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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문재인정부와 시대전환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에서 길을 찾아야

 

 

정현곤 鄭鉉坤

정치학 박사,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 편서 『변혁적 중도론』 등이 있음. jhkpeace@empas.com

 

 

 

 

문재인정부 출범 불과 나흘 후인 2017년 5월 14일, 북한은 ‘신형 중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고도 2111.5킬로미터로 솟아 대기권을 벗어난 후 다시 진입하였고 도합 787킬로미터를 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고각발사체제’로 진행한 점에 비추어 정상각도라면 5000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북 스스로는 중장거리미사일(IRBM)로 표현했지만 이는 미국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의식한 것으로, 사실상 북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가장 근접한 결과로 보인다. 그간 북이 ‘미사일 발사 →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 핵실험’의 패턴을 보여온 점에 비추어보면 이번 미사일 발사에서 6차 핵실험의 징후도 읽을 수 있다.

사실상 핵무기국가로 전환한 북 앞에서 평화는 위태로워 보인다. 이 위기는 새 정부 앞에 놓인 과제이기도 하다. 북의 미사일 발사를 보고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보여줘야 한다”1고 말했다. 트럼프(D. Trump) 미국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특정한 상황’을 의식한 것만 같아 씁쓸하다. 다시금 남북의 엇박자가 재연되지 않을지 참으로 아슬아슬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북의 경제·핵 병진노선의 생존법과 한계

 

현재의 북한을 읽는 중요한 잣대는 북이 어떻게 핵과 경제의 동시병행전략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은 북한의 핵심 국가운영 노선으로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식화된 이후 현재까지는 순조로워 보인다. 북 스스로는 “새로운 병진노선의 참다운 우월성은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2고 말하고 있다. 실제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하는 비대칭전력, 그리고 공군과 방공부대 등 일부 선별적 재래식 전력으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북이 지속적으로 ‘핵무력’을 강화해왔고 새롭게 재편되는 군사체계에도 추가비용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비 감축 효과는 확인되지 않는다.3 그럼에도 이 노선이 유지되는 이유는 경제·핵 병진노선의 목적이 ‘계획과 시장의 공존 심화’를 통한 인민생활을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4

북한의 시장은 ‘장마당’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견디게 해준 자생적 생필품 교환의 장소였고 남북 화해·협력의 시절이었던 2003년에 ‘종합시장’ 허용조치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에 의한 ‘계획’ 부문과 민간의 ‘시장’은 상호 공존하면서 각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장치가 되었다. 한때는 국가통제 회복을 목표로 한 반개혁적 통제가 있기도 했다. 2005년부터 강화된 상설시장 축소 정책과 2009년 11월 통화 강제회수 조치의 일환인 화폐개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는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이완되었고 시장은 여러 개혁조치들과 함께 다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도 통용되는 2014년의 ‘5·30조치’가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조치는 농장과 공장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시장에서의 판매 행위를 합법화하고 있다. 시장은 생산을 자극하고 더 많은 물품을 유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2016년 북한 시장에 나타난 눈에 띄는 특징은, 시장가격의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가격의 안정세가 눈길을 끄는 것은 2016년 한 해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추가적으로 이행되었으며, 통상적으로 외부의 경제제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시장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5

