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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이 있음. brokenname@empal.com
가리는 손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해수면이 어제보다 조금 솟아 있다. 오전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는다. 낮에 시장에서 산 우럭 두마리를 도마로 옮긴다. 칼 쥔 손에 힘을 주자 생선뼈와 근육, 살 으스러지는 감촉이 몸 전체로 번진다. 손아귀 속 떨림이 흐린 원을 그리며 내 몸 가장 먼 데까지 퍼진다.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힌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먼저 미역국에 쓸 육수를 내야 한다. 뼈 국물. 어릴 때 나도 뼈를 고아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중에는 가물치나 미꾸라지처럼 생물을 통째 곤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강릉 분이라 우리 집은 생일에도 미역국에 양지 대신 우럭을 넣었다. 독립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한다. 특히 내 생일과 애 생일에 그렇게 한다.
들통 안 공기방울이 기세 좋게 올라오자 식재료가 저희끼리 부대끼며 몸을 뒤집는다. 대파 줄기 사이로 입을 반쯤 벌린 우럭 대가리도 보인다. 반투명한 눈알이 그새 희게 익었다. 국자로 불순물과 거품을 걷어내며 아이 생각을 한다.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지만 내 아이로 태어난 아이. 다른 데가 아니라 이곳에 온 재이. 아기 땐 이유식 삼킬 줄도 모르고 빨대로 물 먹는 법조차 몰라 일일이 가르쳤는데. 요샌 식탁에서 수저질하는 모습 보며 굵직해진 뼈마디에 새삼 놀란다.
가스불을 약하게 줄이고 육수가 우러나길 기다린다. 적어도 몇십분은 있어야 해 소매를 걷고 개수대에 쌓인 잔설거지를 한다. 칼과 나무도마에 거품을 칠한 뒤 식초로 한번 더 씻고 스테인리스 볼과 채, 접시, 숟가락도 닦는다. 숟가락은 입에 직접 들어가는 기구라 더 공들여 헹군다. 숟가락을 닦을 때마다 맨손으로 아이 입속 만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 애가 어릴 때 손가락에 거즈를 감아 양치해준 기억 때문일 거다.
출산 후 모유 수유에 꽤 애를 먹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에 젖이 돌게 하기 위해 밥을 먹고, 또 밥을 먹고, 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산모용 거들을 입고 양쪽 가슴을 드러낸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 모습과 산바라지 온 엄마가 한달 내내 끓여준 미역국, 집 안을 가득 채운 우럭 비린내 같은 것도. 그땐 내 젖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희뿌연 액체가 꼭 뼈 국물 같았다.
한동안 나 자신이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로 느껴졌다. 이름이 지워진 몇십 킬로그램짜리 영양공급 팩이 된 느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게 격려나 존중의 형태였대도. 영화나 드라마 속 산모는 내색 않던데, 나는 수유가 참 힘들었다. 젖 뭉침에, 유선염증에 유두 끝이 불에 덴 듯 쓰린데,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도 뺄 수도 없어 나도 같이 울어버린 게 몇번이었다. 더구나 돌 무렵엔 이 나느라 잇몸이 간지러운지 재이가 내 젖꼭지를 자주 깨물었다. 어느 땐 하도 세게 물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던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막상 젖을 끊을 땐 아이에게 미안해 조금 울었다. 속이 후련한 한편 우리가 함께 보낸 어느 한 시절이 비로소 끝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아마 재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그렇지만 그땐 나도 어려서 그곳이 이토록 차가운 곳일 줄은 몰랐다.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언어를 택하는 곳이 되리라곤 상상 못했다.
물에 불린 미역을 손으로 꾹 짜 적당한 크기로 썬다. 불에 달군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넣자 사방에 작은 기름방울이 튄다. 손목을 바삐 놀리며 미역을 뒤적인다. 늘 해오던 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과 달리 마음은 아까부터 다른 곳에 가 있다. 낮에 제과점에서 들은 이야기가 계속 신경 쓰인다. 계산대에 케이크 상자를 두고 지갑을 꺼내는데 뒤에서 익숙한 얘기가 들렸다. 손에 케이크를 든 채 서둘러 제과점을 나오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자리에서 뭐라도 반박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 나를 알아봤을 수도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아이 일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으면 어쩌나 후회됐다.
이웃 여자들이 식은 커피를 앞에 두고 얘기한 그 영상은…… 나도 봤다. 지역에서 난리가 난데다 여러 인터넷신문에 실려 모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끝까지 못 보고 고개 돌렸지만, 용기 내 다시 재생 단추를 누른 건 거기 우리 아이가 있어서였다.
—그거 뭐라 그러지? 그런 애도 있던데. ……맞다, 다문화.
—응, 나도 봤어요. 확실히 눈에 띄더라.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동남아라면서요.
—그래? ……뭐가 아쉬워서?
—걔도 한패라면서요?
—댓글 보니까 주동자라던데.
—아니, 걔는 목격자래요.
—그걸 어떻게 믿어. 원래 진짜 보스는 주먹 안 쓰잖아.
