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과 현장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글로벌협력대학 교수, 경제학. 저서로 『개방화 속의 동아시아』(공저)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한국형 네트워크 국가의 모색』(공저) 등이 있음. ilee@hs.ac.kr

 

 

1. ‘동아시아-한반도’라는 관점의 중요성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급한 불을 끄는 데 힘을 썼지만, 근본적으로 믿음을 주는 대책은 나오고 있지 않다. 2008년 위기는 주로 미국의 금융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미국 달러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신고전파 수리경제학자들의 헤게모니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당면한 현실문제로 등장했다.

‘장기침체’ 개념은 대공황기인 1938년 앨빈 한센(Alvin Hansen)이 제기한 바 있는데, 20142월 래리 써머즈(Larry Summers) 전 미국 재무장관이 이를 다시 언급하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970~90년대에 주요 선진국들의 명목 GDP 성장률은 8%를 상회했는데, 지난 10년간은 4% 이하로 떨어졌다. 2차대전 이후의 인구성장, 금융적 팽창과 낮은 이자율에 기초한 성장 추세가 꺾이는 것은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1)

선진국들의 침체상태는, ‘위기’의 심화와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역사사회학자들의 논의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미래를 단순하게 확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군사적·정치적 네트워크의 상호작용이며, 다양한 지정학적 범위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행위라는 변수도 있다는 것이다.2)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생산네트워크는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주요 선진국들이 침체를 거듭하는 동안 동아시아는 세계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소였다. 중국과 한국은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충격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넘어선 바 있다. 그러나 추세를 보면 2010년경 이후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세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5년초 현재 미국 경제에는 바닥을 쳤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유럽과 일본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동아시아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점차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졌다.3)

한국은 저성장 추세가 더 뚜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전()산업생산은 2013년에 비해 1.1% 증가했다. 그런데 이는 5개 산업군을 포괄한 전산업생산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또한 2014년 광공업 생산증가율은 0%로, 2009년에 -0.1%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내려갔다. 이에 대해 한국의 산업엔진이 멈췄다는 자극적인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좋은 의사는 예견과 치료 능력을 두루 갖추는 법이다. 경제를 다루는 데에도 이런 능력이 필요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변수들이 정확하게 계산되고 예측될 수 있다는 관점은 신고전파 우파 경제학이나 국가사회주의 좌파 경제학이 공유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들의 예견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전제로 했다. 신념에 기초한 예측이 너무 자주 빗나가면 그 신념의 효용성은 오히려 약화된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복잡해져서 그 본질적 추세를 논의하는 것도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정학적 범위에 따라 서로 다른 과제와 시간대가 설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단계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는 격차 확대와 대침체의 불안이다. 그런데 성장과 분배에 관해서도 어느 위치와 어느 범위에서 문제를 보는가에 따라 진단과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한 국가 차원에서, 또는 세계 전체의 범위에서 문제를 볼 때 해결책이 묘연해질 수도 있다. 필자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동아시아-한반도’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1990년대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연결된 한국 및 한반도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파악하면서, 새롭게 전개된 자본주의 환경에 대한 적응과 개선·극복의 방향을 생각해보려 한다.

 

 

2. 1990년대라는 전환점

 

우선 한국의 경제현실부터 짚어보자. 먼저 분배상황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1970년대 이래 불평등이 심화되었는데, 한국은 이와 달리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세계적 추세에 합류했다. 가구소득 분배가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악화 추세로 전환했고 외환위기 이후 가파르게 나빠졌다. 성장률 추세는 특정 시점을 확연한 전환의 계기로 잡기가 쉽지 않다. 1997년 위기, 2008년 위기가 성장 추세에 충격을 주었지만 곧이어 반등세가 나타났다. 성장률 수준으로 보면, 80년대 중반까지는 고성장 단계, 80년대 후반~2000년대 중후반은 중간성장 단계라 할 수 있고, 2008년 이후에는 저성장 단계로 진입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4)

