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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소설에서 현실 만나기
문학의 실험과 증언
한강과 공선옥의 최근 장편을 중심으로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저서로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 역서로 『지식의 불확실성』 『한 여인의 초상』(공역) 등이 있음. yoohuisok@yahoo.com
머리말
작가마다 동기야 제각각이겠지만 1970~80년대, 더 거슬러 1950년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장편들이 근년 작단에 속속 등장한 데는 남북관계를 포함한 우리의 지금 내부 상황이 과거라는 ‘깨진 거울’이라도 들여다봐서 갈피를 찾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라는 점도 작용했지 싶다. 4·19혁명에서 1970년대 유신시대에 이르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국동란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보도연맹)의 진상을 파헤친 조갑상(曺甲相, 1950~)의 『밤의 눈』(산지니 2012)이나, 자전적 기록에다 월북한 부친의 내밀한 행적을 상상적·사실적으로 겹쳐 재구성함으로써 20세기의 굴곡진 한국인의 삶을 촘촘하게 담아낸 김원일(金源一, 1942~)의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 2013)는 2010년대의 분단문학이라 할 만한 장편이다. 여기에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을 다룬 공선옥(孔善玉, 1963~)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2013)와 한강(韓江, 1970~)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더한다면 ‘역사의 귀환’은 2010년대 한국문학에서 뚜렷이 눈에 띄는 하나의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편들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그런 사건에 휘말린 인물의 진실에 집중하는 ‘증언문학’에 가깝다. 분단문학이 원래가 증언을 요체로 삼는 장르임을 상기하면 증언문학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학이 특히 천안함사건(2010.3.26) 이후 너무도 많은 사실과 진실이 은폐·왜곡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하나의 절박한 대응이라면 그것은 이 시대 특유의 문학적 현상이 된다. 아니, 사건의 진상을 틀어쥔 권력에 의해 그 증거들이 계획적·조직적으로 부정·말소되기조차 한다면 그에 문학만의 방식으로 맞서는 것은 2010년대 한국문학이 짊어져야 할 결정적인 과제다. 그런 맥락에서 “증언이 증언인 것은, 그것이 문학적인 것을 정지시키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하나의 문학적 행위로서 구성하기 때문”이라는 진술도1) 숙고해 더 밀고 나아가야 한다. 문학적인 것의 정지와 스스로를 문학적으로 구성하는 행위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증언다운 증언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사실’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증언과 ‘사실’ 이상을 추구하는 문학적인 것을 배타적인 것으로 볼 이유가 없다. 아니, 양자가 서로의 그 특유한 힘을 빌리는 일종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성격마저 띤다는 점을 주목할 때, 문학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그런 변증법을 발동시키는 문학의 ‘형식’이 제대로 구사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내세울 수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이하 『소년』과 『노래』)도 바로 그 점을 성찰하게 하는 역작이다. 한강과 공선옥 모두 역사가 거꾸로 가는 듯한 오늘의 현실에서 5·18의 참뜻을 새로이 증언해야 할 절박·절실함을 담았거니와, 두 작품 모두 어떤 면에서 시대적인 뭔가가 작가의 손을 잠시 빌려 쓴 게 아닌가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시대성’을 머금고 있다.
증언과 소설의 형식
‘그 어떤 작품도 갑자기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시집 1권 외에 장편소설 6권, 소설집 3권을 펴낸 한강의 작품을 어느정도는 따라 읽은 상태에서 『소년』과 만난 나의 첫 인상은 그랬다. 『검은 사슴』(문학동네 1998)에서부터 모든 ‘회색지대’에 아슬아슬하게 스민 삶의 의욕과 비의(秘意)를 탐색하는 작가적 진정성은 일관된다. 하지만 『소년』에 이르러 그동안 내연(內燃)하고 있던 작가의—때로는 ‘문학주의’를 고집하는 듯한—‘그것’이 5·18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만나는 순간 제대로 폭발했다는 인상이다.2) 작가가 광주에서 나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전기적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독자도 적지 않겠지만 『소년』의 ‘기원’을 거기서만 찾지는 말자는 뜻이다.
다른 한편, 한강의 작품세계에서 분기점이라고 할 만한 면이 『소년』에 있기도 하다. 우선 『소년』은 거의 예외 없이 반듯한 사실주의 플롯을 따르는 전작들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서사형식을 선보인다. 또한 『소년』은 한강 자신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시킨 거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3) 물론 핵심은 형식의 특이한 운용과 민낯의 노출도 5·18의 진상을 증언해야 하는 절박함에서 빚어진다는 것일 테다. 사실의 제시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5·18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또는 그 진실의 ‘생성’을 위해—‘말하는 법’ 자체를 고민한 흔적이 형식의 구사에서 역력하다. 가령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에필로그만 해도 특이한 구석이 있다. 에필로그는 작가가 『소년』을 쓰게 된 자전적 경위와 쓸 때의 심경을 독자에게 세세하게 들려준다. 거기서 나는 두가지를 특히 주목했다. 하나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5월 광주’를 규정하는 대목이다(207면). 다른 하나는 동호 작은형의 입을 빌린 작가의 자기다짐인데,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한다는 언명이다(211면).
