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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 ②

 

민주적 통제 밖의 한국군대

 

 

김종대 金鍾大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 『안보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등이 있음.

 

여석주 余奭周

웰스글로벌(주) 대표이사. 전 국정상황실 정세분석담당, 주미대사관 무관.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공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등이 있음.

 

 

이태호(사회) 『창작과비평』은 창간 50주년을 맞이해 올 한해 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하는 연속기획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지난호에 ‘한국 종교의 보수성을 어떻게 볼까’라는 주제를 다룬 데 이어 이번호에는 한국의 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시민단체에서 다소간 관련된 활동을 했던 때문인지 오늘 사회자 역할을 겸해 초대받아 나오게 됐습니다. 김종대 의원님은 군사전문가로서 여러 활동을 하셨고 곧 국회에 등원하시게 돼 더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여석주 대표님은 군에 오랫동안 몸담으셨던 분으로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길 기대합니다.

 

여석주 창간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문예지 『창비』와 군은 멀리 떨어진 별개의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남성 대부분이 인생의 절정기인 이십대에 수년을 몸담는 군복무 시기를 빼놓고 한국의 문화를 논한다면 적잖은 공백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창비』가 군 관련 대담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에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왼쪽부터 김종대, 여석주, 이태호.© 이영균

 

김종대 『창비』 좌담에 함께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군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다 짚자면 무척 방대해질 텐데, 각계에서 더 많은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태호(李泰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공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등이 있음.

이태호 군대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군대는 대체로 보수적 문화와 체질을 갖고 있습니다. 항상 최악의 씨나리오에 대비해야 하고 극단적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의 군은 역사적으로 보수성이라는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대표적인데, 지난 대선 때도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등이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불신을 다시금 키웠습니다. 또한 군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징병제로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 비해 군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우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기구매 스캔들과 군내 인권침해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작전지휘권 반환 관련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군이 대미 의존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군이 한국사회 발전에 장애요인이라는 인식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는 기획취지와 관련해 군의 성격이나 특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군의 ‘보수성’, 어떻게 볼 것인가

 

김종대 군대라고 하면 대체로 그 핵심주체를 장교단으로 보지요. 저는 장교단에 세가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수성, 전문성, 책임성입니다. 이 세가지가 갖춰지면서 군대조직에 집단정신과 자기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군이 보수적이냐는 질문은 어폐가 있습니다. 높은 윤리적 덕목으로서의 책임성과 직업군인으로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거고 그런 만큼 어느 나라 군대도 보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그 보수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근대국가가 상비군 제도를 채택한 이래, 군대는 민주주의와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됐습니다. 그전에는 왕정, 귀족의 계급성을 대표하는 것이 군대였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군대이지요. 요컨대 군의 보수성은 근대 민주주의체제 내에서의 보수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여석주 저도 동일한 맥락에서 봅니다. 보수(保守)라는 용어를 앞으로 나가거나 발전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의미로 한정한다면 군의 과도한 보수 경향이 분명히 문제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보수라고 하면 당연히 군은 보수여야지요. 물론 이 또한 국가에서 인력을 제공하고 예산을 지원해서 군이라는 집단을 만든 기본 목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보수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군을 구성하는 국민 또는 시민 개개인에게 정치·사회적 보수성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군인도 결국 군복을 입은 시민이니까요. 이런 점을 구별해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대(金鍾大)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 『안보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등이 있음.

김종대 그러면 여기서 얘기하는 보수의 대비 개념은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쌔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미국 군대에서의 대립항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 진단한 바도 있습니다. 미국 자유주의 전통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군대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집하면 되는 거고 평화시엔 낭비라고 봤습니다. 남북전쟁이나 독립전쟁도 다 의용군이 수행했지 상비군이 한 게 아닙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 어느정도의 상비군과 방위산업을 유지하는 것이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 좋다는 입장이 보수주의에서 표방됐습니다. 그래서 헌팅턴이 군대는 대규모 상비군으로 존재하는 한 보수주의 집단이라고 규정한 거고요. 결국 군대가 유지되고 그 나름대로 하나의 전문가 집단으로 존중되고 발전하는 한 그 이론적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수주의가 된 겁니다.

 

이태호 말씀하신 대로 상비군은 근대국가와 함께 출현했죠.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진취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군대는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군대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근대적인 조직이었죠.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근대국가의 산파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군대가 국가를 지키는 존재인 동시에 점차 국가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강제력을 지닌 집단이 되면서 거부감이 생겨난 것 같아요. 군대가 이미 형성된 국가라고 하는 굉장히 추상적인 실체를 보호한다는 건데, 국가라는 게 사실은 물신화되기 쉽잖아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전체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다른 한편으로, 군의 보수성과 관련된 논란은 결국 군은 남자들이 힘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는 점과 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군이 있습니다만,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그렇고 상명하복을 비롯한 운용·작동원리에서는 마찬가지지요. 그러다보니까 가령 성() 인식도 차별적이고 성폭력 문제도 자주 발생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석주(余奭周) 웰스글로벌(주) 대표이사. 전 국정상황실 정세분석담당, 주미대사관 무관.

여석주 군에서 몇년 전부터 ‘성군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저는 이 용어에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군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와 군이 정한 규율을 스스로 잘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거든요(군인복무규율 제4장). 가령 위병소에서 헌병이 목소리 크게 내면 군기가 있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도 사실 정확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지요. 군기는 공자가 말한 신독(愼獨, 홀로 있어도 삼가라)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를 들어서 누구를 성추행하는 걸 성군기 위반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럼 성군기 준수는 뭐냐는 겁니다. 애당초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인데, 아마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일 거예요. 미군은 그냥 ‘sexual harassment(성희롱)라 하죠. 인권에 관한 문제지 군기하고는 무관한 문제를 두고 성군기란 용어로 접근하는데 이런 건 보수성보다는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족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모든 걸 군기 차원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역방향으로 가게 될 수 있어요. 아랫사람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윗사람은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김종대 원래 부르주아라고 하면 애초에 진보성을 담은 계급이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는 보수라 인식하지 않습니까. 군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다른 왕정 군대를 파죽지세로 격파해나가고 유럽 전역을 제압했던 것은 근대세계 최초로 채택한 징병제의 힘이 분명하고, 그 시기에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진보의 혁신적인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현대에 와서 징병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므로 군대가 어떤 제도와 조직을 운영할 때 그것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제를 혁파하기 위해 징병제를 통해 ‘국민을 닮은 군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의 징병제에는 진보성이 있는 겁니다. 반면 한국의 징병제는 국민에게 의무만을 부과하면서 감시·관리하고, 교화의 대상으로 병사들을 바라봅니다. 자율과 창의를 논하기가 대단히 어렵죠. 국가가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동원하면서 사용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는 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가 군에 작용하게 된다고 봅니다.

 

이태호 이야기가 좀 어렵게 들리기도 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면, 군에 계셨던 분들에게는 자극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군은 어쨌든 전쟁하는 집단 아닙니까. 전쟁을 준비하거나. 국민개병제로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살육의 규모 또한 늘어났다는 뜻이죠. 국민개병제 이후의 전쟁에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군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여석주 제가 시민운동가라면 군이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군대 내에서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좀 가르치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데 그럼 국가의 무엇을 지키려는 것이냐. 정부종합청사를 지키려는 거냐, 태백산맥을 지키려는 거냐. 군이 지켜야 하는 국가의 본질이 뭔지를 군에 제대로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구 일본제국의 군인들은 죽을 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영국 군인들은 “여왕폐하 만세” 하면서 죽고, 한국군은 그냥 “엄마” 하고 죽는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태호 가장 인간적이네요.(웃음)

 

여석주 우리가 지켜야 할 건 헌법, 좀더 좁히면 헌법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대한민국 헌법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하고 의사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잖아요. 그런데 군의 작동원리를 보면 헌법에서 말하는 가치와 상충하는 것들이 많아요. 사람을 지배하는 것, 필요하면 사람의 목숨을 수단으로 쓰는 것,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 등등.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할 때의 기본은 역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헌법에 대해서 군인들한테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사 댓글 사건도 우리 헌법이 군의 정치개입을 왜 금지하고 있는지를 군이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일어나지 않았겠죠.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은 전사(戰史) 연구를 통한 저의 신념인데 병사가 절대로 적개심을 우선해 싸우지 않습니다. 병사들은 전우애라고 표현해도 되고 동료의식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그 무엇으로 뭉치게 되지요. 그런데 군에서는 흔히들 적개심 때문에 싸운다고 착각해서는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공산독재국가고 북괴군은 악랄하다, 뭐 이런 적개심 고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게 전투력으로 승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애초 국민개병제의 힘도 우리 사람, 우리 것, 우리 땅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거예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군대가 강했던 거죠. 주변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나 프랑스 왕정군대에 대한 미움이 아니고 ‘우리 프랑스’ ‘우리’에 대한 애정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군에서 북돋아주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훈병과에서 목표를 적개심 고취에만 치중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군

 

이태호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에서 군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집단이었습니다. 군이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정치적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을 정도로요. 그 와중에 군이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던 사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가 왜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요? 말씀하신 전우애만 해도, 제가 느끼기에는 이게 자기 내부의 동력이잖아요. 그런 것 말고, 우리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문민통제를 강조하는데, 거대한 물리력과 상명하복체제와 기밀성을 가진 군을 실제로 통제하는 수단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 걸까요?

