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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 『여자 이발사』가 있음. jstroot@hanmail.net

 

 

 

장편연1

늙은 햄릿

 

 

1

 

마흔을 넘기면서 태오는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삼십대 중반부터 조금씩 몸이 불었다. 복부는 원래 똥똥한 편이었고, 어깨와 허벅지가 옷을 입을 때 살짝 째는 느낌이 들었다. 나잇살이라는 말이 있고 술살이라는 말이 있다. 핑계 있는 살들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잇살은 어느 변곡점에 이르면 내릴 것이고 술은, 언제까지 마시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살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물러서는 마음이 되곤 했다. 가급적이면 안주를 덜 주워먹어보려고 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꼭지 도는 날에는 이튿날 셔츠에 고추장이나 기름얼룩이 묻어 있고 바지주머니에서 땅콩 부스러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날도 그는 자책하지 않았다.

어제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어.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이혼하고 누구는 재혼을 하니까. 누구는 진급하고 해고당하고 개업을 한다. 부모상을 당하기도 하고 배우자나 자식을 앞세우기도 한다. 실연당해 징징거리는 후배와 한번 쏘겠다고 덤벼드는 친구는 피할 길이 없다. 상경하는 고향 친구들은 그가 홀몸이라는 이유로 아침까지 물고 늘어진다. 부서 회식, 접대, 동창회와 망년회. 인생사가 그렇다. 자신을 위해 취해볼 일은 별로 없다.

서울 사는 고등학교 동창끼리 삼십대를 종치는 망년회를 갖던 날이었다. 다들 바빠서 연기를 거듭하다가 해 넘겨 신년초에 날이 잡혔다. 안하고 지나가기도 뭣해서 억지로 꾸리기는 했지만 서로 민망해서, 우리는 생일을 음력으로 새니까, 하고 모여보자고 했다. 태오는 망년회에 가려고 구두를 신다가 한쪽 구두끈이 풀린 걸 발견했다. 그는 쪼그려 앉아 구두끈을 맸다. 일어서는데 바지 단추가 떨어졌다. 단추는 , 소리를 내며 타일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는 일시에 허리가 시원해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넓은 바다가 눈앞에 툭 트여 있었다’라는 용례로 쓸 때 그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해방감이랄까 청량감은 순식간에 스러지고 잡아주는 힘이 사라져 허전해진 허리를 움켰다. 그는 단추를 주워들며 배꼽이라도 줍는 것처럼 어이가 없었다.

 

그는 중견그룹의 스피치 라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홍보실 가장 구석진, 파티션으로 분리된 작은 공간이 그의 사무실이다. 그룹회장의 대내외 연설문, 기고문, 인터뷰 답변서, 신년사를 쓴다. 메시지팀장이라 불리지만 상무 이상 선임들은 장 작가라 불렀다. 회사는 1970년대 중동건설 붐 때 하청건설사로 뛰어들어 정책금융 지원을 받으며 리조트와 투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사세를 키웠다. 지금도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정치컨설팅 회사에서 경력을 쌓다가 이 회사로 옮겨 십년째였다. 사회생활이 평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년에 신도시의 소형아파트가 당첨되어 올가을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전세로 살던 연립주택을 빼서 중도금을 상환하고 원룸 오피스텔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덤덤해진 편이다. 누가 소개해주면 선은 보았다. 연이 닿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내볼 생각이다.

일에 회의를 느껴 여러번 이직을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 직업은 시장이 손바닥만 하고 계약직을 쓰는 추세여서 옮기기도 여의치 않다.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될 텐데 그때는 프리랜서로 일해볼 생각이었다. 입사 초기에는 원고가 승인될 때까지 비서실 문턱에서 벌을 서듯이 했다. 그룹 회장은 성미가 괄괄했다. 배짱 안 맞고 수가 틀리면 ‘조인트’를 예사로 깠다. 영감은 조인트를 한번 깔 때마다 공기(工期)가 하루씩 단축되었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태오는 영감마저도 읽어보지 않았을 회사의 이십년사, 삼십년사, 사십년사를 통독하고, 통계청 연간집 같은 CEO 메시지철, 이사회 회의록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자료실에 박힌 두 상자 분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도 사사팀과 함께 녹취작업을 했다. 영감의 어록을 모은 노트 한권 분량의 파일도 가지고 있다.

 

나는 전장에서 입은 군복을 아직도 갖고 있다. 중동에서 그 군복을 걸어놓고 일했다.

애사심이 곧 애국심이다.

기름은 물에 뜨지만 땅 밑에 있다.

배포를 가져라. 중국인들이 허풍으로 저 큰 땅덩어리를 끼고 사는 게 아니다.

나하고 사업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나는 그림자까지 벗어달라고 한다. 나는 우리 임직원들이 그림자까지 벗어놓고 일했으면 좋겠다.

똥구덩이에서 건져내도 돈은 돈이다. 내 돈 싫다는 사람은 나가라.

진부하다고? 내 구상이 진부하다고? 서울에 백반집이 널린 건 어떻게 설명할까?

 

이제 그가 만든 문장들이 영감의 새 어록이 될 것이다. 그는 영감의 공적인 ‘말씀’이다. 말씀을 받아쓰는 사람이고 때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빨간 줄로 고뇌도 읽고 속악함도 볼 것이다. 그래서 자랑도 하고 화도 내고 반성도 하고 변명도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자, 2만 임직원의 황제. 정경유착과 담합의 표본. 평판은 태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비판자도 아니고 옹호자도 아니다. 한 사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게 어떤 일인지 문득 깊어져서 그는 시인처럼 고개를 든다. 한 인간의 과오와 한계까지 품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거, 그래서 근친처럼 연인처럼 공범이 되기도 한다는 거, 이 인간적인 마음작용이 얼마나 취약한지 아득해진다. 하지만 조인트에 딱 까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능하면 영감님의 어법과 톤과 경영철학을 담은 연설문을 작성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들락날락하고 여기저기 돌다가 오는 수정 원고는 삼성 것 같고 현대 것 같았다. 그는 영감님과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태오의 전임자는 홍보실을 총괄하던 부사장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족처럼 오너를 보필했고 당시에는 회장님의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태오는 그가 쓴 연설문들을 참고해가며 써서 올렸는데 퇴짜를 맞자 그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이제 회사 규모가 좀 잡혔어. 공격적으로 해외투자도 하고 있고. 차제에 회장님도 전반기를 넘어서서 후반기는 산뜻하게 맞고 싶으시다는 거지. 이미지 쇄신 말이야. 점잖고 후덕한 리더십 있잖은가. 이건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는 회사의 전략이기도 하지. 회장님이 업계에서 현장 돌쇠 이미지가 좀 있거든. 그러니까 ‘쇠뿔을 뽑겠다는 각오와 배짱’ 이런 말 말고 ‘프런티어 정신’ 이런 말을 써보자는 거지. 나도 회장님과 함께 잔뼈가 굵어서 ‘도전과 응전’ 이런 말에 익숙한 사람이야. 사우디 그쪽 속담에 ‘산이 움직였다는 말은 믿겠다. 그러나 사람이 변했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 그렇지만 회사고 사람이고 변하지 않고는 못 배겨나는 세상이야. 회장님이 좀 바윗덩어리지. 몸에 안 맞는 옷은 절대 안 입으시려는 분이야. 이미지 쇄신하자고 하면 앞에서는 끄덕끄덕하시는데 돌아서면 발길부터 내지르시지. 거부감 없이 수용할 만한 적정선을 찾아봐.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자네가 그 일을 해줘야겠어.”

 

이제는 신년사 말고는 웬만한 원고는 올리는 대로 통과다. 사전에 읽기나 하는지 몰랐다. 영감님의 기력이 전만 같지 않은 것도 있지만 태오는 영감님과 자신이 세월을 두고 각자의 낱말카드를 잘 맞췄다고 여겼다. 영감님 카드 80%와 제 카드 20%를 섞어 그들만의 사전을 만든 것이다. 태오가 삼국지·탈무드·마거릿 새처·마쯔시따 코오노스께·김우중·고난·목표·도전·경쟁·열정·일방향·결단·가족·헌신·희생의 키워드를 익혔다면 영감님은 칼의 노래·장하준·감성·공존·문화 유전자를 받아줬다. 지난가을 사내 가족한마당 행사에서 영감님은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낱말에 덜컥 걸려 단상 아래의 태오를 힐끔 째려보았다. 귀여웠다. 이쯤이면 자신만 길든 게 아니라 영감님도 얼마간 길들었다고 볼 수 있다.

회사는 2세 경영체제 승계가 임박해 있다. 새 오너가 자신을 곁에 둘지 태오는 자신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라 MBA과정까지 밟고 온 젊은 상속자는 임원 독서경영 자료로 전미경제학회 토론집 번역본을 밀어넣었다. 토마 피케티와 그레고리 맨큐가 맞붙은,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부유세 논쟁을 도시락 까먹으며 토론해보자는 것인데, 상속자가 주재하는 모임은 간을 보는 자리라고 임원들은 여간 긴장하지 않았다. 파티션 너머 이웃인 언론홍보팀장은 부하 과장이 요약해준 자료를 펴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맨큐 박사 손을 들어달라는 그림은 딱 나오는데 나까짓 게 들어준다고 들릴까? 이건 아주 지능적인 조인트인데, 해골을 까는 거라고. 장 작가, 골치 아픈데 까페라떼 한잔 할까?”