에필로그에서 시작해 작품의 첫머리로 돌아가 순차적으로 되짚어보면 1~6장까지 인물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되는 증언의 화법들은 바로 그런 규정과 자기다짐을 소설화하는 ‘장치’에 해당한다는 점이 확실해진다. 하지만 한번 읽어서는 서사의 조각들을 온전하게 짜맞추기 힘든 구성이어서, 각각의 장에서 구사되는 화법과 내용을 간추려보겠다.
1장(어린 새): 5·18 당시. 작가는 동호라는 소년을 ‘너’라고 호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가 올 것 같아./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너’는 겨우 중3. 친구인 정대와 시위대에 휩쓸렸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은 정대를 찾는 과정에서 도청 민원봉사실에 들른다. 거기서 수피아여고 3년생인 김은숙과 충장로 소재 양장점 미싱사인 임선주와 한조가 되어 피살자들의 “성별과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기는 일을 하게 된다.
2장(검은 숨): 5·18 당시. 1인칭 ‘나’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이렇게 독백을 시작하는 ‘나’는 학살된 박정대의 넋이다. 그 목소리는 벗인 동호를 향한다.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시민들이 어떻게 ‘검은 숲’에 버려지고 불태워졌는가를 들려주다가 도청에서 동호가 최후를 맞는 것을 감지하면서 독백은 끝이 난다.
3장(일곱개의 뺨): 1985년. 3인칭 시점인 ‘그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일곱대의 뺨을 맞았다.” 그녀는 동호와 한조로 도청에서 사체를 수습했던 그 김은숙. 5·18 이후 재수 끝에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지만 결국 졸업을 포기하고 출판사에 근무한다. 군부독재 시절에 자행된 검열 및 치욕스런 폭력에 대한 기억과 함께 도청 함락 직전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떨고 있던 동호의 모습을 되살린다.
4장(쇠와 피): 1990년 무렵. 다시 1인칭 ‘나’가 등장한다. “평범한 볼펜이었습니다. 모나미 검정 볼펜. 그걸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게 했습니다.” ‘나’는 5·18을 소재로 논문을 쓰려는 ‘선생’에게 이렇게 운을 뗀다. 교대 복학생이던 ‘나’는 대학 신입생이던 김진수와 함께 체포되어 상무대에서 고문과 재판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출옥하여 10년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김진수의 행적을 ‘선생’에게 증언한다. 그 과정에서 동호가 도청에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 나오다가 총살되었음이 밝혀진다.
5장(밤의 눈동자): 2000년 무렵. 고문의 고통으로 삶이 망가진 2인칭 ‘당신’이 등장한다.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열일곱살이었다.” ‘당신’은 미싱사 임선주. 서울의 한 공장에서 2년 남짓 방직공으로 일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5·18 당시에는 광주에 내려와 있었던 것. 현재 환경단체에서 상근자로 근무. 10년 만에 연락해온 윤이라는—4장의 ‘선생’으로 짐작되는—사람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지만 “가톨릭센터 외벽에” 붙어 있던 동호의 시신 사진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음을 증언한다.
6장(꽃 핀 쪽으로): 항쟁 후 30여년이 지난 시점, 2010년대다. 동호 어머니의 1인칭 회상이자 ‘넋두리’로 구성된다.
일단 이렇게 정리하면서 에필로그로 돌아가보자. 동호는 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했던 작가의 부친이 가르친 적이 있는데다 1978년경에 판 광주 중흥동 집에 살던 소년이다. 부친은 그 집을 팔고 삼각동에 2년간 살다가 1980년 1월에 식솔과 함께 서울 수유리로 이사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동호에 관해 쉬쉬하는 이야기를 식구들로부터 들었을 뿐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식구들의 대화를 엿들었을 뿐인데, 스무살 때 망월동을 찾아가 동호의 무덤을 확인하려고 한 적은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나 동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시점에서 중흥동 집을 포함한 광주의 옛 자취들을 더듬고 동호의 작은형도 취재하며 5·18 자료를 모으고 읽는다. 그런데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는다는 것이 처음의 원칙이었”지만 “꿈 때문”에 계속 읽어나갈 수 없게 된다(203면). 악몽이든 아니든 읽기는 중단해야 했으리라. 자료는 재료일 뿐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에필로그를 시시콜콜 들춘 것은, 『소년』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도의 운산(運算) 과정을 거친 상상력의 산물임을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서다.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그 어떤 사실주의 소설 못지않은 정확한 디테일로 가득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주는 사실적 효과 이상의 어떤 것도 실감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각 장을 모자이크 타일이라고 한다면, 『소년』은 그런 조각들로 정교하게 구성된 하나의 ‘초상’에 빗댈 수 있겠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동호의 초상이다. 그러나 해석하기에 따라서 5·18 광주의 초상도 되고, 그 5·18을 살아낸 숱한 민중의 초상도 되며, 어떤 면에서는 『소년』을 읽고 ‘광주’를 잊지 않으려는 ‘나 자신’의 초상마저 될 수 있다. 증언의 절박함에서 나온 형식의 창의적 실험을 통해 누구나 자기를 비쳐볼 수 있는 겹겹의 초상을 만들어냈다는—그 과정에서 동호라는 소년의 소년다운 ‘밝음’을 지켜냈다는—점이야말로 기존 ‘5월문학’과 구분되는 『소년』의 소설적 성취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증언과 문학의 형식을 염두에 두고 그런 초상의 성격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이 대목에서는 비교와 대조도 불가피하지만 최소한도로 줄이고 작품에 집중하기로 한다.