—그러게,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
—그나저나 참 큰일이네.
—그렇죠?
—그죠.
—……
—사람이 죽었으니까……
—……
—……
—그죠.
공기 중에 엷은 탄내가 난다. 주걱을 빠르게 저으며 정신을 챙긴다. 미역 가장자리가 희끗하다. 옆 들통에서 뼈 국물을 한 대접 퍼 솥에 붓는다. 촤아아 소리와 함께 연둣빛 기름이 둥둥 떠오른다. 사람들이 말한 그 ‘소문’은…… 나도 아이에게 물은 적 있다. 몇번 망설이다 어렵게 꺼낸 질문이었다. 재이는 한없이 서글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어떻게 엄마마저 그럴 수 있느냐는 듯 침울하게 답했다.
—엄마, 나 아니에요.
나는 이번만은 절대 실수해선 안 되는 시합에 나간 선수처럼 아이를 신중하게 살폈다.
—……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지?
—응, 아니에요. 난 걔네들 알지도 못한다고.
순간 얼마나 안도했는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간 혼자 마음 고생했을 아이를 껴안으며 사과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냉동실 문을 열어 마늘을 꺼낸다. 다진 마늘을 지퍼백에 넣어 격자무늬 형태로 얇게 얼려둔 거다. 그중 한칸을 툭 가르며 시계를 본다.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아이가 보습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한시간쯤 남았다. 불고기는 어제 미리 재워뒀으니, 시간 맞춰 밥 안치고 갈치만 구우면 된다. 아, 그리고 케이크도 있지. 싱크대 양념칸에서 천일염을 꺼내 국에 간을 한다. 그런 뒤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가스레인지 불꽃을 본다. 태곳적 사람들도 저녁에 불을 피웠겠지. 두렵거나, 허기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 지금은 그중 어느 때일까?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가 평온하게 집 안을 채운다. 오늘은 재이의 열다섯번째 생일이다.
*
모유 말고 재이가 처음 먹은 음식은 흰 쌀죽이었다. 젖 뗄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 입에 새싹처럼 작고 흰 뼈가 돋았다. 인간이 가진 뼈 중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난 거였다. 재이는 이유식에 잘 적응했다. 새말 배우듯 난생처음 접한 ‘맛’들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오물오물 생각과 판단이 깃든 얼굴로, 턱 근육을 움직이면서. 생각의 그물짜기, 감각의 실뜨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땐 혼자 힘으로 정말 무언가를 해낸 뒤 양손에 아름다운 레이스를 펼쳐 보이듯 나를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재이, 사람 다 됐네!” 하고 놀려대듯 칭찬해주곤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짐승 만지듯 손바닥에 힘을 실어 쓱쓱 쓰다듬었다.
재이는 잘 자랐다. 통통하다 홀쭉해지길 반복하면서. 가끔은 키워주는 사람 좋으라고 선심 쓰듯 웃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어쩌다 감기라도 한번 앓으면 아이답지 않은 턱선이 생겨 사뭇 청초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제 화농성여드름에 귓바퀴에도 기름이 끼는 나이가 됐다. 재이가 학교에 간 사이, 방청소를 할 때마다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보며 재이가 여전히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다. 탈옥영화 속 주인공이 감방 벽을 조금씩 헌 뒤 그 흙을 주머니에 담아 몰래 버리듯, 재이도 자신의 일부를 끊임없이 버리며 크고 있구나 하고. 재이에게 고마웠다. 나야 삶을 스스로 택했고 별로 후회한 적 없지만 재이가 쐰 공기는 또 달랐을 테니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줄곧 어른이고 재이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문득 재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장화를 벗다 한숨 쉰 일이 기억난다. “쪼그만 게 웬 한숨이냐” 나무랐더니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예요”라 대꾸했던 게. ‘어린이’가 무슨 직업인 양, 막일인 양 말해 어이없었지.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재이 말이 맞는 것 같다. 각 시기마다 무지 또는 앎 때문에 치러야 할 댓가가 이렇게 큰 걸 보면.
재이도, 재이가 재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른 비용이 있었을까? 내가 아는 것도 몇개니 모르는 건 훨씬 많겠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재이는 교회 성가대에 들어갔다. 먹고살기 바빠 초대장을 받고도 기대보다 의무감이 앞섰는데, 막상 무대에 선 아이를 마주하자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위축된 표정으로 또래 속에 섞인 모습을 보니 저 아이가 저 작은 몸으로 벌써 ‘사회생활’을 감당하고 있구나 싶었다. 크리스마스라 교회 안엔 많은 빛이 있었다. 조도 낮은 천장 조명과 가짜 전나무에 감긴 꼬마전구, 성가대가 든 촛대 등 여러 ‘빛덩이’가 멍울멍울 어둠 속을 떠다녔다. 나는 경건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살짝 경도됐다. 아이들은 노래했다.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축축하고 맑은 혀로. 어떤 음은 허공에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다 고꾸라지고, 어떤 음은 누군가의 단독비행을 좇다 기꺼이 함께 낙하하고, 모두가 막 사라진 음의 행방을 신경 쓸 찰나 그 소멸을 위로하듯 여러개의 음이 다시 풍등처럼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아름다운 가교처럼 이어지던 재이의 독창. 재이 목소리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알전구처럼 얇고 투명했다. 높은음을 낼 때 성대 속 필라멘트가 노란빛을 내며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부모도 자식에게 경외감을 느낄 수 있구나…… 네 속의 어떤 것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그중 내가 준 것도 있을까. 만일 그게 네가 가진 것도 내가 준 것도 아니라면 우리 둘 다 모르는 바깥에서 온 것일까? 객석에 앉아 먹먹한 얼굴로 박수쳤다. 그날 네가 얼마나 어렵게 노래를 마친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교회는 내게 늘 안전한 장소처럼 보였으니까. 종교를 갖지 않은 내가 굳이 애를 그곳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돈 버느라 재이 곁에 없을 때 나 대신 누가 아이 옆에 있어주길 바랐나보다. 나와 전혀 면식 없는 신이라 해도.
