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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남종영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한겨레출판 2017

실패한 과학, 성공한 자연의 정치

 

 

하대청 河大淸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daecheong.ha@gmail.com

 

 

177_450아이와 함께 동물원을 여러번 방문했지만 여느 사람처럼 그 동물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별로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가둬둔 철창은 나와 아이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로만 여겼고, 그들이 앉은 시멘트 바닥이 차갑고 서늘해 보였지만 털 달려서 괜찮겠지 하며 애써 그 느낌을 떨쳐버렸다. 지구상의 한 종()이 다른 종을 포획해서 강제로 감금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마주하지 않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간이 동물과 맺는 관계는 매우 모순적이다. 반려동물에겐 가족보다 더한 연민을 느끼면서도 식용으로 사육된 소나 돼지의 끔찍한 삶엔 곧잘 눈을 감는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에게도 그 절망과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길들여진 이들의 안전과 안온함에 더 주목한다.

남종영의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사 프로젝트』는 다른 종을 향한 우리의 연민이 동물원의 ‘감금 동물’ 앞에서도 온전히 사라지거나 멈춰 서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다. 더불어 이런 연민이 손에 잡히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헌신적인 소수의 끈질긴 노력과 우호적인 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신문의 환경부 출입기자이면서 논픽션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수족관의 돌고래들이 실은 불법적으로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11년 여름부터 때로는 기자로서, 때로는 연구자로서, 때로는 활동가로서 취재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제각각 이름을 가진 다섯마리의 돌고래들이 좁은 수족관을 벗어나 고향인 제주도 앞바다로 방사되어 새끼를 낳은 2016년까지 그 역사를 좇아 꼼꼼히 기록했다. 저자는 대중적인 취재기를 넘어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동물지리학의 이론과 관점을 사용하면서 한국 최초의 돌고래 야생방사라는 이 희귀한 프로젝트의 생성과 성공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 야생방사 프로젝트의 긴 여정에 동참해온 저자가 줄곧 강조하는 점은 돌고래의 주체성이다. 인간에게 동물은 단지 본능의 노예이거나 자연법칙의 기계였을 뿐 권리의 주체나 정치적 행위자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해외의 여러 연구와 사육사의 증언을 인용하면서 돌고래가 자유의지와 자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야생에서 먹던 활어가 아닌 죽은 냉동생선을 먹고서 좁은 수족관에서 살 수 있는 건 이들이 생존과 안전만을 찾는 기계라서가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살도록 치밀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굶겨 굴복시키고 사육사가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만 먹이 보상을 주면서 서서히 수족관에 맞는 몸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생존을 위협하면서 돌고래를 무릎 꿇리지만 이런 길들이기 전략은 항상 그렇듯이 늘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돌고래는 공연 당일 공연을 거부하면서 사육사를 애태우기도 하고 때로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저자는 독자가 돌고래를 이해하도록 인간과는 전혀 다른 돌고래의 환경세계를 설명하고 돌고래의 시점에서 상황을 서술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돌고래 되기’를 시도한다. 이렇게 돌고래의 주체성을 복원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결국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물음에 도달한다. 이렇게 자유의지와 자의식을 가진 돌고래를 포획하고 감금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저자는 푸꼬(M. Foucault)의 생명정치를 동물에게 확대 적용해 인간이라는 종이 돌고래를 비롯한 다른 종의 생명과 몸을 규율하고 지배하는 이런 정치에 우리가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수년간 동물원에서 지내던 남방큰돌고래를 제주도 앞바다에 돌려보내는 과정은 지난했고 가끔은 위태로웠다. 그동안 전세계에서 돌고래의 야생방사는 여러차례 시도되었지만 과학적으로 분석된 적은 단 두번뿐이고 이 중 한번은 돌고래의 이른 죽음으로 실패했다. 고래연구소의 과학자, 동물보호단체와 환경단체의 활동가들 그리고 저자가 함께 시작한 이 모험적 실험은 돌고래가 있던 서울대공원을 책임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협력하면서 실질적인 동력을 얻었다. 물론 불법포획을 한 돌고래를 몰수하도록 판결한 사법부의 결정 또한 이 실험에 힘을 실어주었다. 과학자는 야생방사의 논거와 성공 가능조건을 생산하고, 활동가와 기자는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정치인은 이에 적절히 화답했던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로 조직된 제돌이시민위원회가 제돌이라는 이름의 고래를 그가 잡혀온 제주도 앞바다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았다.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보수언론의 공격에 맞서 최대한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만 했다. 시민위원회 내부에서도 과학자 그룹 간, 시민단체 간 갈등이 있었지만 대중의 큰 관심 속에 마침내 다섯마리를 성공적으로 방사했다.

과학, 시민운동, 정치, 언론, 법 등 서로 다른 제도에 속한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의 지식과 역량을 가지고 서로 개입하고 견인하는 이 흥미로운 과정은 중요한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제돌이는 제주도 앞바다에서 활어를 사냥하면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포획된 지 4년이 되고 인간의 손에 이미 길들여진 몸에서 벗어나 이전의 야생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학이 제한된 증거 때문에 확실히 답할 수 없는 가운데 과학자, 시민운동가, 진보보수 언론, 정치인, 사법부, 대중은 제각기 돌고래의 입장을 달리 대변했고 시민위원회라는 실험적 포럼이 이를 조정해나갔다. 사실을 책임진 과학자조차 제돌이의 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야생에서 이 본성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확정적으로 답할 수 없는 가운데 사실을 획정하고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가 작동한 것이다. 이 과정은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가치를 전제하지 않고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뚜르(Bruno Latour)가 말하는 ‘자연의 정치’(politics of nature)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자가 주목한 점 중 하나는 이 프로젝트의 전개 과정에서 돌고래의 본성을 대변한 과학자들이 계속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실, 제돌이의 야생방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 모두 한결같이 ‘과학적인 근거’를 댔지만, 결론적으로 과학은 아무것도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과학은 돌고래의 의지 앞에서 항상 미끄러지기만 했다.”(328면) 야생방사를 위한 적응 훈련은 과학자의 예상과 달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돌고래의 몸에 부착한 GPS 추적기는 이내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과학은 돌고래의 주체성 앞에선 무력했던 것이다. 예측은 빗나가고 과학은 실패했지만 자연의 정치는 성공했고, 이 프로젝트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제주도의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남방큰돌고래들을 근처 테마파크에 비싼 값에 팔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방류한다. 적어도 제주도에서 이제 돌고래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주체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책은 돌고래라는 비인간(nonhuman)을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나간 역사를 충실히 증언하면서 동시에 이런 비인간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어떤 윤리적 태도를 지닐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지구 위의 다른 종에 대해 우리가 가진 태도를 반성하도록 하는 ‘인류세’보다는 그런 반성을 망각하게 하는 ‘4차산업혁명’이 학술적·사회적으로 더 주목받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질문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