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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규관 黃圭官
1968년 전북 전주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이 있음. grleaf@hanmail.net
공장 밖이 위험하다
공장 밖이 위험하다
시너와 휘발유가 가득 쌓인 공장보다
웃음과 활기가 넘치는 공장 밖이
늙으신 어머니가 보내준 택배 수화물이
기다리는 공장 밖이 더 위험하다
차별과 주야 맞교대와
푼돈 같은 급여와 늘 실적을 을러대는
멈추지 않는 라인 앞에 서면
차라리 고통을 잊을 수 있는데
공장 밖만 생각하면 식은땀 나는 악몽이다
이게 임금노예가 되어 버린 징표라고
명징한 언어를 내 심장에 쏟아붓지 마라
공장 밖은 욕망이 매매되고
거듭되는 실패와 그 다음의 구걸과
폐수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포클레인이 지나갈 재개발과
협잡과 투기와 탐욕이 넘쳐나고 있지만
시너와 휘발유는 공장 안에 있다
지게차와 공구상자도 공장 안에 있다
오랜 교대근무로 빛깔이 변한
몸뚱이들도 공장 안에 있다
그리고 참을 만큼 참은 개새끼도 있다
지금 공장 밖이 위험하다
움켜쥘 게 아무것도 없는,
저 공장 밖이 더 위험하다
버려지면 곧바로 잊혀지는
저 공장 밖이
더러운 시
정치시라면 한때 넌더리를 낸 적도 있지만
정치가 더러우니 정치시는
정치와 무관한 언어로 써야 한다는
나의 무지를 조롱하는 언어 앞에서
나는 너저분한 생활을 변명 삼았다
타락마저 엉거주춤 일삼은 시간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일주일째 우리 부부는 침묵중이다
허무를 모르는 어떤 주장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 배운 탓에
지금껏 분노는 알았지만, 식구들의 눈에는
단지 허름한 가장이었을 뿐
그러나 더러운 게 피가 된다
볕이 꺼지는 순간에야 사랑은 시작된다
박사학위 논문 장정처럼 모호한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러므로 욕은 아니다
다만 이제 멋진 정치시를 쓸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 진창을 모른다
이미 진창인데 아니라고 우긴다
그래서 핏물이 밴 정치시 한줄 못 쓴다
끝내 완성되지 못할 정치시를
아내의 외면도 너끈히 견뎌내는
더러운 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