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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찬 鄭贊

1953년 부산 출생.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로 등단.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유랑자』 등이 있음. lodem53@hanmail.net

 

 

 

등불

 

 

1.

그가 여객선 사고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문경새재에서였다. 부산항에서 안산 시화공단으로 화물을 싣고 가던 도중이었다.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가까운 식탁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려왔다. 오백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되었는데 구조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객 가운데 수학여행 가던 학생이 삼백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빠르게 잊었다. 그에게 세상일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린 영상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날 저녁 4시 조금 넘어 시화공단의 한 업체에 화물을 인계한 후 구미공단을 들러 화물을 싣고 부산항으로 왔을 때 밤 열시가 넘어 있었다.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겸해 소주를 마신 후 자정 무렵 거처로 들어갔다. 그의 거처는 부산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낡은 오피스텔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잠을 자는 날은 한달에 서너번이었다. 잠자리는 정처가 없었다. 화물 배송지와 도착시간에 의해 결정되었다. 알선업체 휴게소와 주유소 휴게소를 비교적 자주 이용했다. 퀴퀴한 냄새가 떠도는 방이지만 그에게는 편했다. 트럭도 심심찮게 잠자리가 되었다.

새벽 네시 조금 넘어 일어난 그는 사십분 후 오피스텔을 나왔다. 아침 아홉시에 인천 남동공단에서 인수해야 할 화물이 있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서 가속페달을 자주 밟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다보면 정신을 놓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그가 모르는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간혹 트럭 운전석에 앉은 채 육중한 쇳덩이에 깔려 뭉개진 자신의 육신이 환영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아침 아홉시 조금 넘어 남동공단의 한 업체 화물을 싣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단골 식당으로 향했다. 입구가 가정집 부엌 뒷문처럼 보이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썩 젊지도 않은 여자가 걸음마를 겨우 하는 아이를 키우며 혼자서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값이 싸면서도 음식이 정갈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식당뿐이라고 했다.

뜻밖에도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창 안을 들여다보니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식당 전화번호를 눌렀으나 받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옆집 세탁소 노인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노인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세탁소 노인은 자주 그녀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녀를 모슬포댁이라고 불렀다. 그녀 고향이 제주 모슬포였다. 노인은 언젠가 모슬포댁이 보기 드물게 착한 여자라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못 들은 척했다. 노인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

십여분을 서성이다 인근의 다른 식당에 갔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바다에 가라앉은 배가 화면에 비쳤다. 배의 앞머리만 바다 위로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의 눈에는 커다란 새처럼 보였다. 화면에 자막이 뜨고 있었다.

-4190시 기준 총 탑승인원 476명, 사망 28명, 실종 274명, 구조 174

그는 화면을 멍하니 보았다. 눈빛이 몽롱하고 공허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런 상태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몰랐다. 이십여분 후 식사를 마친 그는 식당 바깥에 우두커니 섰다.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트럭을 어디에 세워놓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디론가 가야 해. 그는 중얼거리며 발을 떼었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식당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의 몸은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그녀가 스르르 사라질 것 같았다. 저긴 어디일까? 어디이기에 저토록 멀리 보이는 걸까? 새 날개 치는 소리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2.

그가 그녀의 식당을 다시 찾은 것은 일주일 후였다. 인천 남동공단으로 배송하는 화물이 있었다. 트럭을 식당 근처에 주차했을 때는 오후 세시에 가까웠다. 점심을 걸러 배가 몹시 고팠다. 그녀가 차린 음식들이 눈에 보이듯 떠올랐다. 찰기가 흐르는 밥과 콩나물을 넣고 끓인 된장국, 양파를 섞어 들기름에 볶은 두부와 새콤한 도라지무침, 그리고 자리젓. 그녀의 식탁에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자리젓이었다. 고향음식이라고 했다. 모슬포 앞바다는 물살이 거칠어 자리의 육질이 쫄깃하고 오래 보관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리젓 냄새가 그녀에겐 아버지 냄새라고 했다. 늘 자리젓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 그녀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자리젓을 어린 그녀의 입에 넣어주곤 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퀴퀴하고 큼큼한 맛이 뱉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만 자꾸 씹다보니 몰랐던 맛이 생겨났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리젓 냄새는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냄새가 되었다고 했다.