그는 수시로 태오의 파티션을 두드린다. 박 상무는 책상 깊숙이 들어간 슬리퍼를 대나무 등긁이로 끌어낸다. 저 효자손 말고도 그는 지압슬리퍼, 지압봉, 안대, 핫팩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사 나르는데 어디서 그것들을 구해오는지 궁금하다. 상무의 캐비닛에는 만물상 좌판을 벌여도 될 만큼 저런 물건들로 가득하다. 물건들은 모두 중국산이다. 태오도 그에게서 딱딱한 지압슬리퍼 한족을 선물로 받았다. 무른 발바닥으로 신기에는 압통이 너무 심했다. 그는 며칠 끌고 다니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인근 당구장에 벗어놓고 와버렸다. 상무에게는 집에 가져다두고 신는다고 둘러댔다.

“광화문사거리 지하도에 가봐. 작은 황학동시장이 거기 있어. 황학동시장 알아?”

태오는 얘기만 들어봤지 추억의 황학동시장을 가본 적이 없었다. 박 상무는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근데 이게 참 묘하단 말이야. 한번은 사지 두번은 안 사게 되더라고.”

“추억을 사셨던 거라 그래요.”

상무는 씽긋 웃었다.

“역시 글 다루는 사람이라 다르군. 추억을 샀단 말이지?”

지난해 여름 동안 박 상무는 빨간 만보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며 열성이었다. 일과시간에도 복도를 오가고 10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퇴근 무렵에는 파티션에 턱을 괴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만보기를 들이댔다. 그럴 때마다 태오는 그렇게 많이 걸으셨느냐고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며칠 만에 그는 만보기를 잃어버렸다. 애완견이라도 잃은 사람처럼 쩔쩔 매고 찾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그날로 그의 만보 걷기도 시들해졌다.

상무는 지압슬리퍼를 끌고 성큼 앞서 걸었다. 발을 절면서 고집스레 저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걸 보면 태오는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4층 까페떼리아로 갔다.

“이번에 금연을 확실히 하시는 모양이에요?”

“장 작가도 끊어라. 하긴 글 쓰려면 쉽지 않겠지. 내가 요새 까페라떼에 맛 들여 이 재미로 산다. 이것 놓고 이렇게 창밖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만하면 괜찮게 산 것 같고 여한 없다는 마음도 든단 말이야. 장 작가도 끊어봐. 세상에는 맛 좋은 것들이 쌔고 쌨다고. 근데 무슨 쏘스 없냐?”

“쏘스라니요?”

상무는 둥글게 말아쥔 자료집을 흔들었다.

“이거 말이야. 어디에다 실어보겠다고 오더 내려오지 않았냐고.”

“누가……?”

“누군 누구야, 아드님이지.”

“그런 것 없었는데요.”

태오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상무는 몸을 돌려 빤히 쳐다보았다.

“그거 위험한 신혼데.”

“네?”

“예비 오너가 장 작가를 안 찾는 거. 지금껏 그쪽에서 오더 받아본 적 없어?”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위험한데.”

박 상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내에는 새 오너 체제에서 정년 데드라인은 45세가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태오는 과연 새 오너의 사전을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다.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데 상무가 말아쥔 서류로 태오의 배를 툭 쳤다.

“단추 떨어졌다.”

 

그러니까 단추는 전조에 불과했다. 그는 샤워를 하다가 제 성기가 보이지 않는 걸 알아챘다. 그는 어? 하는 기분으로 샅을 훔쳤다. 그는 옆으로 돌아서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 보았으나 뱃살이 당겨진다는 느낌보다 말려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좀 야비한 배신 같았다. 그는 마흔살 증후군, 그 독사 같은 게 마음으로부터 오는 줄 알았다. 회사 분위기가 골치 아프기는 하지만 하던 일이 맨날 그 일이고 딸린 식구가 없어 책임이 가중되는 나이도 아니었다. 마흔살 증후군도 건강검진에 포함되어 50가지가 넘는 설문지를 들이댄대도 ‘해당사항 없음’ 진단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증후군 따위는 남의 얘기였다. 숫자놀음에 불과했다. 행여나 독사의 기척이 느껴진다고 쳐도 살짝 눈을 감아버리면 눈치 못 채고 지나갈 것 같았다. 동창회에서 친구 하나는 마흔의 자만 입에 올려도 마가 낄까봐 아예 입에 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가 “올해부턴 나이를 잊어불자!”고 건배 복창을 할 때도 태오는 잔만 부딪고 말았다.

그는 슬며시 저항감이 들었다. 독사가 배꼽 아래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느낌. 그는 거쳐간 애인들이 떠올랐다. 딱히 한 여자가 도드라지게 떠오른 건 아니었다. 길게 사귄 여자도 있고 짧게 사귄 여자도 있었다. 제법 진지했던 만남도 있고 가벼운 만남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 지경이 된 게 왠지 그녀들 탓만 같았다. 그래도 내가 잔소리 정도는 잘 들어줬잖아, 하고 그는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로부터 그가 당장 걷기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는 호들갑을 떨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걸 경계했다. 만만하게 틈을 주었다가는 독사가 냉큼 기어오를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자기 인생이 한 계단 아래로 떠밀린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계단 끝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은 사람처럼 헐떡이며 고개를 돌렸다. 마흔, 쉰, 예순, 일흔…… 늙어가는 한 인생이 나란히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알아봤고 의기소침해졌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누군들 모르랴. 그러나 얻은 것 없이 남긴 것 없이 하물며 재미도 없이 끝나리라는 건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소실점이 어른거리기도 처음이었다. 사십대는 고사하고 까페라떼처럼 달달한 오십대를 맞을 자신도 없었다.

아침에 팬티를 들춰보면 발기력도 여전했다. 지난 연말에 신년사를 쓸 때는 밤샘도 여러날 했다. 그런데도 팬티를 들춰보다가, 파랗게 동트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한숨이 나왔다. 계절이 텔레비전 광고처럼 순식간에 왔다가 가버리는 게 서글펐다. 열애, 도전, 꿈 이런 것들이 능선처럼 굽이굽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절벽이 막아서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무슨 패가 쥐어지든 마지막 패일 것이다. 그는 술자리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자꾸 하품이 나오고 일차가 끝나면 슬그머니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 버릇도 생겼다. 여직원 앞에 설 일이 생기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대입시험을 치른 열아홉 겨울에 ‘대학 가면 꼭 해볼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한 적이 있다.

(1)데모 (2)막노동 (3)노트북컴퓨터 (4)기타 (5)전국무전여행 (6)유럽배낭여행 (7)고전읽기(삼중당문고 다 읽기) (8)토플 (9)낙하산 점프

아마 더 있었을 것이다. 밑바닥 직업 체험하기라든가 서태지와 아이들 공연 관람이라든가 고전영화 100편 마스터라든가. 연애와 섹스는 목록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때 그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애와 해볼 짓은 다 해봤다.

(1)데모 (2)막노동 (3)노트북컴퓨터 (4)기타 (5)전국무전여행 (6)유럽배낭여행 (7)고전읽기(삼중당문고 다 읽기) (8)토플 (9)낙하산 점프

막노동은 경험한다는 차원 이상으로 많이 했다. 그가 처음으로 가져본 노트북은 90만원대에 덤핑가로 풀린 아이넥스 노트북이었다. 삼중당문고 독파는 못하고 대신 시집에 빠졌다. 그는 목록에 적은 것들을 많이 지울 수 없었다. 고백할 수 없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일로 그의 이십대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가까스로 상처를 이기고 이십대를 빠져나왔다.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났다. 이제 다 지난 일, 멀리 두고 온 스무살은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패를 쥔 사내가 도전해볼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그는 생각했다. 스물여덟살 아가씨와 데이트? 히말라야 트레킹? 흙집 짓기? 시? 소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마지막 패가 아니라 패를 한 주먹이나 쥔 청년의 목록 같았다. 그는 자신이 도전해볼 수 있는 게 겨우 금연, 절주, 그리고 걷기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맥이 풀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안내장이 날아온 건 2월이었다. 옆집에 이삿짐이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어제까지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럽던 집이 하루 새에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자가 내지르는 교성이 분방한 집이 되었다. 그는 건강검진 안내장을 책상에 던져두었다. 생애전환기…… 매정한 명칭이었다. 국가에서 이제 당신은 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통고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안내장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검진을 받지 않을 경우 해당 중증질환에 걸리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당해본 것처럼 말했다.

그는 점심만 먹고 앉으면 졸리고 오후 내 흐리멍덩해서 일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룹 산하 교육재단의 중고등학교 졸업식에 보낼 격려사가 두건이나 밀려서 집으로 갖고 퇴근했지만 한줄도 진척이 없었다. 말뚝에 묶인 염소처럼 책상을 뱅뱅 돌았다. 손을 털고 새벽에 하자고 잠자리에 들어도 쉬 잠들 수가 없었다. 내 능력이 이뿐인가? 나도 이제 녹슨 건가?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추궁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성질의 위기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실상 제 몸에서, 어느 깊은 곳으로부터 이미 앓는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다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지 않았는가. 불편한 사람, 부당한 일에도 태도가 퍽 너그러워져서는 문득 나는 굽실거리는가, 하고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곤 하지 않았던가. 그는 비서실에서 독촉전화를 받고 나서 몇년 전에 썼던 격려사들을 엮어 원고를 처리했다.

