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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중국의 굴기와 당대 ‘사상의 무의식’

 

 

허 자오톈 賀照田

중국사회과학원 문화연구소 부연구원. 『인간사상(人間思想)』 중국판 편집장.

 

* 이 글은 2018년 번역 출간 예정인 『중국 당대 사상의 무의식(當代中國的思想無意識)』의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의 후기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본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주류 사상에 존재하고 있는 무의식과 그 문제들을 다방면에서 고찰한 책으로, 「‘판샤오(潘曉) 토론’으로 본 당대 중국의 허무주의 역사와 그 관념구조」 「계몽과 혁명의 이중 변주」 「포스트사회주의 역사와 중국 당대 문학비평관의 변천」 「현대 중국 사상논쟁의 역사품격과 지식품격」 「중국이 세계로 들어설 때」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중국 당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내가 보기에 한국은 중국대륙 지식계의 대표적인 사상유파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파악하는 데 힘쓰는 듯하다. 최근 한국은 전세계에서 당대 중국대륙 사상가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발 빠르게 소개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중국대륙의 역사와 현실을 파악하는 핵심적 자원으로 대표적 사상유파를 선택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이해를 상당히 빨리 심화시킬 수 있고 또 명확하고 체계적인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당한 인식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 외에도 한중 지식계가 비교적 단시간 내에 심도있는 교류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한국은 중국과 상대적으로 늦게 수교했고 중국 현당대 연구도 늦게 시작됐지만 한중 간 교류만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한중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중일 간 그리고 중미 간 교류와도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더 활발하기까지 하다. 이는 한국의 지식계가 앞서 말한 방법으로 중국대륙을 이해하고 파악해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터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국의 지식계가 중국의 대표적 사상유파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방법이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중국대륙의 역사가 매우 심한 기복을 거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상지식은 여전히 더 무르익어야 할 부분이 많은데도, 이것들이 중국대륙의 사상지식적 상황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 흔적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 사상지식의 인식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데 사상지식은 정작 자신이 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일쑤고 이는 다시 이들 사상지식의 자기평가나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에 대한 그들의 파악 및 분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만약 한국 지식인들이 이들 사상유파의 긍정적 작용을 충분히 소화하는 데만 머무른 채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들 사상유파로부터 출발한 한국 지식인들의 중국인식도 자연히 그들과 같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대 중국대륙의 사조가 안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당대 중국의 사조들을 건너뛰어 직접 중국의 역사-현실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당대 중국대륙의 제 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미처 의식되지 못한 지점들이 어딘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조의 자기분석으로부터 해당 사조를 파악하고 이 사조가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해당 사조가 깊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지점들로부터 그 사조를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에 대한 해당 사조의 분석과 해당 사조 자체의 관계를 평가하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대로 하면 한국의 학자들이 중국대륙의 대표적 사조로부터 충분히 양분을 섭취하면서도 이들 사조의 한계에 함몰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중국대륙의 역사-현실 중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직 중국대륙의 지식사상에 의해 자각되지 않은 미지의 역사-현실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려면 우선 당대 중국대륙의 ‘사상의 무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상의 무의식’이란, 당대 중국대륙의 영향력 있는 사상관념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정작 당대 중국대륙의 사상관념에 의해 자각되지 않은 ‘사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상의 무의식’이란 당대 중국대륙의 중요한 사상관념의 인지품격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다른 한편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이나 지식사상 속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 무엇을 말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누려야 할 마땅한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당대 중국대륙의 이들 ‘사상의 무의식’은 무엇보다 모두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신시기가 확립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2. 신시기 ‘발란반정’ 의식과 그 실제 사이의 괴리

 

