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촛불혁명, 전환의 시작
대화: 우지수 이지원 이진혁 천웅소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둑을 허문 청년들
이진혁(사회) 작년 10월 24일 이른바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의 존재가 보도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위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도 당일 2만명이 촛불을 들고 모인 것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렸고, 불과 두달 동안 누적 참여인원이 천만명을 넘었다는 집계도 있었죠. 모두 아시다시피 이러한 사상 최대 규모의 범국민적 저항으로 지난 12월 9일,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조기대선 등 커다란 정치적 전환의 국면을 맞게 된 상황입니다. 이렇듯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비단 태블릿PC라는 물질증거 내지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만으로 하루아침에 폭발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박근혜 퇴진”과 함께 터져나온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에서도 그간 박근혜정권하의 적폐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더불어 세월호사건 진상규명 운동,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 추모집회, 성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반대 집회, 이화여대 본관 점거,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활동 등 각계에서 불의에 저항해온 결과가 이번 촛불집회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호 대화에서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이전부터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오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각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지원 저는 작년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10번출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17일에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을 때 많은 언론이 ‘묻지 마 살인’이라고 보도했어요. 그러던 와중 한 네티즌이 “이것은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이야기했고 이 문제의식에 공감한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3만5천여장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페미니즘 운동이 일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 역시 하나의 성과라고 봅니다. 이전까지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단어가 별달리 없었는데, 이 운동을 통해 여성혐오라는 언어이자 무기를 얻은 거죠.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그때를 기점으로 작년 6월 6일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공동행동’이라는 집회를 진행했고, 이후에 게임회사 넥슨의 성우 교체 반대운동과 낙태죄 폐지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페미존’ 활동과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페미니스트 시국토론회’를 했어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촛불집회의 양적 확장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정치적 주체로서 광장의 민주주의를 확장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지수 저는 뚜렷하게 어떤 영역에서 활동한 건 아니지만 대학에 다니며 꾸준히 학생회에서 일해왔습니다. 그러다 올해는 학생회장에 당선됐고요. 학교 다니는 동안 매년 큰 사회적 이슈가 있었어요. 2013년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있었고, 2014년에는 세월호사건과 철도민영화가, 2015년에는 국정교과서 문제가 있었죠. 이러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힘을 보탰고,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인한 촛불집회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작년의 이화여대 본부점거투쟁은 이번 촛불집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둘러싼 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은 지난여름부터 시작됐는데요. 학교의 비민주적인 행정에 반대하며 집회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유라의 부정입학이 드러났고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죠.
천웅소 저는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파견 나가서 집행기획팀에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기간이 9년쯤 됐고 그동안 여러번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는데, 매번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천만의 촛불과 새로운 민주주의
이진혁 현장에서 참여한 분들이나 TV를 통해 본 분들이나 모두 느끼셨겠지만 이번에 촛불을 들고 모인 어마어마한 인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유례없이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계층이 집회에 참여했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천웅소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던 사실 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양한 계층과 연령이 서로 다른 계기와 경험을 바탕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집회가 반복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죠. 그동안 만연해 있던 남성중심적인 발언이나, 소수자가 소외되는 집회문화에 대한 비판과 수용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지며 촛불집회의 또다른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강해졌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단순히 적폐를 청산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데까지 발전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지수 방학 중에 많은 이대 학생들이 학교에서 집회를 벌였던 건 기존에 쌓여왔던 최경희(崔京姬) 전 총장에 대한 불만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집회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왔던 분노가 집결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헬조선’ ‘흙수저’ 같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청년들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잖아요. 청년세대에게 정유라 특혜입학은 특히 분노를 유발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버텨왔는데 결국 잘살고 잘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데서 오는 분노 말이죠.
이지원 486세대는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한 이후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통해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486 같은 경우, 그에 대한 분노가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다음 세대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고 적어도 기회의 평등은 보장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청년실업, 장시간노동, 저임금의 사회를 말 그대로 ‘노오력’하며 버텨오다가 그러한 믿음이 깨졌다는 데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보고요. 말씀하신 정유라 특혜입학과 더불어, 이재용(李在鎔)의 삼성 3대세습 문제도 중요합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통해 삼성 3대세습이 뇌물을 댓가로 얻은 특혜임이 드러났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거죠.