며칠 뒤 재이는 이제 노래 같은 건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이 ‘역시 넌 좀 특별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게 싫다고.
—왜? 칭찬이잖아.
그때 재이 입가엔 부루퉁한 기운이 서렸다.
—엄만 한국인이라 몰라.
나는 깜짝 놀라 답했다.
—너도 한국인이야.
*
수돗물을 틀자 스테인리스 볼에 뽀얀 물안개가 인다. 손가락을 성글게 벌린 채 천천히 손목을 돌린다. 손가락 사이로 곡식 낟알이 시간처럼 빠져나간다. 쌀뜨물을 하수구에 두어번 흘려보내고 무쇠솥에 쌀을 안친다. 평소 전기밥솥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쌀과 찹쌀을 2대 1 비율로 섞는다. 이 정도면 우리 둘이 두끼 먹는다. 재이도 나도 진밥을 좋아한다. 입맛도 그러려니와 속이 닮아 그럴 거다. 위가 약한 내가 비빔밥을 별로 안 좋아하듯. 젖은 쌀 위에 손바닥을 댄다. 반투명한 밥물이 손등 위에서 고요히 찰랑인다. 늘 반복하는 일인데 밥물 잴 때마다 목숨 재는 기분이 든다.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의 녹슨 수도관을 타고 내 앞에 도착한 물의 이력과 그 물로 씻은 백미, 그 밥이 피가 되는 경로를 상상하게 된다. 이럴 땐 대학 때 접은 문화이론 공부를 마저 할 걸 그랬나 아쉬움이 든다. 아이 아빠를 처음 만난 곳도 전공서적이 잔뜩 꽂힌 책장 앞이었지. 먼 훗날 내가 다시 2년제 영양학과에 들어가 혼자 살길을 찾으리라곤 예상 못하고, 사랑에 빠졌지.
몇년간 공부와 일, 육아를 병행하다 도저히 생활이 안 돼 친정 엄마가 계시는 고향집에 내려갔다. 그땐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머물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엄마 건강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시고 이곳엔 이제 아이와 나 둘뿐이다.
몇년간 시내 중학교에서 일하다 최근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가 정원미달로 통폐합돼 어쩔 수 없었다. 급식지도는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누구에게 먼저 줄지 결정하는 일이라 학교에서 ‘성적’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매달 A4지로 배포되는 ‘이달의 식단’은 전교생 중 어떤 아이도 버리지 않는 유일한 가정통신문이었다. 어떤 아이는 그걸 무슨 카드처럼 책으로 만들어 소중히 갖고 다녔고, 또다른 아이는 비닐 파일에 넣어 책상에 붙여놨다. 먹을 것을 향한 사춘기 아이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 맛없는 걸?
대학 동기 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저도 모르게 내 ‘식판’ 밥을 폄하했을 때 애써 웃으며 답했다.
—애들이 학교에서 무슨 낙으로 살아. 급식 시간만 기다리지. 급식 비우고 매점 가서 또 빵 사 먹고 아이스크림 빨고 그래.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밥 짓는 건 말 그대로 노동이고 어느 땐 중노동이었다. 아주 단순한 요리라도 그 안에는 장보기와 저장하기, 씻기, 다듬기, 조리하기, 치우기, 버리기 등 모든 과정이 들어가야 했다. 수백명의 밥을 차리고 집에 와선 완전 녹초가 돼 정작 나 자신은 컵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영양사는 매일 ‘만인의 반찬투정’을 듣는 직업이었다. 급식 메뉴에 핫도그나 돈가스를 넣어 아이들 입맛에 맞추면 선생들이 꺼리고, 아욱국이나 취나물 등 교사들 식성에 맞추면 아이들이 싫어했다. 예산 문제로 반찬을 검소하게 꾸리면 누군가 내 도덕성을 의심하는 투로 불평해 마음을 다친 적도 있다. 담임 몰래 급식을 들고 나간 남학생들이 단지 반납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식판을 학교 담 너머로 던져 민원이 들어오는 일은 애교에 속했다. 식재료검수서며 거래내역서며 챙겨야 할 행정업무도 많고, 계약직이다보니 급식만족도기간이나 운영위원회 모니터링 시기엔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 주방 상태를 더 꼼꼼히 확인하는데, 한날 아주머니들이 설거지하며 쑥덕이는 소릴 들었다.
