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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지진에 가장 센 놈, 약한 놈
김곰치
소설가. 1970년 경남 김해 출생.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빛』, 르뽀산문집 『지하철을 탄 개미』『발바닥 내 발바닥』 등이 있음. kimgomch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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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스북 친구가 이런 글을 썼다. 벌써 두달 전 일이다. 두문장 짧은 글이다. “일본에서 지진 발생했다고 하면 속으로 ‘꼬시다’ 그랬었습니다. 잘못했어요ㅠㅠ”
부산에 사는 그녀가 경험한 지진을 같은 시각 같은 ‘진도’로 나도 경험했다. 나도 부산에 거주하기에.
진도라고 했는데 지진에 관한 지식이라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이기화(李基和) 교수의 책 한권에서 얻은 것 외에는 없어서 조심스럽지만, ‘진도’는 특정 지점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지진동의 세기 단위이고, ‘규모’는 진원이 뿜어낸 전체 지진에너지의 크기 단위라고 한다. 그러니까 경주에서 올해 몇차례 발생한 지진은 부산에 ‘진도’ 수치가 1 정도 깎여서 왔다. 페이스북 친구처럼 일본 사람들 처지를 떠올리는 간발의 아량도 부산 사람이라서 가능했는지 모른다. 규모 1마다 지진에너지는 약 30배씩 변한다. 지진에너지가 30배씩 변한다고 해서 사람이 느끼는 진동의 세기도 그만큼씩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앙이었던 경주 일대의 고층아파트 거주자들은 정말 최악의 경험을 했을 듯싶다. 오줌을 지린 노인들도 있었으리라. 1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부산에서일망정 진도 4 이상의 지진을 가을까지 네차례 겪고 나니, 지진에 대해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진…… 너무 싫다. 뱀처럼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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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구의 정상적인 활동 중 하나일 뿐인 지진을 이리 모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진뿐 아니라 뱀도 부당하다 할 것이다.
강원도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그믐밤에 독도(讀圖)훈련을 나갔다가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 거의 넋을 잃은 적이 있다. 그런 찬란한 별밤을 그때 처음 보고 다시는 못 봤다. 별을 보러 다니는 취미활동을 하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은 우주적 감명을 느낄 정도의 고광도 별빛과 평생 두세번 마주친다고 한다. 그런 별빛 아래에서는 어떤 타락한 인간도 순수한 아이처럼 될 것이다. 존재가 시원(始原)을 향해 열린다고 할까. 그런데 군대 훈련 중에는 분대 단위의 전술보행훈련이라는 것도 있었다. 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자세를 낮추고 정말 느리게 걷는다. 곧추세운 온몸의 감각으로 사방을 탐지한다. 넓은 평원에서 전술보행을 하는 중 갑자기 지진이 왔다면, 어땠을까. 나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느껴보고 싶다. 산천초목을 일구어내는 땅이 또다른 차원으로도 기똥차게 살아 있다는 것을. 지진도 우리 존재의 시원을 보게 하는 경이로운 경험이지 않을까.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일생일대의 경험이 있다. 한번 겪으면 평생 못 잊는다. 큰 지진도 그렇다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땅이 허락해서 땅 껍데기 위에 잠시 있다 가는 존재구나, 지구의 주인은 지구로구나. 이런 것도 느낄 수 있다. 대개의 지진학자는 지진에 매료되어 산다. 그래서 이렇게 옹호한다. 사람을 죽이는 건 지진이 아니라 도시구조물들이다. 대다수가 넓은 평원이 아니라 도시에서 지진을 만나기 마련이다.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도시생활자들이 지진 따위에 감명받을 일은 없다. 땅이 들썩이고 일어서는 그 거대한 움직임에 매료되는 듯한 느낌도 잠깐 있었던가 싶기도 하지만, 나 또한 걱정 불안 초조 공포의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해야 한다.