대학시절부터 한동안 그는 시인을 꿈꾸었다. 간절하지도 않고 재능도 없어서 몇편 끼적인 수준이었지만 마음은 오래 품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지금은 시인이 되고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밥 먹듯이 써내던 격려사 한줄 써내지 못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시인을 꿈꾼 일마저도 부끄러웠다.

그는 의욕상실 상태에서 주말을 맞았다. 아침과 점심을 거른 채 밀린 잠을 잤다. 오후에 시작된 겨울비가 밤으로 이어졌다. 그는 냉채족발을 주문하고 영화를 한편 다운받았다. 건강검진 안내장이 눈에 띄었고 그는 머리를 박고 처음으로 꼼꼼하게 읽었다. 베란다도 없이 벽처럼 쳐진 원룸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에 젖은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모은 오백여권의 시집을 갖고 있었다. 여러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 장서만은 그대로 끌고 다녔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책장에 시선을 던지고는 했다. 정기적으로 소독을 오는 아주머니도 사람은 건성으로 보면서 이 책장 앞에만 서면 “그 집이네?”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 시집들을 꺼내 읽어본 지 오래되었다. 요즘에 읽은 시집이라고는 회사에 출입하는 경제지 기자의 신간시집 한권뿐이었다. 그 기자는 출입기자 중에 연배가 많아 태오보다 네댓살 위였다. 그는 정식으로 데뷔해 여러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는데 늦가을에 신간을 냈다고 해서 홍보실에서 백권이나 구입해 임원과 부서원 들에게도 돌렸다. 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도마」라는 시였던가?

칼질 깊은 상처마다 남의 피가 붉게 돈다.

그 구절을 읽고 퇴근길이 울적했다. 어쩐지 유령작가인 자신의 신세가 남의 피 묻히는 도마 신세 같았다. 작가의 말에서도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시가 한편씩 써졌다’고 하여 도시의 사무원들에게 깊은 연민을 드러냈다. 저기 책장 어디에 그의 시집도 있을 거였다.

그는 책장에서 시집 한권을 꺼내 머리에 앉은 먼지를 불어냈다. 고정희의 유고시집. 젊은 한때 뜨겁게 품고 살았던 시집이다.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이 기억난다. 옛 시인들은 청춘과 시대를 대신 앓아주곤 했는데 요새 시인들은 저만 앓고 마는가. 요즘에 나오는 시들을 안 읽어봤지만 그 말이 사실일 것 같다. 그는 그랬다. 떠도는 정보들로 쉬 제 의견을 삼았다. 영감님의 원고들을 작성할 때도 그랬다. 경구를 옮기듯 한줄씩 베껴다가 연설문에 끼워넣고는 했다. 그 생각이 들자 목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옆집에서 여자의 교성이 들려왔다. 토요일이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자의 목소리는 가끔 벽과 복도를 타고 들려왔다. 담배가 떨어지면 한개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허스키한 목소리. 그는 견디듯이 손에 든 양장본 시집의 목차 페이지를 펼쳤다. 맨 끄트머리 4부에서 「사십대」라는 제목의 시가 박히듯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석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태오는 코끝이 찡했다. 저리 노래해놓고 돌아서서 당신은 생의 끈을 놓쳤는가. 시집도 안 간 여자가. 이런 시집을 남겨놓고.

가로등 불빛이 창문의 물그림자를 벽에다가 새긴다. 밖은 추적추적하고 방은 아롱아롱하다. 옆집의 섹스는 길다. 냉채족발이 왔다. 그는 맥주 캔을 땄다. 그러고는 책장의 시집들을 한줄이나 빼서 책상에 쌓았다. 팬티 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그는 맥주를 한모금씩 넘기며 시집들을 들춘다. 사십세, 혹은 마흔살이라는 시들을 채집해볼 생각이다. 어느 시인은 ‘시절이 갔다,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살이다’1)라고 하고, 다른 시인은 ‘마흔살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이생을 가로질러 빠르게 날아가는 새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2)고 노래한다. ‘불혹(不惑)이 자꾸 부록(附錄)으로 들린다’3)는 하소연에는 웃었다.

 

세상에 그가 알고 지내는 시인은 그 도마 시인뿐이다. 그는 주마다 한두번씩 오전 열한시 삽십분이면 “별일 없으십니까?” 하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홍보실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건 기자들이었다. 박 상무는 기자는 상대하겠는데 시인은 껄끄럽다고 눈치껏 태오에게 떠넘겼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A급 관리대상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C급으로 분류된 온라인매체의 기자라서 그럴 것이다. 상무는 태오를 소개하며 계면쩍게도 한때 시를 쓴 문학도라고, 서로 얘기가 통할 거라고 부추겼다. 기자는 여러번 점심을 같이 했는데도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태오는 기자를 인근 비즈니스호텔 사우나로 모시곤 했다. 왠지 그를 보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씻지 않은 듯 부스스하고 세상에서 가장 찌든 얼굴로 나타났다. 어쩌면 지친 날만 찾아오는지도 몰랐다. 호텔사우나는 식당과 코스로 연계되어 있었다. 사우나도 하고 밥도 먹고 낮잠도 잘 수 있는 곳이었다. 간단히 땀 빼고 목욕가운 차림으로 유리문을 밀면 여자들이 서빙을 하는 식당이 나왔다. 식당 메뉴는 장어덮밥 한가지였다. 둘은 이미 나른해져서 식사 동안 먹는 데만 열중했다. 고량주를 반주로 곁들여 식사를 하다보면 점심을 먹는 건지 낮술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보통 그가 네댓잔을, 태오가 두잔을 비웠다. 어느 결에 고개를 들면 그의 목욕가운 자락으로 빨갛게 익어 늘어진 불알이 보이곤 했다. 때로 그는 눈을 붙이고 갈 셈으로 사우나와 식사의 순서를 바꾸고는 했다. 그때는 양말만 신고 가운을 걸친 기이한 차림으로 앉곤 했는데 살피듬 일고 털이 듬성듬성한 희멀건 허벅지와 정강이 끝에 검은색 양말이 다리목을 옥죄고 있었다. 양말 위로 자라 대가리처럼 괴고 앉은 그의 성기가 여간 볼썽사납지 않았다. 태오는 헛기침을 놓고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물었다.

“애들이 몇이죠?”

“셋입니다. 쌍둥이가 있어요.”

“오, 좋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설핏 웃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허벅지로 떨어진 생강채 한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자연히 그의 샅에 눈이 갔는데 생산 끝난 생식기가 이렇다는 듯 구석지기에 볼썽사납게 움츠려 있었다. 태오는 그런 비애를 자아내는 성기를 또 본 적이 있었다. 요양원 병실에서 대소변을 못 가리고 누워 지내다가 간 어머니에게서였다. 저기서 자신이 태어났다는 게 말짱 거짓말 같고 수치스러워서 그는 외면했다. 태오는 저절로 목욕가운 자락을 여몄다.

“개새끼들……”

그가 술잔을 털어넣고 별안간 신음처럼 욕을 내뱉었다. 태오는 깜짝 놀라서 “예?”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제 혀를 씹어 넘기듯 장어꼬랑지를 우물거리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나 동료, 아니면 문단과 세상을 떠올리고는 무의식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옆집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태오의 방 창문이 살짝 흔들렸다.

“씨발새끼야, 꺼져! 다신 오지 마.”

아직 펼쳐보지 못한 시집들이 책상에 쌓여 있었지만 태오는 시집을 내려놓았다. 마흔살을 찾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문을 꽁꽁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여자는 소리쳤다.

“꺼지라니까, 새끼야. 유부남이 무슨 벼슬이야? 내가 언제 매달렸냐고. 아쉬운 놈이 누군데? 일 다 봤으니까 당장 꺼져라.”

그래놓고 여자는 소리 내어 운다. 어쩌면 울음소리까지도 저리 허스키할까. 탑골공원에서 웬 할아버지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던 노파가 떠올랐다. 태오는 자신이 귀싸대기를 맞은 것 같아 뺨을 쓸어내렸다. 옆집여자는 생각보다 훨씬 늙은 여자일지 모른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 기자를 매번 그 험하고 밥맛 떨어지는 사우나 식당으로 이끌었는지 그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치욕스런 그의 생식기를 보고 나면 사납게 귀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런 깨달음에 뒤미처 한 생각이 술기운처럼 올라왔다. 그 기자가 시집 자서(自序)에 쓴 ‘그들을 만나고 오면 시가 한편씩 써졌다’는 문장은 혹 나를 지칭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개새끼.”

태오는 빈 캔을 우그러뜨리고 부엌으로 가 잭대니얼스를 병째 가져왔다. 그는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제로 그는 가슴을 틀어쥐었다. 독한 양주를 한모금 털어넣어 통증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통증이 지나고 나자 왠지 안도감에 젖어서 나른해졌다. 침을 뱉듯이 단추를 내뱉은 배에다가 그는 가만히 오른손을 얹었다. , 떨어진 건 단추가 아니라 어떤 관절에서 나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사십년 묵은 육체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신호이지 않았을까. 유턴지점에서 손바닥에 도장을 박듯 그는 제 배를 꾹 눌렀다. 다음주에는 어떻게든 예약을 하고 검진을 받아봐야겠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박 상무에게 내일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므로 하루 월차휴가를 낼 거라고 말하자 그는 “어디 안 좋아?” 하고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장 작가 안색이 요새 안 좋네.”

