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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사회적 연대를 위한 복지로
백영경 白英瓊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공저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생명공학시대의 의료와 일상』, 『여성운동 새로 쓰기』, 역서 『유토피스틱스』 등이 있음.
오건호 吳建昊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저서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등이 있음.
장석준 張碩峻
전 노동당 부대표. 저서 『혁명을 꿈꾼 시대』 『신자유주의의 탄생』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등이 있음.
조성주 趙誠株
전 서울시 노동전문관,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저서 『너는 나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이상 공저)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등이 있음.
백영경 한국사회에서 불안이 일상화된 만큼 안정된 삶과 그것을 가능케 할 복지에 대한 사회적 갈망도 커진 것 같습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한동안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정치의제로 떠올랐고 지난 대선 때만 하더라도 모든 후보가 ‘복지국가’를 약속함으로써 복지국가론이 대세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기초연금 공약이 후퇴했다고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위한 재원이나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비판과 논쟁이 이어지면서 복지에 대한 시민의 뜨거운 반응은 사그라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양극화나 빈곤, 자살률, 출산율 등 여러 지표에서 우리 사회가 퍽 살기 힘들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호 대화에서는 현재 여러 이슈로 흩어진 채 진행되는 복지 관련 논의들을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21세기 한국에서 정의와 연대의 이념에 부합하는 복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짚어보려 합니다. 이 자리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복지 ‘전문가’는 아니라고 할 분들도 계십니다만, 오늘 대화의 취지 자체가 전문가끼리의 기술적인 논의에 복지의제가 묻히는 상황을 탈피하는 데 있는 만큼 한국사회 여러 영역에서 복지 논의의 실질적인 축을 담당하는 분들로 모셨습니다.
먼저, 각자의 현장에서 복지를 사회적 연대와 정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우선 사회적 연대로서의 복지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복지의 핵심, 사회적 연대다
오건호 사회적 연대는 ‘서로 의지해 함께 사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뛰어듦으로써 자신의 생활수단을 구하는데, 이것의 결과가 격차와 차별로 이어져요. 이에 재분배기제로서 복지가 시장의 격차를 완화하는 ‘함께 살기’ 역할을 담당하려는 것이지요. 물론 나라마다 복지형태가 다른 만큼 복지가 지닌 사회적 연대 의미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복지정책은 늘어나고 있는데 사회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아주 미흡합니다.
복지가 국가시스템으로 안착된 걸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두가지 측면이 같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사회안전망 역할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생활은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 그런데 이게 그냥 뚝 떨어지진 않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런 만큼 복지국가의 또다른 면은, 사람들 간의 관계 즉 상호의존이 증대돼야 합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힘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서로 손잡고 복지를 이루는 거죠. 요컨대 복지는 물질적 측면의 사회안전망과 사람들 간의 상호의존성을 강화시키는 관계망, 이 두가지가 합쳐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복지는 물질적 측면의 접근만 있어요. 그러다보니 복지의 핵심인 관계, 연대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겁니다. 세금을 어떻게 생각할지, 국민연금에 가입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연대할지,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 재정책임의 몫이 달라지는 노후복지에서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이런 상호의존적 관계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두가지 요인이 있다고 보는데 첫째는 복지 논의가 너무 빨리 진행된 탓이고요, 둘째는 그렇게 진행된 과정의 기본동력이 정치권이었어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대와 관계에 대한 고민이 빠진 상태에서 마치 정치권의 선물처럼 ‘무상시리즈 복지’가 주어져버린 거예요. 지난 3년간 대한민국 복지의 양적 확대는 세계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빨랐어요. 그러면 그 속에서 사회적 연대·관계도 뿌리를 뻗어갔어야 하는데 이건 거의 정체상태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복지를 늘리자 하다가도 재정장벽에 부딪히면 금방 ‘돈 없으면 어려운 거지’ 하면서 흔들리게 되죠.
백영경 최근 복지 논의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오건호 연대라고 하면 좀더 어려운 계층을 중시해야 할 텐데 최근 3년간의 복지는 불균등한 발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재정이 부족하고 기존 복지제도가 여러 결함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양적으로 늘어나다보니 중상위계층의 복지는 늘어났는데 어려운 사람들의 복지는 정체상태에 있어요. 작년말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되었지만 크게 개선되진 않았고 지자체가 제공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도 거의 묶여 있습니다. 재정이 부족해서죠. 보편복지 열풍으로 확대된 복지의 혜택을 사실상 중상위계층이 받은 반면 그 아래 계층은 계속 정체되어 있는 불균등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대의 기준에서 봤을 때 이 상태가 그대로 가는 건 곤란하다 생각합니다.
또다른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관계망입니다. 공무원연금이 지금 재정적자가 크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쪽에서는 국민연금 급여율을 더 올리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현재 우리나라 공적연금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많아요. 이 상태에서 급여율을 올리면 노동시장 중심권에 있는 사람들은 후세대의 재정으로 혜택을 보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주변으로 밀리죠. 노동시장에서도 밀리고 노후보장 면에서도 뒤처지는 겁니다. 고령화시대엔 노후복지, 특히 연금복지가 대단히 중요한데 지나치게 제도 내부자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시민단체들도 그렇고. 결집된 세력이 중심권 노동자들이다보니 그들의 입장이 강하게 담긴 면이 있죠.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이 미진한 문제나, 사회보험 개혁이 제도 내부 가입자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사각지대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문제는 사회연대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입니다.
인수위에서부터 후퇴 논란을 가져온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이 세가지입니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깎겠다고 했고, 의료에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대책을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또하나가 저임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문제였어요. MB정부 때 정부에서 절반가량 지원했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을 앞으로 전액 지원하겠다고 한 말을 바꾼 건데, 다행히 기초연금과 3대 비급여는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대응해서 그나마 덜 후퇴하게 만들었지만 저임노동자 보험료 전액지원 공약은 인수위원회 때 결국 폐기됐어요.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노동계의 대응이 사실 없었어요. 이런 걸 보면 아직도 약한 사람의 복지를 위한 세력관계 지형은 지극히 취약하다고 봐야겠죠.
