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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소설집 『02』 가 있음.

dryeyed@gmail.com

 

 

 

맵스 앤드 피플(Maps and People)

 

 

From Shindorim to…

 

MON 7:15 AM. 남들은 세계의 개가 된 심정으로 지하철에 올라타는 시간 여전히 술에 푹 절은 채 신도림역 환승통로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은 노 서비스 지역에서 남의 통신사 주파수를 찾아 헤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밝다. 너무 밝아. 새로 교체된 천장의 LED 전광판이 뿜어내는 불빛이 너무 밝아서 씨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아. 하지만 환승통로를 수놓은 방향표시등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메리크리스마스, 해피뉴이어, 추석과 할로윈, 발렌타인데이를 한꺼번에 외치고 있는 듯한 것이 연중무휴 대박세일 중인 쇼핑몰에 속한 기분, 그런 기분을 요즘은 지하철역 환승통로에서도 기꺼이 느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여전히 취해 있다는 거. 두시간 전에 마신 에스쁘레쏘의 효과가 이제야 시작되는지 갑자기 온 신경이 히스테릭하게 깨어나며 사방의 모든 것을 찍어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연계 포스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카메라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나는 실신한 역을 깨우는 신이 된 기분이겠지.

 

내가 손가락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핸드폰 액정을 문지르는 동안 영혼까지 학대당한 표정의 사람들이 승강장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무젓가락들이 겹쳐지며 부러지는 것이 아닐까? 밤이 오면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월요일의 아침, 모두가 더 잘, 더 많이, 더 죽도록 얻어맞을 각오로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런 때의 지하철역이란 너무 맨 얼굴이라서 가끔은 폭탄 같은 걸 터뜨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조용히 일어나서 위치를 바꾼 뒤, 새로운 방식으로 서성이기 시작한다.

 

“…my father was an American soldier and my mom was a prostitute. I was born in 1995, still young and crisp.”

 

핸드폰 캘린더의 숫자가 바뀐 거, 내가 한살을 더 먹었다는 사실이 새삼 많은 것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엄마와 아빠, 무엇보다 엄마에 대해서, 뭔가를 찢고 나왔다는 거, 그것에 대해 더 심각해지고 더 궁색해지고 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는 식의 미끌미끌한 말들이 쉽게 쏟아져나오는 걸 보면 이젠 나도 완전히 끝난 건가. 그런데 여긴 어디인가? 지도에 의하면……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방향과 위치, 몇개의 점이 하나의 평면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나가 목표지점에 부닥치는 거, 그러니까 지도란 결국, 평화로운 평면 위에서 날이 밝고 다시 저무는 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못 박힌 채 꾸물거리는 인간들을 발견하여 증오하거나 연민, 사랑에 이르…… 근데 쟤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죽음을 향해 뛰어가느냐고,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묻고 싶어지더라도 입 닥치고, 이 떡처럼 끈끈한 세계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 그걸 나는 월요일 아침의 신도림역이라 부르겠다. 길을 잃는 건 물론 문제다. 꾸물거리는 사이 지도에서 비껴 떨어지고 나면 암호가 발각되어 적들에게 포위된 졸병, 너무 많은 고문을 당해서 자신이 스파이라는 환각에 시달리는 PTSD 환자 따위가 되어버릴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되면 지도 따위 아무런 소용이 없어질 테니까. 그런 협박, 배가 터지게 먹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매우 안전하다.

 

배터리 상태 7%, 네이버지도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방금 어깨를 치고 지나간 어떤 여자애가 너무나도 내 엄마를 닮아서……

 

인간이 조갯살처럼 연약해지는 시간에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올라 패닉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떤 운명의 저주 같은 것이다. 그럴 땐 다분히 의도적 실수에 의해 반대방향 지하철에 몸을 싣게 된다.

 

그럴 때도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내 표정은 스튜어디스처럼 딱 굳어 있다. 엄마한테 배운 거다.

 

오 엄마,

 

가 말했다. 나한테 지도가 있어. 거기 사람들이… 믿어봐, 나한테 계획이라는 게 있다… 엄마는 줄줄이 거짓말을 했다. 스튜어디스처럼 딱 멈춘 얼굴로.