이진혁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박근혜-최순실-이재용의 뇌물죄 ‘공범’ 혐의는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정면으로 위반한 위헌적 범죄행위인데 사실 제대로 입증이 될지는 불확실합니다.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때 집회참여자가 늘어난 것도 그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보고요. 이 문제는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앞선 세분의 말씀을 종합하면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촛불집회를 촉발했기 때문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시위문화’는 그 자체로 촛불집회의 동력이었다는 진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만한 대규모 인파가 모여 끝내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시각도 있어요. 여러분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평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고요. 한국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민주주의 문제는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보다 뒷전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리얼미터가 지난 1월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묻는 여론조사를 했더니 정의, 통합, 형평, 민주 순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늘 상위권을 차지해오던 안보, 경제 등의 키워드가 밀려난 것인데 이 또한 지금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바로세우는 데 목말라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이번 집회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신 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천웅소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는 실제로 직접민주주의가 많이 구현됐습니다. 스마트폰이나 SNS로 가능해진 쌍방향 소통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고 보고요. 과거처럼 특정 단체가 집회를 주관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요즘은 시민들이 집회를 준비하는 집행부에 유무형의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연사 발언도 과거에는 대부분 집행부가 정했다면,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자유발언이 상당수 배치됐고요. 반면 온라인에선 기성 정당과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네티즌들이 직접 대표를 뽑는 ‘시민의회’가 급하게 추진되었다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실패한 사례도 있어요. 물론 이건 처음 시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나 의미를 아직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실패할 자유도 있고 또 실패가 값진 경험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너무 조심스러워만 해서도 안 되겠죠.
이지원 촛불집회라는 게 영속적일 수는 없는 형태죠. 그래서 광장에서 활발한 직접민주주의가 계속되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를 굉장히 협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4년에 한번, 5년에 한번 대표를 뽑으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그 중간에는 시민이 개입할 방법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러니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면서 그 권력을 지역으로, 주변부로 재분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양당체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정치는 협상의 과정이어야 하는데, 도대체 협상이 불가능한 구조니까요. 지금은 뜻하지 않게 다당제가 된 측면도 있는데, 실상은 보수적인 네개의 당이 의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점차 약화되어가는 소수정당들이 더 많은 발언권을 지닐 수 있는 형태의 선거형태, 이를테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것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선거권·피선거권의 확대 역시 권력의 재분배를 위한 과제 중 하나라고 봅니다. 지금 같은 평균연령 55세의 남성 중심 국회는 자연스럽게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년 남성’의 시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죠.
우지수 이번 촛불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이 더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여태껏 생각해보지도 못한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조심할 필요가 없어진 상황에서 깨닫게 된 것이니까요. 지금껏 자기 생각을 직접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촛불 없이도 그런 의견표현이 가능해져야 할 것 같아요. 정치제도에 있어서는 비례대표가 많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 과정에서 선거권·피선거권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세월호
이진혁 여태껏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때마다 실현이 안 되는 이유가 여럿 따라왔습니다. ‘비효율’ ‘고비용’ ‘비이성적 판단’ ‘종북’ 등이 대표 레퍼토리였는데요, 이번 촛불집회는 새로운 민주주의도 “해보니까 되더라”라는 걸 일깨우는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비효율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았고요. 직접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단위에서도 정치참여가 활발해져야만 하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개혁이 중앙 차원에서 논의되는 정부 형태나 선거제도 못지않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광장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지금 광화문광장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세월호가 생각납니다. 세월호사건은 꼭 대통령의 7시간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난 3년간 한국사회의 최대 현안이었고 이번 촛불집회의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집회 참가자 한 사람이 ‘2014년 4월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한발 내디딘 느낌이다’라고 소회를 밝힌 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세월호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지수 대부분의 사람들이 2014년 4월 16일에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도 떠오를 테고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고를 당해도 국가는 저런 식으로 대처하겠구나’라며 절망했죠. 세월호사건은 ‘누구나 재난을 겪을 수 있다’라는 불안이 국가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간 계기였고,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게 분명 촛불집회의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에 일이만명 규모로 추모집회가 있었을 때도 사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일이백만명이 모인 상황까지 왔어요. 이들 대부분이 세월호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공감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감히 해봅니다.
