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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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별의 동굴

 

 

8월 어느날 아침 그는 휴대폰의 문자 알림음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동네 안경점에서 보낸 문자였다. 그의 46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수입테를 제외한 모든 품목을 할인해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휴대폰의 달력을 열어서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날이 생일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일부러 잠을 깨울 만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대부분의 날들과 마찬가지로 달력에 그날의 일정은 아무것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그가 사는 원룸 오피스텔은 11층에 동향이었다. 여름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창을 통해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과 창턱에 쌓아놓은 책들의 표지는 허옇게 색이 바래 있었다. 책상 위의 데스크탑을 아침의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에 수건으로 덮어놓아야 했다. 6년 전 그 집을 계약할 때는 겨울이었다. 오랜 고시원과 반지하 생활을 벗어나 마침내 해가 드는 집에서 살게 되어 들떴었다. 그 부드럽고 따사로운 볕이 여름에 실내를 불가마로 만들어버리리라는 건 짐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여름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온몸에 땀띠분을 뿌려가며 선풍기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 지냈다. 그러다 며칠에 한번쯤은 에어컨을 찾아 까페에 나갔다.

커피가 맛없기로 소문난 체인점이 그의 단골 까페였다. 그다지 취향을 내세우지 않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정수리의 머리숱이 적고 폴로 티셔츠 아래 스키니가 아닌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혼자 몇시간을 앉아 있어도 그다지 눈길을 끌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늘 책과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가끔은 다운받은 영화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야외 테이블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9년째 박사논문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끝내는 게 실력이라며 잔소리를 해주던 지도교수가 작년에 정년퇴임한 이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더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다음 학기부터 모교의 시간 강의를 맡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임용된 학장이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를 일괄적으로 잘라버렸다. 지난 몇년 동안 그는 대학 동기가 조교수로 있는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왔다. 그곳 역시 시간 강사를 줄이고 대신 강의전담 강사를 뽑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기로부터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지 않았지만 강의를 더 해봐야 한두 학기가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미리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통장에 잔고도 얼마간 남았고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적금도 있었다. 단출한 삶의 방식이 몸에 배었으며 돈이 들어갈 만한 특별한 취미도, 관계도 없었다. 논문이 통과되면, 임용까지는 몰라도 다시 강의를 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일상이 무기력해지고 계획을 세울 때에 위축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현실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었다. 나이 탓도 있었다. 집중력과 끈기가 떨어져 책상 앞을 들락날락하는 주기가 짧아졌고, 문맥을 파악하는 데에도 예전보다 시간이 걸렸다. 성격이든 나이든 모두 고쳐지거나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바에야 현실을 수긍하고 거기 맞춰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방학을 한 뒤 지난 두달 동안 그는 그가 사는 신도시 오피스텔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모임이나 술자리에 나가느라 서울행 버스를 탄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올해 여름에는 어머니 집에도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지난봄부터 어머니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시절만을 반추하며 남은 생을 노인병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것 역시 어머니에게 닥쳐올 필연적인 죽음의 전단계로 어느정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피스텔 건물 1층에는 24시 편의점과 빵집과 코인 세탁소와 반찬가게가 있었다. 모퉁이를 돌면 식당과 까페, 그리고 생맥주 체인점이 나왔다. 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중 한군데의 가게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이따금 횡단보도 건너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그의 일상적인 동선이었다. 그는 시세에 따라 전세금을 올려주며 계약을 유지해왔다. 집을 옮길 마음이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나 집에 대해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굳이 변화를 만들어 에너지를 소모하기가 싫었다. 책도 문제였다. 그 건물에서 가장 작은 평수라 해도 그 집은 그가 지금까지 가져본 개인 공간 중 가장 넓었다. 그 공간의 거의 모든 벽을 그는 책으로 채워왔다. 처음으로 책장도 맞췄다. 커다란 책장이 현관문을 쉽게 통과하지 못해 목공소 주인과 함께 진땀을 흘렸던 일을 떠올리면 그 원목 책장을 다시 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날 그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산 뒤 부동산 사무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단지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 두개를 가득 채운 커다란 지도였다. 개발지역 종합도와 신도시 아파트 전도였다. 다른 벽에는 숫자가 크게 인쇄된 달력과 자격증 혹은 허가증이 든 액자 몇개가 걸렸다. 묵중해 보이는 검은색 인조가죽 소파세트가 한자리를 차지했고, 그 앞의 유리탁자 위에는 신문이 던져져 있었다. 책상은 모두 세개였다. 맨 구석자리 책상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밝게 염색한 머리를 하나로 묶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여자는 인사를 건네며 안경을 벗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뭔가를 확인하듯 잠깐 눈을 가늘게 떴는데 아마 습관인 것 같았다.

여자는 그에게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사장님이랑 실장님이 잠시 외출중이라서요. 앉아서 조금 기다리세요. 말투에서 약간의 사투리 억양이 느껴졌다. 염색머리와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요란한 티셔츠 때문인지 부동산 사무실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여자였다. 그는 앉을 것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냥, 뭐 좀 물어보려구요. 전세를 월세로 바꿀 경우에 시세가 어떻게 되나요? 아, 월세로요? 여자가 얼른 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내들고 다시 물었다. 몇 호세요? 여자의 직설적이고 난데없는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그냥 시세만 알았으면 하는데요. 여자는 거의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소파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를 그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 올게요. 저기요. 여자가 그다음 말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고 중년 남녀 한쌍이 들어왔다. 중년 여자의 손에는 작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한장 건네며 말했다. 일단 좀 앉으시죠. 그는 결국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집 위치를 알아야 정확한 시세를 말해줄 수 있다는 바람에 오피스텔 호수도 불러주었다.

