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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영준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워크룸프레스 2016

먼 우주가 더 멀어지는 느낌

 

 

전치형 全致亨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cjeon@kaist.edu

 
 
173_526『우주 감각』은 과학의 언저리에 있는 책이다. 기계비평가이자 사진비평가인 저자 이영준(瑛俊) 계원예대 교수는 이 책이 본격적인 과학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전혀 과학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28면). 우주과학을 연구하고 우주탐사기술을 개발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사진을 모으고 편집해서 만든 책이니 일종의 과학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진들을 우주과학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들은 대신 우주과학의 감각을 전달한다. “과학이 만들어낸 감각”이기도 하고 과학에 대한 감각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독자가 과학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과학을 감각하게 한다.

과학과 감각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과학은 주관적이고 오류투성이인 감각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감각보다 숫자를 믿어야 한다. NASA의 연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상적 과학활동에서 과학자는 감각을 억제하고 실험장비에 의존한다. 별의 크기와 거리와 온도를 계산하고, 로켓의 구조와 재료와 기능을 설계하는 일은 그다지 감각적이지 않다. 반면 새로운 과학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확장해왔다. 특히 이 책의 소재가 된 우주과학은 “이미지의 빅뱅” 혹은 “시각의 빅뱅”을 초래했다. 저자는 우주사진을 통해 “망막이 우주적 스케일로 대폭 확장된 것”이라고 평가한다(8면). 직접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나가서 우주를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는 순간, 또 지구 대기권 밖에 허블망원경을 설치해서 우주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 순간, 인류의 감각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인류의 감각적 삶은 허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17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고안한 독특한 사진 분류체계에 따르면 “과학적인 과학사진”에 속하는 NASA의 우주사진들이 “비과학적인 비과학사진”에 속하는 “소위 예술사진”이나 “감성팔이 사진”보다 더 강하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비감각적인 과학활동이 쌓여서 감각의 역사를 뒤흔든 셈이다.

이렇게 생긴 새로운 감각을 저자는 “우주 감각”이라고 부른다. 우주 감각은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의 규모에 대한 감각이다. 한 인간의 생애는 물론 인류의 역사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의 시간, 내 눈에 보이는 세상 전체가 티끌처럼 여겨질 만큼 큰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감각이다. 책에 실린 멋진 천체사진들이 우주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우주 감각은 또 우주를 관측하고 우주에 다가가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대한 감각이기도 하다. 사진과 기계를 비평해온 저자가 이 책에서 더 자세히 전달하고자 하는 우주 감각은 이 두번째 감각, 즉 NASA가 그동안 땅에서 무엇을 만들어 우주로 날려 보냈는지를 느끼는 감각이다. 사실 태양계와 그 너머의 은하, 초신성 등을 찍은 우주사진들은 이 책의 작은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진은 망원경, 풍동(風洞), 항공기 모형, 씨뮬레이터, 우주왕복선과 발사대, 국제우주정거장 등 우주 연구와 탐사를 위해 NASA가 만든 대형 기계와 구조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우주로 나가기 위한 기술의 거대함도 우주 감각의 중요한 요소다.

이 책이 보여주는 NASA의 우주개발 활동은 자연과학이자 “중공업”이다. 지구에서 15만 광년 떨어진 초신성의 잔해 사진과 발사대기 중인 우주왕복선 사진을 한곳에 모아놓으니 이 사실이 선명하게 보인다.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고 지구 바깥에 대한 놀라운 지식을 만들어낸 NASA의 자연과학은 허허벌판에서 거대한 기계를 설계하고 시험하고 조립하고 운반하는 중공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주(space)는 저절로 존재하는 자연의 공간인 동시에 기술적 개입이 일어나는 인간의 공간이다. 우주 감각은 이 두 공간의 연결에서 발생한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통제실에서 “우주적 스케일의 끈기”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주 감각을 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우주를 상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감동하고 절망한다. “그 무한의 여행을 관리하며 기록하고 후대에 데이터를 넘겨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걸까?”(411~12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우주에 다가가려고 한국에서 NASA로 찾아온 방문객은 우주를 더 멀고 불가능한 곳으로 느낀다.

그래서 우주 감각은 어쩔 수 없이 낯선 감각이다. 용어 자체는 저자가 만들었지만, 그 용어가 지시하는 감각은 어색한 번역어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이 책은 NASA가 영어로 낸 책의 번역서가 아니다. NASA의 자료를 가지고 한국인 저자가 한국어로 글을 썼다. 그 안에서 저자는 우주 감각을 우주에서 지구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우주 감각은 지금껏 한국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감각이기 때문이다. 사진 모음 뒤에 들어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안형준 박사의 글은 1950년대말 한국의 로켓 붐이 우주 감각을 널리 퍼트릴 새도 없이 가라앉았음을 보여준다. 1992년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도, 2008년 이소연(素姸) 박사를 우주로 보낸 한국인 우주인 사업도 우주 감각 비슷한 것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우주의 크기와 깊이를 감각하고, 그것에 도달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 존재의 위치와 의미를 생각해보는 경험이 없었다는 뜻이다. 

저자가 슬쩍 지적하듯이, 한국의 우주 프로젝트를 감싸고 있는 ‘국익’이라는 프레임은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우주 감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웹싸이트는 요즘 추진 중인 ‘한국형 달 탐사’ 프로젝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달 탐사는 우리나라의 우주기술을 한단계 진일보시키고, 국가 브랜드가치 상승과 국민의 자긍심을 제고할 수 있다.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국민의 72%가 달 탐사 예산 투입에 찬성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달 탐사의 유무형 경제적 가치가 투자 예산 대비 5배가 넘는 무려 380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당히 다른 종류의 감각이다. 우주 감각이 저 너머에 대한 상상력이라면 이것은 눈앞에 대한 계산력이다. NASA라고 해서 이런 계산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이고, 우주에서 감각을 찾는 것은 한가한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계산이 감각을 다 가리면 우주는 평범해진다. 달을 탐사하는 것이 한국사회에 어떤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수 있을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우주는 아직 먼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