분배와 성장의 추세 변화와 관련하여 흔히 글로벌화, 기술변화, 노동시장 제도변화 등의 요인이 다양하게 거론된다. 그런데 이러한 요인들 모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지도 문제고, 각 요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이러한 요인들을 통틀어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같은 개념으로 지칭한다면, 그것을 통해 어떤 실천적 대안을 끌어낼 수 있을까. 시장기능을 제한하는 대책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으며 그러한 대책으로 과연 성장과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잘 드는 칼로 싹 베어낼 수 있도록 환부가 분명한 것이 아니라면, 성장, 분배, 기술, 제도 등 여기저기를 좀더 살피고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흐름이 잡히는 것은 산업구조 쪽이다. 한국의 성장 및 분배와 가장 강력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1990년대 전반에 진행된 산업구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통계상으로 1988년까지는 제조업 성장이 국내 성장을 견인했다. 그런데 1988~93년에는 제조업 성장이 전체 성장률과 서비스 성장률을 밑도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1993년 이후에 다시 제조업 성장이 전체 성장률보다 높아졌다. 서비스업이나 농업이 전체 성장을 견인하는 위치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그러니 1988~93년 시기에 제조업 내부에 어떤 구조변화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종전과는 다른 내용의 성장 패턴을 만들어냈다고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전반기는 한국경제에 새로운 구조변화가 이루어진 전환점이었다. 이는 성장요인으로 거론되는 거시경제 지표를 통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 1970년대의 성장은 국내투자와 해외부문 비중의 동시적 상승 결과였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잠시 동안 국내투자 비중은 여전히 증대되는 반면 해외부문 비중은 하락하는 내수주도형 성장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던 국내투자율은 1991년에 정점을 기록한 이후 하락했고 1997년 이후 다시 급락했다. 국내투자율 하락을 메꿔준 것은 해외부문이었다. 수출입 비중은 1993년도에 저점을 기록했다가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1997년 위기와 2008년 위기시에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5)

1990년대 전반을 거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했다. 산업생산 부문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형성되었고 이는 해외부문과 견고하게 연결되었다. 주기적인 위기 속에서 국내소비나 투자가 위축될 때에도 해외부문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입어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한국의 산업과 성장의 구조가 변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해외부문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글로벌화와 기술변화를 따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제학의 계량분석 모델에서는 굳이 이렇게 분리를 한다. 그리고 이 모델에 기초한 많은 분석결과는 한국의 불평등이 기술변화보다는 개방으로 인한 임금불평등 때문이라고 말한다.6) 이런 논의들은 개방을 제한하자는 치료책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물론 임금제도는 불평등 심화를 막기 위한 중요한 정책수단의 하나다. 그런데 개방을 제한하면 임금이 오르고 경제성장이 되는 식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임금과 소득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좋겠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리할 수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흔히 위기 이후 대외의존도가 높아지고 국내부문과 해외부문의 격차가 커진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위기는 문제 그 자체이지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침체가 장기화하고 성장세가 회복되지 못했다면, 분배구조는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1990년대 이래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구조는 해외부문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출이라는 강력한 엔진이 더 힘차게 가동되기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갑자기 국내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 것도 힘든 일이다.

 

 

3.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진전

 

한국 자본주의는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구조로 전환했다. 80년대말~90년대초 잠시 내수주도형 모델의 징후가 나타났으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혹자는 그 시기로 돌아가서 개방을 막고 과거의 모델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1990년대 이후의 변화는 한 국가 차원의 정책 몇개로 그 흐름을 역전시키기는 어려운 거대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전환은 일국 차원에서 고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에는 세계경제 그리고 각국 국민경제와 일정하게 구분되는 자신만의 네트워크형 생산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생산·무역에서의 네트워크는 이동·이주의 증가를 가져왔고, 중국의 역할이 한층 확대된 시장·금융제도를 형성하려는 힘이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1990년대 이래 글로벌 생산분업(production sharing) 또는 글로벌 생산네트워크가 진전되었다. 이러한 분업 또는 네트워크화는 제조업 가치사슬의 글로벌화와 관련되어 진행되었다. 가치사슬이란 제품과 서비스 생산에 필요한 비즈니스 활동의 연쇄적 체인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가치사슬의 활동이 국가와 지역 차원의 경계를 넘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가치사슬의 글로벌화에 의해 생산과정은 여러 단계로 분할(fragmentation), 수행된 후 다시 최종생산물로 모아지는 글로벌 생산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네트워크 생산에는 동일한 생산물에 여러 국가가 관계하고, 국가 간에 중간재 투입의 흐름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현황을 정밀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국가별 자료를 재조립하여 부분·부품무역의 실태를 파악하는 식으로 흐름을 짐작해볼 수는 있다. 이에 의하면, 1990년대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가 크게 진전되었고 이에 따라 글로벌 분업의 중심은 선진국에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미국과 멕시코,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생산과정 분할은 선진지역에서 후진지역에 중간재를 보내 최종재로 조립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는 개방된 네트워크 형태로 산업집합체를 형성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7)