중국대륙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1978년 말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가 소집된 이후를 ‘신시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터이다. ‘신시기’와 관련하여 국가 차원의 역사서술은 신시기의 ‘새로움’을 강조하는 데 치중한다. 그 ‘새로움’이란 신시기가 성립됐을 때 마오 쩌둥(毛澤東) 시대(1949~76)의 경험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교훈을 새기며 마오 쩌둥 시대 노선방침에 대한 충분한 ‘발란반정(撥亂反正,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하다)’을 거치고 그 기반 위에 개혁개방을 진행했다는 데 있다. 재밌는 것은 중국대륙의 국가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국가의 이같은 서술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비판은 그저 현재 당과 국가가 정치제도적 개혁 면에서 불충분하다는 것, 그 결과 여전히 독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진정한 민주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데 초점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시기’와 관련하여 이들 유행하는 고착된 이해와 서술이 사실은 역사적 실제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대륙 ‘신시기’의 확립은 확실히 문화대혁명 종결 후 마오 쩌둥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한 다양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신시기’의 성립이 마오 쩌둥 시대에 대한 충분한 ‘발란반정’ 위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마오 쩌둥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해 먼저 전면적으로 심도있게 파악하고 그 기반 위에 문화대혁명 후의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는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았다. 즉 ‘신시기’의 성립이 마오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한 다방면의 검토와 총결에 힘입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오 시대에 대한 검토가 매우 충분히 전면적이고 깊이있게 이루어졌으며 이들 충분한 인식을 기초로 하는 ‘발란반정’ 위에 ‘신시기’가 성립되었다는 생각은 결코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이었을 따름이다. ‘신시기’의 많은 문제들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오히려 신시기 성립 당시의 중요한 몇몇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파악 부족과 마오 시대의 매우 유의미한 일부 경험과 시각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편의 역사적 당사자들이 매우 타당하고 충분했다고 여기는 ‘발란반정’은 결코 그들의 생각만큼 그렇게 이상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는 ‘병약상발(病藥相發, 병과 약을 같이 준다)’ 격이었다. 즉 병 자체에 대한 파악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약도 충분히 병증을 치료하지 못한데다 약 자체가 새로운 부작용을 가지고 온 것이다. 덕분에 의사는 훌륭한 ‘약’이 그 ‘병’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여겼지만 그 약을 쓰는 동안 또 새로운 문제, 새로운 ‘병’이 함께 초래된 셈이다.

실제 역사는 ‘병과 약을 같이 주는’ 상황이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발란반정’이라고 인식했을 뿐이다. 나아가 이같은 ‘발란반정’ 의식은 신시기의 확립에 전면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이 ‘발란반정’ 의식에서 출발한 이해와 서술은 신시기 수십년간의 역사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그것은 당대 중국대륙의 수많은 사상관념 영역에서 유해한 지식과 사상의 무의식이 생겨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신시기 이래 수십년이 흐른 지금, 당대 중국대륙의 유해한 사상의 무의식을 청산하고 1980년대 이래 당대 중국대륙의 제 사상관념들에 대해 역사 내부로부터 심도있는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발란반정’이라는 역사적 의식이 아니라 ‘병약상발’이라는 역사의식을 전제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역사 단계에서의 사상관념을 새롭게 깊이있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1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의 중국연구자들과 긴밀히 교류하고 싶고 또한 한국의 중국연구자들이 너무나 어렵고도 중요한 이 작업에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3. 당대 중국 주류 사조의 자신감과 그 사상적 배경

 

