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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준규 李濬揆
1970년 경기 수원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7』 『반복』 『네모』 등이 있음. naninini@naver.com
여름이고 가을이다
너는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네가 떠올리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지금 네가 떠올리는 것을 솔직하게 쓸 생각은 없다. 너는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너는 무언가를, 그러니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그것이 시적인 이미지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잠시 생각한다. 모든 이미지가 시적인 이미지는 아닌데, 너는 시에는 시적인 이미지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시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한다. 그것은 잠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너는 모종의 말장난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쓸 생각이 없다. 너는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너는 에어컨의 소음을 듣고 있다. 너는 담배를 피우며 커피나무를 보기도 하고 배롱나무를 보기도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하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가거나 편의점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까페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나 다리나 허벅지나 얼굴의 한 면을 보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나오는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도 하고 어떤 자들과 인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너는 네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시와 시를 쓰려는 사람과 이미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과 시를 읽지 않는 사람과 시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과 시에 가끔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시에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지만 소설 생각도 하고 날씨 생각도 하고 너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너의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가끔 세상 생각도 한다. 너는 펜이 종이 위에서 움직이면서 만드는 소리를 듣고 있다. 너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데, 그것을 형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표현할 수는 있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는 정하지 못한다. 너는 어느날 무대 위로 올라간다. 너는 조금 비스듬히 서서 너의 시를 읽는데 고개를 들지는 않는다. 가끔 텍스트에서 눈을 들어 천장을 보기도 한다. 천장에는 디스코볼이 매달려 있고 디스코볼은 돌아가는 것이고 그 디스코볼은 무한한 돎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디스코볼은 미러볼과 거의 같은 것이다. 아니 같은 것이다. 시대와 장소와 관점에 따라 미러볼은 디스코볼이 되기도 한다. 너는 디스코 음악을 좋아한다. 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너는 명연주 명음반인지 명음반 명연주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낮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어떤 날은 참을 수 없어 발작적으로 일어나 라디오를 끈 적이 있다. 너는 때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시끄럽게 흘러나오거나 강가의 자전거 도로에서 낚시하는 노인들이 낚시하러 가는 자전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가장 좋게 여겨질 때가 있다. 너는 낚시하기 위해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며 선장이 틀어놓은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음악은 뱃고동 소리처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음악을 몇시간 들어본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런 음악을 그렇게 오래 듣는 것은 그렇게 유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기보다 지금 문장을 쓰다보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는. 너는 이 글이 시에서 한없이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렇다면 소설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대로 계속 쓰고 있다. 너는 한편의 시에 관심이 없고 한권의 책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에도 관심이 없고 네가 평생 쓸 책들에 관심을 둔다. 너는 이런 글을 계속 쓰다가 죽을 것인데, 어쩌면 대단한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두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다. 너는 이런 글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생각해보는데, 별생각이 없다. 다시. 너는 늘 다시 시작하는 것을 어떤 동력으로 삼는다. 그것이 너의 모터이자 고동이다. 너는 메타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쓸 수 있는 것을 쓰고 있다. 너는 다른 것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만 쓰고 싶다면 너는 이런 것만 쓸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어떤 상투적이기까지 한 낭만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독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느낀다는 것인데, 그것이 습관인지 아니면 너의 타고난 소심함인지 확정할 수 없다. 너는 이 글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너는 더 쓴다. 너는 오늘 비가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제2호 태풍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밤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해가 빨리 지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노을을 보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더 빨리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네게 문학은 여전히 심각한 것이고 시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너는 네가 처음에 떠올린 이미지를 기억하려고 한다. 너는 아마, 늘 떠올리는 이미지들 중 하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누추한 골목인데, 누추한 골목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두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누추한 골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니 토하지 마라,라는 뜻의 글이 씌어 있을 수도 있는,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시멘트 바른 벽이 있는 골목. 너는 그런 골목을 떠올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려다 만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일 수도 있고 치명적인 기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 글과 별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이 글과 상관하는 이미지는 무엇일 수 있을까. 너는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언덕을 오르며 너를 막는 것들을 지나 너는 계속 가고 있다.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들린다. 너는 장애물을 하나둘 통과하고 있다. 너는 모종의 들판을 만날 수 있다. 들판이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기에, 너는 모종이라는 단어를 쓴다. 주체는 영원히 하염없는 것이다. 너는 오랜만에 무언가를 확언하는데, 그러니 잠시 기분이 좋다. 너는 차라리 하나의 관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 하는데, 사실 이미 너는 하나의 관념이다. 네가 눈을 감으면 세계는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사라진다. 네가 눈을 뜨면, 네 앞에 전개하는 것이 너의 유일한 우주다. 이런 사유는 결정적으로 답답하다. 너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데, 너의 이 모든 짓은 너의 작은 세계로 수렴하여 무한이 된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의 관념이다. 웃고, 울기도 하는. 너는 언덕을 그리고 있다. 너는 언덕이 반복되는 들판을 계속 가고 있다. 너는 같은 곳에 있다. 여름이고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