그사이 여자 실장은 케이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초를 꽂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크 좀 드시고 가세요. 여자 실장이 붙잡았다. 옆에 서 있던 염색머리 여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제 생일이거든요. 그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이 초에 불이 붙여졌다. 초는 모두 네개였다. 여자 실장이 생일 축하 노래를 선창했고 사장도 따라불렀다. 그도 얼떨결에 박수를 조금 쳤다. 여자는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었다. 콧대 옆에는 안경에 눌린 자국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그날이 가기 전에 또 한번 그녀와 마주쳤다. 1층 생맥주집에서였다. 평소에 그는 다른 자리 손님에게 거의 시선을 두지 않았다. 식당이나 술집에 혼자 드나드는 사람의 몸에 밴 태도였다. 아마 그날 오후 부동산 사무실에서 나란히 선 채로 생일 케이크를 나눠먹지 않았다면 하나로 묶은 염색 머리와 애니메이션 티셔츠의 조합을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그녀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바의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한손으로 턱을 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누굴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저녁밥 대신으로 감자튀김에 생맥주 석잔을 비우기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다. 나올 때 흘끗 보니 그녀는 우편물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생일이 같은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각기 혼자 생일을 보낼 확률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는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왼쪽 가슴에 손을 대자 불규칙하고 급한 박동이 손바닥을 쳤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벽에 몸을 기댔다. 가슴을 지그시 누른 채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부정맥 증상이었다. 몇년 전 처음 겪었을 때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증상이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에 나온 대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중증은 아니었다. 서너달에 한번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았고 길어야 10분이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곧바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 전에 없이 증상이 30분 넘도록 계속되었지만 마침내는 진정되었다. 침대 위에 늘어져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그대로 그는 잠들었다.

 

폭염이 거리와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를 뜨겁게 달구던 지난 한주일 내내 그는 논문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겨우 한 챕터가 넘어갔다.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논점이 약하고 예시도 빈약해 논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자료를 읽을 때마다 처음 세웠던 가설에 혼란이 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집으면 감당할 수 없게 일이 커진다.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진전시키려고 매수를 채워가다보면 문장이 따로 놀고 산만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산만해질수록 추상적이 되고 또 그걸 덮기 위해서 유행하는 이론으로 일반화하거나 공허한 수사를 동원했다. 쓰는 사람에게도 뻔히 보이는데, 호의를 가질 의무가 없는 읽는 이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때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에 그다지 재능이 없거나 있다 해도 이미 소진되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의 관심은 형에게 집중되었다.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에다 시골 학교 출신으로는 드물게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의 엘리트 과장이 되기까지 형은 자존심 강한 어머니 인생의 버팀목이었다. 그는 착실하고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을 뿐 성적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형이 이민을 떠나면서 어머니의 긍지는 끝나는가 싶었다. 미국 동부의 부자동네에 정원이 딸린 이층집에 살고 있다고는 해도 어머니에게 세탁소 주인은 자랑거리가 못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10년 넘게 혼자 살던 집을 팔고 노인 임대주택으로 들어가면서 그에게 목돈을 쥐어주었다. 그늘에만 머물던 그의 인생을 트랙으로 불러낸 것이다. 참고서를 만드는 작은 출판사에 다니던 그는 서른두살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부터 어머니가 다니는 복지회관의 노인들 사이에서 박사로 칭해졌고, 시간강사 자리를 얻자마자 대학교수로 불렸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의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공부의 경우와 정확히 똑같았다.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배웠던 이론을 공허하게 반복하며 시간을 때웠다. 점점 무난하고 뻔한 말만 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제자리걸음 단계를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견고한 시스템 안에 속하게 되면 그 안의 동력으로 굴러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거기 걸맞은 활기도 생겨날 것이다.