식당 문은 그전처럼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식당을 열흘 이상 비워둘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불안이 일면서 발밑이 허전해지고 있었다. 두 발을 딛고 있는 데가 땅이 아닌 듯 몸이 흐느적거렸다. 무릎 아래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발밑을 살피면서 식당 앞 계단에 겨우 앉았다. 그런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반쯤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린이캠프에 참가한 딸의 숙소였다.

그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우 여섯살이었다. 여섯살 아이가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풍을 간다고 했다. 하룻밤만 자고 온다고 했다. 숙소는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전기배선도 제대로 안된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허술한 건물이었다. 불은 새벽 한시 전후에 났다. 불길에 휩싸인 컨테이너가 구겨지듯 무너진 것은 컨테이너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컨테이너와 합판 사이에 방염처리 되지 않은 전선을 쓴데다 50여대의 에어컨까지 설치해 전기합선과 누전의 가능성을 높였다. 소방설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소화기들은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딸이 잠든 3층 컨테이너 숙소의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잠근 이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술 파티를 하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하는 가냘픈 목소리와 함께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한시간여 뒤 소방관들이 문을 따고 들어가니 불에 탄 아이들의 몸은 뼈만 남아 있었다.

“여보게.”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드니 세탁소 노인이었다.

“아이고, 이제 왔구먼. 자네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노인은 그의 손을 잡으며 탄식하듯 말했다.

“그래, 모슬포댁이 그 배를 탔는가?”

그는 노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 그날 자네가 모슬포댁을 인천항에 데려다준다고 트럭에 태우지 않았나.”

“제가요?”

그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묻자 노인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왜 그 사람이 인천항으로 갔어요?”

“모슬포댁이 말했잖아. 아버지 기일이 그다음 날이라고. 기억 안 나?”

“아, 그랬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면서……”

“그 이야긴 못 들었지만, 암튼 자네가 모슬포댁을 인천항에 데려다줬잖아?”

“맞아요. 기억나요. 트럭에 탄 그 사람이 말했어요. 한시간 만에 닿는 비행기보다 물결에 흔들리며 고향으로 느릿느릿 다가가는 배가 훨씬 좋다고.”

“근데……”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배의 승객 명부에 모슬포댁 이름이 없어. 내가 회사에 가서 직접 확인했어. 거기에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

“회사라뇨?”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그 배 회사 말일세.”

“그 사람이 그 배에 탔단 말이에요?”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안산 시화공단으로 가는 화물을 배송한 후 그녀 식당으로 갔다. 그녀를 태우고 인천항 여객터미널로 가는데 마음이 허전했다. 그녀가 아주 먼 곳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그녀가 맨 배낭식 포대기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자네가 모슬포댁을 인천항으로 데려다준 그날이 사고 난 배가 출항한 날이야. 안개 때문에 두시간 늦어지긴 했지만.”

노인의 말에 그의 안색이 하얘졌다. 안개 자욱한 인천항 연안부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안개에 묻힌 그녀의 몸이 흐릿했다. 아주 오래된 풍경 같았다. 너무 오래되어 꿈속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 그건 아주 오래전인데……”

믿기지 않았다. 꿈에서 일어난 일이 꿈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니, 이 사람이……”

노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승객 명단에 그 사람 이름이 없다면서요?”

“그래서 자넬 기다린 게야. 그날 모슬포댁이 혹시 배를 타지 않았나 해서.”

“터미널 건물 앞까지만 짐을 들어줬어요. 그 사람이 혼자 가도 된다고 하기에……”

“그럼 탔겠군. 하긴 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을 리 없지.”

