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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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朴瑩浚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 등이 있음. agbai@naver.com

 

 

 

불광천

 

 

천변을 거닐다가 밤잉어들을 보았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잉어들을 밤에 보았다

 

천변의 벚꽃길에서 멍하게 봄은 광선에 겨울의 질병 부위를 쬐고 있다가 떨어져내리는 벚꽃들로 강물의 비늘이 되었다 밤잉어들은 비늘과 지느러미, 두 단어로 왔다

 

잉어들은 처음엔 소리로 다가왔다 사진기 셔터를 찰칵찰칵 누르듯이 지느러미를 털며 회귀하는 소리가 귀로 눈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여기까지 오려면 한강과 경계에 있는 시멘트 보를 뛰어넘어야만 한다는데 밤에 상류로 올라가는 건 수초에 알을 낳기 위해서라는데

 

보의 난간을 뛰어넘으려고 지느러미가 파닥거릴 때마다 물고기 배에 피멍이 드는 환영이 내 눈에 찍히고 있었다 밤물결 속에서 수천의 비늘이 튀어올랐다 여기서 불광사(佛光寺)는 멀지 않다는데 잉어들은 새벽에 빛으로 가득한 상류에 알을 낳는 건지, 나는 그들의 밤 유영에서 영원을 보았다

 

잉어들이 상류로 올라가고 나는 반대로 한강을 향해 내려가는데, 기슭에선 물결에 얼비치는 벚꽃 비린내를 부리로 건져내며 오리가 한마리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