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

 

더 넓어지고 깊어지자

80년대 문학의 어떤 풍요와 결여에 대하여

 

 

권성우 權晟右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현재 토오꾜오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서경식의 에세이를 연구 중. 저서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등이 있음. nomad33@sookmyung.ac.kr

 

 

1. 세월호사건을 통해 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보다

 

2015430일 오전 9시, 토오꾜오 인근 코다이라(小平) 시에 있는 토오꾜오경제대학 국제교류회관 게스트룸에서 이번 4·29·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조금은 착잡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월호사건 1주년을 맞은 지금 이 시점에서 80년대 문학(담론)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성찰해보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생각건대 세월호 참극은 지구상의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고 역동적이며 정신없이 통과한 한국적 압축근대의 민낯과 어두운 그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유례없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비정상, 비합리, 탐욕, 부실한 시스템 등을 마치 갑자기 깨진 거울에 새삼 놀란 것처럼 목도했다. 세월호사건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저 엄청난 참극의 과정에서 행해진 태만과 방관, 협잡, 무책임에서 과연 나 자신은 면제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대화하는 우울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각각의 몸과 실존, 무의식에도 분명히 스며들어 있을, 저 한국적 근대의 습속과 행태를 생각해본다. 평생 살아갈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겠지만, 문학 쪽에서 생각해보면 항상 그 고통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학은 이 모순과 비극을 통과하고 응시하면서,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세월호사건이 한국사회의 뒤틀린 욕망과 무의식적 관행을 다시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라면 이 사건을 둘러싼 문맥과 의미망은 좀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즉 세월호사건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전개과정을 통해 꽃다운 목숨 304명이 희생되었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시신 아홉구가 바닷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표면적인 사실에서 더 나아가, 사건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소재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기막힌 현실, 이같은 치명적인 사고와 그후의 숱한 정치적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이번 4·29재보선을 위시한 몇번의 선거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권력과 여당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심판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무력감, 오히려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한 불편하고 악의적인 여론이 날이 갈수록 활개치고 있는 모순 등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우리의 욕망은 왜 이렇게 나쁜 방식으로 굴절되었을까?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는가?

다시 이렇게 물어보자.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통치자와 수권정당이 용납될 수 없는 모순과 불합리한 행태를 보여주어도 선거에 의해 심판되지 않는 사회, 야권이 지리멸렬하여 신뢰할 만한 대안으로 부각되지 않는 사회, 상식과 정당한 비판이 이분법적 진영논리와 보수화된 미디어지형에 흡수되는 사회, 이곳을 바꾸기 위한 진지한 문제제기와 뜻깊은 노력들이 냉소주의라는 블랙홀에 잠겨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문학(비평)을 통한 사회비판이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인가? 이 시대 문학에 희망은 존재하는가?

이 글은 바로 이 물음들을 마음에 새기며, 1980년대 문학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가 아직까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80년대 문학의 결여와 풍요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사유하는 비평적 에세이가 될 것이다. 그것은 어느 연대보다 지배이데올로기와 폭압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전방위적 저항이 이루어졌고 문학(비평)이 그 전선에서 대단히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80년대 문학과 그 시대를 되돌아보며 지금 이 시대 문학(비평)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도정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80년대 문학이라는 주제처럼 특정한 연대의 문학을 하나의 단일한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80년대 문학(담론)에는 생각보다 상당히 다양한 입장과 진영, 스타일이 혼재하고 있었다. 민중문학, 민족문학, 노동문학 등의 진보적인 문학이라는 커다란 흐름 외에도 마광수(馬光洙), 장정일(蔣正一) 등의 도발적이며 퇴폐적인 문학이 있었는가 하면, 시운동그룹으로 상징되는 신비주의와 다양한 형식적 모색도 존재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박남철(朴南喆) 그리고 이인성(李仁星), 이성복(李晟馥), 황지우(黃芝雨) 등의 해체주의적 글쓰기, 윤후명(尹厚明)의 『돈황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83)으로 대변되는 깊은 허무와 낭만적 폐허의 세계도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 80년대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성과라고 생각하는 복거일(卜鉅一)의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1987년에 출간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늘 있었던 고전적 순수문학과 순수서정시는 80년대에도 변하지 않는 문학적 상수로 있었거니와, 진보적 민중문학 진영에 대한 대타적 의미로 늘 존재해왔다. 그밖에도 다양한 문학적 흐름이 있었을 터이다.