천웅소 촛불집회를 기획하면서 가급적 자유발언 연사의 중복을 피하는데, 그럼에도 가장 발언을 많이 한 분들이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시민들도 항상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크게 호응해주고요. 저는 세월호사건이 우리가 잃었던 공감능력을 확장하는 계기였다고 봅니다.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사회가 타인의 고통과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된 데는 사회적 강요도 있었고요. 대표적으로 KBS 예능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맨날 외치던 말이 있습니다.
이지원 “나만 아니면 돼.”(웃음)
천웅소 그렇죠, “나만 아니면 돼”가 유행어가 된 것도 공감능력 상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예요. 세월호사건이 준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2014년 당시 추모집회에는 일이만명밖에 모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세월호 자체에 대해서는 전국민이 슬픔을 공유했다고 봐요. 그 슬픔이 이번 촛불집회의 기저에서 분노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선배 세대들에게 1980년 5·18이 마음의 빚이라면, 지금 시민들은 세월호사건을 그렇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지원 세월호는 인간을 이윤으로 치환하는 자본주의의 민낯, 그것과 결탁한 국가, 그리고 그 이후에 목격할 수 있었던 국가폭력까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의 ‘가만히 있으라’라는 구호는 사실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반성적 외침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당시 한국사회가 집단적 우울증을 겪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때의 시민들이 우울에서 벗어나 이런 세상을 바꿔보고자 광장으로 나온 거라고 봐요. 이것이 가능했던 건 2014년 4월 16일 이후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싸워온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진혁 루쏘( J. J. Rousseau)는 “연민의 한계가 사회의 경계”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다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사건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그 경계가 넓어진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사회가 확장하는 증거를 이번 촛불집회가 지켜가는 비폭력 기조에서도 찾습니다. 12월 3일 있었던 일인데,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시위대 한명이 쓰러지자 경찰버스 위에 있던 경찰들이 저체온증을 막으려 핫팩을 던져줬다고 합니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폭력이 오가는 대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좋게 보는 시각이 절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화시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늘 뒤따랐습니다. “‘착한 시위’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만 그것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후지이 다케시, 한겨레 2017.1.1)이라는 분석도 있었고요. 세분은 평화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평화’시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지원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시피, 이 ‘평화’가 과연 누구 입장에서의 ‘평화’인지 봐야 합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국가시스템과 국가정책에 반대해서 모인 거니까 집회의 목적은 당연히 그 시스템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이 되죠. 이번 촛불집회가 평화시위를 표방했던 데는, ‘공권력의 입장에서 학습된 평화’가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2015년 고(故)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경악할 만한 ‘폭력성’에 주목했습니다. 다만 각자가 주목하는 폭력의 주체가 달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의 폭력을 부각하는 동시에 국가폭력에는 법질서 유지를 위한 정당한 절차라는 면죄부를 쥐여주었죠. 그다음에 세워진 야당 국회의원의 인간 바리케이드도 촌극이었습니다. 그게 정말 시위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건 그 이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말해주죠. 2015년의 기억은, 시스템을 일시 정지시키러 나온 시민들이 국가에 반대하는 사소한 행동만 취해도 비국민으로 치환된다는, 그래서 국가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한다는 걸 학습한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내재화된 규율이 이번 촛불집회의 광장 안에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민들이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이고 나중에 직접 떼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국가에 반대하는 사소한 행동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으로 보였거든요. 물론 그게 완전히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들이 자신의 시민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여지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번 비폭력 기조는 ‘평화’가 국가 입장에서 학습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웅소 사실 집회의 기조라는 게 집행부가 정한다고 꼭 사람들이 따르는 건 아닙니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말씀하신 학습효과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보수언론이나 수구세력에 어떤 빌미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컸던 것 같아요. 박근혜-최순실게이트는 국가에 마땅히 있어야 할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터졌는데, 역설적으로 집회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제도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폭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광화문광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광장이 제 역할을 하기도 쉽지는 않았거든요. 경찰은 지속적으로 시위대의 폭력을 유발하기 위해 속된 표현으로 ‘간을 보기도’ 했고, 집회신고를 허가제로 운용하며 불허했죠. 그런 상황에서 법원이 시민단체가 낸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는 등 극적인 계기로 광장은 계속 열려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무혈입성이 가능했고요. 촛불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지칠 수도, 평화집회 기조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촛불의 힘은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가결시켰고, 초반 우려와 달리 특검이 선전하고 있는 것도 촛불의 힘 덕분입니다. 이러한 선순환을 보며 시민들도 우리가 평화기조를 유지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요.
