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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기

 

위기, 이행, 대안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

 

 

이매뉴얼 월러스틴 Immanuel Wallerstein

미국 뉴욕주립 빙엄튼대 페르낭 브로델 쎈터 명예소장, 예일대 수석연구학자. 저서로 『근대세계체제』(3권)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유토피스틱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공저) 등이 있음.

 

이강국 李康國

일본 리쯔메이깐대학 경제학부 교수. 저서로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가난에 빠진 세계』 등이, 역서로 『자본의 반격』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등이 있음.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후

 

우선 당신과 공저자들이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를 쓴 이유와 동기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왜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해야 합니까? (이강국)

우리 모두는 세계체제가 현재 엄청난 어려움에 빠져 있고, 전반적인 논의는 이론과 역사적인 깊이가 부족하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대안에 관해 한층 유용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했습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오랫동안 심각한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세계경제의 상태와 양적 완화와 같은 선진국의 대응에 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위기 이후 케인즈주의가 복귀했고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위기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실패이며, 국가가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일 텐데요.

이 문제는 우리 5명의 공저자가 똑같이 동의하지는 않는 부분입니다. 그중 둘은 케인즈주의적 접근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셋은 현재의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인즈주의적 접근에 공감하는 저자들도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위기와 그 함의는 무엇이며, 당신의 입장은 다른 좌파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당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위기는 꼰드라띠예프 순환(Kondratiev cycles, 1920년대에 소련 경제학자 니꼴라이 꼰드라띠예프가 제시한 학설로, 대략 50년 전후 기간을 단위로 경기의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는 근대 세계경제의 주기적 변동을 가리킴편집자)의 B국면에서 나타나는 금융화의 특수한 위기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주장하듯 정말로 500년에 한번 나타나는 구조적 위기의 일부인지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위기에 관한 나의 관점과 아마도 다른 대부분 좌파들의 관점의 차이점은, 그들은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힘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대중적 저항은 장기적으로 불변의 상수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추가적인 사실은 시장과정을 통한 자본주의적 축적이 자본가를 위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취약한 계급과 자본가 모두가 그들의 부를 보전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자본축적이 자본가를 위해서도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사실 놀랍습니다. 이제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래리 써머즈(Larry Summers)가 ‘장기정체’를 주장하거나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이 혁신의 정체로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 주장하듯 자본주의의 어두운 미래에 관한 예측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관점에서 이들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주류경제학의 비관적 예측에는 언제나 면책조항(escape clause)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xy를 하지 않으면 미래는 비관적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xy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 경제학에서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또마 삐께띠(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죠. 그는 자본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누진소득세의 인상과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합니다. 그는 자본의 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 없이는 21세기에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 말합니다. 삐께띠의 연구와 관련 논쟁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불평등의 동학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삐께띠는 기본적으로 명석하고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주류경제학자이며 현 상황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적인 해결책을 지지합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주류경제학자들과 똑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은 현 세계체제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에 관한 대중적 논쟁을 촉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와 이행의 전망

 

당신은 현재의 체제가 종말을 고하는 근본적 이유는 노동, 투입요소/인프라, 그리고 세금 등을 포함한 생산의 비용이 수백년 동안 계속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당신의 설명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 인한 이윤율 하락을 제시한 맑스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용의 상승추세는 그리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적어도 생산성과 비교할 때 임금은 1980년대 이후에 정체되었고, 따라서 노동몫은 하락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산비용은 언제나 2보 전진 1보 후퇴의 패턴으로 상승해왔습니다. 임금에 관한 그러한 지적은 1보 후퇴의 측면을 가리키지만, 2보 전진의 측면은 간과하는 것입니다. 500년 동안의 이러한 패턴은 이제 비용을 너무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켜, 점근선 수준에 다가가게 만들었으며 제품을 생산하는 데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시스템은 요동치고 무질서하고 맹렬한 변동에 빠져 있습니다.