이렇게 보면 80년대 문학을 대상으로 씌어지는 그 어떤 글도 그 시대 문학의 전체상을 포괄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특정 시점에 대한 해석은 지금 이 시점의 맥락에 치명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80년대 문학을 대상으로 한 이 글 역시 필자의 비평적 취향이나 세계관, 현재의 정치적·문학적 문맥에 의해 80년대 문학담론이 의식적·무의식적 차원에서 재배치되는 과정을 통해 선별적으로 기억되고 소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같은 원천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 내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80년대에 발표된 세편의 소설과 두편의 비평문이다. 그것은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1982), 임철우(林哲佑)의 「사평역」(1983), 김영현(金永顯)의 「포도나무집 풍경」(1988) 등의 소설과 백낙청()의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1985)와 「통일운동과 문학」(1989)이다. 이 글들은 지금 시점에서 80년대 문학을 바라보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시금석 역할을 하는 의미깊은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2. 현실적 지평을 통과한 환상과 허무의 세계

 

윤후명의 중편소설 「돈황의 사랑」은, 8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80년대 문학이 응당 지닐 법한 시대정신이나 문학정신하고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돈황의 사랑」을 꼼꼼하게 읽는 작업은 곧 80년대 문학을 대상으로 한 독법이 놓쳤거나 소홀히 했던 작품의 풍부한 의미와 만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돈황의 사랑」에는 지금은 전설이나 신화가 되어버린 과거의 문화적 유산과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봉산탈춤, 신라, 인디언, 처용, 강령탈춤, 서역의 고대도시, 누란, 돈황, 공후인,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 봉은사의 연꽃, 겸재의 인왕제색도, 소림사, 달마대사…… 작품은 주간지 기자인 주인공과 친구, 연인의 부황한 일상과 현실에 이같은 다양한 신화, 문화적 유산, 역사적 유물 스토리를 절묘하게 끼워놓는다. 예를 들어 만주를 떠돌며 ‘공후(箜篌)’를 켰던 노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상원사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의 선녀가 가슴에 안고 있는 악기 ‘공후’와 연결되며, 이는 또한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비천상을 보며 공후 소리를 듣는 주인공의 환상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그는 ‘돈황(敦煌)’을 화제 삼아 얘기하는 친구에 대해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지구 위에 있는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의 삶과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는 포괄적인 견해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나는 녀석이 그따위 공소한 소리를 중얼거리려는가 해서 시큰둥하게 반문”하며, “비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그 속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전혀 그 사실이 오늘의 나의 삶과 어떤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고는 전혀 실감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중국 감숙성(甘肅省)의 거리는 먼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현실적 지평과 효용적 관점에서 사유하는 태도는 80년대 진보적 문학에서 주된 흐름이었다. 눈앞의 모순된 현실을 당장 변혁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돈황이나 혜초, 중국 감숙성 등은 시대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뜬금없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바로 이러한 주인공의 편협한 태도야말로 작가 윤후명의 입장에서 바라본 80년대 지적풍토의 한계를 정확히 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돈황의 사랑’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자는 거니까”라는 친구의 발언은 요컨대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러가지 전설, 신화, 환상, 신비한 스토리가 현실과 절연된 허황된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삶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정념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실제로 주인공은 점차 돈황이나 공후인(箜篌引) 같은 전설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급기야는 마지막으로 공후를 켰다는 신비한 노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덧붙이기로 하자. 주인공은 연인과의 대화과정에서 “에르네스트 르낭의 『예수의 생애』라든가 불트만의 신학에서부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며 함석헌의 무교회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거니와, 이 점은 그가 철저한 리얼리스트는 아닐지 몰라도 제도권 보수신앙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문제적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돈황의 사랑」은 단지 턱없는 환상을 얘기하는 소설이 아니라 진보적 신앙이나 현실적 지평에 대한 고민을 통과한 연후에 도달한 환상과 허무의 세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손쉬운 허무주의가 지닌 문제점과는 별도로 누군가는 인간과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볼수록 깊은 허무와 마음의 폐허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특히 이 시대 한국의 참담한 정치·사회적 현실을 목도하면 누군들 깊은 허무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현실적 삶은 그 허무 및 환멸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 희망을 향한 희미한 불빛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돈황의 사랑」에서 묘사되는 문화적 허무의 풍경은 당대의 치열한 현실 및 모순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이 암담할수록 그 현실에서 탈피해 저 문명의 시원이나 신화로 도피하고픈 강렬한 욕망이 생성될 것이다. 요컨대 「돈황의 사랑」은 80년대 민중문학의 성과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쩌면 더 거시적인 관점을 통해 80년대 초반이라는 그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넘어서는 한층 근원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작품을 민중문학이나 민족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범주 자체가 이제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80년대 진보적 문학담론이 「돈황의 사랑」 같은 작품과의 대화에 다소 무심했다는 사실, 스스로 문학적 폭과 깊이를 제한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적어두어야 할 것 같다.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며 저녁식사 후에는 비평과 토론을 한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가 꿈꾼 사회는 결코 단일한 계몽적 목소리만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유희와 취미가 공존하는 사회였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 취미에 돈황석굴과 공후인에 대한 상상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3. 타자의 욕망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