그러나 북의 경제·핵 병진노선은 제한적 생존법이다. 그것은 첫째로, 북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고도화된다 해도 그것으로는 실생활에 도움을 얻을 바가 전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더군다나 ‘위협받는다’는 자의식이 계속되는 한 북한의 자원이 국방에서 경제로 더 많이 돌려지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둘째로, 그러하기에 경제·핵 병진노선이 계획·시장의 공존과 병행해 생존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그야말로 목숨 부지이지 더 잘살게 되는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셋째로, 핵을 끝까지 가진 채로 개방과 개혁에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핵 보유의 딜레마를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상호 위협에 도달한 북미관계의 해법은 대화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 압박과 개입’이라 하여 대북 군사행동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협상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찌 되었건 미국 외교의 최우선 대상으로 북핵 문제가 이슈화된 셈이다.6 그렇다면 이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해온 북한의 성공이기도 하다. 협상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상호 위협의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상호 위협의 실체는 서로에게 증명되기까지 긴장을 고조시킨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 군사적 시도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이 B-52 핵전략폭격기를 출동시킨 것이나 북이 사거리를 늘려가는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앞으로도 이러한 군사행동은 감행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이 ‘상호 위협 인식과 위협감소행동’에 동의했던 역사에 비추어보면 지금 상황은 좀더 실제적이다. 협상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상호 위협 인식과 위협감소행동’을 규정한 미국의 정책서로는 ‘페리보고서’가 있다. 여기서 미국은 “상호 위협감소에 기초하여 북한과의 협상을 개시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북한이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압력의 포괄적 완화를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7 당시 미국이 느낀 미사일 위협은 1998년에 발사된 사거리 2500킬로미터 수준의 대포동1호였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북미대화와 관련하여 북이 내걸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2013년 6월 16일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다. 여기서 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명백히 언급하면서 미국과의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기하면서 그 의제로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건설’ 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제안했다. 지금 이 정도라도 환기된다면 다행이다.

북미대화는 암초투성이다. 원용할 것은 2005년의 9·19공동성명이겠지만 그간 북한과 미국이 연관된 여러 협상들은 그 골격이 동일하다. 최초의 협상이랄 수 있는 1994년 10월 21일 북미 간 제네바합의의 경우, 북의 핵시설을 ‘동결’하고 이를 경수로 원자로 건설 지원으로 ‘보상’하면서 북한과 미국 간의 수교협상을 진행하자고 되어 있다.8 2000년 10월의 ‘북미공동코뮤니케’는 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하면서 더 나아가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 4자회담 등 여러가지 방도가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공약을 확언”했다. 또한 클린턴(B. Clinton)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위해 올브라이트(M. Albright) 국무장관의 방북을 명시하여 수교협상의 실제를 보여주었다.9 긴장관계의 현안을 해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수교로 가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행되지 못했다.

다시 논쟁의 대상은 9·19공동성명 1항에 담긴 ‘북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폐기’의 상호 보장책, 그리고 2항에 담긴 ‘북미관계 정상화’가 될 것이다. 일괄타결 방식으로 한다면 핵무기 제거와 북미수교 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이 교환대상이다. 이 협상을 끌고 가는 입구에 있는 것이 북에는 ‘핵개발과 미사일훈련의 동결’이고 미국에는 ‘대북 안전보장’이라는 초기 이행조치이다. 이때 북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의 폐지를 거론할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에 대해 ‘핵무기 해체가 아닌 동결만으로 방어훈련을 어찌 중단하느냐’ ‘등가교환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동결’은 국제 감시기구가 관여하는 것이므로 부등가교환은 아니다. 그리고 적어도 미국이 이를 의제로 삼는다면, 이 시점에 한국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북미대화는 위기고조와 대화의 재개라는 반복 속에서 끈질긴 인내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 직접대화가 6자회담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 북미대화의 어느 언저리부터는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다만 6자회담을 바로 열기보다는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할 남·북·미·중의 4자회담을 먼저 개최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4자평화회담에서는 정전협정을 다루어야 하므로 핵심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남북은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에서 이 문제를 합의한 바 있어 유리한 입장이다. 6자회담이 열리면 북미 양자대화, 남·북·미·중의 4자평화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6자의 이름으로 확인하고 그 이행을 함께 약속해가면 된다. 그리고 이 틀에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문제도 계속해서 논의해가면 좋을 것이다.

 

 

사드는 안보 사안보다 정치 문제로 접근해야

 

현재로서는 한국의 협상 지분이 극도로 약화되어 있다. 특히 2016년의 개성공단 폐쇄가 결정적이었다. 북을 끌어들일 지렛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취약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선택이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다. 사드 배치는 전형적인 분단체제의 산물이다. 북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이 한반도와 아시아에 개입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국내의 수구보수세력은 여기에 편승한다. 사드는 도입과 배치 자체로 안보위기를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사드 배치는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북은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다시 무기체계를 고도화한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민주적 소통은 봉쇄되고 국가의 자원은 수구보수에 유리하게 배치된다. 안보위기가 민주주의 후퇴, 경제불평등과 연결되는 것이다.

