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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조명
우리의 폐허를 직시하라
정우영 鄭宇泳
시인.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음. jwychoi@hanmail.net
백무산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 『그 모든 가장자리』 『폐허를 인양하다』 등이 있으며,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오장환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가 써내는 시의 눈빛은 아직도 성성하다. 짓무르거나 낡지 않았다. 요즘 흔히 보이는 자폐의 시들에 비하면 그의 시는 얼마나 패기에 차 있는가. 백무산. 이름만으로도 이미 뜨거운 시인. 나는 그의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 2015)를 읽다가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일상에 매몰된 게으른 타협들이 어찌나 환히 비치는지. 내 수치를 모르고 남의 그늘을 어둡다 하고 있었다. 그의 시가 밝혀주는 내 허물이 적나라하다. 그와 마주 앉는다는 게 그런 면에서 좀 멋쩍다. 더욱이 그의 시를 본격적으로 살피자니 낯익어 보였던 시들마저 왜 그리 새로운지.
마치 전혀 알지 못하는 시인처럼 그와 그의 자취들을 챙기면서 그를 떠올린다. 그는 여전히 호기심을 번득이고 있다. 그렇지, 호기심이다. 그의 바탕에는 저 호기심이 짙게 깔려 있어서 온전히 그의 시적 면모를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다. 이다음엔 또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의 시적 탐구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자활(自活)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도 의탁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자활적인 사람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그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아무리 가혹한 곳에 데려다놓아도 너끈히 자기 삶을 영위해갈 것이다. 그는 환경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호흡한다. 나는 그가 물길 잡고 터를 앉혀 혼자 지었다는 절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산자락과 물길과 절집이 오묘하도록 다정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그렇게 함께 지내온 존재들처럼 자연 속에 깃든 자활의 조화로움이 따사로웠다.
그런데 그의 자활은 독특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채워가기 위해 자활하지 않는다. 그가 세운 저 절집들이 그렇다. 이 절집은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 너와 함께 살기 위해 지어진 집이다. 너를 들여앉히는 집이다. 절집은 스님이 주인이 아니라, 손인 네가 주인이다. 나는 그의 이타성이 최적화된 게 이 절집이라 여긴다. 그의 시집 또한 이같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너인 우리의 자활을 돕기 위해 시집을 또한 짓는다고.
그래서일까. 그의 시집들을 찬찬히 넘기다보니 자활은 처처인데 포옹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라, 포옹이 없네?’ 난 사뭇 놀랐다. 시에는 대개 대상을 껴안는 포옹의 포즈가 있게 마련인데 그의 시에는 드물었다. 아니,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시들은 있는데, 어떤 대상을 폭 끌어들이거나, 심장과 심장이 맞닿는 포옹의 자세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포옹보다 연대를 더 좋아하는 걸까. 나는 말머리를 포옹으로 열었다.
정우영 포옹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가봐요? 시에서 잘 찾을 수가 없는데요.
백무산 포옹이라? 내 시에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그런데 어떤 부정성(否定性)을 앞세웠다거나 그런 건 있지요. 사회성을 얘기할 때 부정성이 앞서는 게 있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것은 강하게 포옹하고 또 어떤 것은 배제하는 그런 전달을, 나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긴 해요.
낙관이란 말 있잖아요. 난 포옹이 인간에 대한 낙관이라고 봐요. 인간에 대한 낙관 없이, 어떤 회의적인 시각과 부정의 방식으로는 포옹이 성립하기 곤란하잖아요? 이때 낙관이라면 인간에 대한 믿음, 신뢰 같은 것인데, 그런 문제는 의도적으로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껴야 할 지점에서도 그걸 붙잡고 있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포옹이 실은 개인적인 끌림이잖아요. 그렇잖아도 지난번에 황현산(黃鉉産) 선생이, 제 시에는 연애시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연애를 앞세우면 현실이 죽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죠. 강박적입니다.
현실조건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아직까지는. 난 ‘아직까지’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내가 마음껏 나의 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나는 사회와 우리 현실을 주로 얘기해왔지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적 의지와 감정의 노출을 자제하거나 혹은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나 개인에 관해서든 뭐든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다뤄보려는 의지가 셌다는 겁니다. 시로서는 문제가 많죠.