동아시아에서 생산네트워크는 이제 일반인에게도 체감되는 익숙한 생산방식이 되었다. 한국, 대만 기업들은 중국의 장강(長江)과 주강(珠江) 삼각주,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 최종조립품 공장을 짓고, 또다른 곳에서 원료와 중간재를 조달하고 있다. 90년대초 시점에서 제조업 수출품 중 네트워크 산품 비중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고 그다음이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본의 비중은 정체하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 한국, 대만의 네트워크 산품 수출 비중이 증가했다. 중간재 수출 비중은 한국, 대만, 아세안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중국의 중간재 비중 증가세도 뚜렷하다. 이는 특화 패턴이 지역 전체에 개방적·복합적으로 중첩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생산네트워크를 핵심으로 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진전에 동력을 제공한 곳은 아세안과 중국이다. 생산네트워크의 형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FTA(자유무역협정) 네트워킹이었는데, 동아시아 FTA시스템의 센터 역할은 아세안이 맡았다. 아세안은 90년대초에 자체적으로 FTA체제를 수립했고, 2000년대를 통해 동북아 국가는 물론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도 FTA를 체결했다. 아세안이 FTA네트워크를 주도하면서 생산네트워크 형성에 우호적인 제도환경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8)

또하나의 결정적인 동력은 중국이 글로벌 생산분할에 유리한 요소를 공급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각국의 발전단계가 각각 달라서 다양한 분업을 가능케 하는 노동공급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중국은 거대한 노동력 창고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동부·동남부 연해지역은 정책체제, 의사소통체계, 물류 등에서도 비용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중국이 저비용으로 조립 역할을 수행해주자, 전체적으로 생산과정 분할의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세계 각국에는 경쟁이 격화되고 산업공동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해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는 플러스썸 게임의 양상으로 진전되었다. 중국이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에서 주요 조립센터 역할을 맡게 되면서 중국의 중간재·자본재 수입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분·부품 생산활동에 특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세안과 중국이 동력을 마련한 생산네트워크의 확장으로 글로벌 생산분업에서 동아시아의 역내 네트워크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동아시아가 세계에 의존하는 정도는 감소하게 되었다. 네트워크 무역 안에서 부분·부품무역은 최종재 무역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한국 및 대만과 산업기반을 지닌 아세안 국가들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 속에서 상호간 무역이 증가하면서 1990년대 초반 이후 중국, 한국, 대만의 무역액이 급속히 증가했다. 일본과 미국에 집중되었던 중국의 무역은 한국, 대만, 아세안 등으로 분산되었고, 이들은 각국에 특수한 비용우위 조건에 따라 중간재·자본재 생산기술을 발전시켰다.9)

 

 

4.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편중성과 위계성

 

1990년대 이래의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는 한국, 중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에 생산·분할의 이익을 제공했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적 개방으로 동아시아 및 한국 경제가 위기와 고통을 겪었다는 주장은 꽤 널리 유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현상을 차분하게 골고루 관찰한 진단이 아니다.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와 함께 위계적이고 집중적인 성격을 지닌 네트워크 확대라는 요소도 가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세안의 FTA 추진, 한중수교, 중국의 WTO 가입과정 등은 생산분할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했다. 특히 한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과 긴밀한 생산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많은 기업이 생산과정의 일부를 중국으로 옮겼고, 국내에서 생산한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과 한국 경제는 함께 성장했고, “중국의 수출이 1%포인트 늘어나면, 우리의 대중국 수출은 0.4%포인트 늘어난다”는 명제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벗어나는 데는 중국과 연결된 성장의 고리가 큰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생산과 무역에서의 혁신을 통해 발전했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많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산업간·지역간 분포에서 매우 비대칭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생산네트워크가 앞서서 형성된 산업은 주로 전자·기계 부문이고,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데도 꽤 높은 문턱이 존재한다. 2007년 기준으로 제조업 무역 중 기계공업 무역 비중을 보면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이 70% 이상이고, 태국과 홍콩을 포함한 중국이 5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20~30% 수준이고, 인도는 20% 이하로 매우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생산네트워크가 지역 전체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 편중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0)