 

변혁과 개혁에 대한 희망이 점차 스러져가는 이즈음의 시대적 감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80년대에 발표된 몇몇 소설을 읽으면서 꽤나 문제적으로 다가온 작품이 임철우의 「사평역」과 김영현의 「포도나무집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이 두 작품에 펼쳐진 인간과 시대에 대한 고민이 참 익숙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작품들이 전하는 문제의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뜻깊은 문학적 유산으로 제대로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평역」은 작가의 절친한 문우였던 시인 곽재구(郭在九)의 신춘문예 당선시 「사평역에서」(1981)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서 쓴 임철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애정과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평역」의 주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삶이란 무엇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독백하거니와 학생시위로 대학에서 제적된 대학생에게 다가온 삶은 아래와 같이 묘사된다.

 

대학생에겐 삶은 이 세상과 구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스물셋의 나이인 그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내력을 모르고, 아니 모른 척하고 산다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런 삶은 잠이다. 마취 상태에 빠져 흘려보내는 시간일 뿐이라고 청년은 믿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부터 그런 확신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 있다. 유치장에서 보낸 한달 남짓한 기억과 퇴학. 끓어오르는 그들의 신념과는 아랑곳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강의실 밖의 질서…… 그런 것들이 자꾸만 청년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1)

 

이 대목을 좀더 세심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이 지녀왔던 진보와 계몽에 대한 순정한 열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걸 느끼는 대목.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념과는 아랑곳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강의실 밖의 질서”, 그로 인한 혼란들. 어느 연대보다도 격동기이자 이념의 시대였던 80년대를 통과해온 우리는 과연 이러한 흔들림과 균열, 혼란을 얼마나 정직하게 응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지닌 타자의 내면과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 것일까. 자신이 속한 집단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늘 내 생각과 비슷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런 동질적인 구조 속에서는 타자의 진짜 욕망과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월호사건 이후의 정치적 추이, 여전한 대통령의 지지율, 이번 재보궐선거의 결과도 결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사평역」은 다양한 인물군상의 내면과 그 속살에 대해 참으로 애잔하고 흥미진진하게 접근하면서도 민중이나 진보적 청춘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에 머물지 않는다. 이 소설이 뛰어난 작품인 것은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방적인 계몽적 목소리에서 벗어나 흔들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평역」이 발표된 것은 1983년이지만, 작품에서 묘사된 어떤 사유와 표정은 1980년대 후반 동구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 이루어진 진보적 열망의 좌절, 진보와 국민정서의 괴리를 소설적 징후와 예감으로서 보여준다. 어떤 작가보다도 기존의 경화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성찰을 보여주는 임철우이기에 가능한 미덕이라 하겠다.

