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한 사오궁 소설집 『귀거래』, 창비 2014
중국 지식청년 후일담의 특별한 경지
이욱연 李旭淵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gomexico@sogang.ac.kr
한 사오궁(韓少功)은 어느 중국 작가보다도 이른바 ‘지식청년(知識靑年)’으로서 농촌에서 보냈던 청춘시절의 체험을 꾸준히 다루는 작가다. 중국에는 지식청년, 약칭 ‘지청’이라 불리는 독특한 세대가 있는데, 이들은 1956년부터 문화대혁명(1966~76년) 기간에 걸쳐 농민과 동고동락하면서 혁명의 성지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농촌과 산골로 갔던 세대이다. 애초에는 도시 청년들의 취업난을 해결할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문혁이 일어나면서 지식청년이 농민과 결합해 그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동시에 농민에게 재교육을 받는 사상운동이자 혁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1953년생으로 현재 중국 국가주석인 시 진핑(習近平)이 지청 세대이듯이, 동년배 작가 한 사오궁 역시 그러하다. 문혁이 시작되자 열정적으로 거기에 가담했던 한 사오궁은 문혁의 열기가 식자 1968년에 농촌으로 갔다. 고대 시인 굴원(屈原)이 생을 마감했던 미뤄(漞羅) 지방이었다. 미뤄 일대는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남방문화의 상징인 초(楚) 문화권이자 묘족 등 소수민족 거주지다. 혁명의 열정을 지닌 채 농촌에서 보낸 6년의 체험, 그리고 미뤄 지방의 문화는 그후 한 사오궁 문학의 토대가 되었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소설집 『귀거래』(백지운 옮김)에 실린 9편의 중단편은 70년대말부터 80년대까지 발표된 초기작으로, 한 사오궁 문학의 원형과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 중단편이다. 「귀거래」와 「아빠 아빠 아빠」 「여자 여자 여자」 등이 특히 그러하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문학 지형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사오궁 작품이 빠질 수 없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낯설다. 모 옌(莫言), 위 화(余華) 등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번역이 어렵다거나 대중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소개가 턱없이 부족했던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에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된 것은 그 의미가 크다.
『귀거래』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한 사오궁의 소설 대부분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후일담이다. 이상주의적 열정을 품은 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농촌으로 갔던 시절을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된 뒤 도시에 돌아와서 되새기는 것이다. 한 사오궁에게 지청 시절의 경험은 각별한데, 그것은 「서편 목초지를 바라보며」에 나오는 목초지와 같은 의미다. 소설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촌건설에 뛰어들었던 청년은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목초지, 푸른 목초지는 어디에 있는가? (…) 많고 적은 지난날이 흐르는 시간에 씻겨갔지만, 그것은 늘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고향처럼, 모교처럼, 요람처럼.”(195면) 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이자 모교, 요람인 지청 시절에 관한 성찰이 한 사오궁 문학의 뿌리인 것이다.
그런데 한 사오궁 소설에서 그러한 지청 시절은 낭만적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자성의 대상이다. 「서편 목초지를 바라보며」에서 주인공은, 취직이나 하라고 말리는 부모를 뿌리치고, “‘공산청년단의 성(城)’을 건설”하고 “세상을 술잔처럼 뒤엎을 것”이라는 각오를 갖고 시골로 간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다. 사실 그 실패는, 애초에 지식청년을 농촌에 보내 사상을 개조하려는 마오 쩌둥(毛澤東)의 관념적 정책 자체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청년들도 희생자인 셈이지만, 한 사오궁 소설에서 그 실패담은 지식청년의 자기반성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어 「웨란」에서 지식청년인 ‘나’는 “이놈의 농민들, 정말 이기적이군! 사회주의의 각오라곤 눈곱만큼도 없어!”(255면)라면서 자신이 자본주의에 포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그는 농민을 개조하겠다는 열정만 있을 뿐 농민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닭이나 돼지가 농민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전혀 모르는 인물이고, 그 무지는 끝내 동네 여인을 자살로 내몬다.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이제야 깨어”나게 되지만, 그를 사로잡는 것은 “내가 너무 늦었”다는 죄책감이다(269면). 이는 한 사오궁 소설이 지식인의 수난사 위주로 재현되는 여타 중국소설 속 지청 시절 기억과 구별되는 점이다.