 

김종대 한때 온갖 지탄의 대상이 됐던 남재준(南在俊) 전 국정원장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있을 때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바 있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그 논리에는 많이 공감하는데, 어떤 장교가 명령을 수행할 때 고민해야 될 게 정당성과 합법성입니다. 군인은 상관이 정당하지 못한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반면에 합법성은 따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아무리 상관의 지시라 하더라도 법에 어긋난다거나, 어떤 법에서 정한 지휘통제 범위를 초월한다면 합법적이지 못한 명령이거든요. 이것에 대해서 군인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합법적이기는 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명령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일단 복종해야겠지만 그 와중에도 고위 장성은 최대한 직언을 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정당하지 못한 요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이 수많은 규범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복잡한 나라가 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함정을 격침시켜야 할지 말지 판단해야 하는 경우에 장교들이 혼란을 겪었단 말이죠. 순수하게 군사적으로 판단했다 하더라도 외부에선 정치적인 의미로 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정당성 논란은 항상 있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군인들한테 일정 정도 재량권을 줄 필요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 군대는 그런 지점이 아니라 주로 합법성 면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합법성과 정당성이 다 결여된 상태로, 말하자면 군대권력의 과잉행사가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또 우리가 군대를 보고 온순해지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독사에게 독을 제거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가 숙제지요. 군대는 국민을 대리해서 안보를 담당하는 일종의 에이전트입니다. 그런데 그런 군이 거꾸로 권력이 돼서 정당성과 합법성 영역까지 다 침범하고 결국 국민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수준까지 간 겁니다. 자기들이 국민에게 고용된 에이전트라는 인식을 가지는 대신 오히려 국민을 통제하려고 한 데서 벌어진 일이죠.

 

이태호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만 문제를 약간 좁힌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헌법도 법률도 명령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명령은 대통령이나 군 지휘부가 하잖아요. 군은 본질적으로 상명하복집단인데 법은 너무 멀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가깝지요. 그러니까 규범적으로는 군이 법의 지배하에 있고 문민통제에 따라야 된다고 하지만 가깝게는 그냥 명령하는 쪽의 이해관계에 동원될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는 거죠. 군부독재같이 극단적인 사례는 물론이거니와 소소하게라도요. 미국도 전쟁선포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실제로 전쟁을 선포해온 건 의회가 아니에요. 군사력 사용 권한은 또 대통령에게 있죠. 위협이 있으니까 군사력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나중에 추인을 받거나, 아 이거는 전쟁을 한다고 추인받을 사안은 아니고 그냥 군사력 사용이었습니다, 그러고 끝나잖아요. 그런 식으로 군에 대한 통제에 본질적인 한계는 없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국회 국방위에서 자료 내놓으라고 한들 군이 제대로 주는 적이 별로 없잖아요. 심지어 방위산업 비리 감사자료도 다 군사기밀이라고 하고. 그렇게 통제받지 않는 집단이라면 당연히 명령을 내리는 군 상층부나 권력집단의 이해관계,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동원될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요?

 

김종대 저는 이런 게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합니다. 사실 더한 군대도 있어요. 인도네시아 군대는 아예 국회 의석을 가졌으니까. 아무튼 군의 정치적 편향은 군이 자꾸 권력화되려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합법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통제를 받으면 이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한국적인 현상을 잘 보면, 세가지 점에서 문민통제가 위배되고 있는데 첫째는 예산통제입니다. 우리 국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산집행계획이 중기국방계획인데, 이게 법에 없는 과정입니다. 중기계획이란 걸 세울 게 아니라 중장기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를 받으면 그만인 건데도요. 법에서 정한 절차를 안 지키는 명분이 군에서 따로 만든 중기국방계획에 따른다는 거지요. 이건 대통령 승인만 받으면 끝나는 문서예요. 그걸 갖고 기재부를 압박하고요. 둘째로, 군은 조직통제도 안 받습니다. 군에서 장교 정원은 어느 법에도 없이 단지 ‘국방조직 및 정원에 관한 통칙’에 한줄 나와 있어요. “국방부장관은 국군의 정원 수준과 군별·계급별 정원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정한다”(제61항). A4 한장에다가 ‘대령 늘리겠습니다’ ‘장군 늘리겠습니다’ 하면 절차가 다 끝나요. 일반 공무원은 행정안전부 통제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증원이 가능한데 군인은 조직과 인력에 대한 통제가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군은 정부의 통제절차에서 열외가 되어 대통령과 직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아주 잘못된 관행이죠. 가장 기본이 되는 예산과 조직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 군사계획이나 작전상황 등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예산과 조직에 대해선 정부뿐 아니라 국회의 통제도 부실합니다. 국회의 국방부 통제는 매년 정책의 맨 마지막 단계, 즉 예산안 의결 단계라든지 어떤 법률안 통과 시점에서야 가능할 뿐 계획수립 단계에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연례안보보고서, 중기국방검토보고서 이런 것들이 다 법정문서로 정해져 있거든요. 미국에서는 연례안보보고서를 의회에 보고하는 주체가 국방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의 군통수권도 국회 승인사항이죠.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이라고 해서 의회는 매 회계연도마다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대통령의 국방통제를 승인한다고 하는 강력한 문민통제 제도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책수립 단계에서부터 촘촘하게 관여할 수 있죠. 셋째로 우리 군은 시민에 의한 통제도 안됩니다. 국민생활에 직결된 각종 인허가, 군사보호구역 지정, 무기 도입시 투명성, 시민단체와 관계된 부분 등등에서 제도화된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현실은 정상적인 국가경영에서 국방이 분리된 섬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결국 한국의 군사제도를 엄밀하게 진단하자면 기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되, 실질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군국주의와 민주주의의 중간쯤 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이 외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건 자기결정권을 갖겠다는 권력지향적 속성 때문인데 그게 군대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일반적인 공조직이 지닌 속성을 초월해버리는 거고요. 그런 초월적인 존재로서 우리 군대는 공공조직 중에서도 유달리 독보적인 권력집단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 겁니다.

 

여석주 말씀 듣다보니 생각이 나는데, 제가 요즘 『언덕 위의 구름』(시바 료오따로오司馬太郞, 1968~72년 산께이신문 연재)이라는 소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러일전쟁을 치른 일본군에 관한 이야기인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요. 대강 요약하면,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군은 국민들이 곤궁한 삶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갹출한 돈으로 전쟁을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뜻을 늘 의식했고, 아울러 국민들은 군이 어떻게 군사력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래서 청일전쟁 때 한 해군함장이 제대로 공격임무를 수행하지 않자 일반 국민들이 그 함장의 집에 몰려가서 돌을 던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1900년대 들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군의 존재가 부각되고 국정에까지 참여하게 되자 군인들이 국민으로부터 재화와 용역을 제공받는 것을 점차 당연하게 여기더라, 그것이 궁극적으로 2차대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국가패망으로 이르게 했다…… 이런 구절이 중간에 나오는데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나라 군인 일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생활관’에서도 생활은 없다

 

이태호 여대표님이 아까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군대의 모습과는 솔직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당장 말부터 사회말이 있고 군대말이 있잖습니까. 요즘 유행하듯이 ‘—했지 말입니다’ 하는 식으로 무조건 ‘다’로 끝내야 되는 이상한 거요.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게 실제로 군에서 중요한 정신이라면 일과 마치고 생활관에 들어가서도 계급 따라 존칭하는 일이 없어야죠. 근무시간엔 그렇다 치더라도 근무외시간에 생활관에 들어오면 작전상황이 다시 도래하기 전까지는 시민으로 대우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지 못한 현실이 전투력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생각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군의 전투력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정책편향도 가져온다고 봅니다. 정치토론은커녕 자기주장을 밝히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요. 이런 전통은 모든 나라 군대에 다 있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때 국민개병제를 하는 과정에서 아직은 국민성이 없이 봉건 농노에 불과하던 사람들을 막 데려다가 ‘너 생각하지 마, 시키는 대로만 해’ 하던 일본군국주의 문화의 잔재 아닌가요?

 

여석주 그렇죠. 한국군대의 출범 당일부터 문제가 된 게 사람은 조선사람인데 옷은 미국 거 갖다 입히고 생활규범은 일본군 것을 가져온 거라고들 하거든요. 그럼 지금 해방된 지 몇년째인데 아직도 그런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 안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제기하신 문제에 적극 동감합니다. 생활관이라는 용어도 원래 내무반이었던 걸 몇년 전에 바꾼 거고요.

 

이태호 내무(內務)라는 말은 업무의 연장이라는 뜻이고, 생활관이라면 업무 끝나고 생활로 돌아왔다는 의미라 개념이 바뀐 건데도요.

 

김종대 제가 2008년도 국정감사 때 육군본부 업무보고자료에서 참 인상적으로 본 구절이 있는데, 장병정신교육의 목적란에다가 ‘입대 전에 사회로부터 오염된 입대장병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국가관을 주입하여 교정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뭐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이태호 말 그대로 뇌를 씻는다는 세뇌(洗腦)네요. 오염됐으니까.

 

김종대 근데 이게 막상 국정감사 날에는 삭제되어 있더라고요. 본인들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런 사고 속에서는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의식이, 아니 그런 말 자체도 군대에는 없어요. 군대가 신봉하는 특수권력관계이론에 따르면 학교, 교도소, 군대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거 군국주의 시절, 특히 독일에서 발전한 이론이거든요. 시민에게 적용되는 것은 일반권력관계입니다. 시민도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게 되면 그에 따르는 불이익이 있잖아요. 경찰에 입건되고 법원에서 처벌받고. 군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규율을 요구할 수 있다고 천명을 하고 그게 기본이 되는 이상 군대는 일반 시민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난 집단이 되죠. 그래서 군대도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며 하나의 직업집단에 불과하다 해서 개발된 말이 바로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용어예요. 단순히 내무반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권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기반으로 모든 게 설계되어 있다보니까 밥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여가시간까지 다 통제대상 아닙니까.