사회적 합의도 양극화 고민도 없는 복지 논의
장석준 오건호 위원장님도 말씀하셨지만, 한국의 복지 논의가 기성정치권의 선거 대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정작 사회적 합의가 정말 필요한 부분이 빠진 채로 기술적으로 흘러온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치권의 행태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기성정치권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어서 서구의 좌파 역할을 하는 세력이 없거나 취약하기 때문에 논의가 왜곡된 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연대’라는 말이 그냥 좋은 것으로만 여겨지는 현실 자체가 문제적 상황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사회적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자본주의 시장법칙을 어떤 영역에서는 제한하거나 아예 작동을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복지를 늘려간다는 합의의 토대에 깔려야 하는데 그게 없죠. 그러다보니 가령 복지의 핵심 중 하나인 일자리 문제에서도 계속되는 비정규직의 양적 확대와 질적 차별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얻은 자들은 항상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써왔는데 그러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한 합의입니다. 그게 안되니까 법인세는 계속 깎이고 소득세가 누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봉쇄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재원 문제가 닥치면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복지공약은 후퇴하게 되고…… 이게 지금 한국사회가 부딪힌 상황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조성주 기본적으로는 두분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주로 노동 쪽에 있다보니 좀 다른 관심이 있습니다. 이미 복지는 한국에서도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단계인 것 같아서 놀라운 한편으로, 복지와 함께 노동시장의 극심한 양극화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고민 없이 진행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복지 논의를 통해 조직된 힘으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복지 확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씀하신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중요한 사안은 당사자가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그에 비하면 공무원연금 개혁은 훨씬 큰 문제로 부각되잖아요.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하긴 하지만 솔직히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의 확대가 단순히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를 전체적으로 좋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얘기를 잘 안하죠. 한마디로, 복지가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장시간 노동체계가 그대로 있으면 이게 무슨 복지국가냐 하는 겁니다. 세대 간 불평등 문제도 있습니다. 이대로는 계속 가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동안 복지정책을 쏟아내기 식으로 내놓은 셈인데, 지속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세세한 고민이 있어야 했고, 지금부터라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백영경 현재의 복지 논의가 정규직 중심, 중산층 중심으로 흘러가는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만, 여성 쪽에서는 정상가족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큽니다. 특히 재정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르면 대체로 ‘저출산이 문제다’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라고 얘기되는데, 혼외출산을 장려할 사회분위기는 안되다보니 결국은 가족지원정책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복지제도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비판을 받는 듯하다가 오히려 그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사회를 꿈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가 복지와 함께 회귀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또한 복지가 현금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마치 일종의 재테크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삶이라는 게 굉장한 고비용 지출구조 속에 있는데 이 구조를 그냥 둔 채로 사람들이 연금을 얼마 받아야 되는가만 생각하다보니 공무원이나 교사조차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산층을 벗어나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현금소득 자체보다 오히려 주거지원이라든가 의료지원 같은 서비스가 주어지고 사회적 관계망이 회복되는 것이 더 긴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여성이라면 비혼여성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얼마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겠고요.
오건호 늘어난 물질적 복지를 같이 끌어가줘야 할 사회적 연대 관계 형성은 두 측면에서 가능합니다. 하나는 복지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만약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노동복지를 위해 합심한다면 노동시장에서 분열되어 있던 이들이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를 이룰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복지가 제공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현금복지는 그게 가능치 않아요. 돈이 개별 계좌로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복지가 상품화된 형태로 인식될 가능성이 많은데, 반면 현물이나 서비스 형태의 복지에는 중간에 사람이 개입돼요. 조직이 들어가고 지역공간이 들어갑니다. 지금 우리는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현금형태 복지를 가지고 있고, 이와 동시에 보육, 장기요양, 의료 같은 서비스 복지도 시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거의 민간영역이에요. 그러다보니 질 관리에 문제가 생겨요. 재정은 나라가 지원하고 있는데 서비스 전달체계가 사실상 ‘시장화’돼 서비스의 질이 보장되지 못하는 거죠. 보육만 해도 무상보육을 제공받으면서도 애 맡기는 게 편치 않아요. 추가부담도 생기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현금보다 사회서비스, 현물복지 체계가 제대로 확립되는 게 중요하고 그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은 인프라가 민간 중심으로 되어 있고 종사자의 소득급여도 낮고 지역공동체에서는 행정과 복지관과 시민사회가 잘 결합되어 있지 못합니다. 앞으로는 아래로부터 만들어가는 운동, 더 구체적으로는 조직과 사람과 지역공간이 결합돼서 복지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단순하게 물량적으로 얼마를 더 얻느냐에 따라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그걸 넘어서 사람과의 관계를 느낄 때 다음 봉우리로 가자는 열정이 생긴다고 봐요. 시민사회가 이런 문제를 더 눈여겨봐야 합니다.
20세기 서구 복지모델, 지금 이곳에서 가능할까
백영경 일반 시민의 의식을 비롯해 시민을 설득하기 위한 운동진영의 레토릭도 그런데, 북구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런 걸 한다더라 그래서 복지사회가 굉장히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얘기가 주로 되면서 우리 현실에서 논의를 시작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예전 사회운동이 해왔던 많은 일들이 복지사회 논의와 맞닿아 있는 것이고 여러분도 다들 그렇게 해서 복지의제와 만났을 텐데 사실 일반 시민에게는 복지가 우리도 소득이 어느정도 됐으니까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그냥 얻을 수 있는 혜택처럼 여겨지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노동자의 조직화 정도로도, 세계경제의 상황으로도 서구가 누려온 복지를 우리가 지금 이 단계에서 누리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1950~60년대 유럽이 아니고 21세기 한국사회가 갖는 조건 속에서 복지 논의를 한다는 데 제약도 있고 기회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석준 다른 쟁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한국사회는 서구가 몇세대에 걸쳐 경험했던 물질적·정신적 상황을 한두세대에 걸쳐서 집약적으로 경험하다보니 단일 주체로서도 그것을 해석하기 혼란스럽고 세대별로도 인식이 전혀 달라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복지에 대해서는 그런 문제가 더 첨예하게 나타나는데요, 자본주의 발전단계로만 보면 한국도 북·서유럽이 도달한 복지수준을 이미 달성하고도 남을 정도의 물질적인 발전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구는 우리와는 양상이 다른, 공황과 전쟁이라는 원체험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잇따른 전쟁의 경험 속에서 스웨덴이든 영국이든 사회가 현실에 집단적으로 대응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인 관계를 농경사회적인 방식이 아니라 산업사회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형성하고, 그걸 위해서 기득권층이 일정하게 양보하는 것을 사회적인 관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념적으로 보면 기독교와 사회주의에 의해서 기존의 자유주의와, 나아가 보수주의까지 수정되는 과정을 겪었고요. 물론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시작되면서 많이 해체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삶과 사회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남아 있는 역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2008년 이후로도 미국이나 유럽은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으면서, 가령 지금 그리스 같은 경우가 1930년대 스웨덴이나 영국사회가 경험했던 대공황의 원체험 속에서 자기 나름의 복지국가를 형성 또는 재건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등 특수한 요인들 속에서 세계경제위기로부터 어느정도 비껴났어요.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지구화 전성기에 형성된 사회적 관계와 인식이,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굳건히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복지국가가 건전하게 형성되는 데 장애물 역할을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중산층의 인식입니다. 중산층에는 조직노동자까지 포함된다고 보는데요. 한국사회의 특수한 자본주의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도 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 전성기에 더 강화된 것이기도 한데, 한국에는 현금이 생기면 퍼붓게 되는 독특한 두가지 가계 지출구조가 있어요. 교육과 주거죠. 굳이 신자유주의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한국 자본주의 축적과정에서 중산층이 되거나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요소가 자녀를 교육시켜서 입시경쟁에서 더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었고요. 주택에 대한 큰 지출은 한국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상당히 제한된 계층의 삶의 방식이었다가 오히려 2000년대 신자유주의 지구화 전성기에 갑자기 전 계층으로 확대됐습니다. 주거에 투자해서 노후자금이나 중산층으로서의 생활유지에 가장 중요한 토대로 삼는 것이죠. 각 가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에너지가 이들 쪽으로 쏠렸습니다.
