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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 특집
주하림 朱夏林
2009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wngkfla@hanmail.net
척chuck
—사랑했으나 그것이 더러 사랑할 시간들을 촉박하게 만들며
완전한 소멸을 꿈꾸던 날들 준Joon…… 너는 지저분하게 죽었지
눈썹을 치켜올리며 떠났어 그쯤 너는 서지도 않았어 좆같은 심정
담뱃불을 끄고 너를 지저분하게 죽였어…… 대신 너의 빈손에
문병이나 오고 문병에 대해 이야기하자 완성에 골몰하면서 반성은 모르는 너에게
네가 변하는 순간 어쩌면 나는 그때 죽었지
난 산 사람처럼 살지 못했고 죽은 자들처럼 태연하지 못했다
(달은 멈추고 너는 잠시 머물러, 잃어버린 춤을 춘다)
네가 사랑이었다면 나는 더 고통스러워야 했다
운명이니 전쟁이니
낭만적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너는 수긍하거나 응시해야 했다
(달은 춤추고, 너는 떠나며 알고 있던 춤들을 버린다)
약을 발라도 낫지 않는 상처들은
전생에 실패한 사랑이거나
죽겠다고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목을 매달며
서럽게 울던 애인의 터진 실핏줄
우리가 서운하다는 것보다 서럽다는 것에 동의했을 때
그래줬으면 하는 내 마음 온통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차지하고 있는 너를 도려냈어야 했다
삶은 꿈꿀수록 작아지는 것이고 함께라는 사실을 버릴 때 고독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귀환한단 것을 깨닫는다 완성이 아닌 부서져가는 것들에게
(실은 달빛에 한번도 취해본 적 없는데)
창살은 아름다운 웃음소리마저 거두어가는데
네가 발견한 것들은 왜 내게 발견이 되지 못했을까
병동일지902
병원에 온 지 두달.
병원에 와서, 병원 오기 전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고
고백해본다 내가 태어난 곳은 똥물
종종 고향을 뒤집어쓰고 이방인들 대화를 엿듣는다
뒤집어쓴 똥물이 똥물이 될 때까지 가을풍이 여름풍이 될 때까지
우주가 산수가 될 때까지 추론이 귀납이 될 때까지 면회가 폭력으로 바뀔 때까지의 날들, 사는 것이 죽는 것으로 넘어갈 때
일부러 힘을 빼고 걷는다
밤마다 옆 병동 남자가 찾아와 숨죽이고 쎅스한다 나의 물이 달아서 좋다는 남자: 질식에 이르는 진실들에게서 갈색 빛이 난다 부디 그 슬픔 너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 ’ 꽃들은 어둠속에서 폭죽으로 펑펑 터지고 나는 눈먼다 내가 사랑이어서 나는 사랑밖에 할 수 없었다 열병을 앓을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러나 나는 이것을 전해주어야 해요 희고 빛나는 깃털— 겨드랑이를 타고 줄줄줄 환각을 통과한다
환청에 매혹된 자: 비장한 얼굴로 꿈에 당도한 자.
혼잣말을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자유*는 필요없다 내 절규는 얼마나 순진했던지 과정이 아니라 소유의 문제였어 영원을 꿈꾸지만 영원을 배반하고 지나가는 순간들 내가 무서워서 그랬어요
남자가 울어줄 때 나는 폭격 맞은 꽃밭: 엉망으로라도 가꿀 수 있다 감정과 감염의 한 끗 차이 거울은 비출 때마다 초라해지는 것이고
‘떠나려는 전차의 불빛’ ‘가망 없는 말들’ 노랗게 말라붙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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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옆방 남자. 조언인지 잠언인지 맹세인지 모르는 말들을 지껄이다 돌아간다.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MH> 나는 그럴 때 우울한 낯을 잘 감출 수 없는 사람. 날마다 나를 갖고 싶다고, 그는 다른 환자들에게 속마음을 잘 들킨다. 즐거운 빛을 감출 수 없는 사람. 1921년생.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이 역시 그가 내 배꼽에 하얗게 쏟아부었던 고백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