‘사상의 무의식’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는 ‘사상의 무의식’의 영향 아래 형성된 사상관념의 자기이해에 근거해 그 관념 속에 적재된 내용과 역사-현실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는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놀랍게도 ‘사상의 무의식’ 문제가 상당히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일반적으로 매우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방법, 즉 역사적 당사자들의 사상의식을 근거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당대 중국대륙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크게 상실했다. 또 그 때문에 나는 오늘날 중국대륙의 국가와 지식계, 그리고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의식과 감각 상태가 매우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상의 무의식’ 문제가 당대 중국대륙에 상당히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이러한 국면을 다룰 때는 더욱더 신중을 기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좀더 명확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만약 꼼꼼하게 고찰하고 파악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당사자의 사상의식은 그저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 정도로만 쓸 수 있을 뿐이며, 불가결한 고찰을 생략한 채 역사적 당사자의 사상의식과 그 의식의 기반이라고 당사자가 믿고 있는 역사-현실 양자를 정확하게 대응하는 인과적 해석관계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중국대륙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억압하는 당-국가 주도 사조가 대개 역사적 당사자의 모종의 관념의식과 그에 대응하는 모종의 역사 현상을 반드시 필요한 고찰 없이 바로 인과적 해석관계로 전제한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한국의 독자라면 문화대혁명 후 중국대륙 경제의 지속적인 고도 발전을 전세계가 주목해왔으며 중국대륙의 대다수 인민들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 가운데는 분명 곱씹어볼 만한 소중한 경험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나 역시 그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중국대륙에서 국가가 강력하게 추동하고 지식계나 사회의 상당수 사람들도 지지하는 사상사조들이 중국의 경험을 지나치게 성급하고 무매개적으로 해석하거나 결론 내린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근거는 동시기 다른 국가들이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한 것에 비해 중국대륙은 우월한 경제적 성취를 이뤘고 인민생활이 현저히 개선되었으며 국제적 영향력도 전에 없이 제고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중국대륙의 당과 국가 지도자인 시 진핑(習近平)이 근래 강력하게 추동하고 있는 사조와 관련된 부분이 실제로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 시 진핑은 2012년 중국대륙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로 상당히 많은 양의 담화를 계속 발표했는데, 그 수많은 담화의 주요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비교적 손쉬운 방법은 바로 중공중앙선전부가 편찬한 『시 진핑 총서기 중요강화 독본(習近平總書記系重要講話讀本)』을 읽는 것이다.2 중공중앙선전부와 중공중앙조직부는 공동으로 각급 당 조직과 전체 당원들에게 모두 이 독본을 열심히 학습하라3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낸 바 있다. 이 책을 보면 역사의 특정한 현상과 당사자의 특정한 관념을 너무나 성급하게 인과적 해석관계로 보는 경향이 국가가 강력하게 추동하는 사조의 사상적 품질에 미친 중대한 영향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래는 당-국가가 강력히 주도하고 지식계와 사회적으로 상당수가 지지하는 이 사조가 특별히 강조하는 역사-현실 중의 하나다.

 

신중국이 성립된 이래 60년간, 특히 개혁개방 후 30여년간 우리나라의 경제적 역량과 종합적 국력은 대폭 상승했으며 인민들의 생활은 현저히 개선되었고 국제적 지위도 전에 없이 높아졌다. 1979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총생산량은 연평균 9.8%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같은 시기 세계경제 연평균인 2.8%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또한 경제총규모로는 이제 세계 2위로 도약했으며 저소득국가에서 중상위 소득국가로 성공적으로 진입하였다. 이같은 발전, 이같은 급변은 인류의 발전사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 구미의 일부 국가들이 금융위기나 채무위기로 곤경을 겪고, 개발도상국들은 개발의 함정에 빠지고,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만 홀로 아름다운 풍경을 뽐낸 셈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주류 사조는 “역사의 사실들이야말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이 옳고도 성공적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결론짓는다. 시 진핑은 이를 두고 “오늘날 세계에서 어느 정당,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 자부할 만하냐고 묻는다면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족이야말로 가장 자부할 만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사조는 과거 30여년간 중국대륙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자부할 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당-국가가 주도했던 주류 사상관념과 제도에 대해서도 자부한다. 그같은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이 그 실천 방법이 되었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이 행동의 지침이 되었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제도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확실히 이는 근거로 제시되는 사실과 그로부터 얻은 결론 사이에 너무나 많은 비약이 존재하는 사고방식이다. 최근 30여년간 중국대륙 경제의 비약적 발전이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30여년의 역사가 간단치 않았으며 그 안의 실천적 경험들 중에는 우리가 성실하게 정리해야만 하는 주목할 만한 지점들이 많다는 것뿐이다. 확실히 지난 30여년간 전개된 역사와 경제적사회적 실천들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관념에 의해 추동되었고, 당대의 당-국가 제도 및 그 통치와도 구조적으로 관련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이 행동의 지침이 되었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제도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꼼꼼한 고찰을 거치지 않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과 기존 제도의 존재를 가지고 바로 지난 30여년간 역사의 성취를 해석하는 일은 인식상의 문제에서 그야말로 크게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 사조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실천, 이론, 제도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성공적 실천을 이론으로 승화하고, 정확한 이론은 다시 새로운 실천을 지도하며, 실천 속에서 효과를 본 방침과 정책은 곧 당과 국가의 제도로 승화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길, 이론체계, 그리고 제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대륙의 과거 30여년간의 소중한 경험이 이미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당-국가 이론체계에 의해 흡수되었으며 기존의 제도 위에 이미 실현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와 같은 감각과 견해를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지금 우리는 역사상 어떤 시기보다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에 다가서 있다. 그리고 역사상 어떤 시기보다도 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현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던 시 진핑의 발언에 내포된 관념적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목하 중국대륙의 당-국가가 강력하게 추동하고 있는 사조의 위와 같은 감각과 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전전략을 지지하고 옹호하도록 유인하기 위한 방편에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천기획과 좀더 구체적으로 관련된 그들의 다른 말과 행동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위와 같은 자신의 판단을 정말로 굳게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많은 실천기획이나 실천에 대한 이해가 바로 상술한 감각과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현실 그리고 세계의 역사-현실 자체가 그들의 이론, 제도 및 실천기획이 가장 훌륭함을 증명해주는데도 불구하고 당대 중국대륙에 그처럼 다양한 이견과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비판자들이 그처럼 자명한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것은 비판자들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잘못된 관념이나 견해에 세뇌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소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잘못된 관념이 전파된 결과이며, 그에 반해 중국이 성취를 거둔 것은 바로 그처럼 잘못된 관념들이 개입할 수 없도록 막으면서 자신만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과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비로소 그들은 “이데올로기 공작의 지도권과 발언권을 굳게 움켜쥐고” 다른 생각과 목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는 일이 공산당의 운명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성쇠나 운명과도 관련된다고 믿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작풍을 확 뜯어고친 후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강조할 수도 있게 된다.