—어휴, 피곤해. 왜 저렇게 예민하대?
—놔둬, 여자 혼자 살아서 그래.
—저래서 이혼했나봐.
지금은 환자별 식단을 달리 해야 해 오히려 신경 쓸 게 많다. 밥이 독이 될 경우 환자가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요양병원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많다. 전쟁을 겪은, 전쟁을 아는, 여전히 전쟁 중인 분들이. 여느 무리가 그렇듯 그중에는 좋은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신다. 고집스러운 얼굴로 이상한 식탐을 부리고, 비위를 맞추면 반말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면 훈계하고, 식사 후 아무 일도 할 게 없으면서 새치기하고, ‘찬밥도 위아래가 있다’는 장유유서 정신을 강조하는 분들이 정말로 많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
오래전 당신과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자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 병원 어르신들을 보며 가끔 그 말을 떠올렸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쉽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요약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그 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직업 안정성으로 치면 학교보다 여러모로 요양병원이 나았다. 학교는 계속 사라지는 추세지만 병원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 다만 이곳은 내내 끊임없이 ‘노화’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노후를 생각하면 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연봉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데…… 우아하고 호사스런 말년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청결과 위생에 대한 불안은 자주 일었다. 한겨울, 욕실에서 몸을 씻을 때마다 ‘10년 뒤에도 내가 이렇게 뜨거운 물로 매일 샤워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변기와 이불과 창틀을 지금 수준으로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깨끗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겠구나. 집 정리를 하려면 정리함을 먼저 사야 하듯. 청결도 청결의 관성이 있어 자주 치우는 곳만 살피게 되던데. 얼룩도 계속 놔두면 괜찮아질까? 늙어 노양병원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겠지. 돈으로도 감출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이 있을 테고. 우리 엄마만 봐도 그랬다. 언젠가부터 그 깔끔하던 고향집이 어수선해지고, 엄마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서 좀 심하다 싶게 자주 머리카락이 나왔다. 처음엔 엄마가 기력이 쇠해 집안일을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내 눈에 잘 띄는 얼룩이 엄마 눈엔 안 보인다는 걸 알았다. 시력이 약한 입장에선 먼지를 안 치우는 게 아니라 치울 먼지가 없는 거였다. 게다가 몇년 사이 엄마 오줌 냄새가 꽤 역해졌다. 언젠가 제 외할머니 다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간 재이가 혀 짧은 소리로 철없이 물었다.
—엄마, 화장실에서 왜 토 냄새가 나?
엄마는 그뒤 용변을 보고 나서 화장실에 무언가를 뿌렸다. 엄마가 자주 다니는 어느 건강원에서 산 정체불명 방향제였다. 나는 엄마 오줌 냄새보다 독한 향수 냄새가 더 견디기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겐 엄마와 보낸 몇년이 각별하게 남아 있다. 테두리가 타지 않은, 완벽하게 부친 달걀부침이며, 얼음물에 담근 오이지, 삶은 양배추, 두부조림, 조기로 여름 밥상을 완성하고, 맨손으로 조기를 발라 아들과 엄마 밥에 각각 얹어준 뒤 도란도란 떠든 추억이 애틋하다. 결혼할 때 엄마 속을 썩인 탓도 크지만. 엄마가 재이를 봐준 덕에 나 역시 모처럼 사람답게 자고, 밥도 사람처럼 식탁에 앉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중 하나는 내가 하지 않은 밥이라는 것도 알았다. 부모 밑에 있으니 생각도 게을러지는지 이따금 나는 내 나이를 잊었다. 마흔 넘은 뒤 자꾸 한두살 차로 내 나이가 가물거렸다.
—엄마, 나 지금 몇살이지?
그때마다 엄마는 입에 열개 넘는 알약을 털어넣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네 나이는 네가 좀 세라.
때론 엄마가 낯설게 여겨진 적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생명력이랄까 활달함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웠다. 내 사촌언니 두명이 한달 새 나란히 아이를 잃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집안 죄받았다고 할까 부끄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한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 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자제심과 분별력을 잃었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아버지도 죄받은 거야?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되묻자 엄마는 자신이 못 배우고 무식해서 그렇다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연금으로 근근이 살고 계셨다.