우지수 예전에 집회에 처음 나갔을 때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경찰들도 위협적이었고요. 저는 비폭력이라는 것이 시민들에게는 집회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이번에 비폭력 기조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다만 근본적으로 평화를 누가 외치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는 늘 비폭력을 요구하잖아요. 심지어 가끔은 기자회견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게 폭력으로 규정될 만큼요. 결국 집시법에 잘 따르라는 것인데, 이런 데 순응하는 것까지 평화를 향한 강력한 의사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천웅소 이 문제를 다룬 칼럼을 보면 비폭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지금의 비폭력이 누가 규정했거나 강요한 것이 아님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평화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전략’이었고, 그 선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진혁 여태까지의 집회에는 늘 경찰차벽이 있었고 시민들은 그 차벽 너머의 어떤 대상을 향해 돌진하는 식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그들이 발딛고 있는 광장 자체가 차벽 너머의 어떤 존재보다 더 큰 의미였기 때문에 비폭력이 가능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면 거칠어지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죠. 이번에도 경찰차 위에 올라가거나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온 구호는 “뒤로, 뒤로”였어요. 천웅소씨의 말을 이어가자면 이 집회가 ‘폭력적’으로 흘러갈 때 더 안 좋은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시민들이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평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천웅소 평화집회가 가능했던 데 법원 결정이 일조한 건 맞지만, 무엇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제도를 움직이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제도가 힘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시민들이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힘들지만 다음에 또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닐까요. 물론 탄핵안이 부결됐다면 비폭력 기조는 바뀌었을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이 전략적인 선택은 지금까지 유효했기 때문에 선택받고 있는 것이고,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지수 말씀을 들어보니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런 ‘전략’도 어떤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닌가 싶어요. ‘전략’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본다면, ‘비폭력 전략’은 불법과 폭력이라는 오해를 막기 위해 택한 셈이 될 텐데요. 하지만 불법과 폭력이라는 오해를 고스란히 인정했다는 점이 오히려 그 프레임에 갇힌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진혁 ‘평화집회’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와 의견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촛불집회가 끝나고도 이 논의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폭력 기조와 함께 언론에 자주 등장한 것이 다양한 패러디로 대표되는 풍자와 해학이었는데요, 이번 집회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천웅소 우선 기존 운동권 질서에 저항하는 수많은 깃발들이 있었습니다. ‘장수풍뎅이연구회’ 같은 거요. 전 이 깃발들이 이번에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라고 봐요. 2008년에 이른바 ‘명박산성’이라는 컨테이너벽이 광화문에 세워졌죠. 그때 명박산성 앞에 스티로폼으로 계단을 만든 다음 넘을지 말지 시위대 내부에서 몇시간 대토론을 벌였어요. 그때는 운동권이 주도하는 집회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그게 대토론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오죽하면 “깃발 내려라”라는 구호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는 깃발을 내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래? 우리도 깃발 있어’ 하는 식으로 누구나 깃발을 들기 시작했다는 차이가 있지요. 특히나 기존 단체의 패러디가 많았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민주묘총’이나 앰네스티를 패러디한 ‘햄네스티’ 같은.