책상에서 일어난 그는 기지개를 켠 다음 침대맡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연락 올 데는 없었지만 대출 안내나 청구서 알람이 거슬려 꺼두곤 했다. 부재중 전화가 한통 있었다. 그에게 시간 강의를 주었던 동기였다. 그는 반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지갑을 챙긴 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1층에 내려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운동도 할 겸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의 여름 햇살이 아직 따가웠지만 구름 없이 맑은 하늘과 짙은 녹음의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간 뒤 동기가 용건을 꺼냈다. 방송국에 다니는 친구가 장기간 해외연수를 떠나게 돼 환송 모임이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다들 연말에 보고 못 봤잖아. 동기는 가볍게 말을 이었다. 얼굴 본 김에 너한테 할 얘기가 좀 있고. 그러지 뭐. 그는 선선하게 대꾸했다. 동기의 할 얘기라는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약속 당일에 연락을 해온 것부터가 동기의 망설임과 난처한 심경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자리에서 그는 대체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사십대 중반 남자들의 술자리 화제에는 패턴이 있었다. 사회생활의 고충을 내세운 비난과 험담으로 시작해서 늙어간다는 푸념, 뱃살과 운동과 가족 이야기로 이어지곤 했다.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친구는 대학생 딸이 있었고 누군가는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이혼을 하기도 했다. 직업을 바꾸거나 사업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고 젊은 나이에 발병한 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친구도 있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변화도 사연도 없었다. 친구들은 출퇴근 시간에 시달리지 않고 티셔츠와 백팩으로 충분한 옷차림, 가족 없이 혼자 보낼 수 있는 휴일 따위를 들먹이며 그의 자유를 부러워했다. 술값도 내지 못하고 작은 원룸에 혼자 살며 화제에도 끼지 못하는 그에 대한 배려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배려가 지나쳐 배제가 되고 은연중에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관리하고 있었고 거기 대해 일정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준을 낮게 잡으면 낙천적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욕망을 조절하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폭음도 하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고 건강에도 신경을 썼으며, 스스로 정한 사소한 규칙을 되도록 지키며 살아왔다. 집에 돌아와 혼자 맥주캔을 딸 때가 더 좋긴 했지만 어떤 모임에서든 위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기비하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마이너리티를 도덕적 무기로 내세우는 옹졸함도 없었다. 그는 남의 입장을 쉽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피해자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공원을 반바퀴쯤 돌았는데 벌써 뒷목과 겨드랑이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는 음료수 자판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생수 한병을 빼서 들고 그늘을 찾아 등나무 파고라 쪽으로 다가갔는데, 그곳 벤치에 혼자 앉아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부동산 사무실의 염색머리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그가 자판기 앞에 멈췄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산책 나오셨어요? 네. 그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기도, 다른 자리로 가기도 어색했다. 여자가 그를 올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방향으로 걸으시나봐요. 네? 반대 방향으로 도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아. 그는 생수병 뚜껑을 비틀었다. 그렇죠. 그녀가 팔을 쳐들어 손가락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저는 이 방향이거든요, 시계 반대 방향. 저랑 반대로 걸으시네요.

생수를 한모금 마신 뒤 그는 겨우 할 말을 찾아냈다. 공원에 자주 오세요? 네. 점심 먹고 나서요. 그녀는 점심시간에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사장과 실장이 돌아오면 밥을 먹으러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점심시간이 길어지면 오후 늦게야 공원에 나오는데 한적해서 그 편이 더 좋다는 거였다. 여기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보는 게 재미있어요. 같은 방향을 보면서 줄지어 걷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와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근데요. 그녀는 비밀이라도 알아낸 듯이 눈을 반짝였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정한 방향으로만 걷는 것 같아요. 시계 방향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 그런 것 같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에 들어서면 무심코 걸음을 옮겼는데 생각해보니 늘 같은 방향이었다. 그녀 식으로 말하자면 시계 방향이었다.

공원을 나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기울고 있었다. 맥주집 주인이 가게문을 열어놓고 야외 테이블을 인도로 옮기다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걸음을 약간 빨리했다. 샤워를 하고 나가려면 서둘러야 할 시각이었다.

버스에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년에 서너번 일어나던 증상이 일주일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숨을 고르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버스가 신도시를 벗어나 서울로 진입하고 신촌의 대학가에 이를 때까지도 박동은 진정되지 않았다. 건너편 좌석에서 흘끔거리는 승객도 아랑곳없이 그는 앞좌석 등받이에 이마를 받치고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차창 밖으로 대학병원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병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신호등이 있는 두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경사진 길을 가까스로 걸어내려갔다. 마침내 응급실에 다다른 그는 한손으로 가슴을 붙잡고 온힘을 다해 문을 밀었다.

먼저 입구의 데스크에 접수를 하고 번호표를 받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열명 정도의 대기자들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이름이 불려 담당 간호사 앞으로 갔을 때 그의 몸에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티셔츠 아래 들썩이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했고 아랫배까지 덜덜 흔들렸다. 간호사는 곧바로 휠체어를 불러 그를 앉혔다. 병원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또다른 청년 하나가 바쁜 걸음으로 휠체어를 따라오며 보호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청년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에 보호자는 물론이고 상황을 알릴 만한 사람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에 관여할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다. 또한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그다음부터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가 통제해온 삶의 영역 밖에 있었다. 휠체어 미는 청년이 슬리퍼 소리를 내며 그를 계속 안쪽으로 밀어갔다. 그는 눈을 감았다. 탈진한 가운데에도, 남의 손에 완전히 내맡겨진 무력함이 뜻밖에도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뒤로 그는 까페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동기에게 사정이 생겨 못 갔다고 간단한 문자를 보낸 뒤 휴대폰도 꺼두다시피 했다. 잠이 오지 않아 캔맥주를 취할 때까지 마시고 새벽에야 침대로 갔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로 늦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사이 병원에 두번 다녀왔다. 첫째날은 대학병원의 외래에서 심혈관 전문의의 진료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수술에 대비해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심전도 측정기를 단 채 트레드밀 위에서 뛰기도 하고, 사이보그처럼 상체에 기계를 휘감고 24시간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홀터 검사도 했다. 병원에서 받은 책자도 꼼꼼히 읽어보았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은 심장 안의 전기 흐름에 의해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전기가 흐르는 다른 길이 생겨나는 바람에 전기전달 체계에 혼란이 왔다. 부정맥은 위험한 병이었다. 증상이 어쩌다 나타나긴 하지만 매번 요행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제라도 심장이 멈춰버릴 수 있었다.

