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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다.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1
경애(敬愛)의 마음
1. 공란은 곤란하다
그의 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인생을 모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다섯 사람이 탈 수 있지만 뒷좌석에 짐이 가득 차 있고 조수석은 조수석대로 당장 필요한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 차는 오직 그, 공상수 한 사람을 위한 차였다. 거기에는 회사를 10년째 다니고 있는 샐러리맨답게 수많은 카탈로그가 있었다. 카탈로그들은 크기도 다양했고 당연히 색도, 종이의 종류와 페이지 수도, 낡은 정도도 인쇄의 톤도 그리고 냄새도 달랐다. 그 냄새는 분명한 축적의 냄새, 오랜 시간 부식과 흡착이 이루어진 뒤에야 나는, 종이 본연의 것이 다 날아가 주변환경에 순응하고 그 결과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진 냄새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수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복에서 나는 땀 냄새, 혼자 끼니를 때울 때 애용하는 편의점 도시락 냄새, 햄 냄새, 볶음김치 냄새, 돼지고기볶음 냄새, 돈가스소스 냄새, 삭막한 인스턴트의 세계에 한줄기 위안 같은 샐러드소스 냄새, 그리고 독특하게도 실 냄새였다.
상수는 그런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열심히 일했다. 주로 공장을 대상으로 미싱을 팔았고 한번 계약을 체결하면 수백대의 기계가 넘어갔다. 물론 그런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상수의 그런 과도한 노동은 일종의 인정 투쟁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입사한 이른바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다.
미싱 영업을 한다고 그가 소형 미싱 따위를 들고 다니며, 언제라도 고객이 원할 때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몸체와 페달과 모터 따위를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어차피 그가 파는 미싱의 종류는 많고 다양해서 그것들의 실물을 보여주기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는 그 미싱이라는 것의 실물을 환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다니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이었다. 그는 미싱을 팔기 위해 미싱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영업이라고 생각했다.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여지는 상수에게 중요했다. 삶에 있어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이 없는 삶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수에게는 울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일단 상수가 사랑하고 헤어진 여자들—을 생각하면 언제든 눈물이 나왔다. 정말 현실에서 연애했던 이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소설과 영화에서 만나고 헤어진 이들인데 상수는 그 사연을 떠올리면서 자주 울었다. 지난밤에는 중학생 때 읽었던 『제인 에어』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겨울이 왔지만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게 싫어서 상수는 맨창 그대로 겨울을 났다. 밤이면 코끝이 알싸해질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지곤 했다. 그렇게 차가워진 공기에 코를 담근 채 상수는 모로 누워 이불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선 제인 에어가 어린 시절, 불우 아동들을 위한 기숙학교에 갔을 때 경험했던 그 교사(校舍)의 차가운 공기가 상상되어 울었고 로체스터에게 숨겨둔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혼자 도망치며 쌓인 눈을 헤쳐나가야 했을 때 그녀가 경험했을 눈의 통증—그 아름다운 것의—이 어땠을까 헤아리면서 슬퍼했다.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그것이 침투했을 것이었다. 처음에 작고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것이 차갑게 얼어붙었을 때에는 얼마나 쓰라린 느낌을 주는지. 그건 사랑이라는 것이 사라지면서 남기는 날카로운 상처와 같았다.
사실 상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짝사랑을 하며 보냈기에 그 상처에 대해 이렇다 할 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수는 사랑을 두고 한없이 도망치는 제인 에어의 고통에 늘 감정 이입하곤 했다. 사랑의 정념을 이기고 결별과 부재라는,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상태를 극복하며 앞에 무엇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허허벌판을 목숨을 걸고 달려가야 하는 상태. 그것이 상수가 즐겨 빠져드는 상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실연의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영웅 이야기나 출세담을 연상시켰다. 물론 상수는 실연도 하지 않았고 영웅도 아니며 출세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독서가 불러일으키는 그 광폭의 상상 속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을. 기분만은 확실했다.
상수가 영업을 하면서 실을 가지고 나가는 것 역시 그런 맥락의 감정적 접근이었다. 상수는 ‘실’이야말로 기계와 거리가 멀고 아날로그적이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때 움직이는 건 구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따지고 계산하는 영역이 아니라 온갖 기억과 향수 같은 것을 건드려 얻는 감정의 영역이었다.
상수는 그렇게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가 감아올릴 실을 보여줌으로써 사장들이 공장을 돌려 마침내 손에 쥐게 될 실물의 세계—티셔츠일 수도, 삼각팬티일 수도, 등산복일 수도, 베갯잇일 수도 있는—를 환기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건 기계라는 것이 표상하는 수많은 절차들,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기계를 들이고 당연히 잔금을 치르고 기계를 돌려야 하니까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하니까 반드시 임금을 주어야 하고 임금은 해마다 인상되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가 있고 그런데 기계는 기계니까 언제라도 고장날 수가 있고 그러면 수리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스트라이크가 심하게 일어난 경우에는 유리창 수십장과 당연히 기계들이 손상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고 되도록 기계는 망가지지 않아야 하는데 화난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면 그것도 권리 주장을 위한 것이니까 그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그런데 기계를 부순 자들은 그대로 두면 안 되고 어떻게든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원한을 사서 개인적인 린치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럴 수는 없고 아무튼 기계들을 지켜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사업이라는 게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가족들을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어서 사실상 다 물거품인데 기계를 들이는 일 따위는 하지 말고 그냥 부동산 투기나 할까…… 이런 생각을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상수는 봉투에 카탈로그와 실을 넣어서—최종의 생산물에 대한 부분의 실감이 가능하게 준비하면서—지난 10년을 영업사원으로 보내왔다.
그 결과 상수는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 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팀장대리란,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사람을 일컬었다.
1953년 휴전 직후 일본과 기술 합작을 통해 설립된 반도미싱은 오래된 회사답게 직제나 운영 시스템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였지만 상수를 위해 팀장대리라는 직함을 고안해내는 데는 간부들도 모처럼 융통성을 발휘했다. 승진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상수의 극심한 감정기복이었다. 발작적으로 터지는 눈물과, 긴장과 불만이 일 때마다 시작되는 그 흐억어억 응앵옹쵸키포키 하는 뜻 모를 혼잣말이 해당 층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으므로 나중에는 영업이사의 방을 줄여 상수의 독방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독방을 만들게 된 명분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상수에게는 승진이 필요했고—근속기간에 따라 컨베이어벨트처럼 불가피하게 차례가 돌아오는 승진이—하지만 승진을 할 정도로 영업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팀장은 팀장이지만 ‘대리’라는 제한이 붙어야 했다.
간부들은 그런 회의를 하며 상수의 신입 시절에 대해 오래도록 잡담했다. 상수가 입사했던 2007년 말에, 그때는 뭔가 ‘나가는’ 분위기였다고 그들은 기억했다. 건설회사 평직원에서 사장까지 올라간 이가 시장이 되고 대통령이 된 그 불도저 같은 신화가 샐러리맨들의 심장을 뛰게 하던 때였다. 뭔가 한번 해볼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영업부에서는 한동안 “이명박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이명박 퇴근하겠습니다” 하는 메소드식 인사가 유행했다. 그런 인사는 꼭 거수경례와 함께 하게 됐다. 회장은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두권 구입해 직원들이 돌려보게 했다. ‘비치용’이라는 라벨이 붙은 책은 겉장이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라는 친필 사인이 적힌 면지는 곧 떨어져나갔고 회장이 직접 그렇게 빈 페이지를 만든 직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누가 그것을 뜯어가 소중히 간직했는지는 영영 비밀로 남았다.
간부들은 그땐 상수도 어떤 희망과 신열에 붙들린 채 밤잠도 자지 않고 미싱 카탈로그를 차에 싣고 방방곡곡을 다니더니만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가여웠다. 상수의 자동차는 오래된 소형차이며 자가이기는 하지만 15평짜리 빌라에 산다. 결혼은커녕 연애라도 하는지 알 수 없고 계속해서 동료인 김유정 팀장을 지독히 짝사랑하는데 상수는 그 짝사랑에 대해 이상한 신념이 있어서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상수의 그 짝사랑은 삭막한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색 프리지어처럼 어떤 안쓰러운 정조의 애틋함을 유지한 채 계속됐다.
하지만 그런 잡담들은 기만에 가까웠다. 그들이 상수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상수를 그토록 연민해서가 아니라 상수의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인데다, 회장의 재수학원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쉽게 말해 낙하산은 낙하산인데 낙하한 후에 회장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끈이 다 떨어져버린 낙하산이었다. 상수가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자를까 싶다가도 간부들이 그러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원래 오너들은 관심이 없다가 불현듯 떠올려 닦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수 같은 일개 영업부 직원의 거취를 회장에게 매번 상의할 만큼 머저리인 간부는 없어서 상수는 이렇게 저렇게 10년을 흘러올 수 있었다. 일단 착륙은 했지만 발을 완전히 붙이지는 못하고 회사에 수상한 기운이 불어닥칠 때마다 그 몇폭의 거추장스러운 낙하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은근한 불안을 견뎠다.
상수는 두달 동안 어찌 되었든 팀장대리라는 직위에 익숙해지기 위해—이를테면 고립된 사무실의 환경과, 책상과 의자의 높이와 선반의 위치와 어느 쪽으로 걸어야 가장 빠르게 출입문으로 나가거나 혹은 돌아올 수 있는가, 창문을 얼마만큼 열어놔야 말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가 등을 고민하며—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대리’라는 이상한 꼬리가 붙었어도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장에게 팀원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팀원을?”
부장은 놀랐다. 그러면서도 팀장이 팀원을 요구하는 데 놀라는 자신이 겸연쩍긴 했다.
“저도 이 팀을 어떻게 끌어갈지 고민했거든요. 팀을 조직해서 파트너십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해외, 특히 베트남, 베트남을 공략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요.”
“베트남?”
부장은 이렇게 되묻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간부회의에서 그렇지 않아도 상수에게는 국내영업이 아니라 해외업무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니까 바이어와 싸울 일이 없고 그러면 일감이 떨어져나갈 일도 없을 테니까.