추세를 보면 중국으로의 네트워크 집중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수출·수입품에는 기계전자제품, 첨단기술제품, 자동계산설비 및 부품이 수출입 10대 품목에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특히 기계전자제품, 첨단기술제품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11) 중국으로의 네트워크 집중은 최근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 문제가 크게 관심을 모은 것은 삼성전자의 실적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의 주력제품인 스마트폰은 2011년부터 판매량 세계 1위를 기록 중인데, 중국시장에서도 1위를 지키다가 20148월 중국업체에 밀려 점유율 4위로 내려앉았다.

또한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를 주도한 것은 위계적 대기업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생산을 분할하고 이를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중국의 경우 대규모 국유기업이 기업 확장과정에서 기업활동의 가치사슬을 확장하는 한편, 보호된 시장을 기반으로 한 벤처형 민영기업이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속에서 혁신 대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씰리콘밸리가 독자적인 벤처생태계를 형성하면서 발전했다면, 동아시아의 벤처기업은 전반적으로 국가의 지원체제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중국에서 글로벌 민영 대기업이 급속히 성장한 영역은 국가 차원에서 기술·제도·문화적 표준 설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들이다. 중국은 인터넷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국가가 개입하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을 견제해왔다. 중국 IT기업의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바이두(百度)나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은 모두 씰리콘밸리 모델을 모방한 후 중국정부의 적극적이고 묵시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국시장에서 구글과 이베이를 축출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샤오미(小米)도 제조기술보다는 소프트웨어 쪽에 핵심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신장비 제조에서 생산분할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는 화웨이(華爲)인데, 이 경우는 국가지원과 더욱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화웨이는 인민해방군 출신인 런 정페이(任正非)가 설립한 민영기업으로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제조가 주력사업이다. 화웨이는 제조의 대부분을 아웃쏘싱하며 R&D를 비롯한 핵심기술에 집중하여 기술력을 키웠다. 그 결과 CDMA(코드분할 다원접속), GSM(유럽이동통신 표준), LTE(고속무선데이터 통신규격) 기술에서 삼성전자와 노키아에 다가서게 되었고, 중국의 통신기술 표준 설정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의심하는 것처럼 화웨이가 중국 군부와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중국정부의 지원이 고속성장의 주요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가 비대칭적이고 위계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는 생산네트워크가 지역 내에서 자기완결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도 작용한다. 중국만 보더라도 종래에 비해서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과의 무역 비중이 늘었지만,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제품 판매시장의 경우 그 의존도를 낮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에너지와 식량의 외부의존은 훨씬 더 구조적이다.

 

 

5.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떠한가

 

경제전망에는 항상 ‘불확실’이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된다. 미국은 어떻고 유럽은 어떻고 또 중국은 어떻고 하는 식의 전망이 많지만, 늘 미래는 혼란스럽다는 단서가 붙는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미국경제가 추락세로 흐르지는 않고 중국의 성장둔화는 관리되는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동아시아 경제가 가까운 시일 어느날 갑자기 몰락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판단에는 그간의 과정에서 나타난 동아시아의 역동성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는 ‘혁신’의 동태적 과정의 산물로, 유명한 슘페터( J. A. Schumpeter)의 언급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모습을 띤다. “국내외의 새로운 시장의 개척 (…), 조직상의 발전은 부단히 옛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부단히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혁명하는 이 산업상의 돌연변이생물학적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면의 동일한 과정을 예시한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과정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본질적 사실이다.”12)