수술은 2주 후로 잡혔다. 담당의사는 전극도자절제술은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강조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시술과정도 간단하다는 거였다. 먼저 양쪽 사타구니의 정맥을 뚫어 플라스틱 관을 삽입한다. 그런 다음 그 관의 움직임을 모니터로 보면서 원격조종하여 원인이 되는 부위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어깨의 정맥을 뚫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 문제가 된 심장 부위에 열을 가해 제거한다. 시술은 부분마취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심장의 움직임이 평소와 같아야 원인을 찾아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기 심장 안에서 플라스틱 관이 돌아다니고 의사들이 그것을 이리저리 유인하는 과정을 환자가 지켜본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담당의사는 수술 성공률이 96퍼센트나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환자라면 누구라도 나머지 4퍼센트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패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 단지 원인이 된 부위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심장이 그대로 멈춰버린다는 뜻일까. 응급실에서의 발소리와 비명과 신음, 바퀴 끌리는 소리, 손등에 박히는 주삿바늘, 그리고 탈진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심전도 그래프를 지켜보던 상황을 떠올리면 일상이라는 완강한 프로세스 뒤에 있어서 깨닫지 못했을 뿐 그 가능성은 그다지 멀리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수술을 일주일쯤 앞두고 있을 때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는데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문을 여니 파일을 두 팔로 껴안듯이 들고 그녀가 서 있었다. 얇고 헐렁한 반바지 차림이었던 그는 이마를 찡그렸다. 사장님이 한번 들러보라고 해서요. 전화번호를 안 남기셨다고. 무슨 일로요? 자기가 듣기에도 지나치게 냉랭했으므로 그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렸다. 월세 문제라면, 아직 결정 못했어요. 그녀가 눈을 깜박거렸다. 사장님이 집 상태를 보고 오라고 하시길래 저는 얘기가 된 줄 알았어요.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갈색 눈동자가 맑고 깊었다. 두개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그의 얼굴이 오롯이 깃들어 있었다. 들어오세요. 그가 몸을 옆으로 돌려 길을 내주며 말했다.

책이 정말 많네요. 현관에 들어와 신발을 벗으면서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가 기억하기로 6년 동안 그 집에 들어온 사람은 다섯명을 넘지 않았다. 모두 첫마디가 똑같았다. 도서관 같다거나 서점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꼭 동굴 같아요, 책 동굴,이라고 말했다. 저도 책 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싱긋 웃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책은 몇권 없어요. 같은 책만 몇번씩 읽거든요. 스무번 넘게 읽은 책도 있어요. 저하고 반대네요. 그가 대꾸했다. 저는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요. 그럼 여기 이 책을 다 읽으신 거 아니에요? 어떻게 다 읽어요. 그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앞부분만 읽은 것도 있고 필요한 데만 골라서 읽기도 해요. 목차만 보고 덮어버린 책도 있고.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저는 책 많은 집에 가면 그 집 주인이 거기 있는 책을 전부 다 읽었다고 생각했어요. 똑똑한 사람 앞이니까 말도 교양있게 해야 할 것 같고. 아니죠. 똑똑한 사람이면 책 내용을 머릿속에 다 집어넣었을 거예요. 이렇게 책을 모조리 쌓아두지도 않겠죠. 그는 자신의 말투가 시니컬해지고 있다고 느꼈지만 멈추지 않았다. 술 없는 집하고 똑같아요. 있는 대로 먹어치우니까 술꾼 집에는 술이 없잖아요. 그녀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뭔가 든든하고 뿌듯할 것 같아요. 이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그게 문제예요. 그가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세상을 우습게 보게 되죠. 그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소리가 맑은 방울 여러개를 천장쯤의 높이에서 흔드는 것 같았다. 거들먹거리는 농담으로 한번 더 웃음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 말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앞이 공영주차장이라 답답하진 않네요. 근데 왜 암막커튼을 달지 않으세요? 그런 게 있나요? 그럼요. 인테리어집 주인이 그러는데, 이 건물은 블라인드로는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그 집에 저희 손님들도 많이 소개해드렸어요. 그녀가 한 말 중 부동산 사무실 직원다운 말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에어컨과 세탁기가 없고 욕실 타일이 몇개 떨어져나가고 바닥난방이 안되는 것따위는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았다. 현관을 나서며 그녀는 미리 준비해온 듯 파일 안에서 명함 한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결정되시면 전화 주세요. 그는 건네받은 명함에 눈길을 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가 주인하고 직접 얘기해도 되지 않나요. 그야 그렇죠. 그녀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전화 주시면 시세를 알려드릴게요. 그녀와 눈을 맞추며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갔던 것이다.