『소년』이 5·18의 모자이크화라고 말하면 임철우(林哲佑, 1954~)의 『봄날』(전5권, 1998년 완간)을 떠올릴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5월문학 가운데 그 광주를 『봄날』만한 분량으로 담아낸 장편은 아직 없다. 증언과 기록 정신의 기념비적 승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항쟁 열흘의 모습이 모자이크 형식에 생생하고 다각도로—에밀 졸라(Émile Zola)의 자연주의 소설이 그러하듯이—빽빽하게 담겨 있다. 서사의 기본 형식은 작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르뽀르따주다. 『소년』의 경우 르뽀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누구나 고발의 의지를 절절하게 실감하는 한편, 동호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방식도 ‘완제품’ 조각들로 구성되는 『봄날』의 모자이크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1~6장까지 인물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되는 증언의 화법들은 증언의 절박함에서 나온 형식이라고 했다. 좀더 파고들어가보자. 『소년』에서 구사되는, 극도의 언어적 탁마(琢磨)와 집중성이 수반된 화법의 형식은 화자의 유무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각각 극중 인물을 너, 그녀, 당신으로 호명·호출하는 전지적 화자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새겨진 1·3·5장과 그런 화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물의 독백으로만 구성된 2·4·6장이다. 전지적 화자의 시점에서 그, 그녀, 당신의 이야기를 호출하는 것과 1인칭 화자인 ‘나’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톱니처럼 맞물리는바,4) 이는 증언 면에서도 색다른 효과를 낳는다.
가령 굽어보는 전지적 화자가 존재하는 1·3·5장에 각각 5·18 당시 도청을 비롯한 광주 시내의 풍경들과 항쟁 이후 상무대에서 자행된 고문의 실상 및 그 비극적인 외상(外傷)의 결과들, 5·18이 일어나기까지와 먼 훗날의 사회정치사적 현실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하달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화자가 피호명자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그 의식·무의식에서 발생하는 사태까지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가령 선주의 ‘영혼’에 관한 언급도 그중 하나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불렀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89~90면)
반면에 2·4·6장의 서로 다른 ‘나’들은 ‘나’의 진실과 고통을 제각각 증언할 뿐이다. 이는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1인칭 증인들의 극적 독백이라 할 만하며, 그 독백은 극중 청자만큼이나 독자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135면)
2·4·6장의 화자들인 ‘나’의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는 모더니즘 서사에서 작품과 거리를 두고 ‘무심하게 손톱이나 매만지는’ 창조주 같은 존재와는5) 너무도 다르며, 실제로 집필과정에서 5·18이라는 악몽을 반복적으로 추체험(追體驗)한 작가는 전혀 초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초연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식이 실험되었다는 것은 모더니즘의 ‘몰개성(沒個性) 시학’과 관련하여 특히 음미해볼 논점인데, 어떤 경우든 30여년의 세월을 넘어 5·18의 역사적 현장으로 뛰어든 한강에게서 “초연과 지혜를 얻는 대신 권태와 자기혐오에 빠질 위험이 있는”6) 초역사적 작가상(像)을 연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동호를 매개로 교직되는 2·3인칭 호명화법과 개성적인 1인칭 독백들이 총동원되는 다채로운 형식이 서로 다른 차원의 극적 효과들을 연결·증폭시킴으로써, 마치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독백을 바로 앞에서 듣고 보고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도 주목함직하다. 작가는 사라졌지만 어쩌면 작가보다 더 강력한—호명으로서의 증언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정념’(passion)이 작품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호명·호출로서의 증언과 1인칭 증인들의 트라우마적 독백이 교차서술되는 서사를 관통하는 존재는 동호다. 홍희담의 「깃발」(1988)에 도청의 시민군으로 잠깐 등장하는 “열다섯, 여섯쯤이나 되어 보이는 소년”도7)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너’로 소환된 동호의 파편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터라 특히 능동적인 독서가 요구된다. 즉 그런 파편들을 모으고 기워가는 것이 독자의 읽기요, 작품의 ‘작품성’이 성취되는 과정 그 자체라는 말이다. 각각의 인물이 부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동호가 다른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동호로서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6장에 이르러서다.
“오늘에 와서, 한 인간을 언어로 옷을 입혀 인쇄된 종이 위에서 다시 살게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쁘리모 레비(Primo Levi, 1919~87)의 이 문장을8) 설혹 기억하는 독자라 하더라도 그 어머니의 목소리가 살려낸 동호의 ‘밝음’에, 이 향일성(向日性) 심성에 울컥하는 순간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토리를 지어내거나 기념비를 세워 기릴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반파시즘 투쟁 과정에서 살해당한, 그의 벗이자 맹렬하게 자족적인 개성인 싼드로를 끝내 생생하게 지면 위에 되살린 레비에 견줄 만한 작업을 한강은 이 장에서 해내고 있다. 그렇게 되살아난 동호의 밝음이 독자의 마음에 잠긴 5·18의 어둠마저 밀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192면)
이 대목에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한강의 여타 장편, 가령 『검은 사슴』(1998)이나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 2002)에 딸린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효과를 낸다. “작가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이 이야기 스스로 그렇게 끝나”게9) 내버려두지 못하고 작가 자신의 간절함을 ‘사후’에 덧붙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년』의 에필로그는 말 그대로 작품 끝머리에 붙는 후기(後記)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통상적인 후기와는 전혀 달리 이전 장들의 연장선으로 읽힐뿐더러, 5·18과 마주하여 작중 인물들 각자의 입장에서 고백한 증언의 (불)가능성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작가적 고뇌를 드러낸다는 면까지 있다.