이 도시의 구조물 중 가장 약한 놈, 가장 센 놈이 특히 걱정되었다. 이것은 주관적인 기준인데, 지진에 가장 약한 놈은 내가 사는 집이었다. 가장 센 놈은 원자력발전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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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수백 킬로미터의 땅덩어리를 순간 들었다 놓는다. 지진 말고는 무엇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집 대문과 방문에 잠금장치가 있다. 쇠로 된 것이 평소 얼마나 튼튼한지 모른다. 허락 없이 내 집에 누구도 못 들어온다! 그러나 지진은 그런 거 없다. 초인종 소리도 없다. 느닷없고 느닷없다. 세상에 이런 무례가 있는가.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동이다. 그 막된 거동에, 나는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갑자기 고래 등에 얹혔다고 할까. 어떤 강심장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진동 중에, 지금 계속 두렵게 흔들리고 있는데 이 진동을 일으킨 놈이 순식간에 두세배 진동을 키우는 일쯤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다는 새로운 공포가 온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 쾅! 하고는 집이 넘어가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지진에 휩싸인 상태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안다. 그 느낌이 정말 더럽다.
내가 왜 이 낡은 2층 양옥집에 살고 있는지, 최초에 누가 지은 집인지 내사 모른다. 집 지은 사람을 알아야 내진 설계를 했는지 물어볼 텐데. 물론 했을 리 없다. 작년에 태풍이 지나간 뒤 외벽 타일이 두장 떨어진 것을 주워다 보관해뒀는데, 이게 몇장이나 떨어져야 리모델링이라는 것을 할 때가 되는가? 나는 감도 잡히지 않았는데, 벽을 타고 올라가 붙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 창고에 두기는 했는데, 하여간 지은 지 20년은 된 듯한 내 집의 늙어감을 감지했는데, 내 집보다 더 낡은 집이 동네 곳곳에 있고 어찌 내 집이 이 도시에서 가장 약한 집일까마는 지진으로 탈이 생기면 나를 바로 죽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내 집이기에, 실은 비바람을 막고 나날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집을 사랑하기에, 부모가 늘 불안한 맘으로 자식 보듯이, 탈날까 병날까 제 자식이 같은 반 아이들 중에 가장 약한 놈으로 보이듯이 지진이 올 때마다 집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함께 흔들려보니까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살면서 집에 진심이 되어보기도 처음이다.
집은 네차례 지진에도 무사했다. 철근과 시멘트가 기본적으로 내진재인 면이 있구나 싶기도 했다. 하여간 집 걱정부터 들었다가 걱정이 가시고 나면 집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튼튼하게 지었을 게 뻔한 원자력발전소가 걱정된다. 지상의 구조물 중 가장 튼튼한 놈이 그놈일 것이다. 지을 당시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최신 내진 기술을 다 끌어다 모아 지은 것이 핵발전소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늘 걱정된다.
속보를 살피면서 ‘발전소는 괜찮나?’ 하고 걱정하면서도 솔직히 말해 대충 내 집 걱정의 10분의 1 정도였던 듯하다. 발전소가 이 정도도 못 견딜까. 첫 지진은 진도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당했고, ‘이 정도가 진도 4로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됐다. 진도 4 초반대, 후반대 지진을 각각 경험하고 진도 1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짐작해볼 수 있게 됐다. 가까운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리히터 규모 6.5 지진을 견디게 지어졌다고 한다. 발전소 ‘바로 밑바닥’을 지진이 직격하는 것이 기준이라고 한다. 설계상의 개념일 뿐, 사실 한국의 핵발전소들은 그동안 지진이라곤 맞아본 적이 없다. 이 나라에서는 전날까지 멀쩡해 보였던 성수대교가 그냥 쏟아져 내린 적도 있지 않은가. 불신하기 딱 좋은 핵발전소이건만, 진도 5 정도 지진을 매번 잘 넘겼다. 나는 ‘휴’ 했다. 발전소에서 당직 서던 저녁나절의 기술자와 노동자 들도 지진이 왔을 때 불안했을 것인데(그들도 인간이고, 진동 와중에는 본능만이 작동하니까), 지진이 지나간 뒤 점검 결과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휴’ 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지진에 어느정도 자신감마저 생겨났는지 모른다.