 

이태호 지금 말씀도 그렇고 앞서 군이 독립적인 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취지로 하신 비판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끄덕끄덕하게 되네요. 그런데 군 내부에서는 상당히 다른 태도를 보일 것 같은데요.

 

여석주 군은 아마 관련 규정을 들고 나와서 그러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할 겁니다. 그 규정이 상위 법령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나는 규정대로 했다’고 할 거예요. 가령 예산의 경우라면 국방기획관리제도에 명문화돼 있으니까 본인들은 그걸 따른 거죠.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할 거예요. 그럼 군이 갖고 있는 국방기획관리제도라는 게 상위 법령과 어떻게 충돌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국회가 지적하고 바로잡아야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태호 모든 공무원이 시민적 비판의식을 가지기는 좀 힘들죠. 그 나름의 직업규범 내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까지 비하할 일은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자기통제장치를 갖추기가 더 어렵다는 말씀들로 들립니다.

 

여석주 그런 비판을 들으면 자기의 정당성과 정직성이 공격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어쩌면 군 조직 전체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기사1)를 어제 조선일보가 썼던데요,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겠습니다만. 엄마들이 요즘 군대에 관심이 많다는 내용이에요. 제가 대대장 할 때 부모들이 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군대에 빈 공간도 많은데 와서 아들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웃음) 국민개병제고 어차피 돌아갈 아이들이잖아요. 국민들이 관심을 더 가져줘야 해요. 그동안은 사실 관심을 기울일 통로도 없었거니와 실제 관심 밖이었죠. 군대 가서 맞으면 아버지가 ‘나 때는 안 맞으면 잠이 안 왔다, 인마. 그거 한대 맞은 거 가지고’ 이랬잖아요. 근데 이제 관심이 많아져서 사병들 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김종대 전방에서 자취하는 엄마들 많아요.

 

여석주 행군 나오면 따라오는 아버지도 있어요.(웃음)

 

 

분단체제가 추동하는 군의 정치적 편향성

 

이태호 정치적 편향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시 좀더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한반도가 분단상황인 만큼 군이 대북적개심을 활용해 군의 사기를 고취하려는 면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정치상황을 보면 마찬가지로 그런 쪽을 중시하는 정치적 집단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사회구조하에서는 군이 본능적으로든 구조적으로든 대북관계에 있어 더 강경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정치세력에 더 가까워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곧 이것이 군의 정치적 편향을 가져오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군이 상명하복에 매뉴얼대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보수정부 때는, 특히 북한과 더 대결적인 정권에서는 정부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 많이 했습니다. 반대로 노무현정부 때는 작전통제권 환수 관련해서 집단행동도 서슴지 않았죠. 물론 군을 개혁하려던 정권이니 기득권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여석주 그 집단행동이라는 건 군이 아니라 재향군인단체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했죠. 군에서 그걸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한 사람은 제가 알기론 한명도 없어요. 한국군이 그 정도로 배짱 있는 군대가 아니에요.

 

이태호 물론 명시적으로 반대는 못했겠죠. 행동에 나섰던 분들이 움직일 때 반대로 군 작전통제권 환수하자는 예비역들도 제법 많았다면 그 말씀을 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보기에 그 당시에 예비역 장교들은 대부분 반대했거든요.

 

여석주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이태호 그런 분들은 공개적으로 입장표명을 잘 안했던 거네요? 그렇다면 군 작전통제권 환수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히 나서기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요?

 

여석주 그래서 무서운 거죠, 저쪽은 물불을 안 가리니까. 제가 노무현정부의 군 쪽 담당자한테 한 얘기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군과 민주세력을 대립적으로 보지만 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장병들의 많은 수가 노무현(武鉉) 대통령을 지지했다, 즉 노무현정부는 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출범한 정권이란 생각을 잊지 말아라, 이 정부 주요 구성원들은 군과 자꾸 척지려 하고 군을 반대세력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절대로 아니라고요.

 

김종대 저도 관심사안인데, 보수정권 들어온 이 몇년 사이에 야당에 대한 군의 인식이 굉장히 나빠졌어요. 이걸 아마 쉽게 되돌리지 못할 겁니다. 군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지만 진보 쪽이 너무 그렇게 생각해서는 으레 그 반대쪽에서 불안 내지는 적대감을 가졌어요. 그것이 이명박정부 들어와서는 군인들에게는 마치 야당이 집권하면 우리가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특히 해군의 경우가 그랬죠. 문재인(文在寅) 대표도 그런 분위기를 의식해서 서해 2함대사령부 등에 가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역시나 준비 안된 발언을 많이 했어요. 결국 원래 있을 필요조차 없는 갈등이 점점 더 커진 거죠. 어찌 보면 군이 갖고 있는 정치적 편향성을 당연시하고 수용한 주체는 야권입니다. 그렇더라도 군의 일부 목소리 큰 장군들이나 예비역들의 의견을 군 전체 여론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군대도 묘한 측면이 있거든요. 우리가 사랑해주면 얼마든지 그 이상의 사랑으로 보답하려 하는 잠재력이 보입니다. 군이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복잡한 세계가 존재하고 나름의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태호 그런데 제가 밖에서 느끼기에 노무현정부는 군에 상당히 우호적이었어요. 국방비도 많이 늘렸지요. 이명박정부는 과감하게 삭감했고요. 노무현정부가 국방개혁 노력을 했지만 당시에 제가 매우 불만스러울 정도로 군에 맡겨두고 군 스스로 방안을 가져오라고 자율권을 주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국방개혁에 대한 인식이 군 내에서도 육··공군 사이에 대단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긴 했습니다.

 

 

사회공론장을 붕괴시킨 ‘대내 심리전’

 

이태호 아까 잠깐 언급됐던 국군사이버사령부 얘기로 넘어가보지요. 군인이 안보교육도 담당하지만 요즘은 대내 심리전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심리전이라고 하면 어쨌든 작전 개념 아닙니까. 적을 상대로 하는 건데요. 군이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기존의 안보교육을 포함해 그런 심리전에서 군이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여석주 사이버사령부는 절대로 하면 안되는 반헌법적 행위를 한 겁니다.

 

이태호 대내심리전을 하면 안된다?

 

여석주 안돼죠 절대로. 사이버전의 주요 무대는 북한의 사이버 공간이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의 사이버 공간이 극도로 협소해서 대북 심리전 같은 작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국내 사이버 공간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지만, 이것도 전투력의 일종이라고 볼 때 평시에 자국민에게 전투력을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기본원칙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이태호 북한이 사이버 전쟁을 남한의 사이버 공간에서 벌이기 때문에 여기에 개입해야 된다는 게 군의 논리잖아요.

 

여석주 국내 민간 사이버 영역을 방어하는 것이 사이버사령부의 주된 역할이라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사이버사령부의 기본 역할은 적국의 사이버 공간에서 상급부대 작전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임무와 활동을 수행하는 겁니다. 북한의 사이버부대가 한국 민간 사이버 공간에서 작전한다면 그 원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본연의 임무지, 그 대상인 자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이자, 민간에 대한 군사력 사용 시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종대 제기하신 대로 대내외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군이 그런 댓글을 다는 표면적인 명분은 북한이 남남갈등을 획책하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 종북세력이 반응하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근데 정작 댓글의 내용을 보면 군이 하고 있는 그게 바로 남남갈등을 더 확대하는 꼴이란 말이죠. 그런 점에서 사이버사령부는 북한하고 짝이 잘 맞는 동업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이 똑같은 목적을 지향한 거잖아요. 그게 어디서 또 확인이 되느냐면, 댓글공작의 주요 지침이나 방향을 보면 북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인격모독적이에요. 왜 이렇게 했느냐? 국정원 댓글 공작하고 동일한 목적인데요, 이들은 진보를, 야당을 이기기 위해 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고 그 공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데 일관되게 초점을 맞췄던 거예요. 그 방식이 바로 혐오적이고 인격을 비하하는 언어였던 거고요. 지금 재판받고 있는 국정원의 ‘좌익효수’라는 요원이 상당한 엘리트인데, 국방부에서도 사이버사는 청년들한테 참 선망받는 직장이에요. 고시반까지 있으니까.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저질 댓글이나 쓰고 퍼나르게 한 건데요. 당사자한테도 굉장한 고통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게 그 자체로 공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겁니다.

사이버전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참패한 뒤로 시작됐어요. 사실 그때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생기면서 보수 인터넷언론을 육성하고, 한나라당에서 일명 ‘십알단’으로 대표되는 댓글당도 조직하고, 거기다 국정홍보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자원이 투입되면서 이미 사이버상에서 진보와 보수의 균형은 상당부분 맞춰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인터넷언론 영향력 조사에서 진보 쪽이 9, 보수 쪽이 1이던 게 이런 노력을 통해 보수가 4까지는 따라왔거든요. 그런데다가 어느날부터 공무원들이 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잘해요. 고위공무원 평가에 집어넣으면서 이렇게 된 건데요, 거의 반강제로 해버리니까 초기에는 불평하며 배웠지만 해보니 재미있어요. 그뒤에 정부도 SNS에 직접행위자로 들어왔고요. 상황이 이러니 굳이 국정원이나 사이버사가 동원될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렇다면 왜 사이버사가 그뒤에 등장했느냐? 말했다시피 이건 목적이 조금 달라요. 처음에는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민소통비서관실하고 같은 회의 테이블에 국정원, 기무사도 있었어요. 그런데 국정원과 국방부는 보수—진보 균형은 맞췄지만 결국 진보를 못 이긴다는 내부인식을 갖고 별도의 특별대책으로 빠져나간 겁니다. 아예 온라인 공간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으로요. 그렇게 하면 보수 자신도 무너지는 측면이 사실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혐오의 감정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면서 갈등지수가 높아진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기고 있거든요. 이게 바로 북한이 노리는 거잖아요. 동업자 아니고 뭡니까.