엄마 발인 날 친척 어른들로부터 ‘긴병에 효자 없다는데, 너 고생 안 시키려고 갑자기 갔나보다’라는 얘길 들었다. 그 말은 나를 몹시 아프게 찔렀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정말 단 한번도 한 적 없는지 자문했을 때 쉽게 답하지 못한 까닭이다. 내 효심이 우리의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다. 내 아들 일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음을 실감한 건 재이 초등학교 때 일이다. 크리스마스 행사 전 재이는 성가대 대표 선거에서 세표 차이로 졌다. 한창 클 때 이기고 지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한 투표용지에 좀 모욕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나보다. 사회를 보던 아이가 경솔하게 그걸 또 읽었고 분위기가 싸한 가운데 몇몇이 작게 웃었다고. 재이는 그때 누가 웃나 너무 궁금했지만 몸이 굳어 돌아보지 못했단다. 실은 선거에서 진 것보다 그 웃음소리가 견디기 더 힘들었다고.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듣는데 가슴이 죄어왔다. 그동안 재이 고민을 전혀 몰랐다는 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지해준 절반이 있어도 무리에서 부정당한 느낌이겠지. 선량한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혹시 넌가?’ ‘너였을까?’ 하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시간이 매일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기분이었을 거야. 크고 어려운 숙제가 생긴 것 같은. 그런데 나는 너를 위로한답시고,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는 듯 기껏 이런 말을 했지.
—재이야, 너희 아빤 여기 일하러 오지 않았어.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
언젠가 필리핀에서 온 병원 미화원 아주머니께 “왜 그렇게 무리하시냐?”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 대답했다. 내가 “돈 벌어서 뭐하게요?” 농담하듯 되묻자 그 아주머니가 서툰 한국어로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래야 우리 아들은 한국 여자랑 결혼하죠.
어쩌면 내 마음도 그와 같았을까.
성가대 사건 후 재이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다만 재이가 학원 가는 시간을 좀 늘렸다. 나는 소득 대부분을 아이 교육에 쏟았다. 그게 아이를 지키는 법이라 생각했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재이도 내 뜻을 순순히 따라,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 학급 친구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재이도, 나도, 재이 내면에 무언가가 변했다는 건 알았다. 아이가 속내를 일일이 털어놓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그러면 네가 어디 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기나 한 듯. 겨울이라 주위가 어느새 캄캄하다. 수납장에서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 불에 올린다.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두툼한 갈치 두토막을 조심스레 미끄러트린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사방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콩의 고소함이나 깨의 풍미와는 비교가 안 되는 포식자의 고소함, 남의 살을 먹고 사는 생물의 깊은 고소함이. 은빛 몸통 주위로 황금빛 공기방울이 풍요롭게 자글거린다. 팬에 유리뚜껑을 덮고 갈치 속이 촉촉하게 익길 기다린다. 식탁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엄마 나 버스 탔음. 10분 후 도착.
—응. 조금 늦었네? 밥 다 했어. 얼른 와.
답장을 보낸 뒤 문자창을 닫는데 낮에 열어둔 인터넷 뉴스가 눈에 띈다. 오늘 하루만도 댓글칸의 ‘새로고침’ 단추를 여러차례 누른 뉴스다. 최신순으로 다시 댓글을 정렬하자 주르륵 익숙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진다. ‘급식충들 암 유발’ ‘인성쓰레기’ ‘이래서 삼청교육대 부활시켜야 함’처럼 가해학생들을 향한 비판과 저주가 대부분이나 개중에는 ‘노인네도 노답’이라든가 ‘나는 쟤들 심정 이해됨’ 같은 반응도 있다. 그런데 그중 시선을 끄는 댓글 하나가 보인다.
—K시 중학생 노인폭행 동영상 노모 버전. 신상 공개. 널리 배포해주세요.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 영상은 아직 뜬 적 없는데. 거기 우리 아이 얼굴도 나올 텐데…… 안 되는데…… 동영상을 내리려면 어떻게 하지? 어디다 말하지? 식탁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영상을 클릭한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재이가 나오는 부분을 여러번 돌려본다. 자세히 본다.
재이와 나는 그 영상을 경찰서에서 처음 봤다. 8분 42초간 둘 다 아무 말 않고 숨죽인 채 봤다. 편의점 앞에 주차된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이었다.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화면만으로 충분히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노모 버전’ 파일은 그때 본 영상과 같다.
남자 셋, 여자 하나. 십대 아이들 네명이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있다. 탁자 위에 불닭면 용기와 캔 콜라, 탕수육맛 스낵 봉지가 보인다. 한 노인이 폐지 실린 유모차를 끌고 지나간다. 무리 중 한 녀석이 노인에게 다가가 오천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뭔가 흥정한다. 노인이 뭐라 고함치며 삿대질한다. 그러곤 유모차에 종이박스를 싣고 걸음을 옮긴다. 무리 중 대장처럼 보이는 아이가 농구대에 3점슛 넣는 자세로 유모차에 빈 담뱃갑을 던진다. 재이 증언에 따르면 ‘담뱃갑도 종이니까, 폐지에 보태시라’는 뜻으로 그랬단다. “그 형이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담뱃갑은 허공에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다 노인의 뒤통수를 맞고 튕겨져 나간다. 노인이 노여운 얼굴로 돌아보고, 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 녀석이 노인에게 무슨 말을 내뱉자 다른 아이들이 일제히 깔깔댄다. 흥분한 노인이 여자애의 머리채를 잡는다. 대장 아이가 노인에게 발차기를 날린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맞은편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재이가 보고 있다. 노인은 발길질 한번에 힘없이 픽 고꾸라진다. 아스팔트 위로 나동그라진 채 몸을 부르르 떨다 꼼짝 않는다. 한 녀석이 노인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얼굴을 살핀다. 그러곤 나머지 세 아이를 향해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한 녀석이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저 멀리 목격자인 재이와 눈이 마주친다. 재이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 돌린다. 아이들이 주춤거리다 재빨리 자리를 뜬다. 재이도 곧 화면 바깥으로 사라진다. ……사라졌는데, 사라졌다, 약 50초쯤 뒤에 다시 등장한다. 영상을 본 많은 이들이 이 부분에 꽤 집중했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을 하려는 거지? 아깐 겁이 나서 가만히 있다, 뒤늦게 노인을 구하러 왔나? 재이가 천천히 사각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곤…… 조심스레 인형뽑기 기계 앞으로 가, 방금 전에 두고 간 라이언 인형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몇분 뒤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온 편의점 청년이 노인을 발견한다. 청년은 깜짝 놀라 어딘가에 급히 전화한다.