정우영 흠, 아마도 황현산 선생은 제가 말하는 포옹을, 연애시로 지칭하신 것 같군요. 저는 시가 어떤 사물과 서로 마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물을 보고, 사물도 나를 바라보는. 그런데 형의 시에는 내가 사물, 혹은 너를 바라보는 시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했는데 형 말을 들으니 알겠군요. 아직까지 현실이나 사회, 내가 아닌 타자에 대한 시선으로 해야 할 얘깃거리가 계속해서 찾아오는 까닭에 시의 시선이 내면으로 들어오기 힘든 거네요.
백무산 얘기하다보니까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점이 내가 시를 대하는 태도이자,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나는 시를 전공이나 직업으로 여겨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고립된 개인의 자기 고백으로 쓰고자 한 것도 아니었고. 굳이 시를 쓰려고 할 때에는 사회성 안에 있는 어떤 것을 쓰려고 했고, 또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요즘은 사회적 발언을 시로 담아내는 시인들이 드물잖아요. 하지만 나한텐 여전히 그 역할이 남아 있는 거죠. 그래서 개인적인 시화(詩化)는 나중 것이다 하고 있는 거지요. 아마 나는 처음 시를 쓸 때부터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내 얘기는 나중에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늘 이런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야 한다, 시대가 지나야 한다, 이런 시각을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각박하고 열악한 시대상황에 대한 부채와 소명의식이 앞섰다고 볼 수 있죠.
정우영 세어보니까, 『만국의 노동자여』(1988)부터 『폐허를 인양하다』까지 시집이 모두 아홉권이네요. 어느 틈에 이렇게나 많이 쓰셨을까 놀랍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형의 시에서 ‘밥’이라는 시어를 접했을 때 정말이지 충격이었어요. 밥, 노동의 밥. 아주 못사는 시골 출신이지만 저는 배를 곯아본 적은 없습니다. 농촌에서는 아무리 못살아도 밥은 먹으니까. 그러니 제게 밥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지요. 근데 형 시에서는 이 밥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노동의 밥, 피가 서린 밥이지요. 내가 간절히 얻으려 하지 않으면 밥은 없는 거예요. 시를 읽는데 ‘밥’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던지…… 그때 제게 ‘밥’이라는 말은 ‘공구와 무기’와 더불어 큰 떨림이었지요.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
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
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
쓰일 데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
살아 있는 노동의 밥이
—「노동의 밥」 부분
그런데 그런 ‘밥’으로부터 떠난 시의 여정이 이제 ‘폐허’에 이르렀어요. 박근혜정권도 하는 짓을 보면 1970년대로 돌아갔으니 시도 따라서 돌아가는 게 맞나요? 폐허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그래서 그런지 저는 꼭 형이 출발점을 떠났으나 다시 어떤 출발점으로 돌아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요.
부연하자면 예전에 배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형은 거길 ‘지옥선’이라고 표현했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거든요. 지옥선, 이건 배지만, 사실은 지옥의 조선이기도 하잖아요. 아이들의 언어 조합이 참 기막히게 뛰어나요. 이 땅이 지옥의 조선, 헬 조선이라는 거지요. 이로 미루어보면, 삼사십년이 지났는데도 당대의 삶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여기는 여전히 지옥인 거지요. 이게 과거로 회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점이 굉장히 아픕니다. 현실을 지옥으로 느끼는 아이들의 상황인식이.
백무산 나는 인간이 사실은 굉장히 아슬아슬한 지점에 처해 있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지점에. 아주 순박한 농부가, 전쟁터에서 몹시 잔인한 살인을 일상적인 관계로 받아들이는 기록물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기록이 아슬아슬한 인간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도 그래요. 처음엔 모두 착한 사람만 감옥에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조금 지나면 슬슬 감추어진 사악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요.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이 저지른 흉악 범죄도 아주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일어나거든요.
