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마흐무드 맘다니 『규정과 지배』, 창비 2017
규정하느냐 규정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옥순 李玉順
인도문화연구원장 indo21@naver.com
아득한 옛날의 권력관계에서부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회자되는 갑을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인간세계의 법칙은 상당히 유효했고, 정교하게 작동되었다. 특히 권력으로 치환될 지식을 생산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 근대 제국주의시대의 주인공들, 그중에서 가장 선두에 있던 영국은 자신에 유리하도록 약자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데 선수였다. “적당하게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며 내린 여러 규정은 피지배자로 하여금 그 종속성을 받아들이도록 교묘하게 유인했다.
『규정과 지배: 원주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Define and Rule: Native as Political Identity, 2012, 한국어판 최대희 옮김)도 오늘날 아프리카의 정치와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의 문제에 깊이 뿌리를 내린, 과거에 지배자 영국이 생산하여 유포한 식민지식의 부정적 힘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재직하는 우간다 출신의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가 다른 대학에서 했던 3개 강의를 묶은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내용은 구체적이다. 어떻게 영국은 아프리카를 지배했는가,라는 주제를 따라가다보면 20세기 아프리카의 굴곡진 정치사와 인종갈등의 족보를 만날 수 있다.
맘다니의 책은 소수 지배자인 영국이 다수 피지배자가 사는 아프리카에 도입한 새로운 통치술을 설명하는 앞의 1~2장과 그에 대한 식민지인의 반응을 담은 3장으로 구성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아프리카를 규정하고 지배한 영국의 통치술, 곧 헨리 메인(Henry Maine)의 주장에 근거를 둔 간접지배는 식민지 인도의 경험에서 나왔다. 1857년 인도인의 격렬한 반영투쟁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던 영국이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와 구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도입한 결과였다.
영국의 초기 동화정책,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닮았다는 유사성의 추구가 심리적·정치적으로 식민체제를 위협하자 영국은 양자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대체적 이데올로기를 마련했다. 영국은 아프리카의 토착인 원주민과 밖에서 이주해 정착한 정착민의 정체성을 다르게 구분하고 전자에 대한 우대와 후자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제도화하면서 그들을 다원화(또는 파편화)했다. 놀랍게도 아프리카원주민이나 아프리카부족이라는 말은 19세기 후반 곤경에 처한 영국 제국주의이론가들이 만든 창작품이었다.
맘다니는 책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만들고 관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영국의 간접지배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한 간접지배를 끝내고 국가가 직접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이행한 19세기 후반의 인도를 맘다니의 주장처럼 간접지배로 볼 것인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영국이 동화라는 낭만적 정책을 거두고 아프리카에서처럼 차이를 강조한 건 사실이지만 거기엔 문명개화한 인도인을 지배자와 동등하게 인정할 수 없는 식민주의 자체의 모순이 잠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어딘가에서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와 ‘규정과 지배’(Define and Rule)를 구분하듯이 적었으나 양자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다름없었다. 다수 힌두집단으로부터 무슬림을 보호하려던 영국의 분리지배정책이 규정과 지배의 속성을 가진 것이 그랬다. 힌두집단은 소수 ‘외래인 무슬림’을 ‘아리아인의 나라 인도에 거주하는 비(非)아리아인’으로, ‘문화적 배경과 삶에 대한 같은 공통의 관점을 가진 인도에 사는 비원주민’으로 상상하고 규정했다. 그렇게 규정된 무슬림이 결국은 파키스탄을 세워 인도에서 떨어져나가는 비극적 정치상황으로 이어졌다. 게젤샤프트(Gesellschaft, 인위적 이익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새로운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자연적 공통사회)가 탄생한 이 사례는 두 정책이 서로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반응이 언급된 3장이 흥미롭다. 거기에선 위로부터의 규정에 자신을 편입하고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은 피지배자의 딜레마가 감지된다.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는 그 규칙을 깨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한다”라는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도발적 명제를 변명으로 차용한다면, 아프리카인은 인도인과 다른 식민지의 피지배자처럼 사라지지 않으려고 그 규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배를 수반한 그 규정은 그들을 심리적·문화적으로 오랫동안 교란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정치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 진정한 탈식민화를 아프리카인이 주도해야 하는 건 그런 연유에서다. 맘다니는 그 희망 속에 절망을 한줌 섞어 넣으면서도 아프리카 탈식민화의 가능성을 두 사람에게서 찾았다. 규정과 지배를 지지하는 식민주의 역사서술에 반대하고 그 대안적 역사서술을 제시한 나이지리아의 역사가 우스만(Y. Usman)과 비폭력적 개혁으로 식민주의의 정치적 논리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말한 탄자니아의 니에레레(M. Nyerere)다.
아프리카에서 ‘규정과 지배’의 유산을 겪으며 고통받은 맘다니의 이 책은 위로부터 부과된 규정과 지배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던지는 동시에 연관된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들이 외국 지배자로부터 범주화되고 고착화되기 이전의 ‘유동적이고 다양했던 식민지 이전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 가능할까?’ ‘어쩌면 식민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의 진정한 자아란 돌아가고 싶지만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이름이 아닐까?’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프리카의 정착민이 원주민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착민과 원주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 모두가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존재하길 그만두는 것이다”(10면)라고 적었다. 진정한 해방은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노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아프리카인은 물론,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모든 역사의 희생자들이 스스로를 말하고 규정하며 관리하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