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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성해 文成海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1998년 매일신문,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가 있음.
chaein00@hanmail.net
정읍 김동수씨 작은댁 사랑채 이건기(移建記)
자잘한 기와를 얹고
혓바닥을 내밀 듯
옹색한 마루를 들인 것은
예사로운 옛집이지만은
이 집은 풀씨가 날아오듯 어디선가 날아온 집이랍니다
이 집은 집 안에 노류장화(路柳墻花)를 들이지 않는다는
옛말을 거스르고
집 안에 버젓이 버드나무가 휘영청 늘어서 있는데요
그것은 버드나무 곁으로
이 집이 엉겅퀴 꽃씨처럼 날아왔기 때문이랍니다
사람들이 남쪽 어딘가에서 퍼온 이 집을
버드나무 곁에 옮기던 그날은 하늘까지 시끌벅적했다는데요
집 안에 버드나무를 들이지 말라던 마을 어른들도
버드나무 곁에 집을 들인 경우니 구경만 했다는데요
저수지가 말라가듯
한해 두해 사람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 집에서
버드나무는 이제 나긋나긋한 안주인처럼 굴고
이 집도 어느새 낫낫한 여염집 가장으로 자리잡았답니다
춘분 지나 버드나무 허리께에 물이 차오르면
이 집의 서까래에도 물기가 올라
멀리서도 새들이 알고 날아든답니다
뒤통수 연가
나는 점점 마주오는 사람과 눈 마주치지 못하고
괜히 개하고나 눈 마주치다
그 개가 그러모으는 소리라도 하면
얼른 시선을 땅바닥으로 내리깐다
나는 점점 마주오는 사람이나
마주오는 개보다는 오히려
앞서 걷는 사람의 뒤통수가 이리 편안해지니
나는 이제 안전하고 무고하리라
아침의 공원에서 뒤통수들과 안면을 트고
뒤통수들을 품평하고 뒤통수들과 사랑을 한 지 여러달
이제 낯익은 뒤통수라도 만나면
달려가서 뒤통수를 치고 싶어진다
연신 삐딱거리다가 끄떡거리는 것을 보니
그도 나를 알아본 모양
내 뒤통수가 괜히 가렵거나 스멀거린다면
내 것도 누군가를 알아보았단 증거
그때는 조용히 뒤통수의 일은 뒤통수에게 맡긴 채
걸어가면 될 일이다
내 뒤통수는 이제 많은 것들과 허허실실거릴 것이다
이것이 뒤태를 가진 자들의 살아가는 힘
마음에 드는 뒤통수를 만나면 쫓아가서 알은체를 해보라
우리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