사실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동맹이 형성되는 데 중산층의 역할이 크죠. 중산층 중심의 복지가 돼서는 안되지만 건전한 복지가 되려면 분명히 중산층이 복지동맹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의 에너지와 관심이 교육이나 주거에 계속해서 쏠리면서 물적 자원 측면에서도 그렇고 관심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미래로 한 발짝 내딛는 게 지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복지의 현금급여나 임금수준이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더라도 그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사교육시장이나 부동산 자산의 인플레이션으로, 혹은 또다른 불건전한 방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복지사회를 만들려면 이런 문제도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백영경 서구사회가 공통적으로 지닌 역사적 경험이 공황과 전쟁이었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전쟁과 분단이 중요한 인식의 배경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의료보험 제도처럼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복지제도의 수립을 추동해온 측면도 있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평등한 삶이나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를 불온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복지가 발전하는 데 큰 제약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어떤 사안에 반대하는 이해 당사자들이 시위를 할 때 한국이 공산주의국가냐” 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지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제대로 된 복지라는 것은 그저 누구에게나 좋기만 할 수는 없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법칙에 제약을 가하고자 하는 것, 누군가는 자기 몫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일 텐데요, 이렇게 사회적 정의와 연대로서의 복지에 대한 반발에 힘을 실어주고 복지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데는 결국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향, 분단체제의 영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노동당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과도 관계있지 않을까요.(웃음)
장석준 물론 한국전쟁이 좌파와 우파 내지는 미국진영과 소련진영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남한사회의 이념적 지형을 닫아놔서 복지국가가 발전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인데요. 다른 한편으로 서구의 경우 산업사회가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전쟁을 겪으면서 도시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일자리와 사회서비스와 재원을 나눠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체험한 과정이었다면, 한국전쟁은 농경사회 상황에서 겪은 전쟁이었습니다. 산업사회 이전에 복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농경공동체가 전쟁으로 파괴됐죠. 그러면서 사람들이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총과 대포를 쏘는 전쟁은 끝났지만 개인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축전이 50~60년대에 이어지게 됐기 때문에 서구가 겪은 전쟁과 우리가 겪은 전쟁은 복지국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전쟁이나 공황에 맞먹는 힘든 경험을 해야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닐 테고,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의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의식적 차원이든 문화적 차원이든 공동의 체험이라는 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건호 전쟁이나 공황은 사회 전체를 허물 수 있는 급진적인 충격이기 때문에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그에 맞서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문제고, 그 과정에서 산업사회의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연대적 복지국가의 주축이 마련된 건데, 한국은 급진적 충격이 거꾸로 보수적 공동체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죠. 한국전쟁이 대표적 경우고요. 이후에는 한국에서 그런 충격이 없었지만 2010년 이후의 복지열풍을 이해하는 데는 1998년의 금융위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하면 살 만해지고 집도 마련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수성가의 꿈이 무너지는 전환점이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한국은 저력이 있으니까 이삼년 지나면 일어나겠지 생각했는데 그뒤로 10년, 15년이 흐르면서 이제는 옛날처럼 생계활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특정한 계층만이 아니라 다수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 같은 급진적 충격에 의한 의식화는 아니지만 세계경제, 재벌, 노동시장 불안정, 사회양극화 등을 통해 누적된 인식이 결국 새로운 공동체성에 대한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2012년 대선 때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같은 구호도 그래서 나왔다고 봅니다.
장석준 서구 역사와 비교하면 완만한 충격이지만 그 속에서 상당히 빠르게 의식이 변했다고 보는데 저는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정권이 정말 우리 사회의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상당히 착실하게 확산되고 있었던 복지국가 의식을 한마디로 유괴 혹은 납치한 격이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자신들이 할 것처럼 약속해서 그 에너지를 끌어안은 다음에 결국 5년 동안 못하는 걸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좌절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됐잖아요. 더구나 중산층의 경우에는 관심이나 물질 자원이 계속해서 부동산시장으로 가는 측면이 있는데 이 정권은 그걸 조장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단순히 5년을 빼앗은 게 아니라, 그 기간에 착실하게 사회의식이나 사회적 관계를 바꾸었다면 가능했을 결과를 생각해보면 한세대 정도의 시간을 날려버린 것일 수 있습니다.
오건호 그 말씀엔 동의해요. ‘이쪽’이 대선에서 진 게 큰 요인이겠지요. 하지만 진다고 해서 항상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비록 선거에서는 졌지만 박근혜정권의 역주행을 막을 브레이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이런 파국적인 상황이 약간은 완화될 수 있었을 텐데 야권, 시민사회 혹은 진보정치의 실패도 같이 짝을 이룬다고 봐요.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을 극복하려면
백영경 청년운동을 하신 조성주 선생님은 이런 정치적 분노를 조금 덜 느끼실 것 같아요. 청년층은 피어오르는 열망이 있다가 꺾였다기보다는 애초에 복지논의에서 비껴나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성주 그렇죠. 그런 게 아예 없었기 때문에. 30대 씽글 청년에게 복지란 뭘까 생각해봤는데 전혀 잡히는 것이 없어요. 연초의 소득공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씽글들이 어쨌든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건데요, 노동시장에서도 오랫동안 배제되어 있던 청년들은 복지국가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도 먼 산 보듯이 보게 됩니다. 복지운동세력이든 박근혜정권이든 다음 세대의 문제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서 나온 연금 논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백영경 청년층에서는 오히려 복지 때문에 더 못살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조성주 젊은 7급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공무원연금 다 때려치우고 국민연금으로 들어가면 좋겠다고 해요. 공무원연금이 삭감되든 말든 자기한테는 40년 후의 얘기고 지금 돈 떼어가는 게 더 짜증난다는 거죠. 소득공제 논란도 자신을 겨냥한 공격처럼 느끼고요. 연금부담금이나 세금을 안 내겠다는 식인데 이대로 계속 가면 다음 세대는 복지 문제에 냉소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오건호 복지운동을 하는 윗세대 입장에서 불안하죠.(웃음) 우리 세대가 연금제도를 이렇게 설계했지만 20년 지나면 아무 힘이 없을 텐데 청년이 사회 중심세력이 돼서 ‘뭐야, 왜 이렇게 황당하게 만들어놨어? 이런 식으로는 복지 못하겠는데요’라고 하면 아무런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백영경 복지라는 게 사회적 위기 속에서 사회 전체가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다음 세대가 꿈꿀 수 있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임에도 아직 논의가 쉽지 않다면,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일은 어떤 것인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건가를 얘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복지가 필요하다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고, 거기서 견지해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요?