상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는 했지만 한국의 공장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거래처 사장들과 다투기까지 했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기를 거부한다든가, 물품 계약서를 ‘가라’로 융통성 있게 작성해주지 않는다든가, 중간관리자들에게 커미션을 챙겨주지 않는다든가, 정치 얘기를 하다가 불화한다든가 했다. 내내 무기력하게 위축되어 있다가도 일단 맘먹으면 외골수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해 대구에서 김유정 팀장이 맞선 보는 자리에 무작정 들이닥친 일이 그랬다. 부장은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을 쓸었다. 괜히 맞선 한번 주선했다가 기분만 잡친 거래처 사장이 공상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기 때문이었다. 동료 직원이 거래처 사장의 주선으로 맞선 보는 현장을 급습해 강짜를 놓고, 그 자리를 만든 거래처 사장에게 찾아가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라면, 그 사장도 사장이지만 회사 명예도 얼마나 실추시키는 일인가. 게다가 상수는 그 자리에까지 실타래—두어명의 목을 너끈히 조를 수 있을 것 같은, 웬만한 구렁이만한—를 가방에 넣고 가는 바람에 그것을 위해의 도구로 쓰려 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그게 뭐라고 보조가방에 소중히 넣어 갔어, 부장은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혀를 춧춧춧 찼다. 그 대구 염천 더위에 양복에다 륙색에다 실에다 카탈로그에다 상심한 사랑에다 울분까지 챙겨 들고.
상수가 그냥 그런 집 자식이 아니라 다 저물기는 했지만 국회의원까지 지낸 정치인 자식이라는 것을 자신이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았다면 일은 얼마나 커졌을지 몰랐다. 사실 상수의 양어머니가 손을 쓴 것이지만. 그때 부장은 상수의 가족과 처음으로 소통이라는 것을 해보았는데, 그동안 은근히 깔보던 상수에 대해 좀 다른 느낌을 갖기는 했다. 양어머니의 목소리는 상당히 젊었고 전화를 자기가 필요할 때 걸고 원할 때 끊어버린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부려본 태가 났다. 그래 우리 애는 지금 어딨는데요,라고 묻다가도 골치 아프네, 시끄러워지겠네, 하고 은근히 반말을 섞어 혼잣말하고 돈은 뭐 돈으로는 안 되겠지, 사장이라니까, 그렇게 상황을 판단하더니 내가 전화를 돌려볼 데가 있으니까 좀 기다려보세요, 하더니 전화로, 오직 전화로 오전 중 고소 취하를 끌어냈다.
“그 새끼 어느 집 자슥이야? 뭐 전화가 이리 많이 와?”
거래처 사장은 부장에게 역시 전화로 물었다. 그래, 무슨 집인가 대체 공상수네 집안은. 얼마나 유복하고 위세있으며 인맥은 얼마나 대단한가. 아니 그런 건 사실 상관없고 대체 회장과 얼마나 친한가. 골프는 치는가. 삼청동 게장집이나 을지로 냉면집, 아니면 동부이촌동 재팬타운에 있는 오래된 스시집 같은 데를 같이 가는가. 그런 데는 격조있고 맛이 훌륭하며 특히 스시집은 1인분에 8만원인데, 만약 그렇다면 보통 사이가 아닐 텐데.
일이 수습되고 부장은 김유정 팀장에게 휴가를 주었다. 아무래도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유정은 하루만 월차를 썼다. 그리고 직접 거래처 사장을 찾아가 이번 일에도 불구하고 거래에는 이상이 없을 것임을 확인받고 왔다. 중국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반도미싱에서 적어도 8000만원 상당의 기계를 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상황을 보고하면서 유정은 “사실 공상수씨는 뭐 한 게 없어요”라고 사실인지 덮어주려는 건지 모를 말을 했다.
“그래도 곤란하지, 공상수씨가 그러면. 김유정 팀장이 곤란하잖아.”
“곤란했죠, 부장님, 당연히 곤란하죠.”
사실 유정은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았지만 부장 말에 장단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정말 곤란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곤란하지 않았던 이유는 상수가 그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상수가 유정이 선을 본다는 사실을 알고 전날부터 전화를 하고 유정은 받지 않고 나중에는 그냥 휴대전화를 꺼버렸을 때, 일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상수는 그런 단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유정이 보기에 상수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의 배면에는 단절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 공포는 여러 면에서 상수를 괴롭혔다. 예를 들어 자기가 진행한 계약건과 관련해 거래처에 입금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것을 담당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늦지 않았는데도—걸었다. 모든 일은 일어났다가 일어나지 않았다가 생겼다가 생기지 않았다가 가까이 있다가 멀어졌다가 하며 사이사이 틈을 갖는 게 정상이지만 상수는 그런 단속(斷續)의 리듬을 견디지 못했다. 상수에게 단속이란 단절이고 그것은 불안과 공포와 이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무시무시한 비관주의가 자리하고 있었고 유정도 그 사연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삶을 더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또 이 상황을 단숨에 극복하겠다는 허황되고 과장된 의지를 순식간에 불러일으켜서 유정으로서는 그 불안과 공포가 극복의 대상인지, 습기 먹은 식빵처럼 순간순간 무기력과 허무에 젖는 상수에게 생의 의지를 불어넣는 동력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바로 그런 동력이 일어날 때 상수는 어디로든 전화했다. 정작 대면해서는 낯을 가리면서도 전화로는 타인과의 접속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물론이고 제주나 비양도나 울릉도나 지금은 문을 닫고 만 개성공단이나 오오사까나 베트남의 하노이나 응에안이나, 인도 뭄바이나 가릴 것 없이 상수의 전화는 전지구적으로 뻗어나가 불화를 일으켰다. 시차를 생각한다면 거의 24시간 내내 지구상의 누군가는 상수의 단절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따른 히스테리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셈이었다.
유정이 짐작하는 상수의 트라우마는 어려서 엄마를 잃고 아버지는 늘 바빴으며 친형이 폭력적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친구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것. 유정이 판단하기에 상수에게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실감,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실감도 그래서 부족한 것 같았다. 그 실감은 상대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고 그렇기에 기꺼이 믿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상수가 요청한 무언가만 하고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그는 월급의 몇배에 해당하는 노동을 반드시 뽑고야 마는 회사의 특성상 운명적으로 과로에 시달려야 하는 누군가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피와 땀과 호르몬과 생체리듬이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그 누군가는 뭔가를 잊을 수도 있고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천성이 워낙 느리거나 느긋해서 상수가 원하는 속도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에게도 상수처럼 일상의 평온을 흔드는 신변상의 이유들이 늘 일어난다는, 그의 인생도 상수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살다보면 휘발되게 마련이라서 유정은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노력하는 거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상수는 그런 감각이 아주 부족해 보였다. 특히나 소비, 거래, 업무의 영역에서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버튼’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행자가 눌러놓으면 얼마 지나 녹색불이 들어오는 횡단보도의 신호제어기처럼, 자극을 주면 정확히 반응이 와야 하는. 그렇게 몇초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발을 구르며 초조해하겠지만. 사실 회사에서 그렇게 피아(彼我)를 ‘다른 존재’로 구분해 인색하게 구는 경우는 직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훈장처럼 늘어나는 것이지만 문제는 상수가 이제 겨우 ‘팀장’ 하고도 ‘대리’일 뿐이라는 데 있었다. 상수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당사자들은 당사자들대로 코웃음 쳤고 회사 내에서 인심만 잃었다.
유정이 대구에서 맞선을 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회사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경쟁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히 괴롭히고 싶은 마음까지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치사한 방식으로 그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렸다. 그런 악취미들을 보고 있으면 유정은 인간의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그 나쁨도 그러데이션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유정은 종종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을 동정하거나 더 정확히는 살피는 질문을 받았다. 공상수씨가 그렇게 해도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 괜찮아요? 하는 물음에는 너도 혹시 공상수에게 관심 있니, 하는 의미를 지닌 것도 있었다. 그럴 때면 유정은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고 괜찮다고 대답하곤 했다. 안 괜찮으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공상수는 반도미싱이 문을 닫지 않는 한 해고될 리가 없고 유정도 팀장까지 올라간 마당에 절대 밀릴 순 없었다. 물론 괜찮은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수가 기괴한 스토커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가끔 전화했고 가까이 있게 되는 어느 순간에 지나가듯 안부를 물었으며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회사를 오가며 상수가 유정을 바라볼 때 유정은 그런 상수의 눈이 순정하며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순정하고 무력한 이유는 과거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었다. 3년 전 오오사까 법인에 파견돼 머물렀던 동안에 둘은 특별한 시간을 보낸 것이 사실이었다. 그 시간이 상수의 현재를 만든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은 심지나 기폭제의 도화선처럼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었기 때문에 상수의 짝사랑은 그렇듯 무력하고 그래서 어느 면에서는 순정했다. 오오사까에서의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어쩌면 공상수는 조금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정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건 창피함 때문이었다. 왜 공상수와의 로맨스가 자신에게 창피함을 주었나, 생각하면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때의 수치심은 아주 분명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상수는 유정과의 시간들이 한국에서도 이어지리라 기대하다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분노와 당혹감으로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할 무렵에는 눈물을 흘렸다. 쌍꺼풀은 없지만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크고 유독 갈색인 그 눈동자가 이별을 절감하는 순간 차오른 투명하고 무력한 것. 유정은 그런 상수의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었는데 그것이 그들이 특별한 관계로서 나눈 마지막 접촉이었다.
*
부장 입장에서는 사고만 치는 상수가 파트너십이 어쩌고, 팀장으로서의 역할이 저쩌고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상수를 타일렀다.
“일단 혼자서라도 자네가 그동안 쌓아온 영업망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그동안 좀 열심히 일했어? 이십대 한창을 바치지 않았나, 전국을 돌면서. 왜, 그 태풍 메기 때도.”
“매미죠, 매미.”
“그래, 매미 때도 죽을 뻔했잖아. 부산 갔다가.”
“영도다리에서 아주 날아갈 뻔했는데.”
“그러니까 그런 간난신고의 시절을 거쳤는데 팀원이 왜 필요해? 내가 자주 가는 단골집 중에 포은 사시미라는 데가 있어. 그 사장이 조선호텔 주방장 출신인데 소주는 1인 1병이라고 써붙여놨다고. 그리고 매사에 무리하지 마세요, 이렇게 적어놨다고. 인생 명언 아닌가? 무리하지 마. 막상 팀원 많아지면 하고 싶은 거 다 못해. 나 봐, 내 어깨에 직원이 이렇게 많으니까 어디 나가서 하고 싶은 대로 못해. 아주 죽겠지, 내가, 야성을 죽이고 살려니까.”