블랙박스 영상을 본 재이는 좀 당황한 듯했다. 기껏 돌아와 인형이나 챙겼다고, 훗날 욕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아직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재이가 그날 일로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거였다. 어느 땐 무언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본 사람이 더 상처 입으니까. 전쟁을 겪고, 전쟁을 아는, 요양병원 어르신들이 자주 얘기하는 ‘폭력몸살’ 같은 것을. 조사관은 몇가지 간단한 사실을 확인한 뒤 우리더러 집에 가보라 했다. 예상보다 싱겁게 끝나 긴장한 게 허무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 대수롭지 않은 투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 참, 그런데 왜 신고 안 했니?
재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조그맣게 답했다.
—실은 제가 그날 학원 수업을 빼먹어서…… 들통나면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았거든요.
그 말은 내 가슴에 묘한 얼룩을 남겼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요일엔 학원 수업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순간 왜 아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다. 보복이 두려워 그랬대도 이해할 텐데. 재이는 왜 그때 거짓말을 한 걸까.
*
현관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난다. 폴리에스테르 소재 점퍼가 바스락거리는 기척과 함께 쿵쿵 다급한 발소리, 화장실문 닫히는 울림도 전해진다. 집이 낡아 양변기에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부엌까지 다 들린다.
—어? 이거 무슨 냄새야?
재이가 젖은 두 손을 바지춤에 쓱쓱 문지르며 다가온다. 재이 몸에 바깥공기의 비릿한 활기와 냉기가 묻어 있다.
—엄마가 뭘 좀 태워버렸네.
—어? 갈치네? 나 갈치 좋아하는데.
—그러게. 한마리에 2만원이나 준 건데. 엄마가 깜빡했어.
재이가 제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저녁상을 차린다. 궁중팬에 불고기를 붓고, 미역국을 데운다. 긴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뒤적이다 민첩하게 식탁에 수저를 놓고, 배추김치를 꺼낸다. 재빨리 가스레인지 앞으로 돌아가 불고기를 살피고, 밥을 푸고, 미역국을 담는다. 흰밥 봉분을 예쁘게 쌓고 재이 국그릇에 특히 우럭 살이 많이 들어가도록 신경 쓴다. 갈치구이가 빠진 게 영 서운하지만 아쉬운 대로 포장 김을 뜯어 접시에 올린다. 아무리 바빠도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접시에 담으려 노력하는 건 내가 부모 세대와 반발짝 다르게 사는 법이다. 말은 반보라지만 실은 결정적으로 다르게 사는 법. 그나마 주거비가 덜 들어 생긴 여유일지 모르나 평소 재이에게도 음료를 병째 마시지 말고 컵에 따라 마시라 잔소리한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나중에 큰 걸 지켜주기도 한다고. 오목하고 넓은 접시에 불고기를 수북 담으니 오늘 저녁 밥상이 다 완성됐다. 앞치마를 벗고 식탁에 앉는다. 두 사람이 마주한 4인용 식탁 위로 아스라한 김이 너울거린다.
—먹자.
—응.
재이가 의욕적으로 불고기를 향해 돌진하다 어쩐 일인지 머뭇거리며 예의를 차린다.
—엄마 먼저 들어요.
순간 헛웃음이 나 긴장이 좀 누그러진다.
—우리 재이, 사람 다 됐네.
겨울밤, 습기 찬 주방에 짤그락 따다닥 젓가락에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이어진다.
—엄마.
재이가 부러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갈치를 태워서.
재이가 피식 웃는다.
—난 또 뭐라고.
재이를 따라 웃으면서도 내 시선은 재이의 손, 어느새 뼈마디가 굵어진 손등 언저리로 향한다. 아기 땐 포동포동한 손등 위에 보조개 같은 홈이 패어 있었는데. 제 손이 제 것인 걸 믿지 못해 자꾸 입에 넣어 빨고.
—재이야.
—어?
—미역 많이 먹어. 뼈에 좋대.