 

Mom,

 

Wheres your map? Where are your people? Mom, where are you?

 

At Ladies Lunch

 

Mom and I, Mommy Mo and The Big Smile, we were at Ladies Lunch, a small Turkish restaurant near 녹사평역. It was a typical summer afternoon, distinctively hot and sticky like a whores big mouth, playing with a warm drunken tongue of 개저씨.

 

The restaurant was on a rooftop. Down the street, there were girls in seethroughs and high heels, walking fast and checking out each other. All of them looked the same.

 

We must get out of thisplace, right now, Mom.” I said. “Somethings very wrong here. I feel like a cherry flavoured gummy bear.”

 

Mom didnt answer. She was staring at her iPhone and fiercely tapping on the screen. “Please stop tapping on it, Mom.” I didnt say that, actually. Instead, I said:

 

Are you on TV?”

 

It started like this. I met a guy. A nice handsome guy from somewhere between Iraq and Afghanistan, typically American, I mean Guantanamo, or was it just my pseudoFreudian interpretation of that dream country…”

 

He asked me, “티비 나와요?” “Which one? One of those dating shows? 짝?” “You got such beautiful eyes…”, He went on.

 

You Korean girls. The beauty from the Far EastLast night I met one of these qualifiedyoungKoreangirls, right there in the brandnew espresso bar. Shes a senior editor of a street fashion magazine called Maps. Maybe not. Whatever. Something hipster. Cool, right? Her name was Minji. Do you know her? 왜냐하면 당신이 그 여자와 몹시 닮았거든요.”

 

Of course we all look the same, and why not? Silicon and plastic. I meanpretty.” Arent they like you? Arent they?

 

He was laughing because I dunno. Girls in seethroughs and men on high heels all over Itaewon and I really dunno.

 

Mom, I just wanted to feel good. So I met those helpless foreigners who strongly insisted theyre Americans. We talked on and on in the ugliest fashion, felt unutterably wrong and lonely. What an shittyFUCK, ITAEWON. I decided to leave. I looked at him and said…”

 

“엄마가 항상 말했지, 이놈 저놈 만나고 다니지 말라고. 그런 nobody from whothehellgivesashit, 어떻게 너는 어떻게 매번 그토록 awkward하고 nasty하고 obnoxious하고 horrible, frightening하고 repulsive한 그런 남자… Look sweetie, 너를 보면 철이 지나서 재건축이 반려된 아파트단지 같다는 기분이… 들겠니 안 들겠니, 내가.”

 

“엄마가 항상 얘기했던 거, 모르는 사람을 믿지 마라. The thing is, 어떻게 누군가를 알 수가 있어? 알게 될 수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누구야? 결국 아무도 믿지 말라는 거 아냐. 안전한 곳을 떠나지 말라는, 니 곁을 떠나지 말라는. 니 곁에 꼭 붙어 있으라는. 절대로 니가 그린 지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Mom hesitated. There was something very resentful in her eyes, in the way she stopped talking, stopped eating and cast a long dull gaze on her iPhone. I dunno. Je nen pense rien, maman. Je suis desole, maisAs we stopped talking, the TV came on.

 

“……우주는 죽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구는 공전합니다. 달과 함께라면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1999년 우리의 곁을 떠난 보이저 2033호는 오늘 새벽 오후 세시 태양계를 떠나게 됩니다. 아직 한번도 도달한 적 없는 영역으로 우리 인류는 향하고 있습니다.”

 

1999년도의 대 히트송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많은 것이 알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며 어떻게 오게 되었고 대체 (내가) 무엇이 되어버렸는지 오래전에 까먹었다. 엄마가 꼬치에 꿰어진 작은 버섯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나는 궤도를 완전히 이탈해버린 우주선이 된 기분이다.

 

너무 일찍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애” “믿지 못할 애”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뭐니?” 엄마가 물었다. “유 룩 쏘‐ 다운” 난 엄마를 봤다. 엄마의 표정에는 그늘이 없었다. I cant help reveal my secrets, my veiled 역사와 비밀

 

내 어머니는 교사였고,

내 아버지는 교사였고,

내 애인은 교사였으며,

나는 좋은 학생이었다

 

“…my father was an American soldier and my mom was a prostitute. I knew how to be a good whore since I was born.”