상수는 그렇지만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팀원이 없는 팀장이라니 말이 안 되는 공란이 아닌가. 그 공란에 대한 생각은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가 않았다. 상수는 그래서 왜 팀원이 있어야 하는가에 관한 이런저런 계획서를 써서 부장을 찾아갔다. 그때마다 부장은 말을 빙빙 돌리면서 이 상황을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상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부장 방에 들러 의견을 피력하고 점심에 다시 찾아가 부장을 따라 해장국이나 복지리 등을 먹으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팀장대리로서의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회사로 돌아오면서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를 즐기는 부장을 따라 까페에 들어가 자기는 고구마라떼를 주문하면서 혹시 이것이 회사의 꼼수가 아닌지, 그러니까 해고를 위한 대기발령이 아닌지를 물었다. 부장이 아니라고 하면 다시 그렇다면 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지를 캐물었다. 그때마다 부장은 괴로웠고 이 융통성 없고 눈치 없는 인간을 확 잘라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회장과 상수 부친의 친분 정도가 확실하지 않아서 견디고 견디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아버지는 잘 계신가? 회장님과 재수학원 동기시지?” 하고 확인했다.
“아버지 얘기는 왜 하세요?”
상수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저는 아버지랑은 의절하다시피 해서 왕래가 없습니다. 아버지 덕 보는 사람도 아니고요.”
“누가 덕 본다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아니야, 누가 그래? 공상수씨 아버지 덕 안 보는 것 세상이 다 알아. 공상수씨는 전연 그런 타입이 아니지. 이봐, 공상수 팀장, 거 부를 땐 ‘대리’ 떼먹어도 돼. 영업이 영혼 영(靈) 자 쓰는 영혼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고. 사람 정신에 관한 일이라니까. 사바세계를 이해해야 우리가 팔 수 있어. 사람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하게. 그래야 우리가 괴물이 안 돼, 으응? 공팀장이 괴물이란 말은 아니고…… 근데 부친 공의원께서는 잘 계시나? 회장님이랑은 아직 골프 치시고?”
상수는 그런 질문에는 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요즘 회장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손목을 다쳤다고 마지못해 답했다.
“손목 부상?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랑은 의절했다며?”
“어머니가 말하던데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어머니와는 나도 일전에 통화를 나누었는데 회장 사모랑 친하던가?”
“그렇죠, 같이 계원이신데, 그러니까 제 말은 말입니다.”
“팀원이 필요하다, 이거 아닌가.”
“그렇지요. 그래야 제가 뭘 해볼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상수는 부장이 근 한달 만에 자기 말에 선선히 동의하자 당황했다.
“그렇지, 팔다리 다 잘라놓고 팀장을 시키면 어떡해. 나도 그게 문제라고 인식은 하고 있어. 이게 다 부서장들마다 자기들 잇속 차린다고 그렇게 된 것이지만. 공팀장 기다리게, 내가 해결할 테니.”
그렇게 해서 간부들은 ‘대리’라는 말이 가지는 임시성을 통해 부담을 덜고 상수를 적당히 달래놓으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있었고 이번에도 도대체 공상수의 부친은 회장과 얼마나 친한 사이인가가 핵심이었지만 총무부에서 내보내고 싶은 직원이 있다고 해서 결론은 났다. 8년차 총무부 직원 박경애였다.
박경애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간부들의 머릿속에는 몇몇 불편한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겅중한 키에 언제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서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 숙이고 간다든가, 이중주차를 해놓으면 그게 어떤 간부의 것이라도 전화해 좀 빼주시죠, 하고 끊는다든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며 계속 줄담배를 피운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몇해 전인가 구조조정을 위해 부서 이동과 해고가 있었을 때—원래 홍보부에 있었던 경애는 그때 총무부로 전출되었다—농성대에 끼어서 꽤 오래 간부들을 귀찮게 했던 기억. 아직도 그 직원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 간부도 있었다. 농성을 하면서 경애가 무슨 분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여직원들과 삭발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농성이 끝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모두들 알고는 있었다.
회의 결과는 상수에게 전해졌고 상수는 그토록 고대하던 팀원의 이름을 들었다. 그 이름은 상수에게도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2주마다 금요일 3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경애는 직원식당 옆에 자리한 간이창고에서 직원들이 신청한 사무용품을 나눠주었다. 회사는 물품 구입을 사후 청구로 해놓으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의—예를 들면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값이 뛰는 수정테이프나, 중요할 것도 없는 차이를 내세워 몸값을 올리려는 펜과 볼펜—물품을 산다는 이유로 무려 60여년 전 창업 당시의 방식을 고수했다. 창고에 밋밋하고 오직 실용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무용품을 대량으로 쌓아놓고 일괄 배급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점보지우개와 검정표지의 회계장부, 빨파검으로 통일되어 있는 국산 볼펜 같은 것밖에 없었다.
경애는 그 습기차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 물품들을 나누어주거나 아니면 물품을 신청해놓고는 오지 않는 직원들을 기다리며 창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거의 모든 일에 지각하는 상수가 헐레벌떡 창고에 오면 경애는 부스스한 앞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올린 채 담배를 피우다가 “있잖아요” 하고 불렀다. 낮고 허스키한 그 목소리는 간이창고의 습기만큼이나 눅눅해서 어디의 누구라도 충분히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여기 있잖아요. 있습니다.”
상수가 그런 한심한 농담을 하면 경애는 당연히 웃지 않고 다시 한번 담배를 빨았다.
“그쪽 승인 불가예요.”
“승인 불가요?”
“물품 기안 올린 거 말이에요. 되는 줄 알고 과장한테 올렸다가 나만 욕먹었네. 대체 문진이랑 독서대 같은 건 왜 필요한 거예요? 이 회사에 그런 거 필요한 사람 없다던데요.”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상수는 들고 갈 것이 없었다. 사유에 불필요가 적혀 승인 불가가 떨어진 날이면. 물론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경애가 온 김에 한대 태우고 가라며 담배를 건네기도 했으니까. 경애가 내미는 그 가늘고 긴 멘톨향의 담배를 받아들고도 상수는 그곳이 금연구역이라서 피우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가버리기는 뭣해서 어색하게 서 있으면 경애는 상수를 완전히 잊었는지 저 멀리 시선을 던진 채 연기만 뱉었다 들이마셨다 했다. 지게차들을 유심히 보는 듯했다. 그것이 짐을 싣고 공장을 나와 트럭으로 가까이 가서 천천히 짐을 부려놓는 것을. 아니면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나와서 대화하는 청색 유니폼의 공원들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다라이’에 무를 넣고 왁자하게 떠들면서 씻고 있는 식당의 여자들을. 뭔가 리듬이 있는 것처럼 금요일 오후를 구성하고 있는 풍경들을.
“있잖아요.”
경애는 시계도 보지 않고 있으면서 4시 30분은 정확히 알았고 거기에 알맞게 손가락으로 툭툭 쳐서 담배를 껐다.
“저 욕먹으면 안 되거든요. 회사에 욕먹으면요.”
경애는 간이창고의 문을 닫고 나서 체조를 하듯이 팔을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회사에 욕먹어도 되는 사람 없지요. 저도 안 됩니다.”
“그쪽은 좀 다르잖아요.”
“내가 뭐가 달라요?”
그러자 경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안 피울 거면 담배 줘요, 했다. 상수는 담배를 잘 안 피우기는 했지만 줬다 뺏는 건 또 뭔가 싶어서 돌려주지는 않았다.
“난 정말 회사에 밉보이면 안 돼요. 여차하면 해고라고요. 그러니까 좀 도와주십쇼, 네?”
하지만 이후로도 상수는 경애를 도울 수가 없었다. 가망 없는 연서를 쓰듯 승인 불가와 불필요의 결과가 뻔한 물품신청서를 썼다. 상수의 물품신청서는 세상의 요구보다 지나치게 정확하고 정성스러워서 문제였다. 볼펜(흑색)이라는 란은 체크하거나 공란으로 두면 충분했지만 상수는 굳이 스테들러 삼각볼펜432라고 썼고, 그냥 펜(청색)이 필요하면 브이 자로 표시하면 될 것을 제브라 사라사 클립펜 0.3mm라고 기입했다. 상수의 바람은 그깟 사무용품에까지 너무 정확하고 간절해서 매번 기대가 좌절되더라도 포기되지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회사 인트라넷이 가까스로 개편돼 승인 여부를 면전에서 통보받는 일은 줄었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 경애와 상수의 승인 불가 핑퐁은 계속됐다. 그렇게 쌓아간 매치포인트가 이 급조된 팀에 어떤 활력으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2. 반드시 크게 들을 것*
그날 상수는 인사과에서 경애의 이력서 사본과, 작년의 근무평가지를 얻어 바로 퇴근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미리 만들어두었던 오니기리를 먹으며 경애를 연구했다. 꽤 길게 쓰인 자기소개서에서 경애는 자신의 가정환경을 “대대로 어렵습니다. 효도하고 싶어요”라는 문장으로 짧게 요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한 언급 뒤에 존경하는 사람으로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인 발렌띠나 떼레슈꼬바와 작가 메리 셸리를 적었고 자기소개의 마지막도 “일단 우주에 나가면 지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실감하게 된다”라는 우주인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신입사원의 패기를 보여주는 것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말이었다. 이메일 주소가 프랑켄슈타인프리징(frankensteinfree-zing)으로 길어서 특이했는데 상수는 누구에게 불러주기도 참 힘들고 일부러 뜻을 끼워맞춘 것 같은 조합의 아이디가 눈에 익다고 잠깐 생각했다. 상수에게 SNS나 인터넷상의 활동은 활기찬 고양이의 ‘우다다’처럼 한정된 공간을 밀도 있게 누비는 것이라서 한번쯤은 어디서 마주쳤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자기라면, 자기가 인사과장이라면 이력서에 이런 이메일을 쓰는 직원은 뽑지 않을 것 같았다. 간소하지 않다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고 회사에서 하게 될 ‘노동’이라는 데 감이 없다는 것이니까.
근무평가지는 단 한번의 지각도 없는데 C등급이었고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조직개편안에서는 경애의 직급이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진은 없었고 조직개편안에서 그것은 ‘인사적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 적체라는 말은 간이창고에 하염없이 쌓여 있던 용지와 필기구와 장부, 다용도 테이프와 몇년이나 거기 있었는지 모를 수북한 박스더미를 떠올리게 했다.
상수가 그렇게 경애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방 안이 점점 더 추워졌다. 보일러를 켜야 했지만 사흘에 한번은 계량기를 들여다보며 가스 사용량을 체크하는 상수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달의 계산으로는 사만팔천원을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상수는 겨울이라도 오만원 이상은 가스비로 쓰지 않았다. 그건 상수의 삶의 원칙이었다.