경제적 차원에서만 보면 동아시아는 서구에 비해서 좀더 성공적이고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자본주의’에도 경제적·이데올로기적·군사적·정치적 네트워크의 상호작용 속에서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에너지·식량의 절대적인 부분을 지역 외부에서 구하고 있다. 이들의 무역에는 국가개입의 정도가 강하고 해군력을 포함한 정치·군사적 요소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에너지와 식량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격화되면 ‘동아시아 자본주의’를 지탱했던 여러가지 네트워크가 붕괴될 수도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동아시아 자본주의’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마이클 맨(Michael Mann)은 자본주의에 대해 있을 법한, 가능성 높은 두가지 대안적 미래를 말한 바 있다. 하나는 구조적 고용이 높이 유지되면서 2/3는 고숙련 정규직 종사자로 살고 1/3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회의 씨나리오다. 다른 하나는 저성장하는 자본주의로 안정되면서 평등성을 확산하여 하층계급이 10~15%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13) 동아시아의 경우에도 비슷한 틀로 씨나리오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씨나리오 사이의 차이가 서구에 비해 좀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더 역동적인 혁신도 가능하지만 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부딪칠 수도 있다.

바닥 쪽으로 굴러 아랫길로 가면, 서구보다 더 고통스러운 미래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진행된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확장이 무한 반복될 수는 없다. 현재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면 네트워크의 편중성과 위계성이 더 강화되면서 성장력은 감소하게 된다. 일본은 1%의 성장률로도 그럭저럭 운행할 수 있으나 중국, 동남아, 한국은 저성장의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발전단계가 낮은 상태에서 좀더 평등한 방식으로 성장과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면, 1/3만 포용하고 2/3는 배제하는 불안정한 격차사회가 구조화된다. 인구의 2/3가 실업자,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로 존재하는 사회를 유지하려면 억압적인 기구를 작동시켜야 한다. 이런 체제는 우연적 사건들이 겹치면 돌연히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좀더 위쪽으로 뛰어오르는 길도 생각해보자. 먼저 케인즈( J. M. Keynes)의 길이 있다. 각국 정부가 긴급한 구제나 경기부양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임금제도나 사회보장제도를 꾸준히 개선해가도록 한다. 그리고 케인즈를 보완하는 폴라니(K. Polanyi)의 길이 있다. 폴라니는 시장의 틀 속에 있던 토지·노동·화폐를 시장 바깥에 있는 국가나 사회의 틀에 맡기는 것을 구상했다. 그런데 가시적인 시간 범위 내에서 국가나 사회공동체가 시장경제를 전면 대체할 정도의 능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케인즈와 폴라니가 말하지 않은 부분, 즉 시장경제와 기업의 ‘창조적 파괴’에 대해서는 슘페터의 길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는 시장·국가·사회 차원에서 ‘새로운 연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슘페터의 길은 지속적 성장을 통해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 슘페터적 혁신은 누가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따라 케인즈, 폴라니의 길과 충돌할 수도 있고 서로 보완관계에 있을 수도 있다. 슘페터적 혁신이 계속되다가 혁신의 여지가 사라지는 한계에 다다르면, 그때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14)

 

 

6. 네트워크 혁신과 ‘한반도경제’

 

현재로서는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가 평등성을 높여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네트워크는 위계·권위에 입각한 조직과는 구분되는 것이지만, 네트워크의 노드(node, 이음매·마디)들이 모두 평등한 관계인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형성의 법칙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연결은 선택적으로 선호되기 때문에 집중·편중·비대칭의 네트워크가 오히려 일반적이다. 이는 일찍이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이 말했던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가 확인해준다.15)

