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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수명
1965년 서울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등이 있음. smlee712@gmail.com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발음 연습
검정에서 노랑까지
모든 기호들은 기호들 사이에 있고
기호들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나의 발음이 부서져간다.
나는 턱을 내린다. 지평선 아래로
이제 들판을 내리고 나무를 내리고
그러니 제발 나무 밑에 앉지 마세요
나뭇잎들은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아서
지나가는 동네와 동네 사이에 길게 눕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몸을 모으는 중이어서
나는 어쩌면 실물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내 실물이 너무 넓어서 나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겠지
기호들 사이에 사이가 없어서
정오부터 자정까지 끝이 이렇게 잘 보인다.
끝이 형태에 드리워져 있으므로 모든 형태는 끝인가 보다.
나의 발음이 하나가 되어간다.
나는 지금 동시에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목소리는 녹아서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