조성주 일단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은 피해야 합니다. 세대갈등 담론이라는 게 건전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면, 노인빈곤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쳇바퀴 돌듯 합니다. 세대 간 갈등보다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면으로 고민을 돌리면 좋겠어요. 이 시스템과 사회체제 속에서 다음 세대까지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가. 그것도 단지 재정고갈 문제라기보다 지금 노동시장을 이렇게 해놓으면 다음 세대가 세금도 제대로 못 낼 텐데 과연 복지국가가 만들어지겠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또하나의 원칙은 노동복지라는 차원에서 노동시장에 대한 고민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겁니다. 고용보험이 대표적일 텐데요, 예전에 제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있을 때 경험한 건데, 고용보험료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 그전까지 아웅다웅하던 재계와 노동계가 순식간에 한목소리를 냅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에 일반재정을 100억~200억 수준밖에 내지 않으면서 기업과 정규직 노동자가 낸 돈을 왜 국가가 마음대로 하려 하느냐…… 그런데 정말 고용보험의 혜택을 봐야 하는 쪽은 비정규직에서 청년실업자까지 쭉 있잖아요. 그 가운데는 여성도 많고요. 이들에게로 더 확대해야 하는데 ‘우리가 낸 돈으로 우리를 위해 써야지 왜 저들한테 줘’라는 식이에요. 고용보험 기금으로 실업부조를 하자는 논의가 시작될 때도 일반재정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당시엔 저도 ‘그래, 국가가 너무 안 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도 물론 더 책임을 져야겠지만, 꼭 낸 사람이 가져가기보다 같이 안고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사회보험이 표방하는 정신도 그런 것이고요.
오건호 총괄적으로 복지의제에 대한 접근방식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복지를 강조하는 이들이라면 더욱요. 연말연초에 연말정산 논란이 벌어졌잖아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고소득층뿐 아니라 중상위인 5500~7000만원 버는 일부 사람들도 세금을 더 내게 됐어요. 이렇게 공제제도를 손본 배경에는 사실 무상보육이 있습니다. 무상보육이 시행됨에 따라 이미 중상위계층도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 양육수당으로 나이에 따라 연 120~240만원, 어린이집에 보내면 보육료 지원으로 연 250~500만원 혜택을 보고 있어요. 이번 연말정산제도 개편으로 연봉 4000만원 미만은 오히려 세금이 줄게 되지만 중간계층은 아이가 둘 이상이거나 작년 이후 아이를 출생한 경우 세금이 늘어요. 과연 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게 적절할까요? 물론 세금만 얘기하면 고소득층이 훨씬 더 내게 되었지만 중간층도 일부 부담이 늘죠. 그래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세금을 늘리느냐면서 조세저항의 정치를 펼쳤어요. ‘세금폭탄’ ‘13월의 공포’ 등 무시무시한 단어까지 등장했지요. 그런데 실제로 더 내는 세금은 연 몇만원인 데 반해 무상보육을 통해 받는 건 연 수백만원이에요. 아이를 둘러싸고 세금 1을 내면 사회로부터 복지로 100을 돌려받는 일이 지난 이삼년 새에 중간계층에게 일어난 거예요. 그러면, ‘세금 좀더 내고 이번에는 월 10만원씩 아동수당 받자’ 이런 식으로 복지세력이 접근해야죠.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보육 결과는 쏙 빼고 세금 더 내는 것만 공격하잖아요. 복지와 연대는 결국 책임과 의무가 결부되는 것인데 복지를 누리는 계층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의무를 생각지 못하게 만듭니다. 다 욕심꾸러기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사회적 연대망의 뿌리가 뻗어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말정산에 분노하는 중간계층 개인을 탓할 순 없어요. 여러 정보의 제한이 있는데다 기존 조세정의에 대한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봐요. 문제는 의제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역할입니다. 시민들이 복지에 대해 접근법을 달리 가질 수 있도록 이른바 복지정치, 세금정치를 펴야 하는데, 우스운 얘기로 가장 보수적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세금을 공격하는 입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을 것 같아요. 대략 1년에 10만원 더 내는 것을 두고 세금폭탄, 세금공포라고 원내대표가 말했잖아요. 시민사회나 정치권이 늘어나는 복지 속에서 어떻게 연대의 가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지를 두고 새로운 접근과 성찰적 논의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고용보험이든 국민연금이든 기초연금이든 공공부조든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의 제도개혁안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예로 조성주씨가 제기한 고용보험의 운용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노동자간 연대성이 가장 강한 제도가 고용보험일 겁니다. 안정되고 임금이 높은 노동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아마 혜택은 대부분 못 받을 거예요. 불안정한 노동자일수록 보험혜택을 받겠죠. 그런데 재정부담자인 중심권 노동자가 보험료 인상을 강하게 반대하고, 그래서 재정이 부족하다보니 실업급여 기간도 짧고 급여액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고용보험이 엉터리라고 비판해요. 엉터리가 된 이유가 바로 복지의 한축을 형성해야 할 자신이 역할을 안하기 때문인데 비판만 하는 거죠.
백영경 고용보험은 운용도 제대로 안되지만, 이게 어쨌든 혜택을 보려면 노동권에 한번 진입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조성주 노동시장 안에 들어왔다가 실업상태에 놓인 사람들뿐 아니라 최초 진입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실업부조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이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으로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는데 이런 논의가 노동계에서는 쉽지 않아요. 기업이 더 내야지, 국가가 더 내야지, 우리가 낸 돈을 왜 영세자영업자한테 쓰냐 하는 식인데, 이제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연대의 관점에서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정책을 넘어 복지국가 만들기로
장석준 복지정책은 복지국가 만들기의 일부입니다. 복지국가 만들기는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인데 우리는 그걸 줄곧 경제주의적인 복지정책으로 치환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복지국가 만들기라고 했을 때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요?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건데, 복지국가가 가장 잘 만들어졌던 전후의 북·서유럽을 보면 핵심은 완전고용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보장됐는데 국가의 복지정책이 그걸 지탱하고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던 거죠. 그러다가 70년대 이후에 완전고용이 파괴되면서 복지정책은 그 혼란을 어느정도 지탱해주는 것 정도로 왜소화됐습니다. 영국 식으로 말하면 ‘제3의 길’이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른바 ‘생산적 복지’죠. 젊은 세대가 예전과 달리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국가의 복지정책에 대해 우리 세대가 이런 형편인데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복지재정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요. 결국 서구조차 복지국가의 뼈대는 남아 있되 그것이 예전처럼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거나 감동을 주지 못하게 된 거죠. 한국사회는 IMF 이후에 서구보다 노동상황이 더 나빠지면서, 복지정책이 처음부터 그 노동상황은 현실로 놔둔 채 변죽만 울리는 수준으로 도입되다보니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노동과 복지가 따로 이야기될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의 양적 축소와 질적인 차별 폐지가 복지국가 만들기에서 가장 핵심이고, 그것과 나머지 복지정책이 함께 나아갈 때 지속 가능성에 입각해 세대갈등을 극복해가는 복지국가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입장을 가진 세력이 진정한 복지정치인이고 복지정당이라는 시민사회의 각성과 압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건호 아예 좀더 급진적인 얘기를 해보죠. 서구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노동시장이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 때 복지국가가 제대로 서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게 지금 한국적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렇게 노동시장이 완전고용 비슷하게 자리잡을 때까지 복지국가는 정말 요원한 것이냐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백영경 이제는 어차피 완전고용이라는 게 어려운 상황이죠.