그러나 네트워크상의 불평등이 독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계를 맺는 특정 상대가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불균형이 누적되면 네트워크로부터 이탈하는 힘도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네트워크는 수평성을 포함한 집중성을 특징으로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 내부의 특정 ‘지역’에 관계들이 집중되는데, 이 ‘지역’은 여러곳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는 지역적으로 클러스터(산업집적지)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계적 관계가 아닌 상호신뢰에 기반한 것이지만 외부로부터의 진입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은 ‘작은 세계’(small world)다. 그러나 ‘작은 세계’는 절대적 기준에서 소규모가 아니고 내부로 닫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서로 ‘약하고 긴 관계’(weak and long tie)를 형성해야 지속과 발전이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슘페터가 말한 혁신의 본질적 요소인 ‘새로운 결합’(new combination)과, 폴라니가 생각한 대안사회로의 ‘거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의 단서가 서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글로벌 분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생산네트워크의 진전 속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는 위계적이고 비대칭적·비완결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좀더 수평적이고 대칭적인 형태로 개선하는 데서 혁신과 전환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는 시장·국가·사회의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에서 제안한 ‘포괄적 아시아개발계획’(CADP)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생산분할의 메커니즘을 물류 및 기타 인프라가 미비한 곳의 개발을 돕는 계획과 연계하자는 것이다. 또 중소 규모의 기업들이 생산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16)

네트워크 이론에 의하면, 네트워크에는 연결되지 않은 ‘구조적 공백’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연결하게 되면 정보흐름을 장악하는 이익,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단을 통제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17) 그런데 한반도 주변에는 네트워크의 집중과 함께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않은 빈 공간이 있다. ‘위계·집중’ 형태의 동아시아 네트워크는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른 네트워크 편중, 에너지·식량 부문에서의 과도한 역외의존, 동북아에서 제도적 네트워크의 상대적 부진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경제’는 ‘수평·분산’의 방향으로 네트워크를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

‘한반도경제’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방안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뒤로 미루고, 큰 그림을 구성하는 골격을 몇가지만 제시해보자.18) 첫째, 제조업 부품소재장비 공급업체의 글로벌 네트워킹 능력 향상이 관건이다. 또한 서비스업과 농업 부문에서도 부문 간 연결을 통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중앙정부는 지역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전문화된 로드맵을 제시하고 지방정부는 이에 주도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공백을 채우는 새로운 네트워크 개념으로서 한반도 네트워크 국토공간을 형성한다. 넷째, 한반도경제 네트워크의 노드로 우선 개성-파주-서해의 신수도권, 전남북-제주-남해의 서남권, 두만강 유역-동해의 동북권을 형성하도록 한다.

대우주와 소우주가 서로 대응한다는 것은 옛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믿었던 신앙이다. 오늘날에도 병든 인간, 병든 사회, 병든 자연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참고하면, 네트워크를 해부학적 조직구조가 아니라 유체(流)로서의 기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면 한반도의 인간, 사회, 자연에는 이물(異物)이 적체되어 응어리진 부분들이 참 많다. 이때 치료의 핵심은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푸는 것(通廢解結)이다. 이에 비추어 위기에 대한 치유책은, 네트워크라는 기능을 통해 ‘한반도경제’라는 구조를 새롭게 만드는 혁신과 전환이라고 말하고 싶다.

 

 

--

1) Lawrence(Larry) H. Summers, “U. S. Economic Prospects: Secular Stagnation, Hysteresis, and the Zero Lower Bound,” Business Economics 49(2), 2014; “Secular stagnation: The long view,” The Economist Nov. 3rd 2014 (http://www.economist.com/blogs/buttonwood/2014/11/secular-stagnation).

2)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세계시장의 과포화 상태와 투자의 사회적·생태적 비용을 거론한다. 랜들 콜린스는 정보기술의 진전과 중간계급의 구조적 실업이 자본주의의 정치적·사회적 완충장치를 제거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마이클 맨은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있을 수 있는 대안 제시에 중점을 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성백용 옮김, 창비 2014를 참조.

3) 미국은 2014년 1분기에 마이너스 2.1% 성장률로 추락세를 보였지만, 이 추세는 다시 반전했다. 2014년 2분기 4.6%, 3분기 5.0% 성장이라는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었다. 2014년 4분기에는 2.6% 성장으로 주춤했지만, 2015년 안에 3% 성장률과 완전고용을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강하다. 중국은 2014년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7.4%로 확정해서 발표했다. 이는 공식 집계가 시작된 1990년 이후 24년 만의 최저 성장률이다. 중국정부는 경제가 ‘뉴 노멀’(new normal, 新常態) 상황에서 안정된 상태로 발전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성장둔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공언한 것이기도 하다(졸고 「‘성장 엔진’이 꺼지지 않으려면」, 경향신문 2015.2.5).