아이가 선크림을 잘못 발라 하얗게 뜬 얼굴로 상긋 웃는다. 재이는 언제부턴가 선크림을 과하게 발랐다. 오늘처럼 비가 올 때도, 저녁 늦게 외출하는 날도 잊지 않았다.
—엄만 뭐 만날 다 좋대. 마늘은 어디 좋고, 양파는 어떻고.
재이가 까부는 걸 보니 재이가 재이처럼 느껴져 가슴 깊이 친밀한 기운이 인다. 이 아이, 아기 땐 밥상 앞에서 늘 조잘조잘 높은 소리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는데. 짧은 어휘력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유예하느라 말끝마다 ‘어’ ‘어’ 이음새를 넣던 바보 같은 습관도 어여뻤는데. 언제 이렇게 자라버린 걸까. 짧은 감상에 젖다, 아이와 실없는 얘길 나누는 게 좋아 부러 화제를 만든다.
—전에 학교에서 보니까, 조회 전에 애들 하나도 안 떠들더라? 교실 불도 안 켜고 다들 엎드려 스마트폰만 하던데. 너도 그러니?
—어, 그거? 불 켜면 액정 잘 안 보이잖아. 귀찮기도 하고.
—그래도 공부가 돼?
—그러니까 걷지.
—누가? 선생님이?
—핸드폰도우미가.
—그런 게 있어?
—어, 되게 많아. 분리수거도우미, 과제도우미. 그거로 점수 받고.
재이가 호로록 미역을 삼키다 입에서 잔가시 하나를 스윽 빼낸다.
—엄마도 급식도우미 알잖아?
—잘 알지.
스마트폰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가 속한 세상이 괜히 염려되지만 참고 내색 않는다.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에,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보는 정도나, 가끔은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24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것 같아.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불안했다. 지금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굳이 ‘옥상으로 올라와’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니까. 아이가 나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실은 누군가에게 얻어맞으며 피 흘릴지 몰랐다. 재이는 틀림없이 이런 나를 고루하다 할 테지만.
—엄마.
—응.
—아빠랑 왜 헤어졌어?
아이의 새삼스런 질문에 당황하지 않으려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전에 말해줬잖아.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
재이가 내 앞에서 짐짓 어른인 척 사회적인 표정을 짓는다. 마치 자신이 사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듯.
—나 때문이야?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말해줘. 생일선물로.
……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들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경외와 오해를 동시에 품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너무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피곤하면 자리에 눕기 위해 벗어 던지는 모자처럼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대신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다 온전한 참도 거짓도 아닌 말을 던진다.
—아빠랑 왜 헤어졌냐고?
—응.
—음…… 생각이 달라서?
재이가 뜻밖에 가벼운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훈계조로 읊는다.
—그럼 토론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녁상을 치우고 베란다에서 케이크를 내온다. 웬만한 제과점에 다 있는 고전적인 모양의 생크림케이크다. 빵 테두리를 장식한 생크림 방울 끝이 날렵하게 여며진데다, 설탕물을 입힌 키위와 딸기, 감귤이 알록달록 플라스틱처럼 반들거린다.
—초 켜고 노래할까?
—싫어. 그런 거 하지 마, 하지 마.
—그래도 초는 켜야지.
케이크 상자 위에 붙은, 넓적하고 긴 종이봉투에서 파스텔빛 초를 꺼낸다. 가느다란 꽈배기 기둥 하단에 은박지가 감겼다. 초 한개에 한살, 모두 열다섯개다. 부드러운 스펀지 빵 안에 깊숙이 초를 꽂는다. 해마다 아이 생일 초를 밝힐 때면 기쁘고 엄숙한 마음이 든다. 긴 하루가 모인 한해, 한해가 쌓인 열살이 얼마나 고되고 귀한 시간인지 알아.
—어? 왜 성냥이 없지?
종이봉투를 뒤집어 손바닥에 대고 턴다. 제과점 주인이 깜빡한 건지, 낮에 내가 너무 당황해 잊고 온 건지 알 수 없다.
—그럼 딴걸로 붙여.
재이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한다.
—……어디 있지?
식탁에서 몸을 돌려 싱크대 서랍을 뒤진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며 이쑤시개, 병따개 따위를 넣어놓는 칸이다. 언젠가 여기서 라이터를 본 것 같은데.
—없어?
—이상하다.
신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겨 공구함을 뒤진다. 목장갑과 노끈, 망치 사이에 정전 시 쓰려 사놓은 비상용 양초가 보인다. 그렇지만 그 안에도 성냥은 없다.
—아이고, 참 무슨 집에 불 밝힐 성냥 하나가 없니?
—그럼 그냥 놔둬, 엄마. 어차피 끌 불인데 뭐.
—아니야, 그래도 초 켜고 소원 빌어야지. 너…… 라이터 가진 거 없니?
—뭐?
—있으면 줘봐. 뭐라 안 할게.
—그런 거 없거든.
성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채 수납함 속 전단지를 들추다 불쑥 이런 소리를 내뱉는다.
—재이야.
—응?
—내일 엄마랑 그 할아버지…… 장례식에 가보지 않을래?