수술이 결정된 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울타리를 좀더 안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입이 불확실해진데다 뜻밖의 병원비 지출이 생긴 탓에 적금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이사만은 망설여졌다. 그 집은 그가 처음 마련한 책의 진지인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그 책들은 그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전문적이고 풍족한 세계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그곳을 떠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울타리의 말뚝을 뽑는 첫 단계로서 제일 먼저 책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는 먼저 책장에서 오래된 책들부터 빼내기 시작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글자가 너무 작고 행간도 좁아 읽기 힘든 책들이었다. 다음으로는 개정판이 나온 뒤로도 계속 갖고 있었던 초판본을 골라냈다. 두번 읽을 필요는 없는 가벼운 산문집과 어쩌다 받아놓고 펼쳐보지 않은 증정본과 논문집도 버렸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이론서를 버렸고,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 자료로 갖고 있었던 책들도 추려냈다. 한때 존경했으나 지금은 관심이 없는 저자들의 저서를 솎아낼 때는 얼마간의 회한이 따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기 저자들의 책을 고를 때에는 속도가 붙었다. 책장과 천장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던 전집은 추릴 것 없이 모두 버릴 생각이었다. 영인본으로 갖고 있었던 총서, 학술지와 문예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은 땀범벅이었고 손과 발바닥은 책에서 나온 먼지로 새까맸다. 오래된 종이에서 풍기는 묵은 냄새가 공기 속을 떠다녔다.

그러나 여덟개의 책장 중에 겨우 한개분의 책이 치워졌을 뿐이었다. 두배나 세배쯤 더 책을 버려야 했다. 책장 한개를 비운 다음 거기에 좋아하는 저자들의 책을 모아서 장르별로 분류해 다시 꽂기 시작했다. 다른 책장 하나에는 이론서들을 모았는데 그는 자신이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빼놓았던 책더미를 추리다가 미련이 생겨서 도로 책장에 꽂아놓는 책들도 있었다. 어떤 책은 지나가버린 한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곁에 있었던 사람을 기억나게 하기도 했다. 그중 어떤 책들은 그와 함께 수없이 이사를 다녔다. 고시원 책상 밑의 좁은 공간에 쌓였다가 어엿한 책장으로 옮겨줄 때의 뿌듯함이 기억났다. 절판되어서 어렵게 구한 책도 있었다. 술집에 놓고 오거나 빌려간 사람이 돌려주지 않아 다시 산 책도 있고 오래전 사귀던 여자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들도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던 시절에 산 책들에는 간혹 흐릿해진 글씨로 구입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기도 했다. 메모지나 낙서 등 개인정보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일일이 들추다보니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동행이었던 존재가 책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버려야 할 짐이 되어 있다는 데에 어쩔 수 없이 착잡함을 느껴야 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러 집을 나섰다. 오피스텔은 금연 건물이었지만 그의 집에서 한 층 아래인 10층에 흡연자를 위한 야외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편의점에 들러 책을 묶을 끈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책 정리를 시작하고 나니 이사가 조금은 쉬워 보였다. 담배를 피운 뒤 그는 주머니에서 그녀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집을 내놓겠다고 말했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맥주 한잔 하자고 말했다. 막상 해보니 두가지 모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마주치기 전부터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까페에서 여러번 보았다는 거였다. 출근길에 가끔 거기에서 커피를 사왔거든요. 맛은 그저 그렇지만 왠지 멋져 보이잖아요. 그녀가 처음 본 그는 비오는 날 까페 입구의 차양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사들고 까페를 나서는 길이었다. 물이 흐르는 우산에다 핸드백과 커피를 양손에 든 채 팔꿈치로 까페 문을 열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더니 그가 다가와 문을 당겨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녀의 인사에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두번째로 까페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가 그곳에 자주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도 한두번 더 그를 까페에서 보았다. 그러다가 까페에 발길을 끊은 것은 그녀의 고모이기도 한 부동산 사무소 실장에게서 돈을 낭비한다고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셨을 때 저 진짜 놀랐어요. 아 참, 그날 케이크 잘 먹었어요. 그는 뒤늦은 인사치레를 한 뒤 말을 이었다. 혹시 그날 안경점에서 생일축하 문자는 안 받았어요? 네? 처음 봤을 때 안경을 쓰고 있어서요. 아, 그거요. 그녀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돋보기예요. 라식수술 때문에 노안이 빨리 왔거든요. 그러고는 짐짓 명랑하게 덧붙였다. 생애전환기잖아요. 건강검진 안내서가 왔더라니까요. 여기로 이사와서 받은 첫 우편물이었는데.

