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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주완 기록 『풍운아 채현국』, 피플파워 2015

벽지불이 되어가는 팔순의 풍운아

 

 

이종구 李鍾求

전 언론인

 

 

168촌평-이종구_fmt내가 자서전류의 책들에서 기대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주인공이 살아 있던 시대의 사회상의 이면을 엿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은밀한 시대상에서 부각되는 주인공의 내면을 바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회고록』에서, 후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상록』에서 그 극단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주주가 창간한 경남도민일보의 편집국장 김주완(金柱完)이 기록한 인터뷰 형식의 『풍운아 채현국(蔡鉉國)』이라는 200면이 안되는 얇은 책에서 나는 이 두가지 면을 찾아본다.

우선 소설가 이병주(李炳注)와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남재희(南載熙) 등 그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던 선친 채기엽(蔡基葉)과 얽힌 이야기들. 거기에 등장하는 시인 이상화(李相和)의 형 이상정(李相定) 장군과 그의 부인 권기옥(權基玉) 여사. 그리고 효암재단과 관련되어 이종률(李鍾律) 민족일보 사장 등을 둘러싼, 또 경남대학교와 연관된 박종규(朴鐘圭, 당시 경호실장)와 문홍주(文鴻柱, 당시 문교부장관) 등에 관한 얘기들. 몇 안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해방 후 청산 안된 친일세력 문제와 여기에 겹쳐진 정책 및 권력과 관련된 일들이 당시 사회상을 얼마나 꼬이게 만들었는지 뼈아플 정도로 드러내고 있다(내가 보기에 태생이 상사람인 채현국이 종종 양반과 족보 얘기를 즐겨 하는데 이는 민족주의세력과 친일세력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디 그뿐이랴. 난마처럼 얽힌 세상에서 살아온 대학생활 전후, 그리고 그후 그의 생활에서 뼈에 사무친 것은 권력혐오증이었다. 그래서 채현국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태호(李泰鎬)와의 인터뷰 「우리는 얼마나 뜨겁게 묻고 있는가」(『참여사회』 20151월호)에서 기존 세력, 기존 권력이 등에 업은 것은 그것이 예수든 맑스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실 그는 단언할 뿐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실천해왔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뿌려서 탕진하면서 저 자신을 비우려고, 권력·재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절망적으로 몸부림쳐왔다. 옆에서 보는 친지들은 그가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비우려는 몸부림이었다(나 자신이 이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201414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이진순과의 인터뷰를 보면서부터다). 그에게는 기자 노릇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취직이 어려운 인문계 출신이 그 당시 얻을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기자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자 보기를 쓰레기 보듯 해서, 기자가 기껏 똑똑해서 하는 일이라곤 곧 터져버릴 풍선의 바람 빼는 일을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해치워 기득권을 돕는 게 고작이라는 악담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보통의 일상사에 대한 절망적 비판의 이면에 그의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힘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그를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NL(민족해방파)보다는 PD(민중민주파) 계열이고 어떤 때 보면 영낙없는 마오이스트다. 그러나 그는 1972년에 있었던 남북대화를 빌미로 헌법을 개정해서 3대세습을 터닦은 북한의 김일성을 싫어하는 만큼 권력의 화신으로서 능란했던 마오 쩌둥(毛澤東)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정권을 욕하는 것 또한 반대한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 등에서 보듯이 우리도 아직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 판국에 피차 욕설을 늘어놓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남북의 극우·극좌 등의 보수세력을 분기시켜 싸움만 일으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그가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원하는 통일, 이른바 ‘시민이 참여하는 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는 갈등에 빌붙어 먹고사는 사람들을 ‘장의사적 인간’이라고 해서 ‘산파적인 인간’과 구별한다. 산파적으로 살아온 사람들로는 프란치스꼬 교황, 김수환 추기경, 넬슨 만델라, 호찌민, 체 게바라 등을 거명한다. 그러고는 “권력이 반드시 장의사적인 게 아니에요. 인간인 체하고 정치에 달려드는 파리떼 같은 버러지들이 장의사적인 부류인 거지”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언제나 양면적이다. 1차대전 이후 전쟁배상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의 뛰어난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적인 것(das Politische)의 의미를 갈등에 두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Politik)라고 본다. 슈미트는 정치를 거버넌스 측면으로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다가 나치의 악명높은 비상대권(非常大權, 국가비상사태 때 국가원수가 법치주의에 의하지 않고 특별한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의 이론가가 된다. 하버드대 법철학 교수인 브라질 사람 호베르뚜 웅거(Roberto M. Unger)도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이러한 측면을 받아들여 그 해법으로 프랑스식의 이원집정제 통치구조를 지지한다. 그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선거참모를 했고 그가 당선된 이후 그 밑에서 장관도 지낸 좌파인사지만 플라톤식의 이념 내지 이데올로기, 심지어 요즘 물리학이론에서 나오는 다중우주나 끈이론까지 가리켜 현실해결의 도피처만을 제공하는, 우리가 어떻게든 피해야 할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풍운아 채현국의 고뇌는 이들의 고뇌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가 자기의 모든 것과 자신을 비워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낸 것은 양산에 있는 효암재단 학교뜰에서 아무리 작은 잡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실천적인 아담한 벽지불(僻地佛)의 삶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가 체험하는 고뇌는 멀리는 스딸린(I. Stalin)과 뜨로쯔끼(L. Trotsky) 사이에, 가까이로는 까스뜨로(F. Castro)와 체 게바라 사이에 있는 고뇌일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맑스의 당파성이 가난한 자에 대한 예수의 당파성이라고 꼬집어낸 자끄 데리다의 고민이고, 맑스주의가 아닌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슬라보예 지젝이나 알랭 바디우의 고뇌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열반마저 그리고 부처가 되는 것마저 거부하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고집하는 지장보살의 고뇌에 상통하는 것일지 모른다.

웅거는 자신의 『정치』 3부작 축약판(김정오 옮김, 창비 2015)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은 “독창적인 혁명적 사고를 억제하는” “허위적 필연성의 환상”을 부추긴다고 얘기한다. 이 환상을 새롭게 다져나가는 것은 브라질에서나 한국에서나 미국식 사회과학을 복제한, 경제학에서 출발한 강경실증주의 사회과학들과, 위축된 맑스주의자들의 이른바 제3의 길로의 접근이다. 이는 결국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이라는 헤겔 우파의 메시지로 귀결되는데, 절대정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이념을 전제하는 한 이 메시지에 대한 신봉은 개인의 굴종과 국가의 굴종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권력이 등에 업는 맑스와 예수를 거부하면서 웅거의 얘기대로 맑스주의의, 혹은 마오주의의 그리고 지방보살의 급진적 대안을 마련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게 바로 우리의 고뇌이고 풍운아 채현국의 고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담하지만 미시적 실천이라도 거부하지 않는 벽지불이 되어가면서 팔순을 넘기고 있는지 모른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내가 바로 『풍운아 채현국』의 98면에 등장하는, 그가 집을 사준 사람 중 하나인 해직기자 이종구임을 밝혀둔다. 혹 내가 받아먹은 집값 냄새가 이 촌평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지 않느냐고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나 내가 인용한 인터뷰들에서 그러한 의혹 이상을 읽어내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꼭 그 몫을 해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