“그 배에 타지 않았다면……”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흘 후에 돌아왔겠지요.”

그녀는 그에게 사흘 후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 사람 이름이 없다고 해요?”

그의 물음에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회사 직원 말로는 유료 승객이 아닌 승선자의 신원은 확인이 안될 수 있다는 거야. 어떻게 무료로 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승무원이나 선사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더러 그렇게 탄다고 하더군. 선박회사 사람들이 모슬포댁 식당에 종종 오곤 했어. 더 알아볼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진도로 가보라고 해. 거기에 가면 그들이 모르는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3.

어린 딸을 조금이라도 편안히 보내고 싶었다. 참혹한 죽음이었기에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딸의 죽음에 진심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딸은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에 책임있는 자리의 사람으로부터 “내가 당신 아이를 죽였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아득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다.

딸의 장례를 치른 것은 아이가 죽은 지 한달이 넘어서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딸이 방긋 웃으며 ‘아빠 어딜 갔다 왔어?’ 하고 물을 것 같았다. 세상의 풍경이 그전과 다르게 보였다. 잿빛 막 속에 있는 듯했다. 가까이 가면 잿빛 막이 출렁였다. 출렁이는 잿빛 막의 풍경 속에서 딸과 딸 또래 아이들의 경계선이 희미해졌다. 딸인 듯해서 달려가면 딸이 아니었다. 딸이 아닌 아이가 어느 순간 딸로 변했다. 그를 부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딸이 불 속에서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우는 꿈을 자주 꾸었다. 깨어난 직후에는 꿈이었음을 안도하면서 자기 방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을 딸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며칠 전의 일인데도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고, 오래전의 일이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삶이 으깨지는 동안 시간감각도 함께 으깨진 것 같았다.

아내는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가슴을 자주 쥐어뜯었다. 자신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죄스럽다고 했다. 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귓전을 늘 맴돌던 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 뜨거운 석탄 위에 서 있는 꿈을 자주 꾼다고 울며 말했다. 어느날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믿기가 힘들었다. 멀쩡한 눈이 안 보일 까닭이 없었다. 의사는 전환장애라고 했다. 마음의 깊은 상처가 신체 이상으로 나타나는 병으로, 사람에 따라 증세가 다양하다고 했다. 눈이 안 보이기도 하고, 귀가 안 들리기도 하고, 손발이 떨리면서 감각이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딸의 1주기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래되어 푹 꺼진 거실 소파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채 등을 보이며 누워 있던 아내가 문득 바이깔호수에 가고 싶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거긴 왜?”

그가 묻자 아내는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깊은 곳이니까.”

“얼마나 깊은데?”

“서해의 평균 수심이 얼만지 알아?”

“글쎄……”

45미터야. 그런데 바이깔호수는 744미터야. 가장 깊은 곳은 1642미터고.”

“정말 깊네.”

“물이 맑아서 40미터 바닥의 수초가 환히 보인대. 영양분이 그만큼 적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갑각류는 먹이가 되는 것이면 남겨두지 않아. 만약 사람이 그 호수에 빠지면 한달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대. 시신이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완전히……”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내도 침묵했다. 아내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내의 침묵 속에서였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 역시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살을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딸이 슬퍼할 것 같았다. 왜 엄마를 버려두고 왔느냐고 원망하는 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날 이후 아내의 자살에 대한 생각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살을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딸의 죽음을 겪기 전에 그에게는 죽음이란 삶과 분리된, 삶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딸의 죽음이 삶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무너졌다. 서로가 뒤섞인 채 부유하고 있었다. 삶을 응시하면 죽음이 보였다. 죽음은 삶의 심연에서 태아처럼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이깔호수 아래로 가라앉는 아내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내가 자살한 것은 그로부터 석달이 조금 못되어서였다. 늦가을이었다. 아내는 바이깔호수로 가지 않았다. 갈 힘이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바이깔호수로 데려다주고 싶은 충동이 간혹 일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내를 거기까지 데려다줄 힘이 없었다.