이지원 여성비하 가사 논란을 빚은 DJ DOC의 공연이 “일부 여성단체들의 항의로 취소되었다”라는 신문기사가 나온 이후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일부 여성단체’라는 깃발을 들고 나가기도 했어요.(웃음) 그러나 풍자와 해학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요? 이번 촛불집회에서 풍자와 해학이라고 등장한 ‘병신년’이나 ‘닭년’ 같은 말도 폭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시위와 여성·소수자 인권
이진혁 실제로 ‘평화로웠다’ ‘연행자가 없었다’ ‘재미있었다’ 같은 칭송이 다 들어맞는 건 아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비하가 곳곳에서 등장했고, 신체접촉 같은 성폭력도 있었잖아요. 이런 게 다 폭력의 범주에 들어갈 텐데 그런 면은 부각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웅소 잘못된 발언이나 여성·장애인 비하가 처음에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민들이 빠르게 수용했다고 생각해요. 퇴진행동에서도 연단에 서는 발언자들에게 사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 발언을 하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그럼에도 발언 도중에 그런 언어폭력이 실제로 여러차례 있었는데요, 거기에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대체로 발빠르게 수용했어요. 발언자가 즉각 사과하기도 하고 사회자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시위문화가 한단계 발전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서의 수화통역 같은 부분도 이번 집회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고요.
우지수 말씀하신 내용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지점에서만큼은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직시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가 많이 공론화됐음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느꼈어요. 다만 한편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저도 이번 촛불집회 자체는 고무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쪽이에요. 그런 문제제기가 있다는 것을, 혹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백만명 넘는 사람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으니까요. 저만 해도 새로 깨닫게 된 게 많고요.
이지원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촛불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부를 횡단하는 다양한 입장과 관점이 있으니까요. 광장 내부의 페미니스트들끼리 모여 집회에 참가했던 ‘페미존’이 형성된 것도, 현 시국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비판한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을 한 것도 그런 정체성도 있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였습니다. 사실 백만명쯤 모이면 그런 식의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더 많이 성찰해야 하는 거겠죠. 다만 혐오발언 등에 대한 지적과 제재가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의미하게 수용됐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DJ DOC 공연취소가 대표적인 사례일 텐데요, 어찌 보면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간에 불편하면 안 들으면 그만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고 거기에 문제제기한 것은 촛불집회가 민주주의의 장이고, 민주주의와 여성혐오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죠. 그런 가사가 광장에서 불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던 건데 이게 엉뚱하게 표현의 자유 문제와 연결되면서 도리어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듣고 싶으면 들어도 되고, 부르고 싶으면 불러도 됩니다. 검열은 없었어요. 그런데도 ‘친박페미’라는 말도 등장했고, ‘우파 페미니스트들의 음모’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광장에서 페미존을 꾸림으로써 모두가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관점에 균열을 냈던 것이 유의미한 시도였고, 이런 움직임이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고 퇴진행동 측의 인권 가이드라인이나 장애인 비하발언에 대한 사과에는 감탄했어요. 발빠르게 공연을 취소한 데는 사실 놀라기도 했고요.
천웅소 공연 하루 전에 결정됐죠.
이지원 취소하라고 요구하면서도 내심 ‘이렇게 큰 규모의 공연이 설마 취소되겠어?’ 했는데 실제로 취소됐죠. 이게 단박에 결정된 것도 운동진영이 긍정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봐요. 그게 가능했던 건 운동진영 안에서 평등이라는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내부적으로 문제제기해온 분들 덕분이라 생각하고요.
천웅소 우리가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면서 앞만 보고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함께 가는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게 더 중요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문제의식들을 공론장에 표출하게 된 것도 이번 촛불집회의 성과라고 봐요. 예전 같았으면 ‘대의가 있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했겠죠.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누군가가 끌고 가는 집회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공연취소도 의사결정은 빨랐지만 이런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겠지요.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꾸준히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공연취소도 그 연장선상에서 판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SNS의 영향도 컸죠. 과거 같았으면 이런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바로잡을 통로가 부족했을 테니까요.
노동운동이 소외되었다?