바로 그 지점에서 한발만, 한발만 내디디면 폐허예요. 인간은 늘 그런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그 지점을 지탱해주는 것이 사회고 공동체인데 이게 조금만 무너져도 평범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문제로도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나도 늘 아슬아슬한 지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죠. 언제 어디서 싱크홀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느낌을, 늘 갖고 삽니다. 내가 주로 사회문제를 주제로 다루니까 의지가 강한 인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편이죠.
아마도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서 갖게 된 불안감이 중요한 원인이라 여깁니다. 게다가 현대사회로 오면 인간은 사회적 불안감까지 중첩되게 되거든요.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불안감,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이런 게 과중되면서 인간은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회적 존재가 되지요.
정우영 ‘지옥선’과 ‘헬조선’이라는 말의 유사성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후진적 폐해를 들여다보려 했는데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감으로 진입하니까 좀더 복잡해졌습니다. 어찌됐든 간에 당대의 ‘지옥선’과 ‘헬조선’의 현실이 비슷하다고 보시는 거지요?
백무산 자본주의는 경쟁체제를 부정하는 논리를 자꾸 묻어버리려 합니다. 계속 성장을 해야 하니까요. 그것이 희망의 속성이겠죠. ‘헬조선’은 과잉된 희망이 만든 거죠. 세월호사건이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보수언론들은 뭐라 했습니까.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자, 정상 사회로 돌아가자” 읊어댔거든요. 하지만 세월호는 그들이 말하는 정상 사회에서 일어났죠. 그걸 정상사고라고 합니다. 이 희망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희망의 이름으로 현실을 묻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되지요. 사실 이때 희망은 지배 이데올로기 그 자체지요. 희망은 언제나 제도권 안에서 체제를 강화시키는 질서로 작용합니다. 부정적 시각이 아니라 직시와 회의가 필요하죠. 그러한 감정을 함께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점을 좀더 잘 표현하고 싶었던 게 『폐허를 인양하다』입니다. ‘인양하다’도 중의적인 표현인데 그 의미 중 하나는 바로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나의 폐허를 직시하라’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 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 사회를 들어올리는 부력이라는 것을
비참한 신체들 튀어나온 눈들 문드러진 손톱들 함몰한 가슴들 폐를 잠식하는 울음들 절단된 신체들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버림받음과 떨어져나감과 절단은 관리의 대상일 뿐
(…)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그걸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져올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인양」 부분
정우영 ‘폐허’와 ‘인양’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폐허를, 나 자신의 폐허를 냉철하게 직시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자신의 폐허를 직시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개는 나를 용인하고 내가 속한 체제 속에 안주하려 하거든요. 이 안주하고자 하는 바람, 이것을 저는 희망이라고 보는데요. 문학하는 자로서 이 희망을 받아들이는 한, 문학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희망은 체제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체제 속으로 귀속되는 희망이거든요. 체제 바깥을 향하는 새로움은 전혀 없는 셈이지요. 이 체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자라면, 문학을 꿈꾸는 자라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절망 속에 역설적으로 희망이라는 새로움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절망을 직시하고 발언하는 것, 그것이 희망의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무산 반복되는 재앙은 역설적이게도 희망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생명에 위협이 되는 걸 더 잘 기억해왔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죠. 인간의 행동은 쾌락원리에 따릅니다. 희망 역시 쾌락원리에 따르고 국가는 그 쾌락을 질서로 내세워 줄을 세우죠. 파시즘을 희망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국가 대통합’이라는 말은 국가 전체가 부흥회 하자는 겁니다.
정우영 그렇게 직시할 때,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목을 걸어야 할까요. 『폐허를 인양하다』를 읽으며 제게 콕 박힌 것은 ‘목’의 시들입니다. 「참수」에도 「피의 대칭성」에서도 목이 언급되는데요, 읽으면서 절로 제 목으로 손이 가더군요.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꽤 섬뜩했지만 통쾌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모가지에 연연해서 삶을 그르치는 건 아닌가 싶거든요. 행동해야 할 때 멈칫거리고 체제에 안주하는 거지요. ‘네윈 이을드름’이 그런 우리의 비겁함을 목 베어 내던진 것 같았어요. 저릿하면서도 시원했지요.