My room was pink. Everything was pink except my dull yellow face.”

 

But I was pink too. One day my mom gave me an iPad and taught me how to use my fingers on it, how to touch different things. But it wasnt satisfying at all. I thought Id learn how to read maps but I couldnt.”

 

However I loved maps a lot. There were houses, buildings and streets, tulips and roses all over there. And those beautiful oceans! They were blue, not pink.”

 

Eventually I found people there, on the maps. They moved around, left to right, bottom to up. All the people were on the map in the end, not on the streets, not anymore.”

 

A good doctor once said to me that you need to be addicted to life but that makes no sense to me. I buy pills. The good doctor remains a good doctor. I searched her name on Facebook. She had a great life. A goodlooking husband, seemed rich and severe, two dogs, plus an ugly little baby girl. I touched their skins on the screen. I touched her tits more than ten times. No reactions, no. I liked it.”

 

Pause

 

I have no face because I am a parasite. I know how to smile perfectly. My mom taught me. I was a fast learner.”

 

My father was a horror and my mom was an American dream. Both were public school teachers. How broken their faces were…”

 

내 어머니는 하사였고, 내 아버지는 창녀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년은 절대로 창녀가 될 수 없을 거예요. 그년이 태어난 날이 대한민국이 망하는 날이랍니다.”

 

This is how I ended up here.” I said. “Do you like it?” She didnt answer. She didnt even say a word. “엄마, 울어?” It was still a perfect summer afternoon, ten to two, and we didnt have a single idea about what we are going to do.

 

1995

 

199575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 뱃속에 있던 나는 극장에 갔다. 그날 본 영화에 대해서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느낌은 남아 있다. 아주 선명한, 어떤 그림자의 그림자. 예를 들어,

 

남자의 대사: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아. 중요한 것은 내가 박는 편이냐 박히는 편이냐는 거야.

여자의 대사: 내가 박고 싶은지 박히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어쨌든 나는 박히게 된다는 거야.

 

199575일 상영된 그 영화는 연애영화 또는 로맨스, 블랙코미디와도 상당히 유사한 누아르, 아니 그게 정말로 영화였는지 소음인지, 빛인지, 혹은 그냥 소리와 빛으로 된 산업, 단지 사기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을 그 영화가 흘러나오던 그때, 물론 그것은 이미 완전히 지나가버린 시간들, 아니면 이때 저때 기분에 맞게 갈아끼울 수 있는 그런 시간들, 그런 몸짓들로 이루어진 변변찮은 영화였다. 물론 그때 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만질 수도 없는 화면을 가진, 그 이상한 빛의 더미에 대해서 완전히 몰랐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감독과 제작자와 극장과 관객은 서로 완전히 다른 욕망을 갖고 있고, 관객이 팝콘 먹기를 후회하기 시작하는 시점 화면에서는 감독의 실패한 욕망이 펼쳐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감독은 대개 사기꾼이 된 기분을 지우기 위해서 (혹은 만끽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영화 속에서 남자는 언제나 박기를 원하고, 여자는 모호하다. 남자는 말을 할 때도 여자를 쳐다보고, 여자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볼 때조차 눈동자를 가만두지 못한다.

 

A small rainy town in the screen was like Leningrad in early springtime

 