이진혁 그런가 하면 이번 촛불집회에서 기존의 노동세력 혹은 노동운동가들이 소외받는다는 볼멘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태껏 대규모 집회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니까요. 이번 촛불집회가 기존 노동운동의 의제를 끌어안은 측면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럼에도 노동자의 목소리는 작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웅소 이번 촛불집회에서 노동운동가들도 소외되지 않고 충분히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어느 한쪽이 과잉 대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연단에 나설 발언자를 누구로 할지 논쟁이 엄청납니다. 노동운동 쪽에서는 노조 대표자를 세우고 싶어하지만, 시민사회 쪽에서는 가급적이면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연단에 올리고 싶어해요. 물론 여태껏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은 진심으로 존중하고, 노동운동가들의 서운함도 이해하지만 오히려 처음 오는 시민들에게 더 기회를 줘서 ‘내가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집회를 모니터해보면 가장 호응이 좋은 연사는 청소년들이었어요. 청소년들은 청중에게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니까요. 자유발언자 선정 시 성별이나 연령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다보니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지원 노동자와 시민이 분리된 존재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국가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필연적으로 자본과 노동이라는 영역이 포함될 텐데 이는 노동운동가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온 영역이죠. 언론이나 권력에 의해 만들어졌던 운동권에 대한 깊은 불신과 혐오정서가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은연중에 작동한 것 아닌가 싶어요. ‘평화집회’가 학습된 결과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지수 이번 촛불집회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한 만큼, 각자의 색깔을 어느 정도씩 포기하면서 맞춰간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꼭 노동운동 쪽이 소외되는 구조가 작동한 것이 아니라요. 실제로 민중가요나 “투쟁”이라는 구호보다는, 이번 집회에 나온 대중가요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에 더 적절했던 것도 같고요. 노동자도 농민도 페미니스트도 각자의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함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기존에 가장 큰 역할을 해온 노동운동이 소외된 느낌을 받는 것 아닐까요.
천웅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촛불집회가 끝나더라도 계속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한 예로, 울산에서 이번에 큰 촛불집회가 없었거든요. 울산은 노조 조직률이 높고, 경상도 지역임에도 늘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당선시켜온 곳인데도 이번에 보면 그에 비해 집회 규모가 월등하게 작았어요. 섣불리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라도 세심하게 탐구해볼 문제 같습니다.
‘맞불’집회? 계엄령을 말하는 이들
이진혁 아시다시피 친박 단체도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당을 주고 사람을 동원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요. 언론에서는 이를 ‘맞불집회’나 ‘태극기집회’로 표현하곤 하죠. 태극기가 어느 한쪽의 상징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로 11월에는 광화문광장 노점에서 촛불류만 팔았는데 친박 집회가 이어지면서 촛불과 함께 태극기를 쌓아놓고 파는 곳이 늘어난 모습을 봤습니다. 그만큼 태극기를 들고 모이는 친박 집회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인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지수 맞불이라는 단어는 기득권이 친박 집회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든 단어가 아닐까요. 촛불을 들었으니까 거기에 대항해 맞불을 든다,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언론이 거기에 가세해 마치 동일한 규모인 것처럼 화면이나 지면을 구성하는 것 같아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펄럭이는 괴상한 집회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딱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그들의 폭력성이에요. 제가 광화문광장에서 잠깐 사회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박사모’가 스피커선을 자꾸 뽑는 식으로 집회를 방해했어요.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는 소식도 자주 접했고요.