그녀는 석달 전에 자기가 태어난 도시를 떠나왔다. 16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나서였다. 고모가 부동산 사무실에 직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해왔을 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마흔살에 새출발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 같았다. 그러나 낯선 도시로 떠난다는 사실에 결국은 마음이 움직였다. 그녀는 술을 잘 마셨다. 몇블럭 떨어진 원룸텔에 살고 있어서 술집이 문을 닫는 시각까지 귀가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바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때때로 그의 잔에 술잔을 부딪치며 ‘책의 동굴을 위하여’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그녀가 물었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그게 말이죠, 좀 긴 얘기인데. 그도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자연과목 숙제로 미생물의 모양을 조사해가야 했다. 참고서를 찾아봐도 없었고 중학생인 형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대신 형은 동네 약국 아저씨가 알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 그 아저씨는 대학을 졸업했다는 거였다. 아저씨는 바빴다. 약국 정리도 해야 했고 안채에 들어가 밥도 먹어야 했고 약도 지어야 했고 읍내에도 볼일이 있었고 손님들과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야 했다. 그는 숙제공책과 필통을 끼고 날이 어두워지도록 약국 문앞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아저씨가 약국 안으로 그를 들어오게 한 뒤 공책을 펼쳤다. 먼저 타원 몇개를 그리고 그 안에 길고 짧은 막대기들과 꼬불꼬불한 선들을 쓱쓱 그려넣었다. 마지막으로 원 아래에 각기 병균의 이름을 적었다. 불친절하고 욕도 잘하는 뚱뚱한 아저씨였지만 굉장한 지식인으로 보였다. 다음날 학교에서 의기양양하게 숙제공책을 폈다. 형의 말이 맞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였다. 교안에서 지시한 대로 형식적으로 과제물을 내주었을 뿐 교사는 시골 아이들에게 참고자료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숙제를 해온 사람은 그와 반장아이 둘뿐이었다.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고지식하게, 그것도 엉성하게 숙제를 해온 데에 교사가 야유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반장아이의 숙제공책 때문이었다. 약국 아저씨가 그린 것의 몇배 많은 원 안에 아주 정교한 그림이 들어 있었고 각 미생물에 대한 각주가 서너줄씩 달려 있었다. 저런 멋진 지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날 그는 반장의 주변을 맴돌았고 그 결과 반장의 우월감을 자극해 그애의 집에 따라가게 되었다. 그애의 책상은 그의 것보다 조금밖에 크지 않았다. 형의 것만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문기자 삼촌이 물려줬다는 백과사전이 줄을 맞춰 꽂혀 있었다. 백과사전 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엄청나고 무한한 세계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인명사전을 꺼내 그가 아는 모든 유명한 사람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보았다. 과학사전과 역사사전과 지리사전 속에는 그가 궁금하게 생각했고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면박이나 받았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낱낱이 밝혀져 있었다. 그날 그는 저녁밥 먹을 시간이라고 반장이 떠밀 때까지 바닥에 주저앉아 사전을 읽었다. 이제는 아무도 책으로 된 백과사전을 읽지 않지만 오래전 한 시골 소년의 보잘것없는 미래는 어쩌면 그때 결정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 거실에도 그런 백과사전이 있었는데. 그녀가 한마디했다. 아버지가 친척한테 할부로 사서 장식장 윗칸에 고이 모셔놓았죠. 그때 유행이었거든요. 그는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아마 그의 논문처럼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틀 안에서 만들어진 공허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소심한 사람의 위선과 자기위안으로 적당히 가공돼 있었다. 아마 그날 그가 새롭게 발견하고 환호한 것은 지식의 여정이 아니라 형과 약국 주인과 교사와 반장에 대한 보복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갈망했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시스템의 권위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그는 한동안 각기 자기 생각에 골몰한 채 말없이 술잔을 비워갔다. 갑자기 그녀가 술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생각난 듯이 그녀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 공원에 안 나가셨죠? 공원에요? 네, 안 보이시던데요. 그의 행적을 찾아다니기라도 했다는 말투였다. 한번 갔는데요. 그래요? 왜 못 봤지. 혹시 방향을 바꾸신 거 아녜요? 저랑 같은 방향으로.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서로 못 만나는데. 저도 사실 그 생각을 했어요. 그는 농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방향을 바꾸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쪽도 나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결국 마주칠 거고, 더 나쁜 건 서로를 피하려 했다는 걸 들키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시계방향으로 걸었어요. 그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는, 시간을 맞춰서 같이 가요, 그럼 방향은 상관없잖아요,라고 말했다. 확률을 백퍼센트로 만드는 방법이 있는 걸 몰랐네요. 그는 계속 농담으로 받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니 한꺼번에 취기가 몰려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번 벽을 붙잡았다. 걸음걸이가 흔들렸고 집을 지나쳐버린 바람에 되돌아오기까지 했다. 번호키를 누르자 걸쇠가 풀리는 익숙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는 문을 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현관으로 발을 들인 순간 주춤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뜻밖의 광경 때문이었다. 자신의 책이 그렇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이고 바닥에 함부로 던져져 있는 것은 그를 몹시 놀라게 했다. 마치 어떤 불온한 폭력이 침입해 책장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임을 깨닫고도 그 섬뜩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불을 붙이고 길게 한모금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책 가운데 한권을 집어들었다. 담배를 물고 책을 몇장 넘겨보았다. 그와 같은 연배의 잘나가는 저자의 책이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책으로 분류해 던져버렸지만 그 책에는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눈을 찌르는 담배연기 때문에 이마를 찡그린 채로 그는 그 글귀를 읽었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재능과 행운을 질투했고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품었다.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 물러나 있기를 자청한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패배자가 되기 두려웠던 것이다. 전략적이지 못했을 뿐 타협도 했다. 힘있는 자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애썼고 명백한 오류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도하는 방향에 따랐다. 싸움이 벌어질 때는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중간자의 이득을 취했다. 경쟁이 될 만한 대상에게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예민했고, 그에 대한 험담이 나오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그 오해를 부추겼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었다. 불안해서 비겁했다. 불안하기 때문에 거만하고 초탈한 척했다. 수긍한 게 아니라 회피한 것이었다.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를 익혀갔다. 그것은 권위를 추종하고 인기를 탐내면서 아닌 척 자신을 기만하는 기술이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가 논문을 빨리 끝내지 못한 것 역시 완벽주의자라거나 학문 욕심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대 이하의 결과일까봐 두려웠고, 그것이 탄로나는 상상만으로 악몽에 시달렸다. 의미없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수많은 책들이, 그 무너짐이, 그가 허세에 찬 그 인생을 얼마나 얄팍한 마음으로 지키려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인생 말인가. 그는 중얼거렸다. 나에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언제였을까. 충혈된 눈으로 우황청심환을 삼키고 석사논문 발표를 가까스로 마쳤을 때 지도교수가 던졌던 칭찬을 잊을 수가 없다. 인쇄된 석사논문을 갖고 어머니 집에 갔던 날 함께 갈빗집에 갔었다. 그런 시절일까. 세개의 지방대학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닷새씩 강의를 다닌 적도 있었다. 밤늦게 서울에 도착한 뒤 귀가하는 택시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고 어머니께 용돈도 부쳐드렸다. 큰 망설임 없이 갖고 싶은 책을 살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이 좋았던 한때일까. 아니면 학술지에 발표한 글을 보고 잡지에서 딱 한번 원고 청탁을 해왔을 때일까. 6년 전 이 집에 이사올 때일 수도 있다. 지원금 심사에서 탈락해 울적해 있던 차에 학술전문 출판사에서 자문위원을 제안해왔다. 2년 만에 폐간됐지만 사무실 안에 자기 의자를 갖고 적으나마 고정수입이 생긴 건 처음 일이었다. 그때가 좋았던 시절일까. 대학원 선후배로 만나 5년을 사귀었던 여자와 동해로 첫 여행을 떠났었다. 여자는 지방대에 임용된 뒤 같은 대학 교수와 결혼해버렸지만 그 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일까, 좋았던 시절은. 공부에 홀린 듯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매일같이 알고 싶은 게 생겨났고, 한가지를 깨치면 컴퓨터 게임의 클리어 단계처럼 다른 문이 열려 새로운 세계로 그를 이끌었다. 기량이 느는 듯한 기분 좋은 속도감도 뒤따랐다. 매혹적인 텍스트를 붙들고 발견의 기쁨과 각성으로 깨어 있던 천진했던 밤들. 그렇게 가다보면 햇볕이 내리쬐는 푸른 언덕 위에 올라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바닥에 내던져진, 저 권위있는 책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는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있는 아무 책에나 대고 비벼 껐다. 그런 다음 벌떡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바닥의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기 위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책장의 책을 빼내기 시작했다. 한권씩 꺼내 표지를 보고 집어던지다가 나중에는 제목도 보지 않고 두 손으로 서너권씩 잡아 팽개쳤다. 아예 책장 칸막이 사이로 두 손을 집어넣어 우르르 쏟아지게 만들었다. 책장 두개가 빌 때까지 그는 쉴새없이 책을 무너뜨리고 던지고 짓밟았다. 더이상은 기운이 없었으므로 침대로 비틀비틀 다가가 누웠다. 침대에 누운 뒤에는 불현듯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박동을 확인했다.