아내는 강원도 백운산 자락을 흐르는 강물에 자신의 몸을 가라앉혔다. 불에 타 죽은 딸을 맑고 차가운 강물 속으로 데려가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내는 홀로 투신하지 않은 셈이다. 아내의 시신은 의외로 깨끗했다. 손과 발이 조금 붇고 이마에 연한 멍이 생겼을 뿐이었다. 잠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내는 유서에서 혼자 두고 떠난 자신을 부디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아내를 화장한 후 딸의 곁에 두었다. 이제 딸이 외롭지 않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딸과 아내를 제대로 기억해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그가 짊어져야 할 죽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쓸쓸했다. 캄캄한 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삶도 죽음도 아닌 곳에 영원히 묻힐 것 같았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속도가 몸으로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 너머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광경이 떠올랐다. 산산조각이 난 몸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과 아내의 얼굴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작년 1월이었다. 부산항에서 실은 화물을 인천 남동공단에 내려놓았다. 일이 한꺼번에 몰려 사흘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트럭을 어딘가에 세워놓고 식당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걸음을 멈춘 곳은 간판에 ‘가정식 백반 전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무엇이 걸음을 멈추게 했는지 지금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음식점 입구가 가정집 부엌 뒷문처럼 소박해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간신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어둑했다. 창으로 스며드는 어스레한 빛이 실내의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어렴풋한 빛 속에 한 여자가 자신의 젖을 빠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얼굴이 젖가슴에 포근히 묻혀 있었다. 그는 꼼짝도 않고 여자와 아이를 응시했다. 딸에게 젖을 물린 아내가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잊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줄조차 몰랐다. 불현듯 그녀에게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죽음의 순간에 아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그는 모르지만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그녀는 알 것 같았다.

눈을 번쩍 떴다. 속도계 바늘이 200킬로를 넘어서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바늘이 빠르게 내려갔다. 갈증이 일었다. 목구멍에서 나는 갈증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갈증이었다. 트럭을 갓길에 세웠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트럭에서 내렸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쓸었다. 바람 속에서 마른풀 냄새가 났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별들도 죽는다고 했다. 별들이 죽는 과정을 상상해보려고 애를 썼다. 아득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칼이 손에 닿았다. 가죽 케이스에 싸인 칼은 따뜻했다.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내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이었다. 규모가 큰 무역회사였다. 딸의 죽음 이후 회사 다니는 일이 많이 힘들었다. 일하는 목적이 사라졌다. 그러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동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위로의 말을 듣는 것도 괴로웠다. 위로가 전혀 되지 않는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들이 낯설었다. 어떤 이들은 빨리 잊으라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딸의 죽음 이후 시간감각이 허물어진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견딘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일상이 철저하게 무너진 아내에게 자신마저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았다.

회사를 나온 후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주로 강을 찾아다녔다. 강을 내려다보며 술을 마셨고,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혼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혼몽 속에서 자신의 울음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곤 했다. 떠돌다 지치면 집에 들어와 죽은 듯이 잤다. 눕기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 밤과 낮의 구별이 없었다. 허기도 잠을 이기지 못했다. 허기를 느끼면서 잤다. 끼니를 거르기 예사였다. 밥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잠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시간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시간은 작은 물줄기처럼 소리 없이 흘러 다니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사라져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누구의 시선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 같기도 했고, 아내의 시선 같기도 했고, 그가 모르는 어떤 존재의 시선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껍질만 남은 존재가 덩그렇게 누워 있었다. 옷을 입고 집을 나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나이프 갤러리였다. 수많은 종류의 칼이 진열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다. 한시간쯤 후 수제품 스위스제 칼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집에 들어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동안 수없이 상상했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아내의 모습과 겹쳐 떠올랐다. 칼을 욕조 턱에 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리를 죽 뻗고 눈을 감았다. 강의 심연에 누워 있는 아내의 몸이 보였다. 아내의 몸은 푸르게 빛났다. 푸르게 빛나는 아내의 몸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했다. 물고기처럼 유영하거나 새처럼 날아오를 것 같았다. 욕조 턱을 더듬었다. 칼이 손에 잡혔다. 금속의 감촉이 따뜻했다.