네윈 이을드름(26)은 터키에 사는
두 아이의 가난한 엄마
남편이 멀리 일하러 가고 집을 비울 때면
이웃에 사는 친척 누레틴 기데르(35)가
그녀를 성폭행하고 학대했다 그의 아이까지 임신했다
반항하는 그녀를 협박하고
아이들 목을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남편이 일하러 떠난 그날도 남자가 담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총을 들고 나와 쏘았다
그래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다
맨발로 거리에 나갔다
모여 앉아 빈둥거리는 남자들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를 본 남자들은 또 쑤군대며 낄낄거렸다
그녀는 남자들 한가운데에 손에 든 것을 내던졌다
모두 기겁을 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남자의 머리통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내 뒤에서 쑤군거리지 마라
내 명예를 우습게 여기지 마라!
쑤군거리는 자들 가운데 머리통을 던졌다는
기사 대목에서 내 가슴에 불이 활활 일었다
우리는 지난 시절 더러운 체제의 목을 베어
광화문 네거리에 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들 비루한 모가지들도 그 더러운 체제에 기생해 있었다
어두운 곳으로 가서 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내 모가지를 참수하여 거리에 내던지고 싶어
거울을 만들려고 벽돌을 갈고 또 간 일이 있었다
내 생의 최대의 불안은 내 모가지가 든든히 붙어 있는 거였다
—「참수」 전문
백무산 우리도 과거에 체제의 더러운 목을 원했지만, 사실은 우리의 모가지 역시 그 체제에 기생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칼을 내리치지 못합니다. 어찌할 수 없죠. 그걸 개인적인 문제로 끌고 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자기혁명이라도 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저 나름 인식혁명의 대체자로 선의 세계를 끌어온 거죠.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라도 바꾸어야지요. 스스로 발견한 자아상에 세계를 극복해갈 수 있는 계기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었죠. 그걸 나는 모가지로 표현했지만, 인식의 얼굴입니다. 자기 존재를 결정짓는 인식의 얼굴이 그 모가지에 다 있죠. 그래서 이른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근(六根)을 ‘여섯 도적’이라고 부릅니다.
실은 이런 생각이 『만국의 노동자여』에도 이미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실린 「까마귀」가 내게는 유일하게 애틋해요. 이 시가 어쩌면 그 시절 나의 내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요. 까마귀가 해골에 붙어 있는 내 눈과 귀, 혀와 입, 이런 걸 다 파먹어줬으면 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정말 내가 깨끗한 해골이 되고 싶다, 새롭게 되고 싶다는 갈망 같은 거죠. 이런 인식은 ‘밥’과도 연결이 됩니다. 밥은 결국 생명의 기초에 대한 인식이거든요. 그러니까 단지 어떤 사회적인 조건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밥 먹는 일이 생명의 기초활동이라는 인식이고 이는 까마귀가 파먹은 해골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것을 사회적 조건과 동시에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나는 존재와 사회문제는 늘 동시적이고 중첩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정우영 그러고 보면 「까마귀」라는 시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누구도 「까마귀」에 주목하지 않았군요. 이 작품이야말로 백무산 시의 근원적인 뿌리이자 원형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까마귀’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흘려버릴 수만은 없겠습니다. 갱신과 각성의 매개자로서의 까마귀로군요. 당시까지 까마귀는 불길함의 상징이었을 텐데, 자아 인식의 본원성을 까마귀로 대상화한 점이 독특합니다.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까마귀라는 새의 등장도 예사롭진 않습니다. 까마귀 오(烏) 자가 나 오(吾), 깨달음 오(悟)와 동음이어서 그런 걸까요. 왜 하필 까마귀를 상징물로 썼을까 궁금한데요.