이지원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 군대를 동원해서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맞불집회라기보다는 태극기집회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데, 그 태극기가 나타내는 상징성이 있죠.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체로 50대 이상이고, 강력한 국가관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부터 자기 손으로 사회를 일구고 이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고도 어쩌면 지금 가장 가난한 세대이기도 하고요.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저에게는 설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사회를 접하는 방식은 1차로 종합편성채널, 2차로 마을·종교 공동체인데, 그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진보진영 안에서도 지역과 세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을 마냥 폭력적이다, 무식하다 이렇게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촛불을 든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접점을 늘려나갈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천웅소 그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를 붙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부정부패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보고 있어요. 친박 집회는 결국 특정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 생각해요. 지역갈등, 이념갈등, 세대갈등을 부추기려는 시도로 읽히는데 최대한 거기에 말려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찰이 친박 집회 참여자 집계에 후하고 촛불집회에는 박한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이 이뤄낸 것, 이뤄야 할 것
이진혁 이번 촛불집회를 부르는 용어가 다양합니다. 촛불집회가 일반적이지만 촛불항쟁도 있고 촛불혁명도 있죠. 그중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용어에는 많은 시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촛불을 혁명적인 변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바람이 투영된 용어이거나, 아니면 이미 촛불이 그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진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천웅소 저는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치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제 기능을 하도록 이끄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이 촛불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마무리짓느냐에 따라 혁명 앞에 붙을 수식어는 많이 달라질 것 같네요. ‘미완의 혁명’이나 ‘반쪽짜리 혁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지원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되는 데 촛불이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혁명적인 힘이 분명히 있었죠. 그렇다고 이번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부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에 달려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국민을 대표하진 않잖아요. 대통령 퇴진에 대한 총체적인 권한이 더 넓은 민주주의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법체계의 협소한 부분에 넘어가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 청문회의 권위를 보면 이런 생각이 더 커져요. 증인들이 제대로 출석도 안 하고, 너무 쉽게 위증을 하고…… 이번 촛불집회를 혁명이라 부르려면 촛불의 힘이 직접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탄핵재판도, 촛불집회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지금까지만 놓고 봤을 때 혁명으로 평가하기에는 미진한 면이 있다는 거예요. 박근혜정권의 부역자였던 황교안(黃敎安)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것도 그런 부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우지수 백만 촛불의 힘이 철옹성 같던 광화문광장을 누구나 원하는 구호를 외칠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젖혔을 때, ‘2선 후퇴’니 ‘거국중립내각’이니 하며 눈치 보던 야당이 ‘즉각 퇴진’을 외치도록 만들었을 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이 모든 과정이 촛불혁명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치권은 계속되는 촛불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로 인해 구속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던 김기춘(金淇春) 같은 인물들까지 구속된 상황이니까요. 이 정도면 일차적으로는 촛불혁명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무리를 어떻게 짓느냐, 사회시스템을 어디까지 바꿔놓을 수 있느냐가 촛불혁명을 나중에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커다란 촛불혁명이었는지, 작은 촛불혁명이었는지. 촛불이 바꿔낸 범위에 따라 이런 이름이 붙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진혁 이재용의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됐을 때 많은 이들이 촛불의 무력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통령 한명이 문제가 아니고 재벌의 특권과 그에 따른 폐해도 못지않으니까요. 촛불집회가 터놓은 개혁의 물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또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촛불집회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이것이 언제까지 이어져서 무엇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지원 이제는 탄핵정국을 벗어나 대선정국에 진입한 모양새입니다. 앞으로 더 그렇게 될 테고요. 그럴수록 촛불이 영속적일 수 없음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이 촛불집회의 동력이 왜 재벌에 미치지 않았을지도 더 따져볼 문제겠고요. 촛불집회가 국가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면, 이 문제제기가 대선정국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겠지요.
천웅소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가 일부라도 회복됐음을 확인해야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서 그 기점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겠죠. 이제 퇴진행동도 촛불집회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광장의 주말’과 ‘일상의 주중’의 이분법을 넘어서, 광장의 촛불을 어떻게 일상의 촛불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광장에 나와서는 행복한데, 일상에서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들 합니다. 광장에서는 사회가 금방이라도 바뀔 것 같은 혁명전야고 모인 사람들도 다 평등해 보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알바비 떼먹는 사장님이 있듯이 불평등과 모순이 상존하니까요.
이지원 누군가 ‘광장의 조증과 일상의 울증’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엄기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2016) 그 조울이 반복되면서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한 상태인 것 같아요. 저도 더 많은 광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해요. 페미니스트 시국토론회가 작은 광장의 한 형태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광장은 어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아요. 계모임에서도 가능하고, 온라인게임 채팅에서도 가능하죠.