“아니에요. 그것 있잖아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아! 그거” 하고는 박 상무는 의자 깊숙이 물러나 팔짱을 끼었다. 그는 예의 내 다 알지, 하는 표정으로 태오의 몸을 훑어보았다.

“이제 나이에 무릎을 꿇을 때가 됐지.”

“네?”

“몸이 마음을 안 따라주는 나이가 됐다는 거 아냐. 팔십을 반으로 딱 잘라 사십이 아니거든. 그건 옛 사람들이 요절이냐 아니냐 가를 때 쓰던 거고. 생애전환기라는 말은 그냥 연식을 말하는 거야. 몸을 사십년쯤 굴리면 덜컹거리더라, 이제 기름칠도 하고 수리도 하고 살아라. 근데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지. 나 나이 들었어, 하고 무릎 딱 꿇으면 간단한데 그걸 인정 못해서 고생 아니냐고. 내가 한 삼년 속으로 앓았지.”

“이젠 괜찮으시고요?”

“말도 못하고 혼자 싸돌아다녔는데 눈치 못 챘구나?”

그는 자수하듯이 두 팔을 들었다. 태오는 상무를 살갑게 쳐다보았다.

“상무님, 제가 까페라떼 한잔 살까요?”

“그거 오후에는 마시면 안되겠더라고. 밤에 통 잠이 안 와. 대신 나가서 한번 빨까?”

그가 손가락을 입에 올려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고는 날래게 책상 밑으로 허리를 접어넣었다. 태오는 피식 웃었다. 책상 위를 더듬는 손길에 태오는 냉큼 효자손을 안겨주었다. 그가 슬리퍼를 찾아내 허리를 펴면서 “아이구, 이게 여기 있었네” 하고 작고 빨간 물건을 들어 보였다. 만보기였다. 반년 전 잃어버린 물건을 들고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선을 정리한 쫄대 뒤에 숨어 계셨구먼.”

그는 먼지 오른 만보기를 화장지로 훔쳐내고 태오에게 내밀었다.

“가져. 전지만 갈아 끼우면 작동할 거야.”

“왜 그걸 저한테 주세요? 애타게 찾으셨잖아요.”

“이제 필요 없게 됐어. 헬스클럽 연간회원권을 끊었거든. 자, 받으래도.”

그러면서 만보기로 태오의 배를 꾹 눌렀다. 태오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

“누가 요새 만보기를 갖고 다녀요. 휴대폰에도 어플이 있는데.”

“그래? 그거하고 다를걸.”

“뭐가 달라요? 훨씬 불편하지. 촌스럽고.”

“허허, 한번 써보라니까. 이거 굉장히 철학적인 기계라고. 이거 받고 대신 담배는 가끔 얻어 피울 수 있게 해주라.”

박 상무는 태오를 사무실 밖으로 밀었다. 태오는 그를 줄래줄래 따라가며 말했다.

“상무님, 만보기 이거 살아 있는데요.”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반년을 가만히 잠들어 있었으니까. 잘됐네.”

“그런데 다른 기능은 다 먹통인데요.”

태오는 메뉴 버튼을 조작해보았다. 다른 기능은 액정도 뜨지 않았다.

“타임 기능도 안되고, 칼로리 소모량이나 거리 측정하는 것도 먹통이네.”

박 상무가 기웃이 고개를 밀었다.

“그래? 그런 기능들이 있었어?”

박 상무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걷는 데 그런 게 필요해. 걸음수만 재면 되지.”

박 상무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태오를 기다렸다. 태오는 얼른 허리춤에 만보기를 꽂고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었다.

 

태오는 제 키가 미세하게 줄어든 것 같았다. 시력 테스트를 받을 때는 침이 꼴딱 넘어갔다. 병원을 한바퀴 돌며 채혈, 복부 초음파, 흉부 엑스레이 촬영, 심전도,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나자 거의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틀림없이 신체 각 부위에 조금씩 경고등이 켜져 있을 것이다. 여러 지표들이 예상치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는 대기실에 우울하게 앉아 괜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데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마흔의 강을 물수제비 뜬 조약돌처럼 건너게 해준다면 좀더 진지하게 성실하게 살아보겠다고 그는 나달나달한 검진 가운을 여미며 생각했다. 박 상무 말대로 그는 나이에 무릎을 꿇기로 했다.

 

 

2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보다 조금씩 높아서 걷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뱃살 탓만도 아니다. 그것들은 어쩌면 부차적인 이유였다. 그는 자신의 판에 박힌 생활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고, 때마침 장난감 같은 중국산 만보기가 손에 들어왔을 뿐이다.

만보기는 위력이 대단했다. 만보기를 차는 순간 그는 걷는 사람이 되었다. 그 작은 장치에 제 발걸음이 낱낱이 셈이 되어 기록된다는 의식만으로도 걷게 만들었다. 걸을 때마다 ‘득템’ 하는 느낌. 거창하게 그는 족적을 남긴다고 표현했다.

이동은 소모적이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비행기에서도 음료와 음식으로 살살 달래서 데려가는 것이다. 이동의 모든 과정을 줄이고 줄여 끝내 없애버리는 게 물리학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순간이동 기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불가피하게 물리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만보기를 차자 역발상처럼 그 이동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공간을 잘게 분절, 압축하여 얻는 게 속도라면 이 조약돌만 한 만보기는 그 허상을 깨뜨렸다. 부챗살은 펴야 그림이 보이고 바람이 일어난다. 만보기를 차자 접힌 길이 다시 펴지고 풍경이 들어왔다. 멀고 굽은 길도 반가워졌다.

이런 속성을 두고 만보기가 철학적인 물건이라고 했을까? 태오는 박 상무에게 과제를 받은 사람처럼 골똘해지고는 했다. 만보 걷기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였다. 다리허리만보기. 자신이 느리고 단순한 삶을 지향할 수 없는 시민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는 소박하게나마 걷는 일만은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단순한 일만은 휴대폰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통화와 트윗과 카톡과 뉴스와 주식거래와 야구중계와 팟캐스트에 지쳐서 퇴근 무렵이면 스스로 방전되고 마는 휴대폰에 제 족적을 기록하는 일까지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만보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부족하다면 핑계를 허리에 돌리고 싶었다. 어쨌든 이 일은 떨어진 단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살은 빼야 하고 빼려면 걸어야 하고 그러려면 허리는 만보기 정도는 감당해줘야 했다. 그까짓 것도 못하겠다면 허리도 아니었다.

그는 익숙한 길과 공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토막시간, 자투리시간 들이 새롭게 세팅되는 체험을 했다. 그가 비상구로나 여기던 빌딩 계단은 400보, 500보를 소화할 수 있는 코스가 되었고, 오르고 내리는 상상만으로도 버겁던 지하철 계단은 800보 이상의 걷기 코스가 되었다. 만나면 반갑던 에스컬레이터도 버리고 그는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하철의 긴 환승로도 잘 다듬어진 트랙처럼 여겨졌다.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에서 그는 우두커니 서서 짜증스럽고 초조한 마음으로 목을 빼고 차를 기다리던 자신을 버렸다. 그는 이제 허리에 카운트를 쌓으며 승강장을 여유롭게 배회했다. 카운트는 계속 오르고 있으므로 버스나 지하철이 늦어진다고 투덜거릴 필요도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없더라도 아쉽지 않았다. 만보기는 앉는 걸 싫어했다. 퇴근길 집 앞에서 만보기를 확인했을 때 카운트 숫자가 8000이나 9000보일 때 만보기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다. 그는 가방을 매고 2000보, 1000보를 더 걷고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100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할 때 오늘 잘 살았어, 고생했어,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하루하루 만보에 도달하는 성취감이 그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아무것도 쥔 것 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자괴감은 이제 들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박 상무에게 일일보고 하듯이 만보기를 들이밀었다. 그러면 그는 정말 기적을 선사한 사람처럼 “봐. 임자가 따로 있다니까” 하며 기꺼워했다.

“은근 재밌지? 나도 다시 만보기를 사야 할까봐.”

“제가 하나 사드려요?”

박 상무는 손사래를 쳤다.

“연간회원권을 괜히 끊었나봐. 족쇄가 따로 없어.”

작심삼일이라고 위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편리한 이동에 길들여진 다리의 습관으로는 걷는 일이 귀찮고 피곤하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출퇴근길은 구두 차림이었다. 종아리에 알이 배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힌 듯 화끈거렸다. 그러다보면 만보기를 집어드는 게 주저될 때가 있었다. 고생이 빤한데 누군들 선뜻 손이 가겠는가. 회식이라도 있어서 만보를 채우지 못한 날은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듯 낙담했다. 그러나 그런 심리적 저항감을 이기고 허리에 만보기를 차는 순간 다시 걷게 되었다. 만보는 만보를 불렀다. 어제 채운 만보, 그제 채운 만보가 오늘의 만보를 불렀다. 아까워서 그랬다. 역으로 어제 채우지 못한 만보는 오늘의 목표의식을 상실하게 했다.

태오는 그렇게 한달을 걸었다. 한달 단위의 목표를 경험하자 일년이 보이고 계속해도 될 것 같았다. 더이상 종아리 근육통도 없고 발바닥도 쓰리지 않았다. 허리띠가 한칸 줄어들었다. 걷는 사람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걷기 중독자가 되는 거였다. 이들을 ‘워킹홀릭’(walking-holic) 혹은 ‘걷기족()’이라고 한다. 그는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는 노인이 이십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보를 걷고 있다는 사연을 접한 적이 있다. 노인에게 딱 한번 그 기록이 깨질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여행 때였다. 노인은 객실 통로에서 만보를 채웠다고 한다. 그 정도면 걷기 중독자가 아니라 만보기 중독자였다.