영화가 끝났을 때,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온이 떨어짐에 따라 비는 천천히 눈으로 바뀌어갔다. 우리는 여전히 극장 앞에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기분. 아빠가 담배를 꺼냈고, 엄마가 어수선한 눈빛으로 하늘을 봤다. 내가 움직였고, “산통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천천히 젖은 시멘트 바닥 위로 무너져내렸고, 아빠가 재빠르게 뒷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화면 앞에서(자식을 마주할 때) 관객들은(부모는) 항상 착란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자막과 외국어들과 함께 이미지로 뒤죽박죽이 된 순간들(늦은 밤 소중한 딸내미의 휴대폰 수신함을 탈탈 털며 맞을 희열의 순간), 날짜라든가 공간이 자신의(자식의) 눈 앞에서 완전히 잊히거나 찢기는 것을 관객들은(부모는) 두려워하지(상상하지) 않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원하는 것은) 빛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가족들) 사이에서 마법 같은 것이 생겨나길 원하고 그런 순간들이 상상되지만(상영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불안함 속에 버려져 있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창을 열고(방문을 닫고), IMDBrottentomato.com의 평점을 순서대로 확인한 다음 (스마트폰창의 메시지를 확인한 다음), 같은 의견에 안도하고 다른 의견에 화를 내고, 단 한번도 존재한 적 없는 순간을 되살리고 또 가슴속에 파묻으며 눈을 감아보았자 빛으로 넘실거리는 공포의 순간들이(출생의 기억이) 밀려올 뿐이다. (그때 엄마는 빛으로 가득 찬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뿐) 단지 상영관의 커튼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을 뿐. (대신 나를 빛 속으로 꺼내어, 내 눈을 멀게 하고, 엄마,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광등 불빛이 진짜 진짜 싫었어)

 

영화 속에서 여자와 남자는 만났고 헤어졌고 다시 만날 듯했지만 결국 만나지는 않은 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나누었던 단 한번의 키스는 서른두 컷을 통해서 회상되었다. 그들은 흑백과 컬러 사이를 산만하게 오갔다. 점멸하는 빛의 섬들, 그것들을 포함하는 수천수만 컷의 지도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수많은 지도들이, 그것들이 다시, 내가, 아마도? 하지만 거기 지도 위에 내 위치로 삼을 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점도, 선도, 숫자도, 어떤 무게도, 어떤 위치의 값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분명 나는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데, 그날 영화관의 기억, 천구백구십오년 칠월 오일, 엄마, 아빠한테서 나던 짙은 담배 냄새, 그 빛의 다발들…

 

 

I was in a movie theater. The lights went off, a boy and a girl appeared on the screen. They started kissing, sucking, and fucking each other. The girl was crying, “Oh pretty baby, I shouldnt have let you go. I must confess that my loneliness is killing me now. Dont you know I still believe that you will be here? And give me a sign. Hit me baby one more time……”

 

Then I was in a pink room, where my sister was. She was praying to her God. She said that a prayer has the limitless power of God. The power of God, his limitless power of creation and destruction, of nature and his son Jesus, she said, “Ive never been to church but I understand Christianity very well.”

 

She(Minji) said that she used to pray for me to be a good wife someday. “When your mother had you 20 years ago, she believed that everything is going to be just fine.”

 

Bullshit.” I said. “Forgive her.” She added.

 

Then I was alone in a dark room. I started thinking that,

 

If a prayeris limitless and God does exist, the power of God and his prayers must be restricted. You said maps and people, you said, she said, and you said and I remember, you told me that you have maps and there are people in it, you have a perfect map and I am in it but you were wrong

 

maps and people were your illusion

 

She needed maps, she needed people

She has the maps, she has the people

Shell be the map, shell be the one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한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

 

Maps and People

 

지하철 창에 시선을 멈추면 하루 중 가장 냉정한 상태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곧 너덜너덜해질 저 차가운 백지 앞에, 그 백지의 일부조차 아닌 나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이란 것에 타본 지가 한 삼십년은 된 것 같다.”

 

???????????????????????????????????

 

엄마?

 

다가오는 엄마는 늘 그렇듯 방금 사우나를 끝내고 나온 것같이 매끈한 피부였다. “소개팅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종로에 가자고 했지. 그는 차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삼호선을 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퇴근시간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은 숨이 꽉 막힐 지경이었다. 어떤 여자는 또다른 여자의 스웨터에 커다란 반지가 끼어서 지하철 밖으로 끌려나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여자가 지르던 비명소리를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근데 너는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

 

문틈으로 냉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기분 나쁜 냄새처럼. 모든 게 덜컹거렸다.