오건호 그렇죠. 그래서 노동시장 개혁은 그 정당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추진하되, 20세기 서구형 복지국가 모델이 노동시장의 불안정화가 구조화된 지금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을지 전 좀 회의적입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더라도 서구형 모델은 안될 거예요. 노동시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요. 서구의 복지는 크게 보면 사회보험이 중심이에요. 우리나라도 전체 복지 지출의 65퍼센트가 사회보험 지출인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와 연관된 연금, 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나기에 미래에는 사회보험 지출 비중이 80퍼센트에 이를 겁니다. 그런데 사회보험을 토대로 한 복지국가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이 작동해야 유지 가능해요. 사회보험은 자신이 기여한 보험료에 기반한 복지체제인데 한국에서는 특히 사각지대가 계속 생기는 거죠.
그래서 세금 중심의 복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 중심의 노후소득보장 체계는 20세기 모델이죠. 국민연금은 점차 부차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그 대신 세금으로 주는 기초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사각지대가 생기는 데 대해 지금 아무런 보완책이 없는데 청년수당, 영세자영업자수당, 농민수당 등으로 세금에 기반해서 기본적인 경제생활이 가능하도록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이 그런 방향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이겠죠. 아무튼 기존 보편복지 방식의 제도를 놔두더라도 한국형 모델은 20세기의 보험 기반 방식이 아니라 세금 기반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복지가 강해질수록 노동시장 개혁의 자양분도 커질 겁니다. 개혁의 동력은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에게서 나와야 가장 강력하지요. 이들이 기본 안전판을 가질 때 자신의 노동권도 강하게 주장할 수 있어요. ‘노동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비판하는 분도 있는데, 거꾸로 복지 있는 노동이 강해요.
장석준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정규직 중심의 완전고용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양적 축소와 질적 차별 폐지라는 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고요. 그런데 20세기에 서유럽이 두었던 여러 장치나 수단 중에서 한가지는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습니다. 바로 공공부문 확대입니다. 서구 복지국가가 완전고용을 추진할 때 민간자본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공공부문을 확대해서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다 복지서비스와 연관이 되죠. 한국사회에서도 이 수단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복지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확대는 단순히 기존 국가기구에 세금 더해진 만큼 공무원을 늘리자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구조 자체를 바꿀 의지나 능력이 있느냐는 문제잖아요. 저는 이것이 진정한 복지세력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백영경 여성을 중심에 놓으면 완전고용 얘기는 더욱 통하지 않죠. 20세기 서구에서도 남녀격차가 계속 있었던 것처럼 이것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운 문제인데 한국은 OECD 여러 나라와 비교해서도 그 격차가 유독 심합니다. 남녀 임금격차가 37.4%로 OECD 국가 중 1위라는데, 이 격차가 심지어 벌어지는 추세라는 점이 더 심각하지요. 비정규직 문제가 흔히 청년세대 위주로 얘기되지만 사실 그 상당부분은 연령과 상관없이 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1인가구라는 게 단지 청년세대만의 생활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1인가구 비율이 25%에 이르고 있는데요, 1인가구의 빈곤율은 45.5% 정도로 전체 가구 빈곤율 13.8%에 비해 크게 높습니다. 1인가구 중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55:45 정도로 조금 더 높은데, 남성의 경우 20대 후반에 1인가구 비율이 정점에 이르는 데 비해 여성의 경우에는 노인층에서 그 비율이 다시 크게 증가합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5%로 역시 OECD국가 가운데 1위고, 그중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의 빈곤율이 76.6%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4인가구 등 가족 동거를 전제로 하는 복지모델은 효력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새로운 종류의 복지를 꿈꾸기 위해서는 정말 세대담론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이상적인 가족모델을 탈피해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성주 제가 했던 청년운동은 그동안 호명되지 않았던 대상을 불러내는 전략적인 면이 있었어요. 이전에는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통틀었던 것들 안에도 자세히 보면 청년 고유의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열정 페이’(구직자의 취업의욕을 악용해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관행—편집자) 논란이라든지 보험사에서 인턴 뽑아서 보험모집에 동원했다 잘라버리는 사례에서 보듯요. 청년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로 그런 계층들이 집중적으로 공격받고 피해를 봤습니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호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는데 한편으로 이게 과도하게 활용된 측면도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거기에 맞는 정책을 우리 사회가 성숙시켜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분별한 세대담론이라는 것도 그런 디테일을 묻히게 하는 부분이 있고요.
기본소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백영경 그러면 이제 좀더 구체적인 정책에 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앞서 오건호 위원장님이 얘기를 꺼내셨습니다만 일반적인 복지담론이 수용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인 만큼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제 역시 기본소득과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입장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장석준 저는 기본소득을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사회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대안적인 제도 구성요소로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찬성입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복지’의제로 논의하는 데에는 주저하게도 됩니다. 앞서 복지국가 만들기가 복지정책으로 치환되다보니 왜곡·변질되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기본소득은 그런 문제가 더 큰 것 같아요. 기본소득은 애초에 제기될 때부터 실은 20세기 모델을 넘어서서 자본-임노동 관계를 없애거나 축소하자는 취지였기 때문에 더욱이 복지라는 틀 안에 갇힐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은 각 기업회계로 지급되는 임금 중 상당부분을 국가회계를 통해서 지급한다는 것인 만큼 현재 개별 기업의 이윤구조 혹은 회계구조를 다 뜯어고치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안사회를 그리는 과정에서 논의해야지 현재의 복지정책들을 늘어놓고는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가지라는 식으로 얘기하다보면 그 의미 자체를 왜곡, 축소할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사회의 경우 단계론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GDP 50퍼센트 이상을 과세했던 경험과 구조가 있어요. 그 속에서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건 50% 과세를 60%, 70%로 늘리자는 거니까 일정하게 현실성이 있죠. 그런데 한국사회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복지지출도 그렇거니와 서유럽 수준의 과세구조가 없어요. 이런 현실에서 그 단계를 건너뛴 채로 그보다 훨씬 나아간 기본소득을 얘기하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영경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주거나 교육, 의료 부문의 개혁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준 그렇죠. 그런 부분들에 대한 구조개혁이 있어야, 그리고 지금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의 과세 경험이 쌓이고 그것을 지지하는 동맹이 구축되어야 기본소득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저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임에도 거기까지 가는 여러 이행단계를 상정하는 정치학 내지는 정치전략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중간단계에서는 계층별 기본소득이라든지 기초연금의 보편적 시행 같은 경험이 필요하겠고요.