한편 김영현의 「포도나무집 풍경」은 전형적인 후일담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은 19876월항쟁의 성과로 16년 만에 이루어진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겪고 커다란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 있다가 80년대 운동사를 정리할 겸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경기도 김포 인근의 한적한 포도나무집에서 홀로 칩거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 현실, 80년대 운동권의 역사, 정치적 패배에 대해 찬찬히 성찰하게 되거니와, “김 선생처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끔 저런 별들을 볼 필요가 있다네”라는 박홍규 목사의 말은 한가지 목표(진보와 계몽에 대한 열망)를 지니고 일로매진해왔던 주인공에게 밑바닥부터의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나는 「포도나무집 풍경」에서 묘사된 자기성찰과 회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의 고뇌와 행동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소중한 미덕과는 별도로, 「포도나무집 풍경」을 비롯한 대개의 후일담문학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반성과 자기성찰의 풍경이 실제 80년대 진보진영에 얼마나 구체적인 실감을 가지고 다가왔던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으리라. 80년대 진보적 지식인문학이 개척한 성과에 대해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그 한계 또한 뚜렷하다. 가령 이른바 후일담문학의 확산부터 후일담문학 비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포즈에 그쳤던 것이 아닐까.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진보, 운동, 인간, 욕망, 정념, 혁명, 좌절, 패배, 허무, 희망…… 이 모든 주제에 대한 좀더 다양하고 깊은 얘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녀본다.

아울러 「포도나무집 풍경」이 발표된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사회주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그 세계사적 격변기에 우리는 과연 인간의 욕망과 계몽(이성)의 한계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인식했던가, 그리고 이러한 물음들은 당대의 소설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던가,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우리의 지성사는 그 세계사적 격변기를 너무 손쉬운 전향과 청산, 비판, 견강부회로 통과한 것이 아닐까.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변화의 배후에 있는 인간의 욕망, 이념의 광휘와 한계를 천착했어야 하지 않을까. 「포도나무집 풍경」에서 묘사된 진보적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인간의 욕망과 정념에 대한 통찰로 심화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포도나무집 풍경」에서 이루어진 주인공의 자기성찰조차 근본적으로 계몽주의적 인간관이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대단히 단순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복잡하고 오묘한 존재인가. 과연 후일담문학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이해가 될 만큼 80년대라는 격동기의 현실을 마주한 인간의 내면과 정서, 욕망은 충분히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 지금 이 시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87년체제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관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어떻게 보면 80년대 진보적 문학에서 묘사된 인간관, 성찰의 한계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식으로든지 부메랑이 되어, 가령 진보적 소설의 급격한 퇴조 같은 방식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 문학의 창조적 역할

 