그는 검은색 마사이족 워킹화와 트레킹화도 한켤레씩 구입했다. 거금을 들여 신발을 구매하며 제발 돈이 아깝지 않게 걸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는 발걸음마다 구령처럼 숫자를 세었다. 그는 동선에 있는 모든 계단의 숫자를 파악하게 되었다. 거리 개념도 달라졌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750보,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1530보, 회사에서 당구장까지 150보, 비즈니스호텔까지는 400보, 회장 비서실까지는 130보. 자료실까지는 300보. 이제 만보기의 카운트를 보지 않고도 그는 몇보나 걸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숫자를 센다는 의식이 없이도 입술은 자연적으로 숫자를 세었다. 온통 숫자로 채워진 머리에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만보기의 기능이 몸으로 확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뭔가 운동을 해보겠다고 망설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만보기를 사서 걸으라고 조언했다. 만보기를 차는 순간 당신도 워킹홀릭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전에 없는 활기로 떠들어댔다.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입장이 되니까 어떤 사명감마저 생겼다.

그게 탈이었을까. 머잖아 태오는 회의감에 빠졌다. 만보기가 족쇄가 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가 아무리 만보의 전도사처럼 굴어도 그는 만보를 향해 꾸역꾸역 걷는 기계에 불과했다. 사정만을 향해 질주하는 서툰 수컷과 다름없었다. 길을 해체하여 과정 자체로 재구성했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은 목표지향주의자였다. 만보가 아닌 9999보는 의미가 없었다. 9999보를 걷는 날은 실패하는 날이었다. 이를 악물고 걷는 날도 있었다. 지하철 막차에 올랐는데 아직 만보기의 카운트가 7000을 간신히 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날이 바뀔 것이고 그러면 만보기는 0으로 리셋이 될 거였다. 그는 초조한 나머지 술기운으로 속이 울렁거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카운트를 채우려고 여덟량의 흔들리는 지하철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적으로 걸었다. 술꾼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옷을 여미고 가방을 가슴에 고정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그는 세차례나 왕복했다. 만보가 채워졌을 때 그는 이마에서 땀을 훔치며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자괴감에 빠졌다. 태오는 비행기에서 만보를 채웠다는 노인과 자신이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만보기의 전원을 꺼서 책장 한귀 작은 기념품들 사이에 올려두었다.

그는 더이상 맹렬하게 걷지 않았다. 의자가 보이면 앉았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걸음을 세는 버릇은 쉬 고쳐지지 않았다. 숫자를 익히는 어린애처럼 그는 중얼거리며 걸었다.

“요새 만보 안하나보지?”

라이터 불에서 물러나며 박 상무가 물었다. 150보 떨어진 당구장 앞이었다.

“금연하고 비슷합니다.”

박 상무는 히죽 웃었다. 그는 지압슬리퍼에서 발을 하나 빼서 다른 발 위에 포개놓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 응?”

“헬스장도 잘 안 다녀지지요?”

“내가 거기 다닐 시간이 어디 있어? 주말에나 마누라 등쌀에 한번씩 가지.”

박 상무가 이번에는 발을 바꿔서 섰다. 태오는 오래 담아둔 말을 꺼냈다.

“지압슬리퍼를 좋은 걸로 바꿔보시지 그러세요.”

“왜? 너무 낡아 보여?”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내가?”

“네.”

“힘 하나도 안 들어. 이거라도 안하면 사람이 쳐져서 쓰나.”

“그런 거였어요?”

“뭐가?”

“아니에요. 그나저나 걷기 하기 전보다 몸이 더 찌뿌듯해요.”

“그거 금단현상이다.”

태오는 풋 웃었다.

“맞네, 그거. 운동도 중독이라 멈추면 금단현상이 와. 그 정도 경지에 들었는데 계속해보지그래.”

“상무님, 제가 좀 진지하지요?”

“좀 싱겁지. …… 왜 또?”

“아니요. 내가 매사에 좀 그런 것 같아서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래.”

“제가 무슨 글을 쓴다고 그런 말씀을 자꾸 하세요.”

“거긴 딱 글 쓸 사람인데, 영감 밑은 좀 아깝지.”

두 사람은 마지막 한모금을 빨고 담배를 껐다.

태오는 사무실로 돌아와 이면지를 펼쳐놓고 필기구함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는 노란 연필을 뽑아들었다. 심이 무뎌진 연필을 그는 정성스럽게 깎았다. 그리고는 이면지에다가 연필을 댔다. 그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오래 연필을 대고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심 끝이 뚝 부러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연필을 필기구함에 넣고 이면지를 치웠다.

 

태오는 퇴근이 빠른 날이면 트레킹화를 신고 인근 공원으로 갔다. 만보기가 없다고 걸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금연, 절주, 걷기, 세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면 걷기는 그가 망설임 없이 뽑아들 수 있는 카드였다.

근린공원에는 둘레 800미터 코스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날이 풀리면서 걷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많은 시민이 맹렬하게 밤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마스크를 쓴 여자들은 히프를 당기고 가슴을 편 채 아령을 힘차게 흔들며 운동장을 돌았다. 주인을 따라 나온 애완견들도 맹렬하게 돌았다. 작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서가는 퍼그에게도 괜히 경쟁심이 생겼다. 뒤태가 섹시한 여자가 앞에서 걸으면 긴장감이 들어서 좋았다. 얼굴 좀 구경할까 싶어 쫓아보지만 따라잡지 못하고 한바퀴가 금방이었다. 숨이 차서 뒤로 쳐지면 뚱뚱한 사람이나 노인, 애 걸음마를 시키러 나온 사람, 휴대폰에 얼굴을 박은 여학생들과 엉키게 된다. 그래도 근 한달 보름이나 걷기 관록을 쌓은 그의 입장에서 그들과 나란히 걸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보폭을 늘렸다. 그렇게 주관 없이 행렬에 휩쓸리면 다섯바퀴도 채 못 돌고 튕겨나왔다. 마치 출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내린 기분이었다. 만보기를 차고 다닐 때도 그는 이렇게 맹렬하게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정말 한가로운 만보(漫步)를 즐겨왔던 것이다. 그는 제 걷기를 만만보(漫漫步)라 이름 지었다.

태오는 공원을 버리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거기도 초저녁에는 걷기족들이 바글바글해서 그는 나가는 시간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밤 열한시가 넘어서 나갈 때도 있었다. 자정에 가까운 운동장을 도는 사람은 태오 말고도 소년이 하나 더 있었다. 소년은 아주 뚱뚱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물병 하나를 꼭 쥐고 제게 운동할 시간은 이 시간밖에 없다는 듯 고개를 박고 절뚝거리며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 태오는 소년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늘 반바퀴쯤 떨어져서 걸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관찰하거나 의식하고 있다는 걸 소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소년을 추월하지도, 소년에게 추월당하지도 않을 거리를 두고 묵묵히 걸었다. 그러는 새 소년과 자신이 뭔가 함께 견디며 겪고 있다는 동류의식이 싹텄다. 저 나이에 심야의 운동장을 걷는 소년이 안쓰러우면서도 누구나 다른 방식으로 저런 시간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에게 만약 꿈이 있다면 그 꿈이 살 빼기라 하더라도 꼭 이루어졌으면 싶었다. 포기하지 않기를. 태오는 심야의 운동장에 소년이 보이면 안도가 되고 든든하고 걸음걸이가 경건해졌다.

그는 걸으면서 어린 시절 고향 길들을 떠올렸다. 운동장의 단조로움 탓인지, 잔잔해진 마음의 장난인지 그는 자꾸 그 구불텅하고 아득한 들길 산길이 떠올랐다. 바람 소리 손끝에 쓸리던 보리밭길, 멧비둘기 울음소리 섧던 진달래길, 땅속 냄새와 호리병 소리가 생생한 대숲길, 치맛자락 냄새가 넘실거리던 갯둑길. 사철 달아올라 훈훈한 기후와 철모르고 흐드러진 남방의 꽃들, 들뜨고 야릇한 충동질에 유난히 미친 이들이 많던 고장. 여자 머리채를 예사로 끌고 다니는 막돼먹은 사내들과 집 나간 여자들이 어금니를 물고 저주하던 땅……

그렇게 나부끼는 커튼 같은 기억들을 붙잡고 태오는 소설 공부를 해볼까 고민 중이었다. 뭐든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간절한지, 정말 간절한지 물으며 그는 걸었다.

태오는 한달 후 단조로운 운동장을 떠났다. 다른 길들과 골목을 찾아 그는 떠났다. 이제 만보기가 없어도 충만감으로 만만보의 밤길을 걸을 수 있었다. 멀고 낯선 길을 걸을 때도 소년이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아 그는 때로 앞을 보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 소년도 아마 그럴 거였다. 소년이여, 나를 위해 기도하라.

 

 

3

 

소설창작반 강사는 삼십대 중반의 여자 소설가였다. 나 선생은 마른 얼굴에 얼굴을 반이나 덮는 안경을 쓰고 목소리는 조곤조곤했다. 썩 미인은 아니지만 자기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스무명 남짓한 수강생은 대부분 여자였고 남자는 퇴역 해군 중령 한 사람과 은퇴한 공무원, 그리고 태오였다. 야간반이라 여자들은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미혼녀보다 기혼녀가 더 많아 보였다.