백무산 나는 생명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공허한 질문이라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만 끊이지 않아요. 애당초 내 인생의 실패는 여기서 연유했을 겁니다.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하고 동시에 종교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둘 다 같은 이유에서지요. 하지만 한쪽에 관심을 두면 다른 쪽이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죠. 이쪽저쪽으로 늘 옮겨다녔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몸과 마음에 붙어 있는, 의지가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떨쳐내었으면 하는 갈망이 늘 있었죠. 그것들은 내게 늘 긴급해서 현실적인 문제는 매우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까마귀는 흉조라고 어른들이 불길하게 취급해도 나는 까마귀가 하늘을 덮고 날아오는 것이 그렇게도 좋아 보였어요. 어릴 적에는 그걸 몰랐겠으나, 내게는 묵시록적인 상황에 대한 잠재적 끌림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목을 말하다가 얘기가 조금 비켜갔는데요, 내겐 목에 딱 걸려 있는 생각이 있어요. 항상 목에 걸려 있어서 되살아나곤 하는 장면이지요.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일 겁니다. 한여름 밤에 애들하고 공터의 평상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누가 하늘에는 “끝이 없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자 그 옆에 있는 애가 “그럼 끝이 없겠지” 하고 받았어요. 그러면 대체로 애들 얘기는 거기서 끝나잖아요. 그런데 또 한 애가 있다가, “아냐, 끝이 없는 게 어디 있겠어. 끝이 있지” 하는 겁니다. 그래, 옆에서 가만히 듣는데, ‘끝이 없는 건 없댔는데, 그럼 끝이 있는 건 또 뭐야? 끝이 있으면 그다음엔 또 뭐가 있지?’라는 의문이 도무지 그치질 않는 거예요. 그다음에 다른 게 나오고 이어서 또다른 게 나오고…… 그렇게 또다른 게 나올 게 아닌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충격으로 남아 있는데, 문제는 이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바퀴가 돌다가 중력에 의해 멈추는 것처럼 얼마쯤 진행되다가 생각이 딱 그쳐야 하는데, 안되는 거예요. 더 세게 돌아요. 그냥 애가, 미칠 지경이 돼버렸지요. 에너지가 줄어야 되는데 에너지가 빠지지 않으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요.
살면서 이같은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이게 내 공포와 불안의 근원 같기도 해요. 무한에 대한 공포는 폐소공포와도 연결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정상적으로 가다가도 이제 좀 괜찮겠어, 이대로 가도 되겠어, 그런 적이 거의 없어요. 예기치 않은 순간, 마치 싱크홀 같은 데 툭 떨어지는 느낌으로 안정이 어려웠어요.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자기혐오도 적지 않아요.
정우영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는 대체로 회의하면서도 그 회의를 발전시키지 않거든요. 회의하는 순간, 딱 멈추잖아요.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다가 불편하면 멈춰버리거나, 거기서 도망가버립니다. 물론 회의하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그에 비해 형의 경우는, 전혀 다른 측면이군요. 끊임없이 회의하고 그걸 직시하려고 한단 말이지요. 이같은 회의에 대한 직시가 어찌 보면 시를 쓰거나 삶을 이뤄나가는 형의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때 회의가, 좀전에 형이 얘기한 싱크홀 아닐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싱크홀에 빠지는 걸 두려워할 겁니다. ‘이게 왜 생겼지? 왜 나한테 일어나지?’ 하는 질문을 진척시키지 않지요. 회의와 싸우면 싸울수록 버겁거든요. 게다가 부단히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 에너지를 거기에 전부 투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회의를 길게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선택해버리지요. 한데, 형은 그 순간에 회의를 직시하려는 자아가 발동된다는 거잖아요. 좀체 접할 수 없는 경각(警覺) 아닐까 싶어요.
백무산 그런가요?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나도 잘 모르고 있던 성향인데. 지뢰처럼 묻힌 싱크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서 그런 거죠. 회의가 먼저 들어와버리니까 선택의 여지도 없지요. 살면서 항거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맞닥뜨린 것 같아요.
정우영 항거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형에게 문학을 들이민 건가요? 문학으로 안내한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혹 있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독학파시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학으로 끌어들인 어떤 촉매는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백무산 청소년기에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입니다. 그때 보기에는 까다로운 책이었는데 조금 읽다보니 엄청나게 빨려들었어요. 내가 읽으려던 게 아니라 표지에 끌려 친구 생일선물로 주려고 헌책방에서 200원에 구한 건데, 그 친구가 생일 전날 죽어버렸어요. 그 바람에 나는 학교도 가지 않고 그걸 읽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읽은 책이라 그런지 지금도 기억에 아주 또렷이 남아 있어요. 문학의 원체험 같은 것이었는데, 강렬했지만 그때는 그게 내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요.