오건호 일전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분들과 논쟁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기본권, 복지권리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어떤 접근이 옳으냐는 얘기였는데, 제 입장은 보편복지가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원형모델은 연령대별로 단일 임금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그만큼 재원조달 부담도 커지는데 지금의 조건에서 이것을 제기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요? 가령 가난한 예술가나 농민한테 월 100만원씩 주자는 얘기는 동의를 구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1억원을 버는 35세 노동자한테도 똑같이 기본소득 100만원을 주는 문제는 다릅니다. 이 설득은 쉽지 않을 거예요. 기본소득이라는 카드가 얼마나 유효할까 회의적입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이슈가 국민의 열정이 타오를 만하게 강한 의제라면 지난 3~4년간 복지논쟁이 열렸을 때 왜 공론의 장에 개입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런데 기본소득론자들도 최근에는 기초연금을 노인기본소득이라고 부르던데요, 청년기본소득, 예술인기본소득 이런 식으로. 그러면 사실 이게 맞춤형 보편복지입니다. 보편복지란 게 각 계층별·주체별 필요에 따라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식이면 기본소득 논의의 흐름이 저 같은 보편복지 입장과 상충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기존에는 제도용어로 보험, 기초연금 이렇게 불렀는데 주체별로 호명하면서 청년수당, 농민수당 이렇게 못할 게 없죠. 그렇다고 한다면 기본소득의 원형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적 복지운동과 결합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장석준 한마디 더 보태면, 제대로 된 보편적 기초연금을 실현하는 연합전선이 일단계로 있어야 하고, 그 성과를 얻은 이후에 그 효과를 놓고 지금보다 훨씬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기본소득을 다루는 접근법이 한국의 복지세력에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건호 논리적으로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사회에서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에요. 노인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부자 노인들한테도 주는 거잖아요. 보통 노인은 노동시장에서 은퇴했다는 조건 때문에 부자일지라도 일단 다 주자는 게 동의가 되죠. 이런 식으로 논리를 확대하면 다 마찬가지예요. 노동시장에 있는 연령대에도 기본소득을 제안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그만큼의 정치력만 갖고 있다면.
조성주 저는 원래는 기본소득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더 급한 문제가 있다는 건데요.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최저임금을 빨리 올리고 고용보험 등에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요즘 기초연금을 보면서는 청년층에 구직수당 같은 것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애초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액수를 줄 수도 있겠죠. 이런 걸 기본소득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영역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저는 최저임금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긴 합니다. 기본소득 주장하시는 분들이 거기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삶, 다른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
백영경 기본소득을 지금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판단을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본소득이 대안적인 삶에 대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당장의 현실성과는 별개로 그 속에 담긴 문제의식이 훨씬 넓게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 입장에서 가족을 떠나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안, 생태적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상상하면서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렇듯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당장의 목표도 이루기 어려운 부문 중 하나가 돌봄의 영역입니다. 모두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니, 긴 노동시간에 맞춰 어린이집도 더 늦게까지 보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요컨대 사회가 현행 노동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수준의 일차원적인 제도를 복지라 여기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구조, 사회관계의 재편 없이는 설령 더 많은 복지서비스가 제공되더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물론 현실적 필요에 따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장시간 노동이라는 현실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특히 아이를 살피고 환자를 돌보는 영역에서는 아무리 많은 서비스가 주어져도 이게 사람 사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뒷받침하기 위해 돌봄노동자들도 더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상인들도 그만큼 가게 문을 더 열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니까요.
오건호 임금이 적으니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러지 말자고 말할 수는 없죠. 그러나 중심권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더라도 기존에 그들이 지닌 사회경제적 자원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봐요. 복지도 늘어나고 있고요. 그래서 과거에는 이러한 요청을 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중심권 노동자들부터 장시간 노동에서 자유로워지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노동시간이 빠르게 줄진 않겠지만 점차 여가를 가질 수 있고요, 사적인 활동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공동체 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인 결과로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사회적 가치도 창출되면 운동의 확산속도는 훨씬 빠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한 구호로서만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있었을 뿐인데, 실제로 어떤 주체들이나 조직에서 이런 실험을 해봤으면 해요. 노동시간을 줄였더니 월급은 적어졌지만 더 행복하더라……
조성주 그런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2011년에 김상곤(金相坤) 당시 교육감이 경기도의 학원 운영시간을 밤 열시로 제한했잖아요. 학원시장의 불만이 어마어마했답니다. 그런데 시행을 하고 나니까 학원강사들이 열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그전에는 자정 넘어서 퇴근했는데 삶의 질이 나아졌다, 술도 덜 먹게 되고, 그런 증언이……(웃음) 노동시간 문제에도 기존 프레임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의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프레임. 노동시간 통계를 보면 제조업은 물론 장시간 노동 체제지만 그보다 노동시간이 더 긴 분야가 도소매, 숙박, 서비스 등이에요. 노동운동진영에서는 대개 노동조합이 조직된 공장을 상정해서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해서 수당을 받는 양상을 가지고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하는데, 실제 현실에서 훨씬 많은 노동자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산업 자체가 24시간체제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잖아요. 노동이라 하면 제조업을 쉽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연구를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육만 해도 꼭 공장에 나가는 남성 외벌이 노동자가 서비스를 받는 것만은 아니고 도소매, 숙박,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아이를 맡기고 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노동시간 단축 논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삶의 질을 높이려면 다양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장석준 제가 앞서 복지국가 만들기를 강조했습니다만 사실 더 깊이 들어가면 ‘복지사회’를 만드는 문제입니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상(像), 좋은 사회에 대한 상이 기존의 자본주의 원리만 작동하던 사회와 다르게 합의되면서 복지국가도 가능해지는 거죠. 말하자면 복지사회라고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거기에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좋은 삶에 대한 인식입니다. 서유럽 얘기를 계속 하게 되는데요, 과연 일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서 현금소득을 늘리는 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노동시간을 줄여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 북유럽 복지국가와 한국사회의 차이를 만든 뿌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마을운동 시기에 나온 ‘잘살아보세’라는 관념을 여러 노력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가 복지국가 만들기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과제라 하겠습니다.
복지동맹을 이루기 위한 주체, 의제, 조직
백영경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 어떻게 정치세력을 구성하고 현실을 극복해낼 것인가를 얘기해봐야겠지요. 복지를 이루기 위한 사회세력 간의 동맹이 서구와 다르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면 한국사회에서는 누가 누구와 어떻게 해나갈지가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오건호 복지국가 만들기의 주체는 우선 진보정치조직과, 대중조직으로는 노동조합이 전통적인 주체고 여러 시대적 조건에 따라 농민, 화이트칼라 등과 연대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세력을 얻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럴 여지가 많다고 봐요. 그걸 어떻게 공론화할 것인가도 과제겠지만. 아무튼 주체로 보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정당과 노조인데 일단 한국은 그쪽이 너무 약해요. 정당은 무기력하고 노조는 특히 복지국가 의제에 관심이 적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래로부터 복지 열망이 계속 올라오니까 제가 몸담고 있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같은 시민단체가 등장한 건데요. 과거에는 주체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조직의 역할이 막강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는 꼭 조직 형태가 아니라 네트워크 방식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네트워크가 작동하려면 그걸 추동하는 매개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의제예요. 조직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대중의 주체화에 이 의제가 한축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시간 노동 문제만 봐도 사람들이 주거와 의료만 해결되면 그렇게 치열하게 노동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살 집이 있고 아플 때 치료해준다면 그다음부터는 검소하게 사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죠. 의료비, 주거비 해결 등의 의제를 만들어내고 시민들과 소통하며 확장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일정한 사회적 주체 역할도 할 수 있고요.