두대의 사드 발사대와 레이더 배치는 도둑질하듯이 이뤄졌다. 지난 3월 6일 늦은 밤 급작스럽게 오산의 미 공군기지로 이송되었고 4월 26일 새벽 성주군 소성리로 몰래 진입해 들어왔다.10 촛불대선 국면에서 보수심리를 자극하고 집결시키려는 정치기획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드는 안보 사안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안에 가깝다. 수구세력은 사드 이슈를 통해 합리적 보수를 포획하고 있다.

사드의 일반 요격 능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적합한 무기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드의 요격고도는 40~150킬로미터인데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북의 장거리 방사포나 단거리미사일은 이보다 낮은 고도로 매우 짧은 시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사드 도입의 근거로 주장되는 중장거리미사일의 고각발사의 경우라도 속도 문제가 있다. 사드 미사일은 마하 8.17의 속도로 알려진바, 마하 12의 낙하속도를 가진 ICBM급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래급의 경우에도 요격을 자신할 수 없다. 진정으로 북의 미사일을 방어하고자 한다면 다른 무기체계를 찾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사드의 이런 내용은 합리적 토론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사드의 효용성에 대해 논하려고만 해도 ‘북한의 위협을 무시하는 거냐’고 달려드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사드 문제를 풀자면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좀더 과학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합리적 보수를 천명한 ‘바른정당’도 객관적으로 사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에 대해 과학적인 논의가 가능한 환경이 되려면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한미 정상 간에 ‘위협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자’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사드 배치 재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조건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에서 나올 내용으로 기대해본다. 이런 조건이 되면 사드가 국회에서도 논쟁 대상이 되고, 여러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드 ‘철회’가 아니라 사드 ‘토론’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미흡하지만 이것이 현재 기대할 수 있는 한반도 정치환경이다.

 

 

남북관계에서는 담대한 제안이 필요하다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한다고 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북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과거보다 무척 어렵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렇다고 함께 핵개발을 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자는 것은 이 좁은 한반도 땅에서는 그 자체로 일상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어질 일본의 핵무장은 또 어떤가. 해답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박과 북의 핵개발 시도가 초기 단계에 있었던 시기에 우리 시민사회 내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가 대안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남북한과 일본이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고 핵보유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소극적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3+3 모델이 그것이었다. 비핵국가가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지 않겠다’고 하고, 핵 보유국은 ‘핵무기 사용 및 사용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국제법으로 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우려하는 미국의 핵우산 문제와 핵무기의 재반입 및 일시통과 문제도 풀 수 있어 북을 설득하는 게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미국의 입장이 관건이었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북이 핵무기국가로 편입되는 구도가 아니라 북이 비핵국가로 이동하게 하는 보장책으로 다시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동북아 비핵지대화 구상은 북핵을 앞에 놓고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우리에게 중요한 위안이 된다. 북핵 문제도 풀 수 있다는 적극성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바탕 위에서 남북관계는 출발해야 한다.

오랜 남북관계 경험이 내놓은 프로세스가 있다. 민간이 먼저 움직여 남북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동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북관계 재개의 신호를 만든다, 그리고 점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를 다루는 당국 간 협의를 만들자는 프로세스가 그것이다. 응당 합리적이다. 그러나 군사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관계에 치일 가능성이 크기에 좀더 과감하게 10·4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이라는 주제를 놓고 출발했으면 한다.