등불을 켜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칼끝으로 손목의 푸른 동맥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밤마다 딸의 방에서 등불을 켰다. 딸이 깜깜한 방에서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해서 사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딸의 등불을 한번도 켜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칼을 욕조 턱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날 밤 등불을 켠 딸의 방에서 잤다. 꿈에 백합 다발을 가득 안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딸은 보이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아팠다. 아내가 백합 다발을 안고 있는 동안 딸은 어디에 있었는지, 못 견디게 궁금했다. 다음 날 그는 욕조에 물을 받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사흘째가 되자 죽음의 에너지가 자신에게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더 살기를 욕망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욕망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떤 우연의 작용인 듯했다. 그날 이후로 칼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깜박 잊고 나오면 허전하고 불안했다.

트럭에 올랐다. 오르기 전에 하늘을 다시 쳐다보았다. 별들이 조금 전보다 더 흐려 보였다. 누군가가 켜놓은 등불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에게 추억은 가슴에 깊이 박힌 가시 같은 것이었다. 그 가시를 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시 없는 존재를 꿈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꾸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죽음의 에너지가 자신에게서 빠져나갔음을 깨닫는 순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예감한 것 같았다. 그가 화물트럭 운전사가 되면서 연고가 전혀 없는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자신을 바꾸기 위함이었다. 어떤 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에게 자신이 유령이기를 바랐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바람에 균열이 생긴 것은 그녀를 만나면서였다.

작은 식당 안에 있으면서 그녀의 두 눈은 늘 먼 곳을 보는 듯했다. 그녀의 시선이 그를 스치면 가슴이 설다. 그는 까맣게 몰랐다. 누군가에게서 잊고 있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줄을. 아내의 죽음에 대해 묻고 싶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오랫동안 끊어진 삶의 기척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에게만은 유령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낯설고 어색한데다 죄스러운 느낌까지 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간혹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곤 했는데, 그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면서 짓는 미소처럼 느껴졌다.

식당을 출입한 지 일년이 조금 넘은 2월 어느날이었다. 부산에서는 흐리기만 했는데 김천을 지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충주에 이를 무렵에는 폭설로 변했다. 폭설은 인천까지 이어졌다. 그런 폭설 속에서도 가속페달을 자주 밟았다. 길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사고의 위험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사고가 난다면 그것 역시 우연의 작용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허공에 떠 있던 길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녀의 식당에 들어간 것은 저녁 아홉시 넘어서였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손님이 몇 있었다. 식사와 함께 소주를 시켰다. 폭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찜질방에서 자면 되지, 생각했다. 그가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낸 것은 자리젓을 안주로 소주를 두병째 마시고 있을 때였다.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도 의식하지 못했다. 취기 속에서 한 무의식적 동작이었을 것이다.

“칼이 참 예쁘네요.”

주방에 있던 그녀가 어느새 와 있었다.

“그렇게 보여요?”

“네.”

“제가 이 칼을 산 것은……”

강물의 물살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혼몽 속으로 빠뜨린 소리였다. 혼몽은 그에게 어디론가 흘러가다 사라지는 시간을 보여주었다. 그가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시간 너머의 풍경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위함이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아직 못 떠나고 있어요. 그래서 늘 품에 지니고 다니지요.”

말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생각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모르는 어떤 존재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안했다. 차가운 돌계단 위에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를 바로 볼 수 없었다.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다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시선을 들었다. 언제나 먼 곳을 보는 듯한 그녀의 두 눈이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이 깊고 맑았다. 그녀의 눈이 그렇게 깊고 맑은 줄은 미처 몰랐다. 몸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캄캄한 가슴속에서 따뜻한 불이 켜진 듯했다. 왜 세상을 떠나려 했는지,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첩첩이 쌓인 기억들을 표현할 말을 찾을 자신이 없었다. 설사 찾는다 해도 그 말들을 제대로 연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힘드시면 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외출할 때 늘 품에 지니는 것이 있는데,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일어나 내실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나왔다.