그동안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와 나도 놀란다. 그리고 어쩌면 온종일 내 마음이 그렇게 무거웠던 건 아이에게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
—그렇게 하자. 엄마는 재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 해줬으면 해.
—……
—우리 아들, 죽은 사람한테 절하는 법은 알아?
—……
—여기 이렇게, 밥 먹는 손을 가리는 거야.
—……
아이 앞에서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으며 어색한 시범을 보인다.
—엄마도 예전에 늘 헷갈렸거든. 실수할까봐 긴장하고. 그런데 이렇게 외운 뒤로 안 잊어먹었어. 밥 먹는 손 가리는 손, 밥 먹는 손 가리는 예(禮)…… 하고. 아 참, 엄만 너랑 반대고.
재이가 한참 자기 발끝만 바라보다 가까스로 입을 연다.
—생각해볼게.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가 짠하고 고맙다.
—그래, 그러자.
순간 재이 몸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재이가 발신자를 확인한 뒤 슬쩍 제 방으로 들어간다. 부엌에 홀로 남아 아들 생일 케이크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 그랬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그랬죠? 눈부신 카메라플래시와 더불어 쏟아지는 질문에 점퍼를 뒤집어쓴 아이가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할아버지를 해칠 맘은 전혀 없었다고. 할아버지가 먼저 우리에게 욕을 했다고. 우린 그냥 그 할아버지에게 ‘교훈’을 좀 주려 한 것뿐이라고. 그 어르신은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을 거두셨다. 오래전 연이 끊긴 자식들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자식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해 장례는 ‘무연고 장례’로 치러질 예정이라는 걸 나도 오늘 기사를 보고 알았다.
—누구야?
—그냥 아는 애.
재이가 휴대전화를 제 바지주머니에 넣으며 앞에 앉는다.
—학교에서 애들이 뭐라 하진 않아?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말하는 재이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서린다.
—안 되겠다, 불 가스에 붙여야겠다.
생일 초를 하나 뽑아 들고 가스레인지 앞으로 간다. 틱틱틱틱 불을 켜며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꽃을 가만 응시한다. 태곳적 사람들도 저녁에 불을 피웠겠지. 두렵거나, 허기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 불 붙은 양초를 들고 케이크 앞으로 간다.
—근데 너 라이언 인형이 그렇게 좋아?
아이 얼굴이 살짝 굳는다.
—어? 왜?
손에 든 초를 비스듬히 기울여 다른 초에 불을 붙인다.
—네 방에 똑같은 게 세개나 있어서.
—좋아해서 뽑은 거 아니야. 그게 가장 많아서 뽑게 되는 거야. 많으니까 잘 뽑히고……
초 끝에서 실오라기 같은 그을음이 피어오른다. 천천히 다음 또 다음 초에 빛을 옮긴다.
—그래?
—……
열다섯개의 초가 몸을 떨며 주위를 밝힌다. 멍울멍울 노란 불꽃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흰 촛농이 우리 앞에서 빠른 속도로 뚝뚝 흘러내린다.
—근데, 동영상 아직 다 안 내렸던데.
—엄마가 사이버 수사대에 전화해봤는데 원본은 내렸지만 복사본이 도는 거라 시간이 좀 걸린대.
모자이크가 지워진 영상에 드러난 재이 얼굴엔 당황하는 티가 역력했다. 처음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어느 순간 한 손으로 입을 막는데 동공이 크게 벌어져 그 장면만으로도 재이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에 소리 안 나오잖아.
—응.
—중간에 걔네들 자기들끼리 막 뭐라 하며 웃던데, 뭐라 그러는 거니?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아이 입가에 천진한 흥미랄까, 아는 체랄까 묘한 기운이 어린다.
—틀딱?
그러곤 아차 싶은지 재빨리 미소를 거둔다. 마치 소중한 비밀처럼.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보물인 양 얼른 감춘다. 나는 아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아이가 이상한 말을 뱉어서가 아니라 방금 저 표정을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그런데 어디지? 어디서였지?
—그게 무슨 말이니?
—어, 그냥 애들끼리 하는 말이에요. 엄마, 우리 초 안 꺼요?
아이가 서두르듯 벌떡 일어나 부엌 등을 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 아이와 나 사이에 노란 불빛이 그윽하게 일렁인다. 불빛 아래서 우린 왜 조금씩 달라 보일까. 이제 정말 소원을 빌 시간이다. 초가 꺼지면 박수칠 준비를 하며 숨을 고른다. 재이가 눈을 감은 채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그런데 그걸 본 내 속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웃음 고인 아이의 입가를 보니 목울대가 매캐해지며 얼굴에 피가 몰린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저 오른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당장 영상 속 장면을 돌려보고픈 욕망을 누르며 마른침을 삼킨다. 정말 그렇다면, 재이가 그렇게 자랐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을 뜬 아이가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곤 가슴팍을 크게 부풀려 숨을 모은 뒤 초를 향해 훅 입김을 분다. 초가 꺼지자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재이의 얼굴을 찾으려 나는 꼼짝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