 

각급 당위원회는 정치적 책임과 영도의 책임을 지고, 선전사상 영역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강화하며, 중요한 전략적 임무에 대한 통합적 지도를 강화하고, 중대한 배치나 중요임무가 실현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특히 근본적인 문제나 정치적 원칙의 문제에서는 반드시 선명한 태도와 굳건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며 지도급 간부는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은 첨예한 투쟁의 장에서 투쟁을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위원회의 주요 책임자는 이데올로기 공작을 틀어쥐는 데 앞장서고, 해당지역 해당부문 주요 매체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앞장서며, 해당지역 해당부문 매체의 발전방향을 유도하는 데 앞장서고, 잘못된 관념과 경향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 선전공작의 이념을 수립하고, 각각의 전선과 각각의 부문이 함께할 수 있도록 동원하며, 각 영역의 행정관리, 업무관리, 사회관리를 사상선전공작과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여 막강한 역량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데올로기 공작을 잘하는 데는 사상선전 부문이 매우 중요한 사명을 띠는바 반드시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 사상선전 부문의 공작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도급 간부가 강화되어야 하고 해당 팀이 강화되어야 한다. 사상선전 부문을 강화할 수 있는 지도팀을 잘 선정하고, 정치가가 신문, 잡지, 방송, 뉴스사이트 제작을 하도록 견지하며, 사상선전 공작의 지도권이 당과 인민에 충성하는 사람의 손에 장악될 수 있도록 확보해야 한다. 각급 사상선전 부문의 지도급 간부들은 학습을 강화하고 실천을 강화하여 이론, 글쓰기, 말하기 혹은 다른 장기 면에서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지식인 공작을 고도로 중시하고 잘해내고, 그들의 단결과 지도를 강화하며, 정치적 인솔과 흡수를 강화하여 그들을 최대한 당의 주변에 응집하게 해야 한다.

 

이를 보면 최근 중국대륙이 갈수록 언론과 출판 공간을 축소시켜왔음에도 사회나 지식인 상당수가 이를 지지한 데에는 바로 위와 같은 논리구조나 심정적 분위기가 그 배후에 존재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목하 중국대륙의 당-국가가 중국의 모든 것이 좋으며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맹목적으로 낙관하고 자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문제를 매우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일련의 모순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앞길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곤경과 문제가 놓여 있다. 예를 들어 발전 과정 중의 불균형, 부조화, 지속 불가능의 문제가 두드러지고, 과학기술의 창신 능력이 부족하며, 산업구조는 불합리하고, 발전방식은 여전히 거칠고, 도시와 농촌 지역 발전의 격차 및 거주민 수입의 격차는 여전히 비교적 큰 편이다. 사회적 모순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교육, 취업, 사회보장, 의료, 주택, 환경, 식품과 약품의 안전, 안전한 생산, 사회치안, 사법과 법집행처럼 군중의 구체적인 이해와 직결된 문제들이 상당히 많다. 또한 일부 군중의 생활난,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그리고 사치풍조 같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는 부패현상이 빈발하여 반부패투쟁의 형세가 여전히 엄중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들 역시 개혁을 강하게 주장한다. “발전 과정에서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고 갖가지 위험과 도전을 줄이며 경제 및 사회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심화시키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개혁의 강조 이면이 바로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은 자신감이기 때문에 현재의 개혁에 대한 강조는 과거 개혁에 대한 강조와는 인지감각이나 인지심리에서부터 너무나 다르다는 데 있다.