 

이태호 이 댓글공작 사건이 일베 같은 극우주의나 혐오주의의 성장에 일조했고, 사실은 직접적인 관련도 없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요즘 화제인 어버이연합만 해도 청와대, 국정원 관련설이 드러나고 있고요. 저는 박승춘(朴勝椿) 보훈처 장관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고 싶은데 국정원 댓글 사건 때 보훈처도 만만치 않은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관직을 이어오고 있죠. 보훈처도 결국 군과 연관된 정부부서 아닌가요? 근데 그 역할을 보면 그냥 보훈 정도로 끝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김종대 국정원, 사이버사령부는 물론이고 보훈처 같은 행위주체들도 분명히 문제지요. 그런데 어쩌면 지금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퍼뜨린 혐오의 정서가 우리 사회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속성하고 잘 맞아떨어진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까 지금은 당시의 행위자들이 다 사라져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동기제는 그대로 남아서 심지어 확대되고 있어요. 국정원과 군 등에 이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한편으로 세월호사건과 강정마을 등에서 같은 문제가 예외없이 발생하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성찰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주범을 처벌하는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이죠. 범죄행위가 밝혀지고도 방치한 이 몇년은 앞으로 시민 공론의 장에서 매우 뼈아프게 다가올 겁니다.

 

여석주 군사기관은 적과의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인데, 『손자』에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라고 나와 있듯이 싸움의 기본은 적을 속이는 데 있어요. 말하자면 더러운 수단을 쓰도록 요구되는 건데, 그런 걸 자국민을 상대로 하진 말아야죠.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은 그 집단의 몰락을 가져와요. 오늘날 한국군이 그 고생을 하면서도 욕먹는 것도 다 쿠데타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국정원에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도 저 단둥(丹東) 같은 데서 밤잠 안 자고 첩보 수집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의 모든 희생과 노력이 댓글사건 때문에 날아가버린 거잖아요. 정보기관 자체도 마찬가지고.

 

이태호 좋은 말씀들 해주셨는데 그럼에도 결국은 이게 불처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처벌을 안하면 책임 지는 사람이 없어지고 반복되니까요. 지금 세월호 문제만 해도 그렇죠. 사실 법의 지배라는 게 단순히 말하자면 법을 어겼을 때 그것을 분명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사이버사령부 같은 경우에는 군 내부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인데 결국은 군 사법제도의 한계 때문에 거의 빠져나가서 일부만 기소되고, 그 일부마저 군내 재판이다보니까 계속 처벌범위가 줄어드는 식인 것 같아요. 이 점에서 군 사법개혁은 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군 인권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지요. 병영에서 일어난 총기사건 이후 군 사법개혁 문제가 군 인권법 제정과 한쌍으로 거론되었는데 결국 이번에도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정부 때도 실패했는데…… 급물살을 타고 진행된 군 인권법 제정 논의도 노무현정부 시절에 논의되다가 중단된 군 개혁조치 중 하나였지요. 결국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이라는 이름의 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인권’이란 개념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핵심 내용 중 하나였던 ‘군인권보호관’ 제도도 별도의 법에 의해 신설하겠다고 해놓고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근데 군이 인권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싫어하잖아요. 군이 군 인권이라는 개념을 왜 안 받으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군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건지……

 

여석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제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업무인계로 인수위 안보팀과 업무를 봤는데, 병영생활 개혁은 인권 개념 도입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더니, 당시 군에서 가장 깨어 있다고 알려진 선배조차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빨갱이 같은 소리 한다고. 근데 이제는 다시 얘기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신문기사 얘기도 했는데 결국 부모들이 원하는 것도 그거 아니겠어요? 자기 자식의 인권이 보장되는 걸 어떻게 해서든지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는 거잖아요. 인권 개념으로 접근해 군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정곡을 찌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펄쩍 뛰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위기만 잘 맞추면 가능하거든요. 누굴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려는 거니까요.

 

 

한국군 군사력의 현주소는?

 

이태호 군의 특성 중 하나가 계속해서 강한 군대가 되려는 속성입니다. 이것은 결국 군사력 증강 욕구로 나타나는데, 많은 국민들도 강한 군대가 안보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말에 설득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치 군대만 나라를 지키는 것으로, 혹은 군사력과 무기만이 나라를 지키는 수단인 것처럼 사고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요? 평화와 협력도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고 우환을 예방하는 방법인데요. 그러다보니 세상은 결국 힘센 자가 지배한다는 식의 주장이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기도 하고요.

 

여석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병법서의 논리를 딱 네글자로 정리하면 우승열패(優勝)입니다. 나은 자는 이기고 못한 자는 패한다. 근데 이때의 ‘우’가 ‘강()’과 동일한 개념인지는 생각해봐야죠. 미군이 베트남에서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졌듯이. 무기 수준이 훨씬 더 높은 이라크군이 IS(이슬람국가)한테 연전연패한 예도 있고요. 한국군이 좋은 무기체계를 원해서 계속 전세계 최고급 무기를 구매하려 노력하는 게 ‘우’에 근접하는 것이냐에 대해서 전 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호 혹시 군사적인 것 말고 다같이 협동하면 살아남는다는 병법은 없나요?(웃음)

 

여석주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이 군사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국방 안에 외교도 있으니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적국하고 친하게 지내는 겁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죠. 더불어 경제, 사회, 문화 같은 요소가 다 합쳐져서 승수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요.

 

이태호 군이 하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을 쓰길래 그 어원을 찾아보니까 미리미리 대비해서 갈등을 없애면 환란이 없다는 뜻이더군요. 군비를 쟁여놓으면 환란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요. 갈등이 곪을 때까지 두지 말고 대비해놓으면 나중에 충격받을 일이 덜하다는 뜻도 되고요. 4월초 미국의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인 GFP(Global Fire Power)가 발표한 2016 세계 군사력 순위에 따르면 126개 나라 중 한국은 11위, 북한은 26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군은 북한보다 군사력이 우위라는 걸 인정 안하죠?

 

여석주 그때그때 다릅니다. 돈 문제를 얘기할 때는 우리가 열세라 하지요. 무슨 군행사 가면 세계최강의 군함이다 전투기다, 뭐 이러고요. 근데 이건 군의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일례로 냉전 시절 미 국방부에서 발표하던 소련 국방비 규모가 한해 사이에 두배로 늘어난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커진 숫자가 자국 국방예산 증액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국방부가 예산 더 많이 달라고 하는 건 우리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질 거예요. 그 적절한 규모를 정하는 건 군이 아니거든요. 그럼 그걸 누가 하느냐 했을 때 대한민국은 주체가 좀 모호하다는 거죠.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군의 임무고 사명이지만, 신형 외제무기 사오는 걸로 곧 전투력이 증강되리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에 맞게 새로운 방법으로 전쟁 수행을 하는, 워파이팅(war fighting)의 개념을 잡고 그에 맞는 무기체계를 사오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군은 거꾸로 무기가 주도하고 있어요. 그러면 담당 현역 군인이 무기체계를 어디서 보겠어요. 업체보고 가져오라고 그러겠죠. 뭐 좋은 거 없어요? 그러면 업체는 함정은 뭐가 나왔고 항공기는 뭐가 나왔고…… 그러면서 부정도 싹트기 쉽고요.

그럼 그 중요한 워파이팅 개념은 과연 누가 만들 것이냐? 한국의 군··학자 다 모여서 만들어야죠. 근데 이건 사실 말에 그칠 뿐인데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엔 미군이 있단 말이죠. 미군 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으니까 흔히들 전시에만 작전통제하는 줄 아는데 이 사람이 평소에 작전계획을 수립하거든요. 과거에는 2년 정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가랑이가 찢어지기 직전의 수준으로 자꾸 작전계획을 발전시켜요. 그 사람의 눈높이는 미군 전력이니까 우리는 그걸 수행하는 것만도 버거워요. 그러니까 한국군은 작전계획을 수행하려는 데 지금 이만큼 부족하다면서 그걸 채워넣느라고 정신이 없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맞는 전쟁수행 개념을 열심히 만들어봐야 그냥 책상 속으로 들어가고 실제로는 딴 나라 장군이 만들어놓은 계획에 우리는 돈 대면서 계속 쫓아가는 겁니다.

 

이태호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두가지 해주셨습니다. 적정 군사력이라는 것은 군이 아니라 외부에서 설계해야 된다는 것과, 작전통제권이 없는 상황, 특히 현재의 한미동맹이 군비를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씀하신 셈이죠. 그런데 적정 군사력을 군이 스스로 설계하지 않게 해야 한다면, 그전에 도대체 뭐가 위협인지 규정하는 것도 군에만 의존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위협이란 게 뭔지, 그것은 어디서 오고 어느 정도인지를 확실히 해야 우선적으로 필요한 대응태세는 뭐고, 거기에 돈은 얼마를 쓰고, 이런 걸 정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군 내부 말고 좀더 종합적인 관점에서 체크되어야 되는 게 아닙니까?