“이거예요.”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사진이었다. 캄캄한 배경에 물결처럼 움직이는 듯한 흰색의 가느다란 선들이 보였다. 선들의 중앙에는 선보다 좀더 명료해 보이는 하얀 점이 있었다.

“제 아이의 첫 모습이에요.”

목소리가 청량하게 튀어 올랐다.

“전 불룩해진 배를 가진 제 모습을 자주 상상했어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도 상상했고요. 늦긴 했지만 운이 좋았어요. 의사가 모니터에 보이는 흰 점을 가리키며 아기라고 말했을 때 너무 기뻐 몸이 둥둥 뜨는 것 같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이 사진이 모니터에 나타난 그 모습이에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기집을 보고 있는데 신비스러운 꽃을 보는 느낌이 들었어. 아내의 목소리였다. 당신 한번 생각해봐. 내 몸 안에 신비스러운 꽃이 너울거리고 있는 광경을 말이야.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한 아내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아내가 병원에서 뱃속의 생명을 처음 보고 온 날이었다.

“무얼 생각하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좋은 기억이 아닌 것 같네요.”

“무척 좋은 기억이에요.”

“그런데 얼굴이 왜 슬퍼 보여요?”

“돌아보니까요.”

그는 쓸쓸히 웃었다.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머뭇거리는 듯한 그녀의 말에 가슴이 설다.

“이 칼…… 저에게 맡겨주시면 안될까요?”

그녀는 칼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요?”

“제가 갖고 싶어서요.”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의 얼굴 속에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내의 얼굴 너머 투명한 빛이 보였다. 백합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지던 11월 어느날, 외출한 아내가 백합 다발을 가득 안고 들어와 눈처럼 흰 화병에 담아 그의 방 창가에 놓았다.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선물임을 그때는 까맣게 몰랐다.

“생각해볼게요.”

그의 말에 그녀는 환히 웃었다.

 

 

5.

세탁소 노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녀의 식당 앞에서 만난 지 일주일 후였다. 구미공단에서 화물을 싣고 있을 때였다. 노인은 대뜸 뉴스를 봤느냐고 물었다. 어떤 뉴스냐는 그의 물음에 희생된 학생의 휴대전화에서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즈음에 아기까지 울어 미치겠다는 학생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이 나왔다고 했다.

“사고 당일 아홉시쯤 찍은 동영상이래. 그뿐이 아니야. 구조에 참여한 어떤 민간 잠수사가 선실을 수색하다가 아기 젖병을 봤다고 증언했어. 우유가 반이나 남아 있더래. 내가 알아봤는데 승객 명부에는 그렇게 나이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탄 승객이 없어. 난 그 젖병이 모슬포댁 아이의 것처럼 느껴져.”

그날 저녁 인터넷을 검색했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이 진도군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배 안으로 들어간 잠수사가 유아용 젖병을 보았다고 증언했으며, 아직 수거되거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그는 뉴스를 외면했다. 식당에 들어갔다가 TV에서 여객선 침몰 뉴스가 나오면 바로 나와버렸다. 아이 잃은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빨려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객선 침몰 뉴스는 아이와 함께 바닷속에 잠겨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렸다.

그녀는 그에게 죽은 자가 아니었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산 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 사이를, 그 자욱한 안개 속을 떠도는 존재였다. 그의 의식도 그녀를 따라 삶과 죽음 사이를 떠돌았다. 그에게 낯선 떠돎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떠돌았다. 트럭 안이 관처럼 느껴져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때는 백합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다음 날 오후 두시 부산항에서 화물을 실었다. 시화공단과 남동공단으로 배송하는 화물이었다. 시화공단을 먼저 들렀다. 남동공단에서 화물을 인계하고 나왔을 때는 거리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트럭을 세워놓고 그녀의 식당으로 갔다. 그녀가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눈먼 희망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고, 식당 안은 캄캄했다. 꿈에 그녀의 식당이 자주 나타났다.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 있거나 거무스레한 물속에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검었고, 얼굴은 서리에 덮여 있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아이를 찾아 꿈속을 두리번거렸다.