 

 

4.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 개혁을 추진하던 당-국가는 인지 면에서 지금처럼 자신만만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혁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인지 문제가 매우 도전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다.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넌다(摸着石頭過河)”라는 덩 샤오핑(鄧小平)의 유명한 말은 과거의 개혁주체가 인지문제상의 도전에 특별히 주목했으며, 개혁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상황의 복잡성에 대해 매우 신중하면서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에 비해 현재 개혁을 논하는 주체들의 인지감각 상태는 그와는 매우 다르다. 지금은 “개혁은 이제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시 진핑 총서기는 ‘중국의 개혁은 30여년을 거쳐 이제 깊은 물에 이르렀다. 즉 쉽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개혁은 이미 끝났고 맛있는 고기는 이미 모두 먹어치웠으며 지금은 삼키기 어려운 딱딱한 뼛조각들만 남았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고 강조한다. 현재 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감각으로 볼 때 ‘깊은 물’이나 ‘딱딱한 뼛조각’은 이미 기본적으로 인지상의 도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로 “어떤 것은 복잡한 부문 간 이익의 문제이고, 어떤 것은 사상인식상 통일되기 어려우며, 어떤 것은 일부 사람들의 ‘치즈’를 건드리고, 어떤 것은 다방면의 협력과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할 뿐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개혁의 주된 난제는 인지 문제라기보다 주로 사람들이 정확한 인식으로 통일되기 어렵고 이익집단이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점이며, 당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또 전국이 하나가 될 수 있는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국가가 힘써 추진하는 사상은 개혁의 “모순이 클수록, 문제가 많을수록 더욱 굳건히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반드시 힘을 내서 흔들리지 말고, 반드시 굳은 믿음으로 용기를 배가하며, 딱딱한 뼛조각도 과감하게 삼키고 험난한 여울도 과감하게 건너며, 오래된 고질병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어 전면적으로 개혁을 심화하는 이 전쟁을 굳건하게 치러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사상의 해방”을 부각한다. 무엇이 됐든 그 중점은 단지 인식의 통일과 권력의 집중에 놓여 있다. 정확한 인식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 만약 정확한 인식이 쉽게 형성되기 어렵다면 또 어떤 기제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그 중점이 아닌 것이다.