실제로 80년 5월 직후 흉흉했던 시대적 분위기와 『소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다시 찾은 광주의 변모한 모습, 동호 작은형의 증언, 그리고 쓰는 과정에서 또다른 트라우마를 겪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은 에필로그의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본문의 색다른 변주임이 분명해진다. 이를 형식의 관점에서 보면 ‘작가후기’에 해당할 내용을 에필로그에 넣은 것인데, 이 역시 화법의 참신한 발상이다. 에필로그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인간 한강의 작가적 면모를 여실하게 보여주면서 지금 우리 현실이 그런 간곡한 증언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음을 아울러 일깨우는 것도 바로 그런 발상의 효과다. 일독을 끝낸 독자로 하여금 약간은—동호의 ‘초상’만 해도 파편처럼 흩어져 있기에—어리둥절한 느낌을 안고 다시 1장으로 돌아가 작품을 천천히 되짚어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 에필로그도 단순한 종막(終幕)만은 아닌 셈이다. 독자로서도 그렇게 공들여 읽을 때 5·18의 압도적 어둠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일의 어려움을 화법의 독창적인 실험으로 감당해낸 작품 자체가 동호의 육성을 통해 그 어둠을 뚫고 독자를 밝음으로—“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이끌고 있다는 점도 더 확실하게 실감하는바, 그렇다면 『소년』은 ‘비전(vision)과 예술’을 동시에 이룩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증언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서사학(敍事學)에서는 증언도 서사의 한 양식이다. 하지만 입에 담기도 어려운 끔찍한 사건을 누구나 공감하고 즐겨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그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살리는 데 서사를 빚는 ‘손재주’만이 능사는 아닐 테다. 사건의 진실을 틀어쥔 권력에 의해 그 증거들이 계획적으로 말소·부정되는 것을 넘어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반드시 필요한 증인(들)의 몸과 마음이, 고르곤(Gorgon)을 정면으로 응시한 아우슈비츠의 바로 그 무젤만(Muselmann)처럼10)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경우라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증언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면 그렇지 않겠는가.11) 그런 점에서도 공선옥의 『노래』가 값진 것은, 바로 그렇게 파괴되어버린 인물들을 하나의 ‘관찰’ 대상이 아니라 발화의 주체로 내세우면서 그런 물음을 제대로 받았다는 데 있다.
알다시피 공선옥은 5·18을 직접 겪은 작가이고, ‘광주’에 관한 한 참여지향적 증인으로서의 소설가다. 오래전에 공선옥 자신이 “80년대를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나의 광주를 어떻게 무슨 수로 말해야 하나”라고 술회한 바 있지만,12) 그렇게 막막한 느낌으로 5월문학을 써오다가 『노래』에 와서야 등단작 「씨앗불」(1991) 이후 사반세기 창작 역정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인상이다.13) 그 점에서 5월문학을 구성하는 장르적 관성들을 단문형(短文形) 이야기의 독특한 ‘가락’으로 해체한 것이 일단 눈에 띈다. 게다가 해체에만 그치지 않고 5·18의 폭력을 낳은 유신시대로 소급해 올라가 개인들의 처절하게 망가진 삶을 역사적 현실에 자리매기는 동시에, 익숙하지만 사뭇 새롭기도 한 화법으로써 그 망가진 삶을 보듬어 미래로 열어놓는 이야기라는 점도 기존 5월문학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만한 요인이다. 그렇다면 『소년』에 관한 논의가 그랬듯이 서술의 형식에서 시작해보자.
『노래』는 모두 4장으로 구성된다. 주요 무대는 70년대 전라도의 한 촌마을인 새정지와 80년대의 광주다. 『소년』만큼 확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그 서사는 나름의 독특한 형식을 띤다. 1장(대숲에 이는 바람)과 3장(바람의 말)은 김정애가, 2장(한여름 밤)과 4장(강 너머 미루나무)은 강묘자가 각각 주인공인데, 1·2장은 정애와 묘자가 각기 1인칭 화자인 ‘나’로 등장하는 반면 3·4장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두 여성의 삶이 기술된다. 일종의 대위법적 구성이다.14) 이로써 두 여성의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구한 행로가 묘하게 맞물리면서 서로를 비추어준다. 모든 장의 마지막 대목(74~76, 154~56, 214~15, 257~60면)에 이르면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후일담 형식으로 짤막하게 갈무리하는 점도 또다른 특색이다. 서사와 관련해서 또하나 주목할 거리는, 1·2장도 갑갑한 사실주의와는 다른 면모가 있지만 3·4장에 가면 한결 활달한 상상과 환상이 곁들여진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소년』의 숨막히는 진지함도 좋지만, 더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조차 기어이 새어나오는 『노래』의 건조한 유머와 위트는 더 좋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장편에서 흔히 맛보는 민중의 낙천적인 생명감각 같은 것이 감지되는데, 다른 한편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마술적 사실주의’을 연상케 하는 대목도 여럿 있다.15) 하지만 그런 외국 작가들을 떠올리면서도 더 주목하고 싶은 점은, 한(恨)의 정서가 짙게 스민, 남도 특유의 ‘구전문화’를 작가가 서사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작가 자신은 “옛날이야기 싫어하는 세상에서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나 푸근하다”라고 말한바, 『노래』는 그런 푸근함마저 간직하면서 5·18의 80년대를 낳은 1970년대 근대주의의 핵심적 단면을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137~38면)의 신산한 삶을 통해 그린다.