장석준 교육까지 넣어서 세가지. 한국사회는 교육이죠.(웃음)
오건호 좋습니다, 교육까지. 그런데 교육은 어려울 것 같은데……
백영경 저는 의료가 해결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요.(웃음)
오건호 의료라면 예를 들어, 논란은 있습니다만 2010년에 시작된 ‘건강보험 하나로’의 방식으로, 아예 보험료를 더 내서 보장성을 넓히는 방향을 주장하면서 이걸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거예요. 정당의 가치에 동의해서 정당으로 모이고 노동조합의 가치에 동의해서 조합에 가입하듯이. 실제로 5천만 국민 모두가 의료를 이용하고 민간의료보험과 직간접적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국민적인 의제예요. 병원비 부담이 너무 큰데 이렇게 하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참여 욕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죠. 그러면 ‘건강보험 하나로’의 의제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2010년에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발족할 때 저희가 그 모델을 꿈꿨어요. 이 시민회의가 지역조직을 다 만들려고 했어요. 조직이죠. 노동조합이 지역본부를 갖고 정당이 지구당을 갖듯이 의료문제로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져보려고 했던 건데 그 조직을 만드는 토대가 바로 의제였던 거죠.
그다음에 한국에서 노동자를 주체로 형성시키는 문제는,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열되어 있는데, 고용보험을 의제로 삼아 실업연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겁니다. 고용보험을 통해서 실업에 처한 모든 이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자는 운동으로요. 이것도 하나의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 의제 그 자체를 얻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제를 매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이고 또 가령 병원비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그 안에서 또 모이게 되지요. 지금은 다들 세금 내는 걸 싫어해서 아주 소수의 운동이긴 하지만, 점차 사람들이 재정 없이는 내 복지를 더 확대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나아가 내 자식에게 나중에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다는 사명감이 생기리라는 차원에서 아예 복지에만 쓰는 세금을 내자는 복지목적세 네트워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거예요. 다수정치가 가능한 의제라는 거죠. 이런 식으로 21세기 혹은 2015년 한국에 있어서는 서구와 전혀 다른 복지동맹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정당과 노동조합뿐 아니라 자기 의제를 가진 다양한 네트워크 조직이 활성화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선거처럼 정치적 계기가 주어졌을 때 화학적 폭발이 일어나겠죠.
조성주 저는 원래 대중의 주체화에 노동조합이 환골탈태해서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정말 오래 걸리는 일 같더라고요. 노동조합이 당면한 문제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오건호 위원장님 말씀처럼 가벼운 조직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건호 역동적인 조직이라고 해주세요.(웃음)
조성주 그런데 저는 의제형 조직이라도 그 조직을 대표하는 당사자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노인, 사회복지사 등이 자기 의제를 계속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 조직들이 많이 생겨서 서로 연대하는 게 필요합니다.
장석준 오위원장님이 추구하는 방향은 지금 전세계의 보편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같은 경우도 기존의 노동운동 세력이 아니라 광장을 점거해서 시위하는 청년층, 주로 SNS를 통해서 동원된 집단이 사회변화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경제위기로 젊은 세대가 비정규직과 실업의 고통을 떠안는 것, 그리고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한 부패한 기존 정치가 이를 해결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저항운동이죠. 다만 서유럽이 조직노동을 중심으로 한단계 성취를 하고서 그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뭔가를 쟁취해본 경험도 없는 가운데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한계가 많음에도 결국 조직노동운동을 변형시키는 과제를 방기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정치세력이 구성된다 했을 때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민주노총의 경제적·조합적 이해에 끌려다녀서는 대안세력이 될 수 없겠지만, 또 반대로 민주노총의 유기적인 지지를 받지 않는 정치세력이 성공할 수도 없을 거라고 보거든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얘기인데, 정규직이랑 비정규직처럼 서로 다른 계층의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를 최대한 접합시켜서 한층 넓은 복지동맹을 구축하는 게 한편의 분명한 과제라면, 또하나 강조해야 될 건 그런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대립전선을 명확히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연대는 그것을 통해서 제약되어야 할 세력이나 원칙을 극복과제로서 명확하게 제시했을 때 더 생동감있게 구축되는 역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맞서야 할 세력을 분명하게 적시하는 게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대상은 결국 재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여러 소득은 사회 전체가 동원돼서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이윤이 최종적으로 축적되고 그것이 권력으로 바뀌는 장소는 대단히 협소한 대기업이나 재벌,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거대자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은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이 됐음에도 그 부를 분배해서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장애물이기 때문에 반재벌 복지동맹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정치적인 언어로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대중의 선택지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백영경 사회적 연대란 그것을 통해 제약되어야 할 세력이나 원칙이 극복과제로 명확하게 제시되었을 때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은 우리 사회의 의료문제에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상의료나 ‘건강보험 하나로’ 같은 논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큰 병원에서 최신 의료기기로 치료받는 걸 좋은 의료라고 여기는 현실에서는 지금의 제도로서 어떻게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의료는 유독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영역이고, 그런 개인의 욕구에 제약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심한 편이죠. 이미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강화되어 의료공급체계는 거의 무너진 상태인데, 이렇게 된 데는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의료 부문을 무시한 채 의료의 산업화를 추진해온 의료정책의 상당부분 의도된 실패의 책임도 있습니다만, 동시에 첨단기술이나 신약 위주의 의료를 좋은 의료로 여기는 일반인의 선택이라는 요인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환자나 의료소비자 개인에게 무조건 제약을 가하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보면, 결국 의료 의제에서도 역시 나의 건강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라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겠지요. 사실 한국의 의료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면서도, 의료선진화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고 대형병원 유치나 의료관광 진흥 역시 지자체 단위에서는 일단 중요한 발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서민층이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용이나 취약한 보장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윤이 날 수 없는 필수적인 의료의 공급이 중단되는 문제, 의료생태계가 무너져서 적정진료를 하는 의료공급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문제 등이 함께 제기되어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의료생협처럼 의료공급체계에 개입하면서 좋은 의료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의료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및 방향선회도 필요하지만, 이를 지지하고 실현할 수 있는 시민적 주체의 형성이 절실합니다.
청년세대를 어떻게 세력화할 것인가
백영경 이제까지 복지를 이루기 위한 동맹의 구축, 정치세력화 얘기를 하면서 의제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씀들을 강조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복지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지는 여전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청년세대를 어떻게 세력화할 수 있을까요?