 

병원으로부터 ‘입원예고제’란 제목의 문자가 왔다. 심장내과로 입원 예정이오니 당일 내원하시기 바랍니다. 보호자 침구류 등 개인물품은 가져오십시오. 감염예방을 위해 보호자는 1인으로 제한하며, 면회는 12~14시와 18~20시에만 가능합니다. 그는 백팩에 세면도구와 수건과 슬리퍼만을 챙겼다. 책은 넣지 않았다.

병실은 8층이었다. 간호사 데스크에 접수를 하고 2인실을 배정받았다.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는 혈관확장수술을 받기 위해 하루 전에 입원한 노인이었다. 노인 그리고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눈 그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두번째 수술인데 2인실에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다행이라며 보호자는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간호사가 와서 그의 팔에 이름과 혈액형이 적힌 인식표를 감았다. 혈관을 찾아내 링거바늘을 꽂았고 이어서 인턴이 기계를 밀고 들어와 심전도를 체크했다.

저녁 식사시간에 노인의 가족이 면회를 왔다. 노인은 그에게 일일이 그들을 소개했다. 큰아들 부부와 대학생 손자, 큰딸 부부, 둘째며느리와 손녀들. 그가 사양하는데도 굳이 그들이 사온 전병과 조생귤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들은 노인의 작은 침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선 채로 한시간 가까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실을 떠날 때에도 번갈아가며 활기찬 억양으로 노인에게 인사말을 던졌다. 수술이 잘될 것이다, 수술 때 다시 오겠다, 걱정 말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요즘 의술이 많이 좋아졌다, 수술하는 의사가 권위자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늙어가고 죽어가는 경로가 그 사람 인생의 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완고한 표정이었다. 할머니가 그에게서 빌려간 보호자 의자를 그의 침대 옆으로 다시 갖다놓았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요.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애들이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요. 네, 가족이 최고죠. 그는 예의 바르게 대꾸했다. 아저씨는 보호자가 안 와요? 네. 더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그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할머니가 보호자 의자의 등받이를 잡아당겨 간이침대로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 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도 그의 침대를 가리는 커튼을 닫았다. 병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지만 건너편 병동의 복도 불빛 때문에 실내는 어둡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다가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동의서의 문구가 떠올랐다. 우리 병원에서 이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한 예는 없지만 의학적으로 0.01퍼센트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다시 켜고 자기가 입원한 병원에서 같은 시술을 몇번 했는지 검색해봤지만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도 검색해봤다. 0.0019퍼센트였다. 휴대폰을 끄고 창문 너머 불이 밝혀진 건너편 병동을 바라보았다. 이 대학병원 안에 병실은 몇개나 될까. 각 병실 안의 수많은 환자들이 병과 대치하고 있다. 그중에는 죽음에 임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죽어 있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 시각 거대한 병동 안에 잠들거나 깨어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기력하다. 젊은날 그는 오직 지성이 세상을 밝히고 각성이 삶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초자연적 존재를 믿지 않았으므로 그가 의지하고 선망하는 정신활동의 목록 속에 종교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에 대해 전권을 빼앗긴 지금 운명을 관장하는 게 누군지 알고 싶었고 그게 신이라면 자기 편이 돼달라고 기도하고 싶기까지 했다.