『노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영혼의 자매’라 할 정애와 묘자가 제각각 겪는 5·18 수난사다. 하지만 폭력의 양상은 5·18 같은 국가 공권력의 만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70년대 새정지에서 정애와 묘자의 식구들이 온갖 방식으로 당하는 폭력적 차별과 소외는 그런 공권력의 축소판이다. 아니, 이들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공권력의 야만보다 더 교활하게 가해지며, 새정지를 시멘트마을로 바꾸는 ‘새마을정신’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차라리 ‘악(惡)의 현현’이라 할 정도로 악랄한 박샌이나 오샌의 행적도 바로 그 맥락에 있다. 새정지와 광주에서 벌어지는 이중의 폭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후유증은 1~4장에 걸쳐 집요하게 반복된다. 정말이지 너무도 집요해서 편집증적이라는 인상마저 받는데,16)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치유와 해방의 상상력은 그런 후유증이 초래한,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할 정도로 애처로운 2차 폭력의 양상에 맞춰져 있음을 알게 된다. 5·18 이후 동료들과 사회로부터 버림받는 박용재의 ‘가학’과 묘자의 ‘살인’이 다뤄지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그가 야, 보지야, 했을 때,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번 야, 보지야, 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야, 보지야, 세번째 부르고 나서 나는 공수부대보다 더 세단 말야 씨발, 했을 때, 나는 알았다. 그의 속에서 이제 짐승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음을. 박용재 속의 아이는 나보다 더 떨고 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울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가여워 젖을 물리려는 순간 그의 속에서 짐승이 튀어나와 내 목을 졸랐다. 내 속의 아이가 버둥거렸고 내 속의 엄마가 그의 속에서 튀어나온 짐승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날이 밝았다.(140〜41면)
새마을운동이 불어닥친 1970년대초 정애의 시골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새정지가 ‘새마을’로 변모하는 모습을 포착하면서, 그 모습을 ‘힘 있는’ 동네사람들과 외지인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정애 식구들을 속이고 빼앗고 짓밟는 행태와 겹쳐놓는다. 그렇다고 작가 자신이 “준병정사업”으로 규정한17) 새마을운동 이전 마을이 이웃 간 인정이 흘러넘치는 농촌공동체로 제시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신작로 가에 있는 담뱃집 딸 단이”의 비참한 최후가 상징하는 전근대적 폐습이 깊이 뿌리박힌 터전이며, 6·25 당시 ‘산사람’(빨치산)에게 먹을 것을 줬다는 이유로 즉결처분된 아버지를 목격하고 살짝 ‘농해진’ 정애의 어머니가 그러하듯 민족적 비극의 상흔이 뚜렷하게 박혀 있는 장소가 새정지다. 인정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약자에 대한 강자의 유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온 새정지는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지역 특유의 질감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마을 내부의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적 폭력과 5·18이라는 공적 폭력은 어떻게 증언되는가.
나는 아무 말도 않기로 했다. 돼지 새끼를 박샌이 먹어버린 것도, 우물가에서 부로꾸 찍는 남자가 나에게 몹쓸 짓을 한 것도, 김주사가 순애 혼을 뺏어간 것도 다 말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말하고 나면 나도 엄마처럼 농해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겁났다. 나는 내 속에다 용을 한마리 키우기로 했다. 그 용이 자라서 승천할 때 나는 세상을 향해 말하리라. 내 말이 빗물을 타고 내려서 세상을 적시리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나 때문에 울 것이다. 나한테 미안해서 울 것이다. 나한테 잘해주지 못해서 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용이 되지 못하고 용이 아닌 내 말을 듣고 울어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36면)
사건의 진상을 말하고픈 욕구가 그 나이 또래에 어울릴 법한 감상(感傷)에 섞여든 정애의 반(反)증언적 증언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미쳐버릴 것 같은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방어적 발화다. 작가는 그렇게 꼬일 수밖에 없는 인물의 ‘심리부검’에 몰두하는 대신 박샌, 김주사 등을 새정지에 불러들이고 정애의 마음속에 용 한마리를 키우게 한 70년대 현실, 즉 새정지에 불어닥친 새마을운동이라는 광풍에 초점을 맞춘다. 그 바람은 시골의 청춘들을 “마산 한일합섬으로” “인천으로” “구로공단으로”(15면) 흩어놓는 근대화 물결을 일으키면서 마을의 ‘정서’ 자체도 급격하게 바꿔버린다.