태오는 첫 수업에 가면서 교보문고에 들러 나 선생이 낸 소설집 두권과 장편소설 한권을 샀다. 출석을 부르는 동안 그는 나 선생의 책들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거 뭐예요?”

나 선생이 안경 너머로 게슴츠레 눈을 뜨고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 선생이 턱을 내밀어 말했다.

“그거 당장 치우세요.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태오는 움찔했다. 장난인가 했는데 나 선생의 표정은 엄했다.

“어디서 얼렁뚱땅 수작질이에요? 그렇게 해서 문학이 될 줄 아세요? 당장 치워요.”

태오는 얼른 가방에 책을 집어넣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지만 자신이 지금 나이 어린 여자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강의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나 선생은 다시 출석을 불렀다. 태오의 이름이 불리고 태오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예” 하고 대답했다. 그는 헛기침을 했다.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이라도 걷어차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는 무엇이 처녀 선생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왜 자신이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출석을 다 부르고 나 선생이 태오를 보고, 그리고 강의실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피차 불편한 짓 하지 맙시다. 여긴 여러분이 학점을 따는 과정도 아니고 졸업장도 없는 곳이에요. 자기 돈 내고 소설을 쓰러 온 곳이지요. 장태오씨? 불쾌하셨을 거예요. 그랬다면 미안해요.”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나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기분이 나빴다. 그러니까 자신을 잘 보여보려고 속물 짓한 사람으로 찍어내리고 있었다. 태오는 손을 들었다.

“말씀해보세요.”

“선생님, 좀 지나치신데요. 불편한 건 선생님 자존심 때문이 아닌가요? 독자가 책을 내밀어도 이렇게 대하십니까?”

“아니요. 장태오씨가 내 학생이니까 자존심이 상한 거예요.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나 싶어서요. 자존심을 건드시니까 당연히 화를 내는 거고요. 그렇지 않아요?”

“그럼 제 자존심은요?”

나 선생은 고개를 세워서 큼, 하고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차차 작품 써서 갚으세요.”

씨발년, 하고 태오는 저절로 이가 갈렸다.

나 선생은 강의를 시작했다. 4개월 과정 동안 에세이 한편과 단편소설 한편씩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써낼 자신이 없는 사람은 수강을 취소해도 되고 선납한 수강료는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원래 좀 신랄한 사람 같아서 태오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 선생은 보드에 ‘작가란 무엇인가’라고 썼다. 그래놓고 그녀는 돌아서서 물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까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려운 질문이죠? 그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많이 써야 한다, 사유가 깊어야 한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는 대답들이 유쾌하게 쏟아졌다. 나 선생이 대답들을 받았다.

“다독, 다작, 다상량. 그거야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거고요. 그것 말고도 더 특별한 뭐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자, 어떤 자가 작가가 될까요?”

질문을 해놓고 나 선생은 돌아서서 보드에 매직을 댔다.

‘자신과 가족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자’

수강생들 사이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났다. 나 선생도 돌아서서 싱긋 웃었다.

“자신의 경험과 가족 얘기를 쓰라는 소리인가? 자기의 치부를 고백하고 가족사를 벗겨서 노출하라는 소리일까요? 물론 아니에요. 문학을 받아들이고 문학에 임하는 작가적 태도를 얘기하는 거예요. 어떻게 작가로서 숨쉬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만나고 연애하고, 하물며 죽을까, 하는 문제, 즉 문학을 자기 삶의 형식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얘기지요. 작가가 문학에 투사하는 첫 마음이고, 어쩌면 평생 되풀이할 질문이에요. 나는 왜 쓰는가? 당연히 이런 질문이 오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왜 여기 오셨어요? 소설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어서 오셨겠지요. 그런데 왜 꼭 당신이 작가가 되어야 합니까? 정말 이것 아니면 숨을 못 쉬겠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태오는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나 선생은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턱을 내밀었다.

“장태오씨, 소설 좀 써보셨어요?”

“아닙니다. 한편도 안 써봤는데요.”

“그런데 소설 아니면 숨을 못 쉬시겠다? 왜요?”

“제가 질문을 잘 이해 못했습니다. 세상에 숨쉴 만한 데가 없어서 익사 직전에 여기 왔거든요.”

나 선생과 수강생들이 웃었다. 나 선생이 말했다.

“그럼 여기에서도 숨을 못 쉬면 끝장이네요. 어디 다른 데도 가보셨어요?”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 말고도 숨쉴 만한 데 많을 거예요. 암튼 일단 오셨으니 어디 여기가 숨쉴 만한 데인지 알아봅시다.”

그러고 나서 나 선생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자에 대해 강의를 이어갔다.

문학은 지극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관통하지 않으면 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와 불화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문학을 삶의 형식으로 껴입기는 불가능하다. 타인과 세계를 향한 문학적 도정 역시 자신과 문학이 관계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된다. 양파처럼 변주된다. 샤먼이 있다. 무병(巫病)을 앓고 나서 샤먼이 돼서는 영가(靈)를 제 육체에 받아 영가의 목소리로 말하고 영가의 울음을 운다. 이 무병을 앓은 샤먼을 심리학에서는 ‘창조적 질환’을 앓은 사람이라고 한다. 상처를 가진 자이다. ‘상처를 입은 자’가 아니라 ‘상처를 입고 치유된 자’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창조적 질환을 앓고 나서 치유된 사람이거나 그걸 수행 중인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문제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걸 글로 써서 스스로 극복하고 치유하는 경험을 해야만 아, 문학으로 숨을 쉰다는 실감을 할 수 있다. 그 숨쉬는 상태를 즐기고 그 방식을 깨쳐야 작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상처를 입은 자가 아니라 그 상처를 입고 치유된 자이다. 그래서 제 상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상처만 갖고 있는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없다. 왜? 문학의 참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나 잘 짓고 문장이나 잘 쓰면 되는 줄 안다. 작가는 반드시 치유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작가는 문학을 결국 삶의 형식으로 맞아들인다. 삶을 문학으로 살아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쓰는 가운데 보람을 느끼는 작가가 된다. 치유된 자는 자기연민을 극복해낸 자다. 자기연민을 극복해낸 자는 샤먼처럼 타인의 상처도 자기 일처럼 겪어낼 수 있다. 세계의 고통과 공명할 수 있다. 문학적 진정성이 싹트는 자리가 거기다. 그 진정성으로 문학은 독자와 교감한다.

강의를 끝내며 나 선생은 에세이 과제를 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콤플렉스를 에세이로 써오세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나 선생은 발을 굴러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무슨 소리예요? 작가의 몸이 돼보자고 한시간 넘게 떠들었구먼. 거짓말은 절대 안됩니다. 과장이나 미화도 안됩니다. 오, 내 상처가 얼마나 독하고 깊은 줄 알아? 하는 자세는 안됩니다. 상처의 화려함을 뽐내자는 게 아니니까요. 남들이 읽고 너 그렇게 아팠구나, 하는 글이 되면 안됩니다. 아, 네 글을 읽으니 내가 살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나야겠죠. 한 사람의 지혜로운 고투가 느껴지게.”

교실에서 탄식하는 소리는 쏙 들어갔지만 수강생들은 벌써 걱정으로 움츠러든 것 같았다. 태오는 상체가 꺼져내리듯 낮은 숨을 토해내며 작아졌다. 그는 노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콤플렉스’라고 썼다. 그는 강의를 들으며 자기구현에 이르는 작가의 여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정확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작가의 일이 재능과 기술이 아니라 스님들의 일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 몸에서 피어난 화두를 안고 방황하는 구도승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강의하면서 그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대목마다 숨을 고르며 넘어가던 나 선생의 모습이 그런 느낌을 더 불러일으켰는지도 몰랐다. 그 순간 왜 또 도마 시인의 불알이 떠오르고, 운동장에 두고 온 뚱뚱한 소년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몇매나 써야 해요, 선생님?”

그의 등 뒤에서 여자 하나가 물었다.

“그건 자유예요. 원고지 10매 이상만 되면 되겠어요. 또 질문 있으세요?”

“발표를 해야 하나요?”

“그럼요. 이 교실에서 쓰는 모든 글들은 당연히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눌 거예요.”

수강생들이 낮게 탄성을 질렀다. 그 반응을 지켜본 나 선생이 중얼거렸다.

“이 과제 내주면 꼭 몇명은 나가떨어져요.”

그러면서 그녀는 태오를 힐끔 봤는데 그건 태오만의 느낌인지 몰랐다. 나 선생은 또 질문이 있느냐는 듯 수강생들을 둘러보았다. 태오가 예의 그 쭈뼛쭈뼛한 몸짓으로 손을 들었다. 나 선생이 픽 웃었다.

“여기서는 손들지 않아도 돼요.”

태오는 손을 내리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당연히 저 과정들을 다 겪으신 거죠?”

선생을 한방 먹이려고 한 질문은 아니었으나 나 선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잠시 무람한 표정으로 태오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제 책을 다 사신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보실래요? 확인해서 알려주시면 더 고맙겠고요.”