이는 과거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넌다”가 인지상의 도전적 문제들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과거 그 말은 개혁이 더 건설적이고 덜 파괴적인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증하는 정확하고 적합한 인식이 필요하지만 행동하기 전에는 그런 인식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혁은 강을 건널 때 매우 조심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진행함으로써 현실의 상황에 어느 때라도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은 “중국의 지혜가 녹아든 개혁방법이며 맑스주의 인식론과 실천론에도 부합하는 방법이다. 반드시 돌파해야 하지만 일시에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는 개혁이기에 시험적으로 탐색하고 돌을 던져 길을 묻는 방식을 택하고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 때 다시 추진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 그 말은 “개혁이 부단히 추진됨에 따라 반드시 최상급의 설계와 전체적 기획이 강화되어 개혁정책의 과학성을 제고하고 개혁조치의 조화성을 배가시켜야 한다.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것과 최상급의 설계가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구체적인 단계적 개혁은 최상급의 설계가 더 강화된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어야 하며 최상급의 설계는 구체적인 단계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기초 위에 진행되어야 한다. 거시적 사고와 최상급의 설계를 강화하려면 더욱더 개혁의 체계성, 총체성, 협동성에 주목해야 하고 동시에 대담한 실험과 돌파를 진행하도록 계속 격려하면서 개혁의 심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넌다”는 말을 매우 균형감 있고 적절하게 해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말은 사실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넌다”는 인지감각으로 개혁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지금은 “반드시 최상급 설계와 전체적 기획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알 수 있다.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것과 최상급 설계를 강화하는 것”의 “변증법적 통일”에서 더 주도적 지위를 갖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인 최상급의 설계이다. 왜냐하면 목하 중국에서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것”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최상급 설계 능력을 과신하는 최상급의 설계자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넌다”라고 말할 때 중요한 위상을 부여받았던 앞서의 인지적 감각이나 이해상태는 이미 포기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의 언급에서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것”은 이미 상당히 지엽적인 지위로 억압되어버렸지만, 지금 중국대륙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처럼 축소된 지위조차 유지하기 힘들어 보인다. 현재 중국대륙의 지배사조가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또다른 일련의 지점들만 보아도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것”은 실천 과정에서 반드시 구조적 난관에 부딪히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중국대륙의 지배적인 사조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각급, 각 부문, 각 영역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중국의 동서남북 모든 지역을 막론하고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 당은 최고의 정치적 영도세력이며 각각의 영역과 방면은 모두 확고한 자각 아래 당의 영도를 견지해야 한다”면서 “당의 영도”를 전에 없이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공산당 각급 조직과 당원에 대해서는 “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근본적인 정치적 요구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율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고 “충성”의 여부는 바로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실천적으로 당 중앙과 고도로 일치되는가”의 여부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지금은 “언제나 주동적으로 당 중앙을 따르고, 당의 이론과 노선 방침을 따르며, 당 중앙의 안정적 개혁발전과 내정외교국방 및 치당치국치군을 위한 각각의 정책 및 조치를 따르는가 아닌가”가 당원과 간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같은 요구는 물론 당원과 간부의 구체적 행동에 대해 막강한 구속력을 가진다. 거기에 또 목전의 “개혁은 부단히 더 심화되고 있고, 각종 사상과 문화는 격랑 속에 있으며, 각종 모순이 착종되고, 각종 요구들이 서로 부딪치고, 각종 힘들이 서로 경쟁하며 목소리를 내는 등, 개혁 추진의 민감도나 복잡성이 전에 없이 높은” 상황에서 당원과 간부들은 반드시 “막강한 전략적 정력(定力, 불교용어로,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종 맑은 머리로 갖가지 잘못된 관점에 좌우되거나 각종 간섭에 미혹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실제에서 출발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 고쳐야 하는 것은 반드시 고치고 고쳐선 안 되는 것은 반드시 지켜내며, 개혁의 영도권과 주도권을 굳건하게 틀어쥘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관원들의 최상급 설계가 “돌을 더듬어가며 강을 건너는” 실천공간에 마땅히 허락해야 하는 행동의 적극성들이 점점 더 감소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5. 고뇌로부터 출발하다

 