시멘트 가루는 온 동네를 휘감았다. 동네에 시멘트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시멘트가 된 소한테 시멘트 여물을 주었다. 시멘트 여물을 먹은 소가 싼 시멘트 소똥이 시멘트 길 위에 쏟아져 바로 굳었다. 시멘트 소똥은 결코 땅에 스며들지 않고 다시 시멘트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갔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시멘트가 된 내 얼굴을 보고 어머니가 웃고 명애가 울었다. 손을 씻을 때 시멘트 손가락이 툭 부러졌다. 손가락은 금방 물에 녹았다. 내 손가락이 녹아든 물을 마당에 흩뿌렸다. 마당에서는 곧 손가락 싹이 날지도 몰랐다.(18~19면)
한편의 산문시 같다. 이런 살풍경(殺風景)이 80년 5월의 피바람을 불러왔다면 논리적 비약일지 모르지만 새정지에서 자행되는 유형·무형의 폭력이 ‘외지’에서 불어오는 근대화 바람의 직간접적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정지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극히 사적이며 개인적인 성격을 띠는 1장의 (성)폭력과 2장에서 드러나는 5·18이라는 국가폭력 모두 근대주의(〓개발주의)의 자장 안에 있다. 새마을운동의 공과를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근대주의 비판으로서의 『노래』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반(反)근대주의와는 구분되는 그런 비판에 농촌공동체에 대한 (퇴행적인) 향수가 일절 묻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령 “새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무섭다. 모든 새것들은 다 무서운 것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137〜38면)이라고 작가가 말했을 때, 독자는 ‘좋은 옛것’으로의 회귀충동을 느끼기보다는 경이로움과 공포를 모두 동반한 ‘외래의 것들’이 행사한 권력이야말로 우리의 (식민지)근대에서 ‘자발적 노예들’을 키워낸 실체였음을 성찰하게 된다.
이런 『노래』를 포함해 공선옥의 작품을 으레 약자주의(弱者主義)(+여성주의)라고 규정하지만 그건 피상적인 명명법이다. ‘약자 편들기’가 언제나 정의로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성주의의 경우 한결 적실한 표현이긴 하지만 남성세계와의 ‘접촉’이 관념화되기 일쑤인 이념(ism)으로서의 ‘여성주의’를 해체하는 『노래』의 면모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담았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소녀가장이 되어버린 정애나 묘자는 ‘사회적 약자’의 한 전형이랄 만한 소지가 충분하다. 찢어지는 가난으로 아버지가 외지로 나가고 그사이에 ‘부로꾸’ 찍는 남자에게 성폭력을 당한데다, 그런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세상을 뜬 동생 순애를 묻고 난 후, 광주로 올라가서 행상을 하다가 공수부대에게 당하고 실성해버린 여자가 정애다. 그런가 하면 그와 똑같은 폭력을 당해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혈혈단신 엄마의 광주 식당을 찾아간 묘자는, “군인한테 잽혀서 디지게 맞고 감옥에 간 카센터 사람”인(83면) 박용재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그의 아이까지 배지만 박용재 안의 ’짐승‘을 죽이고 유산한 채 감옥에 가는 여성이다.
이 두 여성의—그뿐 아니라 이들의 삶과 얽혀드는 피붙이들과 주변 인물의—기구한 인생을 그리는 문제에 관한 한, 『노래』는 철저하게 민중적이다. 그 민중성은 작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편들기와 물론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으로 구현되는 한 그런 신념이나 편들기조차도 하나의 상대적 견해로서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 자리매겨지기 마련이다. 그 점에서 『노래』가 5·18의 살육현장 자체보다 항쟁을 전후한 시대적 변화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백주대낮의 학살극이 남긴 정신적 후과와 싸우는 기층민중의 처절함이 부각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민중성과 연관하여 또하나 주목할 점은, ‘가슴애피’로 표상되는 그 후과가 가학·피학을 낳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 트라우마와 맞대면하는 묘자와 정애를 그리는 작품의 ‘자세’를 딱히 승화(昇華)라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아무 죄 없이 살았지만 가장 많이 벌을 받”았다는 점에서(246면) 고전적인 비극의 주인공에 가까우며, 작품은 그렇게 벌받은 삶의 끈질긴 의욕에 집중한다.
부로꾸 찍는 아이를 씻기고 얼룩무늬 군복 입은 아이를 다독이고 이발사 박샌이라는 아이를 안아주고 연쇄점 김주사라는 아이를 어루만져주는 것은 구렁이를 씻기고 두꺼비를 다독이고 독사를 안아주고 지네를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다시 뜨개질을 하고 다시 밥을 하고 다시 성경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것이 고됐다. 그런 꿈을 꾸는 잠이 정애는 고됐다. 그러나 아무리 고되더라도 정애는 살고 싶었다. 정말 살고 싶었다. 살아서, 꼭 뜨개질을 하고 밥을 하고 성경책을 읽고 싶었다. 나무처럼 건강하고 꽃처럼 아름답고 싶었다.(175면)
이런 정애가 혼으로나마 지상에 남아 묘자를 지키며 주변을 맴도는 것은 삶의 그러한 희원(希願)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독사, 지네, 두꺼비 같은 인간들을 달래가며 온전한 삶을 살고픈 정애의 희원이 독자의 마음에 겹겹의 파문을 일으키는바, 이는 작가로서의 화자를 기계적으로 대변하는 『꽃 같은 시절』의 ‘혼사람’과는 다른 시적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유신시대의 새정지와 80년 5월 이듬해의 광주를 무대로 1·2장이 펼쳐지다가 3·4장에 가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5·18을 겪고 난 이후의 정애와 묘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뒤의 두장에서 한결 활달한 상상과 환상이 동원된다고 앞서 말했는데, 마지막 장의 이야기 방식이 가장 특이하다. 3장에서 육신(肉身)을 벗어버린 정애의 혼이 수인(囚人)이 된 묘자에게 나타나면서 80년대 감옥의 풍경과 70년대 새정지의 현실이 교차된다. 그 과정에서 5·18과의 화해에 도달하는 묘자를 부각시키는 한편, 새정지를 ‘새마을’로 바꾼 인간들의 행적도 폭로된다. 혼이 된 정애가 묘자를 70년대의 새정지로 데려다 놓음으로써 묘자가 새정지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을 당하고 광주로 왔는지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망자가 인도하는 일종의 ‘비전’으로서의 그 드러냄은 박샌이나 김주사, “부로꾸 찍는 남자”의 감춰진 만행을 단순히 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왔다 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할머니가 저리 넋이 나갈 일이 없다. 사람이 들고 난 냄새가 난다. 묘자 없는 새에 누가 할머니 넋을 빼갔다. 묘자는 부로꾸 찍는 남자가 왔다 간 것을 알아챈다. 그 남자가 벗어둔 목장갑이 마루에 있다. 묘자는 그 남자의 목장갑을 이곳저곳에서 봤다. (…) 묘자는 목장갑을 가지고 이장한테 간다.