80년대에 사랑해 마지않았던 세편의 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이 작품들이 지닌 풍부한 의미와 함축적 맥락을 포함하여 그 한계까지 당대의 비평이나 문학담론이 과연 충분히 포착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문학비평이 가장 전위적인 정치적 담론의 하나이기도 했던 80년대의 상황에서, 민족문학론을 위시한 진보적 문학담론이 비평을 통해 정치적 비판의 기능을 담대하고 순발력있게 수행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80년대에 발표된 대부분의 민족문학론은 당대의 정치적 맥락과 이념 지형에 몰두한 반면, ‘문학’ 자체에 대한 섬세한 인식, 인간에 대한 복합적 시선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가령 진보적 문학의 영역 내에서도 인간의 욕망과 정념, 내면에 대한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다시 말해 타자의 내면과 욕망을 해독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 하는 점을,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 존재라는 사실을, 양심적이라고 평가받는 진보적 지식인(문인)을 포함하여 인간이 얼마나 이중적이며 인정에 대한 욕망에 목마른 존재인가를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인간은 합리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상식을 따르며 대의에 기꺼이 부응하는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며 감정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더 현명한 태도이리라. 이제 새로운 희망과 진보적 기획은 인간의 정념에 대한 지혜로운 인식의 과정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생각건대 노무현정권 이후, 개혁진영이 여러 선거에서의 패배를 비롯한 계속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대중의 신뢰를 획득하지 못한 중대한 원인은 바로 인간을 너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계몽주의적 인간관에 포박되어 있었던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입장은 ‘우리’가 옳은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다면 국민이 ‘우리 쪽’을 선택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식의 오만과 독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나와 판연하게 다른 욕망을 지닌 사람에게 다가가려면 우선 그들의 감정에 정성껏 귀기울여야 한다. 문학 쪽에서 보면, 바로 이런 대목에 대한 깊고 넓은 ‘내공’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소 관념적인 계몽의 목소리에 멈추어 있었던 진보적인 문학(비평)이 90년대 이후 생각보다 훨씬 급속하게 영향력을 잃어간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설명한 맥락에서, 80년대 민족문학론에서 문학의 고유한 역할(특수성)을 환기한 백낙청의 「통일운동과 문학」과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를 검토해보자. 두 글은 민족문학운동이 한창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발표된 평문으로,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치열했던 80년대 민족문학논쟁을 얘기할 때 백낙청은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존재이지만, 그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80년대 진보적 평단에서 비평적 전위 역할을 수행했던 ‘민중적 민족문학론’이나 ‘민주주의 민족문학론’ ‘노동해방문학론’과는 꽤 다른 방식으로 문학에 대한 주장을 개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문학의 특수성에 대한 세심한 고려, 즉 문학의 고유한 역할에 대한 통찰력이 늘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래 구절을 읽어보자.

 

과학적 인식이 제대로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의 근거와 한계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따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과학 스스로가 못하는 작업이며 창조적인 문학의 부단한 일깨움이 없이는 인간해방에 실답게 이바지하는 과학단순히 도구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철학과 합일하는 과학은 불가능한 것이다.2)

 

여기서 “과학의 근거와 한계”는 이성이 지닌 근거와 한계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창조적인 문학의 부단한 일깨움”은 곧 사회과학이나 이성이 충분히 포착할 수 없는 인간과 감성에 대한 깊이있는 파악과 연계된다. 이러한 주장은 같은 글에서 “‘문학’ 자체의 됨됨이에 대한 부단한 성찰이 과학이나 운동의 건강성을 지키는 데도 필요”(같은 면)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이보다 먼저 발표된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에서도 문학의 특수성과 전문성이 각별하게 강조되었거니와, 특히 “문학의 역사에서는 어디까지나 창조적 작품의 출현과 수용이 일차적이니만큼 우리의 논의도 그러한 특수성에 입각해야 함은 물론이다” “문학이건 예술이건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정진을 거듭하여 남다른 기량을 쌓는다는 의미에서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것은 도대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같은 구절3)이 그렇다. 지금에서야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지만, 실상 이러한 입장은 80년대에 행해진 첨예한 민족문학논쟁 과정에서 소시민적 관점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백낙청은 민족문학론을 주창하는 과정에서 늘 문학다움, 문학의 고유한 쓰임새에 대해 고려하거니와, 진보진영의 비평가 가운데 80년대에 그만큼 문학의 창조적 역할에 깊은 관심을 보여준 비평가는 달리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혜안과 넓은 안목이 그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중요한 비평적·사회적 의제를 제출하는 현역비평가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평문에서 개진된 문학의 창조적 역할에 대한 강조는 참으로 뜻깊지만, 문학의 독자적인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백낙청은 문학의 고유한 역할에 대해 세심하게 파악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인식이나 운동이 이미 전제된 구도 안에서의 상대적인 역할에 가깝다. 물론 이 점은 백낙청 개인보다는 시대적 한계에서 연유한다. 80년대 진보적 비평담론에서 대개 운동/문학은 유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조건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구도가 앞에서 언급한 「돈황의 사랑」이나 「사평역」 같은 작품과의 섬세한 대화적 비평을 가로막은 요인일 것이다. 시대적 조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문학, 운동과 문학을 좀더 넓고 깊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아직 유효한 문학(비평)의 계몽적 역할은 그것대로 밀고 나가면서도, 동시에 좀더 근원적인 맥락에서 문학의 쓰임새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비평은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해석에서 더 나아가 그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정념, 은폐된 욕망,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한층 면밀한 해석이 필요하다. 표면적인 세계관이나 문학관을 기준으로 특정한 작가나 작품이 진보적 비평담론의 탐구대상에서 제외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창작과비평』에서 이루어진 배수아(裵琇亞), 박민규(朴玟奎), 김애란(金愛爛) 등의 소설에 대한 논의를 바로 그러한 경직된 비평풍토를 돌파하려는 노력으로 본다.