4) 1970년대말~80년대초의 위기 이후에는 1986~95년이 상당히 긴 성장의 고원지대를 형성했다. 1997년 동아시아위기 이후에는 2000~2007년 기간 동안 5%대를 중심으로 등락하는 추세였다. 그리고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하락과 반등 이후에는 3%대 전후의 성장률이 고착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5) 국민총소득에 대한 수출입액 비중은 1993년도에 52.6%, 1998년 80.8%, 2008년 110.7%를 기록했다.

6) 전병유 「한국사회에서의 소득불평등 심화와 동인에 관한 연구」, 『민주사회와정책연구』 23호, 민주사회정책연구원 2013, 21~22면.

7)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에 대한 서술은 졸고 「글로벌 생산분업과 한국의 경제성장: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와 한반도 네트워크경제」 제3~4장(『동향과전망: 한국사회연구』 93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2015)에 의거함.

8) 아세안이 FTA네트워크를 주도하는 동안 한국, 중국, 일본 사이는 동아시아 FTA네트워크의 큰 구멍으로 남아 있었다. 2014년 한중FTA 타결선언은 그 구멍이 메워지는 의미가 있다. 한··일 간 FTA가 지연되고 한미FTA와 한-EU FTA가 먼저 체결된 과정은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가 지역 내로 완결될 수 없는 경제적·정치적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9) Prema-chandra Athukorala, “Production Networks and Trade Patterns in East Asia: Regionalization or Globalization?,” ADB Working Paper Series on Regional Economic Integration No. 56 (2010); Fukunari Kimura and Ayako Obashi, “Production Networks in East Asia: What We Know So Far,” ADBI Working Paper Series No. 320 (2011). 한국은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진전에 따른 이익을 가장 많이 취한 경우 중 하나다. 한국의 전자·기계산업과 기업들은 생산네트워크 속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추격에 성공했다. 중국의 수입액 비중을 볼 때, 한국은 1995년 7.8%, 2005년 11.6%, 2013년 9.4%를 기록했다. 2013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무역파트너 중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가장 컸다. 서구 선진국 중에서는 독일이 중국과의 생산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경우에 속한다.

10) Fukunari Kimura and Ayako Obashi, 앞의 글 10~11면.

11) 2012년 수출액을 보면, 기계전자제품이 1조 1793억 달러, 첨단기술제품이 6012억 달러를 기록했다. 10대 수출품목에 경공업 제품으로는 침직(針織)·편직 의류제품, 비()침직·편직 의류제품, 가구제품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수출액 규모는 각각 780억, 550억, 488억 달러 수준이었다.

12)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변상진 옮김, 한길사 2011, 184면.

13) 마이클 맨 「종말이 가까울지 모른다, 그런데 누구에게?」,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174~87면.

14) 이것은 슘페터가 말한 핵심 테제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없는데, 실패 때문이 아니라 성공 때문에 붕괴한다. 자본주의의 성공이 토대를 침식하여 ‘불가피하게’ 그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슘페터, 앞의 책 149~51면.

15) ‘마태복음 효과’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성경 구절(마태복음 25:29)로부터 명명된 것이다. 1999년 과학저널 『싸이언스』에 실린 바라바시와 알버트의 「무작위 네트워크에서의 스케일링의 출현」이라는 논문에서는 네트워크는 개별적 특수성과 상관없이 한쪽에 두껍게 형성되는 꼬리를 지닌 분포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 형태라는 명제가 제시되었다. 네트워크의 중심적 성격이 강화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는 것이다. 이원재 「네트워크 분석의 사회학 이론」, 『정보과학회지』(2011.11)를 참조.

16) 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ASEAN and East Asia, “The Comprehensive Asia Development Plan,” ERIA Research Project Report No. 2009-7-1 (2010); V. T Thanh, D. Narjoko, and S. Oum, eds., “Integrating Small and Medium Enterprises(SMEs) into the More Integrated East Asia,” ERIA Research Project Report No. 8 (2009).

17) Ronald S. Burt, “Structural Holes and Good Ideas,” Th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10 (2), 2004.

18) 이에 대해서는 앞의 졸고 34~41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