상수는 대신 엉덩이를 따끈하게 덥힐 수 있는 작은 전기방석을 켰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이렇게 경애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추위를 참고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이 훌륭하게 느껴졌다. 상수는 이력서의 증명사진 옆에다 적체,라고 적어보았다. 8년 전 경애의 얼굴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볼살이 올라 있었고 머리카락이 길었으며 그 머리카락에 웨이브가 져 있었다. 막 세팅기에서 말려 나온 듯한, 늘어뜨린 용수철처럼 구불구불한 웨이브는 스물일곱 취업준비생 경애가 가졌을 기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마 미용실을 다녀왔을 것이다, 화장도 했겠지, 마스카라나 아이라인이나 섀도 같은 것. 고개가 살짝 오른쪽으로 기운 경애 얼굴은 뭔가 장난스러운 의문을 품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자 상수는 적체라고 적은 것이 문득 미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큼 경애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었다. 직원들을 기다리며 경애가 햇볕 아래 망중한에 빠져 있을 때, 그때의 오후란 시간이 그 속성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부딪혀 겹치고 붙어 우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상수가 담배 한대를 얻어 들고도 쉽게 뒤돌지 못했던 건 경애가 뭐랄까, 그 오후의 풍경이 주는 감정들 속에서 무언가 버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사라지고 멀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소멸해가는 건 담배필터밖에 없고 그밖의 모든 것은 경애의 등과 어깨에 무겁게 얹어지는 듯한.
상수는 그런 여자들을 잘 알았다. 그런 여자들은 상수가 운영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그 연애상담 페이지를 상수는 7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팔로워가 2만명에 이르는 곳이었다. 상수는 당연히 현실에서 언니가 아니고 형이나 오빠—그렇게 불리는 경우마저 몇 없었지만—였지만 그 계정에서는 언니,라고 불렸고 그렇게 오랫동안 언니로 살았다. 언니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이었다. 섹스하는 여자들, 원치 않았던 여자들, 이별해야 하는 여자들, 싸우는 여자들, 가족을 떠나려는 여자들, 우울한 여자들, 속은 여자들, 살이 찐 여자들, 소비하는 여자들,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여자들, 억울한 여자들, 죽은 여자들, 혹은 죽으려고, 분노에 빠진 여자들, 어리거나 너무 나이든 여자들, 기다리는 여자들.
상수는 그런 여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연을 받았고 그에 대한 답장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다. 마음을 다해 답장을 썼지만 실제로 언니는 아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아주 사소한 거짓말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녀를 사랑했었지요—를 그를 사랑했었지요—정도로, 1학년을 마치자 아는 애들이 다 군대를 갔는데—를 1학년을 마치고 친구들이 다 유학을 갔는데—로,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했어요—를 얼굴 제모를 좀 했어요—로. 그런 불가피한 거짓이 있다 해도 상수의 마음만은 진심이었기에 자기가 정말 이 모든 여자들의 언니인 것처럼, 내부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억이나 감각에 자신을 기탁해 한자 한자 써내려갔다.
물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여자들의 삶에 대한 소스를 필요로 하기도 했다. 그럴 땐 상수의 좁은 아파트를 채우고 있는 책들과—모두 연애소설이었다—DVD들 그리고 벽면에 붙여놓은 그의 뮤즈들이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은 모두 상수가 십대였던 1990년대 히로인들이었는데 장만옥, 멕 라이언, 줄리아 로버츠, 히로스에 료오꼬, 최진실 같은 배우들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여자들에게는 장만옥이 「첨밀밀」에서 연기한, 여러번 반복되는 사랑의 상실 앞에서 짓던 처연하고 담담한 얼굴을 생각하며 썼다. 울지 말아요,라고 썼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요!라고. 그에게 내가 어울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여자들에게는 줄리아 로버츠가 가진 로맨스의 어떤 개척정신을 떠올리며 썼다. 재벌의 사랑을 쟁취한 콜걸이나 평범한 서점 주인의 연정을 구하던 일급 배우의 그 사랑의 무계급성을 연기하면서 말이다.
그 덕분에 상수의 페이스북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페이지가 되었고 심지어 책을 내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수는 정체를 드러낼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하자는 사람들, 방송에 나와달라는 사람들, 언니, 한번만 만나줘요,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반도미싱 팀장대리인 서른일곱살의 마포구 거주 남성으로는. 그렇다면 그동안 언니로서 했던 모든 위안과 충고가 거짓이 되어버릴 게 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코 푼 휴지나 가십거리, 선정적인 스캔들, 변태적 취미쯤으로 소비되기에 ‘언죄없’ 페이지는 상수에게 중요했다. 걸핏하면 고독사를 꿈꾸는 상수에게 단 하나 삶의 의미였다.
물론 꽃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딧물처럼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악플러들과의 갈등이 끝이 없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나타나 상수가 올린 답장들에 야유와 냉소를 퍼부었고 모욕했다. 어쩌면 페이지를 그렇게 명명했던 순간부터 상수의 이런 비극은 예견되었는지도 몰랐다. 언니는 죄가 없으므로 상수는 언니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랑에 대한 깊은 동조자이자, 고해성사 후의 죄 없음을 선언하는 사면자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사랑 중에는 때로는—이런 표현은 그렇지만—뜯다 만 순록의 뒷다리처럼 너덜너덜해진 채, 한때 피가 돌고 근육이 움직이고 냄새, 살아 있는 것의 냄새를 풍기던 사랑이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이제 썩어 들어갈 일밖에 남지 않은 한덩이 죽은 고기 같은 것들이 태반이었는데, 그럴 때에도 상수는 그 죽은 빛의 고기를 집어들고 그것이 디뎠을 초원의 풀 냄새나 진흙 냄새 따위를 상상하며 그것은 여전하다(!)고 말해주어야 했다. 사랑은 다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런 선지자들이 대개 현실의 곤욕을 치르듯 상수도 이 지긋지긋한 키보드 워리어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페이지의 언니들이 상수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랑의 생몰이 다 드러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사랑은 같은 기차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되었다, 혹은 어려서 운동회날 달리기에서 둘 다 꼴등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첫눈을 함께 봤다는 이유로, 실연의 상처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똑같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같은 밴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공통으로 아는 친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낡은 점퍼나 코트를 유심히 보게 됐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추워 보였다는 혹은 더워 보였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땀 흘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먹었다는 이유로, 돌아서서 지하철역까지 느릿느릿 걸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에는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거기에는 가난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 종교, 정치, 국적의 차이, 집안싸움, 부모 반대, 언니 또는 형의 반대, 동생의 반대, 베프나 은사의 반대 혹은 기르는 고양이나 개의 반대, 윤리적 판단—불륜, 제삼자의 출현 같은 일종의 유형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오는 그런 사연들 중에서 답장 쓸 편지를 고르는 건 상수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상수를 골리고 희롱할 목적으로 키보드 워리어들이 보내는 편지도 있어서 편지의 독해와 선별의 과정은 쓰레기 더미에서 온전한 물건을 찾는 것처럼 고역과 고행이었다. 일단 편지를 열고 읽어야 했으니까. 워리어들의 편지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삽입과 사정으로만 상세히 구성되어 있었지만 정말 현실의 고통을 겪은 언니들은 그 모든 과정을 축약해서 전달했다. 그렇게 접히고 축소된 이야기 속에서 언니들의 내부에 일었을 소란을 증폭해서 읽는 것, 그것이 상수가 자신의 특장인 ‘여지’에 대한 감각과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통을 듣기 위해 귀를 최대한 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 같은 것이 상상되었다. 아주 일상적인 소음일 것이었다. 냉각팬이 돌거나 의자가 끌리거나 세탁기가 탈수코스로 접어들고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가 하강하고 때론 상사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직 안 갔어? 하거나 경비가 쓰지 않는 형광등을 끄고 가는.
하지만 그 누군가는 지금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소음들과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마치 공동처럼 그 모든 일상과는 상관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공동에는 너무 많은 중력이 가해지거나 아니면 아무런 중력도 가해지지 않아 스스로가 완전히 버려진 기분일 테고. 상수가 늘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그렇게 실연의 고통은 교활한 악당처럼 당사자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단 하나의 일상까지도 냉정히 제거한다는 걸 알기에 상수는 우리 언니들이 지금 이런 것들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해,라고 답장에 써주곤 했다. 친구에게 먼저 전화해 어떻게 지내, 하고 안부를 묻는 일, 미안함 없이 가족들을 보는 일, 씻거나 밥을 먹는 일, 수목드라마의 로맨스를 보면서 하하 웃는 일, 자동차세나 주정차위반과태료 같은 공과금을 제때 내는 일, 눈이나 비 소식에 마음이 아니라 출퇴근길만 걱정하는 일, 잠자리에서 울지 않는 일 혹은 잠을 자지 않고도 울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 일상에서 ‘언죄없’에 쓰는 편지란 그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일지 모르기 때문에 상수는 나야, 언니,라고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과거에 무엇을 했든, 누구를 사랑했든, 어디서 혼자 어떻게 견디고 있든, 죄가 없는 오늘로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지만—온갖 저주가 담긴 항의편지를 다시 받기도 했다—상수의 말이 듣고 싶은 언니들이 있는 한, 페이지는 계속되었다.
어쩌면 상수가 회사에서 겉도는 건 이런 이중생활 때문일지도 몰랐다. 언니에서 공상수 팀장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집과—상수는 반드시 집에서 편지를 썼다. 보안을 위해—회사라는 두 공간의 차이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존재가 전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 전이를 하기에 반도미싱에서의 생활은 상수를 언니도 오빠도 형도 아닌 자꾸 ‘그것’으로 느끼게 했다. 회사에서 상수는 매뉴얼이 필요한 무언가처럼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왜 그렇게 무거운 파우치를 들고 다니는가. 거기에는 왜 그렇게 많은 화장품이 들어 있는가. 왜 오픈되어 있는 남자 소변기를 쓰지 않고 양변기의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는가. 왜 상사들과 함께 사우나에 가지 않는가. 그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가지 말은 무섭도록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상수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있긴 했다. 아무리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상수가 대답에 대답을 하다가 지쳐, 군대 면제였어요,라고 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하지만 상수는 웬만하면 그런 대답을 안 하고 싶었다. 김유정 팀장의 아버지가 해병대 상사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수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욕망이 욕망 그대로 표출되지 않고 마치 정조준하고 있던 큐대가 결정적인 순간에 ‘삑사리’를 내듯 어긋나서 엉뚱한 동력을 내고 마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식으로 상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가족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상수에 대한 설명서는 상수 인생 전반에 걸쳐 제공되어야 했다. 상수는 그러한 관심이 종국에는 자신과 부친에 대한 은근한 비교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최 정치가 뭐길래, 선거날 투표도 잘 안 하는 인간들이 이렇게 옛날 정치인에게 관심을 갖는 건가 상수는 질색이었지만 유권자로서 투표하는 것과 직장동료의 개인사를 들을 권리 중에는 후자가 더 강제력 있는 것이라서 질문은 멈추지를 않았고 그때는 “저 아버지와 더이상 연락하지 않습니다!” 하는, 일종의 ‘아버지 면제’ 상황이라고 대답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뭔가 더 드라마틱한 사연을 기대케 하는 대답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흥미를 갖게 된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으로 상수의 부친인 공효상 의원을 찾아보고 그 삶과 상수의 지금 모습—대부분의 것들과의 불화!—을 비교하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상수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건 꼭 상수가 4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스물두살의 어느 밤과 같을 거였다.