 

이 책을 포함한 많은 저작에서 당신은 신자유주의하의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 수단, 동맹, 경제적 수단 등을 통해 다른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헤게모니의 미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미국의 헤게모니가 경제적 권력의 측면에서 약화되고 다른 국가들이 부상한다면, 이러한 헤게모니의 변화가 꼭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속화할지 의문입니다. 다른 신흥시장국가들이 지속적으로 고도성장한다면 이는 자본주의의 종말이 아니라 재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국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붕괴로 인해 체제 내에서 미국의 역할과 체제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미국의 역할 모두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세계체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지 않다면, 다른 국가들(동북아시아 블록 같은)이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우리는 자본주의체제를 벗어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중국의 미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생각했지요. 이 책에서 크레이그 캘훈(Craig Calhoun)도 ‘중국식의 국가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미래 형태로서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말합니다. 중국의 현재 성장과 중국식의 국가자본주의가 지배적이 될 가능성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성장은 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이미 느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중국은 세계의 다른 대부분 지역과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엄청난 수의 중국 ‘중산층’ 소비자의 증가는 세계경제에 또다른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당신은 구조적 위기 이후의 가능성으로서 서로 상반되는 ‘다보스(Davos,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고 현 세계경제의 발전을 추구하는 세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의 국제민간회의기구 ‘세계경제포럼’의 별칭인 ‘다보스 포럼’에서 따옴편집자) 정신’과 ‘뽀르뚜 알레그리(Porto Alegre,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등에 반대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체제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비정부기구들의 연례모임인 ‘세계사회포럼’의 출범지에서 따옴편집자) 정신’이 존재하고 이 두 정신은 또한 두개의 캠프로 각각 나뉘어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세계화를 비판한 책 제목으로 다보스와 뽀르뚜 알레그리를 단 적이 있지만(『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후마니타스 2005), 이 두 정신 사이에는 엄청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보스의 개혁주의 캠프와 뽀르뚜 알레그리의 한 분파가 자본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연대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네, 그것도 가능한 정치적 연대입니다. 나는 그것을 다보스 그룹 개혁파와 뽀르뚜 알레그리 그룹 개혁파의 공동선택(co-option)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는 아니겠지만 위계, 착취, 양극화 등 자본주의의 나쁜 특징들을 유지하는 새로운 세계체제일 것입니다. 이는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자본주의 내의 어떠한 개혁도, 비록 그것이 더 현실적이지만, 더욱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공동선택은 적어도 양극화와 착취라는 면에서 지금의 시스템보다는 ‘덜 나쁜’ 시스템을 만들지도 모릅니다만, 그것 역시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당신은 미래는 열려 있고 세계는 5050의 가능성으로 좋게도 나쁘게도 변할 수 있기에 진보적 정치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언제나 강조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진보적 변화를 밀어붙일 수 있는 중요한 그룹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체제를 요구하는, 뽀르뚜 알레그리 그룹의 어떤 캠프가 있을까요? 정치적 투쟁과 새로운 정치운동의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십시오.

당신의 지적이 맞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좌파운동의 힘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그룹’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전세계에 걸쳐 있는 수많은 정치적 노력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많은 것들은 매우 지역적이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서로를 지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나은 좌파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질문들과 한국

 

한국은 주변부에서 반주변부 그리고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체제에서 매우 드문 케이스입니다. 한국의 경험에 관해서는 시장을 강조하는 주류적 견해와 발전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비주류적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조정 및 개방과 함께 경제적 역동성을 잃었고 많은 이들이 저출산과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하며 일본 같은 장기불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미래의 전망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발전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배경으로 국가의 발전주의적 정책이 성공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지적한 바처럼 오늘날 한국은 경제적 역동성을 잃었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한층 더 통합된 동북아시아의 지역구조 형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통합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동북아시아와 관련해 당신은 중국, 일본, 한국이 미래에 일종의 지역블록을 형성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이와는 달라서, 이들 국가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미래와 한국의 전략적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에 가장 우선적이고 어려운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회복하여 일종의 통일된 구조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실현된다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짧게 말해서, 나는 한국이 이 세 국가 중 비록 가장 작지만 중요한 몫을 맡으리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의 세계경제와 국제정치를 전망하신다면요?