10·4선언이 중요한 이유는 4자평화회담을 끌고 가는 남북협력 전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남·북·미·중 정상들의 ‘종전선언’이다. 2007년 당시 남북의 정상은 ‘종전선언’의 주체를 3자 또는 4자로 표현하여 중국을 견제했지만 지금은 명백히 4자로 정리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이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4자평화회담 성사가 가능하다. 종전선언은 1953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환이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에 복무하게 된다. 말하자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동시이행 모델이다. 중요한 점은 북이 핵무기를 확보했다고 해서 ‘비핵화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지금 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회담에 들어가면 비핵화 문제는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10·4선언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개성공단 확장, 해주공단 신설 등의 구상을 담고 있기에 전략적이다. 이에 따르면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운영하기로 되어 있다. 또한 개성공단을 2천만평으로 확장하고, 북쪽으로 더 올라가 해주공단을 건설하기로 되어 있다. 이는 남북의 경제협력을 전면화한다는 점에서나, 고질적인 서해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긴요하다고 하겠다.

 

 

체제공존형 평화체제를 새로 짜야 한다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공존·번영하는 남북관계를 목표로 한다면 근본적인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질문은 ‘북한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누구냐’는 것이다. 이 물음은 북이 그토록 강조하는 ‘체제 인정’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북의 입장에서 그 정답은 군사위협을 가하는 미국이 아니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남한의 사회체제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접촉하고 교류하여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대북정책은 우리 입장에서는 선의일지 몰라도 북에게는 결국 흡수통일정책으로 이해된다. 이는 포용정책이 가진 한계이다. 실제로 교류협력의 성숙이 남북연합으로 전환된다는 전제는 맞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방향은 ‘교류협력 → 남북연합’이 아니라 ‘남북연합 → 교류협력’으로 전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류협력에 앞서 그려지는 남북연합은 어떤 것인가? 응당 교류협력의 완숙한 단계는 아니다. 오히려 교류와 협력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국가의 기능이 성숙된다는 의미가 크게 부각된다. 10·4선언과 대비해본다면, 남측은 교류협력의 전면화를 상정했겠으나 북측은 국가가 관리하는 교류협력 규모의 증대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남북연합 → 교류협력’으로 전도된 수순은, 그럼에도 남북연합의 관리하에서 교류협력이 점진적으로 전면화될 것을 예고한다. 이 속도는 북의 체제 인정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하므로 남북연합은 반드시 평화체제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평화체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북미수교, 그리고 항구적 평화 보장 관리기구 등으로 구성되는 일반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질성과 공존, 통합을 위한 장치’로도 부각된다. 그런 점에서 남북 간 체제공존의 장기적 유지라는 남북연합의 의미는 핵무기 없는 북 체제를 인정하는 구조로서의 평화체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평화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과 북이 핵무기를 포기해가는 과정은 남북연합의 제도화 설계와 맞물린다. 당장은 정상회담과 각료회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충돌을 방지하는 문제가 중요한 만큼 미국의 개입과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도록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시급하다. 남북연합이 성공하자면 북에서 경제개혁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국가의 민주적 운영이 점차적으로라도 진전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매우 더딜 수 있으므로 꾸준히 진행되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체제공존형 평화체제로서의 남북연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10·4선언을 이행하자고 북과 만날 때도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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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文 “대화 가능성 열어두되 북 오판 않도록 단호히 대응”」, 경향신문 2017.5.14.
  2. 로동신문 2013.4.1.
  3. 김동엽 「경제·핵무력 병진노선과 북한의 군사 분야 변화」, 『현대북한연구』 18권 2호(2015) 참조.
  4. 이창희 「제7차 조선로동당 대회로 살펴본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 『현대북한연구』 19권 3호(2016) 참조.
  5. 임강택 「2016년 북한 시장 동향」, 『KDI 북한경제리뷰』 2017년 4월호 3~4면.
  6.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위협이 미국 외교의 가장 우선순위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렇다”고 답했다. 「트럼프·푸틴 “北 매우 위험한 상황… 북핵·미사일 해결 공동노력할 것”」, 세계일보 2017.5.3.
  7. “Review of United State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 1999.10.12; 허문영 외 『한반도 평화체제: 자료와 해제』, 통일연구원 2007, 549~50면.
  8. 제네바합의문 2-2, 2-3항에 따르면 북미는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두 나라 관계를 대사급으로 승격시키기로 합의했다. 허문영 외, 앞의 책.
  9. 같은 책 32~33면.
  10. 본지 수록 정영신 「국가와 군사기지에 대항하는 공동체의 투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