 

김종대 그게 NSC죠. 이미 장치는 마련돼 있습니다.

 

여석주 작동을 안해서 문제죠.

 

김종대 어쨌든 최소한의 장치가 있으니 그걸 잘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갖추어야죠. 우리가 아무리 국방비를 많이 써도 미국에, 북한에 끌려가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북한은 구닥다리 재래식 무기 갖고도 전략적으로 써먹는데 우리는 최첨단 무기를 갖다놓고도 재래식으로 만들어요.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저쪽의 포와 미사일이 우리가 갖다놓는 값비싼 무기에 대해 전략무기가 돼 있어요. 둘째는, 무기 도입이라는 게 원래 안보를 위해서 하는 건데, 가만히 보면 무기 도입을 위해서 안보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본말이 전도되다보니까 작전에 실패하면 전부 장비 탓을 합니다. 천안함사건(2010) 때 경계 실패한 거 아니냐 하니까 불가항력입니다, 이 쏘나가 원래 어뢰 못 잡는 겁니다, 이래서 다 면책됐어요. 그것 때문에 구조함으로 통영함 들여놨는데 세월호(2014) 때는 왜 이랬느냐니까 이번엔 음파탐지장비가 잘못됐습니다, 그러고. 연평도 포격사건(2010) 때 우리 해병대가 쏜 게 논밭에 많이 떨어졌어요. 포탄 쏠 때 풍속과 날씨에 따라 표적 보정을 해줘야 되는데 그 기상장비가 없어서 안됐다는 겁니다. 얼마 전엔 ‘노크 귀순’2) ‘숙박 귀순’3) 사건이 일어나서 이건 지휘관 잘못이 없느냐니까, 규정대로 잘했는데 감시장비에 아직까지 한계가 있어서…… 이래가지고 또 다 빠져나갔습니다. 그다음에 2014년 연평도 부근에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와서 우리 측이 경고하니까 북한이 발포하면서 저항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합참의장과 2함대 사령관이 격파사격하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우리 유도탄고속함 포에 불발탄이 걸려서 실패했어요. 해군 변명이, 불발탄은 15분 안에 수리하게 해군 규정에 나와 있는데 11분 내에 수리를 했기 때문에 잘했다는 겁니다. 작년 목함지뢰 사건 같은 경우는 거기가 감시의 사각지대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늘상 드나드는 최고로 잘 보이는 통문에서 사건이 터진 건데 이건 하도 할 말이 없으니까 어쨌든 부상자를 데리고 훌륭하게 철수했다는 걸로 영웅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수정권에서 실전과 유사한 군사작전이 예외없이 실패한 이유를 보면 90퍼센트 이상이 장비 탓, 날씨 탓이에요. 실패의 인간적인 요소는 다 배제된 겁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우리 군의 무기 도입이나 장비 유지는 부실덩어리입니다. 게다가 또다른 무기 수요가 등장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하는 게 의미없다고 봐요. 무기 숫자를 말하면 뭐합니까, 있는 무기도 제대로 운용할 줄 모르는 군대가. 앤드류 맥(Andrew Mack)이라는 학자가 연구한 건데 지난 50년간 군사력이 약한 쪽이 이긴 경우가 55퍼센트로 더 많았답니다. 정비태세나 전투의 완전성 같은 측면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꾸 어떤 새로운 무기로 팽창시키려는 업적주의적인 사고로 군이 관리되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군사력은 허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군이 이런 문제를 일제점검해서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도 참 기이한 현상입니다.

 

 

과도한 물량과 거듭되는 비리, 방위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이태호 그런데 한미동맹이 우리 군이 불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도록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면 논란이 계속됐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보십니까?

 

여석주 이건 제 표현인데요, 싸우는 방법에는 부자의 싸움법과 빈자의 싸움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리 부자가 아닌데 세계 최부국인 미국 군대하고 몇십년 붙어 있다보니까 자꾸 부자의 싸움법을 쓰려고 해요. 무협지에 보면 독을 쓰는 사람들이 가끔 나오잖아요. 몇년 수련 안하고도 독으로 엄청난 무공을 가진 사람을 막 제압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평상시에 그 독침 가지고 다니느라고, 그리고 그거에 스스로 안 찔리려고 얼마나 노력하겠어요. 한반도 안보환경을 보면 우리는 그런 싸움법을 갖춰야 되는 나라예요. 근데 부자의 싸움법을 좇다보니까 늘 부족한 게 장비죠. 사드는 더이상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는 무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불안한 심리를 방어하는 무기입니다. 함부로 반대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에요. 기본적으로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 무기체계인데 이걸 반대하면 바로 종북으로 몰립니다. 근데 이걸 갖다놓겠다는 지역주민은 또 어디에도 없어요.

 

김종대 새누리당도 요즘은 사드 얘기 안해요.

 

이태호 사드를 놓겠다는 말로 효과 봤으니까 이제 슬쩍 발을 빼도 되겠죠.

 

김종대 네.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군에 불필요한 무기라는 건 없어요. 전쟁 때는 심지어 돌멩이 하나 몽둥이 하나도 다 써먹을 데가 있어요. 그러니까 다른 군사작전도 있고 방어해야 할 여러 위협이 있는데 이게 더 우선적인 거냐? 이렇게 접근해야 합리적이죠. 사드가 있으면 하다못해 항공기 요격이나 레이더로 공중을 감시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게 수반하는 다른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또 지금 우리가 전쟁에서의 승패를 가를 가장 결정적인 작전이 뭐냐를 고민할 때거든요. 사드로 미사일 방어한다고 하면 앞에서 항공작전 못하잖아요. 개전 초에 가장 중요한 게 항공작전인데 다 비켜야 될 거 아닙니까. 심지어 군내에서도 지금 무기체계끼리 중첩돼서 가령 육군이 지상전 수행하는데 해·공군이 방해되니까 비키라는 식이에요. 그러다보면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짐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죠.

 

이태호 군은 무기를 계속 더 가지고 싶어하고, 정부에는 그걸 견제할 장치가 없고, 거기다 무기를 만들거나 수입하는 사람들이 맨날 쇼핑리스트를 가지고 와서 이 무기도 좋고 저 무기도 있으면 좋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계속 무기를 구매하는 싸이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말 나온 김에 방위산업 이야기로 나아가도 좋겠는데, 최근에 방위산업 비리도 있었습니다만, 무기를 구매하는 것의 타당성, 구매 이후의 효과성, 그리고 그걸 생산하는 업체의 지속 가능성 같은 문제에 별로 성찰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종대 방산비리와 관련해 지금 벌어진 참상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된다고 봅니다. 무기중개상의 로비에 걸려들었던 건 과거에도 90년대에 린다 김 사건이나 율곡비리 때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걸 촉발시킨 계기가 달라요. 지금 방산비리가 사업비 규모로 1조원이 넘어갔고 해당 장비 매입가만 2천억원이 넘는데 그 개별 건을 보면 명확히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내 연구개발하던 걸 멈추고 외국 구매로 바꿔라, 이 회사에서 하던 걸 저 회사로 바꿔라, 중기계획에 원래 없던 무기인데 지금 연평도 포격사건 일어나고 안보위기니까 급히 갖다놔라, 이런 정치적 결정이 난무하는 겁니다. 비리는 백퍼센트 이런 사업에서 일어났어요.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해상작전헬기, 통영함 같은 게 다 그랬지요. 기존 정책이 흔들리면 한탕주의 세력이 끼어들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예산은 반토막 났지, 빨리 사라고 그러지, 어떻게 정책적인 능력이 발휘되겠어요. 정보를 갖고 있는 무기중개상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조성됩니다. 적절한 예산이 편성되고 몇년에 걸친 타당성 검토 거쳐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큰 비리가 나올 게 없죠. 제가 보기엔 군이라고 해서 특별히 부패한 게 아닙니다. 근래 방산비리가 보수정권에 다 몰려 있거든요. 지금까지 발표되기로는 전부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저질러졌어요. 그 시기가 바로 안보위기 국면에서 예산이 난도질되던 때입니다. 도입선이 바뀌고 청와대가 무기구매에 직접 개입하는 이 와중에 누가 힘을 발휘하겠어요? 정보력과 대안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할 수 있는 판이 열린 거예요. 이런 사태를 막고 싶으면 간단해요.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비용을 정하고 앞뒤가 맞게 체계적으로 사업관리를 하면 비리는 자연히 줄어듭니다. 그런데 보수정권이 이런 원인 자체를 진단 못하고 있어요.