불확실성이 크고 급변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에 관해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무엇일 수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공저자들이 공동결론에서 쓰고 있는 “대안적 시장조직”(385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 랜들 콜린스(Randall Collins)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사회주의적인 소유와 강력한 중앙적 규제와 계획을 의미하는 비자본주의 시스템”이라 말합니다. 당신도 이에 동의하시는지, 아니면 어떤 구체적인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말해주세요. 보수주의적 자본가들이 강력한 현재를 고려하면 경제적 관리의 방법을 포함한 반자본주의의 구체적 행동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질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종종, 만약 15세기말 유럽에서 붕괴하는 봉건주의 시스템을 대신해 어떤 체제가 등장할 것인지 학자들이 토론한다면, 과연 누가 20세기에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을 띠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콜린스의 예측은 약간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논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어떠한 대안적 원칙도 없다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결집해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볼 때 진보적 사회과학과 진보적 정치운동 사이에 긍정적인 피드백과 선순환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대안적 시스템의 구체적인 형태나 사례에 관해 궁금해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평판과 성과에 대한 자기만족이라는 형태의 보상을 실험해보아야 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상품화되었기는 하지만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그런 형태의 보상이 오랫동안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보상은 수천년은 아닐지라도 수백년간 잘 작동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계속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결집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좋은 삶’(buen vivir, 공동체적인 우애와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자연친화적인 생활방식)이라고 불리는 삶을 중요시하는 문명의 변화를 위해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 특히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보상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기술로 인해 중산층이 사라질 것이라는 콜린스의 예측은 매우 놀랍습니다. 기술혁신이 대량실업을 낳을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지만, 콜린스처럼 노동인구의 50% 혹은 70%가 실업에 빠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믿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세계경제가 그러한 대량실업을 막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사실 마이클 맨(Michael Mann)이 쓰듯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경제성장 및 기술발전과 함께 수많은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기술의 영향과 미래의 경제체제에 미치는 함의에 관한 당신의 의견을 알고 싶습니다.

과거의 역사에 관해서는 맨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재 나는 우리가 왜 대량실업을 피할 수 없는지 그 이유에 관해서는 콜린스에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기술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라 종속변수입니다.

 

맨은 우리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한다 해도 지구온난화 위기를 맞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는 환경(생태)위기가 전세계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를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맨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환경위기를 정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환경위기에 관한 정치적 해결책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우리는 이행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사회주의는 환경위기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는 환경위기가 매우 심각한 걱정이라는 맨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맨만큼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체제로의 이행 이후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뽀르뚜 알레그리의 정신이 지배적이 된다면, 환경문제에 대해 어떤 효과적인 대응책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체제 내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해 어떤 효과적인 대응도 이루어질 수 있거나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행기에 사회과학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은 당신이 과거의 점성술과 비교했듯이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이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경제학이 편협한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사회과학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당신은 여러 학문분야의 융합을 제시하고, 쁘리고진(I. Prigogine)의 이론을 당신의 분석에 도입한 것과 같이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스스로를 ‘방법론적 다원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사회과학의 학문들은 여전히 깊게 분할되어 있는데요, 특히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에게 어떤 제언을 하시겠습니까?

