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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성도 『도시 인간학: 도시공간의 통합 기호학적 연구』, 안그라픽스 2014

기호학자가 집대성한 서구 도시 인문사상사

 

 

김백영 金白永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rangzang@naver.com

 

 

165-촌평-도시인간학_fmt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는 첫눈에 누구나 적어도 두가지 점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 참고문헌을 제외한 본문만 940면에 달하는 물리적 분량의 압도적 부피와 무게감 때문이고, 그다음은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밀도 높은 문장에 빼곡히 담아낸 저자 김성도(金聖道)의 박학과 유려한 필력 때문이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엄청난 스케일의 도시학 지성사 오디세이는, 별첨된 ‘서구 도시사상사 계보도 소묘’에 요약되어 있듯이, 성 아우구스티누스, 비트루비우스(Vitruvius),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세갈래 길 이래 분기되어 형성된 서구 도시사상사의 다양한 이론가들로 그 명맥이 이어진다. 이 책은 실로 국내 연구자가 쓴 책으로는 비견할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거의 모든 학제적 영역과 주요 사상가·이론가를 총망라하여 서구 도시사상의 지성사적 계보를 집대성하고 있다.

저명한 기호학자인 저자가 이처럼 도시사상사의 기념비적 저작을 저술한 목적은, 좁게는 ‘도시기호학’의 이론적 토대를 수립하는 데 있고, 넓게는 도시적 삶에 대한 인문적 통찰을 통해 도시 인간학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애초에 이 책은 “1960~70년대에 걸쳐 성장한 건축기호학의 연장선에서 1980년대 중반 출현했으나, 본격적인 발전기에 미처 진입하기도 전에 활력을 잃어버린” 도시기호학을 현대적 맥락에서 되살려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었다(20면). 그런데 그 과정에서 ‘도시기호학’이라는 작은 섬이 떠 있는 ‘도시 인문사상사’라는 광활한 바다에 대한 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15면). 그 결과 이 책은 도시계획, 도시사회과학, 도시인문학의 세가지 담론적 영역의 계보를 탐사하는 제1부, 건축기호학, 도시기호학, 형태기호학의 이론적 논의에 대한 검토를 통해 도시기호학의 역사적·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제2부, 도시공간에 대한 시학적 상상력, 서사적 차원, 생태학적 차원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도시기호학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는 제3부의 원대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39장 체제의 형식적 완결성을 갖춘 본문의 논의를 통해 다양한 분과학제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바르뜨(R. Barthes), 그레마스(A. G. Greimas), 에꼬(U. Eco), 고트디너(M. Gottdiener), 벤야민(W. Benjamin), 르페브르(H. Lefèbvre), 쎄르또(M. de Certeau), 로씨(A. Rossi), 노르베르크 슐츠(C. Norberg-Schulz), 린치(K. Lynch) 등 도시학과 기호학 대가들의 핵심 개념과 이론적 논의를 매우 촘촘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다.

하지만 저자의 경이로운 학자적 성실성과 성취에 대한 경외심에도 불구하고, 평자로서 이 육중한 저서를 독파하면서 마음속에 품게 된 몇가지 문제의식에 대해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첫째는 이 책이 거장들의 사상과 이론을 정리하는 데 주력한 나머지, 저자의 독창적인 사유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한정된 지면에 주요한 사상가의 논의를 빠짐없이 소개하려는 학문적 욕심과, 그들을 남김없이 도시기호학의 계보에 편입시키려는 이론적 강박이 작동한 결과, 개별 소절들의 높은 내용적 완결성에도 각 소절 간의 흐름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여 전체적인 책의 구성은 유기적 연관이 부족한 단편적인 조각 글의 모음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서문에서 저자도 지적하듯이, “학제성과 횡단성이 극심한 도시 연구”(30~31면)를 단일한 계보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것이 되기 쉽다. 차라리 저자가 도시사상사의 고전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추출해낸 도시에 대한 여덟개의 은유적 모델(우주, 유기체, 기계, 예술작품, 텍스트, 네트워크, 복잡계, 생태계)에 대한 논의(제1장)를 중심으로 책 전체를 좀더 과감하고 독창적으로 구성했더라면 훨씬 흥미진진하고 유기적 완성도가 높은 저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둘째, 이 책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도시학 담론의 편중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주로 소개하는 것은 (기호학 분야를 제외하면) 건축·도시계획·도시문화론에 해당하는 이론적 논의들이다. 이것은 이 책이 그 논의의 범위를 ‘도시기호학’에 국한한다면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훨씬 광범위한 ‘도시 인간학’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그 편협성은 여러가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도시연구에 있어서 ‘공간’ ‘문화’ ‘상징’ ‘기호’는 물론 중요한 연구대상이지만, 그 이면의 ‘사회적 실재’를 시야에서 놓칠 경우 물신성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저자도 지적한 바 있듯 198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에서 도시기호학이 활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기호학이나 도시학의 부진이라는 학문 내적 원인보다는 복합적인 사회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역사적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저자가 서문에서 도시학의 일곱가지 핵심 연구분야(도시지리학, 도시인류학, 도시사회학, 도시경제학, 도시정치학, 도시심리학, 도시역사학)를 제시하면서 도시기호학이 이들과의 접점을 찾아내고 탐구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음에도(30~37면), 정작 본문에서는 이러한 사회적·역사적 실체로서의 도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생략된 채 ‘기호’로서의 도시에 대한 논의에만 집중하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과연 오늘날 한국의 도시기호학이 이러한 서구의 도시이론을 도입해 그것을 정련하고 적용함으로써 뿌리를 내리고 발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물론 직접적으로 이 책이 감당해야 할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을 정독할 정도의 독자라면 이 책에서 천착하고 있는 구미 도시사상의 흐름 및 그것을 잉태한 구미 도시의 현실과 우리가 처한 현실 간의 괴리, 혹은 이 책에서 다루는 이론의 기저에 깔린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과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 학계의 뿌리깊은 인식론적 사대주의 내지 학문적 종속성이라는 고질(痼疾)에 대해서는 좀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이 책의 논제를 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도시기호학의 대상이 ‘19세기 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느덧 ‘강남’이 ‘강북’의 모델이 되어버린 도시, 이제 갓 30대 중반에 접어든 신도시 이미지가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압도하고 있는 인구 천만의 공룡도시 서울을 분석함에 있어서, 혹은 전통시대의 풍수적 공간 질서와 식민지 잔재(혹은 유산), 그리고 개발주의의 관행 등 이질적 시공간이 의미론적으로 포개져 있는 한국 도시의 공간과 일상을 기호학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만보객’(보들레르)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벤야민)가 얼마나 유용한 방법과 도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유럽의 침체와 동아시아의 부상이라는 21세기 전지구적 지각변동 속에서 토오꾜오와 서울, 베이징과 상하이를 보들레르(C.-P. Baudelaire)와 벤야민 혹은 쎄르또와 제이콥스( J. Jacobs)의 언어로 독해해내려는 전략은 과연 얼마나(혹은 언제까지) 유효하고 타당한 것인가.

이러한 아쉬움과 궁금증에도, 이 책은 광범위한 관련 분야 연구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지적 자양분을 갖춘 책으로 미덕이 결함을 압도하는 역작임에 틀림없다. 도시학 연구자에게는 한국어로 쓰인 수준 높은 필독서가 한권 추가된 셈이다. 이 책이 향후 기호학과 도시학 간의 생산적인 교류와 소통의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