그 밤은 아주 나쁜 밤이었다.
2002년 봄의 그날에 아버지는 웬일인지 집에 일찍 돌아와 있었고 상수는 어느 타이밍에 서재를 찾아가 그 말—더이상 수학능력시험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는 시험 면제의 말—을 해야 할지를 초저녁부터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수는 손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많이 흘려서 땀에 손을 적시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양어머니가 자리를 비워서 방배동의 아파트는 고즈넉했다. 아버지가 틀어놓은 NBA중계가 선수의 동선을 따르는 미국인의 해설과 환호, 코트에 미끄러지는 운동화 소리와 함께 마치 환청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상수는 거실의 대리석 바닥을 밟아서 서재로 갔다. 가면서 어렸을 적 한동안 빠져 있었던 거울을 들고 걷는 놀이를 떠올렸는데, 어린 상수가 그걸 즐겼던 건 그렇게 걸으면 천장이 비치면서 발을 움직일 때마다 미궁에 빠지는 듯한 스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스케치북만한 거울을 들고 집을 돌아다니면서 미궁의 공포를 부러 체험하는 것이 상수의 유년이었다. 그건 그 공포가 착각일 뿐이었다는 한걸음 후의 안도 덕분에 놀이가 되었는데 거실을 가로지르는 그날의 상수에게는 아버지에게로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실제로 허방을 딛는 것처럼 막막하고 두려웠다.
서재 문을 두드리자 들어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줏빛 카디건을 입은 아버지는 농구공을 들고 스냅슛을 흉내내면서 중계를 보고 있었다. 농구공에 적혀 있는 마이클 조던의 사인은 1992년 미국을 방문한 아버지가 직접 받아온 것이었다. 정당의 부대변인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를 미국 국무부가 초청한 것이었다. 상수도 동행했던 그 미국행은 상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리고 친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기도 했다.
상수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앉아라, 앉아, 하며 자리를 내어주고 미니냉장고에서 닥터페퍼를 꺼내 뜯어주었다. 그런 아버지의 동작에서는 언제나처럼 호쾌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상수는 한동안 닥터페퍼를 홀짝일 뿐 말을 먼저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조던이 연달아 득점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농구공을 꽉 붙든 채 팔을 흔들어댔다. 미국여행에는 아버지 이외에도 그 시대를 주름잡던 많은 정치인과 그들의 가족이 동행했는데, 거기서 상수와 친어머니는 어쩐지 고립감을 느끼곤 했다. 아버지도 은근히 외톨이처럼 보였다. 대학에서 건너온 유일한 학자 출신이라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옛 추억을 회상하며 화기애애하다가도 누구누구의 이름을 대며 욕하곤 했다. 다른 이들의 상당수를 권력을 위해 신념을 판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오직 죽은 이들뿐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고문을 받다가 죽은 이들, 입대 후 생사가 불분명한 이들, 아파서, 죽도록 아프다가 정말로 죽은 이들. 여행에서 아버지가 한 이야기 중에 상수가 가장 좋아하는 건 선거운동을 할 때 자전거를 타고 온종일 서울을 돌아다녔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로 서울을 누볐다는 얘기에서 상수는 자주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어떤 인간적인 면모를 상상해보곤 했다. 물론 그 자전거 뒷자리에는 상수나 형이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선거전단이 쌓여 있었겠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며 목이 마르면 냉차 같은 것을 사 먹고 너무 더우면 남방셔츠를 바지에서 끄집어내고 더러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열심히 페달을 구르면서 도시를 누비는 풍경. 아버지가 그런 풍경 속에 있었다고 하면 어떤 감동 같은 것이 몰려왔다.
술자리에서 아버지는 미국인들에게 ‘건배’와 ‘싸나이’ 같은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연설할 때는 광개토대왕을 알렉산더 대왕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싸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상수는 왠지 기분이 나빠졌는데 그 단어가 형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상수와 일곱살 터울이 졌던 형은 크고 작은 비행들로 경찰서에 들락거렸고 언제나 상수를 괴롭혔다.
어머니는 그 여행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일행에 섞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을 때는 단 한순간, 농구장에서였다. 미주한인회 관계자가, 경기 내내 어색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던 일행을 선수들에게 데려가 준비한 농구공을 하나씩 안기며 사인을 받게 했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수는 스포츠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떠밀려 마이클 조던 앞에 설 수밖에 없었는데, 사인을 한 조던이 가려다 말고 문득 몸을 돌려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속삭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걸 목격한 것은 상수 하나였고 그것이 어떤 말이었는지 아무리 물어도 어머니는 말해주지 않았는데, 대신 록펠러센터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곳을 돌아보다가 문득 해가 저물고 별빛이 떠오르면 이런 노래를 상수의 귀에 속삭여주곤 했다.
달과 뉴욕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방황할 때
미친 짓인 듯하겠지만 사실이야.
달과 뉴욕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를 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최선의 것은
사랑에 빠지는 거야.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
네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그런 여자를 찾을 거야,
그리고 그런 뒤에는 도시를 등지게 되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면
여전히 그녀를 떨쳐버릴 수가 없을걸.
도시를 멀리 지나 그녀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혼자 이렇게 궁금해하겠지,
이봐, 내가 찾은 게 대체 뭐야.
그때 상수는 영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몇몇 단어들, 문, 뉴욕 시티, 크레이지, 러브 같은 것들만 기억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노래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란 말이야」(Best That You Can Do)라는, 영화 OST였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죽은 어머니의 속삭임과 함께했던 뉴욕의 풍경들이 생각났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면 뉴욕의 노란 캡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축소되던 장면이 아련했다. 저녁이면 해안에 정말 커다랗고 노란 달이 뜨고 마천루와 크고 작은 건물들과 도로와 가로등의 광점들이 다 부스러진 별조각들처럼 반짝이던 것이. 그 빛들은 상수가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그것은 좀더 세세하고 가늘고 마치 실핏줄처럼 빽빽하게 뉴욕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시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과 있을 때면 어머니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무대에 걸어놓고 가라오케 시설을 갖춘 축하연에서 「베싸메 무초」 같은 노래나,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를 불렀다. 한때 CM송 가수였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매번 노래를 해야 했다. 그 노래들도 상수는 나쁘지 않았다. 어머니가 속삭이듯 불러주던 그 러브송이란 소년 상수에게 불안과 질투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탬버린을 쥐여주었을 때는 상수도 어머니의 노래에 박자를 맞춰서 짝쿵 촤라락 쿵착쿵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그 노래의 템포는 운동경기의 주제곡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서정적이고 느려서 언제 흔들고 빠져야 할지 난감해지곤 했다.
“아버지.”
브레이크 타임이 됐을 때 상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더이상 재수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마자 아버지는 음소거 버튼으로 모든 소리를 지웠다. 그러고는 침묵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화면에서 조던이 감독의 설명을 들으며 코트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고 경기가 재개되어서 선수들이 코트를 누볐고 공을 망 안에 집어넣기 위해 슛—을 했다. 들어가지 않아서 다시 슛—을, 잘 되지 않으니까 튕겨져 나온 공을 다시 슛—하고. 조던이 그렇게 골을 성공시키자 치어리더들이 들리지 않는 환호를 했고 관중이 주먹을 흔들었다. 상수는 그 소리 없음이 무섭도록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안 되겠냐?”
아버지가 한참 만에 물었다. 상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상수는 더이상은 재수를 할 수가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용인에 있는 그 재수학원에서 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의 마름모꼴무늬를 세면서, 어머니는 진짜 어떻게 해서 세상을 떠난 것일까, 일본에 있는 이모네 갔다가 병이 악화되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병이기에 말해주지도 않고 그렇게 오리무중으로 죽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고 싶지 않았다. 1999년에, 유일한 친구였던 은총을 잃은 일을 포함해서 상수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혼자 갇혀서 많은 의문에 답하고 있으면 그 다정한 이들의 죽음에 자기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이 상수를 묶었다.
은총이 있으라.
은총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그렇게 인사했다. 늘 쓰고 다니던 아식스 비니를 벗으며. 그런 은총의 은총 없는 죽음은 어떻게 해도 상수에게 해명되지 않았다. 상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해명의 방식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때 그 사건과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특히 그 모든 비극을 초래한 사람의 얼굴을.
그때는 문제지를 펼치면 매 문항마다 해답을 구하시오,라는 지시문이 나왔지만 그 답이 도무지 구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상수는 -2인지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인지 환태평양지진대인지 반응물과 생성물의 몰 농도가 얼마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다만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만 스스로에게 던졌다. 은총도, 어머니도 상수가 구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럴 때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진땀이 흘렀으며 최종적으로는 울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습니다. 안 되겠어요.”