한국의 사회과학자들도 세계 다른 곳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이 우리처럼 인식론적 쟁점들에 적극적으로 맞서서 지식의 영역들을 재통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통찰을 우리의 도덕적 선택과 정치적 결정을 만들어내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월러스틴과 자본주의의 미래

 

 

이강국

 

대공황 이후 최대규모였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벌써 7년, 자본주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금융위기 이후 주류경제학에서는 국가가 자본주의를 관리할 수 있다는 케인즈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장기정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기술혁신의 정체와 인구증가율 감소 등으로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또한 삐께띠는 『21세기 자본』에서 21세기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우울하게 전망한다. 물론 이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맑스주의자를 포함한 진보적인 경제학자들도 자본주의의 위기와 전망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몇몇 급진파 맑스주의자들은 맑스의 예측대로 자본주의의 장기역사에서 나타나는 이윤율 저하경향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으며,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이윤몫과 자본생산성 증가로 이윤율이 회복되었고 금융위기는 주로 신자유주의와 금융화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금융에 대한 규제와 소득분배 개선 같은 자본주의의 개혁을 통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 전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체제론을 비롯한 거시 역사사회학의 대가들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통찰하는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는 경제학에도 커다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책의 한국어판 출판에 맞추어 경제학과 사회학 사이의 대화라는 취지에서 필자는 월러스틴 교수와 대담을 진행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체제론을 확립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도 생성, 성장, 그리고 사멸을 겪는 역사적 체제임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끝없는 축적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제 이러한 축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는 500년 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해오던 자본주의체제가 생산비용의 장기적 상승으로 결국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현재의 위기가 결국 대분기(大分岐)로 이어져, 자본주의는 21세기 중반경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 예측한다.

물론 이는 너무나 대담한 예측이다. 사실 그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설득력있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월러스틴의 접근법과는 다르지만, 맑스주의 경제학 내에서도 역사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했는가에 관해 논란이 존재하며,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주장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자본주의가 심각한 모순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의 주장처럼 종말이 임박했는지 그리고 그 시기까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월러스틴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다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지만 그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혁명과 신재생에너지 혹은 바이오기술 등이 새로운 상승주기와 준()독점을 낳아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고 이 책에서 콜린스도 강조하듯 로봇 등의 급속한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체제에 미치는 함의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이나 환경문제 등 자본주의가 현재 직면한 문제들과,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들에 관해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에 관해 월러스틴은 삐께띠의 논의를 높이 평가하지만 세금을 통한 체제 내의 개혁은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이며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지적은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기 어려운 경제학의 좁은 시야를 넘어서서 사회학의 한층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아가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적인 체제의 작동원리로서 금전이 아닌 다른 형태의 보상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일종의 문명적 전환을 촉구한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는 경제학과 사회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자들 모두 유토피아가 단지 환멸로 끝나지 않도록 더욱 치열하게 ‘유토피스틱스’(Utopistics, 월러스틴의 1998년 저서 제목이며동명의 한국어판 1999년 출간 ‘이상향을 찾는 학문활동’이라는 뜻의 조어로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대체할 역사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의미임편집자)를 추구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는 또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일종의 법칙이 작동한 결과이지만, 혼돈스러운 분기와 이행의 시점에는 주체의 의지에 기초한 정치적 노력과 실천이 핵심적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의 구체적인 형태와 대안적 체제의 원리가 사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난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가 세계 각국의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실천의 과정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갑작스럽게 붕괴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변모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듯이 현재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구조적 모순의 정도와 위기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치적 투쟁의 결과가 그것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바쁜 연말 일정에도 여러번 이메일을 통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월러스틴 교수와 애초에 대담을 기획하고 재수록을 양해한 한겨레신문, 후기와 함께 다시 발표의 기회를 제공한 『창작과비평』 편집진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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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담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Does Capitalism Have a Future?, 한국어판 성백용 옮김, 창비 2014)의 출간을 계기로 2014년 11~12월 두 사람이 나눈 서면 문답을 옮긴 것으로, 한겨레 2015년 1월 12일자에 그 일부가 게재된 바 있다. 양측의 동의를 얻어 전문과 함께 이강국의 후기를 추가해 싣는다. © Immanuel Wallerstein, 이강국 2015 / © 한국어판 창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