조성주 두가지 방향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아까 이야기했던 것의 연속선상에 있는데, 우리가 복지에 대한 담론이나 정책을 만들 때 세부 설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세대 간의 지속성과 형평성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특히 복지는 세대 간 충돌 위험성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운동 당사자들이 열악한 현실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청년운동을 예로 들면 지금까지 몇년간의 방향은 청년들이 이렇게 노동시장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렇게 비참하다는 걸 드러내는 활동 중심이었어요. 이제는 운동조직들도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회로 갈 것이냐, 예를 들면 차별받는 노동권의 문제를 해결하면, 혹은 최저임금을 올린 다음엔, 안정된 주거를 획득하고 나면 그다음에 어디로 갈 거냐는 거죠. 그게 저는 복지국가, 복지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이 어렵다, 힘들다고 드러내는 운동도 계속해야죠. 여전히 힘든 청년들이 구석구석에 많으니까. 그걸 하되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이제 얘기할 때가 됐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복지 논의가 이만큼 가고 있는데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청년들은 계속해서 당할 거예요. 향후에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므로 이 논의에 청년의 이름으로 스스로 뛰어들자는 겁니다.
장석준 아마도 그런 청년세대의 불신, 그리고 청년세대만이 아니라 중장년조차 지닌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의 핵심에는 국민연금 문제가 오래전부터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기초연금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더 확산된 노후소득에 대한 불안을 복지제도가 가시적으로 해소해주는 역사적 경험이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운동세력이 기초연금,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인 노후소득 보장 문제에 당분간 전력투구해야 나머지 복지제도가 합리적으로 풀려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오건호 국민연금은 낸 사람만 연금을 받는다는 것과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아간다는 두가지 문제가 가장 큽니다. 전자는 사각지대를 낳고 후자는 후세대에 부담을 전가하죠. 세대 내 역진성과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노후복지를 설계하면서 국민연금을 더 강화하자고 얘기하는데, 받을 것은 계속 올리자고 하면서 낼 것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주장을 현재 세대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세대 간 연대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어요. 정의롭지 못한 강요죠. 여러차례 얘기가 됐습니다만, 윗세대가 청년세대를 대할 때, 특히 연금을 중심으로 한 노후복지에 있어서는 세대 간 지속 가능성, 형평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안이하게 나가다가는 진짜 세대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외람된 말이긴 한데, 한국의 시민사회나 복지세력이 갖고 있는 시대적 한계인 것 같기도 해요. 거의 모든 복지의 재정구조는 부과방식, 즉 그해 세금으로 그해에 감당하는 거예요. 그런데 노후복지, 연금복지만 30년에서 50년의 시간 차이가 나죠. 내는 것과 받는 것에 시차가 존재하는 이런 복지를 우린 아직 접해보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에서는 연금복지가 큰 축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금 거두고 바로 받는 복지가 아니라 내더라도 한참 후에 받는 복지, 이러한 복지의 지속 가능성도 유념해야 해요. 지금 우리는 조금 내면서 많이 받을 걸로 설계하는 거예요. 현재 세대의 도덕적 안이함도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시민사회도 연금복지에 대해서 앞서 말씀드린 세대 간 연속성을 감안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백영경 이제까지 복지정책이 정규직 위주, 가족 위주로 시행되다보니 청년들에게서 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다른 세대에서도 이러한 정책 방향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지정책의 정규직 중심성이나 가족 중심성을 탈피하는 것은 단순히 청년세대를 복지동맹의 주요세력으로 끌어들인다는 차원을 넘어서 어떻게 복지 현안에 대한 지지세력을 더 넓게 구축할지, 더 많은 사회적 영역을 포괄할지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단기적인 과제와 장기적으로 추구할 일들을 함께 얘기했는데 당장 무엇을 할지, 혹은 가장 강조하고 싶으신 것으로 마무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건호 이제는 보편복지를 지지하고 지향하는 세력이라면 세금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여야 간 진영논리가 워낙 강하게 작동하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조세저항을 유발하는 정치가 작동했는데요. 이번 연말정산 같은 경우도 무상보육 확대에 따라 자녀 관련 세금공제가 정비되는 합리적 조치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자녀 관련 정부정책의 제도 간 유기적 연관성을 높이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복지에 의해서 계층 간에 세부담이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그게 더 정의롭다는 것, 계층적으로도 서민들이 더 유리하다는 것, 복지를 늘리려면 이런 방식을 더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돼야 합니다. 얼른 다 설득이 안되더라도 복지를 지향하는 세력이라면 이런 노력을 해야 돼요. 당장 사람들이 세금 싫어하고 정부 싫어하니까 거기에 편승하는 건 안됩니다. 과거에는 세금이 무조건 악이었지만 저는 지금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세금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에 대한 체험이 쌓이면서 이걸 지속 가능하게 받으려면 재정확충이 필요하다는 걸 같이 느끼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조세책임감을 더 북돋는 방식의 전향적인 증세정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다수 시민들이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자신의 소임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또 이렇게 해야 부자들에게 조세압박을 가하는 사회적 힘이 마련될 수 있어요.
장석준 딱 하나를 말해야 긴급과제라는 임팩트가 확 오는데 줄이고 줄이다 안돼서 결국 3대 긴급과제를 말하려 합니다.(웃음) 첫번째는 비정규직을 어떤 식으로든 줄이고 임금을 인상하는 겁니다. 둘째는, 처음에 복지국가 만들기에 접근하는 데는 아예 없는 제도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제도를 좀더 좋게 만드는 것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건강보험, 현행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기존 제도를 보편복지의 원칙에 맞게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과 주택시장 안정화입니다. 교육과 주택 위주의 가계지출, 특히 중간층 가계의 지출구조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좋은 삶에 대한 한국사회의 가장 밑바탕에 깔린 의식을 바꾸는 것이고 세원을 확보하는 기술적인 접근이기도 하며 사회 전체적인 에너지를 좀더 바람직하게 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개별 가구 간의 경쟁이 아니라 복지라는 집단적인 방식으로 노후소득 등을 해결해가도록 하려면 이 세가지가 병행되어야 하고, 이들 과제를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세력이 한국 복지정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성주 저는 주변부 노동,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이라도 소수의 중심 외부에 있는 이들까지 포함한 노동시장에 대해 빨리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복지의 긴급한 수혜자가 되어야 할 주변부 노동은 최저임금 수준에 있고, 그마저도 굉장히 낮습니다. 그러다보니 열악한 노동시장이 복지확대에 계속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가 확대되는 속도, 그리고 복지운동세력이 증세정치 수준까지 담론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노동시장 쪽이 못 쫓아가는 것 같아요.
백영경 복지강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중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성장을 위한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복지로 돈을 풀어야 하고, 실제로 복지를 통한 성장이 가능한 시점에 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타당한 지적입니다만, 이제까지 중산층이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여겨온 여러 조건을 그대로 놔둔 채 복지의 확대를 통해 기존 삶의 방식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그건 맞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치게 담론 차원에 머물러왔던 복지 논의를 구체적인 의제 차원에서 진행시키고 그를 통해 정치세력화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것은 오늘 대화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복지에 깔린 철학을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다른 삶, 다른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을 정립하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모두가 구체적인 현장에서 절실한 작업이라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5.1.20. 세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