여기서 생각해보면 최근 몇년 동안 활발하게 이루어진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 바로 ‘문학의 창조적 역할’을 둘러싼 쟁점이 심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사유는 궁극적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만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질문을 쉽게 봉합하지 않고 끝끝내 문학의 창조적 역할에 대한 깊은 사유로 나아갈 때, 그래서 예컨대 소설가 최인훈(崔仁勳)이 오래전에 말했던바 “정치를 기피하는 문학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으며, 정치에 편중하는 문학도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4)라는 주장에서 제기된 문학관과 지금 이 시대의(자신의) 문학관이 지닌 차이에 대해 사유할 수 있을 때 앞으로 전개될 문학은 더 깊은 속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5. 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문학에 필요한 것들

 

세월호사건은 문학과 정치, 문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다시 활성화시킨 계기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문학의 방향과 몫이 하나의 단일한 입장으로 수렴될 수 있는 시대가 전혀 아니다. 다만 세월호사건 같은 특정한 사안에 순발력있게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문학의 역할은 여전히 소중하고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계몽적 역할의 한계에 대해 논한다 하더라도 때로는 스스로 화살이 되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문학의 역할을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같은 문학의 역할을 편협한 계몽주의라는 시선으로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또다른 형태의 문학적 획일주의와 억압이 아닐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 이 시대의 문학은 현실과 인간을 한층 깊고 넓은 시선을 통해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성이나 계몽으로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내밀한 정념을 깊이 천착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문학, 인간주의적 시선으로부터 탈주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문학, 인간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성과 감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문학, 바로 이런 문학이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연대보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응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놓은 80년대 문학(담론)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80년대 문학에서 우리가 충분히 해석하지 못한 것과 놓친 것을 발견할 때 지금 이 시대를 깊고 넓게 투시할 수 있는 문학의 잠재력도 확대될 수 있으리라.

한국사회에서는 진보적 이념, 진보적 문학론의 수용조차 기계적이며 지나치게 편협한 당파성 아래 이루어진 감이 있다. 압축근대의 폐해와 분단의 질곡이 이 땅의 정치와 문학이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데 강력한 방해물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에 지구 저쪽에서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음에도 이곳에서는 대단히 편협한 노동해방문학론이 주창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노동해방문학론이 지닌 선의와 열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는 우리 역사와 문학사에서 언젠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문화사적 통과제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관념적 문학관이 오히려 진보적 문학의 드넓은 가능성을 현저히 좁힌 것은 아닐까. 그후 시간은 정처없이 흘렀고 새로운 문학적 흐름은 이전보다 훨씬 빠른 주기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노동해방문학은 너무 쉽게 잊혀졌다. 노동해방문학을 포함한 80년대의 진보적 문학(론)에 대한 손쉬운 비판은 무성했지만, 그 담론을 둘러싼 정치적 무의식, 담론의 구조, 욕망과 정념, 그 한계 등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검토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인간과 역사가 존재하는 한, 이성과 계몽의 역할은 쉽게 포기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성과 계몽의 목소리가 은폐했던 인간의 감성과 정념에 대해 이 시대의 문학은 좀더 집요하고 정확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연관하여 강준만(康俊晩)의 『감정 독재』(인물과사상사 2013), 『싸가지 없는 진보』(인물과사상사 2014) 같은 저작이 바로 진보진영의 고질적인 한계에 대한 통렬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감정과 정념에 관해서라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라면 시인, 소설가, 비평가, 에세이스트가 사회과학자보다 훨씬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자.