아버지는 3선에 실패했을 때보다 더 고독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정말 안 되겠냐?” 하고 물었다. 두번째 질문에 상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상수는 도저히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갔다고 상수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거기서 대학에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상수는 거절했다. 그때 상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러면 스포츠를 하거나, 어려서부터 쳤던 피아노로 대학을 들어가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재수를 하는 동안 스트레스로 90킬로그램 넘게 체중이 늘었던 상수로서는 운동으로 대학 가란 말이, 일주일 안에 살을 빼서 런웨이에 서라는 말이나 다르지 않게 들렸다. 상수는 이미 그때 자기 몸 하나도 씻기 싫어서 일주일간 세수도 하지 않는 극심한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양어머니가 아무리 좋은 옷을 사다주어도 다 처박아둔 채 한벌만 내내 입어서 입소생들이 자기를 ‘행려’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부자이든, 유명하든, 뭘 해줄 수 있든, 상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상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을 간파한 아버지는 무섭게 화를 냈다. 그가 내던진 농구공은 탄성이 아주 좋아서 튀어오르며 아버지가 받았던 트로피들—올해의 자랑스러운 동문상, 대한민국 뉴리더상, 전경련 감사패—같은 것이 마구 깨어졌는데, 그것에 얻어맞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 쪽으로 오면 블로킹하기도 하면서 상수는 견디다가 차라리 그 공에 맞아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튀어나가던 농구공이 리모컨을 누르는 바람에 와아—와아—어우— 하는 함성소리를 재생시켜놓을 때는 오래전 어머니가 그렇게 상수를 떠날 줄 몰랐고 상수도 자신이 이렇게 머저리 같은 어른으로 자랄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구도 누구의 불행을 예상하지 못했던 그때가, 달과 뉴욕과 언제 누구와 빠질지 모를 사랑에 관한 애틋한 경계만 있었던 1992년의 어느날이.
그렇게 얻어맞은 상수는 혼자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코뼈가 부러져 있었다. 어렸을 때 형이 휘두른 배트에 맞아 부러진 뒤로 두번째였다.
“혹시 싸우셨어요? 싸움을?”
상수는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아니요, 농구를 하다가.”
“농구를 하다가 부딪혔어요? 누구랑?”
“아니요, 공이 튕겨서.”
의사는 공이 혼자 이렇게까지 튕겼다고요? 하면서도 끝까지 캐묻지는 않았다. 응급조치를 한 상수는 얼굴이 거의 농구공만큼이나 부어서 병원을 나왔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할 사람이 없었다. 그냥 아무 말이라도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얼굴이 욱신거리는 건 욱신거리는 것이지만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난 게 형이었다. 형은 집을 나가서 돈이 필요할 때 외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뭘 하며 사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오리무중이었지만 그리고 상수는 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는 형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형은 전화를 받자마자 개새야, 하고 평소처럼 상수를 불렀다. 상수가 코뼈가 부러졌다고 하자 형은 그러게 재수를 하란다고 한 늬가 잘못이지, 하며 낄낄낄낄 웃었다. 형의 수화기 너머로는 언제나처럼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들렸다. 둘은 서먹하게 몇마디 잇다가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끊기 직전에 형이 “야,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했다. 안 되니까 그냥 말라고.
상수는 우울할 때마다 그랬듯 아무 전철이나 오는 대로 탔고 무턱대고 걸었다. 붕대로 칭칭 감은 채 미라처럼 다니는데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광장에서 월드컵 응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장의 시대였다. 악마도 있었고. 기숙사에 갇혀 있는 동안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이 세상에 펼쳐지고 있었다니! 상수는 자신이 느끼는 단절감과 광장에서의 연대가 너무 불일치해서 피식 웃었다. 천년만년 만에 웃는 기분이었다. 종각의 뒷골목에는 젊은이들이 퍽킹 유에스에이,라고 하면서 응원하고 있었다. 상수는 정말 미국 따윈, 미국에서 가져온 농구공 따윈 엿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수가 어슬렁거리고 있자 웬 꼬마애가 그런 해괴한 상수의 몰골을 보고 있다가 오늘 우리가 이기냐고 물었다. 한국이 어디와 경기를 하고 승률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수는 좀 생각하다가 못 이겨, 하고 대답했다.
“거짓말!”
“정말이야, 못 이겨. 아주 져.”
그러자 아이는 뭐가 그렇게 그게 서운한지 눈을 흘기다가 아저씨나 져요! 하고 앙칼지게 외쳤다. 상수는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싶어서 놀랐는데, 그 사이에 또 한번 아이가 아저씨나 지라구요! 했다. 그 말에 상수의 기분은 가라앉았고 응원인파 속을 고독하게 통과해 아파트로 돌아갔다. 아파트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농구공마저도 깨끗하게 닦여 원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없었고 돌아온 양어머니가 전화로 누군가와 대화하며 트로피를 다시 제작할 수 있을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날 상수는 그래도 재수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코뼈쯤 잃은 것은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파트 앞에 기숙학원의 봉고차가 와 있어서 상수는 그렇게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정말 져버린 것은 자신이었음을 혹독하게 깨달아야 했다.
*
경애는 잘 웃지 않는 편이었지만 상수와 단 이틀을 일하는 동안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었다. 정말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황당함과 의아함이 뒤섞여서 상대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서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고 그래, 아예 말을 하지 말자고 판단했을 때 이미 내부에 차오른 에너지가 갈 곳이 없어서 일단 밀려왔으니 어떠한 방식으로든 터지고 마는 것, 그것이 경애의 웃음이었다. 경애의 그런 웃음은 대머리 총무부장이—경애는 대머리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총무부장이 대머리인 것은 사실이라서 총무부장을 생각할 때면 그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자신에게 영업부로의 전출을 통보하면서 그것이 뭐 대단한 승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원래 홍보부에 있었던 사람이 총무부로, 다시 영업부로 가는 것은 졸가리 없는 이동이지 전공을 살리거나 경력을 인정받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여기서 견디나 저기서 견디나 견디는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경애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 일영은 눈 가리고 아웅이네, 하고 상황을 요약했다. 그 회사는 왜 변한 게 없냐면서. 경애는 3년 전 농성할 때 일영이 그 말을 구호로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었다는 게 생각났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라고 할 때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떼면서 어깨를 애교 있게 뒤트는 게 그 구호의 특징이었다는 것도. 경애는 그 구호를 불법해고 처단하자, 목숨 걸어 투쟁하자, 하는 말보다 더 좋아했다. 처단과 투쟁이라는 단어로는 오히려 회사와 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의 방식은 뭐랄까, 좀더 능구렁이 같고 얄밉고 차라리 노골적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는 않으면서 사람 진 빠지게 뭘 한다기보다는 안 함으로써 지치게 만드는 식이었다. 일괄로 사표를 받았고 그중 40여명에게만 사표를 돌려주지 않았다. 대부분은 사무직이었고 물류센터 직원들과, 회사가 사양길에 접어든 미싱을 접고 프린터나 자동차 부품인 인젝터, 가라오케 음향시설 같은 제품의 생산에 주력하면서 감축하게 된 생산직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표를 돌려받지 못한 직원들은 스스로 사표를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회사를 떠날 수도 없는, 쇠락한 저택을 떠도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게다가 한번씩 무슨 기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명씩 불러 발령을 냈으므로, 적극적으로 농성에 가담하기를 꺼리는 해고자들도 많았다. 끊임없이 헤쳐 모여와, 모퉁이 돌아 선착순 0명을 반복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노조에서는 파업을 위해 투표를 했지만 일부 부서에 해고가 한정되어서인지 부결되었다. 회사에서 40명만 선택한 건 파업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고 그다음에는 해고가 다른 부서로 이어질 것이라고 위원장이 말했지만 결국 농성은 50일 남짓 이어지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실패했다. 그 실패에 대해 생각하면 경애는 마음이 흔들렸다. 실패라는 말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졌다.
일영은 물류팀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임금을 인상해준다더니 일하는 시간을 축소해 결국엔 받는 돈을 동일하게 만든 회사에 항의했다가 답장—사표의 반환—을 영영 받지 못한 경우였다. 그래서 눈 가리고 아웅이다,라는 말을 떠올린 것이었다. 일영은 경애만큼이나 키가 커서 집회에 나가면 둘만 밖으로 겅중 나와 있었다. 경애는 처음부터 일영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여자가 왜 이렇게 키가 크냐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영은 그냥 “야, 가끔 키 큰 거 존나 불편하지 않냐?”라고 말했다.
농성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위계는 있어서 일영과 경애는 밤샘을 할 때 라면을 끓이거나 농성텐트 청소를 한다거나 하는 잡일을 같이했고 그렇게 50일을 보내고 나서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경애와 일영은 말이 잘 통했는데 둘 다 말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둘의 대화는 테이블 위의 강냉이 안주를 무심히 집어먹듯 끊겼다가 이어졌다가 했는데, 경애가 어떤 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일영이 어어, 그거 알아, 어어, 하면 경애도 어어, 알지, 그거, 했고 그러면 다시 어어, 그거, 그게 그런 거지, 하면서 최종적으로 일영이 간단하게 정리하곤 했다. 풍전이 등화라든가, 유비가 무환이네 하는—일영은 맞든 안 맞든 꼭 사자성어를 주어, 동사로 나뉜 1형식 문장으로 바꾸곤 했다. 일영이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조어로 상황을 정리하고 나면 경애는 자신에게 닥친 크고 작은 불행들이 우스꽝스럽게 부스러지는—마치 비스킷처럼—기분이었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
일영은 지금도 두가지 일을 병행했는데, 도시 변두리에 있는 건물의 수도계량기를 검침하는 것과 당일 배송을 하는 쇼핑몰의 물류센터에 다니는 것이었다. 경애가 일영을 좋아하는 건 그렇게 빡빡한 생활에서 일영이 획득한 세상만사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지긋지긋함 같은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살겠다’라고 하는 일관된 당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무던함, 씩씩함과도 연관됐다.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경애가, 팀장인 공상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일영은 어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난다는 말이었다. 상품 출고 요청을 하고 나면 꼭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채근하던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꼼꼼한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습관인 것 같았다고. 위압적으로 굴어서 괜히 ‘덩치’인가 싶었는데 막상 물건 갖다줄 일이 있어서 가봤더니 아주 마르고 목소리도 가는 남자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고. 아무래도 그 남자는 ‘표리’가 ‘부동’할 것 같다는 게 일영의 결론이었다.
경애와 일영은 맥줏집을 나와서 전철역으로 걸었다. 일영은 한겨울에도 노상 가죽점퍼 차림이었고 꽃샘추위가 예고된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경애는 자기 머플러를 길게 풀어서 일영과 자신의 목에 함께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둘은 머플러가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더 가까이 붙어야 했다.
경애가 가다 서서 머플러를 자기와 일영에 맞게 조절했다. 일영에게서는 옅게 땀 냄새가 났다. 경애는 일영이 수도를 검침하러 가는 곳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아주 외진 지역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자기도 대도시의 경계에 그렇게 수풀이 우거지고 인적 드문 장소가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고. 그런 야산에도 사람이 살고 공장이 있으니까 수도는 놓이고 그렇게 놓인 수도는 사람이 사용하고 사용하면 계량해야 하니까 자기가 근처까지는 스쿠터로, 나머지 산길은 걸어가 그 눈금의 숫자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가장 두려운 건 개들이라고 했다. 으레 그런 데에는 개농장들이 있고 거기서 탈출했는지 아니면 유기되었는지 알 수 없는 들개들이 많아서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번 그런 개들에게 쫓겨서 발목을 삔 이후로 일영은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다녔다.
