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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염무웅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 삶창 2015
그 길은 어디이며,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김원 金元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labor2003@daum.net
1964년 「최인훈론」으로 등단한 이후 지속적으로 문학·사회비평을 해온 염무웅(廉武雄) 선생이 다산포럼, 한겨레 등에 쓴 글을 모은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는 70퍼센트 가까운 분량이 현실과 관련된 서평 형식의 글이다. 나머지는 박근혜정권이 들어서기 직전부터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서평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책을 서평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반세기를 넘어 한국사회와 문학에 대해 계속 발언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은 아직도 젊고 자신감에 차 있다는 사실이다. 1941년 출생으로 식민, 전쟁, 분단, 권위주의와 민주화 그리고 2015년 현재에 발 딛고 있는 그의 글은 현실과 팽팽한 긴장을 지닌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역사, 분단과 통일, 원전과 재앙, 민주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 가운데 독자들과 공유할 몇가지 논쟁적 주제를 소개하며 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사회와 역사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다. 그는 인류의 위기와 피폐한 삶을 강조하며, 새로운 저항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이루어지기보다 이 책의 제목처럼 현존의 요구에 기반한 것임을 강조한다(「나날의 어둠을 견디며」). 미래에 대한 섣부른 확신보다 현실의 요청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의 바탕인 것이다. 그럼에도 염무웅의 현실·역사인식에서 발견되는 지점은 한국사회의 동력이 긍정적인 힘/에너지라는 믿음과, 근대 이전부터 한국사회가 보편적인 가치, 제도 등을 전유했다는 인식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건국과정에서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미군정에 의한) ‘이식된 민주주의’라 흔히 인식되지만 실은 그보다 “적어도 반세기 이상 소급하는 자생적 기원을” 지닌 데 반해, 70년대 유신헌법은 이런 건국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유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대한민국 정체성의 뿌리」). 다만 ‘식민/냉전의 범위’ 속에서 근대/민주주의가 발현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라는 현실이 ‘역사적 기원의 현존’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어서 흥미로운 지점은 민족(주의), 분단 그리고 국민국가 간의 ‘긴장’이란 주제다. 한편으로 그는 통일문제에 관해 독일의 사례를 들며 통일로 가는 길이 낙원이 아닌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희망’(볼프 비어만)이라는 ‘현실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피력하지만(「독일통일의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 다른 한편 한국은 남한을 넘어서는 인간공동체이며, 민족문학·한국문학·조선문학은 개념의 문제가 아닌 이산과 분단현실을 반영한 자기분열의 표현이라 말하고(「서경식의 질문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柳美里)가 아들에게 주는 글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하는 데서(「언젠가 찾아올 초월의 날에」) 엿볼 수 있듯이 한반도 차원의 민족주의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또한 국민국가 너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와다 하루끼)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동아시아공동체·일본·한국」), 분단극복은 결국 7·4 및 6·15 공동성명 정신의 회복이라 말하고(「희망이 외롭다」), 한국 시민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동아시아공동체·일본·한국」). 분단시대를 체험하고 60년대 후반 내재적 발전과 민족문학을 통해 민중·민족주의를 전취했던 그의 세대감각은 하나의 ‘역사인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평자의 오해일 수도 있겠으나,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사유·인식과정에서 다시 한반도 및 한국의 시민사회로 회귀하는 패러다임이 과연 국민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쉽게 말해 저자의 인식이 여전히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와 한반도 ‘중심적 사유’의 틀 안에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세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가야 하는 길에 대한 해석들이다. 이 책의 여러 서평, 논설 가운데 가장 탁월한 동시에 갈등적 인식이 드러나는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현실 민주주의 인식은 균형적인 동시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잘 지적하고 있다. 그는 “선거의 민주성은 투표 자체보다도 선거과정의 정치적 논쟁이 어떤 성격의 것이냐에 달린 문제”라는 로널드 드워킨의 입장에 공감하며, 다수결주의, 공론 분포 과정으로서 민주주의—흔히 절차적/대의제 민주주의—가 지니는 문제를 지적한다. 즉 공동체 내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당·제도 중심 민주주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꼬집으며 밑으로부터의 집합적인 “열정과 과장된 헌신”—아마도 ‘운동’으로 불려온—의 중요성도 균형감있게 제시한다(「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그런데 박근혜정부(혹은 노무현정부)에 대한 그의 평가가 이러한 인식과 일치하는지는 논쟁적이다. 단적인 예가 2012년 대선 직후 경험한 정신적 공황, 위로, 우울에 대해 서술하거나(「박근혜 시대에 적응하기」), ‘서민적이고 민주적 심성을 지녔던’ 노무현정부와 대비해 이명박 대통령을 ‘나쁜 대통령’으로 꼬집고, 박근혜 대통령은 “‘가장 나쁜 대통령’의 길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 부분이다(「참 나쁜, 더 나쁜, 가장 나쁜」). 평자도 2007년 이후 보수정부 집권기 4대강사업, 국정원 선거개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진 않지만, 이를 ‘선과 악’의 문제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이라고 본다. 또한 저자는 90년대 후반 이후 흐름을 신자유주의라고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데 역시 평자도 본질환원론적 사회인식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미 IMF경제위기 이전인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사회는 점차 20:80의 사회, 수평적 사회이동 가능성이 희박해진 사회로 변했다. 기득권 체제의 안팎을 가르는 경계선이 국가를 “두 개의 국민”으로 분할하고 있다는 언급도(「두 개의 국민으로 나뉘어」), 시각에 따라 이 현상이 민주정부 10년간 고착화한 것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양자를 ‘선과 악’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착시효과’로 비칠 수 있다.
마지막 화두는 지식인 염무웅의 존재 혹은 현존과 관련된 문제다. 평자의 추측이지만 저자는 일본 후꾸시마 사태 이후 삶을 관찰하며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아직도 사고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일본 인문학자 사사끼 타까시(佐々木孝)를 통해 소박한 고향사랑과 가족에 대한 감수성 등이 중대 문제 해결의 바탕이라 보거나, “내면으로 전진하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사고 이후 사사끼가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친밀성, 정서적 일체감, 슬픔을 토대로 한 연대감 등에 주목한다(「내면으로 전진하라!」). 저자의 이러한 사유는 국민국가가 더이상 중립적일 수도 없고, 그것을 신뢰하기도 어려운 작금의 삶/공동체의 윤리를 고민한 흔적으로 보인다. 물론 지식인에게 글쓰기와 삶의 양식이 일치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가 자이니찌(在日) 지식인 서경식(徐京植)에 대해 그의 “지적 독립성의 원천은 다름아닌 그의 사회적 소외”라고 했듯이(「서경식의 질문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지식인 염무웅의 현존의 고투는 진행 중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한겨레 칼럼에서 읽었던 저자의 대학 퇴직 이후 고민이 기억난다. 교수로서 강의내용과 원하는 공부가 불일치하는 이중생활이 아닌, 퇴직 이후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다는’(「교수라는 직업」) 염무웅의 바람은 충분히 그/우리에게 실현/전달되고 있다. 세대와 해석·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꾸준히 지켜볼 수 있는 스승이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찾아 읽고 토론할 글을 쓰는 ‘어른의 존재’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중하다. 염무웅 선생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