백낙청은 앞서 언급한 「통일운동과 문학」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식층의 이러한 자기정비를 위해서나 민중역량의 활성화를 위해서나 문학의 창조적 역할은 절대적이다. 물론 그것은 문학만의 몫은 아니고 유독 지금 이곳의 문학에만 주어진 몫도 아니다. 그러나 유례없이 경직되고 살벌한 분단이면서 남북 각각에서 세계가 놀라는 저나름의 실적을 올리기도 한 이 전대미문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통일운동은 남달리 창조적인 운동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5)

 

지금 시점에서 볼 때, ‘통일운동’을 정치개혁이나 민주주의로 바꾸어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즉 통일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이 땅의 정치개혁이나 민주주의 역시 “남달리 창조적인 운동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후에 전개된 역사와 정치개혁의 좌절을 통해 뼈저리게 절감했던 것 아닌가. 정말 치밀한 정치적 전략과 충분한 준비, 창조적인 지혜, 사안에 따라서는 마끼아벨리적인 과감한 결단이 없는 채로 개혁을 달성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과업인지를. 그 창조적인 과정이 내실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에 대해 깊이있게 접근하는 문학적 상상력과 함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아직도 시대가 요구하는 큰 전환을 이룩할 적공(積功)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6)라는 진단에서 문학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이 시대 한국사회야말로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이라는 문학의 역설적 진실이 필요하다. 그런 경지가 오랫동안 준비된 문학적 내공과 실력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으리라.

앞서 백낙청이 말한 “문학의 창조적 역할”이 단지 시대에 대한 비판적이며 계몽적인 목소리로 한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인간학으로서의 문학, 즉 이 글에서 강조한바 감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깊게 이해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는 문학, 계몽의 그늘과 진보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인식하면서도 더 깊은 시선으로 역사를 응시하는 문학, 세상의 깊은 허무와 환멸을 마주하면서도 섣부른 절망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마음의 바다에 통렬한 도끼 자국을 남기는 문학을 의미한다. 깊은 절망 속에서 비로소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루쉰(魯)의 언급을 들지 않더라도 그런 문학과 예술에 대한 희망과 설렘 없이 견디는 이 절망적인 시대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우울할 것인가. 그러니 점차 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문학이여, 더 넓어지고 깊어지자. 만약 희망이 아직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작은 창문일지니.

 

 

--

1) 임철우 「사평역」, 『20세기 한국소설』 41권, 창비 2006, 46~47면.

2) 백낙청 「통일운동과 문학」, 『창작과비평』 1989년 봄호; 백낙청 『민족문학의 새 단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3』, 창작과비평사 1990, 99면.

3) 백낙청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 『창작과비평』 부정기간행물 1호(통권 57호); 『민족문학의 새 단계』 15, 20면.

4) 최인훈 「신문학의 기조: 계몽·토속·참여」, 『문학과 이데올로기』, 문학과지성사 2009, 192면. 소박한 계몽주의 문학론과 오히려 정치적인 순문학의 구도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최인훈의 문학론은 최근 이루어진 ‘문학과 정치’ 논쟁과정에서 보더라도 소중한 참조와 극복, 사유의 대상이다.

5) 『민족문학의 새 단계』 129면.

6) 백낙청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