 

“얼마 전에 너희 아빠가 지하철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을 해왔지 뭐니? 지하철은 참으로 낭만적인 공간이지 않소? 너희 아빠가 그러더라. 돌아오는 혹은 떠나는 여정, 늦은 밤이면 사람들의 거칠거칠한 입술들 틈에서 풍겨오는 김치 냄새, 막차시간 오래된 땀 냄새로 가득한 지하철역, 뭐 그런 것들이 자신을 지하철에 사로잡히게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아빠는 자기가 말하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더구나. 나는 정말이냐고 몇번이나 되물었고, 아빠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아빠는 삼십년이 넘게 지하철이란 것을 탄 적이 없을 텐데.

 

엄마는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우리는 마주 선 채 가만히 있었다. 그 딱딱한 여승무원 표정을 짓고서. 엄마는 내가 자기의 거울이라는 사실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엄마,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기억나? 「돌아온 탕아」라는 이름의 그림, 르네상스 천재가 그렸다는 그 그림을 플로렌스의 무슨 대성당에서 보고 왔다고, 아주 멋졌다고 나한테 세번이나 말했잖아. “그건 내 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림이겠다?” 그리고 호호호 웃은 다음 급하게 식탁의 화병을 향해 시선을 돌렸잖아. 그날 밤에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지. “엄마는 아빠랑 섹스를 하는 게 정말 싫다. 딸아, 명심해라. 엄마는 섹스가 무섭다는 것을.” 엄마는 나를 용서할 생각이 정말로 없는 거야? 내가 더이상 엄마 거울을 하기에 너무 달라졌다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내가 다시 니 가랑이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오늘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 가져가. 필요 없어.”

 

“생일을 축하한다, 딸아”

 

엄마의 표정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듯했다. 난 궁금해졌다. 태어나긴 한 건가? 내가? 확실해? 진심으로, 나는 이 지하철이 지금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멈추지 않는 지하철에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더이상 서지도, 더이상 열리지도 않는, 이 비좁아터진 스뎅으로 만든 도시락통 같은 데 딱 갇혀 있다보면…) 창밖아침의 창백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신식 고층빌딩들은 보형물을 잔뜩 집어넣은 아저씨의 좆 같고, 거기 어디선가 아줌마의 바짝 마른 구멍처럼, 아가리를 벌린 어두운 현관문,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을 내 방… 순간 창으로 강렬한 빛의 다발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강. 물결 위로 미끄러지는 황홀한 햇살, fading into the river, dying and dying… 엄마와 나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멈춰 있지조차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명백했다. 계속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도 이처럼, 이와 같이, 어제라든가, 십년 후의 오늘… 내 지난 이십년과 미래의 이십년을 모두 합쳐서 뻥튀기해봤자 팝콘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 않겠지. 그러니까 저기 저 흔들리는 빛의 조각들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사로잡혀, 같은 궤도를 돌며, 인공위성처럼, oh 떠오르는 해, 구름 속으로 스며드는 달, 부서지는 강물의 아름다움을 보고 또 바라보며, 결코 주위는 돌아보지 않는 채, 물론 일들은 계속되겠지만. 그걸 재난이라 부르든 뭐든 상관하지 않겠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전에, 내가 진짜 좆되기 전에 누가 좀 날 지도에서 발견해주길. 하지만 누구도 지도를 읽을 줄 모른다.

 

“네 손등이 꼭 지도 같아 보이는구나.”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속삭였다.

 

……전에는 인간들이 말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자해에 가까울지라도. 내가 말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게임은 끝나 있었다. 지도는 완성되었고, 내 위치는 아무데도 없었다. 아니, 지도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그것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작정이다(그렇다고 한다). 지도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이 허용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리다는 것은 끔찍한 기분이다. 나체로 모기가 가득한 방에 기어들어가는 그런 기분. 허물어져가는 뭔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오, 내가 찬란했던 그때.” 엄마가 그랬다. “모기에 엄청 많이 물어뜯긴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또다른 개소리도 많이 들려주었다. 모르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마라, 어른을 공경하라… 그따위 것들을 신조로 삼아 살아왔다. 무려 이십년. 천구백구십오년 태어났다. 엄마는 창녀였고 아빠는 전쟁포로였다. 지난 이십년간 달라진 것이라곤 엄마의 가방, 아빠의 차, 내가 꽃같이 활짝 피어나는 사이 모든 게 이렇게 철저히 무너져내리리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