한편, 「귀거래」와 「아빠 아빠 아빠」에서 한 사오궁은 지청 시절의 경험을 역사와 존재, 언어와 존재, 언어와 권력 등의 차원에서 성찰하는 독보적인 개성을 보여준다. 먼저 「귀거래(歸去來)」는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귀향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귀향은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무언가에 홀려서 빨려들어가듯 과거 지청 시절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과거에 그 마을에 지식청년으로 왔던 ‘마안경’으로 호명된다. 이는 주인공 ‘황즈셴’에게는 분명히 일종의 존재의 소외상태이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안경’으로 호명되면서 그 질서에 편입되어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 속에서 “벌거벗은 나” “나의 진실”(24면)을 대면한다. 요컨대 자기 존재의 역사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존재의 자기소외와 존재의 재발견이라는 모순적인 이중의 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하여 현실 존재로서의 황즈셴과 역사적 존재인 지청 시절의 마안경은 분리가 불가능하다. 황즈셴에게 마안경은 또 하나의 ‘나’, 주인공 말대로 ‘거대한 나’로서, ‘나’는 영원히 그 “거대한 나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33면)한다. 이는 어찌 보면 존재의 천형이되, 시대가 한 사오궁 같은 지청 세대에게 부여한 역사적 천형이다.
「아빠 아빠 아빠」의 경우, 유구한 역사를 지닌 채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고 세상과 격절된 어느 산골 종족의 쇠망기로, 마오 쩌둥 시절 중국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상징성이 풍부한 작품이다. 이 마을에는 ‘말몫’(話份)라는 권력기제가 존재한다. 언어능력이 마을의 권력관계를 결정하는 이곳에서 ‘아빠 아빠 아빠’란 말과 ‘니미 ×’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바보 빙짜이는 당연히 권력의 최하층에 속한다. 동네 사람들 누구나 때리고 놀리는 대상이 되고, 마을 사람들이 “쓸데없는 폐물은 죽이는 게 도와주는 거”(158면)라면서 그를 곡신제의 제물로 바치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옆 마을과 싸움이 벌어진 뒤 사정이 바뀐다. 빙짜이의 ‘아빠 아빠 아빠’와 ‘니미 ×’이란 말은 승패를 암시하는 신비로운 힘으로 해석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성시한다. 백치의 헛소리에서 신의 계시로 그 의미가 바뀌고, 최고의 ‘말몫’을 지니게 된 것이다. 물론 빙짜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의 말을 승괘(勝卦)로 해석한 동네 사람들은 복수에 나서지만 싸움에 계속 패하고 마을은 파멸의 길을 간다. 여기서 언어와 존재, 언어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자 언어의 미망에 대한 경계를 읽어낼 수 있다. 언어나 개념보다 존재와 사물 본연의 상태를 중시하는 한 사오궁 특유의 도가적 반문화주의(counter-culturalism)가 마오 쩌둥 시대 역사경험과 만나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연출하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한 사오궁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그리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특히 그의 문학을 처음 접하는 외국 독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작중 배경이 친절하게 안내되는 것도 아니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에피소드와 인물들, 파편화된 서사, 만만치 않은 사상적 깊이 때문에 그러하다. 특히 초기 몇몇 작품은 그가 한때 심취했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ia Marquez) 소설의 분위기마저 짙게 풍기고 있어서 서사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한 사오궁 소설이 그동안 구미문학계에 폭넓게 소개된 것은 이상주의에 들떠 있던 중국현대사를 다루되, 존재와 언어, 권력, 문화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지식청년들의 이상주의 시대를 주로 다루는 한 사오궁식 후일담 소설이 우리에게 하나의 성찰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