. 박의 아내가 유모차를 끌며 조각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그쪽으로 뛰어갔다. 박이 조심해, 하고 소리쳤다. 나는 자판기 쪽으로 걸었다. 아이스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판기 앞에서 등나무 뿌리에 다리가 걸렸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커피를 뽑으려고 지갑을 꺼내보니 잔돈이 없었다. 나는 괜히 거스름돈이 나오는 구멍에 손을 넣어보았다. 당연히 돈은 없었다. 더웠다. 나는 이마의 땀을 닦은 다음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박을 향해 소리쳤다. “동전 있어?” 박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박을 보면서 생각했다. 셋 중 한명이라도 실패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리고 박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커피 마시게 얼른 뛰어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