중국대륙에 각종 문제들이 첩첩이 쌓여 서로 얽히고설켜 있고, 또 동아시아와 세계에도 첩첩이 쌓인 문제들이 뒤섞여 있는 마당에, 중국대륙의 가장 지배적인 권력과 사조는 이처럼 인지적으로 과도한 자신감에 차 있으며, 또한 그같은 과도한 자신감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들을 강하게 억압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당대 중국대륙의 인지적 도전성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내가 어찌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목하 중국대륙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위와 같은 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검토하려면, 그것이 다음의 두가지 점과 직접적으로 상관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는 성과나 자신감에서 출발해 문제를 사고하면서도 동시에 곤경과 고뇌로부터 출발하여 중국대륙의 개혁의 역사를 사고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고 지나치게 중국대륙의 현저한 성과만을 근거로 당대 중국대륙의 개혁의 역사를 평가했다는 것. 둘째는 역사적 당사자의 특정한 관념과 역사적 현상을 너무 성급하게 인과적인 해석관계로 단정지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중국대륙에서 곧 출판될 나의 논문집 제목을 왜 ‘고뇌로부터 출발하다(從苦惱出發)’라고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나 사색 과정에서 나는 관심 문제를 중국대륙의 내부로부터 아주 정확하고 섬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관심대상을 최대한 세심하게 포착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는다. 그 중간의 극히 소소한 모든 주름들에 대해서도 나는 특별히 세심하고자 하고 그 세심함을 기반으로 대상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와 같이 역사-현실에 대해 온 정신을 쏟는 인내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나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직 우리의 인지 속에 출현하지 못한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점’들과, 또 이 지점들을 통해 관련 역사-현실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을 토대로 삼아 다시 한번 당대 중국대륙의 관련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때 비로소 ‘사상의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사상의 무의식’을 발견함으로써 다시 당대 지식사상의 현상태를 깨끗이 정리하며, ‘사상의 무의식’으로 인해 생겨난 인지 문제와 실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사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번역: 임우경(任佑卿)/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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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어떤 독자들은 이미 좌파들이 이같은 작업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확실히 지금 중국대륙에는 점점 더 많은 좌파들이 중국공산혁명과 마오 시대 연구에 투신하고 있으며 훌륭한 성과도 내고 있다. 역사연구자가 아닌 좌파들도 1980, 90년대에 유행했던 수많은 관념이나 이해에 대해 엄정한 비판을 하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좌파는 역사적·관념적 청산작업을 이미 수행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중국의 좌파는 1990년대 후반 이래 심각한 빈부격차 같은 현실에 기반해 탄생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들이 보기에 이들 문제에 특별히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좌파적 가치에서 출발하여 지나치게 과도하고 성급하게 역사에 주목하고 역사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역사를 대할 때 인내심이 부족하고, 역사 본연의 맥락에서 출발하여 역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깊이가 부족하다. 특히 좌파가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1970대 말・1980년대 초에 대해 좌파들은 성급하게 자기가 친숙한 가치에서 출발해 ‘편 가르기(選邊站)’를 하는 인상을 준다. 즉 자기가 친숙하게 느끼는 관념과 역사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변호하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에게 친숙하지 않은 관념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꼼꼼하게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 결과 그 시기에 대한 좌파들의 인식은 흔히 유행하는 ‘발란반정’이라는 이해와는 정반대로 ‘발정반란(撥正反亂, 옳은 것을 뽑아내고 어지러운 상태로 되돌리다)’, 즉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것이나 다름없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발정반란’식의 역사인식 개념은 중국대륙의 오늘날 관념세계 속에서는 그 나름의 현실적 의미를 지니며 우리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일련의 역사적 현상과 요소들을 부각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발정반란’ 의식하의 역사적 작업은 당대 중국대륙 역사 속의 ‘사상의 무의식’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 중공중앙선전부 조직이 편찬한 『시 진핑 총서기 중요강화 독본』(베이징: 학습출판사・인민출판사)은 2014년 6월판과 2016년 4월판 두가지 판본이 있다. 이 글의 인용은 이 두가지 판본을 모두 활용했다. 어떤 독자는 왜 분량이 50%나 증가된 2016년판에서 전부 인용하지 않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2016년판은 2014년판 출판 후 시 진핑 담화에 새로이 많은 내용들이 추가됨에 따라 장절의 순서를 바꾸고 새로운 장절을 추가했으며 원래 장절의 내용도 많이 수정했다. 그러나 그 핵심적인 감각이나 이해, 기본 논리는 모두 일맥상통하며 변함이 없다. 따라서 이 글이 논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2014년판이나 2016년판 모두 내용적으로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배후의 감각적 근거가 어떤 때는 2016년판에 더 잘 드러나고 어떤 때는 2014년판에 더 잘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의미인데 2014년판과 2016년판의 표현이 다를 때는 문제를 설명하는 데 더 편리한 판본을 인용했다.
  3. 중공중앙선전부와 중공중앙조직부는 2014년과 2016년에 모두 「關于認眞組織學習『習近平總書記系列重要講話讀本』的通知」(이하 통지)를 내려보냈다. 통지는 전체 당원들에게 『독본』을 학습하라고 요구했을 뿐 아니라 “각급 당교와 행정학원, 간부학원은 『독본』을 교육내용에 편입하고, 각 고등학교는 『독본』을 교사와 학생들의 이론학습 교육에 중요한 교재로 사용하며, 각급 당위원회 강사단은 『독본』의 내용을 둘러싸고 기층 당원과 군중에 대한 선전 및 강연 활동을 잘 조직하라”고 요구했다. (2014년 통지는 2014년 『독본』의 저작권 설명과 목차 사이 면, 2016년 통지는 http://money.163.com/16/0406/05/BJUR3C8T00253B0H.html을 참고)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는 이 책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 결과 2014년 『독본』이 발행된 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이미 발행량은 1000만부를 넘었다.(http://cpc.people.com.cn/n/2014/0818/c64387-254824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