“조선생님이 한번 보자고 하던데.”
전철역에서 헤어지며 일영이 말했다. 경애는 조선생,이라고만 하고 그냥 머플러를 걷어서 개찰구로 들어갔다. 불광역으로 가는 6호선은 17분은 더 있어야 들어올 것이고 경애는 어쩌면 오늘 자기가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공상수에게 쫓기는 꿈을, 그뒤로는 상수가 그렇게 얻고 싶어했던 그 꽃처럼 예쁜 펜들이 따라오고.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뭔가 나은 것이 아닐까, 경애는 다시 한번 생각하다가 나은지 안 나은지를 지금 생각하면 뭐하랴 싶어서 그냥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었다.
상수와 경애는 첫 주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민망함을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마음을 부대끼는 쪽은 주로 상수였고 총무부에서도 한동안 특별한 직무 없이 버려지다시피 시간을 보냈던 경애는 딱히 어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다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꼬투리 잡힐 수도 있으니까.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상수는 경애가 왜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자기가 준 몇가지 서류, 국내 대리점의 분포도나 해외지사의 근무자 명단 같은 것을 올려놓고 읽는지 읽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나 생각했다. 보통 새 업무를 시작하면 책상이나 의자 같은 것을 세팅하고 스케줄표도 붙여놓고 하는데 경애는 가지고 다니는 가방도 풀지 않은 채 저렇게 덩그러니 앉아 있지 않는가. 혹시 기분이 나쁜 건가.
상수는 경애의 태도를 온종일 신경 썼고 이 작은 방에 누군가와, 그것도 어쨌든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이 너무나 신경 쓰여 몸이 굳을 지경이었다. 그럴 때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필요하지만 경애는 놀랍게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들어올 때 고개를 앞이 아니라 옆으로 까딱 인사한 후에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켠 다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달랐다. 상수가 함께 먹자고 하지 않으면 경애는 언제나 회사 구내식당이 아니라 외부로 나가서 밥을 먹고 왔는데 그럴 때는 즐거워 보였고 생기가 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건 담배를 피울 때. 경애는 여전히 창고 옆에서 흡연의 기쁨을 누렸고 상수 자리에서는 그것이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1시가 되고 다시 오후의 그 길고 긴 대기시간, 일—없음이 시작되면 마치 정물화의 화병이나 마른 잎들처럼 고요하게 놓였다.
팀원이 들어오고 나서 부장은 상수를 일주일에 두번씩 열리는 팀장회의에 불렀다. 그것이 상수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는데 유정을 가까이에서 무려 한시간, 부장이 자기 말에 도취돼 말이 길어지면 두시간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상수는 유정에게 하고 싶은 말을 수첩에 적으면서 자기만의 독백 아닌 독백을 늘어놓았는데, 용기가 더 주어진다면 마치 학창 시절 먼 분단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쪽지를 돌리듯 그것을 전달할 날도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는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와 회의 내용이 상수의 뒤죽박죽한 머릿속처럼 뒤섞여 있었다. 키레이데스네, 오오사까, 연료분사노즐, 체리색, 매입, 미국 UL규격 획득, 무인양품, 2014년 4월 8일. 이런 단어들은 상수의 이런 혼잣말을 요약한 것이었다. 예쁘구나, 체리색 원피스가 잘 어울려. 거기에는 있잖아, 우리 오오사까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같이 산 무인양품 스니커즈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혹시 그 스니커즈 아직도 가지고 있니, 버린 거 아냐. 너는 그뒤로 그것을 한번도 신지 않았는데, 나는 신지, 마르고 닳도록 신고 회사를 나왔지. 그런데 잊었니, 우린 사랑했잖니. 상수는 결국 마지막에는 그런 유행가 가사를 생각하며 회의시간에 아주 눈에 띄게 울적해졌다. 그다음 회의에서도 상수의 수첩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이 적혔다. 키레이데스네, 튀번공단에서, 혼또오니, 재킷, 오오사까 도오똔보리, 공장시찰, 라멘, 감속기 2대, 토지구매비, 키무치. 정말 예쁘구나, 그 재킷은 잘 어울려. 너 그 재킷 입었었어, 오오사까 도오똔보리에서 라면을 같이 먹었잖아. 거기에는 김치가 나와서 네가 좋아했지. 하지만 잊었니— 우린 행복했잖니. 그러다 회의가 끝나면 상수는 가장 먼저 일어나 혹시 유정의 눈에 띌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음이 있는 쪽이 언제나 부끄러워지기 마련이었다.
“공팀장.”
어느날 부장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상수를 불렀다.
“회의 때 봤지? 다른 팀장들, 봤잖아. 내가 오더 주는 거 있던가? 다 알아서 물어온다고. 그러니까 팀장이라는 거는 어미 고양이 같은 것이네. 쥐를 물어와야 해. 그래야 냥냥거리는 새끼 고양이들이 먹고살지, 좋다고 반기지.”
부장이 새끼 고양이들이라고 했을 때 상수는 자기 밑에 있는 유일한 팀원인 경애를 떠올렸다. 그런데 상수가 느끼기에 경애는 쥐 같은 것을 물고 오면 반기지 않고 심드렁하게 썰까요, 그럼 어디서부터, 하고 물을 것 같았는데, 중요한 건 자기 팀의 성과는 이제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연말에 형편없는 실적을 낼 것이고 어쩌면 매출이 마이너스가 나오는 팀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상수는 정신을 차렸지만 영업이라는 것이 마음먹는 순간 어디 가면 살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며칠을 어영부영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사이 경애와 약속을 잡아서 팀 회식이라는 것을 하기는 했다.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자 경애는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숯불구이집이었다.
“저는 고기가 없이는 밥을 못 먹어요.”
밖에 나와서인지 경애는 거의 최초로 자기 신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주었다. 경애는 우선 고기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상수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를 숨기는 것은 오랜만이었고 낯선 순간이었다. 상수는 팀장이란, 운명의 공동체를 맡는다는 일이란 이렇구나 하고 실감했다.
“그래서 저는요, 국수도 고기국수만 먹어요. 잔칫날도 아닌데 채소 잔뜩 든 잔치국수 이런 거 완전 싫고요.”
“잔치국수에도 고기 넣는데, 다진 고기를 고명으로 씁니다. 고기를 씁니다. 제가 자취를 꽤 해서 요리를 아주 대장금처럼 하는데요.”
“그런 건 너무 크리스피하잖아요.”
상수는 그 크리스피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싶어 당황했다.
“그렇게 쪼개고 다져서 육향만 겨우 풍기는 거 말고요. 아주 그냥 제대로 푹 완전 고기다 하는 거, 그런 거여야 해요.”
“육향이요?”
“그렇죠. 아주 육향을 그윽하게 풍겨야죠. 고긴데.”
상수는 그렇죠, 고기는 육향이죠, 하고 동의하면서도 회사에서 고깃집까지가 참 멀다고 생각했다.
팀 회식의 목적은 친분을 쌓는 것이었으므로 상수는 식당에 앉아 물수건을 채 뜯기도 전에 허겁지겁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경애에 대한 기억들을 쏟아놓았다. 하지만 경애가 보기에는 상수가 자신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게 대체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같은 팀이 되었다는 건 운명이라는 건가. 그러니 잘해보자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인연이라기보다는 악연에 가깝지 않나, 하고 경애는 생각했다. 상수가 포기하지 않고 올리는 그 수많은 불필요의 사무용품 덕분에 경애는 원치 않은 ‘고민’에 빠져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경애가 하는 일들이란 게 뭐 생각할 것도 없이 프로세스에 맞추면 되는 것이었는데 상수의 그 특이한 요청—은 경애에게 그 많은 사무용품들 사이의 개별성과, 비싸봤자 몇천원 하지도 않는 펜을 불가하다고 매번 거절하는 회사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더 나아가서는 그렇게 원하면 왜 자기가 직접 문구사에 가서 그런 정확하고 구체적인 욕망을 실현하지 않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이 회사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과, 또 이 사회에서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까지 숙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상수는 자기가 팀을 이끌어가고 싶은 방향이나, 팀원으로서 경애에게 하고 있는 기대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경애가 듣기에는 교장선생님의 훈화처럼 거룩하고 판에 박힌 얘기들이었다.
상수와 경애의 대화는 경애가 부러 김을 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점점 템포가 어긋났다. 상수가 말이 빠르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단어를 씹거나 더듬으며 스윙의 리듬을 탔다면,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듣긴 했는데요, 생각해봐야겠는데요,라고 하는 경애의 말은 정박에 가까웠다. 그 둘이 섞여들면 과연 혼돈의 재즈 같은 것이 되어 뭔가 독특한 리듬이 흘러나올지도 몰랐다.
상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라서 어느 해인가 시무식에서 경애가 작은 소동을 피운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경애도 잊고 있던 일이었다. 시무식에서 크게 웃었다는 것이었다.
“있잖아요, 그런데 웃은 게 뭐가 잘못이었나요?”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왜요. 말해봐요. 안 웃긴데 웃었으면 미친년이구요.”
상수는 경애가 갑자기 말한 그 욕설—에 움찔했다가 밀리면 안 된다 싶어서 살치살과 마늘과 양송이를 불판에 수북이 올렸다. 그러면서 문득 약 2분 전에 갖다달라고 한 파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 벨을 눌렀다. 아주머니가 오지 않자 버튼을—, 다시 버튼을— 눌렀다. 올 때까지. 경애는 그렇게 빈번하게 눌러지는 버튼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넓은 홀을 혼자서 담당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허둥지둥 테이블로 왔을 때 말을 건넸다.
“아줌마, 죄송해요.”
“에 뭐요?”
아주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집게를 꺼내 고기를 뒤집으면서 동시에 카운터에 8번 불 빼야 해, 하고 소리 질렀다.
“좀 제이에스라서요.”
“에에, 고기 더 안 하죠?”
아주머니는 그 말을 잘 못 들었는지 빈 그릇을 챙겨 재빨리 사라졌다.
“제이에스가 뭔데요?”
상수가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물었다.
“진상이요.”