20대에 공장생활 하면서는 내 조건들과 맞지 않는 책들을 읽으면서 적잖이 방황했습니다. 여러 책을 섭렵하다가 그 와중에 집어든 게 시 잡지들입니다. 시집들도 읽었죠. 1년 정도는 읽었으나 대부분은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군요. 그전에 니체나 쇼펜하우어, 데까르뜨도 대충 들춰봤고 과학책도 꽤는 들여다봤는데 특히 시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참 답답했습니다. 이걸 이해하면 내 삶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시를 잘못 읽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시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거예요. 그걸 알게 된 다음에는 시에 대한 관심을 접었지요.
그랬는데 그 경험이 내면의 바탕을 깔았는지 어느 때부터 다른 어떤 자극도 없이 시를 쓰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짓이 3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지요.
정우영 친구의 죽음과 방황, 삶에 대한 모색, 이런 것들이 시를 쓰게 한 근본적인 힘이었군요. 당대 현실의 그늘만이 아니라. 문학과 만나기 위해 기울인 일년여의 분투가 어쩌면 지금의 백무산 시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때 문학의 자양분인 자기 인식과 점검의 기본태도를 익힌 것으로 보이거든요. 이런 회의와 방황들이 혹 불교와 선(禪)을 받아들이게 된 요인은 아닌가요.
백무산 그렇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가 쉽게 불교에 접근한 것 같아요. 불교는 늦게 만났지만, 초보적인 이데아라고도 부를 수 있는, 어릴 때부터 느낀 의문과 무한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늘 잠복해 있었기에 친근하게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정우영 이런 점이 저하고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무언가에 집중하다 거기에 너무 깊이 빠질까봐 두려워서 어느 순간에 딱 멈추거든요. 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친연성으로 얘기하면 저는 불가에 가깝습니다. 쉴 때 내 맘이 움직여 가는 곳은 대개 절이거든요. 그런데 불경은 읽지 않아요. 기본적인 가르침 정도나 알고 있지 그 이상은 들어가지 않아요. 읽기를 두려워하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를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게는 무언가가 나의 전체가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중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그 자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 아닌 것에 통째로 나를 맡기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백무산 그게 주체성 아닌가요. 나도 그렇습니다. 주변 얘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이른바 불교적인 시들이 대체로 절 주변과 절간에 얽힌 얘기, 법당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이런 걸 쓰는데요. 난 그런 주변적인 걸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어요. 교회와 성당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절도 불경도 관심 없고 오로지 선에만 끌리는 겁니다. 이게 아니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거예요. 나의 다른 갈등, 다른 불안을 죽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나는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서 내가 뒤집어져버려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패닉」이라는 시에서도 썼는데, 내가 뒤집어져버려야 현재 내가 가진 다른 모순들이 없어진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다 한밤중 산길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만져질 듯한 별들이 패닉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우주
그 풍경이 내게 스며들자
나는 드러난다
내가 폐허라는 사실이
죽음이 갯벌처럼 어둡게 스며들고
사랑이 불같이 스며들고
모든 질서를 뒤엎고 재앙의 붉은 피가 스며들 때
나는 패닉에 열광한다
내게 고귀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사랑이 충만해서가 아니다
내 안에 그런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런 따위로 길이 든 적도 없다
다만 가쁜 숨을 쉬기 위해서
갈라터진 목을 축이기 위해서
존재의 소멸이 두려워 손톱에 피가 나도록
매달린 적은 있다
고귀함이나 사랑 따위를 발명한 적은 있다
패닉만이 닿을 수 없는 낙원을 보여준다
나는 그 폐허를 원형대로 건져내야만 한다
—「패닉」 전문
정우영 형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태풍이 연상되는데요? 인간의 입장에서 태풍은 굉장한 공포지만, 자연으로 보면 태풍은 중요한 흐름입니다. 태풍은 사실 순환이잖아요, 천지간의 순환. 순환해야 세상이 바뀌고 또 정화된다는 측면에서 태풍이 없으면 자연은 망할 겁니다. 우리가 태풍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 태풍이 없으면 우리의 여기가 있을 수 없지요. 그런 점으로 보면, 패닉에 대한 추구가 태풍의 발생과 순환에 맞닿아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돼요. 태풍이야말로 가장 큰 불안이지만 또 어쩌면 우리는 간절히 그 태풍의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거든요.