 

이태호 이명박정부의 방산비리가 어떤 원인에서 나타났는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 정리해주셨네요. 그런데 그러면 국산개발로 수십년 동안 쭉 해오던 사업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 걸까요? 예를 들어서 탱크 사업은 국산개발사업으로 추진한 지가 30년도 넘는데 매번 개발단가를 속이거나 부품가격을 뻥튀기하거나 불량품을 납품하는 등의 문제가 계속 터져나오잖아요. 오히려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면서 국산개발에 특혜를 주고, 전문화·계열화해서 사실상 독점을 보장하고……

 

김종대 주요사업은 대부분 경쟁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이태호 전문화·계열화는 아직 남아 있죠. 예를 들어 한국형 헬기 사업의 경우에 경제성이 없다는 전문연구기관의 평가가 나왔는데도 무리하게 시작한 것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추측이 무성했죠. 헬기 개발사업을 왜 KAI하고만 하려 한 걸까요? 이 사업에 대한항공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헬기는 원래 대한항공에 더 전문성이 있는데도요. 이건 사실 IMF 때 도산위기에 놓인 항공산업 업체들을 국가 주도로 합병해 만든 KAI물량 줘야 되니까 그런 거죠. 지금 국산개발업체라는 게 정부로부터 조립물량 받아 공장 돌리려고 도리어 외국에서 기술이전 받는 것도 꺼려합니다. 부품소재산업에 투자하지도 않고 그럴 여력도 없어서 발전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고요. KAI만 하더라도, 전세계에 고정익(비행기)과 회전익(헬기)을 동시에 개발하고 생산하는 업체가 드물거든요. 둘 중 하나만 집중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항공산업 환경 때문인데, 고정익 하나도 신통치 않은 KAI가 경제적 타당성도 모호한 헬기 사업에 뛰어든 것은 정부가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독점적 특혜를 주는 상황을 배제하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래서 항공산업이 육성되기는 하느냐는 거지요. 거대화되고 여러 나라 업체들이 제휴하는 판인데. 지금 불필요한 수주를 주고받는 면은 없는 건가요?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구조 자체에 이렇게 예산을 방만하게 쓰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국내 방산업 붕괴를 가져온 보수정권

 

여석주 국방예산의 방만한 집행 부분은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개발한 자주포나 전차도 세계 최고 명품 무기라고는 하지만, 업체에 생산물량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각 부대의 전장환경이나 전시임무에 적합하지 않음에도 과도하게 보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악지역에서 전통적 보병작전을 수행할 부대에 그러한 무기체계를 보급하는 것은 각 기능별 전투력 발휘에 균형성을 깨기도 하고, 야전부대의 정비지원 능력 초과로 인해 전시 임무수행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종대 보수정부는 처음부터 국내 방산업체의 부실 내지 비리를 의심했어요. 특히 이명박정부가 큰 불신을 가져서 외국으로 도입선을 다 바꾼 겁니다. 지금도 사실 L-SAM(장거리지대공미사일) 개발하고 있는데 사드에 더 미쳐 있잖아요.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 도입선을 닥치는 대로 외국으로 바꾼 게 다 방산비리가 됐는데요. 국내 방산업에서는 그런 류의 비리보다는 부실의 문제가 전면화된 겁니다. 업체들이 개발한다고 시간 많이 끌지 돈 많이 잡아먹지, 그러니까 정부가 업체에 ‘갑질’하면서 납품단가를 반값으로 후려치고, 가혹하게 지체상금을 물렸습니다. 그러면서 사업비를 일률적으로 삼사십 퍼센트 다 깎았어요. 그러니까 업체는 그 원가를 맞추기 위해서 신종 비리에 가까운 방안을 고안하기도 하고, 불량무기를 마치 완성된 무기인 것처럼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서 야전에 배치한 결과 대규모 리콜이 발생했죠. 너무 무리하게 추진한 계획이 야전으로부터 저항을 가져온 거예요. 그러면 다시 불신하게 되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국내 방산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정권이 등장하니까 실적을 빨리빨리 내놔야 했을 겁니다. 개발 안된 것도 마치 된 것처럼 해서 자기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거예요. 이런 문제가 대참사를 초래할지 모릅니다. K11 소총부터 시작해서 K21 장갑차, 흑표전차…… 말썽 안 난 무기가 없잖아요.

 

이태호 이명박정부의 일반적 특징을 잘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 정권이 그렇게 한 것은 노무현정부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지만, 대통령이 토목기업가 출신으로서 스스로의 비리 경험도 많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이합집산하는 유착의 고리도 잘 알고 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형 토목사업이나 국가사업을 벌이고, 도입선을 바꾼다든가 공기업 또는 그에 준하는 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강행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당 사업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했던 거죠. 그러다보니 친인척 비리나 예산 낭비 사례도 급증했고요. 말하자면 여기가 새로운 빨대 꽂을 데다 싶으면 다 개입한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相得)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준양(鄭俊陽) 전 포스코그룹 회장 등이 연루된 포스코 비리 사건,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인 이석채(錫采) 회장과 관련된 KT 비리가 그 대표적인 사례고, 4대강사업이나 자원외교사업도 예산 낭비와 각종 비리로 얼룩지게 되었죠. 그러니 국방도 예전에 하던 것들 다 도입선 바꾸거나 갑질해가지고 비리, 부실 만들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위산업의 좀더 구조적인 문제는, 망할 기업은 그냥 도산시켜야 되는 게 아니냐는 거예요. 이런 기업에 여러 특혜를 주면서 그대로 두는 게 전체적으로 우리 방위산업의 생태계를 왜곡시키는 것 아닐까요?

 

김종대 그건 오해라고 봅니다. 외국업체가 갑질하는 동안에 국내업체는 거의 서자 취급을 받았어요. DJ·노무현정권 때 잘한 게 연구개발비를 늘렸다는 겁니다. 그걸 특혜라고 봐도 돼요. 그런데 그 성과는 뒤에 나오게 돼 있었거든요. MB정부가 출범해서 국내 방산의 연구개발 기반을 다 와해시켜버렸어요. 록히드마틴, 보잉 등 특혜받은 외국기업이 줄줄이 있는데, 그로 인한 비용을 국내 방산에다 전가해버린 것이죠. 국내업체 입장에서는 방산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수가 있었을 텐데요, 실제로 삼성이 방산업에서 완전히 손뗐거든요. 근데 다른 대기업들 경우에는 다른 데서 돈 많이 벌면서 방산은 안한다고 하면 찍힐까봐 털어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눈치만 보면서 지내왔던 거예요. 재래식 지상장비 같은 경우는 그래도 아직 물량이 맞춰지니까 그럭저럭 해왔지만 사실 이미 국내 방산은 과거 DJ·노무현정권 때 비하면 거의 초토화 수준이라고 봐도 돼요.

 

이태호 그럼 지금 국방부가 얘기하는 내용들, 방산수출 늘고 있고 미래성장동력이 되고, 이런 것들은……

 

김종대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수출이 그렇게 많이 늘었다면 왜 방산업체 주가가 떨어지고 있겠어요?

 

여석주 과거의 노력이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 거죠. 문제는 내일의 실적이 안 나온다는 거고.

 

이태호 저는 방위산업과 군이 공생관계가 됨으로써 전체적으로 군비증강을 야기하거나 부실 방산업이 좀비 형태로 유지되는 악순환 고리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김종대 지금 군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차적인 관건은 소요(所要)의 문제입니다. 거기에서 문제점을 잡아내지 않으면 부실이건 비리건 막을 수가 없어요. 일단 소요가 너무 방만하게 늘어나 있어요. 그 비용이 감당 안되니까 대금을 마구 후려치면서 부실을 낳게 되고요. 방산비리 수사도 소요 결정을 누가 했는지부터 밝혀야 해요. 그러지 않고 계속 실무자들만 터니까 재판 가서 반 이상 무죄 나오고 있습니다.

 

이태호 위협 분석하고 전략 결정하면 소요가 나오지 않습니까. 이걸 그냥 군 내부에만 맡겨둬서 민주적 의미의 통제가 안되고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김종대 오히려 정권이 한술 더 떴죠. 문민통제가 너무 잘됐어요.(웃음) 대통령이 이거 사 저거 사 이러면서 자꾸 쪼는데 군인들이야 그럼 당연히 쇼핑리스트 가져갈 것이고요. 여기에 무기중개상이 가세해서 우리 국방계획을 완전히 갖고 놀았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지나친 영향력 행사

 

이태호 무기체계의 비리도 있지만, 군내의 기본적인 것들도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요새 보도도 나오면서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침대, 방탄복 도입 같은 게 제대로 안됐다는 문제거든요. 일반인들은 이런 부분에서 바로 반응하게 되지요. 여대표님이 보시기에 어떤가요?

 

여석주 많은 한국 남성이 군을 부패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부패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소한 것입니다. 가령 건빵을 한봉지 줬어야 되는데 반봉만 줬다거나 하는 부분이에요. 일반 사회에서야 다이어트 열풍도 있지만, 병으로 복무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그런 일상생활과 관련된 데서 나오는 부패는 액수로는 미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군 이미지에 엄청나게 큰 타격입니다. 근데 사실 이런 건 군이 부패한 게 아니죠. 상행위에서 그걸 먹은 사람, 군에 관련된 사람에게서 부패가 발생한 거잖아요. 물론 파급효과를 봤을 때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만.

 

김종대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재향군인회 연금 비리를 보면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에 불량 방탄복 사건이 있었죠. 총알이 관통한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통탄복이지 어떻게 방탄복이에요? 통탄할 일입니다. 군에서 이런 문제를 척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건 사실 아닌가 합니다. 국가안보를 한다는 면에서 스스로 도덕적 문제는 이미 해결돼 있다고 생각들 하는 것 같아요. 재향군인회는 군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맨날 군부대에 전화하는 게 그 사람들이거든요. 골프장 예약해라, 행사 하나 하는데 군부대 지휘관 나와서 인사해라, 연구용역 달라, 뭘 납품하게 해달라…… 현역들이 거기에 꼼짝 못해요. 현역의 미래는 예비역이거든요. 군인들이 이런 걸 모방하면서, 권력이 커짐에 따라 더욱 도덕적으로 무장되어야 할 위치에 있는 분들이 오히려 그게 해제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었다고 봅니다. 안보가 중요하다고 하는 보수정권 들어서 도덕성 문제까지도 다시 악화된 측면이 있어요. 지휘관들이 저지르는 성폭력이라든가 각종 부당한 행위를 보더라도 근자에 들어서 군이 사회를 무서워할 줄 모르고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된 것을 스스로 소비하고 즐기는 부분이 있다면 경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이태호 군에서 한동안 군인들이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주눅들어서 사기가 저하되는 것은 물론 아무도 군인을 안하려 한다고 엄살 피운 적이 있었죠.

