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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곽형덕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 소명출판 2017

‘두개의 혀’가 던지는 질문들

 

 

장세진 張世眞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sesame@hallym.ac.kr

 

 

177_454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1998년은 영어 공용어화 논쟁이 뜨거웠던 해다. 개인적인 기억일지 몰라도, 이 논쟁은 공용어화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모두 당장이라도 공용어화가 시행될 것만 같은 어떤 절박함의 뉘앙스를 띠고 있었다. 약 20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 상황은 훨씬 또렷하게 보인다. 이 논쟁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정권 내내 요란하게 선전된 “세계화”라는 막연한 구호가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하나둘 그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한국인들의 일터와 학교에서 마치 주문(呪文)처럼 외워졌던, 저 ‘글로벌스탠더드’의 조속한 실현을 위한 집단적 초조와 강박의 정념들이 이 논쟁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영어 공용어화 논쟁을 그저 일회성의 에피소드로 규정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 논쟁의 본질이 우리가 늘 공기처럼 사용하는 ‘민족어’와 더불어 ‘제국-보편어’에 대한 우리들의 항상적인 필요와 욕망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라 한다면, 이 논쟁은 ‘적정’ 요건만 갖추어진다면 어떠한 시간대에서든 반복 점화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에서도 우리는 이와 유사한 선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1939년과 1940년 무렵 식민지 조선의 문단이 바로 그러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시기는 중일전쟁 이후 ‘총동원령’의 일환으로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던 무렵이었다. 공식어인 ‘국어’(당시에는 일본어를 가리킴)에 밀려, 교육현장에서 더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강등된 조선어와 조선문예의 향후 운명을 두고 조선문단은 토론이 한창이었다.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은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일본과 조선 문단을 오가며 활약한 작가 김사량(金史良, 1914~50)의 텍스트에 관한 꼼꼼한 읽기인 동시에 실증적인 주석 작업이기도 하다.

김사량이 일본과 조선 문단 양측에서 활동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가 조선어와 일본어 창작이 모두 가능한 이중언어(bilingual)세대에 속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식민지 조선의 초창기 문인들, 예컨대 이광수(1892년생)나 김동인(1900년생), 염상섭(1897년생) 같은 이들은 어땠을까? 그들 또한 일본어 읽기와 쓰기가 자유로웠으며 서구 근대 지식들을 일본 유학과 서적을 통해 학습했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물론 그들이 일본어에 능숙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중언어란 이와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1914년생이었던 김사량은 일본어가 필수 외국어에서 조선의 공식어 지위로 올라가게 된 1911년 이후에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이미 일본어로 제도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이다.

일본어에 대한 감각이 세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던 만큼, 1930년대 말에 이르러 일본어 창작이라는 목전의 현실 앞에서 조선 문인들이 보였던 반응도 서로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선배 세대인 이광수(李光洙)의 경우를 보자. ‘친일’ 글쓰기와 행위로 후대까지 악명 높은 그는 전 조선 인구가 ‘국어’를 깨치게 되는 기간을 50년 이후로 잡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조선 문인들이 조선어로 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광수가 그렇게 했는지의 여부와는 별도로 이는 일종의 지연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김사량의 반응은 어땠을까. 김사량은 좀더 ‘유연’해 보이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데, 조선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조선인 문학자들에게는 내지어(일본어) 창작을 결코 강요해서는 안 되는 반면, 내지어 창작은 자신과 같이 내지 문단에서 내지어 글쓰기가 가능한 사람이 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아울러 조선어 문학은 훌륭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조선반도를 벗어나 좀더 넓은 세계로 소개될 수 있다는 것이 김사량의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응 방안으로 보이는 김사량의 입장은 그러나 특유의 문학적 비전과 민족적 야심을 내장한, 무엇보다 긴장과 역설로 가득 찬 모험이기도 했다. “내지어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체내에 살아 숨 쉬는 조선문학의 전통적인 것을 통해서 올바르게 발현해 나가는 것.(35면, 강조는 저자) 제국의 언어로 제국을 넘어선다는, 아니 최소한 제국의 시선 안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김사량의 모험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이 책의 대답은 예외적으로, 그리고 열렬히 그렇다,이다. 실제로 김사량의 일본어 소설 「풀숲 깊숙이」(草深し, 1940)는 제국의 언어를 부리는 식민지 청년의 문학적 기지와 글쓰기 전략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시골 산간의 군수가 꾀죄죄하게 황토빛으로 바랜 옷을 입은 조선인 산민(山民)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제국의 방침이었던 ‘색의 장려’(조선인들이 게으른 이유를 흰옷에서 찾아 조선인들에게 색깔 있는 옷을 입게 한 조선총독부의 정책) 연설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넘볼 수 없는 권위와 공신력의 상징인 일본어는 시골 군수의 형편없는 일본어로 인해 노골적으로 조롱당하며, 김사량은 이 소설에서 오늘날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모방을 통한 권위의 전복을 솜씨 좋게, 그리고 통쾌하게 보여준다.

김사량의 일본어 글쓰기 전략이 이중언어세대 작가군 중에서도 단연 탈식민적 저항과 전복의 에너지로 반짝인다는 이 책의 시각은 그러므로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이러한 시각이 김사량의 모든 텍스트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아니 정확히 말해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지였다. 가령,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인 독립투사들이 중일전쟁 패배 이후 정치적·윤리적으로 급격히 타락하는 상황을 그린 「향수」(鄕愁, 1941) 같은 작품을 보자. 그들의 비참한 전락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구제’해달라고 외치는 화자의 발언을 전향이 아닌 다른 어떤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책이 보기 드문 성실함으로 천착하고 있는 식민지 말기라는 시기는 분명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조선문학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시기였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간은 ‘조선문학’이라는 익숙한 자명성에 대해 과거 그 어느 때에도 제기된 일이 없는 비평적 의식으로 장전된 질문들이 비로소 가능해진 때이기도 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조선문학’이란 언제나 ‘조선어’로 쓰인 문학을 말하는가? 조선어로 쓰이지 않았지만, ‘조선적인 것’을 담은 경우라면 그 작품은 ‘조선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조선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선적인 것’은 ‘제국적인 것’과 언제나 대립하기만 하는 것인가?

확실히, 김사량은 이 질문 연쇄들의 한복판에 서 있는 문제적 작가이다. 특정 국가(민족)의 문학사 서술 자체를 성립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 근본적인 질문들을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환기하는 능력만으로도 이미 김사량의 이름은 충분히 기억될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