—이 목장갑은 부로꾸 찍는 사람의 것인데 그 사람이 왔다 간 뒤부터 할머니 넋이 나갔어요.
—새마을사업은 좋은 것이다이. 새마을을 해야 우리나라가 발전한단다.
—그 사람을 혼내주세요.
—새마을사업의 역군들의 노고는 치하해줘야 마땅한 일인데 상은 못 줄지언정 처벌을 내려서는 안되는 것이다이. 그것은 국가시책에도 어긋나는 행위여. 그런 짓은 공산당 빨갱이들이나 할 짓이란다.(239~40면)
80년 광주의 비극도 마른하늘의 날벼락만이 아님은 이런 대화에서도 감지되지만, 감옥의 묘자에게 면회 와서 “세상은 야속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박샌과 김주사 같은 이들이—인용자) 또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 아니겠니?”(247면)라는 용순의 말 역시 코믹한 울림마저 담으며 5·18의 ‘기원’이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일러준다.
이처럼 『노래』는 새정지의 70년대에서 시작해 5·18의 파괴적 외상을 다루다가, ‘새마을’로 변모한 새정지를 “새마을사업의 역군들”이 차지하는 과정을 일견 담담하게 그리면서 출감한 묘자의 후일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가까스로 죽음을 향한 무의식을 다스리고 영암집 주모가 된 묘자가 2009년 어느날 식당으로 불쑥 들어선—“정애가 아니면서 정애인”, “정애이면서 정애가 아닌”(258면)—여자의 발을 씻기고 밥을 챙겨주는 장면은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성화(聖畵)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메시지가 가닿아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착잡한 것인가도 『노래』는 놓치지 않는다. “유산 문제로 싸우는 재벌 형제에 관한 소식이 나오고 철거를 반대하다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 우는”(257면) TV 화면을 묘자와 “정애가 아니면서 정애인” 여자가 함께 보는 상황이 그러하지 않은가. 화해와 치유를 노래하면서도 70년대 개발독재를 주도한 바로 그 ‘새마을정신’이 오늘날에도 좀비처럼 살아 있고, 5·18의 야만 역시 결코 지나간 과거가 아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증언의 ‘기술’과 문학, 그리고 연대
『소년』과 『노래』를 증언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그 규정의 근거는 증언의 사실적 내용 자체보다 문학으로서의 증언이 왜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가 하는 물음과 제대로 대면하고 고투했다는 데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문학 형식의 창의적 실험이라는 것도 결국 그런 고투의 한 드러남이며, 증언의 진정한 힘 역시 그 고투에 독자가 동참할 수 있을 때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도 참혹한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기억하는—또한 그런 밝힘과 기억의 자리에 시민들을 불러 모으는—글쓰기가 ‘작품’이 되는 데는 각별한 기술이 요구된다. 형식을 혁신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서의 증언일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완강한 분리선을 철폐하면서도 그 둘이 결코 같지 않고, 같을 수도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더 나아가 “민중적 기억의 기술이자 전략”으로서 증언이 갖는 힘이 그런 실험을 통해 발현된다면 법정의 사실 진술이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함이 문학의 실험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18)
증언문학으로서의 『소년』과 『노래』가 각기 도달한 지평은 그런 맥락에서 더 열어놓고 성찰해야 한다. 1980년 5월의 비극도 비단 광주시민의 아픔만이 아님을 3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두 작품이 다시 일깨우고 있지만, 내전의 상처와 분단의 질곡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광주’에서 광주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소년』과 『노래』의 결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용산’이 소환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 있거니와, 실제로 그간의 5월문학은 광주에서 출발해 한국사회로, 한반도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그렇게 지평을 넓히고 심화하는 과정에서라면 증언도 결국 문학의 원래 일부로서 흡수되어 사라질 수식(修飾)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광주의 5월’이 사실마저 부정되기 일쑤인 현실이기에 5월문학만 해도 증언해야 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 증언문학을 말하면서도 이렇게 증언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하는 것은, 다시 쁘리모 레비의 한 구절을 빌리면, “한번 일어난 사건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해야만 할 모든 것의 핵심이”기19) 때문이다.