사실 핵발전소 사람들은 지진에 자신감이 대단한 듯 보인다. 세계 각국이 원자력 상업발전을 한 60여년 동안 각지의 원자력발전소가 크고 작은 지진에 시달렸지만 지진 진동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고’가 일어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큰 지진 때마다 발전소의 적응 반응에 대한 조사자료도 축적되었을 것이고, 원자력업계에 공유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 사설에서 이런 에피소드도 읽었다.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을 내주긴 했는데, 발전소 부지 아래에 단층이 발견되어 최초 설계지점에서 동해 쪽으로 50미터 이동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고작 50미터라니, 그 정도 위치 이동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실제로 많았다고 한다. 사실 옮길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단층이 발견된 것이 알려졌으니 여론상 옮겨줬다는 뉘앙스였다.
크지 않은 단층이면 바로 위에 지어도 된다는 한국 원자력인들의 자신감이 터무니없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지진으로 놀란 가슴은 그네들의 자신감이 살짝 반갑기까지 하다. 그들의 판단에 의지하고 싶다. 연발했던 경주 지진 이후, 오늘내일 더 큰 지진이 온다는 괴담도 돌았지만 어느덧 여진도 잦아들고 사람들 관심도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 국민이 공유하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뜻밖의 걱정이 새로 든다. 한해 지구상에 발생하는 계측 가능한 지진은 백만회가 넘는다. 리히터 규모가 커질수록 급격히 희소해진다. 한반도 내륙지진도 규모 8, 9짜리가 발생할 확률은 당연히 희박하다. 그렇지만 이번에 지진 무서운 맛을 보긴 봤는데, 지진 걱정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규모 6, 7짜리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조금이라도 더 높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진도 6, 7만 해도 우리 집이 바로 넘어갈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핵발전소 걱정은 사치스런 것인지도 모른다. 발전소는 진동을 감지하자마자 즉시 자동 비상정지 상태로 들어갈 것이며, 지진이 지난 뒤 시스템 점검을 하고 유유히 재가동에 들어갈 것 같다. 송전탑이 무너진 곳만 없다면 끊겼던 전력이 도시로 곧장 공급될 것이다. 그런데 진도 6, 7 강진이 훑고 간 인근 도시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핵발전소가 보내주는 전기를 받아 쓸 집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무래도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고 그 와중에 핵발전소만이 건재한 꼴을 보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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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 안전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다. ‘이번 지진은 경고다. 반드시 더 큰 지진이 온다’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내진 보강 공사라도 해야 한다. 이번 지진 이후, 우리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행정당국은 공용 시설물을 점검하고 특별예산을 확보해 써야 한다. 그런데 지진에 특히 놀란 영남 지역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는가? 교량이나 주요 시설물에 비상 점검 같은 것은 하는 모양이지만, 내진 보강하는 동네 집을 본 적이 없다. 나도 내 집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형편이다.
가까이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지진 이후 새삼 용납하기 힘들어졌다면, 결단 가능한 개인적 해결책은 지역을 떠나는 것이 유일하다. 원자력발전은 국책사업이다. 개인이 어떻게 거꾸러뜨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발전소 무서워서 이사 가는 사람도 본 적 없다. 그런 사람이 있을 것도 같지만, 극소수이리라. 사람들한테 조롱당할까봐 그런 이유로 이사 간다는 소리도 않고 갔을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정밀기기로 지진을 계측한 이래 한반도에서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도 어떤 유의미한 변화를 낳은 것이 없지 않은가. 정말 그래 보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애써 생각해본다.
다시 한번, 자기의 집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고(내진 보강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핵발전소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경주 지진이 맡은 모종의 역사적 임무가 있을 듯도 싶다. 심각한 내륙지진이 발생하여 도시와 발전소를 함께 쓸어버리는 일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기에, 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고 해도 발전소만 큰 탈 없다면 도시는 재건될 수 있지만 방사능으로 오염되면 거주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지진 말고도 온갖 이유로 핵발전소 중대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기에 조치가 필요하기는 하다. 이 국책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예상을 해보고자 한다. 조금 뻔한 이야기다.