내 편이 되어줄 리 없지.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무신론자여서가 아니었다. 어린시절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를 보았다. 뉴욕에서 아테네로 가는 호화 크루즈 여객선은 시골 소년이 상상해왔던 배와 완전히 달랐다. 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음식과 술이 넘쳐나는 선상의 신년 파티, 화려한 파티복 차림으로 춤을 추는 수백명의 승객들. 그는 지구상 어딘가에 그처럼 호화스럽고 멋진 세상이 있다는 데에 경악했고 구석진 나라에 태어난 시골 소년의 처지로서 질투와 선망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경악이 컸던 만큼 해저지진의 거대한 폭발로 뒤집히고 깨져나가는 크루즈선과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빠른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욱 끔찍한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그때 어린 그는 생각했다. 내가 저 화려한 배에 탈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런 끔찍한 재난을 겪을 일도 없는 것이다. 나쁜 뉴스를 보고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남의 행운을 부러워해서도 안된다. 지금 역시도 그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큰 행운이 없었으니 0.01퍼센트의 불행 또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 이처럼 비겁한 자기위안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박탈감에 굴복해왔던 것일까. 식은 밥 같은 중간지대의 안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고독뿐이었다.

밤늦게 간호사가 와서 쪽잠이 든 그를 깨웠다. 허리둘레와 엉덩이둘레를 쟀다. 수술대에 누운 그를 마지막으로 덮을 수술포의 사이즈일까. 걱정 말고 편히 주무세요. 간호사의 의례적인 말에 그는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인턴이 한차례 더 심전도를 체크했다. 가슴과 발목과 손목에 고무 흡반 같은 걸 붙이는 그의 손이 차가웠다. 그는 자신이 포착할 수 있는 느낌 하나하나를 인식하려고 노력했다. 노인의 침대에서 할머니의 것인 듯한 기침소리가 났다. 그는 수술하기 전 2주일의 유예기간에 어머니를 보러 가지 않은 것을 잠깐 후회했다. 다음날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노인병원으로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혹시 자신이 0.01퍼센트 안에 들고 또 사후세계가 있다면 어머니와는 얼마 안 가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는 다시 잠들었다. 노인이 비명을 질러서 할머니가 급히 간호사를 데려왔을 때, 그리고 결혼식에 갔는데 축의금을 내려고 보니 지갑이 텅 비어 있어 당황하는 꿈을 꾸었을 때 그 두번을 빼고는 잠을 잘 잤다.

오전 8시반쯤 바퀴침대가 복도에 도착했다. 남자 조무사가 그가 침대에 올라가는 걸 도왔다. 남이 끄는 침대에 누운 채로 좁은 복도를 지나가는 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누운 채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무력했다. 스스로의 발로 바닥을 딛고 선다는 것, 손을 내밀거나 팔을 뻗친다는 것, 고개를 젖혀 뒤를 바라본다는 것, 그런 모든 운동과 의지의 전단계가 제거돼 있었다. 무방비한 탓인지 몸에 가해지는 속도도 훨씬 빠르게 느껴졌고 시야는 한정돼 있었다. 바퀴침대가 환자수송용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천장에 붙은 그림을 보았다. 기독교 재단의 병원이기 때문일까. 누워서 실려가는 사람이 보도록 붙여놓았음이 틀림없는 그 그림은 「천지창조」의 한 부분이었다. 신과 그의 피조물의 손가락이 닿으려는 순간을 그린 그 그림은 신이 인간에게 지성을 부여하는 장면이라고도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는 순간 깨달아버린 살아 있음의 무력함, 그리고 그 굴레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엄격한 운명의 모습으로 보였다.

 

9월 어느날 뉴스를 검색하던 그는 ‘별의 동굴’이란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아프리카의 한 동굴에서 고대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몸이 작은 여성 과학자들이 25센티미터도 안되는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거기에는 천오백개의 유골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형태로 놓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장례의식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죽음 이후를 상상한 최초의 인류에게 ‘호모 날레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의 인간. 그들이 발견된 동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처음 동굴 안으로 들어간 과학자들이 보았을 수없이 많은 화석의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먼 훗날 그해 여름을 별의 동굴이란 말로 기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