백무산 그래요. 딱 맞는 얘기예요. 나는 태풍이 오면 굉장히 들떴죠. 적막한 한겨울이나 사막 같은 풍경에도 나는 푹 빠집니다. 내가 왜 이런 극단적인 시공간들을 좋아하는가. 생각해보면 특별난 취향이 아니라, 내 안의 잘못된 무엇을 지우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넘침이 아니라 결함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정우영 어릴 때부터 체질적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즐기신 건가요. 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사람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모르지만, 자기가 맞닥뜨린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스스로 달라졌음을 느끼게 되거든요. 형의 경우에는, 그게 체질적으로 강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풍에 들뜰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실은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를 개념적으로 정리하면 ‘불안과 응전’ 혹은 ‘자기 결핍에 대한 탐구와 모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쯤에서 우리 얘기를 오므려야 할 듯싶습니다.
서른해, 백무산 시의 궤적을 따라가봅니다. 밥을 지나 인간의 시간을 넘어 길과 광야로 나섰다가 다시 일상에서 폐허를 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그다음 시선은 어디에 머물까요.
백무산 매번 이번 시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쓰고 나면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못 믿어요. 나는 시를 오래 매만지지 못합니다. 좀 붙잡고 있다보면 시가 증발해버려요. 달아나는 새 붙들듯이 해봐야 허망하기만 하죠.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는 언어를 별로 믿지 않는 것 같아요. 윌리엄 예이츠(William B. Yeats) 전기를 쓴 사람이 예이츠는 명백한 난독증 환자라고 하더군요. 기회가 되면 그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슬픔이 자꾸 커지고 있는 점이 요즈음 변화라면 변화랄 수 있겠는데요. 처음 지적하신 ‘포옹’이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슬픔이 찾아오기 때문이겠죠.
좀더 내밀한 개인적인 대화들, 이순에 이른 동년배 시인들에 대한 소회 등 남은 얘깃거리들이 더 있지만, 여기서 줄인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아셨으리라 여기는데, 여전히 그는 사회와 사물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편의 경험을 나의 인식으로 끌어들여 너에게 돌려주는 시들, 선지자적 울림이 깊은 시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철탑 농성 노동자들에게 마음 기울여 「대지의 인간」을 적어내는 것 못잖게 그가, “거시기에 먹물 찍어 네 이름을 크게 쓴다 S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지도 못하는 민주주의”를 담은 「난해한 민주주의」 식 작품들도 기꺼이 써낸다는 점이다. 이런 의외성, 뜻밖의 진행이 있어 그의 시가 더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아, 그리고 그의 말법. 그의 시에서 보이는 독특한 말투와 어조 또한 놓쳐서는 안된다. 그는 글의 시를 쓰지 않고 말의 시를 쓴다. 묘사의 언어가 아니라, 직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는 그만이 가진 구어체로 세상의 탐욕과 허물을 거침없이 찔러댄다.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소외와 부조리의 어둠을 헤집는 것이다. 아프지만 시원하다. 통각의 어떤 깨우침 같은 게 가슴에 맺힌다.
사람들은 이 통렬함에서 어떤 단호함만을 읽고 갈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는 저 「까마귀」에서처럼 자기 인식의 살을 발라내어 길을 내어준 것임을. 아마도 그는 그가 바라는 참세상이 오기 전까지 이렇듯 스스로를 발라 세상 밝히는 시들을 짓고 지을 것이다. 그는 대담 곳곳에서 “‘아직까지’ 나는 내 시를 쓰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아직까지’라는 말이 몹시 안타깝다. 그가 ‘나’를 쓸 수 있는 때는 도대체 언제쯤 여기 다다를 것인가.