우라늄도 석유, 석탄처럼 고갈될 것이므로 연료를 구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게 될 것이란 말도 맞는 소리지만 시기가 너무 멀다. 후꾸시마급 중대사고가 일어나 이 땅의 핵발전소가 일거에 중단되는 사태도 물론 가능하지만 아무리 핵발전소가 싫어도 차마 바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 전에 목표를 가지고 미리 움직여야 선진문명사회라고 할 것이다. 결국 대대적인 여론을 바탕으로 국가지도자가 결단하는 문제가 될 확률이 높다.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이 강력하기 때문에 20년(내지 40년)까지 내다보는 설득력 있는 국가 에너지전환 청사진을 걸고 국민투표에 부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더이상 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 설계시한이 다 되면 연장가동 없이 폐쇄하는 것, 짓고 있는 발전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다음 정권 또는 그다음 정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럴 때 경주 지진은 대단히 중요한 우군이 될 것이다. 한표 차이라도 승패가 갈라지는 것이 투표일진대, 지진이 끌어올 표가 적지 않을 것이다.
국가 에너지 수급체계 변환에는 수십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체 전력에너지 공급량을 일정 정도 유지한 채 조금씩 구성 분자를 바꿔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인 평균수명 정도로 살다가 죽는다 할 때, 그사이에 중대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죽는 날까지도 이 땅 어디선가 핵발전소는 가동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평화가 증진되어 핵무기에 쓴 농축 우라늄을 꺼내 희석해 발전소로 들여보내는 것을 보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건 기쁜 일이다. 핵발전소는 악마가 아니다. 석유고갈 경보음이 일찍부터 울려 퍼질 때, 전기에너지가 목숨처럼 되어버린 문명사회의 안전성을 지켜내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의 결과였던 면도 있다. 그러나 다른 기술적 가능성이 세계 곳곳에서 어느새 만발하고 있다. 첨단 발전(發電)기술의 상징이었던 것이 갈수록 미련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온갖 오욕 속에서 퇴역하는 핵발전소를 애틋한 눈으로 봐줄 마음의 준비마저 이미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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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해본다. 모아둔 돈도 있고 더 끌어쓸 수 있는 돈도 있는데,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선물로 준 소중한 집을 위해 나는 왜 내진 보강 공사를 애써 하지 않는가. 땅이 갑자기 변했을 리가 있는가, 백년 가까이 축적한 응력을 이번에 다 풀고 갔겠지, 설마 더 심한 지진이 올까…… 다들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짝 지진에 매료된 느낌도 있었다고 앞서 말했지만, 계절마다 한권 정도 지진 관련 책을 계속 읽어볼까 하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두번째 지진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약이 되는 쓴소리는 알려야 한다. 1976년 중국 탕산(唐山)대지진 당시 탕산의 인구는 7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지진으로 가옥의 98퍼센트가 완파되고 24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지진은 매우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서 수백년 동안 지진이 일어나지 않던 중국 당산에서도 매우 큰 지진이 발생하였으며 미국의 뉴마드리드라는 도시에서는 1812년 인류사상 최대의 지진이 발생하여 북미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별다른 지진 활동이 관측되지 않고 있다. 수백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여 앞으로도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매티스 레비 외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김용부 옮김, 기문당 1999, 3면)
옮겨 적고 나서도 몸은 무겁기만 하다. 인터넷을 뒤져 주택 내진 보강 견적이라도 뽑아볼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다가 만다. 뭔가 복잡한 이유가 있다. 좀더 센 지진이 와야 할까보다, 싶다가도 이런 시건방진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것도 미덕인 면이 있기에 행동심리의 복잡성을 더 살펴봐야 한다. 지진에 가장 센 놈, 약한 놈에게 평소 염려란 이름의 내 사랑이 부족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