상수는 갑자기 마음이 모욕으로, 한순간에 서러운 모욕감 같은 것으로 차갑게 식었지만 오늘이 첫 회식이라는 생각에 육즙이 남은 고기와 함께 그 감정을 꾹 삼켰다. 현재가 이렇게 뭔가 안 맞고 어긋나니까 상수는 과거 이야기에 열중했다. 경애와 상수가 연애 사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로맨스에서도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가. 과거라는 열쇠가 아니면 도무지 상대의 마음을 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모든 로맨스영화에는 유년은 어땠어요, 엄마는요, 친절했나요, 기르던 동물들은요, 하는 물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상수가 말한 그 소동은 시무식에서 한다정 대리가 노래를 부른 일을 가리켰다.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사장은 젊었고 사실 회사 일에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직원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 마치 동네 친구들을 고르듯 마음에 드는 남자직원들을 불러서 점심시간 내내 탁구를 치기도 하고 티타임을 갖는 여직원들 사이에 끼어서 정말 공상수보다도 더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직원들에 관한 정보에도 빠삭해서 실제 그들의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상한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외의 잡다한 사항들, 누군가가 주짓수를 취미로 한다든가, 누구의 아버지가 방송사 PD 출신이라든가, 누구의 조카가 아이돌이라든가, 누가 누구와 사내 연애 중이라든가, 한다정 대리처럼 성악과 출신이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다든가 하는 이색 경력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입력해놓는 건 모두 농담과 짓궂게 굴기, 창피 주기 같은 초등학생이나 할 것 같은 유치한 장난을 치기 위해서였는데, 그날의 시무식에서도 사장은 한다정 대리를 연단에 불러올려 성악을, 이 새해를 여는 희망찬 성악 한곡을 불러보라고 했다.
시무식이라고 한다면 반도미싱의 백구십팔명 직원들이 모두 모이는 유일한 자리였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난데없이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까 당연히 한대리는 당황했다. 그러면서 설마 농담이겠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넘기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사장은 기다렸다. 한다정이 부를 때까지. 그러니까 지금 연단에 올라와서 목도 풀지 않고 꼴로라뚜라라든가, 드라마띠꼬라든가, 리리꼬 같은 성악 창법을 하라는 말이었다. 한대리는 머뭇거렸지만 새해는 왔고 업무는 시작되었고 사장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단상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해서 한대리가 겨우 떠올린 것은 박수를 쳐서 함께 박자를 맞추기도 힘든 이태리 가곡이었다. 그 적막한 강당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한대리의 노래는 희망차다기보다는 어딘가 구슬픈 데가 있었고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위태롭게 들렸다. 음정이 어긋나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모두들 그런 긴장 속에 곧 일어날 가벼운 비극을 기다리는 순간 경애가 웃었고 그러자 노래가 흐지부지 끝났는데, 상수는 그때 그 웃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자신도 웃고 싶었다면서.
“왜요?”
“긴장해서 그런지 그 이태리어가, 내가 뭐 잘난 척하는 건 아닌데요, 내가 좀 하거든요. 그쪽 말을. 많이 틀리더라고요.”
경애는 그때 그 노래가 별로여서 웃은 게 아니었다. 한다정을 곤란에서 구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경애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다정과도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자화장실 한쪽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던 소리—와 공용 냉장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서너개의 젖병으로 다정이 엄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구도 새해 첫날 망신을 당해서는 안 되지만 특히 엄마라면.
“그러니까 일종의 노래 투쟁을 한 거였군요.”
경애가 이야기하자 상수는 경애의 농성 전력을 잘 알고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를 대답을 했다.
“있잖아요, 비꼬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런 것 같은데.”
“박경애씨, 거참, 사람 말 좀 잘 들읍시다.”
상수는 기분이 순간 다운되었고 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내게 이렇게 불친절한가 억울해졌다. 내가 자기 상사가 아닌가. 팀장 뒤에 대리가 붙어도 팀장은 팀장이고, 나 공상수가 경애의 연봉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원래 그렇게 삐딱합니까?”
“삐딱한 거 아닌데요.”
“아니, 나는 옛날부터 기억이 있다, 박경애씨에 대해서 이런저런, 그렇게 말하고 있잖습니까.”
“저도 그게 그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좀 친해집시다.”
“네, 친해지세요.”
상수는 물수건으로 땀을 닦았다가 흠칫 놀라 다시 자기 가방에서 부드러운 콧물 전용 티슈를 꺼내 닦았다. 그리고 식욕이 다 떨어졌는지 아직 살치살 두점이 익고 있는데도 그만 나가자고 했다. 경애는 고기를 깻잎에 싸서 재빨리 입에 넣은 다음 가방을 챙겼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피크타임이라서 잡히지 않고 둘은 하는 수 없이 다시 회사로 걸어가 상수의 차를 타기로 했다. 차도 차지만 둘 다 이런 식으로 회식을 끝낼 수는 없다는 데 합의한 셈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둘은 또 내일 무려 여덟시간을 그 두평 정도 되는 방에서 서로의 기척을 살피며 침묵을 견뎌야 했으니까. 그건 마치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와 배구공 윌슨 같은 관계가 아닌가. 누구 하나라도 파도에 휩쓸려나가면 바다로 뛰어들어 구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화해를 꿈꾸며 상수의 차까지 가기는 갔지만 안타깝게도 경애가 그 차를 타기 위해서는, 보조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20분가량을 버텨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주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경애는 평소에 상수의 책상이 금방이라도 퇴사할 사람처럼 무섭도록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차는 왜 이런가, 생각했다. 뭐가 이렇게 많은가. 결국 자기 자리를 그렇게 결벽증 환자처럼 정리하는 데 골몰했던 건 경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던가. 사실 경애의 책상은 회사에서 가장 혼돈의 상태이기로 유명했고 그 버릇은 아무래도 고쳐지지 않았지만 상수의 자동차도 못지않았다. 상수는 차 안의 누군가와 드잡이를 하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카탈로그들을 뒷자리로 옮기고 트렁크를 오가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정리는 너무 길고 끝이 없어서 경애는 그만 기다리고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갈까 생각했는데, 자동차 안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수의 모습이 애처롭고 가상한 면이 있어서 그렇게 냉정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예의상 같이 치워요? 예? 하고 묻기는 했는데 상수는 안 된다고 했다. 차 안에는 자기에게 중요한 물건들이 많아서 위치를 자기가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경애는 상수가 그렇게 투척하듯 물건들을 아무 데나 쑤셔넣다가는 과연 그 위치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 어차피 내 일 아니니까 네가 하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십오분은 치운 뒤에야 경애는 상수의 차에 오를 수가 있었다. 오르자마자 경애가 맡은 것은 아주 퀴퀴하고 오래된 것들의 냄새 사이로 물씬 나는, 그들의 코트와 점퍼에서 훈향되고 있는 진한 고기 냄새였다. 그 살치살과 채끝과 등심들이 숯불 위에서 구워지면서 냈던 그 냄새는 아주 생생히 둘을 공통으로 묶으며 차 안의 모든 것을 덮었다. 이를테면 상수가 혼자서 그동안 사 먹던 도시락—지금도 트렁크 어느 곳에 찌그려져 있을—냄새, 지방의 휴게소에 들러 간식 삼아 사 먹었던 반건조오징어나 버터구이옥수수 같은 것에서 나는, 그 잔존하는 고독의 냄새를 지웠다.
“박경애씨, 제가 어떤 사람이냐면요. 운전하면서 클랙슨도 한번 안 누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렇게 규칙을 잘 지켜요. 매뉴얼이 뚜렷하지요.”
경애는 그 순간 운전대만 잡으면 세상의 모든 욕설을 내뱉는 자신의 습관을 떠올렸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뭔가 물컹한 것이 발에 닿아서 봤더니 어두워서 색은 판별할 수 없는 실타래들이었다. 경애는 그걸 어디다 치워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발이 닿지 않게 조심했다. 갈등은 이만하면 충분했고 피곤했다. 과연 상수가 모는 차는 도로를 마치 비행선처럼 부드럽게 달렸다. 중간에 경애에게도 한번, 상수에게도 한번, 메시지 알림이 와서 휴대전화가 울린 것 빼고는 아주 조용한 귀가였다. 경애에게 온 알림은 고등학교 때 친구인 미유였다. 너 나한테 털어놓을 일 없니,라는 내용이었다. 털어놓아야 할 것이었다. 며칠 전 산주 선배를 다시 만났다고, 선배는 아무래도 슬프고 아파 보였다고 하면 미유는 유부남들은 다 그래,라고 할 것이었다. 옛 애인들 앞에서는 노상 골골대지, 그런데 그 골골이 백년이다. 상수에게 온 것은 ‘언죄없’의 누군가가 보낸 하염없이 긴 편지였다. 일전에도 보낸 팔로워라서 상수는 이번에는 웬만하면 답장을 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힘이 솟았고 경애를 얼른 집에 데려다주고, 그러니까 경애의 제거, 경애의 없음, 경애의 면제 상황을 만들고 얼른 아늑하고 아무도 없는, 침입이라고는 하나도 받지 않는 자기 방, 뉴서울맨션 4동 209호로 가서 언니라는 존재 전이의 옷을 입고 첫 문장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안녕, 언니야,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오늘은 한 미친년을, 아니, 한 까다로운 영혼을 가진 이와 함께 저녁을 먹느라고 늦었지,라고.
내릴 즈음 상수는 자리를 좀더 경애씨답게 써도 된다고, 그렇게 금방 정리해고 당할 사람처럼 남의 것처럼 무관심하게 굴지 말고 취향대로 꾸미거나 물건을 갖다놓거나 하라고 충고했다.
“정말인가?”
경애는 상수에게 묻는 건지 혼잣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죠. 정말입니다. 우리는 한 팀 아닙니까.”
경애는 답이 없었다. 그 사람은 표리가 부동할 것 같다는 일영의 말을 잠깐 떠올릴 뿐이었다. 경애가 그렇게 수긍하는 듯하자 상수는 더 적극적이 되어서, 내일부터는 우리도 영업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표로 정리해 벽면에 걸어두자고, 자기도 그런 인위적인 파이팅을 절대 좋아하지는 않지만 환경을 그렇게 꾸미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기운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상수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누군가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한 일이었지만 그걸 알 길 없는 경애는 그런 깨알 같은 충고들이 참, 정말 깨알 같다고 생각하면서 네에—라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했을 때 상수는 경애의 책상에 뭔가 변화가 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과연 파이팅과 연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책상에 글귀 하나가 붙어 있긴 했다.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밀턴 『실락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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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의 제목은 동명의 영화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