우지수 일상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학생이고 학생회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상의 촛불’과 ‘작은 광장’을 만드는 게 올해 제 일상이겠지만, 이 공론장을 어떻게 사회 전반으로 확장할지는 고민입니다. 우선 곧 본격화 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정국에서 어떤 식의 직접민주주의가 발현될지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인데요, 사람들의 의견이 직접 받아들여지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일상의 촛불’의 가능성도 더 커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시대전환을 꿈꾸며
이진혁 촛불이 대통령 탄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 세분 의견이 모아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10년 가까운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망가진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 지점도 그만큼 다양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표적으로 남북관계가 있겠지요. 작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폐쇄했죠. 이에 그치지 않고 8·15 경축사와 국군의 날 경축사에서는 사실상 북한 주민의 탈북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던 와중, 촛불집회가 시작되며 이 추세가 일단 멈췄어요. 하지만 핵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되고 있고, 여기에 사드 문제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순실이 개성공단을 폐쇄한 뒤 본인 이익을 위해 입주기업을 케냐로 이주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는데요. 예전 같았으면 ‘에이, 설마 그랬겠어?’라고 생각했을 황당한 이야기조차 대중이 흘려듣지 않는 것도, 한 개인이나 소수 국정농단 세력이 관계를 끝장낼 수 있을 만큼 남북 간 신뢰가 금 갔기 때문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한국사회를 개혁하는 작업도 순조롭지 않을 것 같아요. 말이 길어졌는데, 여러분 각자 ‘가장 중요한 변화’를 한가지씩 꼽아본다면요?
천웅소 무엇보다 정치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인데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작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참여’라고 생각하는데, 촛불의 경험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새로운 참여를 만들어내길 희망합니다. 예전에는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는 것만이 참여였다면 이제 우리는 자기 목소리를 후보의 공약에 담아내는 등 더 넓은 참여를 실현할 동력을 얻었다는 거죠.
우지수 저도 정치 변화가 가장 효과적으로 많은 것을 바꿔낼 수 있다고 보는데, 정치를 바꿈으로써 가장 먼저 이뤄내야 할 것은 기회균등이라 생각해요. 지금 청년세대가 ‘열심히 살아도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고들 하는데 이게 정유라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전혀 근거 없는 패배주의로만 치부할 게 아니었잖아요. ‘노력한 만큼 댓가를 얻는 세상’을 만드는 데 정치가 기여할 여지는 크다고 믿어요.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청년세대가 더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지원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개발주의, 성장주의, 그리고 승자독식체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데서 벗어나 생태주의나 페미니즘 같은 다양한 가치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생각해요. 가부장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데, 이때 가부장제는 단순히 가정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죠. 국가가 가부장이고 국민이 거기에 종속된 존재임에 따라 소외되어왔던 인권이나 노동 같은 여러 가치를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물론 가부장제하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여성혐오도 반성해야겠지요.
이진혁 앞으로 이어질 촛불집회에 어떻게 참여할지, 또 촛불 이후에 어떤 활동을 만들어나갈지 고민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각자의 고민과 다짐을 나눠보며 오늘 좌담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우지수 저는 대학생인 만큼 대학생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정부하에서 시행되어온 교육정책을 하나하나 살펴볼 생각이에요. 대학을 길들이려는 정부의 노골적인 시도가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했으니까요. 또한 대학생의 정치참여가 최저임금 문제부터 고용 문제까지 여러 이슈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대를 넘어서 대학 연합으로 공동요구안을 상정해 대선후보들에게 전달하고 직접 토론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반값등록금을 내세웠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는데요, 당사자 입장에서 우리의 요구를 모아볼 생각입니다.
천웅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참여가 공적영역에 대한 참여로 어떻게 이어지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촛불집회가 끝나면 집회를 포함한 전체 과정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아봐야겠습니다. 피드백도 많이 받을 거고요. 시민운동진영이 시민과 소통하는 능력, 그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이 작업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희망합니다.
이지원 페미니즘은 다양성, 평등, 인권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는 학문이자 운동입니다. 운동은 함께할 때 더 큰 의미가 되거든요.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 주체들, 그리고 기존에 페미니즘 운동을 계속해오신 분들과 함께 페미니즘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단순히 국회에 여성 의원이 많아지는 게 페미니즘 정치는 아닐 테니까요. 대선 과정에서도, 대선 이후에도 논의가 이어져 페미니즘 정치라는 걸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진혁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다짐한 바를 새해에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2017.1.24.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