 

태오는 에세이 쓰기 과제를 놓고 계속 다녀? 말아? 고민이 깊었다. 그건 만보기 체험이나 소년의 체험과 같은 문제였다. 쓰라린 경험을 하고 물러나게 될지,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열망에 미혹되는 건 두려웠다. 당장 나 선생에게서 받은 모멸과 그에 따른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오기처럼 생기는 걸 보면 만보기 체험이 될 공산이 컸다. 그러면서도 나 선생이 단추처럼 툭, 치고 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콤플렉스. 그는 노트를 바라보았다. 콤플렉스라는 말이 아주 모호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다시 노트를 들여다보고 한줄 써보았다. 가장 상처가 된 일. 그리고 그 옆에 ‘노란 눈?’이라고 썼다. 그는 옅은 갈색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런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 항상 주눅이 들어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가장 큰 상처가 그것이었을까 주저되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농약, 살해, 아버지’라고 썼다. 그는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자기가 쓴 단어들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이었군, 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거라면 뭘 쓸 수 있을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연필로 그어서 세 단어를 차례로 지웠다. 그리고 ‘노란 눈’에 동그라미를 쳤다.

 

 

노란 눈의 아이

 

나는 대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였다. 눈빛이 노랬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눈동자가 연한 갈색이었다. 어른들이 서양인이나 외국인을 가리켜 ‘노란 눈’으로 비유하듯이 친구들은 내 눈을 노랗다고 놀렸다.

그렇다고 내가 외국인이나 혼혈인이었던 건 아니다. 나는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그런 눈빛을 가지고 태어났다. 요즘은 외국인들을 많이 접해서 과거만큼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지 않다. 젊은 여성들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컬러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걸 보면 나로서는 문화의 변화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연예인 중에 이영애씨와 고아라씨 같은 이들은 갈색 눈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아마 그이들도 브라운관의 스타가 되기 전에는 그런 눈빛 탓에 힘겨운 사춘기를 보냈는지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눈빛에 대한 자의식으로 내 어린 시절은 늘 고통스러웠다. 눈빛은 사춘기 시절 내내 콤플렉스였다. 친구들이 외국아이 혹은 튀기로 부르기 십상이었고, 심지어 외계인이라 별명을 지어주는 짓궂은 애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누구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새로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 새 학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내 눈빛과 외모에 적응할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기를 시작했다. 자연 말수가 줄고 친구들과 두루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튀는 언행에 대해 생득적으로 거부감을 가졌다.

친구들이 눈이 작다, 여드름이 많다, 성적이 형편없다 따위의 콤플렉스를 토로해도 내 콤플렉스에는 댈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치료할 수도 수정할 수도 없는 눈빛을 타고 난 것이다. 때로는 거울 들여다보기가 두려웠다.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면 내 눈빛이 확연히 흐리게 나와서 사진 찍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다. 눈을 피한 채 대화하는 내 버릇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한다는 거였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지낸 친구들은 수줍음 많은 내가 으레 그러는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내 눈을 특이하게 바라보기는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란 눈에 대한 콤플렉스는 스스로 과민하게 키워온 마음의 병일지도 몰랐다. 실상 많은 콤플렉스는 그렇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먼저 상대의 눈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내 눈빛이나 외모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보기도 했다. 때로는 난 혼혈인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상대들은 보통 한바탕 웃고는 나를 편하게 맞아주었다. 잠깐 만난 사람도 내 눈빛 때문에 잘 기억해준다. 물론 무의식 깊은 곳에서 노란 눈 콤플렉스가 온전히 극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서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마음이 떨리는 걸 보면. 그렇지만 노란 눈이 더는 마음의 상처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태오는 에세이를 낭독하고 교탁에서 내려섰다. 수강생들이 복사물에서 고개를 들어 박수를 쳤다. 음, 잘 썼다, 눈 예쁜데 뭐, 하는 소리를 들으며 태오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 선생의 말대로 수강생이 여섯명이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은 열여섯명의 수강생이 모두 에세이를 써온 건 아니었다. 과제를 제출한 사람은 태오를 비롯해 다섯명뿐이었다. 나 선생은 오늘로 숙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제출 못한 수강생들은 다음주까지 제출하라고 말했다.

나 선생이 교탁에 섰다. 이제 수강생들에게 감상평을 듣고 나 선생이 마무리로 강평을 할 것이다. 태오는 긴장이 되었다.

“수고하셨어요. 장태오씨의 에세이에 대한 소감이 어떠셨는지 말씀해보시겠어요?”

아직 서먹서먹한 수강생들은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았다. 지목을 하면 되겠지만 나 선생은 기다려서 압박하는 방식을 택한 듯했다. 태오는 그 방법도 일종의 길들이기거니 여겼다. 침묵이 길어지고 선생이 간절한 눈빛으로 기다리면 누구든 입을 열게 마련이었다. 큼큼, 하고 누군가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남자 수강생이라고는 태오와 함께 둘만 남은 예비역 해군 중령이었다. 중령은 예편한 지 이십년이 지나서 초로에 접어든 노인이었다.

“잘 읽었습니다. 정말 옛날에는 이런 시선이 심했거든요. 저는 그걸 차별적이라 생각하지 않고 외국인들과 접촉이 없던 시절의 호기심이라 생각합니다만 어째든 작가의 어린 시절 눈빛에 대한 열등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어 지난주에 자의반 타의반 반장이 된, 초등학교 교사인 이혜자씨가 소감을 발표했다.

“기성작가의 에세이 같았어요. 글을 많이 쓰신 분 같아요. 솔직담백해서 공감이 되었고요, 열등감을 극복해내는 작가의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글이었어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꽤 있거든요.”

이혜자씨의 감상평이 끝났다. 그리고 더는 없었다. 다 비슷하다는 눈빛이었다. 나 선생도 더 기다리지 않고 강평을 준비했다.

“장태오씨!”

태오는 나 선생을 바라보았다. 나 선생이 턱을 내밀고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옆자리에서 웃는 소리가 났을 때 나 선생은 턱을 당겨 말했다.

“장태오씨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독특한 인상이 있었는데 그게 갈색 눈동자에서 비롯한 것이었군요. 장태오씨는 에세이를 쓰고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나 선생은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을 기다렸다. 태오는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아픔이 잠시 떠오르기는 했지만 덤덤했습니다. 편안하게 썼습니다.”

“이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콤플렉스입니까?”

태오는 나 선생의 공격적인 태도를 느끼며 허리를 폈다.

“제가 보기에 수백번도 더 사람들에게 떠벌렸을 것 같은데요. 에세이에도 고백해두었군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내 눈빛이나 외모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보기도 했다. 때로는 난 혼혈인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상대들은 보통 한바탕 웃고는 나를 편하게 맞아주었다.’ 이미 마음으로 다 극복한 일 아니에요? 아마도 쓰고 나서도 감정에 아무 변화가 없었을 거예요. 첫 문장 쓰면서 마지막 문장까지 다 떠올랐을 것 같아요. 첫 문장을 쓸 때 캄캄한 백지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어요? 왜 이런 걸 쓰지요? 이것 써서 어디 팔아서 원고료 받기로 했어요? 그것도 아닌데 왜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보람이 있지도 않은 글을 쓰셨어요?”

태오는 멍하니 어린 처녀를 바라보았다. 참혹했다. 그녀의 말이 다 맞았다. 나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음, 발표하세요” 하고 태오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태오는 눈물이 찔끔 돌았다. 지난 수업에서 느낀 모멸감과는 다른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괴로웠다.

다음 수강생이 에세이를 발표하는 동안 태오는 낭패감에 젖어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음 발표자는 삼십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이혼한 사연을 써왔다. 그녀는 이혼과정과 이혼 후 자기에게 찾아온 고통에 대해 담담하게 발표했다. 그녀는 비록 간통녀로 낙인이 찍혔지만 이제 진정하게 홀로 서보겠다고 글을 맺었다. 간통이라는 말이 끝 문장에 한번 쓰였는데도 감상평을 전하는 아가씨가 ‘어느 이혼녀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어느 간통녀의 고백’이라 잘못 인용할 만큼 강렬했다. 나 선생은 평을 맺으며 발표자에게 주문했다.

“두가지가 보충됐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실수처럼 슬쩍 언급하고 지나간 그 연하남과의 연애에 대해서 더 써보세요. 왜 그런 사랑을 선택했는지, 그 사랑의 감정이 작가에게 어땠는지. 그리고 두고 온 딸아이에게 갖는 감정도 있을 텐데 써보시고요. 죄책감은 충분히 짐작이 가니까 그것 말고, 딸이 컸을 때 여자 대 여자로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써보세요. 할 수 있겠어요?”

발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교실에서 가장 어린 여대생이 교탁으로 나왔다. 저렇게 앳돼 보이는 아이에게도 무슨 상처며 콤플렉스가 있을까 싶었다. 여대생은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한 이야기를 발표했는데 나 선생은 별로 언급이 없었다. 다음에 발표한 중년 수강생의 글이 뜨거웠다. 그녀는 열여섯에 대학생 사촌오빠에게 강간당한 사연을 발표했다. 그녀는 계속 울어서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 선생은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표정은 후련해 보였다. 발표를 하고도 시무룩한 사람은 태오와 간통녀뿐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태오는 이 교실 분위기에 반감이 들었다. 무슨 정신치료센터나 종교모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상담자나 종교지도자 코스프레를 하는 나 선생도 거슬렸다. 그녀에게서 문학을 신념화한 극단주의자의 모습이 보였다. 수강생들이 불안감 속에서 흔들리는 징후도 생생했다. 그들은 일상의 실감을 잃어버리고 끝내 일상으로의 복귀를 거부하는 광신도가 될지도 몰랐다. 그는 불안이야말로 가장 불온한 것이라 믿었는데 이 교실에서는 불안이 증식되고 있었다.