 

김종대 요즘 보면 군이 애국심을 명분으로 일선 학교에 안보교육을 나가요. 툭하면 부모들 집합시켜서 지휘관이 일장 강연하는데, 이렇게 상당히 주제넘은 일들이 많아졌어요.

 

이태호 군에서 학생들 불러다가 사격훈련도 시키더라고요. 놀랐어요.

 

김종대 학생들 입영캠프도 하고 부모도 불러요. 거기서 말하길 아이들(병사들) 요즘 보급품 못 주는 이유가 종북세력 때문이랍니다. 복지를 하도 주장해서 보급품도 못 나간다고 강연하더라는 거예요. 예비군 교육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과거엔 통제받던 어떤 장치에 지금 나사가 풀려 있어요. 일반 국민에게 뭘 해도 된다는 선민의식이 확대되다보니까 도덕적인 해이가 발생하고 결국 비리로 연결되는 면이 제가 보기엔 있다는 거예요.

 

이태호 군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 안보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전문가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런데도 이분들이 이수 프로그램도 받지 않은 채로 시민들에게 평화나 안보에 대해서 교육할 수 있는 주체로 간주된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여석주 제가 밖에 나와서 사업하면서 느끼는 건데, 군 출신들이 두 부류더라고요. 밖에 나가서도 청렴하게 사는 사람과, 돈에 대한 관념이 민간인보다 더 불분명한 사람. 군에서는 공사(公私) 구분을 명확하게 하라는 말은 어쨌든 듣고 살잖아요. 밖에 나오면 공사가 따로 없는 줄 알아요. 재향군인회도 제가 보기에 규율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에 눈에 보이는 돈은 다 자기들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이태호 박근혜정부조차 세월호 이후에 ‘관피아’ 척결을 얘기했는데, 한국에서는 역시 전관예우 문제가 있습니다. 재향군인회가 물론 그렇고, 방산업의 문제도 그와 연관이 있는데 현직에서 무기 구매하던 사람들 대다수가 방위산업체에 갑니다. 물론 직업적인 것 때문에 어느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공직윤리법상의 규정도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아요. 예비역 문제도 비슷하죠. 김종대 의원님이 자주 제기하시는 문제 중 하나가 예비군 부대가 완편(完編) 사단도 아니면서 너무 많다는 거잖습니까. 사병은 별로 없고 장교는 또 너무 많고. 앞서 얘기한 무기 소요 문제에도 크게 영향을 주죠. 장교를 먹여살리기 위한 여러 구조가 기득권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정말 이런 구조가 필요한 건지 의문이 듭니다.

 

 

임계점을 넘어선 징집률과 과도한 장교 수

 

이태호 우리 병사 수가 지금 그나마 줄어서 63만이라 하더라고요. 노무현정부도, 박근혜정부도 장기적으로는 50~55만 정도로 줄여야 된다고 합니다. 계속 못 줄이고 있지만 아무튼 50만이라는 숫자도 그렇게까지 필요하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종대 정책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63만 중에 지금 44만이 병사입니다. 병사 위주 조직이죠. 그런데 징집률을 보면 80년대에 평균 51퍼센트였던 것이 지금은 87퍼센트입니다. 중증장애인 빼고는 다 간다는 얘기예요. 이런 사람이 군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2016년 현재 21세 남자 인구가 36만명인데 3년 후부터 본격적인 인구절벽이 시작돼서 2022년에 11만명이 줄어들어요. 2025년경이 되면 복무기간을 왕창 늘리지 않는 이상 50만 군대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63만을 유지하는 이 와중에도 도저히 군대생활 못할 애들을 다 집어넣는데, 사실 적정 징집률의 레드라인이 76퍼센트예요. 여기서 1~2퍼센트만 더 올라가도 부적응자까지 군이 수용해야 되는 건데 지금 90퍼센트 가까이 육박했다? 군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군내 부적응자를 위해 운영하는 그린캠프에 연간 삼천명이 입소합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를 이제는 자대에 못 돌려보냅니다. 과거에는 1~2주만 있다 돌려보냈거든요. 지금은 거기서 제대해야 해요. 아니면 병원으로 빙빙 돌린다든가, 각종 명목으로 부대생활에서 격리시킵니다. 상당히 많은 부대가 하부에서 붕괴되고 있어요. 지휘관, 병사, 부모가 똘똘 뭉쳐서 사고예방만 해야 간신히 유지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군도 피해자일지 모릅니다. 전투력 발전시키는 데 써야 할 시간 대부분을 부대관리에 쏟고 있거든요. 원래 예정됐던 국방개혁을 시급히 단행해서 3년 후부터 시작될 인구절벽 시대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걸 안해놓은 결과가 다음 정부 때는 거대한 재난으로 닥칠 겁니다. 부대 구조조정이라든가 병력감축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는 이 정부 끝날 때까지 전혀 없다는 얘기거든요. 이건 보수정권이 안보를 망치는 기만적인 행태입니다. 보수가 앞장서서 대응했어야 함에도 오히려 회피하고 안주했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이태호 좀더 구체적으로 여쭤보면, 우리나라 적정 장교 수, 장성 수는 몇이라고 보세요?

 

김종대 그런 문제는 역시 군대가 어떻게 싸울 것이냐에 따라 결정돼요. 이걸 정하면 거기에 맞는 조직이 나오고 그 조직에 맞는 인력이 산출되고 그에 맞는 인사가 따르는 겁니다. 이게 정상적인 절차예요. 근데 지금 우리는 적체된 장교들을 진급시켜야 한다는 인사상 요구가 인력정책을 흔들어놔요. 그 인력정책이 조직정책을 왜곡시키고 그것이 싸우는 방법에도 악영향을 줬어요. 8·18군제개편계획(1988)이란 게 있었는데 복지와 민주주의가 발전한 1980년대 이후에 작고 경쾌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걸 표명했어요. 그 정신으로만 되돌아갔어도, 아예 지금 그걸 그대로 도입해서 개혁한다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지금 430여명의 장성, 3000여명의 대령이 있어요. 장군들을 휴전선에 일렬로 세우면 대략 500미터당 한명씩 깔려요. 그리고 합참으로부터 야전 말단 작전부대까지 지휘계통에 간섭할 수 있는 별 숫자가 백개가 넘습니다. 지휘단계가 6단계로 되어 있고요. 이 과도한 시스템을 유지하려니 낭비가 너무 많아요. 서울에서 평양까지 전투기 전속력으로 날아가면 2분도 안 걸리는 이 좁은 나라에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지휘체계와 방만한 인력을 다 박아놨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야전에 가면 싸울 사람은 모자라는데 뒤에서 지시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그다음에 사령부의 난립. 수송이나 지휘통신이 참모 기능이지 어떻게 사령부입니까. 다 자기가 지휘권자라고 사령부를 난립시켰어요. 이런 식의 부대구조가 인력을 과도하게 팽창시킨 주범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인력을 줄이는 건 나중 문제고, 우선 부대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꾸는 게 1순위입니다. 육군에 그 남아도는 고위장교들 때문에 1군—3군 통합이 몇년째 지연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지금보다 대폭 간소화된 부대구조에 맞는 인력체계, 그게 적정선이에요. 그리고 이미 판단은 다 끝나 있습니다. 실행에 옮기지 않을 뿐이지.

 

여석주 저도 일반적으로 동의하고요.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5·16 때 ‘반혁명’으로 몰려서 미국에 망명한 김응수라는 장군이 1957년도엔가 국방부 작전 쪽 국장으로 있으면서 한국군을 20만으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했다고 하거든요. 굉장히 불안했을 시대였는데도요. 저도 규모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는데 어쩌면 감군은 인구가 줄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아요.

 

이태호 제가 알기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장교가 27천~37천명 정도더라고요. 우리는 72천명이지요? 영국은 90년대 국방개혁 과정에서 장교 수를 20퍼센트 줄였어요. 미국은 30퍼센트 줄였고. 이 나라들은 하나같이 90년대에 전체 병력도 35퍼센트 내외 삭감했습니다. 근데 미군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군, 프랑스군, 영국군을 약체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한국은 90년대 이후 장교 수가 도리어 500명 정도 늘었고, 병력도 줄인다고 했지만 지난 20여년간 겨우 4만여명 삭감하는 데 그쳤습니다. 장교와 사병 수를 줄이고 부사관 비중을 늘리면 전투력 손실도 별로 없고 국방비도 크게 줄일 수 있을 텐데요.