다른 한편, ‘용산’과 ‘세월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 남의 온전한 시민도 아니고 북의 완전한 이탈자도 아닌 상태에 놓인 ‘새터민’의 문학적 증언 역시 절실하다. 지금까지 이들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고발한 것은 증언이라기보다는 남(〓천국)과 북(〓지옥)이라는 도식을 전제한, 북의 체제에 대한 조잡한 낙인찍기였기에 더욱 그러하다.20) 어떤 천국에 이토록 자살자들이 넘쳐나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인 것’을 정지시킬 뿐인 증언은 증언으로서도 한계가 그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계를 의식할수록 식민주의적 억압과 그에 따른 혹독한 내부 폭력을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증언문학(testimonio)은 물론이고, 나치와 같은 근대 합리주의의 치명적 후과를 치른 서구 작가들의 양심적인 자기고발도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 문학과의 연대를 증언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 활용하는 한국문학이라면 인식의 온갖 사각(死角)과 착시를 끊임없이 조장하는 분단체제를 끝장내고 그 이후의 한반도를 상상·설계하는 데도 문학 고유의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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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lberto Moreiras, “The Aura of Testimonio,” The Real Thing: Testimonial Discourse and Latin America, ed. Georg M. Gugelberger (Duke UP 1996), 195면.
2) 비평의 주목도 뜨겁다. 계간지 올 가을호에 실린 서영채 「문학의 윤리와 미학의 정치」, 『문학동네』 530~54면; 김형중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트라우마와 문학」, 『문학과사회』 256~81면; 김필남 「소문보따리로서의 소설」, 『오늘의문예비평』 43~60면 참조.
3) 평론가 정홍수는 사석에서 필자에게 에필로그에 나오는 “평론을 쓰는 한 선배”는, 예의 그 순박한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며, 바로 자신임을 말한 바 있다. 그 대목을 인용한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평론을 쓰는 한 선배는 나에게 왜 소설집을 보내주지 않느냐며 웃으면서 항의했다.”(205면)
4) 이런 형식은 5·18에 연루된 한 실성한 소녀의 행적을 다중시점으로 추적한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지만 증언의 문학적 발화에서 『소년』은 차원이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5) 이 표현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의 일부다. “The artist, like the God of creation, remains within or behind or beyond or above his handiwork, invisible, refined out of existence, indifferent, paring his fingernails.”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 Penguin 1960), 215면.
6) 졸고 「비평가의 평가와 책임: 마이클 벨의 『문학과 모더니즘 그리고 신화』를 중심으로」, 『안과밖』 36호(2014년 상반기) 206면.
7) 홍희담 「깃발」, 『창작과비평』 1988년 봄호 205면; 『깃발』, 창작과비평사 2003, 53면
8)Primo Levi, The Periodic Table, trans. Raymond Rosenthal (Schocken Books 1984) 48면; 『주기율표』, 이현경 옮김(돌베개 2014) 75면.
9) 김연수 「사랑이 아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강과의 대화」,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328면.
10) 이에 관한 논의는 특히 유명숙 「아감벤의 ‘아우슈비츠’」, 『안과밖』 36호(2014년 상반기) 참조.
11) 이런 물음은 사실에 입각한 증언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간단치 않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서구 학계에서도 ‘아우슈비츠’의 증언 (불)가능성을 두고 꽤나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불)가능성 자체를 논하기보다 나는 일단 예컨대 쁘리모 레비의 증언이 변증법적 사유가 전방위적으로 발동한 문학의 성격을 띠었기에 증언으로도 성공했으며, 그런 맥락에서 레비 자신이 『주기율표』처럼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남긴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했음을 환기하고 싶다.
12) 공선옥 「80년대와 나의 문학 광주, 그리고 내 인생의 수난기」, 『역사비평』 32호(1995) 166면.
13) 이제는 각 장르별로 작품을 묶은 총서도 나온 터라 좀더 차분히 ‘5월문학’을 되돌아봄직하다. 시·소설·희곡·평론 4개 분야, 모두 4권으로 엮인 『5월문학총서』(문학들 2012~13) 참조.
14) 이런 형식 구성은 전작인 『영란』(뿔 2010)과 『꽃 같은 시절』(창비 2011)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노래』에서는 한결 섬세·치밀하다.
15) 그중 한 대목만 인용한다. “아버지의 말은 입에서 흘러나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마루로 넘쳐나가 부엌과 마당과 뒤꼍과 헛간과 돼지막과 닭장과 변소에 흘러다녔다.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아버지의 말을 밥과 함께 씹어 먹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이 밥알에 섞인 뉘나 돌이나 깜부기처럼 서걱거렸다.”(9면)
16) 『소년』과 연관해서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노래』의 2장에서 펼쳐지는 박용재의 파괴된 삶은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다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된 김진수가 걸어간 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17) 「80년대와 나의 문학 광주, 그리고 내 인생의 수난기」 165면.
18) 그런 힘에 관한 논의는 John Beverley, Testimonio: On the Politics of Truth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4) 참조.
19)Primo Levi, trans. Raymond Rosenthal, The Drowned and The Saved (Vintage International 1988), 199면.
20) 전부가 그렇다는 말은 물론 아니며, 필자 자신은 탈북시인 장진성(가명)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통해 좀더 엄밀한 비평을 시도한 바 있다. 「오늘의 ‘분단시’에 관한 단상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창비 2013) 102~11면 참조. 전체적으로 탈북자문학에서 문학으로서의 진정한 증언은 아직 요원한 형편인 듯한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천국, 북한〓지옥이라는 도식에 얽매이지 않은 최금희의 『금희의 여행: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7,000km』(민들레 2007) 같은 작품이 좀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