태오가 서둘러 가방을 쌀 때 반장 이혜자씨가 개강모임을 안내했다. 가까운 식당에 예약을 했다며 전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회비는 3만원이에요. 지금 저한테 주세요.”

태오는 회비를 내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식당까지 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건물 밖 흡연구역으로 갔다. 나 선생이 이미 재떨이 앞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목례를 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태오는 담배를 급하게 피웠고, 나 선생은 재가 붙을 만큼 천천히 피웠다. 바람 한점 없는 봄밤이었다. 담장 밖으로 백목련이 한 주먹 눈처럼 져 내렸다. 나 선생이 눈앞에 고인 연기를 손바람으로 흩뜨리며 말했다.

“뒤풀이 가실 거죠?”

태오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나 선생이 권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 익히는 자리니까 함께 가세요. 오늘 수업해봐서 알지만 빨리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요?”

태오는 변명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아이처럼 나 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선생이 다시 말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제 차에 학생들에게 나눠줄 책이 한 상자 있어요. 식당까지 옮겨야겠는데 도와주실래요? 그리고 저기요……”

나 선생은 손을 들어 태오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지퍼 열렸어요.”

그렇게 해서 태오는 민속주점까지 가게 되었다. 그는 두번에 걸친 수업으로 의기소침해져서 동료들과 말을 섞지 못했다. 예비역 중령이 나란히 앉아서 술잔 속도만 빨라졌다. 중령은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태오에게 “아,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반복했다. 발표하느라 수고했다는 말인지, 노란 눈의 인생을 두고 하는 말인지 헷갈렸다.

나 선생은 자신의 신간 장편소설에 일일이 싸인을 해서 수강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반장이 작가를 세워서 한말씀 듣자고 분위기를 몰았다. 성격대로 나 선생은 자리를 돌며 소주 한잔씩을 쳐주고 건배로 끝냈다.

태오는 책표지를 앞뒤로 꼼꼼히 뜯어보았다. 『늙은 햄릿』. 띠지에는 이런 카피가 씌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정염의 언어로 기록한 여성 3대 이야기.

예비역 중령이 아,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술잔을 비우기 무섭게 채워주었다. 그는 거의 입술만 축이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뒤에는 아예 술병을 들고 앉아서 캬, 소리까지 대신 곁들어주며 “역시 젊은 사내라 세시네. 문학하려면 술 좀 해야지” 하고 이방이 사또 술시중 들듯이 했다. 차라리 자작하느니만 못했다. 마침 반장 테이블에서 여대생이 먼저 일어나 자리가 생기자 태오는 가방과 책을 챙겨서 그쪽으로 옮겨 앉았다. 그는 고개도 안 돌렸다. 저런 사람은 초장부터 선을 긋는 게 나았다. 몸을 움직였더니 술기운이 뒷골까지 올라왔다.

반장팀은 태오가 온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화제에 집중해 있었다.

“그렇다니까, 보상금으로 12천만원을 쥐여주더래. 언니, 말이 돼? 공장에서 일하다가 추락사를 했는데 세상에, 산재보험금이 고작 그거래.”

“너무했다. 장기를 팔아도 6억이 넘는다잖아. 가만있자, 내가 기가 막혀서, 핸드폰에 찍어놓은 게 있는데…… 그래 여기 있네. 국제 암시장 장기매매 가격 기준으로 두피, 치아, 두개골, 피부, 혈액까지 처분하면 5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억이 조금 넘는다……”

“어휴, 끔찍해. 뭘 그런 걸 알아보고 다녀.”

“그 이야기 그만하자.”

태오는 자작으로 술을 마시는 걸 보고 나 선생이 앞에 와 앉았다.

“술 좀 드셨어요?”

그녀는 앞에 놓인 빈 잔을 내밀었다. 태오는 그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들은 잔을 부딪쳤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장 선생님한테 이제 잘해야겠네, 힘쓸 남자가 귀해서.”

태오는 풀린 눈으로 설핏 웃었다.

“선생님, 저한테 좀 미안하시죠?”

“왜 미안해요?”

“왜 이러세요. 조인트 까서 이리저리 굴리는데 이골이 났단 말입니다.”

“제가 조인트를 까요?”

“에이, 막 군기 잡고 그러시잖아요.”

“제가 뭔 군기를 잡아요?”

“사과 안하셔도 좋고요. 암튼 선생님은 저한테 좀 미안해하셔야 해요.”

이번에는 나 선생이 설핏 웃고는 반이나 남은 술을 비웠다. 그리고 한잔 받으라고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장 선생님, 저 미안한 거 없어요. 사과할 말을 왜 합니까?”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도 있잖아요.”

“제가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을 했던 모양이죠?”

“아니, 그런 눈치도 없으면서 소설 씁니까?”

그녀는 이마를 기울여서 태오를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취하셨네. 그래, 뭐가 그렇게 속상하셨을까?”

“선생님 말씀대로…… 끅, 저 안 취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 선생이 냅킨을 내밀었다. 태오는 냅킨으로 입술을 훔쳐냈다.

“저 안 취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노란 눈은 콤플렉스도 아니죠. 선생님이 점쟁이 빤스를 입으셨는데…… 그렇더라도 남 상처를 그렇게 막 밀고 들어오시면 안되죠. 그래요, 저한테 이따만 한 상처가 있어요. 근데 지금 못 쓰죠. 그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생살을 찢어서 억지로 꺼내라고 하면 그게 문학입니까? 그게 문학적입니까? 에이, 억지로 회개를 시키려고 그래.”

태오는 술을 죽 들이켰다. 나 선생이 술병을 기울이는 것을 태오는 빼앗아서 자작을 했다.

“선생님, 본의 아니게 미안합니다. 여튼 제가 젊어서 농약을 마셨습니다. 아부지가 하도 개 같아서 제가 같이 죽자고 한 대접씩 따라서 마셨습니다. 집구석이 행복해질 거라고 그냥 같이 가버리자고 했습니다.”

태오는 북받쳐서 콧물을 흘렸다. 옆자리에서 누가 옆구리를 찔렀다. 반장 이혜자씨였다.

“이제 그만해요. 술 많이 취하셨네.”

반장은 태오의 손에서 술잔을 거둬 상에 놓고, 술자리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나 선생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눈을 뜨고 말했다.

“어머니 살아 계세요?”

태오는 머리를 저었다.

“자, 이제 가요. 사람들이 기다리네.”

 

태오는 2주째 소설창작반 수업에 결석했다. 그날 밤의 일들을 그는 다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가 눈을 뜬 곳은 초등학교 운동장의 스탠드였다. 그는 새벽 한기를 둘러쓰고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범행을 당하고 버려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곳은 늦은 밤이면 그가 걷던 낯익은 운동장이었다. 근래에 그만큼 취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그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있었던 기억들이 단편적인 가운데 나 선생에게 몹시 불경스럽게 행동했다는 사실만은 또렷했다.

결석이 3주째로 접어들었을 때 회사 사무실로 택배물품이 도착했다. 나 선생이 보낸 책이었다. 그날 밤 식당에 흘리고 온 걸 챙겨 보낸 것이다. 책갈피에는 짧은 엽서가 한장 끼어 있었다. 책을 두고 가서 보낸다는 것, 바쁘지 않으면 수업에 나오셨으면 하며, 무엇보다도 아버지와의 일에 위로를 보내며, 만약 그 일을 글로 쓰게 된다면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고 그는 내심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제 그림자로부터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소설창작반 교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나 선생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이 무모한 짓을 저질러 발등을 찍고 있다, 부끄럼을 덜고 돌아가겠다,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된 걸 알고 있다, 비록 취중에 발설된 말이라도 말은 흘러 넘쳐서 봉인된 항아리 전이 젖어버렸다, 내면의 척력과 맞서며 두고 온 스무살 청년을 만나보겠다. 그렇게 답장을 썼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첫 대목부터 지지부진했다. 주인공을 귀향시키는 일부터 막혔다고 할까. 태오는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여러가지로 고민했다. 어떤 식으로 실마리를 잡아봐도 진부하고 공허한 설정들로 여겨졌다. 나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

 

죄지은 사람 집에 돌려보내기라… 뱃살빼기 비법, 늙지 않는 법 10가지, O형 남자 꼬시는 법 6가지라면 모를까 집에 돌아가기 팁 같은 건 인터넷에도 안 뜨네요. 가볍게 귀가시키고 싶으신 거죠? 다른 작가분들 소설에 보면 누군가를 데리고 가던데. 김영하 작가의 ‘오빠’는 철딱서니 없는 애인을 데리고 들어가고, 송기원 작가는 「月行」인가요? 애를 들쳐 업고 숨어들고요. 그 소설 진짜 섬뜩하지요. 전쟁 때 집안을 결딴낸 사내가 귀향하는 얘기잖아요. 늙은 아버지가 아들을 묘지로 끌고 다니며 죄 씻김을 하는데 아내 묘도 있어요. 근데 마지막 묘지 앞에서는 절을 막아요. 그 묘는 바로 네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승우 작가의 『의 이면』도 각별하네요. 다른 작가를 내세우면서까지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처절하잖아요. 그런데 장 선생님, 어떤 경우든 제 성격대로 돌아가지 않겠어요? 회복하러 가는 길인데 당연히 발걸음이 무거울 테고요. 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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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도현 「마흔 살」

2) 박후기 「사십 세」

3) 강윤후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