 

여석주 그렇죠. 우리나라에 장교가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장교단이 본연의 역할 외에 부대관리에 지나치게 매여 있다는 점이에요. 그 첫째 이유는 부사관 계층이 허약해서입니다. 부사관이 해줘야 될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못해주니까 결국 자꾸 장교를 갖다 앉히는 거거든요. 병사관리 같은 건 장교들이 할 일이 아닌데 전부 거기에 매달려 있어요. 맨날 중대 안에 앉아가지고 휴가자들한테 전화 돌리고…… 전 국민이 국졸 수준이던 창군 초기에 그나마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 중졸 학력을 하사관 지원자격으로 뒀어요. 그러다가 다들 중학교는 졸업하니까 고졸로 지원자격을 올렸고요. 그런데 지금도 자격이 고졸 아닙니까. 부사관이 병사보다 뭐라도 하나 더 있어야 되는데 지금 부사관들은 계급만 높지 나이도 어리고 학력도 낮고 사는 것도 못한 실정이니 그냥 병 옆에 있는 하나의 계층이 되어버린 거예요. 미군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장교단이 두뇌고 사병은 손발이고 부사관이 등뼈, 허리라는 거예요. 한국군은 이 허리가 부실하니까 가만히 있을 때는 멀쩡한 것 같은데 막상 움직이려면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모병제로 가기 전에 해야 될 일은 부사관 계층을 튼튼하게 다지는 건데, 그 기본은 병 생활을 마친 사람을 하사로 선발하는 겁니다. 지금처럼 몇개월 해보니 똘똘하다고 데려가는 게 아니라 병 생활을 다 마친 경험 있고 검증된 인력이 필요합니다.

 

이태호 유급지원병 제도4)라는 게 그런 개념 아닙니까?

 

여석주 근데 유급병제를 해놓으니까 우수인력의 확보라는 본연의 목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사회에 나가도 별 볼일 없으니 붙어 있는 걸로 후임병들에게 손가락질받는다는 거예요. 방향을 유급병제로 가지 말았어야 돼요. 그 돈을 가지고 부사관들 급여든 처우든 개선해서 병들이 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을 하게 했어야죠. 그런 부사관 하나만 있으면 경험 없는 초급장교보다 부대를 훨씬 더 잘 관리하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이태호 우리 사병 월급이 얼마 안되는 것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기준으로 잡는 상병이 178천원이라고 해요. 시민단체에서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병력 조금 줄이고 복무기간도 줄이면 당장에라도 100만원 줄 수 있을 것 같아요.5) 장교 수 좀 줄이고 그에 따라 부대 줄이고 하면 예산이 더 추가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석주 그런데 월급을 더 준다고 병들의 생활이 나아지나요? 물론 급여가 너무 낮은 것 자체는 문제지만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태호 저의 초점은 군복무기간을 파격적으로 줄이자는 겁니다. 12개월 정도로. 보통 징병제 국가는, 유럽에서도 12개월 내외잖아요.

 

여석주 의무복무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합니다만, 현재 운영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복무기간만 반으로 줄인다면 전체 병력규모도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실현성이 매우 낮습니다. 현대전의 양상이나 현재 한국군의 무기체계 등을 고려할 때 의무복무하는 병들을 중심으로 부대를 편성하고 현대화 장비를 운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저도 한 6개월 정도 훈련받고 6개월 정도는 이런 게 군생활이라는 걸 체험하는 정도로 하고 내보내는 게 옳다고 봅니다. 가령 전방경계 부문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이 인력 위주가 아니라 과학화 개념을 적용한 전문 경비부대라든지, 좋은 연구가 이미 많이 나와 있거든요. 아주 파격적인 얘기지만 요즘 나이 오십에 은퇴한 사람들 많잖아요. 이런 분들 대상으로 DMZ(비무장지대) 전문 경계인력을 충원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적 능력과 체력적 능력이 인생 최고도인 이십대들을 간첩 지킨다고 묶어놓으면 안돼요. 그리고 세계 최강의 K9, 흑표전차 같은 수십억짜리 장비를 2년도 근무 안하는 월급 17만원 받는 사람들이 조종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굴러가고는 있지만 수십억짜리 장비의 수명에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헬기 500MD 같은 건 반값도 안하는데 장교나 준사관 두명이 조종하면서. 이런 거 다 바꿔야죠. 최소한 부사관이 전문성을 갖고 하는 걸로.

 

김종대 이게 삼십년 가까이 나오는 얘긴데 안 바뀌고 있어요. 우선 일선 전투원들의 생명가치가 너무 저평가되어 있는 게 문제입니다. 그걸 전제로 모든 군대조직이 설계되어 있으니까 군대가 전문가집단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싸우는 방식도 많이 죽이고 많이 죽는, 현대전에서 다 사라진 재래식 교리들이잖아요. 목숨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느껴야 낭비를 안하는데, 병력이 모자라다 그러지만 제가 보기엔 아직도 유휴병력이 있거든요. 생명가치를 높이면 이 귀한 자원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나 고민하겠죠. 군 운영 선진화의 동력을 포착할 수 있는 시대적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이태호 군은 늘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군을 주체로 만들어줘야 한다, 군 사기를 고려해야 된다고 하거든요. 근데 국방개혁이 결국은 같은 논리에 따라서 좌절돼요. 군 스스로 하게 해야 된다, 그럼 문제들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다가 결국은 기득권에 따라 결정되죠. 가령 육··공군 간에 육군이 이기고 끝나는 식으로. 여태까지 이렇게 되어온 거 아닌가요?

 

김종대 패권적인 운영체계가 있었죠. 군이 문민통제에서 많이 벗어난 폐해가 여기에도 미치는 겁니다. 국방의 주주이자 고객은 누가 뭐래도 주권자인 시민이잖아요. 군이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 예외집단으로 빠지다보니 전반적으로 매우 문란하게 운영되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제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군 스스로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겁니다.

 

 

군 개혁의 동력을 어디서 찾을까

 

이태호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내년에 대선이 있지 않습니까. 선거 때는 군 관련한 얘기도 나오게 되는데 사람들한테 가장 피부로 다가오는 이슈는 역시 복무기간, 그리고 모병제인 것 같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와 그밖에 내년 대선에서 군 문제와 관련해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종대 이번 총선에서 제가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게 바로 군문제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복무기간 문제로 접근했죠. 일단 선거 때 빠질 수 없는 얘기니까. 그런데 복무기간 논의에 치중하기에는 청년들의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고졸자의 입대 대기기간이 평균 24개월입니다. 그 기간에 누가 취업을 시켜주겠어요. 거의 다 사회적 잉여로 전락합니다. 그다음에 제일 짧은 육군 기준 21개월 군생활하고, 제대해서 취업할 때까지 또 31개월입니다. 다 합하면 76개월이죠. 군복무로 인한 희생과 사회적 질곡이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절반으로 줄이는 게 가능한가를 생각해야지 군복무 단축 아무리 공약 내도 3개월입니다. 전체를 줄여주지 않으면 대학 진학한 사람들하고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거죠. 영원히 못 따라잡아요. 청년들의 일자리정책, 병역정책, 교육정책 이 세개가 다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생애주기 공약이 나와야 하고 거기에 군이 협조하라고 요구해야 되는 거죠. 복무기간 단축만 갖고 재미보겠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포퓰리즘입니다.

 

여석주 아까 12개월 얘기했는데 그게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군생활을 하는 집단과, 훈련 및 경험하는 수준의 예비자원으로 이원화돼야 해요. 저는 대통령 될 사람이 자기가 구현할 안보전략의 대강을 대선 과정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방개혁도 취임 전에 그 줄기를 완성시켜놔야 할 수 있지, 매번 명확한 전략 없이 그냥 취임하고 나서 국방부에 국방개혁위원회 출범시키면 그 사람들만 좋아요. 한 3년 대충 보내다가 레임덕 오면 찾지도 않으니까 보고용 계획만 만들다 나가거든요. 이번 정부는 그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제가 대통령이면 이렇게 하고 싶어요. 국방부장관 하고 싶은 사람은 국방개혁안 들고 나한테 찾아와라, 그렇게 해서 임명된 국방부장관은 사소한 걸로 자르는 일 없으니 나와 같은 5년 임기 동안에 국방개혁만 하라고요. 합참의장도 현역 중에 어떤 식으로 군사력 운용할지 안을 가져오라고 한 다음에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구현할 만한 사람을 임명해서 5년 끌고 가야 된다고 봅니다. 굳이 미국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의 합참의장 같은 임명직 임기를 보면 대체로 그런 식입니다. 사관학교 기수 같은 거 고려하지 말고 자신의 통치철학을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군령의 전문가, 군정의 전문가를 임명하기를 저는 다음 대통령한테 바랍니다.

 

이태호 저는 어쨌든 군 개혁의 동력은 밖에서부터 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볼 때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이 청년들 하나하나가 다 가정에서 굉장히 귀한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청년들을 징집해가려고 하면 정당한 댓가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현실화하는 거죠. 적어도 시민사회는 그 얘기를 먼저 던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4.26. 창비서교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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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대장님, 우리 아들 삽질 그만 시키세요”: 군대도 ‘헬리콥터 맘’은 못 말려」, 『조선일보』 2016.4.25.

2) 2012년 북한군 병사 한명이 철책을 넘어 한국군 GP(휴전선 경계초소)를 통과해 GOP(소대 단위의 일반 전초) 생활관 문을 두드리며 귀순의사를 밝힌 사건.

3) 2015년 북한군 병사 한명이 한국군 GP 전방 5미터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철책을 흔들어 발견된 사건.

4) 병 복무기간 단축에 대비해 숙련·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2008년 도입된 제도로, 현역 복무 중 지원해 하사로 최대 18개월까지 연장 복무하는 유형과 입대 전에 지원해 병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하사로 임관해 총 3년을 복무하는 유형이 있다.

5) 이태호 「군복무 1년, 사병월급 100만원… 당장 가능」, 『오마이뉴스』 2016.4.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