휘적휘적 걸었다. 어디로 간다는 의식이 없었다. 눈앞의 풍경이 안개에 싸인 듯 흐릿했다. 사람들과 건물들이 형태와 무게를 잃고 뒤섞인 채 기체처럼 떠도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깊은 적막이 기체처럼 떠도는 풍경을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저 멀리 있는 보이지 않는 바다가 느껴졌다. 그 바닷속에서 작은 불빛의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는 혼들도 느껴졌다. 허기가 일었다. 격렬한 허기였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자리젓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인 듯한 남자가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곳을 나와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젓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일곱번째 들어간 식당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자리젓이 있는 데를 알려주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주위가 어두웠다.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자꾸만 감겼다. 오랫동안 깊이 잔 느낌이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유리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트럭 지붕이 희미하게 보였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세시가 넘어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지금이 왜 새벽 세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곳으로 굴러떨어진 기분이었다. 힘겹게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이 어두웠다.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눈에 잡히는 풍경이 낯설었다. 주위를 살피던 그는 그곳이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 주차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리젓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 기억은 났으나 식당에서 언제 나와 트럭을 탔는지, 인천에서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여기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 트럭에서 얼마나 잠을 잤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이 뭉텅 잘려나간 것 같았다. 게다가 부산으로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와 서산휴게소에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머릿속이 캄캄했다. 형체가 불분명한 풍경의 조각들이 캄캄한 머릿속을 소리 없이 흘러 다닐 뿐이었다. 갈증이 일었다. 입안에 모래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자판기가 있는 휴게소 건물 쪽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언젠가부터 종종 자신의 육신에 수치심이 일었다. 육신이 그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욕망에 대한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이 깊어지면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이 죽음의 시선인 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죽음의 시선은 그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와 그의 존재와 그가 영위하는 삶 전체를 낯설게 만들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생수를 마시고 있는데 주위가 밝아지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달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환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너머 검푸른 허공에 총총히 박혀 있는 별들이 눈에 닿았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아이들이 보였다. 두 아이였다. 그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꿈에서 본 아이들이었다. 트럭에서 꾼 꿈이었다. 아이들의 몸은 허공에 있었고,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즐거운 놀이를 하는 듯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투명하게 스며들었다. 투명하게 스며드는 아이들의 몸이 눈부셨다. 연푸른 별들이 그들의 눈부신 몸을 비추고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에게 아이를 맡기곤 했다. 아이는 그의 품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방긋방긋 웃기까지 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딸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아이의 살에서 딸의 살내음이 났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서 딸의 맑은 눈동자가 보였고, 아이의 웅얼거리는 소리에서 딸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련한 기억 속에 빠져 있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면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꿈처럼 다가왔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왜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는지 알 것 같았다. 세탁소 노인을 만난 이후 잠자리에 들면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양팔을 가슴에 얹은 자세를 자주 취했다. 죽은 사람의 자세였다. 외로움을 견디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녀가 제주도에서 돌아오면 칼을 맡기려 했다. 죽음을 그녀에게 맡기고 싶었다.

달빛이 한층 밝아지고 있었다. 달 주위에 엷게 끼어 있던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트럭에 올랐다. 시계를 보았다. 네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진도에 도착하면 아침이 될 것이다. 그 시각에 꽃을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백합 다발을 가득 안고 팽목항으로 가고 싶었다. 시동을 걸었다. 길이 떠올랐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길에서였다. 처음 가는 길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가슴이 설다. 길 너머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은 빛처럼 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