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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태준 文泰俊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이 있음.
tjpmoon@hanmail.net
수족관으로부터
나의 골목 귀퉁이에 수족관이 있어서
물 위에 물을 쌓는
물로 물을 씻는 수족관이 있어서
나는 매번 그곳서 큰숨을 한차례 쉰다
오늘은 서너마리가 유영을 하고 있다
물속에 가라앉는 물고기가 하늘을 알까만
한마리에게는 소천(召天)이 있을 것 같다
비늘이 너덜너덜하지만 홑청을 마련해줄 수 없고
겨우겨우 아가미가 움직이나 폐를 빌려줄 수 없다
두 눈이 헐겁게 떨어져나가고 있다
수족관으로부터
너절하고 수군거리고 베개에 머리를 괴러 가는
쓰러져 누운 나의 골목이 하나 있다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혼(魂)이 오늘은 유빙(流氷)처럼 떠가네
살차게 뒤척이는 기다란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이곳에서의 일생(一生)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
꿈속 마당에 큰 꽃나무가 붉더니 꽃나무는 사라지고 꿈은 벗어놓은 흐물흐물한 식은 허물이 되었다
초생(草生)을 보여주더니 마른 풀과 살얼음의 주저앉은 둥근 자리를 보여주었다
가볍고 상쾌한 유모차가 앞서 가더니 절룩이고 초라한 거지가 뒤따라 왔다
햇곡식 같은 새의 아침 노래가 가슴속에 있더니 텅 빈 곡식 창고 같은 둥지를 내 머리 위에 이게 되었다
여동생을 잃고 차례로 아이를 잃고
그 구체적인 나의 세계의, 슬프고 외롭고 또 애처로운 맨몸에 상복(喪服)을 입혀주었다
누가 있을까, 강을 따라갔다 돌아서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눈시울이 벌겋게 익도록 울고만 있는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삶의 흐름이 구부러지고 갈라지는 것을 보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강을 따라갔다 돌아와 강과 헤어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집으로 돌아왔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무덤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